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새 교령으로 선출돼 앞으로 3년간 천도교를 이끌 이철기(67) 교령의
포부는 특별하지 않다. 선배들이 추구했던 가치들을 되살리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그런 일들이 만만치 않다는데 있다. 동학농민운동에서 시작한 변혁운동,
일제하에서의 자주독립과 개화운동, 그리고 해방후 통일운동 등 그 폭이 아주
넓다.
사실 구한말부터 일제하에 이르기까지 천도교는 우리의 사회운동을 주도했다.
교조인 수운 최제우 선생의 보국안민과 광제창생 그리고 인내천 사상은
동학농민혁명의 뿌리가 되었다. 동학혁명이 좌절된 뒤에도 흑의단발로 표현되는
신분 및 남녀차별 철폐운동은 우리나라 사회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이어
3·1운동을 주도했으며, 보성 덕성학원 설립 등을 통해 민족교육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3·1운동과 6·10만세운동으로 탄압이 극심해지는 가운데서도 천도교는
멸왜기도운동을 벌이는 등 항일운동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운동,
여성회 창립, 농민소비자운동도 함께 펼치는 등 사회운동을 도맡다시피 했다.
“천도교는 만인이 한울사람이 되어 평등하고 복되게 사는 이상향을 추구합니다.
서로를 한울님으로 섬기는 것 자체가 신앙 활동입니다. 그것이 인내천이고
보국안민입니다. 일제하에서 보국안민은 민족을 위해 투쟁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에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것이고, 해방 후엔 자주통일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길로 나갔습니다.”
천도교는 바로 이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이 걸었던 불행한 길을 고스란히 걸어야
했다. 해방 전에는 왕정과 일제에 의해 혹심한 탄압을 받았고, 해방이 되어서도
반외세, 자주독립, 남북통일을 기피하던 남북의 권력자로부터 배척을 당했다
“해방후 천도교가 침체된 것은, 북한에선 옛소련, 남쪽에선 미국 등 외세가
오랫동안 장악해왔던 탓입니다. 다가오는 통일시대에선 미국과 소련의 정신이 아닌
우리의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앞장서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미, 소에 눌려
꼼짝 못했지만 앞으로 천도교는 정신 바짝 차리고 통일시대를 열어나갈
생각입니다.”
지난 3월 동학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동안
뿌리깊은 피해의식에 시달렸던 천도교도들이 이제 기를 펼 수 있을 것이라고 이
교령은 기대했다.
이 교령이 정식으로 입교하게 된 것은 천도교의 가르침을 이해하면서부터다. 18살
때였다. “사람이 곧 한울(인내천)이며 내 마음 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시천주)는 교리와 보국안민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켜가며 조국의 근대화와
독립, 구국을 위해 헌신한 천도교의 역사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서울 강서구에 한강교구를 창설했고, 도정 선도사를 거쳐 천도교
정신지도기관인 연원회 부의장을 역임했다.
이 교령은 대학 졸업 후 38년간 교육계에 몸담아왔다. 교육부에 근무할 때는
교육방송 준비단의 책임을 맡아 교육방송을 출범시켰다. 다시 교직으로 돌아와
서울 장평중 교감, 대전 한빛고교 교장을 역임한 뒤 97년 정년 퇴임했다.
곽병찬 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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