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달팽이가 죽은 이유는?
본문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생각되어
그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는 이들을 보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가져왔습니다.
제가 직접 쓴 글이 아니라 무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짧은 글재주를 보여드리는 것 보다 더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나눕니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생명평화 순례단의 75일째 소식과
그 안에 담겨있는 강과 거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생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도로변에 버려진 탄피와 달팽이의 죽음에서 운하의 미래를 그려봅니다>
이곳은 금강변을 따라 형성되어 온 수많은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구간이며,
동시에 금강변으로 수많은 도로가 나면서 산자락을 가르는 모습을 보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봄비와 함께 길을 떠납니다>
오늘로 순례길이 75일째에 이르렀습니다.
그동안 비단처럼 아름다운 금강의 물길을 따라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오늘 출발 장소는 부여군 왕포리에 있는 하수종말처리장 입구였습니다.
8시를 조금 넘은 시간에 참여자들이 속속들이 도착하였으나, 추위에 몸을 움추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순례단 역시 오랜만에 비를 맞으며 걸음을 옮겨야 하는 상황인지라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추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순례단도 하루 참여자도 모두 우비를 찾아 몸을 가리기에 주저함이 없었으나,
다행히 출발시간이 되어 비는 잦아들었습니다.
이 추운 날씨에도 많은 참여자분들이 하루 여정을 함께 하였습니다.
부여군에 있는 비로사,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와 실상사, 화계사 등지의 사찰에서
스님들과 신자분들 참여하여 강을 모시는 순례에 함께 하였습니다.
역사의 도시 부여에서 ‘강이 곧 사람이고, 사람이 곧 강’이고자 한 오늘의 순례는
“75일 순례 중에 최고의 꿈이 있다면 내가 강이 되는 것입니다.
나 없이 나를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강 따라 걷는 것은 하늘의 은총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해서 기쁜 날입니다”
라는 김민해 목사님의 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순례단은 부여읍 왕포리에서 발걸음을 시작하여
백제교 - 부산 - 각서석 - 백마강교 - 저석리 - 왕진교에 이르는 여정을 진행하였습니다.
오늘 순례단이 걸은 여정에서 금강은 북고천, 장암천, 금천, 왕포천, 자왕천, 가중천, 지천(매암천, 장곡천, 장재천, 장벌천, 화사천, 분향천, 은곡천, 아산천 등이 합수된 하천), 양화달천 등을 만나 합수됩니다.
오늘 진행한 구간에서 상류의 공주에 이르는 금강길은 역사를 담고 흐르고 있습니다.
강길을 따라 걷는 눈길마다 역사의 현장이 눈에 들어오고,
그 역사를 안고 흐르는 금강물결이 잔잔히 아픔을 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나성터와 시인 신동엽 시비>
부여하수종말처리장을 출발한 순례단이
공사가 진행중인 백제대교(?)를 지나 만난 것은 신동엽 시인의 시비입니다.
부여 백제교와 KBS부여 중계소 사이 ‘나성터’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는 신동엽 시인의 시비는
시로 세상을 노래하는 젊은이와 대학생등이 많이 찾는 곳이라 합니다.
시비는 백마강을 바라보며 서 있고, 이 지역이 바로 ‘부여 나성(羅城)터’라 합니다.
시비 앞면에는 시인의 ‘산에 언덕에’가 새겨져 있고,
이곳 부여 동남마을에서 태어난 뒷면에는 시인의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비 주변에는 민족의 통일과 민중의 애잔하고 잔잔한 삶을 그렸다는 시인이
‘갑오농민전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서사시 ‘금강’을 비롯하여
‘강’, ‘종로5가’ 등의 시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아담하게 자리한 시비는 ‘나성터’ 소나무 숲과 어울리며
잔잔히 흐르는 백마강을 볼 수 있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입구라 할 수 있는 백제교 지점에는
시인의 시비를 홍보하는 안내판이 없었다는 것과
아담한 시인의 시비와 어울리지 않게,
시인의 시비와 도로 사이에 엄청난 크기의 또다른 성격의 ‘추모비’가 주변에 있다는 점입니다.
<아름다운 도시 부여와 백마강>
부여는 참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600년이 넘는 백제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100여년을 형성했던 후기 백제의 왕도가 바로 부여입니다.
지금 부여가 3만 여호 정도이나,
과거 백제 번성기에 13만여 호의 가구가 있었다고 하니,
당시의 번창함을 유추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토록 번성기를 누리었던 백제의 고도 부여는 역사의 흥망성쇠에 의해서인지
그 시기의 삶과 역사, 문화를 알 수 있는 많은 유적을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시내 한가운데 있는 정림사지와 백제의 중요한 왕성 방위 시설이었던
부소산성을 비롯하여 발굴중인 현장 등의 유적만 남아있다 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간직한 백마강이 여전히 유장하게 흐르듯이 자연지세가 아름답고,
부여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부소산성에 올라 부여 읍내를 바라다보면,
백마강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도읍지의 전경이 눈에 다가옵니다.
오늘 순례단에 참여한 한 분의 말씀에 의하면, 부여는 5층 이상 건물이 별로 없다 합니다.
‘부소산성’이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경관을 가리지 않기 위해서라 합니다.
그리고 부여에는 양수장과 배수장이 다른 지역과 달리 독특한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정수장과 배수장은 빨간색 건물로 만들어져,
‘이렇게도 건물을 짓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여기 부여에서 보는 양수장과 배수장은 마치 그곳에 원래부터 있었던 오래된 건물처럼
금강 주변과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 관광을 오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소산성 등을 따라
도심지 안의 역사 문화 유적을 찾아 백마강을 따라 형성된 역사와 문화를 살피기보다는,
요란한 음악으로 치장한 낙화암 인근의 유람선에만 춤추는 여행객이 많은 듯 하여 마음이 아팠습니다.
<부산(浮山) 대재각(大哉閣) 각서석에서>
순례단은 신동엽 시인의 시비를 지나 백제교를 건너 부산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에 있는 부산(浮山)은 건너편으로
부소산과 낙화암이 바라보이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낙화암이 위치한 부소산과 이곳 부산을 휘감은 백마강의 전경이 눈앞으로 펼쳐진 매우 아름다운 산입니다.
여기 부산에는 벼랑길에 아슬 아슬하게 매달리다시피 위치한 특이한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대재각(大哉閣)이라는 이름의 정자인데,
여기 대재각에는 1976년 충남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된 각서석이 있습니다.
각서석에는
<지통재심(至痛在心) 일모도원(日暮途遠).
호란의 치욕을 씻지 못하는 비통함이 남아 있는데, 날은 저물고 길은 멀기만 하다'>
이라는 수려한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조선 효종때 영의정을 지낸 문인 백강(白江) 이경여(1585-1657)가 왕으로부터 받은 글로,
원래 효종으로부터 받은 글은
"성이지통재심 유일모도원의
(誠以至痛在心 有日暮途遠意. 경의 뜻이 타당하고 마음이 아프지만 뜻을 이루기에 너무 늦다)"
인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앞서의 8자를 써서, 백강 선생의 후손이 이를 새겼다 합니다.
대재각(大哉閣)은 《상서(尙書)》의 "대재왕언(大哉王言. 크도다 왕의 말씀이여)"에서 따온 말이라 합니다.
순례단이 영산강을 지나면서 만났던 수려한 정자들과 달리,
이 대자각은 어떻게 이 지점에 정자를 만들었을까 싶은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부산의 벼랑길에 위치하고 있는데,
아마도 일상적으로 문인들이 찾았던 정자가 아니라 왕의 말씀을 모신 정자였기 때문은 아닌가 싶더군요.
이곳 수려한 경관의 부산과 그 부산에 한 몸처럼 어울리는 대재각에 올라
백제의 흥망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시대 민초들의 아픔을 느끼지는 역사의 장소입니다.
부여를 방문하시는 분들은 시끄러운 유람선이 아니라
천천히 역사를 느끼는 걸음으로 잔잔히 흐르는 금강 물결을 따라 이곳 각서석을 방문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오늘 오전 일정은 이곳 대재각을 지나 백마강교 다리 밑에서
“오늘 여러분들이 고맙고 미안해서 참여했습니다.
이것을 인연으로 사람은 강을, 강은 사람을 섬기고 돈과 재물, 속도라는 성공의 미망에서 벗어나
서로 나누면서 생명의 가치를 알아가기를 바랍니다.
산, 강, 사람이 모두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라는 실상사 법인 스님의 말씀으로 종료되었습니다.
<달팽이의 죽음에서 운하를 봅니다>
순례단은 오후에 백마강교를 건너 금강 상류로 이어지는 왕진교에 이르는 여정을 진행하였습니다.
이 구간에서 금강은 청양 칠갑산에서 발원한 ‘지천(之川)’을 만납니다.
칠갑산에서 발원하여 천리길의 금강에 합류되는 지천은
청양군 대치면 작천(鵲川)리와 장평면 지천리를 가르고 흐른다하여 지천이라 불리우고,
특히 흐르는 모양이 갈지(之)자 형태로 굽이쳐 흐른다 하여 역시 지천이며, 매우 아름다운 하천입니다.
순례단은 백마강교를 넘어 왕진교로 나아가는 길에서
새로운 왕진교 연결도로 공사가 한창인 곳을 통과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떨어져 있는 수많은 탄피와 달팽이가 죽어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았습니다.
길을 걸어가면서 탄피를 줍는 일은 이제 일상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지역이나 가릴 것 없이 강변길 인적이 뜸한 곳에서는 길가에 버려져 있은 탄피를 보게 됩니다.
먼길을 오가는 길손이 우리 땅에 와서
하늘을 가르는 총탄 소리에 눈을 감아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탄피를 보았던 순례단도 무감각해지는 것 같습니다.
탄피뿐만이 아니라 도로 공사가 한창인
이 지역에는 많은 달팽이들이 죽어있더군요.
도로 공사가 한창인 지역인지라
인근 수풀에서 나온 달팽이들이 이동하면서 도로 턱을 넘지 못하고
시멘트위에서 말라죽은 것 같습니다.
주변이 모두 논밭으로 습기를 머금은 지역이었으나,
이제는 시멘트 콘크리트 도로가 달팽이가 넘기에는 어려운 턱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도 넘나들기 어려운 도로이니 달팽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 사람이 편해지자고 수많은 도로를 만들면서 세상은 도로 천지가 되었다 해도 틀린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도로 공사 하나에도 이리 많은 생물들이 죽어가는데,
금강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 그 넓은 도로에 만족 못하고
기어이 금강에 시멘트 콘크리트로 수조를 만들고,
수 많은 강변 둔치를 없애면서 강바닥을 긁어내야 하는 운하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공사로 인해 터전이 파괴되는 생명은 어쩌라는 것인지 갑갑할 따름입니다.
‘편리’하고자 하였던 우리 사회의 욕망은 더 큰 편리를 추구하면서,
그 결과 운하라는 미망을 만들어내었습니다.
한 사람의 머리에서 ‘운하라는 욕망덩어리’의 정책이 추진된 것이 아닐 것이며,
‘현대화 = 개발’이라는 공식에 익숙한 우리 사회의 지난한 모습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발전’으로의 사회운영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오늘의 여정은
“걸으면서 과연 어떠한 존재이며 의미인가 생각하는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청와대에서는 절대 포기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 걸음이 생활속에서 실천하는 씨앗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라는 지관 스님의 기도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제 하루를 묵었던 비로사에서는 오늘 많은 스님들과 신자분들이 함께 순례에 참여하였습니다. 홍교스님은 “순례단과 뜻을 함께하고 싶었다”며, 이어서 “운하 건설로 무수한 생명이 희생 될 겁니다. 생명은 모두 동등하고 귀중합니다. 불교의 계율에도 그 첫 번째가 불살생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은 국민이 반대하는데 왜 하려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운하 정책을 추진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하여 “한나라의 지도자라면 생각이 깊어야 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많은 의견을 수렴 한 후 옳고 그름을 잘 따져서 신중한 판단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고 편안한 길을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며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경제제일주의 가치관의 확산이 우려되며, “우리 국민들도 눈앞에 이익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사고를 가질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실상사 화엄학림의 학장이신 법인 승님은 실상사 대중 스님들과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상근자 및 회원과 함께 참여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화엄경에 보면 ‘상즉상입’이라 하여 유정과 무정의 모든 생명은 한 몸으로 소통한다고 했습니다. 비유컨대 강은 사람과 소통하고, 사람은 강과 소통한다는 말입니다. 만물은 서로 조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속도, 돈, 재물이라는 3독에 매여 살고 있습니다. 운하는 바로 이러한 가치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지적하고,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가치와 신념이 분명해야 한다”고 합니다. 정책결정자들이 “(운하가 올바른 정책이) 아니면 놓아야 합니다. 이미 국민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국토분열의 계기를 만들지 말고 포기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끝으로 순례단에게 “금강경은 상을 버리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동아 줄이나 황금 줄이나 마찬가지로 묶으면 속박이 됩니다. 이런 일을 하다보면 때론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상의 덫에 걸릴 수 있으니 이 뜻을 잘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부탁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순례일지에 2차례정도 소개되었던 푸른꿈 고등학교에서 참여한 임지연 학생은 “학교에서 운하에 관한 논의가 있었고, 어이없는 운하 발상을 반대하는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합니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 자체가 안타까워요. 다 같이 잘 어우러져서 살아야 하는데 왜 생명을 파괴하면서까지 운하를 건설하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 순례의 소감으로 “걸어보니까 강과 자연에 대한 현장체험을 느낄 수 있었고 더 구체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합니다.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의 김태운 선생님은 학생들과 5월 5일부터 9일까지 도보순례 에 나설 예정이라시며, “운하건설이란 서로 다른 종류의 강을 합치는 것입니다. 이건 옳지 않습니다. 산줄기를 뚫어야 하는데 이것은 강이 아니고, 건축물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상황에서 볼 때 “현재의 우리나라 도로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경제적인 일만 벌리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참여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입니다.
순례단은 오늘도 여러 참여자들을 만나서, 그 분들이 전해주는 우리 시대의 생명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순례단을 이끄는 진정한 기운입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오늘 순례단에서는 단장이신 이필완 목사 / 문정현 신부 / 김규봉 신부 / 김현길 교무 / 수경스님 / 도법 스님 / 연관 스님 / 지관 스님 / 이원규 시인이 참여하였습니다.
하루 순례길 동참자로는 김채은 (화성) / 오두희(평화바람) / 장경훈(화성) / 윤상기, 정용설(금강유역환경청지킴이) / 대현 스님, 홍교 스님, 호정 스님 외 신도 30여명(비로사) / 임지연 외 2명(푸른꿈 고등학교) / 법인 스님, 중묵 스님 외 60여명(실상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 최덕섭 외 5명(화계사) / 정우 베로티카 수녀, 안정현 모니카 등(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이 참여하였습니다. 오늘 추운 날씨에 함께해주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 제76일 / 4월 27일(일)
보흥천 합류점 건너편(검상동) - 곰나루(오후 1시. 정토회 행사 참여) - 도로이동 - 공산성 맞은편 둔치도착(=우안)
● 제77일 / 4월 28일(월)
휴식 및 개인정비, 구간정비
● 제78일 / 4월 29일(화)
공주시 신관동 시민공원( 금강둔치) - 옥룡동 - 소학동 - 마암리 - 금암리 - 불티교 - 연기군 송원리 / - 도착 : 연기군 금남면 나성리 금남대교 / 대전지역 목회자 기도회 (공주산림박물관 인근. 오전 11시)
● 제79일 / 4월 30일(수)
연기군 금남면 나성리 금남대교 - 송원리 - 나성리 - 화양리 - 월산리 - 월산교 건넘 - 합강리 - 용호리 - 문주리 - 내판리 / 도착 : 연기군 동면 예양리 미호대교 (조천합류점맞은편) / 천주교 미사
● 제80일 / 5월 1일(목)
연기군 동면 예양리 미호대교 아래 (조천 합류점) - 노송천 - 청원군 강내면 - 노송리 - 사곡리 - 황탄리 - 월탄리 - 석화리 - 청주시 정봉동 - 신촌동 옥산교 / 도착: 청주시 신대동
● 제81일 / 5월 2일(금)
청주시 신촌동 옥산교 - 도착 : 청주시 외하동 팔결교 / / 천주교 미사
* 정확한 출발 장소 및 시간은 도보순례단에게 전화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금강환경지킴이 윤상기, 정용설 선생님이 길안내와 설명을 후원해주셨습니다.
*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에서 점심 식사를 후원해주셨습니다.
* 공주 영평사에서 숙박장소를 후원해주셨습니다.
* 도보순례 1일 참가 일정과 수칙은 www.saveriver.org 공지사항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주선자님의 댓글
주선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모시고 안녕하세요^_^<br/>함께참여 하지 못하여 죄송하고<br/>미생물이 살수 없는곳 사람도 살지 못하는곳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