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탄핵한 것은, 우리시대의 '무분별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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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대통령' 만이 아닌, 우리시대의 '무분별한 욕망' 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네요.
내 안의 탐욕, 내 안의 운하...
반조, 반성의 계기로 삼아봅니다.
‘번뇌의 불꽃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봅니다
수자타!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불러보는 한 여인의 이름입니다. 다들 알듯이 이 여인은 당시 수행 전통의 관점에서는 분명 수행자 싯다르타를 파계(破戒)시켰습니다. 고행주의를 버리고 유미죽을 받아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를 따르던 수행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는 ‘싯다르타는 타락했다’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맹목적인 고행은 ‘육체에 대한 집착을 더할 뿐’이라는 것을 통찰했기 때문입니다.
<수경스님>
기화요초보다도 더 아름다운 신록이 세상을 장엄하는 계절입니다. ‘생명의 빛’으로 오신 부처님의 출세를 기리기에 더없이 좋은 시절입니다. 저 역시 ‘생명의 강’을 모시는 행각에 나선 덕분에 세상 만물이 다 부처의 몸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분에 넘치는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듣자니, 지금 온 나라가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들끓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말 그대로 구름과 물을 벗 삼고 있습니다. 어찌 과분한 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 또한 이 시대를 만든 공업 중생의 한 사람으로서,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에 비추어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의 본질을 성찰하는 하나의 시각을 보태는 것으로 작으나마 시은(施恩)을 갚고자 합니다.
어쩌면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이 시대의 대중들에게 ‘큰 공부’를 시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네 삶의 뿌리, 이른 바 시대정신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다수 국민을 절망하게 한 ‘영어 몰입교육, 강부자 내각, 자립형 사립고, 사교육 시장에 무릎 꿇린 교육 자율화, 한반도 대운하 그리고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 파문’은, 사실상 한 얼굴의 다른 표정입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 모두가 삶의 주체가 아니라 무력한 객체로 내동댕이쳐져 있는 이 시대의 슬픈 초상입니다.
설마 모든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준다는 구호에 속아서 다수의 국민이 이명박 대통령을 찍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말은 모두를 1등 시켜 주겠다는 것만큼이나 공허하니까요. 하지만 ‘경제 살리기’에 대한 기대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나름대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방식이 대다수 국민의 기대를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모든 권능을 경쟁만을 지고의 가치로 섬기는 ‘시장’에 넘겨 버렸습니다.
이런 시장에서는 부동산 투기를 하든 뭐를 하든 누구나 부자가 될 ‘가능성’은 열려있습니다. 따라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CEO) 이명박은 자신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당연한 얘기가 되겠지만 경영자 이명박은 국민을 자신의 직원으로 여기고, 시장은 국민을 ‘소비자’로만 봅니다. 그러니 태연하게 “미국산 쇠고기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동반자는 여당도 야당도 물론 국민 대중도 아닙니다. 시장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돈’입니다. 이미 우리는 그것에 중독이 되어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벌써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관리하는 시장의 ‘돈’은 물처럼 순리대로 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산 쇠고기 파문을 계기로 인터넷에서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이 100만 명을 넘어 섰다고 합니다. ‘촛불 집회’에는 몇 만 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인다고 합니다. 그 중 주축은 10대와 20대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갖가지 분석이 난무합니다. 정부·여당에서는 사법 처리 방침을 밝혔다 합니다. 시민단체와 일부 정당에서 선동한 반미·반정부 시위라는 게 이유랍니다. 참으로 졸렬합니다. 민망한 얘기지만 현재 우리 시민단체들의 지도력이나 진보정당의 위상으로는 그런 규모의 대중 동원은 불가능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난 대선에 이어 총선마저 한나라당이 압승하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야당은 이를 계기로 대여·대정부 공세의 고삐를 죌 모양입니다. 이 또한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창 학업에 열중해야 할 10대, 20대가 거리로 나서게 된 상황을 통탄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런데 이를 정치적 공세의 수단으로 삼는 모습은 마치 내전을 치르는 국가의 소년병을 보는 것만큼이나 서글픕니다.
여기서 잠시 이명박 대통령께 위로의 말씀을 전할까 합니다. 단언하건데 탄핵 서명 숫자가 1백만이 아니라 몇 백만이 되어도 실제로 탄핵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국회 의석 분포를 근거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한 꺼풀만 벗겨 보면, 진정 이들이 탄핵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무분별한 욕망’입니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정한 경쟁의 룰이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룰이지 자신들과는 무관함을 봐 버렸습니다. 사실 쇠고기 파문도, 미국산 쇠고기를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먹어야 하는 현실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간다운 삶과 진정한 행복은 영영 멀어질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저는 지금 ‘불꽃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보고 있습니다.
“번뇌의 진흙 속에 있는 중생이야말로 불법(佛法)을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허공 속에 씨앗을 심으면 끝내 싹이 나지 않고 더럽고 썩은 흙에서야 능히 무성하게 자라나니 (…) 번뇌의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능히 일체 지혜의 보배를 얻을 수 없습니다.(유마경 불도품)”
광복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큰 고비 때마다 대중 특히 젊은이들의 거대한 기운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았습니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이 그랬습니다. 저는 최근 순수한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촛불 집회 소식을 듣고 거대한 서기(瑞氣)를 느꼈습니다. 온갖 오염에 시달리면서도 흐르고 또 흐르면서 스스로를 정화해 나가는 강에서 느끼는 경이와 고마움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만약 부처님께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보신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를 생각해 봅니다. 한숨이 크실 것 같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탐진치에 빠진 세상을 관하고는 설법을 주저하며 탄식을 했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그 탄식이야 말로 냉정한 현실 인식이었습니다. 고통의 현실을 직시하고 비로소 모든 중생을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지금 청계광장에서 국회 앞에서 일렁이는 촛불의 물결은 지금처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적대시하는 풍토 속에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자각입니다. 대립과 갈등을 평화로 돌려놓으려는 본능적 생명의 약동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더 이상 국민 다수를 적대시하지 마시고 생명 평화의 물결 속에서 즐거이 당신의 이상을 펼치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도 진정 그것을 원하실 것입니다.
경향신문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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