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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 공주 주는 같은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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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송옥연 (songok6608@hanmail.net) <br/>2006(포덕147년)/7/4(화) <br/><br/>우금치전적지(牛禁峙戰蹟地) =관리자님 ! <br/>노고가 많으십니다 <br/>본 유적지를 성지 정보에 게게를 바랍니다 <br/>안내 간판이 없고 탑 주변의 벽돌이 떨어 져 가고 있지만 보수 예정 이랍니다 <br/>전국 교인이 알고 있어 야 할 유적지입니다 <br/><br/>@ 우금치전적지(牛禁峙戰蹟地) @ <br/>사적 제387호 충남 공주시 금학동 327-2 면적 51,896㎡ <br/><br/>동학농민군의 최대 격전지였던 장소이다. <br/>동학농민전쟁은 1894년 2월 전라도 고부에서 동학의 접주인 전봉준이 군수의 학정을 <br/>응징하기 위하여 1천여명의 농민을 규합하여 일으킨 민란이 계기가 되었다. 각처에서 <br/>보국안민 척양척왜의 기치를 내걸고 관군을 격파하고 전라도 일대를 휩쓸면서 세력이 <br/>점차 커지게 되고, 집강소라는 일종의 민정기관을 설치하여 폐정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br/><br/>농민봉기는 그해 3월 20일 무진봉기에서 5월 8일까지를 제1차 농민전쟁, 6월 15일~9월14일까지를 집강소단계, 그후 12월 말까지를 제2차 농민전쟁으로 구분한다. 동학군은 충청감영이 있는 <br/>공주를 공격하여 중부지역의 거점으로 삼고자 공주진공을 계획하였다. 이 계획은 향후의 승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싸움이었는데 9월 논산에 머물면서 작전을 지휘하던 전봉준은 공주를 공격목표로 삼고 10월 하순부터 공주지방에 진출하기 시작, 10월 23일~11월 10일까지 이인, 효포, 태치, <br/>대교, 우금치 등지에서 관군과 일군을 맞아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br/><br/>11월 8일부터 수일동안 우금치고개를 탈환하기 위하여 격렬한 싸움을 벌이다 공주진출에 <br/>실패하고 전봉준은 순창에서 재기를 기약하다가 체포되어 처형당하였다. 공주결투의 규모는 <br/>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약 3만명의 동학군과 관군 2,500, 일군 200명 정도가 싸움을 벌였는데 수적으로는 동학농민이 우세하였으나 일∙관군의 연합군은 훈련을 받은 정예군인데다가 <br/>근대무기로 무장하였으므로 동학군의 패배로 끝났다. 40여차례의 접전끝에 끝이 났는데 남은 <br/>동학군은 500명에 지나지 않았다 한다. <br/><br/>이 곳은 동학군의 승패를 가름한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곳으로, 농민이 봉건과 외세에 저항했던 한국 근대사의 한 고비를 이루는 사건의 무대가 되었다. <br/><br/>공주시 / 담당부서 / 문화관광과 / 담당자 / 조진석(☎ 041-840-2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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