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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修道)의 기도화(祈禱化) 와 감응(感應) 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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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修道)의 기도화(祈禱化) 와 감응(感應) 포덕
천도교중앙도서관 | 2021-06-02 10:30:28

  大發(대발) 제27호

敬啓者(경계자) 修道(수도)와 布德(포덕)에 對(대)하여 玆(자)에 仰函(앙함)하오니 左記精神(좌기정신)에 則(칙) 하와 極誠奉行(극성봉행)하심을 敬要(경요)



        -左 記 (좌 기)-

  1. 수도(修道)의 기도(祈禱)화

 경신4월 5일에 대신사,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으시고 한울님의 말씀에 의지하야 만고 없는 무극대도를 이 세상에 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천도교는 한울님을 모시며 한울님의 은덕을 갚으려 한울님의 뜻을 공경함으로써 수도의 요지를 삼으며 그리하여 한울님의 공을 이루며 한울님의 복을 받는 것으로써 인생의 목적을 삼는 바입니다.

한울님은 우리에게 일월성신의 복을 주셨으며 대지 산하의 자연을 주셨으며 의식주를 주셨으며 그리하여 모든 생활하는 복을 주셨으니 한울님의 은혜는 거룩하시며 한울님의 덕은 놀랍습니다.  그러므로 한울님을 정성으로 섬기는 사람은 반드시 모든 복을 받을 것이요 한울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한울님을 모르는 사람은 반드시 화가 있을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울님을 바르게 섬기며 한울님의 복을 받을 길은 무엇일까?

한울님을 바르게 섬기는 방법은 권세나 금전에 있는 것도 아니며 말과 글에 있는 것도 아니요 오로지 수도(修道)에 있습니다.

  수도라는 뜻은 한말로써 논한다면 이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들이, 저희들을 낳게 하고 저희들을 살게 하여주시는 거룩하신 한울님에 대해서 한울님 뜻을 순종하기로 맹서하며 한울님의 일을 봉행하기로 기원하며 그리하여 한울님의 덕을 입으며 한울님의 복을 받기로 기도하는 수행을 이름이니, 그러므로 기도는 한울님의 덕을 여는 열쇠이며 한울님의 복을 받는 그릇이 됩니다.

‘한울님이시여 우리에게 덕을 베푸시며 우리에게 복을 내리소서’ 하는 기도의 소리는 한울과 땅에 가득히 찼습니다. 공중에 뜬 일월의 빛이며 봄바람에 웃는 꽃의 웃음이며 숲속에서 외치는 생명의 소리는 다 같이 한울님에게 향해서 복을 구하는 기도의 소리입니다.

이와 같이 천지만물은 스스로 다복을 구하기 위하여 한울님께 대해서 무궁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의 영감(靈感)은 사람에게서 가장 감응이 빠르고 감응이 커집니다. 그 연고는 사람은 영(靈)을 가진 까닭이며 정신을 가진 까닭이니 한울님은 우리에게 영을 주시고 정신(精神)을 주시어 그로써 한울님의 덕을 찬송하고 한울님의 복(福)을 받게 만든 것이올시다.

 

 기도하는 방법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의율(儀律)이 있을 것은 물론이나 대체로 말하면 일언일행용심처사(一言一行用心處事) 모든 데 있어 한울님과 신성(神聖)께 고(告)하고  한울님과 신성의 감응에 의하야 행동할 것이니 어린아이가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젖을 구하는 듯이 출천대효(出天大孝)가 부모님 앞에서 행동하듯이 순량한 도제가 어진 스승의 교훈을 듣듯이  항상 정성스러우며 항상 경외하는 마음으로써 한울님께 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심고와 오관실행은 교인이 교인되는 행실이며 수도의 수도되는 요건이니 그러므로 심고와 오관실행은 기도(祈禱)적 심성(心性)으로 행할 것이요 결코 의무와 체면적으로 할 것이 아니외다. 수도를 의무와 체면으로 한다는 것은 마치 음식을 의무와 체면으로 먹는 말과 같이 우스운 일입니다. 음식은 생명의 본능으로 먹는 것이요 의무나 체면으로 먹지 않는 것과 같이 수도는 영적 희열로 나오는 기도이요 결코 교인되는 의무나 체면을 지키기 위하여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심고와 오관실행은 한울님의 덕을 갚으며 한울님의 복을 받기 위하야 영혼의 부르짖음으로 나오는 기도인 것임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이제 심고와 오관을 기도화 하는 예를 몇 가지 들어 말하면

 -첫째 심고입니다.

 심고는 사람이 한울님께 대해서 기도를 올리는 수행입니다. 한울님은 무궁(無窮)하시며 완전(完全)하시며 전능(全能)하시며 지선(至善)하심과 반대로 사람은 유한(有限)하며 불완전(不完全)하며 불성실(不誠實)합니다.  그러므로 심고는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무궁하고 완전하신 한울님께 대해서 다복을 구하는 기원입니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는 것과 같이 한울님은 심고를 잘하는 사람에게뿐 행복을 내리워줍니다.

 심고에는 공적 사적의 구별이 있으니,  공적심고는 온 세상 사람을 한가지로 제도하기 위하야 포덕천하광제창생의 대원을 속히 실현하여 주시기를 한울님과 신성께 고하는 것이며  사적(私的) 심고는 자기 자신이 차생극락을 얻으며 영적장생을 얻으며 삼재팔난의 모든 재앙을 면하기 위하여 한울님과 신성의 감응을 받기로 기원하는 것입니다.



  -둘째 주문입니다.

 주문(呪文)은 천문을 열고 한울님을 부르는 글이니 마치 어린 자식이 사랑하는 어머니를 부르는 것과 같아서 주문소리를 들은 한울님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 향해서 어떠한 감응을 내릴 것입니다.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한울님은 희열의 맘으로 그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영의 손으로 그 사람을 안아줄 것입니다.  송주(誦呪)에는 묵송 현송의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대신사는 일찍 제자에게 향해서 현송의 편이 묵송의 편보다 효과가 크다 하였은 즉,  우리는 경우에 의하여 묵송을 하는 외는 일체 현송으로써 한울님의 감응을 받기로 합시다.

 

 -셋째 청수(淸水). 시(侍). 성미(誠米). 시일(侍日)기도 등 의식에 있어서는 그것을 결코 규칙적이라 생각지 말고 한울님의 은덕을 보답하며 한울님의 행복을 향수하는 생명적 희열아래서 지성(至誠) 지경(至敬) 지신(至信)하는 맘으로 청수를 봉전할 것이며 성미를 뜰 것이며 시일을 볼 것이며 시일기도를 봉행할 것이니 이것은 다 한울님의 맘으로부터 나온 의식임으로써 의식을 정성있게 하면 할수록 한울님은 감응의 력(力)으로써 우리에게 무량대복(無量大福)을 내릴 것입니다.

 

-넷째 천덕송입니다.

천덕송은 한울님의 은덕을 찬송하는 노래이니 한울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데는 말보다도 글보다도 송(頌)과 노래가 큰 효과를 냅니다.

 

이상의 여러 가지 말을 일언(一言)으로 총괄하면 수도(修道)를 기도화(祈禱化) 하자는 것이니 기도가 없는 수도는 생명이 없는 기계와 같아서 아무 감응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적 수도에 의지하여 한울님의 감응을 얻으며 한울님의 감응을 얻음으로써 차생극락을 얻으며 영적 장생불사를 얻으며 그리하여 포덕광제의 지상천국을 얻을 것을 진실로 진실로 믿어야 합니다.

 

2. 감응(感應) 포덕

 감응포덕이라는 것은 포덕을 사무적 기계적으로 하지 말고 감응적(感應的) 생명적(生命的)으로 하자는 뜻이니 우리는 먼저 수도(修道)의 기도화(祈禱化)에 의하여 한울님의 감응을 얻고 한울님의 감응에 의하여 덕을 천하에 펴자는 뜻입니다.

포덕이라는 말은 광제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하고 보면 광제라는 제(濟)자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고저하면 자기 자신이 한가지로 물에 빠져서는 안 됨과 같이 우리가 세상의 흐린 물에 빠진 불쌍한 창생을 건지고저 하면 자기 자신은 먼저 흐린 물에서 벗어나와 광제선에 올라서야 합니다.

이 의미에서 천도교를 광제선이라 하면 천도교를 진실히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같이 광제선을 부리는 사공일 것이니 광제선을 부리는 대자 대비한 사공으로서 물에 빠진 사람을 그대로 두고 볼 리가 만무할 것이며  그리하여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심성은 결코 사무적이나 체면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요 지인(至仁) 지자(至慈)하신 한울님의 심성으로 나오는 거룩한 행위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지인지자의 심성은 사람의 사욕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요 한울님의 감응의 력(力)으로 솟아나오는 천량(天良)의 본심일 것이니 이러한 심성으로써 포덕하는 것을 감응포덕이라 합니다.

 

‘불의포덕지심(不意布德之心하고 극념치성지단(極念致誠之端) 이라 하신 대신사의 말씀을 좇아보면 이 말씀은 포덕에 뜻이 없다는 말이 아니요,  포덕을 잘 하자면 먼저 치성을 하여야 한다는 말이니 치성이 없는 포덕은 생명 없는 포덕이며 감화가 없는 포덕입니다.

치성은 곧 한울님의 감응을 받는 수행을 이름이니 우리는 먼저 기도적 치성에 의지하여 한울님의 감응으로써 자기 자신을 건질 것이며 그리하여 반드시 자기 자신을 건진 사람이면 스스로 세상을 건질 맘이 나지 아니치 못할지니 이러한 감응 밑에서 포덕을 하고보면 포덕한 사람과 포덕을 받은 사람 사이에는 곧 오심즉여심(吾心卽 汝心)의 경애에 들어가게 되는 고로,  십인 포덕이면 곧 십인 광제(廣濟)가 되고 백인포덕이면 백인 광제가 되어  일인(一人)흥(興)에 일가(一家) 흥(興)하고  일가 흥에 일국(一國)이 흥(興)하고 일국이 흥(興)에 천하가 흥(興)하는 포덕천하의 실효(實效)를 얻을 것입니다.

                                                                        (대발 제27호 - 포덕76(1935)년 4월 30일. 천도교중앙종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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