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덕 163년 10월 0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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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성사 순도.순국 100주기......성사(聖師)환원에 대한 사회 각 방면의 감상

천도교중앙도서관 | 2022-05-25 10:06:44

의암성사(聖師)의  환원(還元)에 대(對)한

  사회(社會) 각방면(各方面)의  감상(感想)

 진즉 몰랐던 것이 한(限)입니다.....매일신보사 편집국 급사 이길득 씨

  4년 전부터 손 선생님 말씀은 가끔 들었습니다마는 그다지 무어 별달리 아는 것도 없었는데 이번에 신문 호외와 기타 일반 세상에서 떠드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손 선생님의 어떠한 훌륭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손 선생님께 대하여 어린 마음으로 제일 감사한 일은 그 어른이 무슨 높은 벼슬도 아니 하시고 한 평민으로 계시면서 일반백성의 지도자이셨던 일입니다.

돌아가실 때 까지 백성을 위해 돌아가신, 그렇게 훌륭한 어른을 왜 진즉부터 자세히 알지 못했든가 싶어서 그것이 만일의 한이 됩니다.

좀 더 사셨드면.......경성세균검사실 급사 김 사철 씨(17세)

 손(孫) 선생님 말씀은 전부터 자주 듣고 있었는데 이번에 돌아가신 말씀을 듣고 퍽 놀랐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이 우리나라 우리사회에 어떤 영향(影響)이 있는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그것은 저는 지금 판단(判斷)해 말할 수 없습니다마는 어쨌든지 어쩐 줄 모르게 좀 더 살아 계셨으면...하는 생각이 자꾸 납니다.

선생님 대신에 우리가......학생 이 요한(11세)

 저는 손 선생님의 이름을 전부터 듣고 늘 한편 뵙고 싶은 마음이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돌아가셨다는 소문을 듣고 저는 잠그는 방에 들어가서 자꾸 울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매를 맞아 죽었어요, 일을 하다가 죽은 것은 어쩌지 못하는 일이지마는 그 때도 퍽 울었었습니다.

 손 선생님은 다른 사람 몇 백 명 죽은 것보다도 안 되었습니다. 울다가 저는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선생님 대신에 우리가 죽었드면 하는 생각이 자꾸 났습니다.

 퍽 든든하게 지냈습니다......조선보병대 상등병

 저는 아시는 바와 같이 이같이 몸이 얽매여 있기 때문에 모든 일이 다 자유롭지 못합니다.

따라서 말까지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런 고로 해서 손(孫) 선생님을 모앙(慕仰)하는 마음은 언제나 끊이지 않고 간절하지마는 이때까지 한 번도 뵈옵지 못하였습니다.

선생님으로 말하면 조선(朝鮮)에 큰 인물이실 뿐 아니라 동양(東洋)에도 처음 낫던 위대(偉大)한 인물인 줄 알고 있습니다.  도덕(道德)이 높으시고 일에 공로(功勞)가 많으시고 참말 근래의 우리 조선은 그 어른의 덕으로 키웠다 해도 과언(過言)이 아닌 줄 압니다.

참말로 선생님 한분이 우리 조선 민족(民族) 중에 계신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희망 많은 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야속히 돌아가시니 우리의 불행이 어떻다 할 길 없으며 더구나 우금(于今)껏 한 번도 뵈옵지 못한다는 이보다 더 큰 여한(餘恨)이 없습니다.

길게 말할 것 없이 비유해 말하면 나무의 뿌리가 끊어진 것 같이 생각됩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모든 하신 사업과 모든 가르치심의 정신(情神)은 누구나 다 같이 잊지 않을 줄 압니다.

 저는 이제부터라도 선생님의 유훈(遺訓)과 유업(遺業)에 자주 접(接)하고 또 그 정신을 잘 받기 위하여 천도교 측에서 발행하는 책은 성의(誠意)를 다하여 구하여 보겠습니다.

 동포(同胞)의 머리가 없어진 것과 같습니다......총독부전매국연초공장 신용석 씨(15세)

 손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양반일 뿐 아니라 훌륭하고 거룩하신 어른입니다.

그 어른은 본래 우리나라 민족의 잘 될 도리를 구하기 위하여 힘을 쓰셨으니 그런 어른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손 선생님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매우 놀래었습니다. 그 어른으로 말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의 선생이시기 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 아무리 잘난 사람보다도 그 어른이 제일 잘나신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잘난 어른이 살아계셔서 지금 이만큼 깨었는데 이제 그 어른이 돌아가셨으니 동포의 머리나 수족(手足)이 없어진 것 같이 생각됩니다.

기관차(機關車)의 파상(破傷)과 같습니다......경성전기회사보조감독 박창성 씨

 나는 천도교회에서 직접 경영하는 보성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인 고로 전일에 손 선생님을 면알(面謁)하게 된 기회가 많았습니다. 선생님은 누구든지 널리 사랑하시지마는 특히 소학 생도를 더 사랑하시었습니다.

 어느 때인지 교회 기념 날에 나도 일반생도와 같이 가서 기념식을 참례하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는 특히 소학교에 과자대금으로 금 십 원을 주시고, 또한 말씀하시되 사람의 평생 사업을 잘하고 못하는 것은 소학교 시대에 교육을 잘 받고 못 받는 데 있다 하시었습니다.

그 때에는 아무 철을 알지 못하므로 별로 깨닫지 못하였더니 차차 성장할수록 선생님의 말씀은 참으로 금석(金石)의 격언(格言)으로 알았습니다.

전차는 그 기관이 역시 복잡하지만 그 방향의 잘 가고 못 가는 것은 전혀 고동을 잘 틀고 못 트는데 있습니다.

아무리 전력이 강하고 차의 장비가 완미(婉媚)하다 할지라도 운전수가 고동을 잘못 틀면 대단히 위험합니다.

선생님은 우리 민족을 문명의 역(域)과 자유향(自由鄕)으로 지도하시는 운전수(運轉手)올시다.

 이와 같이 조선 민족에게 관계가 심절(深切)하신 선생님이 돌아가심은 조선인의 대불행(大不幸)이올시다.

그러나 선생님의 거룩하신 덕화와 정신은 일반 인민의 뇌(腦)속에 깊이 인상(印相)이 되어 있은즉 전차가 기관통 파상한 것처럼 일반으로 치명상을 당한 것은 아니요 잠시 정전된 것과 같이 다소 고장이 있을까 합니다.

 참 선생님은 거룩하십니다. 돌아가신 것은 하여간 조선(朝鮮) 또는 세계에 큰 손실(損失) 이올시다.

 우리 부모(父母)와 같이.....경성부 위생인부. 이창화 씨

 우리는 천도교는 아직 믿지 아니합니다마는 우리도 손 선생님은 부모(父母)와 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한 번도 뵙지는 못하였지마는 그 어른이 살아계셔야 우리가 잘 살터인데 하고 있었습니다.

무식해서 글은 몰라도 선생님이 조선에 큰 선생님이고 큰 인물이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별안간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낙심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하누님도 무심하십니다......안동병문 구루마꾼 조문백 씨

 저는 구루마꾼이니까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평생 노동에 골몰하니까 한 번도 선생님을 대하야 뵙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공연히 부모와 같이 사모(思慕)하는 생각이 납니다.

 선생님이 감옥(監獄)에 들어가시기 전에 길로 지나가실 때면 자연히 반가운 생각이 나면서 먹든 담뱃대도 절로 빼었습니다.

병환이 드셨다는 말을 동무에게서 듣고 곧 쾌복(快復)되실 줄만 믿고 있었더니 신문호외가 나기로 무슨 큰일이 났는가 하였더니 뜻밖에 선생님이 돌아가시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참 큰일이올시다.  일도 하고 싶지 않지마는 구복(口腹)이 원수라고 여전히 일만합니다.

조선이 잘 될려구 그런지 못 될려구 그런지 장(壯)한 양반은 이렇게 돌아가시고 못된 사람은 곧잘 삽니다.

참 하누님도 무심합니다.  장사 날이 언제인지 그 날은 굶고라도 가 뵙겠습니다.

 병문(屛門) 사람들도 한울같이.....제동 병문 인력거부 김순일 씨

 저는 무식합니다마는 선생님은 참 장한 양반으로 압니다.

선생님이 더 생존하시어서 조선 사람을 잘되게 하시었으면 인력거꾼이나마 잘 살줄로 알았더니 별안간 돌아가시게 되니 참 원통하고 애달픕니다.

 다른 것이야 무어 압니까. 저희 병문(屛門)사람들도 선생님은 한울같이 믿었습니다.

그런 양반을 또 언제나 한번 뵐는지요.

 참 도덕(道德)이 높으신 어른......광주 산성나드리 시상(柴商) 박 춘삼 씨

 나는 나무장사를 하기 때문에 날마다 새벽이면 문(門)안을 들어옵니다. 

그런데 일전에 동대문 께를 오니까 두루마기에 검정동정을 단 양반이 전차에서 많이 내려오기로 이상하야서 물으니까 천도교 손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 합디다.

나는 손 선생님께서 어떠한 어른이신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참 장하신이로만 압니다.

그 어른의 덕이 많으신 것은 나도 지내본 일이 있습니다. 

즉금 한5.6년 되었습니다.  어느 날인지는 몰라도 겨울밤 한창 추운 때올시다.

나무 한 바리를 소에 잔뜩 싣고 왼 종일 돌아다녀도 사가는 사람이 없어서 이럭저럭 제동 병문(屛門)까지 가서 소를 세우고 나무 사가기만을 기다리는데,   날은 춥고 배도 고파 견딜 수 없는 중,  순사는 와서 길에 소를 놓았다고 소를 때리며 나를 꾸짖으나 그대로 돌아갈 수 없어서 순사와 힐란 하는 중에  어떤 한 양반 한분이 인력거를 타고 지나가시다가 이 광경을 보시고 인력거를 멈추어 나의 사실을 물은 뒤에 집으로 가자하시기에 소를 끌고 따라갔습니다.

 그 양반이 집에 들어가셔서 하인더러 저 나무를 사라하니까 하인이 말하기를 집에 나무가 많이 있고 또 저 사람의 나무가 좋지 못하다합디다. 

그 양반이 웃으시며 내가 나무가 없어서 사라는 줄 아느냐 저 나무장사가 추운 밤에 말 못하는 소를 데리고 나무를 팔지 못하여 애를 쓰는데 순사는 불구하고 구박을 하니 내가 불쌍히 여겨서 팔아주려고 하는 것이라 하시고 나무를 사셨습니다.

동가홍상이라고 하도 고마워서 그 댁이 누구 댁이냐고 물은 즉 손 선생님 댁이라 합디다. 지금까지 그 일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이 일로만 보아도 선생님은 참 도덕이 높으신 양반이올시다. 

이렇게 돌아가시니 누구나 다 원통할 것입니다.    (천도교회월보, 의암성사 환원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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