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암성사와 적멸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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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성사와 적멸굴
천도교중앙도서관 | 2021-05-20 10:08:30
의암성사와 적멸굴...........조기간
한울님께서 만일 천도교를 믿는 우리들에게 묻기를 너희들이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기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로 매우 구구할 것이다.
위선에 나 자신부터가 무엇이라고 대답할는지 의문이다. 아마도 정직한 대답을 한다면 ‘돈이 제일 그립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우리 교회에 대하여 항상 섭섭하고 분하고 통곡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우리 교인가운데 나 한사람만이 이런 생각과 이런 대답을 하게 되었다면 오히려 덜 섭섭하고 덜 분하겠는데 다른 도인들도 이렇게 된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을 볼 때에 매우 근심스럽게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돈이 없이 살 수 있다거나 돈이 없이 살자는 말도 아니오 돈을 벌지 말자는 말도 아니로되 돈 제일주의로 인간은 곧 돈이다, 돈 밖에는 사람도 아무것도 없다는 주의로 나아간다면 인생본의에 어그러질 뿐 아니라 삼세스승의 본의를 어김에 어찌하리오.
세상 사람은 ‘사람도 진리도 다 없다, 돈 한가지면 그만이다’ 주의로 달아나거나 말거나 적어도 우리네 삼세스승의 제자들만은 사람제일주의로 나아가지 않아서는 안 될 줄 안다. 여기에서 비로소 사람된 의의가 있고 천사의 도법을 받드는 우리 도인의 값이 있는 줄 안다.
우리도의 유일무이한 진리는 본래부터 사람이 한울님이라는 것이어니와 한울님이 아닌 거저 사람이 거저 사람이 아닌 한울님사람이 되는 데에까지 공부를 하자면 사람마다 못할 것은 없는 공부이지만 그렇게 쉬운 공부도 아닐 것이다. 적어도 상당한 정성과 힘으로써야 될 줄 믿는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공부를 어떠한 방식으로 해야 될 것인가.
한울님이 말이 없고 땅님이 역시 말이 없으시니 어찌해야 될 것인가. 부득이 한울님의 마음을 배워서 한울님의 마음을 가지시고 한울님을 대신해서 말씀하시는 성현님네 곧 삼세스승을 우리는 배울 수밖에 다시 도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스승을 배움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마음을 배움이 제일 긴요한 일이다. 그 마음을 배우자면 먼저 그 어른들의 마음공부하신 그 방식을 배워서 그 방식대로 하는 수 밖에는 아무런 도리가 없는 것이다.
마음공부의 방식으로서는 주문, 청수, 시일. 성미, 기도 등의 오관과 심고와 독경 등의 여러 가지가 있지만은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 있으니 하나는 평상시에 늘 공부하여가는 오관, 심고, 독경 등이요, 다음 하나는 칠일, 십삼일, 삼칠일, 사십구일 백오일 등의 획기적 특별독공이다.
공부하는 도인으로서는 누구나 다 이 두가지 방법을 아울러 행함은 물론이어니와 이제 여기에 잠깐 간단히 이야기하려는 것은 어떤 방식이나 공부하는 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대신사께서 처음에는 사십칠일을 공부하시고 두 번째에 들어가시어 사십구일 공부를 마치시며 천도를 대각하시던 적멸굴을 의암성사께서 어떻게 찾으셨던가하는 사실을 이야기삼아 하려는 것이다,
성사께서 어떻게 적멸굴을 찾으셨던가
지금부터 31년전 성사께서 사십 구세 되시던 해 기유년 12월에 경상남도 양산군 통도사 내원암이라는 절에 사십구일 공부하시려 가시었다. 그때에 같이 모시고 가기는 최준모, 임명수. 김상규. 세분과 나까지 네 사람이었다. 모시고 간사람 넷 중에 나는 그때 나이 십팔세인 아무것도 모르는 동서부지의 어린 소년이었다. 내가 그때 마음속에 가장 큰 희망은 도통이라는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도통을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매우 강하였다.
마음속에 생각되기를 성사님은 이왕부터 본래 도를 통하신 지가 오랜 어른이니 말할 것도 없고 그 다음 같이 모시고 온 몇 어른들도 이미 수련공부에 힘을 얻은 분들이니 이번에 성사님 모시고 사십구일 공부만 마치게 되면 대개는 다 도를 통하려니 하는 생각이 들어가면서 그런데 나만은 나이제일 어린데다가 이왕에 공부하여본 경험이 없고 힘을 얻은 것이 없으니 다른 어른들은 다 도를 통하더라도 오직 나만은 도를 통해낼 것 같지 않아서 마음에 고통이 매우 심하였다.
그래서 사십구일 공부 시작하는 것을 목욕재계를 깨끗이 잘하고 시작한다고 해서 입재한다 하시었다. 그 입재하기 바로 전날 성시님께 묻기를 이번에 주문은 매일 몇 독씩이나 하오릿까 한즉, 자네는 나이어리니 사백구십독 가량하여보게 하였다. 다시 묻기를 나 많은신 어른들은 몇독씩 합니까? 사천구백독씩 해야지 하시었다. 그 말씀을 듣고 마음속에 슬그머니 생각되기를 옳지 성사님께서 나는 나이 어리다고 아직은 도통은 못할 것으로 보시는 모양이나 그러나 내 아무리 나이는 어릴망정 이번 성사님을 모시고 공부하게 된 기회에 기어히 도통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건절하였다.
그래서 나도 주문을 어른들과 같이 사천구백독씩 하기로 작정하였다. 어리석은 생각에 욕심으로 그렇게 작정하였으나 그날 공부를 그날 그날에 치르기가 여간 곤하지 않았다. 지금하루에 사만구천독을 하여도 그렇게 힘들 것이 없는데 나이어린 그때에는 어째서 힘이 들고 곤해서 졸리었든지, 집에서 떠날 때에 어머님이 옷이 터지거든 꿰메어 입으라고 주시던 바늘로 넓은 다리살에다 그 끝을 대이고 있다가 졸리기만 하면 꼭 눌러서 졸음을 깨워도 그러한 뒤가 없이 또 오분이 못 지나서 졸리고 하였다.
나이어린 나 뿐이 아니라 다른 어른들도 여간히 조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들 존다고 그리하시는지 몰라도 성사님께서 매일 두 차례씩 우리들 공부하는 방으로 오셔서 당신께서 같이 않아서 주문을 외이었다. 지금 생각하여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등어리에 땀이 나는 일로 성사님을 모시고 같이 앉아서 주문을 외이다가 졸려서 주문 헤이는 수주(염주)를 방바닥에 절너덕 하고 떨어지는 때가 가끔 있었다. 이럴 때는 바늘로 너분 다리를 찔리는 이상으로 놀래게 되건만도 얼마 안 지나서 또 정신이 혼미하여지고 하였다.
졸음이 왜 이다지 심하였던가 하는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기회 있는 대로 이야기 할 셈치고 이번에는 성사께서 어떻게 적멸굴을 찾으셨던가하는 이야기를 한다든 것이 너무나 이야기가 지엽 되는 딴 길로 달아나게 되어서 도리어 미안스럽게 되었다.
그런데 대개 성사님께서 공부하시는 일과와 시간을 적어본다면 새벽 네시에 기침, 일곱시반까지 공부, 여덟시까지 아침운동, 여덟시에 아침진지, 아홉시까지 운동, 열두시까지 공부, 삼십분간 운동, 오후한시까지에 점심진지, 반시간 운동, 네시반까지 공부, 삼십분운동, 다섯시에 저녁진지, 한 시간 동안 운동, 아홉시까지 공부, 아홉시에 기도 청수, 열시까지 휴식.담화, 열시에 취침, 대체로 이렇게 시간을 작정하시고 공부하시었다.
이러한 시간과 일과로서 공부를 진행하는 중인데 하루는 저녁이 좀 일찍되어서 성사께서 저녁후에 내원절 남편쪽으로 흐르는 맑은 개천가에로 운동을 나가셨는데 모시고 간 어른들은 물론이고 그 절 주지 리퇴운씨의 스님 되시는 손석담이라는 근 칠십된 노 스님이 같이 나와서 이럭 저럭 거닐면서 이야기 하다가 우연히 성사에게 여쭙는 말로, ‘선생님 저기 저 동편쪽으로 높다란 산봉오리가 보이시지요, 그런데 저 산 봉오리 바로 밑으로 큰 굴이 있습니다. 그 굴이 역사가 있는 굴인데 그 굴 이름이 적멸굴이올시다.
제가 십여살 때에 어린 상자로서 제 스님을 모시고 이곳에 들어올 때에 저의 스님께서 저더러 가르쳐주시는 말씀으로 '저기 저 산봉오리밑에 적멸굴이라는 큰 굴이 있는데 경주있는 최복술이라는 사람이 그 굴에 와서 도통을 하여서 날아갔느니라‘고 말씀하심을 들었습니다.
성사 이 말을 들으시고 묵묵부답하시더니 그 다음 날은 평소보다 더욱 일찍이 서둘으시더니 점심도 좀 일찍이 잡수시고 야- 오늘일랑 좀 멀리 운동을 가보자고 하시면서 나서시니 그 절 주지 리퇴운이 젊은 건장한 중 한분을 같이 길을 인도하여드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젊은 중이 앞장을 서서 그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노스님 손석담의 말씀이 이 산이 기왕 날 경주 최복술이 와서 공부할 그때쯤은 이 산에 수림이 워낙 울창해서 하늘이 보이지 않았고 산돼지가 너무 많아서 바닥길로 겨우 더러 왕래하였으나 산상에는 통히 인적부도처이었습니다. 지금에도 보시다시피 산이 매우 험하오니 매우 조심하시와 평안히 다녀 돌아옵소서 인사를 하였다.
처음에 한참동안은 성사의 뒤를 쫒아 여러 사람들이 허덕거리면서 올라가더니 한참동안 제각기 빨리 올라가노라고 허덕거리다보니 모시고 같이 올라가던 여러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허덕허덕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으나 성사께서는 벌써 어디로 해서 얼마나 멀리 올라가셨는지 여러 사람들이 미안하고 죄송해서 아무리 찾아보려하여도 보이지 아니하시었다.
겨울날 오후여서 일기는 상당히 차지만은 모두들 땀으로 목욕을 하였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었는지 알 수 없으나 하여간에 모시고 가든 성사께서 온데간데가 보이지 아니함으로 이럭저럭 쉴 여가도 없이 허덕거리면서 산장을 거의 당하여 커다란 바우돌이 부엌이마돌 내밀 듯이 쑥쑥 내민 곳에 당하니 성사께서는 벌써 올라 오신지가 얼마나 오래셨는지는 몰라도 ?척 멀리서 바라보입기에 어떻게 본래 그 굴속에 계시는 어른 모양으로 굴속 한 복판에 가만히 침착냉정하신 태도로 앉아계심을 뵈었다.
성사- 묵묵히 엄격하신 태도로 손에 쥐이신 단주만 돌리시면서 앉아계시더니 고요히 일어서시면서 인제들 올라오나! 나는 오기는 벌써 올라왔는데 나는 이곳에 오자마자 홀연히 글 한귀가 생각키웠는데 '석시에 차지견, 금일우간간(昔時此地見, 今日又看看) 이라 하였오' 하시었다.
이 글을 말로 색인하면 옛날에 이 땅을 보았더니, 오늘날에 또 그 전에 본 땅을 본다는 뜻이다.
이 글의 뜻을 생각하여보면 대신사와 의암성사의 육신은 다르나 법신의 일치를 얻게 되어 오심즉 여신이 되어진 그 지경을 증명하는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이 사실을 본다면 세상만사란 것은 반듯이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듯이 원인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천리의 정칙이라고 볼 수 있다.
대신사께서 양산군 천성산 내원암 적멸굴에서 공부하신 것 까지는 성사께서 아셨을 것이나 그곳에 가시어 공부하시다가 결국 그 굴을 당신이 찾게 되어 더구나 대신사와 법신적 일치에 이러러 그 굴에서 석시차지견, 금일우간간의 강시까지 얻으시게 되셨다는 것은 이 얼마나 높은 공부이며 인연 깊은 표현일가. (신인간 1939.9월)
천도교중앙도서관 | 2021-05-20 10:08:30
의암성사와 적멸굴...........조기간
한울님께서 만일 천도교를 믿는 우리들에게 묻기를 너희들이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기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로 매우 구구할 것이다.
위선에 나 자신부터가 무엇이라고 대답할는지 의문이다. 아마도 정직한 대답을 한다면 ‘돈이 제일 그립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우리 교회에 대하여 항상 섭섭하고 분하고 통곡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우리 교인가운데 나 한사람만이 이런 생각과 이런 대답을 하게 되었다면 오히려 덜 섭섭하고 덜 분하겠는데 다른 도인들도 이렇게 된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을 볼 때에 매우 근심스럽게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돈이 없이 살 수 있다거나 돈이 없이 살자는 말도 아니오 돈을 벌지 말자는 말도 아니로되 돈 제일주의로 인간은 곧 돈이다, 돈 밖에는 사람도 아무것도 없다는 주의로 나아간다면 인생본의에 어그러질 뿐 아니라 삼세스승의 본의를 어김에 어찌하리오.
세상 사람은 ‘사람도 진리도 다 없다, 돈 한가지면 그만이다’ 주의로 달아나거나 말거나 적어도 우리네 삼세스승의 제자들만은 사람제일주의로 나아가지 않아서는 안 될 줄 안다. 여기에서 비로소 사람된 의의가 있고 천사의 도법을 받드는 우리 도인의 값이 있는 줄 안다.
우리도의 유일무이한 진리는 본래부터 사람이 한울님이라는 것이어니와 한울님이 아닌 거저 사람이 거저 사람이 아닌 한울님사람이 되는 데에까지 공부를 하자면 사람마다 못할 것은 없는 공부이지만 그렇게 쉬운 공부도 아닐 것이다. 적어도 상당한 정성과 힘으로써야 될 줄 믿는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공부를 어떠한 방식으로 해야 될 것인가.
한울님이 말이 없고 땅님이 역시 말이 없으시니 어찌해야 될 것인가. 부득이 한울님의 마음을 배워서 한울님의 마음을 가지시고 한울님을 대신해서 말씀하시는 성현님네 곧 삼세스승을 우리는 배울 수밖에 다시 도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스승을 배움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마음을 배움이 제일 긴요한 일이다. 그 마음을 배우자면 먼저 그 어른들의 마음공부하신 그 방식을 배워서 그 방식대로 하는 수 밖에는 아무런 도리가 없는 것이다.
마음공부의 방식으로서는 주문, 청수, 시일. 성미, 기도 등의 오관과 심고와 독경 등의 여러 가지가 있지만은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 있으니 하나는 평상시에 늘 공부하여가는 오관, 심고, 독경 등이요, 다음 하나는 칠일, 십삼일, 삼칠일, 사십구일 백오일 등의 획기적 특별독공이다.
공부하는 도인으로서는 누구나 다 이 두가지 방법을 아울러 행함은 물론이어니와 이제 여기에 잠깐 간단히 이야기하려는 것은 어떤 방식이나 공부하는 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대신사께서 처음에는 사십칠일을 공부하시고 두 번째에 들어가시어 사십구일 공부를 마치시며 천도를 대각하시던 적멸굴을 의암성사께서 어떻게 찾으셨던가하는 사실을 이야기삼아 하려는 것이다,
성사께서 어떻게 적멸굴을 찾으셨던가
지금부터 31년전 성사께서 사십 구세 되시던 해 기유년 12월에 경상남도 양산군 통도사 내원암이라는 절에 사십구일 공부하시려 가시었다. 그때에 같이 모시고 가기는 최준모, 임명수. 김상규. 세분과 나까지 네 사람이었다. 모시고 간사람 넷 중에 나는 그때 나이 십팔세인 아무것도 모르는 동서부지의 어린 소년이었다. 내가 그때 마음속에 가장 큰 희망은 도통이라는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도통을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매우 강하였다.
마음속에 생각되기를 성사님은 이왕부터 본래 도를 통하신 지가 오랜 어른이니 말할 것도 없고 그 다음 같이 모시고 온 몇 어른들도 이미 수련공부에 힘을 얻은 분들이니 이번에 성사님 모시고 사십구일 공부만 마치게 되면 대개는 다 도를 통하려니 하는 생각이 들어가면서 그런데 나만은 나이제일 어린데다가 이왕에 공부하여본 경험이 없고 힘을 얻은 것이 없으니 다른 어른들은 다 도를 통하더라도 오직 나만은 도를 통해낼 것 같지 않아서 마음에 고통이 매우 심하였다.
그래서 사십구일 공부 시작하는 것을 목욕재계를 깨끗이 잘하고 시작한다고 해서 입재한다 하시었다. 그 입재하기 바로 전날 성시님께 묻기를 이번에 주문은 매일 몇 독씩이나 하오릿까 한즉, 자네는 나이어리니 사백구십독 가량하여보게 하였다. 다시 묻기를 나 많은신 어른들은 몇독씩 합니까? 사천구백독씩 해야지 하시었다. 그 말씀을 듣고 마음속에 슬그머니 생각되기를 옳지 성사님께서 나는 나이 어리다고 아직은 도통은 못할 것으로 보시는 모양이나 그러나 내 아무리 나이는 어릴망정 이번 성사님을 모시고 공부하게 된 기회에 기어히 도통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건절하였다.
그래서 나도 주문을 어른들과 같이 사천구백독씩 하기로 작정하였다. 어리석은 생각에 욕심으로 그렇게 작정하였으나 그날 공부를 그날 그날에 치르기가 여간 곤하지 않았다. 지금하루에 사만구천독을 하여도 그렇게 힘들 것이 없는데 나이어린 그때에는 어째서 힘이 들고 곤해서 졸리었든지, 집에서 떠날 때에 어머님이 옷이 터지거든 꿰메어 입으라고 주시던 바늘로 넓은 다리살에다 그 끝을 대이고 있다가 졸리기만 하면 꼭 눌러서 졸음을 깨워도 그러한 뒤가 없이 또 오분이 못 지나서 졸리고 하였다.
나이어린 나 뿐이 아니라 다른 어른들도 여간히 조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들 존다고 그리하시는지 몰라도 성사님께서 매일 두 차례씩 우리들 공부하는 방으로 오셔서 당신께서 같이 않아서 주문을 외이었다. 지금 생각하여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등어리에 땀이 나는 일로 성사님을 모시고 같이 앉아서 주문을 외이다가 졸려서 주문 헤이는 수주(염주)를 방바닥에 절너덕 하고 떨어지는 때가 가끔 있었다. 이럴 때는 바늘로 너분 다리를 찔리는 이상으로 놀래게 되건만도 얼마 안 지나서 또 정신이 혼미하여지고 하였다.
졸음이 왜 이다지 심하였던가 하는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기회 있는 대로 이야기 할 셈치고 이번에는 성사께서 어떻게 적멸굴을 찾으셨던가하는 이야기를 한다든 것이 너무나 이야기가 지엽 되는 딴 길로 달아나게 되어서 도리어 미안스럽게 되었다.
그런데 대개 성사님께서 공부하시는 일과와 시간을 적어본다면 새벽 네시에 기침, 일곱시반까지 공부, 여덟시까지 아침운동, 여덟시에 아침진지, 아홉시까지 운동, 열두시까지 공부, 삼십분간 운동, 오후한시까지에 점심진지, 반시간 운동, 네시반까지 공부, 삼십분운동, 다섯시에 저녁진지, 한 시간 동안 운동, 아홉시까지 공부, 아홉시에 기도 청수, 열시까지 휴식.담화, 열시에 취침, 대체로 이렇게 시간을 작정하시고 공부하시었다.
이러한 시간과 일과로서 공부를 진행하는 중인데 하루는 저녁이 좀 일찍되어서 성사께서 저녁후에 내원절 남편쪽으로 흐르는 맑은 개천가에로 운동을 나가셨는데 모시고 간 어른들은 물론이고 그 절 주지 리퇴운씨의 스님 되시는 손석담이라는 근 칠십된 노 스님이 같이 나와서 이럭 저럭 거닐면서 이야기 하다가 우연히 성사에게 여쭙는 말로, ‘선생님 저기 저 동편쪽으로 높다란 산봉오리가 보이시지요, 그런데 저 산 봉오리 바로 밑으로 큰 굴이 있습니다. 그 굴이 역사가 있는 굴인데 그 굴 이름이 적멸굴이올시다.
제가 십여살 때에 어린 상자로서 제 스님을 모시고 이곳에 들어올 때에 저의 스님께서 저더러 가르쳐주시는 말씀으로 '저기 저 산봉오리밑에 적멸굴이라는 큰 굴이 있는데 경주있는 최복술이라는 사람이 그 굴에 와서 도통을 하여서 날아갔느니라‘고 말씀하심을 들었습니다.
성사 이 말을 들으시고 묵묵부답하시더니 그 다음 날은 평소보다 더욱 일찍이 서둘으시더니 점심도 좀 일찍이 잡수시고 야- 오늘일랑 좀 멀리 운동을 가보자고 하시면서 나서시니 그 절 주지 리퇴운이 젊은 건장한 중 한분을 같이 길을 인도하여드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젊은 중이 앞장을 서서 그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노스님 손석담의 말씀이 이 산이 기왕 날 경주 최복술이 와서 공부할 그때쯤은 이 산에 수림이 워낙 울창해서 하늘이 보이지 않았고 산돼지가 너무 많아서 바닥길로 겨우 더러 왕래하였으나 산상에는 통히 인적부도처이었습니다. 지금에도 보시다시피 산이 매우 험하오니 매우 조심하시와 평안히 다녀 돌아옵소서 인사를 하였다.
처음에 한참동안은 성사의 뒤를 쫒아 여러 사람들이 허덕거리면서 올라가더니 한참동안 제각기 빨리 올라가노라고 허덕거리다보니 모시고 같이 올라가던 여러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허덕허덕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으나 성사께서는 벌써 어디로 해서 얼마나 멀리 올라가셨는지 여러 사람들이 미안하고 죄송해서 아무리 찾아보려하여도 보이지 아니하시었다.
겨울날 오후여서 일기는 상당히 차지만은 모두들 땀으로 목욕을 하였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었는지 알 수 없으나 하여간에 모시고 가든 성사께서 온데간데가 보이지 아니함으로 이럭저럭 쉴 여가도 없이 허덕거리면서 산장을 거의 당하여 커다란 바우돌이 부엌이마돌 내밀 듯이 쑥쑥 내민 곳에 당하니 성사께서는 벌써 올라 오신지가 얼마나 오래셨는지는 몰라도 ?척 멀리서 바라보입기에 어떻게 본래 그 굴속에 계시는 어른 모양으로 굴속 한 복판에 가만히 침착냉정하신 태도로 앉아계심을 뵈었다.
성사- 묵묵히 엄격하신 태도로 손에 쥐이신 단주만 돌리시면서 앉아계시더니 고요히 일어서시면서 인제들 올라오나! 나는 오기는 벌써 올라왔는데 나는 이곳에 오자마자 홀연히 글 한귀가 생각키웠는데 '석시에 차지견, 금일우간간(昔時此地見, 今日又看看) 이라 하였오' 하시었다.
이 글을 말로 색인하면 옛날에 이 땅을 보았더니, 오늘날에 또 그 전에 본 땅을 본다는 뜻이다.
이 글의 뜻을 생각하여보면 대신사와 의암성사의 육신은 다르나 법신의 일치를 얻게 되어 오심즉 여신이 되어진 그 지경을 증명하는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이 사실을 본다면 세상만사란 것은 반듯이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듯이 원인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천리의 정칙이라고 볼 수 있다.
대신사께서 양산군 천성산 내원암 적멸굴에서 공부하신 것 까지는 성사께서 아셨을 것이나 그곳에 가시어 공부하시다가 결국 그 굴을 당신이 찾게 되어 더구나 대신사와 법신적 일치에 이러러 그 굴에서 석시차지견, 금일우간간의 강시까지 얻으시게 되셨다는 것은 이 얼마나 높은 공부이며 인연 깊은 표현일가. (신인간 1939.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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