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를 원하옵는 마음........소춘 김기전 (총부게시판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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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를 원하옵는 마음 ..........소춘 김기전
나는 참으로 참으로 우리도인 남녀 여러분의 수도를 원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신앙보국이라 하였으니 내 자신에 두터운 신앙이 있고서야 비로소 그 신앙의 힘, 즉 그 정신력으로써 나라에 갚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포덕광제라 하였으니 내 자신에 덕이 있고서야 비로소 그 덕을 펴서 내주위의 사람을 인도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경(經))에 가라사대 ‘마음을 닦아옴에 덕을 알고 덕이 오직 밝아야 이것이 도(道)이니라(心修來而之德 德惟明而是道)’하셨으니 우리가 실제로 닦지 않고야 어찌 덕을 알 수가 있으며 덕이 밝지 못하고야 어찌 도를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또 가라사대 ‘닦는 자는 빈 듯 하되 실상이 있고 닦지 않고 자못 듣기만 하는 자는 실한 듯 하되 비어 있느니라(修者 如虛而有實 聞者 如實而有虛)’하셨으니 우리가 자못 말이나 하고 또 남의 말을 듣기만하고 만다면 아무런 실상이 없는 빈껍데기가 될 것이 아닙니까. 이와 같이 내 자신에 아무런 있는 것이 없이 호왈(號曰) 도인이라 하고 또 포덕광제를 말한다면 그것이 무슨 실효가 있을 것입니까.
우리가 왜 수도를 잘못하느냐 여기에는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첫째 먹고사는 일에 골몰해서 그 시간 그 여유를 갖지 못해서 못한다는 이, 또는 그만한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나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해서 못한다는 이, 기타 여러 가지사정을 내세울 줄 압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왜 수도를 못하는가 하면,
-첫째 수도의 필요성을 필요그대로 여실(如實)히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것, 즉 수도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부족한 것, 따라서 도(도)의 참맛을 실제로 맛보지 못한 것,
-둘째 이 수도에 대한 참의 지도자 즉 수도에 대한 어느 정도의 높은 체험을 가진 권위 있는 지도자가 그 곁에 없는 것, 이 두 가지가 가장 종요한 원인이 될 줄 압니다. 우리가 만일 참으로 수도의 필요성 존귀성(尊貴性)을 깨달아 느꼈다거나 또는 참으로 우리를 이 수도의 신령한 지경 안으로 이끌어 인도하여주는 힘 있는 지도자가 있다고 한다면 누구나 수도 아니 할 사람은 없는 줄 압니다. 꼭 그런 줄 압니다.
일찍이 한 계단 또는 여러 계단의 높은 증험을 가진 권위 있는 지도자가 내 곁에 있어 여실하게 나를 도인(導引)한다면 이밖에 더 다행한 일은 없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득 얻기 어려운 일일 것이요, 위선에 할 것은 내 자신이 스스로 이 수도에 대한 필요성.존귀성을 알아 느끼어 한번 결단성 있게 스스로 닦아보는 그것입니다.
그러면 수도는 왜 필요하며 존귀한가 대체 수도란 어떠한 것을 가르침인가 이를 말이나 글로써 형용하자면 참으로 말도 많고 글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도인에게 대해서는 가장 간편한 대답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차제도법이 오직 스물 한자뿐이라’ 하셨으니 이 스물한자의 주문으로 그 뜻을 새겨보고 또 새겨보고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고 그리고 이 스물 한자를 읽어보고 또 읽어보는 그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묘합니다. 대신사께서 한울님의 계시(啓示)를 받아 이 주문을 지으시고 다시 자자구구로 이 주문을 해석 하시사 논학문( 論學問)편에 실어 놓으셨으니 우리는 이 주문 이 해석문을 보고 또 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왜 수도를 할 것인가 하는 대답이 나올 것이요 그리하는 한편으로 이 주문을 송(誦)하면 다시 ‘좋을시고 좋을시고’의 도의 맛을 증험할 것입니다.
남녀도인 여러분께 대하여 새삼스럽게 다시금 바라는 것은 이 주문의 뜻을 이미 다 아는 것으로 생각하여 심상히 보아 넘기지 말고 정말 뜻을 두어서 깊이깊이 새겨보고 생각해보고 또 곱씹어서 생각해보고 읽어보고 하시라는 그것입니다. ‘지기대강’이라하며 ‘내유신령 외유기화’라하며 ‘합기덕 정기심’이라하며 ‘지기도이 수기지(지기(至氣道而受其知)’라 하신 등등의 본문이며 해석문을 다시금 다시금 생각해 보시라는 그것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새로운 깨달음이 나옵니다. 그야말로 천지무궁의 수와 도의 무극한 이치가 다 이 주문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와 같이 주문의 뜻을 생각하여 이 주문이 한없이 신성하고 귀중하고 무서운 글임을 느끼게되면 스스로 이 주문을 송(誦)하여서 이 주문에 보여주신 뜻대로의 도성덕립의 지경을 내 스스로 증험해 보려는 욕심이 생길지니 여기에서 오관(五款)을 충실히 받들어 행하며 매일 저녁이나 새벽으로 한번에 30분 이상씩만의 송주를 행하면 드디어 도의 맛을 알지요 도의 맛을 얻기만 하면 욕파불능으로 가난해도 수도를 하고 분주해도 수도할 시간이 있어지고 괴로워도 수도를 하고 병이 들어 누워서도 수도를 하고 검산도수의 속에서도 수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신인간 (1942.7월호)
나는 참으로 참으로 우리도인 남녀 여러분의 수도를 원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신앙보국이라 하였으니 내 자신에 두터운 신앙이 있고서야 비로소 그 신앙의 힘, 즉 그 정신력으로써 나라에 갚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포덕광제라 하였으니 내 자신에 덕이 있고서야 비로소 그 덕을 펴서 내주위의 사람을 인도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경(經))에 가라사대 ‘마음을 닦아옴에 덕을 알고 덕이 오직 밝아야 이것이 도(道)이니라(心修來而之德 德惟明而是道)’하셨으니 우리가 실제로 닦지 않고야 어찌 덕을 알 수가 있으며 덕이 밝지 못하고야 어찌 도를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또 가라사대 ‘닦는 자는 빈 듯 하되 실상이 있고 닦지 않고 자못 듣기만 하는 자는 실한 듯 하되 비어 있느니라(修者 如虛而有實 聞者 如實而有虛)’하셨으니 우리가 자못 말이나 하고 또 남의 말을 듣기만하고 만다면 아무런 실상이 없는 빈껍데기가 될 것이 아닙니까. 이와 같이 내 자신에 아무런 있는 것이 없이 호왈(號曰) 도인이라 하고 또 포덕광제를 말한다면 그것이 무슨 실효가 있을 것입니까.
우리가 왜 수도를 잘못하느냐 여기에는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첫째 먹고사는 일에 골몰해서 그 시간 그 여유를 갖지 못해서 못한다는 이, 또는 그만한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나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해서 못한다는 이, 기타 여러 가지사정을 내세울 줄 압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왜 수도를 못하는가 하면,
-첫째 수도의 필요성을 필요그대로 여실(如實)히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것, 즉 수도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부족한 것, 따라서 도(도)의 참맛을 실제로 맛보지 못한 것,
-둘째 이 수도에 대한 참의 지도자 즉 수도에 대한 어느 정도의 높은 체험을 가진 권위 있는 지도자가 그 곁에 없는 것, 이 두 가지가 가장 종요한 원인이 될 줄 압니다. 우리가 만일 참으로 수도의 필요성 존귀성(尊貴性)을 깨달아 느꼈다거나 또는 참으로 우리를 이 수도의 신령한 지경 안으로 이끌어 인도하여주는 힘 있는 지도자가 있다고 한다면 누구나 수도 아니 할 사람은 없는 줄 압니다. 꼭 그런 줄 압니다.
일찍이 한 계단 또는 여러 계단의 높은 증험을 가진 권위 있는 지도자가 내 곁에 있어 여실하게 나를 도인(導引)한다면 이밖에 더 다행한 일은 없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득 얻기 어려운 일일 것이요, 위선에 할 것은 내 자신이 스스로 이 수도에 대한 필요성.존귀성을 알아 느끼어 한번 결단성 있게 스스로 닦아보는 그것입니다.
그러면 수도는 왜 필요하며 존귀한가 대체 수도란 어떠한 것을 가르침인가 이를 말이나 글로써 형용하자면 참으로 말도 많고 글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도인에게 대해서는 가장 간편한 대답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차제도법이 오직 스물 한자뿐이라’ 하셨으니 이 스물한자의 주문으로 그 뜻을 새겨보고 또 새겨보고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고 그리고 이 스물 한자를 읽어보고 또 읽어보는 그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묘합니다. 대신사께서 한울님의 계시(啓示)를 받아 이 주문을 지으시고 다시 자자구구로 이 주문을 해석 하시사 논학문( 論學問)편에 실어 놓으셨으니 우리는 이 주문 이 해석문을 보고 또 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왜 수도를 할 것인가 하는 대답이 나올 것이요 그리하는 한편으로 이 주문을 송(誦)하면 다시 ‘좋을시고 좋을시고’의 도의 맛을 증험할 것입니다.
남녀도인 여러분께 대하여 새삼스럽게 다시금 바라는 것은 이 주문의 뜻을 이미 다 아는 것으로 생각하여 심상히 보아 넘기지 말고 정말 뜻을 두어서 깊이깊이 새겨보고 생각해보고 또 곱씹어서 생각해보고 읽어보고 하시라는 그것입니다. ‘지기대강’이라하며 ‘내유신령 외유기화’라하며 ‘합기덕 정기심’이라하며 ‘지기도이 수기지(지기(至氣道而受其知)’라 하신 등등의 본문이며 해석문을 다시금 다시금 생각해 보시라는 그것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새로운 깨달음이 나옵니다. 그야말로 천지무궁의 수와 도의 무극한 이치가 다 이 주문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와 같이 주문의 뜻을 생각하여 이 주문이 한없이 신성하고 귀중하고 무서운 글임을 느끼게되면 스스로 이 주문을 송(誦)하여서 이 주문에 보여주신 뜻대로의 도성덕립의 지경을 내 스스로 증험해 보려는 욕심이 생길지니 여기에서 오관(五款)을 충실히 받들어 행하며 매일 저녁이나 새벽으로 한번에 30분 이상씩만의 송주를 행하면 드디어 도의 맛을 알지요 도의 맛을 얻기만 하면 욕파불능으로 가난해도 수도를 하고 분주해도 수도할 시간이 있어지고 괴로워도 수도를 하고 병이 들어 누워서도 수도를 하고 검산도수의 속에서도 수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신인간 (1942.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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