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으로 세상 읽기] 18. 민족해방과 독립혁명의 일대기 김구 <백범일지>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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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식민지 트라우마’ 치료한 영혼의 자서전

1938년 남목청 사건 때 일제 밀정의 총탄을 맞고 수술을 받은 백범 김구(맨오른쪽). 부산일보DB 1938년 남목청 사건 때 일제 밀정의 총탄을 맞고 수술을 받은 백범 김구(맨오른쪽). 부산일보DB

100년 전의 역사적 불길이 다시 붙고 있다. 3.1 운동과 임시정부 100년을 맞은 특별한 해에 일본은 반도체 부품의 수출 규제와 ‘화이트 국가’ 명단 삭제 방침을 발표했다. 총칼이 아닌 경제로 공격해온 것이다. ‘자유무역’과 ‘국제분업’을 내팽개치면서 약육강식을 숭배하는 제국주의의 유령에 빙의된 것일까. 과거를 돌아보자. 일본은 삼국 시대부터 지금까지 한민족의 역사를 굴절시키고 한반도의 발목을 습관적으로 잡아왔다. 왜구는 오랫동안 신라와 고려를 괴롭혔으며 임진왜란과 경술국치로 조선은 끝내 무너졌다.

일화 기록한 逸志… 유서 대신 남긴 기록

여유로운 회고록 아닌 절체절명의 참전기

진솔한 고백으로 커다란 신뢰감 안겨줘

평범에서 비범 찾는 보통 사람들의 희망

역설적으로 일본은 영웅의 산실이기도 하다. ‘계림(鷄林)의 개나 돼지가 되겠다’며 왜왕의 회유를 단칼에 거절한 박제상, 왜적을 토벌한 최영과 이성계, 그리고 임진왜란을 반전시킨 이순신이 있다. 5000년 민족사가 가장 바닥으로 가라앉은 일제 강점기에도 무수한 의사와 열사가 등장한다. 수많은 애국지사 가운데 백범 김구는 우뚝하다.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소원했던 그는 식민지의 어둡고 괴로운 밤에 가장 빛나는 별이다. 언제든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그가 어린 두 아들에게 유서 대신 남긴 것이 〈백범일지〉다. 매일 쓰는 일지(日誌)가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를 기록한 일지(逸志)이기에 사료적 가치가 높지만 다망한 시기에 쓰다 보니 세세한 숫자나 이름에 착오도 많다. 원본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도진순 창원대 교수에 따르면 〈백범일지〉는 1928년, 1942년, 해방 이후 등 세 번에 걸쳐 기록되면서 시간이나 사건을 착각하거나 중복된 내용이 상당하다. 여유롭게 과거를 되돌아보는 ‘회고록’이 아니라 총탄이 빗발치는 ‘참전기’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범중비범(凡中非凡)’의 깨우침

광복 뒤 프랑스 대사 이·취임식에 참석한 김구 광복 뒤 프랑스 대사 이·취임식에 참석한 김구

무엇보다 시간적 경과로 구성된 백범의 일생은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격동과 시련의 근현대사를 축약한다. 변화와 성장으로 요약되는 그의 삶은 애국지사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범 중 비범(凡中非凡)’의 깨우침을 얻게 된다. 우선 투명성이다. 가문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관습대로 왕족의 후손이었지만, 영락하여 ‘상놈’이 된 집안 내력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온갖 미사여구로 ‘용비어천가’를 흉내 내는 여타 자서전과는 격이 다르다. 만취하면 양반을 폭행하던 아버지와 삼촌의 주사를 ‘상놈의 행위’로 단정하고 ‘아랫것’으로서 받은 천대와 가난을 진솔하게 토로한다.

개인이나 국가나 과거를 왜곡하고 미화하면 제대로 나갈 수가 없다.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 볼 때 미래를 만드는 에너지가 생겨나는 것이다. 수탈과 침략의 전쟁을 반성하기는커녕 정의로운 전쟁으로 둔갑시킨 일본의 역사 왜곡은 또다시 실패를 예고한다. 예전의 잘못을 정직하고 담백하게 되돌아보지 못하면 그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런 면에서 〈백범일지〉는 일본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칼일 뿐만 아니라 김구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기다. 타인과 사회, 그리고 외세에 대한 비판이 항상 자아비판과 병행하기에 성취와 성공의 기록이 아니더라도 어두운 그늘이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백범의 솔직한 ‘상놈 선언’은 커다란 신뢰감을 안겨준다. 더욱이 신분사회의 하층에 가해지는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도 백범이 거둔 인격적 성취는 운명을 창조하는 인간의 전형이다. 18세때 동학에 입도하면서 ‘아기 접주’로 불릴 만큼 장사였던 백범은 어머니의 사랑과 애국애족의 이상으로 자신을 통제해 독립운동가의 삶과 역사를 써 내려갔다.

일신의 안위 대신 민족의 설욕

공공성도 책의 단락마다 흥건하다. 갓도 못 쓰는 상놈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거를 준비하지만 조선판 입시비리의 온상인 과거장에서 각성하여 평등한 새 나라를 건설한다는 동학에 찬동하면서 공적 생애를 시작한다. 동학혁명의 실패와 명성황후 시해로 어둠만 짙어지던 시기에 그는 대동강 하류 치하포에서 일본 밀정으로 인식한 왜인을 때려죽였다. 일신의 안위 대신 민족의 설욕을 택한 것이다. 사건 현장에 자신의 성명과 주소까지 밝힌 포고문을 부착한 김구에게 아버지 또한 ‘집안의 흥망은 네가 알아서 하라’고 피신을 강권하지 않았다. 광복군 부친을 둔 어느 작가의 말처럼 광야를 달리는 명마는 마구간을 돌볼 수 없다. 이후 백범의 세월은 ‘바람으로 빗질하고 빗물로 목욕’하는 반세기였다. ‘귀하면 궁함이 없다는데 직위가 올라도 궁한 일생의 연속이었다’는 술회처럼 그는 죽는 날까지 한 치의 땅, 반 칸의 집도 갖지 못했다.

오로지 투명성과 공공성으로 일관한 백범의 역정은 스토리텔링의 고갱이다. 흥미로운 일화와 진귀한 비화가 많아서가 아니다. 남들은 평생에 한 두 번 겪기도 힘든 사건과 사고 속에서도 평정심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이 일상에서 비범한 의미를 찾으려는 범인의 심장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왜 백범은 책을 냈는가. 자신과 같은 못난(!) 사람도 민족의 한 분자로서 할 일을 해왔으며, ‘대한(大韓)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아리랑〉의 독립운동가 김산 또한 흡사하다. 자신의 생애와 조국의 역사를 실패의 연속이라고 규정한 그는 단 한 번도 행복한 기억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계속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자신감은 자신을 이겨낸 작은 승리로 충분했단다. 참으로 의연하다. 이들이야말로 일제강점기의 불행을 대일 항쟁기의 자랑으로 바꾸면서 민족의 트라우마를 치유한 영혼의 시인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승


교양 팟캐스트 ‘일당백’ 운영자

※이번 기획은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연재합니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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