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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거사자금- 수의당(주옥경) 종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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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중앙도서관 | 2021-03-03 09:49:25

3.1운동의 거사 자금..... 수의당(주옥경) 종법사

 독립운동 자금의 조달이 기가 막히게 어려웠습니다.

3.1운동 거사자금 뿐만 아니라 해외의 독립운동 거사자금도 주로 우리 천도교에서 나왔습니다,

부인들의 아랫배에 차고 오기도 하였고, 또는 허리띠에다 누벼오기고 하고, 아무튼 부인들의 활약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거두어서 독립자금으로는 물쓰듯 했습니다마는, 우린 한국좁쌀도 먹지 못하고 호좁쌀을 먹었습니다.

 

 중국. 만주에도 독립자금 조달할 때에는, 안방 깊숙이 평양반닫이가 있었습니다. 그 반닫이 안에다 간수하였습니다마는,

혹시 왜놈의 감시가 두려워 다른 여러 곳으로 나누어 보관했습니다.

그 돈들은 정말 나라를 찾기 위한 피눈물 나는 정성의 돈이었습니다.

남자들은 짚신을 삼고 여자들은 삯바느질 품삯으로 모으고 모은 돈입니다.

사실 말씀이지 기미년 독립운동은 천도교 돈이 아니었으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3.1운동이 터지자 왜놈들은 서랍 속의 돈까지 들추어 압수해 갔습니다.

심지어는 장판 바닥까지 뜯어서는 혹시 돈을 감춘 곳이 없는가 조사했습니다.

그 때 임시정부요인들 일부도 다 우리 천도교에서 제공한 자금으로 해외망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해방이 되자 다시 고국에 돌아와서 천도교에 인사 온 분은 몇 분 안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기독교 측의 형무소 차입비용까지 우리가 부담했습니다.

 

 우이동 봉황각에서 특별수련으로 지방의 각 지도자들을 양성한 것도 독립운동의 준비기로 정하고,

그 수련기에 심고의 내용이 ‘국권을 회복하옵고...’라고 한 것은.

확실히는 모르지만 한일합병 직후가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

 

 3.1운동 전야에 의암성사님(손병희선생)의 동정은 평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 날 아침에도 청수를 모시고 나서 ‘나는 어디로 가는데 너희들은 남아서 수도만 잘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고 : 이 글은 3.1운동 50주년 특집좌담회 ‘ 독립운동 반세기의 회고(신인간 통권262호)’에서

        수의당(주옥경) 종법사님의 이야기를 일부 간추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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