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원 및 청원서의 허위날조부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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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원 및 청원서의 허위날조부분 알려드립니다.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진흙탕 싸움을 하면 깨끗한 사람이 손해를 본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 선열 동덕님들께서 목숨 바쳐 창립한 천도교대전교구가 상제교 출신이나 정통연원 추종자들에게 넘어가는 일만은 막아야겠다는 일념으로 한울님을 두려워하며 이글을 올립니다. 더구나 지난 시일날 제가 모든 것을 양보할테니, 심지어 원한다면 교구에도 나오지 않겠으니 혹시 총부의 중재안이 있다면 받겠냐고 물어보니, 그때 가봐야 알겠다는 답변을 듣고는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되었습니다.
탄원서에서 교구장 궐위시 교화부장에게 위임하여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진실은 과거에 유영수가 교구장직을 수행하다 중도 사퇴한 적이 있었는데, 관례대로 임창곤 교화부장이 교구장 대행직을 수행하려하자 바로 유영수가 이정희와 함께 규정 어디에 그런 것이 있느냐며 막는 바람에 총부의 유권해석에도 불구하고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유영수는 대행을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또한 탄원서에서 교구장 궐위시 부장들은 교구운영에 관여할 수 있으므로 3부장을 통솔하여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가야했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제가 5월 24일자로 임명을 받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이 3부장이 5월 26일 사퇴하여 경리부장을 제외하고 모두 수리되었는데 대체 누가 누구를 무슨 수로 통솔한다는 말입니까. 아무렇게나 생각 없이 내뱉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그 후 교화, 교무부장을 내정하고 단체 카톡에 공지했었으나 그중 한분이 하얗게 질려서 나타나 그 직을 맡을 수 없다며 울먹이듯 말합니다. 누군가 이들 내정자와 그 딸에게까지 전화로 갖은 욕설과 협박으로 그 직을 맡지 말 것을 강요하는 짓을 저지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엊그제 시일날 이종석 감사장이 왜 3부장을 임명하지 않았었느냐 묻길래 이 사실을 말하니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단 하루도 교구장으로 인정하지 않고 첫날부터 악을 쓰며 사퇴를 압박했다는 사실을 깜빡했는지 교인간의 융화와 단결을 말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입에 담는 행위는 대체 어디서 나온 뻔뻔함인가요. 저는 원래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까지도 잘 하지 못하는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입니다. 가만있는 교인에게 찾아다니며 욕설을 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진실은 제가 그렇게 욕설을 했다면 역설적으로 저들이 얼마나 못살게 굴고 심하게 괴롭혔는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으로써 오히려 많은 교인들이 분노하며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단 하루도 지켜보지 못하고 처음부터 온갖 조롱과 모욕을 덧씌워 지금까지 수차례의 탄원서 진정서를 남발하며 소속교인들을 괴롭히고 총부를 압박하는 등 끊임없이 일탈행위를 자행하다가 도저히 먹히지 않자, 언감생심 교구장의 품행을 거론하며 탄핵을 요구하는 것을 보니 인간으로서의 자괴감마저 듭니다. 전에는 품행이 좋아서 반대했고 이제는 나빠서 반대한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대체 무슨 소린가요.
탄원내용 중 가장 어설프게 허위 날조한 교구통장과 관련된 주장의 진실도 알려드립니다. 당시 신남숙 경리부장은 개인의 능력은 모르겠으나 진성교인이고 무엇보다 경리부만은 공백이 없어야한다고 판단, 사퇴의사를 반려하여 그대로 그 직을 맡도록 조치하였습니다. 경리부장이 보관하고 있던 교구장직인도 필요시 사용하고 다시 맡기는 등 적어도 경리부만은 별탈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오는 7월 15일 단 하루만은 총부시위에 참석하지 말 것을 부탁했습니다. 총부에서 예의주시하던 때라 다른 사람들은 관여할 바 없지만 주직인데 혹시 불이익을 받게 될까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승낙대신 교구통장과 직인을 돌려주겠다는 답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교구에 나가 기다리고 있었더니 이번엔 교구장이 아니므로 줄 이유가 없다고 조롱하고는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신남숙 경리부장을 해임조치하고, 총부의 인준장을 제시하여 대표자 변경사유로 고유번호증을 재발급 받았고, 이를 근거로 거래은행에서 대전교구명의의 통장을 모두 재발급 받았습니다. 모든 과정이 법과 규정에 따른 지극히 정상적인 방법으로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분명한 점은 신남숙 당시 경리부장이 약속대로 정상적으로 반납했거나 전화로나마 협의가 있었다면 오히려 규정에 어긋날지 몰라도 대표자 변경에도 불구하고 고유번호증을 재교부 받지 않았을 것이며 교구통장 재발행 또한 없었을거라는 점입니다.
내가 남을 인정하지 않으면 남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자연한 이치입니다. 또한 교구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교구장으로서의 모든 법률행위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이며 아울러 그 교구장이 의장으로 주재한 교구회의는 물론 그 결과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적어도 일관성은 있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좌충우돌하면서도 저들편이 교구장으로 선출되자 인준해달라며 수차례 탄원과 진정으로 날을 새는 행태도 보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밤새도록 전화로 독려하고 각본을 짜서 누가 나와도 선출이 어렵도록 준비해 놓았더군요.
집이 낡았으면 당연히 수리해야 하며 너무 낡았다면 부분 수리로는 새는 비, 부는 바람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낡아 썩어 문드러진 천도교대전교구. 몽땅 헐어내고 다시 짓겠습니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10년 20년 긴 호흡으로 천천히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포덕 159년(2018) 10월 16일
천도교대전교구장 이희관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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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암님의 댓글
희암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를 비난하는 분중 한분을 만나 서너시간 이상 격의없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내용을 말씀드리기는 그렇고 대전교구 교인일동이라며 교인전체가 연대하여 서명한것처럼 착시현상을 보이려고 노력한 부분에 대한 의문이 풀렸습니다.
탄원서는 전혀 보지도 못했다하며 첨부한 서명명부는 전화가 와서 종용하여 알았다고하면 미리 준비된 막도장과 서명을 적당히 섞어 그럴듯하게 만든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교구인원의 절반이 안되는 50여명의 서명을 두고 대전교구 교인일동!!! 어찌된 일인지 대전교구에서 제일 오래된 저도 모르는 인물이 수두룩 합니다.
사석에서 말씀드린바 있는데 저들에 적극 동조하는 분들은 상제교출신 가족들과 정통연원 가족들 그리고 맹목적인 추종자들을 모두 합해도 잘해야 20명 정도에 지나지 않을것으로 보입니다. 초창기엔 저를 포함 실제로 대전교구 교인일동은 물론 전국에서 8개 교구장이 참여했었지만 지금은 단 한 분의 교구장도 참여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전국에서 많는 분들이 전화를 주십니다. 질책도 물론 있었고, 그래봤자 극히 일부분이다. 당신이라도 남아서 교구를 지키고 있어야 훗날을 기약할수있는것 아니냐며 격려를 해주십니다.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