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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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東學)은 1860년(철종 11) 최제우가 창도한 조선 말엽의 사상이다. 이후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계승되지만 1898년 해월 최시형의 순도이후 종통(宗統) 계승을 둘러싸고 분란이 발생하여 여러 분파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배경[편집]

조선 후기에 이르러 각지의 반란, 외국의 간섭, 정치의 문란, 사회적인 불안과 긴장이 계속되었으며 한편 종래의 종교는 이미 부패 또는 쇠퇴하여 민중의 신앙적인 안식처가 되지 못하였다.

성립[편집]

이와 같은 정세를 배경으로 경주 출신인 최제우는 제세구민(濟世救民)의 뜻을 품고, 1860년 서학(西學: 천주교)에 대립되는 민족 고유의 신앙을 제창, 동학이라 이름 짓고 종래의 풍류 사상과 (儒)·(佛)·(仙)의 교리를 토대로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므로 모든 사람은 멸시와 차별을 받으면 아니된다.)', '천심즉인심(天心卽人心, 하늘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이다.)'의 사상을 전개하였다. '인내천'의 원리는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지상천국의 이념 즉,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세상을 세우자는 이념과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인권평등사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 신앙의 구체적 방법은 21자의 주문 '至氣令至, 願爲大峰,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를 외우고 칼춤을 추며 '弓弓乙乙'이라는 부적을 태워 마시면 빈곤에서 해방되고 제병장생(濟病長生), 영세무궁(永世無窮)한다는 기본적인 것이었다.

전파[편집]

한편 동학은 조선의 지배논리인 신분·적서제도(嫡庶制度) 등을 부정하는 현실적·민중적인 교리에 대한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사회적 불안과 질병이 크게 유행되던 삼남지방에 재빨리 전파되었다. 그러나 최제우는 포교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1864년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로 처형당하고, 최시형이 2대 교주가 되어 비밀리에 교조의 유문(遺文) 《동경대전》, 《용담유사》(龍潭遺詞)를 간행하는 한편 교리를 체계화하고 교세를 확대시켰다. 그 후 동학 혁명이 일어나 최시형도 처형을 당하고 동학은 천도교(天道敎)와 시천교(侍天敎)로 분열, 3대 교주에는 손병희가 되어 꾸준히 교리 정비와 교세 확장에 힘썼다.

조직[편집]

동학의 교회 조직은 최시형에 의하여 확립되었다. 즉 전국 각지에 세포 조직인 포(包)를 설치하여 접주(接主)로 통솔케 하고, 접주(接主) 중에서 유력한 사람을 도접주(都接主) 또는 대접주(大接主)라 하여 여러 포를 통솔하는 한편 교장(敎長)·교수(敎授)·도집(都執)·집강(執綱)·대정(大正)·중정(中正)의 6가지 직분을 두었다.

영향[편집]

동학의 혁명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