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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장군의 술 '죽력고' [명욱의 술 인문학]

입력 : 2019-07-27 19:00:00 수정 : 2019-07-26 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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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역사 드라마 ‘녹두꽃’이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끝났다. 동학혁명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구한말 탐관오리의 모습부터 그를 통한 민초의 고통, 그리고 외세 침략 등 당시의 뼈저린 시대상을 잘 보여줬다는 평이다. 흥미롭게도 녹두장군 ‘전봉준’이 마셨다는 술이 있다. 매천 황헌의 오하기문(梧下記聞)이라는 문헌에 등장하는 이 내용은 전봉준 장군이 전북 순창 쌍치에서 일본군에게 모진 고문을 받고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이때 죽력고라는 술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해 허리를 꼿꼿이 편 상태에서 서울로 압송당했다고 한다. 전투에서는 졌지만 패배한 것이 아니라는 그의 의지를 알 수 있다.

죽력고의 한자를 풀이해보면 대나무 죽(竹), 스밀력(瀝), 기름고(膏) 자다. 대나무 기름이 스며 있는 술, 즉 ‘대나무 수액으로 만들어진 술’이라는 의미다. 동의보감에는 죽력은 혈압을 다스리며 피를 맑게 하고, 중풍·뇌졸중 질환 등에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이 술을 만드는 곳은 전북 정읍. 동학혁명이 시작한 곳으로 남쪽은 순창과 장성군, 그리고 노령산맥 줄기인 아름다운 단풍나무산, 내장산이 있는 곳이다. 복잡한 이름답게 죽력고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매우 지난하다. 우선 죽력부터 만들어야 한다. 죽력은 대나무를 약한 불에 구울 때 나오는 수액인데, 그냥 구우면 다 증발되기 때문에 섬세한 공정이 필요하다. 우선 대나무를 잘게 쪼갠 후에 항아리 속에 빽빽하게 넣는다. 그리고 항아리를 거꾸로 세워 황토를 발라주고, 말린 콩대로 덮고 태워 불씨를 만든다. 그 불씨 위에 왕겨를 올리고 3, 4일 동안 뭉근한 불 속에서 구워내면 거꾸로 세워 놓은 항아리 뚜껑에 죽력이 모인다.

죽력고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서울로 압송되기 전에 마신 술로, ‘대나무 수액으로 만들어진 술’이다. 동의보감에는 죽력은 혈압을 다스리며 피를 맑게 하고, 중풍·뇌졸중 질환 등에 좋다고 기록돼 있다.

항아리 하나에 나오는 죽력은 1.5리터 정도. 이렇게 얻어낸 죽력에 석창포(창포), 계심(계피), 솔잎, 생강을 3, 4일간 넣어 놓으면 약재가 죽력을 머금는다. 따로 발효시킨 발효주의 맑은 원액을 소줏고리 아래쪽에 넣고, 죽력을 머금은 약재를 위에 넣으면, 술이 끓는 순간 올라온 기체가 약재의 맛과 향을 머금고 내려온다.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죽력고가 완성된다. 알코올 도수 32도의 독주임에도 시원한 박하 향이 느껴진다. 마치 대나무밭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현재 이 죽력고를 만드는 인물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3호이자 식품명인 48호인 송명섭씨. 그는 직접 재배한 쌀과 누룩으로 무감미료 막걸리를 빚는다. 덕분에 막걸리 맛이 칼칼하고 드라이하다. 두꺼운 팬층을 가진 이 막걸리의 이름은 ‘송명섭 막걸리’.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딴 술이다.

죽력고는 전봉준 장군이 마시고 서울로 압송되었다는 슬픈 역사 속의 술이지만, 패배자의 술은 절대 아니다. 동학혁명이 남긴 자주성과 독립성이 우리 역사 속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일본 릿쿄대학(立敎大學) 사회학과 졸업. 현재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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