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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원회 특별수련과 독야청청 철야삼만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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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2박 3일동안, 우이동 의창수도원에서는 연원회 구성원(도정, 직접도훈, 도훈)의 특별수련이 있었고 이 자리에는 전국의 연원지도자 30여명과 중앙총부 지도층 전원이 참석하여 이신환성의 실천을 심맹하면서 천도교의 현실과 장래에 대한 광범한 의견교환을 하였습니다. 저도 해방직후에 입도한 이래 연원체계에서 자연스럽게 신훈, 교훈, 도훈을 거쳐 이제는 도정의 자격으로 이번 특별수련에 모든 개인 스케줄을 제치고 참가하였습니다. 연원의 본질에 비추어 볼 때 현 상황이 참으로 부끄럽고 송구한 마음을 간직한 채 방방곡곡의 연원관계 여러분을 한자리에서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br/>  <br/>  통상적인 수련 프로그램 이외에 총부업무 보고와 연원대표 간담회에서 오고간 이야기를 중심으로 저의 “천도교 세계화” 시각에 비친 사항만을 간추려 이 글을 읽으실 ±100명 동덕들에게 요약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런 정보화 시대, 이 좁은 천도교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궁금해 할 교인들에게 즉각 전달하는 매체와 방법조차 없는 우리의 처지에 대하여 자괴와 분통을 되새기며 이글을 씁니다. 우리 스승님들이 겪으신 험고(險苦)가 다시금 떠오릅니다.<br/><br/> <br/><br/>  첫날에 있은 교령인사와 종무원 업무보고는 전과 다름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조직에서 볼 수 있는 정상적인 업무추진 보고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지도부의 의지와 업무내용으로는 이 시대에 필요한 우리교단의 일대전기 마련보다도 그저 사람만나고 사진 찍고 하는 너무 일상적이라는 평가의 말을 들을 만 했습니다. 총부는 주체, 연원과 교인은 객체인 듯한 인상도 받았습니다. 그 다음날 토요일 오후에 계획된 간담회는 당초 2시간 예정이 4시간이나 지속되는 격렬한 논란과 대화의 장이였고, 역시 첫 과제는 지난 4월대회의 결의사항을 왜 3개월이 지나도록 조치하지 않느냐 하는 규탄과 질의응답이었습니다.<br/><br/> <br/><br/>  대회결의사항 중에서도 대회 선출직의 급여 및 예산절약, 그리고 연원회, 현기사의 강화가 핵심이었습니다. 여기서 제기된 문제와 대응 등 상세한 것은 나중에 공식기록을 보시도록 하고, 다만 총부의 법규준수에 있어 대회결의를 “권고” 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집행부의 난교난규(亂敎亂規 : 의암성사말씀)성 운영에 대해 저도 단호하게 지적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어진 연원회원 전원의 개별 발언은 절반이상이 우리현실에 대한 개탄과 탈출구 무망의 앵무새 발성이었고 일부 상당한 수준의 열렬한 대안 제시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은 비상시기, 혁명이 필요한 때이다. 누구의 책임인가를 묻지 말자.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비전을 갖고 발전대책을 세워나가면 된다. 총부는 봉사하는 곳, 위압적이고 독선적이어서는 안 된다. 종무원은 교헌대로 직무수행하라” 등등, 주로 삼직(三直 : 直視, 直言, 直行)을 주장하는 말씀들이었습니다. <br/><br/> <br/><br/>  저도 이에 공감하면서 저의 세계화책에서 언급한 것을 다시 한 장으로 정리하여 이 자리의 모든 분들께 돌렸습니다(첨부파일참조). 소위, 에스컬레이터 효과, 즉 올라갈 때는(성운국면) 서 있기만 해도(투입) 그 효과가 상승하나(산출) 내려갈 때는(쇠운국면) 그대로 서있으면 계속하여 하강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내려가는 국면이라 현재와 같이 일상적인 투입(일)만을 지속하면 결국 영(零)을 지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도록〔大機一轉〕상향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대적인 우리의 사명입니다. 교인 핵이 폭발되어 총부가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br/><br/> <br/><br/>  이번 이신환성 수련에 참가하면서 저는 문득 철야삼만독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왕이면 의암성사님의 체취를 맡는 김에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강행군을 하고 이어 철야까지 하면서 성사님의 고행을 따라보자는 각성이였습니다. 그래서 그 실행을 토요일 밤으로 정하고 여러 동덕들께도 저의 의지를 알렸습니다. 대부분 노쇠하신 터라 저와 합류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짐작은 했습니다. 어떻든 저는 초지일관, 당일 18시간의 특별수련 끝에 밤10시부터 봉황각 마루에 앉아 ‘以身換性’ 현판을 바라보고 삼만독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옆방에서는 몇몇 동덕들이 코골고 주무시는지라 묵송과 심송만으로 계속하기를 5시간, 그러면서 윗방 성사님 초상 앞에서 참회의 말씀도 드렸습니다. 이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쩐지 가슴 답답한 것을 느꼈습니다.<br/><br/> <br/><br/>  그래서 다음날 새벽 3시에는 성사님 묘소로 올라갔습니다. 계단은 어두웠으나 산소일대는 훤했습니다. 제가 자작한 1050염주(105염주 10회)를 들고 시원한 우이동 일대를 내려다보며 일어선 채 현송을 시작했습니다. 아주 시원했습니다. 비온 끝의 앞자락 언덕과 봉분 사이에서 소리 높여 주문을 외우니 몸과 마음이 모두 시원해 졌습니다. 이신환성도 이런 것이라 싶었습니다. 많은 구름과 사이사이의 푸른하늘(天), 땅과 그 위의 풀과 나무들(地), 그리고 묘소 아래 불빛속의 사람들(人)과 둘러싸인 공기까지도 저의 주문소리에 맞춰 합송 해주는 듯싶었습니다. 성사님께서도 기침소리로 호응하시는 것 같아 9m넘는 장주를 끌고 묘 주위를 돌며 더욱 큰 소리로 주문을 외웠습니다. 이렇게 거의 무아지경에서 천일합일과 시천주를 헤매기 1시간, 그때 이마 한쪽이 벌레가 물었는지 따가웠습니다. <br/><br/> <br/><br/>  그 이마가 금방 부어올라 밤알같이 되었습니다. 아아, 의암성사님께서 손가락으로 꿀밤을 주셨구나. 이 못난이들 이 밤이나 먹고 정신 차려라 하시면서 말입니다. 조금 후에 이마를 만져보니 약간 가려울 뿐 밤덩이는 없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사님의 입도전 주먹맛을 많이 보아야 합니다. 독야청청 삼만독은 이렇게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감응하옵소서. <br/><br/> <br/><br/>- 진암  朴 永 寅  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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