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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동 동학 위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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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고 안녕하세요. 지난 4월 19일부터 실시하는 연원회 수련(가리산수도원)에 참가하여 홍천군 서석면 에 있는 동학혁명위령탑 참배 및 기미만세공원(내촌면 물걸리) 과 척야산(김덕원 선생님을 기리기 위한 공원이자) 등산코스를 다녀왔습니다. 봉고차를 한대를 렌트하여 도정 도훈님 교구장님들과 함께 다녀오게 되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동학혁명위령탑에서 일어난 일을 소개하고자,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동학혁명위령탑에 도착하여 도착 심고를 드린 후 자연석으로 새긴 시와 노랫말을 둘러보는 도중 콧등이 시큰하며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느끼고 '아, 이건 그때 처절했을 선열들의 피눈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전투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수많은(800여명) 동학군이 산하한곳이라고 합니다.. 그 전투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자작자작 흘러내려 이 고개를 자작고개라고 부른다더군요. 저희만 보기에는 아까운 여러 기념비들과 풍경이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카메라를 지니고 오지 못하여 그 광경들을 담지는 못했습니다. 한번씩 둘러보고 난 후 모두 동학혁명위령탑 앞에 모여서 참배식을 식순에 의해 시작했습니다. 청수봉전과 향을 피우고 심고를 드렸습니다. 순간, 바람이 세차가 불어왔는데 "땡그랑-!"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을 뜨게 되었는데 청수기의 덮개가 저 아래로 떨어졌더군요. 세찬 바람은 한 방향으로 불어 왔는데, 청수물이 한방향으로 날려야 정상인데 동서남북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눈을 의심하는 순간 또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에 농작물을 심기위해 밭갈이를 모두 해놓고, 종자를 심고 있는 분들도 계셨는데- 그 정도의 바람이라면 충분히 주변의 낙엽과 흙먼지들이 날아 들어왔어야 했는데 먼지와 낙엽이 날리지 안았다는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청수기의 덮개가 떨어질 정도의 바람이 불어왔건만,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은연중 또 한 가지 생각이 번갯불처럼 들게 되었습니다. '피 흘려 가시며 조국독립을 위해 싸우실 때에는 당신들 몸과 가족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한 가지 일념으로 싸우시다 조국의 독립이 되는 순간조차 보지 못하시고 가버리신 선열들의 성령들께서 "너희들이 이제야 이곳에 왔니 하시면서 서운한 마음도 들고, 한편으로는 대견하고 반갑구나 시천주 소리를 너무오랜만에 듣는구나 이제 뒷일을 부탁한다."하시면서 바람으로 후학들을 쓰다듬고 가신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순간 . 경전봉독을(성령출세설) 하는데 목 이 메여 읽지 못 할 정도였습니다. 경전봉독을 할때는 세차게 불든 바람도 고요히 잠들어버리더군요. 참배식 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자작고개 위령탑에서 있었든 이야기를 나누는데 앞에서 운전 하시고 계시든 서울교구 박원출 선생님께서 당신은 "못 보았다." 하시면서 같은자리에서 같이 행사를 하였건만 본사람과 못본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것도 다한울님의 뜻이니 그모습을 본사람이 여러사람에게 알려야할 의무가 있다시면서 덧 붙여 말씀하시길 "천도교 홈페이지에 꼭 올려 달라, 그렇지 않으면 먼저가신 선열님들께서 많이 서운해 하실 거다." 당시 저는 그러겠노라 답하기는 했지만, 워낙 글재주가 없어 망설임 끝에 이렇게 뒤늦게 쓰고 있습니다. 참배식후 서석면 면사무소에 들러 면장님을 뵙고 가야겠다 시면서 박암 임운길 선도사님과 여러 원로 선생님의 의견에 따라 면사무소에 들렀습니다. 면장님은 출타하시고 총무계장님이 저희를 안내하셨는데 거기서 기가 막힌 소리를 듣게 되어 한참동안을 멍하니 있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3∙1독립운동은 동학군에서도 했지만, 기독교가 주체가 된 것이 아니냐? 하는 것과, 손 병희 선생님에 대해서도 뭐라고 했는데 멍하니 있느라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원로 어르신들께서 "손 병희 선생님은 저희 천도교의 3세 교조님이시다."하고 설명을 하고 계신 걸로 봐서는 저희 성사님도 기독교인으로 알고 계셨던 듯 합니다. 설명을 듣고 사과를 정중히(얼굴이 홍당무우가 되셔서 쩔쩔매시면서) 하셨지만, 정말로 통탄할 일입니다. 그분의 잘못이 아니라 저희 천도교의 잘못이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천도교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전 교령님도 통일교와의 문제가 생기고 일반인들은 우리들의 스승님을 기독교인으로 둔갑을 시키고 있으니 이 어찌 눈물이 앞을 가릴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서석면에서 약 30여 가구가 음력 10월 23일 동시에 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통탄할일은 얼마나 모진 탄압을 받으셨기에, 국가에서 동학군 명예회복 신청을 받고 있는 이 시점에 다수의 가구에서 쉬쉬하며 꺼리고 있는 상황 이라는 겁니다.(명예회복이라는 미명아래 다시무슨 보복이라도 당할까 싶어서) 그 옛날에는 제사를 지내려면 혹 불빛이 새나가진 않을까? 하여 제사조차도 마음대로 지내지 못하셨다고 하시더군요. 뒤늦은 지금에라도 명예회복이 되도록 우리 후학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일 인듯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여러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시길 그무렵 족보상에 음력 10월 23일이 제사인분들은 꼭 신청을 받아 반드시 신원이 회복되도록 도와주십사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준비해간 경전과 신 인간을 면사무소에 드리고) 떠나 왔습니다만 떠나오는 길은 왜 그리도 발걸음이 무겁던 지요. 한울님과 스승님 그리고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선열의 성령들이시어 성령출세 하시어 부디 평안히 쉬소서 하고 심고를 드려야 마땅할 테지만, 현재 우리 교단의 형편과 이 나라가 돌아가는 사정을 보니 그런 심고는 차마 드릴수가 없더군요.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도 눈물을 마음 놓고 흘릴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나마 위령탑이라도 세워진곳은 행복한 성령들이시겠지요. 어느 계곡 어느 골짜기에서 또는 어느 후미진 산등어리에서 소리 없이 가신 우리 동학군의 성령들께서는 지금 어찌 되셨을까요. 그 분들께서 외치시는 소리를 저희 후학들이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이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버리시고 가신 성령들께서 흐뭇하게 웃으시며 편히 쉴 수 있는 그날이 하루 빨리 다가오길 바라는 심고 드려봅니다. 청주교구 대덕당 주 선자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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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3

주선자님의 댓글

no_profile 주선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포덕 146년 4월 19일 연원회 수련으로 가리산에서 수련후 서석동학혁명 위령탑에 다녀 오면서 있었든일을 한울마음에 올린글을 다시 모시고 넷으로 옴겨와 보았습니다

김형철님의 댓글

김형철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모시고 안녕하십니까<br/>천도교인도 교사에대하여 통일이 되여 있지안은데........<br/>천도교인이 아닌사람은 기독교인인지 천도교인인지<br/>모르고있는것을 탓할수가 없는것이지요<br/>언제쯤이나 바른 천도교인이 많이 나오려는지.........

주선자님의 댓글

no_profile 주선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모시고 반갑습니다^*^<br/>누구를 탓하겠습니까?<br/>모두 우리들의 탓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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