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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성사 순도.순국 100주기......성사(聖師)환원에 대한 사회 각 방면의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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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중앙도서관 | 2022-05-25 10:06:44

의암성사(聖師)의  환원(還元)에 대(對)한

  사회(社會) 각방면(各方面)의  감상(感想)

 진즉 몰랐던 것 한(限)입니다.....매일신보사 편집국 급사 길득 씨

  4년 전부터 손 선생님 말씀은 가끔 들었습니다마는 그다지 무어 별달리 아는 것도 없었는데 번에 신문 호외와 기타 일반 세상에서 떠드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손 선생님의 어떠한 훌륭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손 선생님께 대하여 어린 마음으로 제일 감사한 일은 그 어른 무슨 높은 벼슬도 아니 하시고 한 평민으로 계시면서 일반백성의 지도자셨던 일입니다.

돌아가실 때 까지 백성을 위해 돌아가신, 그렇게 훌륭한 어른을 왜 진즉부터 자세히 알지 못했든가 싶어서 그것 만일의 한 됩니다.

좀 더 사셨드면.......경성세균검사실 급사 김 사철 씨(17세)

 손(孫) 선생님 말씀은 전부터 자주 듣고 있었는데 번에 돌아가신 말씀을 듣고 퍽 놀랐습니다.

선생님 돌아가신 것 우리나라 우리사회에 어떤 영향(影響) 있는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그것은 저는 지금 판단(判斷)해 말할 수 없습니다마는 어쨌든지 어쩐 줄 모르게 좀 더 살아 계셨으면...하는 생각 자꾸 납니다.

선생님 대신에 우리가......학생 요한(11세)

 저는 손 선생님의 름을 전부터 듣고 늘 한편 뵙고 싶은 마음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번에 돌아가셨다는 소문을 듣고 저는 잠그는 방에 들어가서 자꾸 울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매를 맞아 죽었어요, 일을 하다가 죽은 것은 어쩌지 못하는 일지마는 그 때도 퍽 울었었습니다.

 손 선생님은 다른 사람 몇 백 명 죽은 것보다도 안 되었습니다. 울다가 저는 런 생각 났습니다. 선생님 대신에 우리가 죽었드면 하는 생각 자꾸 났습니다.

 퍽 든든하게 지냈습니다......조선보병대 상등병

 저는 아시는 바와 같 얽매여 있기 때문에 모든 일 다 자유롭지 못합니다.

따라서 말까지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런 고로 해서 손(孫) 선생님을 모앙(慕仰)하는 마음은 언제나 끊지 않고 간절하지마는 때까지 한 번도 뵈옵지 못하였습니다.

선생님으로 말하면 조선(朝鮮)에 큰 인물실 뿐 아니라 동양(東洋)에도 처음 낫던 위대(偉大)한 인물인 줄 알고 있습니다.  도덕(道德) 높으시고 일에 공로(功勞)가 많으시고 참말 근래의 우리 조선은 그 어른의 덕으로 키웠다 해도 과언(過言) 아닌 줄 압니다.

참말로 선생님 한분 우리 조선 민족(民族) 중에 계신 것 얼마나 든든하고 희망 많은 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렇게 야속히 돌아가시니 우리의 불행 어떻다 할 길 없으며 더구나 우금(于今)껏 한 번도 뵈옵지 못한다는 보다 더 큰 여한(餘恨) 없습니다.

길게 말할 것 없 비유해 말하면 나무의 뿌리가 끊어진 것 같 생각됩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모든 하신 사업과 모든 가르치심의 정신(情神)은 누구나 다 같 잊지 않을 줄 압니다.

 저는 제부터라도 선생님의 유훈(遺訓)과 유업(遺業)에 자주 접(接)하고 또 그 정신을 잘 받기 위하여 천도교 측에서 발행하는 책은 성의(誠意)를 다하여 구하여 보겠습니다.

 동포(同胞)의 머리가 없어진 것과 같습니다......총독부전매국연초공장 신용석 씨(15세)

 손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양반일 뿐 아니라 훌륭하고 거룩하신 어른입니다.

그 어른은 본래 우리나라 민족의 잘 될 도리를 구하기 위하여 힘을 쓰셨으니 그런 어른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손 선생님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매우 놀래었습니다. 그 어른으로 말하면 우리 천만 동포의 선생시기 때문에 나는 세상에 아무리 잘난 사람보다도 그 어른 제일 잘나신 어른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잘난 어른 살아계셔서 지금 만큼 깨었는데 제 그 어른 돌아가셨으니 동포의 머리나 수족(手足) 없어진 것 같 생각됩니다.

기관차(機關車)의 파상(破傷)과 같습니다......경성전기회사보조감독 박창성 씨

 나는 천도교회에서 직접 경영하는 보성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인 고로 전일에 손 선생님을 면알(面謁)하게 된 기회가 많았습니다. 선생님은 누구든지 널리 사랑하시지마는 특히 소학 생도를 더 사랑하시었습니다.

 어느 때인지 교회 기념 날에 나도 일반생도와 같 가서 기념식을 참례하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는 특히 소학교에 과자대금으로 금 십 원을 주시고, 또한 말씀하시되 사람의 평생 사업을 잘하고 못하는 것은 소학교 시대에 교육을 잘 받고 못 받는 데 있다 하시었습니다.

그 때에는 아무 철을 알지 못하므로 별로 깨닫지 못하였더니 차차 성장할수록 선생님의 말씀은 참으로 금석(金石)의 격언(格言)으로 알았습니다.

전차는 그 기관 역시 복잡하지만 그 방향의 잘 가고 못 가는 것은 전혀 고동을 잘 틀고 못 트는데 있습니다.

아무리 전력 강하고 차의 장비가 완미(婉媚)하다 할지라도 운전수가 고동을 잘못 틀면 대단히 위험합니다.

선생님은 우리 민족을 문명의 역(域)과 자유향(自由鄕)으로 지도하시는 운전수(運轉手)올시다.

 와 같 조선 민족에게 관계가 심절(深切)하신 선생님 돌아가심은 조선인의 대불행(大不幸)올시다.

그러나 선생님의 거룩하신 덕화와 정신은 일반 인민의 뇌(腦)속에 깊 인상(印相) 되어 있은즉 전차가 기관통 파상한 것처럼 일반으로 치명상을 당한 것은 아니요 잠시 정전된 것과 같 다소 고장 있을까 합니다.

 참 선생님은 거룩하십니다. 돌아가신 것은 하여간 조선(朝鮮) 또는 세계에 큰 손실(損失) 올시다.

 우리 부모(父母)와 같.....경성부 위생인부. 창화 씨

 우리는 천도교는 아직 믿지 아니합니다마는 우리도 손 선생님은 부모(父母)와 같 믿고 있었습니다.

한 번도 뵙지는 못하였지마는 그 어른 살아계셔야 우리가 잘 살터인데 하고 있었습니다.

무식해서 글은 몰라도 선생님 조선에 큰 선생님고 큰 인물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별안간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낙심 되었는지 모릅니다.

하누님도 무심하십니다......안동병문 구루마꾼 조문백 씨

 저는 구루마꾼니까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평생 노동에 골몰하니까 한 번도 선생님을 대하야 뵙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공연히 부모와 같 사모(思慕)하는 생각 납니다.

 선생님 감옥(監獄)에 들어가시기 전에 길로 지나가실 때면 자연히 반가운 생각 나면서 먹든 담뱃대도 절로 빼었습니다.

병환 드셨다는 말을 동무에게서 듣고 곧 쾌복(快復)되실 줄만 믿고 있었더니 신문호외가 나기로 무슨 큰일 났는가 하였더니 뜻밖에 선생님 돌아가시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참 큰일올시다.  일도 하고 싶지 않지마는 구복(口腹) 원수라고 여전히 일만합니다.

조선 잘 될려구 그런지 못 될려구 그런지 장(壯)한 양반은 렇게 돌아가시고 못된 사람은 곧잘 삽니다.

참 하누님도 무심합니다.  장사 날 언제인지 그 날은 굶고라도 가 뵙겠습니다.

 병문(屛門) 사람들도 한울같.....제동 병문 인력거부 김순일 씨

 저는 무식합니다마는 선생님은 참 장한 양반으로 압니다.

선생님 더 생존하시어서 조선 사람을 잘되게 하시었으면 인력거꾼나마 잘 살줄로 알았더니 별안간 돌아가시게 되니 참 원통하고 애달픕니다.

 다른 것야 무어 압니까. 저희 병문(屛門)사람들도 선생님은 한울같 믿었습니다.

그런 양반을 또 언제나 한번 뵐는지요.

 참 도덕(道德) 높으신 어른......광주 산성나드리 시상(柴商) 박 춘삼 씨

 나는 나무장사를 하기 때문에 날마다 새벽면 문(門)안을 들어옵니다. 

그런데 일전에 동대문 께를 오니까 두루마기에 검정동정을 단 양반 전차에서 많 내려오기로 상하야서 물으니까 천도교 손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 합디다.

나는 손 선생님께서 어떠한 어른신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참 장하신로만 압니다.

그 어른의 덕 많으신 것은 나도 지내본 일 있습니다. 

즉금 한5.6년 되었습니다.  어느 날인지는 몰라도 겨울밤 한창 추운 때올시다.

나무 한 바리를 소에 잔뜩 싣고 왼 종일 돌아다녀도 사가는 사람 없어서 럭저럭 제동 병문(屛門)까지 가서 소를 세우고 나무 사가기만을 기다리는데,   날은 춥고 배도 고파 견딜 수 없는 중,  순사는 와서 길에 소를 놓았다고 소를 때리며 나를 꾸짖으나 그대로 돌아갈 수 없어서 순사와 힐란 하는 중에  어떤 한 양반 한분 인력거를 타고 지나가시다가 광경을 보시고 인력거를 멈추어 나의 사실을 물은 뒤에 집으로 가자하시기에 소를 끌고 따라갔습니다.

 그 양반 집에 들어가셔서 하인더러 저 나무를 사라하니까 하인 말하기를 집에 나무가 많 있고 또 저 사람의 나무가 좋지 못하다합디다. 

그 양반 웃으시며 내가 나무가 없어서 사라는 줄 아느냐 저 나무장사가 추운 밤에 말 못하는 소를 데리고 나무를 팔지 못하여 애를 쓰는데 순사는 불구하고 구박을 하니 내가 불쌍히 여겨서 팔아주려고 하는 것라 하시고 나무를 사셨습니다.

동가홍상라고 하도 고마워서 그 댁 누구 댁냐고 물은 즉 손 선생님 댁라 합디다. 지금까지 그 일 잊혀 지지 않습니다. 

일로만 보아도 선생님은 참 도덕 높으신 양반올시다. 

렇게 돌아가시니 누구나 다 원통할 것입니다.    (천도교회월보, 의암성사 환원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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