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n모시고 반갑습니다\r\n오늘 따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군요\r\n청주교구 구옥건물 마지막 시일이 여습니다\r\n오늘따라 최동덕 갑짜기 아파서 시일 참석 못해서 서툰솜씨로 교구장이 찍어습니다\r\n점심 준비 하다 보니 급하게 약속 있다고 가신분들이 계셔서 함께 못찍어습니다\r\n유승암 모친 께서 옛날 나오시든 교구 마지막 시일이라고 거동 불편 하심에도 불구하고 시일 참석 하셔습니다\r\n어제밤에 서울 가셔서 모시고 오셨나봐요\r\n두모자분 고맙고 감사합니다\r\n그리고 건강하셔서 봉고식때 다시 만나뵙길 심고 드립니다
\r\n청주교구 이모저모 - 본건물 뒷쪽에서\r\n\r\n
청주교구 이모저모 - 안에서\r\n\r\n\r\n\r\n\r\n
\r\n청주교구 이모저모입니다.\r\n\r\n\r\n\r\n
▲ 한봉수(1880~1936)\r\n본관은 청주로 내수읍 세교리 출신이다. 호는 청암이며 이명으로 봉수, 봉서,\r\n봉용등을 사용하였다. 1907년 의병으로 봉기한 이후 1910년 5월까지 충북, 경상, 강원\r\n등지에서 평민으로 구성된 의병부대를 이끌고 여러차례 신출귀몰한 유격전을 펼친 중부지방의\r\n대표적인 후기 의병장이다. 일제에 피체되어 내란죄로 교수형을 선고 받았으나, 이른바 \r\n합방대사령으로 출옥하였다. 이후 일제의 온갖탄압과 감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r\n1919년 4월 1일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다…
▲ 신홍식(1872~1937)\r\n본관은 고령으로 가덕면 인차리 출신이다. 35세때에 청주 북감리교회에서 미국인에게\r\n세례를 받고 기독교신자가 되었다. 1913년 서울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감리교 목사가 되었다.\r\n평양남산현교회 목사로 재임하던 1919년 2월 이승훈으로부터 3·1운동\r\n의 계획을 전해 듣고 기독교측 미족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날인하였다. 2월 28일 손병희의\r\n집에서 열린 민족대표의 최종모임에 참석하였고, 3월 1일 독립선언식에 참가 한 뒤 일제에\r\n피체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에도…
올해 3월1일 행사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좀 늦은감이 있지만 워낙 멋있게 나와서요.(3월에는 홈페이지가 없었답니다.) 의암성사님 유허지입니다. 촬영은 청주 수련꽃집 박진완님께서 해주셨습니다. 새벽부터 고생하셨어요^^ 늦게나마 감사를 전합니다.
금일 시일에 반가운 한울님 두 분이 청주교구에 방문 하셨습니다.\r\n아-주 잘생긴 첫째 주광모님-\r\n그리고 아-주 이쁘고 귀여운 둘째 주실화님\r\n이름도 멋있고, 이쁘죠?
승암장님 즐거운 식사시간 반가운 얼굴도 많이 보이는군요 사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r\n\r\n하지만 청주교구 중식이 아니고 대전교구 중식인것 아닐까요?\r\n\r\n저희들은 많은 상을 펼수있다면 더욱좋은 모습니지만 ...
곧 청주교구 도 긴 밥상이 있도록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