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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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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댓글 0건 조회 1,996회 작성일 19-03-2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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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4)
水雲은 세상 사람들이 侍天主를 통하여 새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사람으로서 다시 태어나서 다시개벽을 해줄 것을 바랐고, 海月은 事人如天을 통하여 인간 중심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줄 것을 바랐으며, 義菴은 人乃天을 통하여 인간 존중의 중심에 서는 새 사람으로서 신인간답게 살아가 지상천국을 건설할 것을 바랐다고 생각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잃었는가를 돌아봤어야 했다.
수운은 歎道儒心急의 첫 文章에서‘山河大運 盡歸此道 其源極深 其理甚遠 固我心柱 乃知道味 一念在玆 萬事如意 消除濁氣 兒養淑氣 非徒心至 惟在正心 隱隱聰明 仙出自然 來頭百事 同歸一理 他人細過 勿論我心 我心小慧 以施於人’하라고 하였는데 이는 수운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수운의 심법을 잘못 알고 다시개벽의 세상이 멀어지거나 깨어질가 바 두려운 마음에서 교도들에게 심심한 당부를 담았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이 글의 핵심은 固我心柱 乃知道味 一念在玆 萬事如意 消除濁氣 兒養淑氣 非徒心至 惟在正心 隱隱聰明 仙出自然 來頭百事 同歸一理이고, 교도들에 대한 당부는 他人細過 勿論我心 我心小慧 以施於人이라 할 수 있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세상의 큰 운수가 다 이 도(무위이화하는 천도자연의 이치, 인간본성에로의 복귀, 새로운 세상의 시작)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이 도의 바탕은 깊고 도의 이치가 매우 멀고 깊은 데 있다. 나의 마음의 줏대를(主體性) 굳건히 해야 도의 참맛(진정한 의미)을 알게 될 것이요, 한결같은 생각이 이 도에 있으면 무위이화의 이치대로 모든 일이 뜻대로 될 것이다. 흐린 생명에 기운(욕심이 가득 찬 마음)을 깨끗이 씻고 어린아이와 같은 고운 마음씨(욕심이 없는 순진무구한 마음)를 길러라. 오직 마음을 닦는데 힘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르게 갖는 데 있다. 그렇게 하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총명함으로 자연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모든 일은 이 이치로 함께 돌아갈 것이므로 다른 사람의 보잘 것 없는 잘못을 내 마음속에 두고 시비하지 말고 내 마음의 작은 지혜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도록 하라. 하여 동학의 도인들은 너무 성급하게 군자가 되겠다고 서둘지 말고 차근히 먼저 해야 할 수행을 통하여 도인의 품격을 갖추라고 타일렀다.
공자도『論語』의 여러 곳에서 군자의 품격과 언행에 대하여 자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論語』雍也篇 17章.에서. 사람은 본래 정직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정직하지 않게 사는 것은 요행히 죽음을 면한 것이다./속이고도 살아있는 것은, 죽음(또는 화)을 요행히 모면하고 있을 뿐이다./子曰, “人之生也直, 罔之生也幸而免. 라고 했으며. 『論語』陽貨篇 2에서는,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배우고 익힘에 따라 서로 달라지고 멀어진다./ 생후의 습성에 따라 사는 모습이나 마음 씀씀이가 판이하게 달라진다./子曰 性相近也 習相遠也.라 했는데 여기에서 공자가 말하는 習의 의미는 學習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군자란 호칭은, 공자의 사상이 세상에 알려지기 이전인 중국의 서주·춘추시대에는 귀족에 대한 통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전해온다. 공자는『論語』陽貨篇 3章에서 사람의 인격과 품격의 정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上知와 下愚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子曰 唯上知與下愚 不移. 여기에서 上知는 聖人을, 下愚는 민중을 일컫는다. 공자는‘태어나면서 아는 자를 上인 성인으로, 배워서 아는 자를 군자로, 막히면 물어서 배우는 자는 소인으로, 막혀도 배우지 못하는 자를 민중(大衆/民草)이니 下가 된다.’고 말했다. 중국의 고대 사상에서의 君子(한국에서의 선비와 같은 의미.-오암)는 '성품이 어질고 학식이 높은 '지성인'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 춘추시대 때에 군자는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을 부르는 말로도 쓰였고, 아내가 남편을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禮記』 곡례편(曲禮篇)에 따르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착하고 선량한 언행을 하려는데 힘쓰면서 게으르지 않은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博聞强識而讓 敦善行而不怠 謂之君子. 고 하였으며, 論語』이인편(里仁篇)에서는 군자는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잘 알고, 소인은 어떤 것이 이익인지 잘 안다./子曰 君子 喩於義 小人 喩於利. /소인은 利己立志小人心 군자는 利他自義善行心. 군자는 어찌하면 훌륭한 덕을 갖출까 생각하고, 소인은 어찌하면 편히 살 것인가 생각한다./子曰: 君子懷德, 小人懷土.는 말로 군자를 정의하였다. 또 이 글의 다른 문장에서는 군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말을 어눌하게 하고, 실천에는 민첩해야 한다./子曰 君子欲訥於言, 而敏於行.’고 말했다.
공자가 말하기를‘알기만 하고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 말하고 또 그것을 스스로 실천하는 것이 군자라는 것이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알 뿐 아니라 그것을 말하는 이가 군자이며 실천하는 이가 군자이다./故君子名之, 必可言也, 言之, 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論語』 子路 3章.라 하였으며, 군자는 모든 책임의 소재를 자신에게서 찾으나, 소인은 남(타인)에게서 찾는다. 謝良佐(1050~1130/宋)는, 군자는 돌이켜 자기에게 구하지 않음이 없고 소인은 이와 반대가 된다. 이 때문에 군자와 소인이 나누어지는 것이다/子曰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謝氏曰 君子無不反求諸己, 小人反是. 此君子小人所以分也./『論語』衛靈公篇 20章.
이런 까닭에, 군자는 자기가 갖추어놓은 뒤 남에게 요구하며,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大學章句 傳之九章.라 하였고, 또 이어서 군자가 이른바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한 다음에 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집안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능히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없다./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大學章句 傳之九章.라 하여 자신을 다스리고 돌아봄이 먼저라는 것이다. 또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 제자 안회(顔回)는 공자에게 군자와 소인의 차이를 묻는 대목이 나온다.
공자가, 군자는 언행으로 말하고, 소인은 혀로 말한다./君子以行言 小人以舌言. 고 대답을 했다,
공자는『論語』계씨편(季氏篇)에서, 군자가 마땅히 지켜야 할 세 가지 계율로서 '군자삼계'(君子三戒)를 제시하였다. 공자께서 말하기를 군자에게는 경계해야 할 일이 세 가지 있으니 젊을 때는 혈기가 잡히지 않은지라 경계할 것이 여색이고, 장성하여 혈기가 강해지면 경계할 것이 싸움이며, 나이가 들어 혈기가 쇠진하면 경계할 것이 물욕이다./子曰 君子有三戒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長也 血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在得. 라 하였다. 또 계씨편에서 또 군자가 두려워해야 할 세 가지로 '군자삼외'(君子三畏)가 있다. 공자께서 말하기를 군자에게는 두려운 것이 세 가지 있으니 하늘의 명을 두려워하고, 대인(자신보다 학덕이 높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한다./子曰 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이라고 말하고 있다.
공자께서 군자의 실천방법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군자는 먹는 것에 대해 배부름을 추구하지 않고, 거처하는데 편안함을 얻으려하지 않는다. 일을 할 때는 민첩하고, 말을 할 때는 신중하고, 도의를 아는 사람에게서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는다. 이런 사람이라면 학문을 좋아한다고 할 만하다./子曰,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論語』 學而篇 14장.
군자란 공자의 이상적인 인물상이다. 노자의 이상형은 성인을 내세웠고, 장자는 대장부를, 맹자는 진인(眞人)을 가장 이상적인 인물의 상징인물로 내세웠다. 공자가 말하기를 앎에는 세 단계가 있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生而知之)는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자(學而知之)는 그 다음이고,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배우지 아니하는 자는 최하(困而不學 民斯爲下矣 /계씨편, 9장)라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生而知之)가 곧 성인인데, 공자는 스스로에 대해 말하길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안 사람이 아니다./我非生而知之者/述而篇, 19章. 라고 했다. 즉 스스로 성인이 아니라고 말한 셈이다. 공자에게 있어 배움이란 그 자체가 道이자 人道였기 때문이다. 공자에게 군자(君子)란, 이미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배움의 길 위에서 끊임없이 스스로 갈고 다듬어가는 존재, 다시 말해 학생(學生)을 말하는 것이었다.
중국 고전의 번역가 임동석이 해설한 『국어』 노어상(魯語上)편에는 노나라의 장수였던 조귀(曹劌)의 말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군자는 다스리기(政治)에 힘쓰고, 소인은 노동에 힘쓴다./君子務治 小人務力. 군자는 당시의 통치계급을 가리키고 소인은 육체노동에 종사하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춘추 말년 이후 군자는 점차 도덕수양을 갖춘 사람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禮記』 곡례편에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선한 행동에 힘쓰면서 게으르지 않은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군자와 소인 또는 천인(賤人) 역할 또는 임무를 다르게 표현하였다.
『左傳』에서는 君子는 마음으로 수고하고, 소인은 노동력으로 수고하도록 하는 것이 선왕의 제도이다./君子勞心 小人勞力 先王之制也(左傳/襄公 9년). 또 다른 글에서는 君子는 禮를 행함에 힘쓰고, 小人은 노동에 盡力함에 힘쓴다./君子勤禮 小人盡力(左傳/成公 13년) /다움 백과와 관련 자료들에서 부분 발췌하여 재정리함.
위키 백과사전의 설명에 의하면, 사전적 의미로서의 도(道)란, 끝(首)을 향해 서서히 걸어가는 모습이라 한다. 끝을 향해 쉬엄쉬엄 걸어간다. 는 의미는 사물의 근원적 이치를 밝히기 위하여 공부한다는 것을 말한다. 수(首)는 시초. 먼저, 앞, 선두(先頭). 머리. 우두머리. 임금. 첫째, 으뜸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가진 글자이다. 사물의 근원적 이치를 밝힌다는
여우가 죽을 때면 본디 살던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首丘初心.는 것을 이해한다면‘근본을 잊지 않음’이란 비유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도의 일반 사전적인 의미는‘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또는‘깊이 깨우친 이치'인데, 유가와 도가 등의 동양 종교사상의 전통에서 도는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즉, 도란 천지만물에 선행해서 존재한 것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해 내는 근원이며, 우주를 지배하는 대조화의 이법 즉 진리인 것으로 본다. 불교, 힌두교 등의 동양 종교사상의 전통에서는 도는 기본적으로 진리에 이르는 길을 의미하는데, 이 뜻에서 나아가 진리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동양인의 윤리 도덕의 근저에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 내지 우주의 이법 또는 그 이법을 깨닫는 길 또는 그 이법과 합치하는 길로서의 도에 대한 사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도교, 불교, 유교 등의 해석에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도교에서는 도가 신격화되어서 최고신인 원시천존(元始天尊)으로 되었으며, 불교에서는 대부분의 경우에서 길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데 도가의 영향을 받아 특히 선종에서는 진리 자체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도에 대한 사상은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 동양인의 세계관이나 역사관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흥미로운 주제이다
수운의 핵심적인 사상을 요약한다면, 동학. 심학. 무극대도라 할 수 있다. 이런 용어들로 설명되는 수운의 핵심적인 사상을 법설을 통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수덕문에서
인의예지는 옛 성현들의 가르친 것이지만, 수심정기는 내가 다시 정한 것이다./仁義禮智 先聖之所敎 修心正氣 惟我之更定. 라 말씀하셨고, 論學文에서는 우리 도는 무위이화이다.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하고 한울님의 성품을 거느리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자연한 가운데 화해나는 것이 우리 도의 근본이다./曰吾道無爲而化矣 守其心正其氣 率其性受其敎 化出於自然之中也 하셨다. 그런데 이들 법설에서 강조된 ‘修心正氣/守心正氣’의 구체적인 의미는
修心은 固我心柱 乃知道味 一念在玆 萬事如意의 마음을 갈고 닦음과 지킴을 말하는 것이고, 正氣는 消除濁氣 兒養淑氣 非徒心至 惟在正心 隱隱聰明 仙出自然의 기운을 바르게 세워 오래도록 지켜 행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來頭百事 同歸一理이고, 修心正氣의 結果後에 道人들의 對處는 他人細過 勿論我心 我心小慧 以施於人 하라는 것이다.
수운의 법설인 수덕문에서 강조한, 仁義禮智 先聖之所敎란 맹자의 ‘存心養性’이란 인간의 본심인 사단의 보존을 통해 인간이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본성인 仁義禮智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修心正氣 惟我之更定은 맹자의 存心養性(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知天矣)은 수운의 언어로 修心正氣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修心은 存心과 같고 正氣는 正 正氣이기 때문에 養性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 存心養性 - 맹자가 제시한 도덕 수양에 관한 명제로 存養이라고도 한다. 『孟子』 盡心章 上 1.에서 "자기의 본심을 간직하고 자신의 본성을 기르는 것이 바로 하늘을 안다는 것이다./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知天矣" 라고 한 데서 비롯한다. 여기서 심은 惻隱, 羞惡, 辭讓, 是非의 4가지 마음으로 四端이라 하며, 성은 천부의 선한 성을 가리킨다. “그 마음을 간직하고 그 성품을 기르는 것은 그것이 하늘을 섬기는 것이 된다. 일찍 죽고 오래 사는 것에 상관없이 몸을 닦아 기다리는 것은 그것이 곧 명을 세우는 것이다” 또 『中庸』에서도 “하늘이 주신 것이 성품/天命之謂性"이라 했고, 맹자는 "마음을 간직하고 성품을 기르는 것이 곧 하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성(性)은 천부(天賦)의 선한 성을 가르친다. 존심양성이란 인간의 본심인 사단의 보존을 통해 인간이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본성인 仁義禮智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맹자는 인간이 가진 본심을 보존하고 선한 성을 기르면 궁극적으로 도덕적 완성자인 군자가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天命을 받들어 어기지 않고, 하늘을 섬기는 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天人合一思想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보았으며 宋代 주자학이나 명대 양명학의 주요한 근거로서 활용되었다
조선에서도 인격을 다듬는 함양방법으로써 ‘순수한 마음의 힘 기르기’인 존양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조선 말기의 학자인 南塘 韓元震(1682~1751)은 존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존양(存養)은 이기적 욕구의 노예가 되는 탁하고 조잡한 마음의 기질을,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맑고 순수한 기질로 변화시키는 일종의 ‘순수한 마음의 힘 기르기’ 공부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런 공부 방법은 사람의 마음의 근본은 본래부터 맑고 순수하며, 사람의 본성은 본래부터 선(善)하다는 유학의 성선설적 인간관에 기초한 것이다. 그런데 특히 현대인들에게 존양은 마음뿐만 아니라 이것이 이어지는 몸을 양생하는 방법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상당수는 우리가 지나치게 일에 몰두하느라, 우리의 생명이 다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중국의 명나라 사람인 여곤(呂坤 1536-1618)은 일찍이 ‘달팽이는 껍질 속에 숨고, 뜨거운 태양은 해를 지나도 수척해지지 않는다./蝸藏於殼, 烈日經年而不枯./『呻吟語』라는 말로 사람의 생명에는 반드시 위대한 축양(蓄養), 즉 모으고 기르는 것이 있어야 크게 될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옛 사람들은 생명의 리듬을 파악하고 심신이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 즉 양생을 위해 항상 힘썼으며 언제 어디서나 노력했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의 성패를 분명하게 알려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한가로운 마음을 가져야 하고, 아무리 괴로워도 양생을 통해 천수를 누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 마음, 즉 양심을 잃지 말고 그대로 간직하여, 그 성품, 즉 하늘이 주신 본성을 키워 나간다는 의미의 존양을 생각하며, 욕심으로 몸을 괴롭힐 것이 아니라, 생명의 리듬을 잘 유지해나가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 다음백과와 관련 자료들의 종합 /필자의 미발표 원고. 自我開闢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에서.
註 00 ; 水雲은 歎道儒心急/교도(도인 또는 도유)들의 마음이 조급함을 탄식함/에서 消除濁氣 兒養淑氣라 하였는데, 兒養淑氣란 存養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존양이란『孟子』盡心章 上篇에 나오는 말로, 나 자신을 다스리는 수신의 방법으로 진심(塵心)을 다해 본심을 보존하고 본성을 배양한다. 는 존심양성(存心養性)을 말한다. 그 마음, 즉 양심을 잃지 말고 그대로 간직하여, 그 성품, 즉 하늘이 주신 본성을 키워 나가라는 뜻이다.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 정리함.
■固我心柱 乃知道味 一念在玆 萬事如意 消除濁氣 兒養淑氣 非徒心至 惟在正心/歎道儒心急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나의 마음의 줏대를(主體性) 굳건히 해야 도의 참맛(진정한 의미)을 알게 될 것이요, 한결같은 생각이 이 도에 있으면 무위이화의 이치대로 모든 일이 뜻대로 될 것이다. 흐린 생명에 기운(욕심이 가득 찬 마음)을 깨끗이 씻고 어린아이와 같은 고운 마음씨(욕심이 없는 순진무구한 마음)를 길러라. 오직 마음을 닦는데 힘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르게 갖는 데 있다.
註 00 ; 『呻吟語』- 한 국가를 경영하는 요체를 밝힌 책. 인간의 마음, 인간의 도리, 도를 논하는 방법, 국가 공복의 의무, 세상의 운세 그리고 성인과 현인, 국가를 경영하는 요체 등의 주제로 나뉘어 있다.『신음어(呻吟語)』는 여곤(呂坤)이 정치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여러 문제로부터 일상으로 흔히 있는 모든 문제에 이르기까지의 우려(憂慮)·분만·내성(內省)·위구(危懼)·대책(對策)·신념(信念) 등을 솔직하게 피력한 것으로서, 단편적인 이야기가 집적된 것이면서도 저자의 인품이 여실히 배어 나온다고 하겠다. 그 집필의 동기는 저자의 서문에 보면 이러하다.
“신음이란 병자의 앓는 소리다. 신음어란 병이 들었을 때의 아파하는 말이다. 병중의 아픔은 병자만이 알고 남은 몰라준다. 그 아픔은 병들었을 때에만 느끼고 병이 나으면 곧 잊어버린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약질(弱質)이어서 병에 잘 걸렸다. 앓고 있을 때 앓는 소리를 하게 되면, 그 괴로움을 기록하여 후회하고 조심하면 다시는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심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병에 걸리고, 또 그 괴로움을 겪는다.”
이 책이 처음으로 간행된 것은 만력(萬曆) 21년이었던 것 같으나, 얼마 되지 않고 호평을 받아 각지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출판이 행하여졌다. 그러나 내용의 선택이 불충분하기도 하고, 교정이 부정확하기도 해서, 여곤 자신이 첨삭(添削)을 가하기도 하고, 원고를 바꾸기도 하고, 약간의 속편(續編)을 더하기도 하여, 만력 44년에 『신음어적(呻吟語摘)』이라고 제(題)하여 간행하였다.
그 내용은 내외(內外) 2편에 6권으로 되어 있다. 6권은 예·악·사·어·서·수(藝·樂·射·御·書·數)의 6집(六集)인데, 내편에서 예집(藝集)은 성명(性命)·존심(存心)·윤리(倫理)·담도(談道)로 나누어졌다. 악집(樂集)은 수신(修身)·문학(問學)이며, 사집(射集)은 응무(應務)·양생(養生)으로 분류, 총 3권으로 이루어졌다. 또 외편에서 어집(御集)은 천지(天地)·세운(世運)·성현(聖賢)·품조(品藻)이며, 서집(書集)은 치도(治道)의 한 부분으로 되었으며 수집(數集)은 인정(人情)·물리(物理)·광유(廣喩)·사장(詞章)으로 구분하고 3권으로 이루어 졌다./ 자유문고 고전에서 배우다. 에서 발췌.
또 水雲은 동학을 우리도(吾道) 또는 이 도(此道)라고 지칭하면서 座箴과 修德文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먼저 座箴에서는,
吾道博而約 不用多言義 別無他道理 誠敬信三字
這裏做工夫 透後方可知 不怕塵念起 惟恐覺來知/座箴.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우리 도(동학)의 깊은 뜻은 넓으나 간략하게 설명할 수 있어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이해시키는데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성․ 경․ 신 세 가지를 온전히 행하는 데 온 힘을 다하라.
성․ 경․ 신을 體行하는 속에서 공부하여 터득한 뒤에라야 마침내 모든 이치를 알 것이니, 잡념이 일어나는 것을 무서워하지(아랑곳 하지) 말고 오직 동학의 참다운 이치를 깨우쳐 「참다운 앎」에 이르게 되는(깨닫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하지마라. 라고 간략하게 설명하고,
註 00 ; 不怕 - 무서워하다. 두려워하다. 또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註 00 ; 아랑곳하다 - 흔히 ‘않다’와 같은 부정어와 함께 쓰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일이나 사정에 대하여 관심을 갖거나 참견하는 것을 말한다.
修德文에서 誠敬信을 體行하는 올바른 길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大抵此道 心信爲誠 以信爲幻 人而言之 言之其中 曰可曰否 取可退否 再思心定 定之後言 不信曰信 如斯修之 乃成其誠 誠與信兮 其則不遠 人言以成 先信後誠 吾今明諭 豈非信言 敬以誠之 無違訓辭 ⑫/修德文.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대체로 이 도(동학)는 마음으로 믿는 것을 정성이라 한다. 믿을 신자를 풀어 보면, 사람의 말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말에는 옳고 그름이 담겨 있는 데, 그 중에서 옳은 말은 취하고 그른 말은 버리어 거듭거듭 생각하여 마음을 정하라. 한번 마음을 정한 뒤에는 다른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믿음이니 이와 같이 닦아야 마침내 그 정성에 이를 수 있다. 정성과 믿음이여, 그 정성과 믿음이 멀지 아니하다. 사람의 말로 이루었으니 먼저 믿고 뒤에 정성을 다하라. 내가 지금 분명하게 가르치노니 어찌 미더운 말이 아니겠는가. 공경하고 정성들여 가르치는 말에 어김이 없도록 노력하라. 는 것을 당부하고 있다.
子貢이 정(政/政治) 즉 나라를 일으키고 지키는 중요한 핵심을 묻는 질문에 孔子는 '信, 食, 兵'이라고 대답했다. 信은 믿음이고, 食은 식량이며, 兵은 국방력을 뜻한다. 『論語』顔淵篇에 나오는 이야기로, 백성을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요체는 믿음을 주는 것, 잘 먹여 주는 것, 외세로부터의 위험을 막아 주는 것 등 세 가지라는 의미이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자공이 정(政/政治 또는 政事)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식(食)을 족(足)하게 하고 병(兵)을 족(足)하게 하고, 민(民)이 신(信)하게 하는데 있다.’라고 답하자 자공이 다시 묻기를‘반드시 부득이하여 버리려하면 이 삼자(三者)에서 무엇을 먼저 버릴 수 있을까요.’하자, 답하기를 병을 버려야 할 것이다. 자공이 다시 또 묻기를 반드시 부득이하여 또 버리게 되면 이 둘 중(二者)에서 무엇을 먼저 버릴 수 있을까요.’하자, 또 대답하기를 식을 버려야 할 것이다. 예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게 되면 죽음은 있는 것이지만,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는 존립할 수가 없다.”/여기에서 足食 足兵 民信이란, 식량을 풍족하게 하는 것, 군비를 넉넉히 하는 것, 백성들이 믿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 /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 何先 曰去兵 子貢曰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 何先 曰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論語』顔淵篇 7章.
이 글에서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대를 충분히 하고,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라고 대답하면서 食, 兵, 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자공이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가장 먼저 兵이라고 하면서 나라를 지킬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포기해야 할 것으로 食을 들었다. 자고로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기고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잘만 먹여주면 불평 없이 따르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식량을 오히려 信(믿음)보다도 가볍게 여기면서,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올바로 서지 못 한다" 고 말하고 있다.
"만약 셋 중에서 덜 중요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계속되는 제자의 질문에 공자는 주저 없이 '병(兵)'이라 말씀하신다. 나라를 지키는 요체가 국방력인데 그것을 가장 먼저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리시겠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식(食)이라고 대답했다. 자고이래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기고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잘 먹여 주면 불평 없이 따르는 법인데도 공자는 오히려 그것을 신(信)보다 가벼이 여겼던 것이다.
신은 신뢰, 곧 상대에 대한 믿음이다. 백성과 백성 사이에도 신의가 있어야 하지만 백성과 통치자 사이에는 더욱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사실 믿음만 있으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존경하고 믿을 수만 있다면 굶음을 참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맨손으로라도 사나운 외적을 내칠 수도 있다.
공자가 말미에 저 유명한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소신을 밝힘으로써 모름지기 지도자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안연이 군자가 갖추어야 할 인(仁)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하고 있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안연이 인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기심을 극복해서 예로 돌아가는 것을 인이라 할 수 있다. 하루만이라도 이기심을 극복하여 예를 회복한다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을 실천하는 것은 자기 몸에 달린 것이지, 남에게 달린 것이겠는가?” 안연이 “청컨대 그 실천 항목을 묻겠습니다.” 하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예가 아니면 보지를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도 말아라.” 그러자 안연이 말하기를, “제가 비록 똑똑하지는 못하지만 이 말씀을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論語』顔淵篇.
이 대화의 핵심적인 의미는, 이기주의를 극복해서 공동체의 목표를 다 같이 지향하기 위하여 공동체 전체의 질서와 조화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의 정신. 즉 예가 아니면 아예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할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심을 받아드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인간중심주의의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의 변전을 통하여 실천에 바로 옮기는 그러한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며 지행일치의 근본이치를 깨닫는 순간, 바로 실천해서 습관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는 것이다./현대인을 위한 고전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3. 동양 윤리 사상의 흐름
동양 윤리 사상은 중국에서 비롯된 유교, 도가 · 도교, 그리고 인도에서 기원하는 불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흔히 삼교(三敎)로 불리는 유 · 불 · 도 사상은 대체로 기원전 6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구체화되었으며, 역사적 조건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동양의 여러 나라에 수용되어 다양한 변용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교 사상은 중국의 춘추 시대라는 혼란기에 형성되었다. 주(周)나라의 인문주의적 전통을 계승한 공자는 인간의 도덕성을 회복하고 안정된 사회를 이루고자 인(仁)의 사상을 제시하였고, 도덕 정치로서 덕치(德治)와 예치(禮治)를 강조하였다. 그의 사상을 계승한 맹자(孟子)와 순자(荀子)는 전국 시대의 혼란기 속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를 통해 자신들의 인성론과 사회사상을 제시하였다. 노자(老子)와 장자(莊子)로 대표되는 도가사상은 유교의 인위적인 세계관을 비판하고 무위자연의 삶을 강조하였다. 만물의 근원인 도(道)를 중심으로 사상을 전개한 이들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을 이상으로 여겼으며, 이를 통해 평등한 인간관을 지향하였다.
춘추 전국 시대에는 유가와 도가 외에도 묵자, 고자, 한비자 등 여러 사상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들은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려 나가는 이치나 개인의 처세 등에 관한 나름의 학설을 주장하면서 당시의 혼란한 사회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들의 사상은 이후 동양 사상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진(秦)나라의 통일 이후, 분서갱유로 한때 여러 사상들이 위축되었지만, 한(漢)나라 이후 유교는 국학으로 자리 잡아 크게 융성하였다. 한(漢) 대에는 유교 경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훈고학적인 경향도 두드러졌다. / 관련 자료들에서 일부 발췌하여 재정리함.
송(宋)나라 때 유교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였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치밀한 탐구를 통해 실천적 수양을 강조하는 학문적 경향이 태동하였고, 여러 학자들의 지적 탐구를 거쳐 주희(朱熹)에 의해 성리학으로 집대성되었다. 명(明) 대에 이르러서는 성리학과 구별되는 양명학이 왕수인(王守仁)에 의해 체계화되었으며, 이러한 새로운 유학 사상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전파되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
청(淸) 대에 이르러 성리학과 양명학은 공허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러한 비판 속에서 실학(實學)이 태동하였다. 실학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사실을 밝히고자 하는 학문적 입장에서 서양 학문에 대한 비판적 수용과 더불어 전통 사상에 대한 비판적 계승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였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유교를 비롯한 동양의 윤리 사상은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드러나는 폐해를 극복하는 데 이바지하는 한편, 인류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사상으로서 새롭게 변모하며 동양을 넘어 세계 사상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한(漢) 대에 이르러 황로학(黃老學)이 대표적인 도교 학파로 대두하였고, 후한(後漢) 시대에 이전의 신선 사상과 도가 사상을 수용한 오두미교(五斗米敎)가 체계를 갖추면서 도교가 본격적으로 민간에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위 · 진(魏晉) 시대의 혼란기를 맞아 일신의 안위를 도모하고 은둔 생활을 즐긴 청담(淸談) 사상도 널리 퍼졌다. 도교는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여러 나라에 수용되어 국가적인 의식으로 행해지기도 하였고, 민간의 풍속과 결합하여 일상생활에 녹아들었다.
인도 문명에서 비롯된 불교가 중국을 비롯한 동양 세계에 전래한 시기는 후한 시대였다. 인도 전통 사상에 대한 비판적 수용을 통해 구체화된 석가모니의 불교 사상은 소승 불교 시대를 거치면서 경전 체계가 구체화되는 등 이론화되었다. 그리고 대승 불교가 등장하여 개인의 해탈은 물론 대중의 구제에 관한 관심과 실천이 체계화되었으며, 이론적으로도 공(空) 사상이 확립되었다. 중국에 수용된 불교는 경전 번역 사업과 더불어 경전에 대한 재해석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종파로 나뉘어 발전하였다. 특히, 현세주의적 성격이 강한 중국과 한국 등에 수용되면서 불교는 동양의 전통 사유 체계에 변화를 가져왔고,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는 데 공헌하였다./ 관련 자료들에서 부분 발췌.
註 00 ; 春秋戰國時代 - 추전국시대란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통틀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춘추시대는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5세기에 이르는 고대 중국의 변혁기이고, 전국시대는 춘추 시대 이후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에 걸친 혼란기를 말한다. 전국이라는 이름은 이 시기의 역사를 다룬 고대의 역사서 “전국책(戰國策)”에서 유래하였다.
註 00 ; 분서갱유(焚書坑儒) : 진시황이 유가의 정치 비판을 봉쇄하기 위해 실용적인 서적을 제외한 모든 책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암매장한 사건을 말한다.
註 00 ; 훈고학(訓古學) : 경서의 글자와 구절을 충실하게 해명함으로써 경서 본래의 사상을 이해하고자 한 학문이다.
중국 고대 사상에서 도가사상의 특징은, 자연은 도법자연(道法自然)에서 나온 것으로 외부의 간섭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을 따른다는 것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뜻이다. 이러한 도는 천하 만물의 본성이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무위는 도항무위(道恒無爲)에서 나온 말로 스스로의 본성을 따라서 저절로 사는 모습을 말한다. 무위의 바탕은 하늘과 땅이 천하 만물에 대하여 조건 없이 주는 ‘사랑’과 ‘순수한 앎‘이다. 노자는 하늘과 땅이 그러하듯이 언제나 타율보다는 자율, 규범보다는 스스로의 본성을 따르게 하여 나라를 안정시키고 다스리는 것을 택했다. 따라서 도가에서 말하는 성인은 천지의 덕을 본받아서 백성들에게 무위로 행하고 부모처럼 무언(無言)으로 가르치는 어른이며, 이러한 성인이 사회의 지도층이 될 때 비로소 사회는 안정되고, 백성들은 순박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간다고 보았다. 또한 노자는 세상에서는 무위에 도달하려면 본래의 족함과 멈춤을 알라고 하며 /지족지지(知足知止), 이로써 점차 우리가 보통으로 알고 있는 이름과 수많은 관념이라는 인식의 틀로부터 벗어나게 되는데, 이를 무명(無名)이라 했다. 무명은 사람들이 말하는 견성이자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 관련 자료들에서 일부 발췌하여 재정리함.
도가에서 도(道)는 우주의 근원이고, 천지 만물은 모두 이것으로부터 말미암는다고 규정한다. 그래서 도를 ‘천하의 어머니’로 비유한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공평한 사랑을 베풀듯이, 도는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는다.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도 앞에서 평등한 가치를 지니며, 그 어떤 것도 버릴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자는 보통 사람들이 귀하고 천하거나, 선하고 악하다고 나누는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도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가치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귀천, 선악 등은 ‘도에서 함께 나왔으나 이름을 달리한 것’이고, 유교에서 강조하는 도덕이나 예(禮)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고 상대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註『00 ; “이름이 없음은 하늘과 땅의 시작이요, 이름이 있음은 온갖 것들의 어미이다. 따라서 욕심을 없앰으로써 그 오묘함을 보고 욕심을 가짐으로써 그 가장자리(울타리 또는 경계선)를 본다. 이 두 가지는 함께 나왔으나 이름을 달리한 것이니 함께 일컬어 신비하다고 한다. 신비하고 또 신비하니 뭇 오묘함이 나오는 문이로다.”(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此兩者同出, 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老子』1章. 體道, P.27.)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요 부드러움(유약함)이 도의 쓰임이다.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이 다 유에서 나왔고, 유는 무에서 나왔다.”(反者, 道之動, 弱者, 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老子』40章. 去用. P.119.) 나아가 노자는 천지와 더불어 인간이 본보기로 삼아야 할 궁극적인 표준인 도는 항상 무위하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 규범도 무위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노자는 “성인은 무위로써 일을 처리하고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한다.”고 하였고, 무위의 가르침을 정치의 원리로 활용하여 “무위를 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노자는 유교의 예치(禮治)를 인위의 정치라고 보고, “예라는 것은 진실과 신의가 엷어진 것이요, 혼란의 근원”이라고 지적하였다. 인의와 같은 도덕은 대도가 무너진 뒤에 있게 되는 것이고, 인의도 모두 인위라고 비판하였다. 무위자연을 강조하는 도가의 세계관에서는 유교에서 제시하는 인간 중심의 사고를 부정하고,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도덕을 비판한다. 인간의 올바른 삶을 이끌기 위해 만든 인위적인 예악(禮樂)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유해하다고 본 것이다.
도가 사상은 인간이 타락하고 도덕이 타락한 것은 순박한 경지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였다. “도(道)를 잃자 덕(德)이 있게 되었고, 덕이 없어지자 인(仁)이 생겨났으며, 인이 없어지자 의(義)가 생겨났고, 의가 없어지자 예(禮)가 생겨났다. 무릇 예란 충신이 희박해지므로 해서 나타났으니 환란의 시초다(“도덕경”38장).”
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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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雲은 세상 사람들이 侍天主를 통하여 새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사람으로서 다시 태어나서 다시개벽을 해줄 것을 바랐고, 海月은 事人如天을 통하여 인간 중심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줄 것을 바랐으며, 義菴은 人乃天을 통하여 인간 존중의 중심에 서는 새 사람으로서 신인간답게 살아가 지상천국을 건설할 것을 바랐다고 생각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잃었는가를 돌아봤어야 했다.
수운은 歎道儒心急의 첫 文章에서‘山河大運 盡歸此道 其源極深 其理甚遠 固我心柱 乃知道味 一念在玆 萬事如意 消除濁氣 兒養淑氣 非徒心至 惟在正心 隱隱聰明 仙出自然 來頭百事 同歸一理 他人細過 勿論我心 我心小慧 以施於人’하라고 하였는데 이는 수운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수운의 심법을 잘못 알고 다시개벽의 세상이 멀어지거나 깨어질가 바 두려운 마음에서 교도들에게 심심한 당부를 담았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이 글의 핵심은 固我心柱 乃知道味 一念在玆 萬事如意 消除濁氣 兒養淑氣 非徒心至 惟在正心 隱隱聰明 仙出自然 來頭百事 同歸一理이고, 교도들에 대한 당부는 他人細過 勿論我心 我心小慧 以施於人이라 할 수 있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세상의 큰 운수가 다 이 도(무위이화하는 천도자연의 이치, 인간본성에로의 복귀, 새로운 세상의 시작)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이 도의 바탕은 깊고 도의 이치가 매우 멀고 깊은 데 있다. 나의 마음의 줏대를(主體性) 굳건히 해야 도의 참맛(진정한 의미)을 알게 될 것이요, 한결같은 생각이 이 도에 있으면 무위이화의 이치대로 모든 일이 뜻대로 될 것이다. 흐린 생명에 기운(욕심이 가득 찬 마음)을 깨끗이 씻고 어린아이와 같은 고운 마음씨(욕심이 없는 순진무구한 마음)를 길러라. 오직 마음을 닦는데 힘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르게 갖는 데 있다. 그렇게 하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총명함으로 자연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모든 일은 이 이치로 함께 돌아갈 것이므로 다른 사람의 보잘 것 없는 잘못을 내 마음속에 두고 시비하지 말고 내 마음의 작은 지혜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도록 하라. 하여 동학의 도인들은 너무 성급하게 군자가 되겠다고 서둘지 말고 차근히 먼저 해야 할 수행을 통하여 도인의 품격을 갖추라고 타일렀다.
공자도『論語』의 여러 곳에서 군자의 품격과 언행에 대하여 자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論語』雍也篇 17章.에서. 사람은 본래 정직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정직하지 않게 사는 것은 요행히 죽음을 면한 것이다./속이고도 살아있는 것은, 죽음(또는 화)을 요행히 모면하고 있을 뿐이다./子曰, “人之生也直, 罔之生也幸而免. 라고 했으며. 『論語』陽貨篇 2에서는,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배우고 익힘에 따라 서로 달라지고 멀어진다./ 생후의 습성에 따라 사는 모습이나 마음 씀씀이가 판이하게 달라진다./子曰 性相近也 習相遠也.라 했는데 여기에서 공자가 말하는 習의 의미는 學習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군자란 호칭은, 공자의 사상이 세상에 알려지기 이전인 중국의 서주·춘추시대에는 귀족에 대한 통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전해온다. 공자는『論語』陽貨篇 3章에서 사람의 인격과 품격의 정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上知와 下愚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子曰 唯上知與下愚 不移. 여기에서 上知는 聖人을, 下愚는 민중을 일컫는다. 공자는‘태어나면서 아는 자를 上인 성인으로, 배워서 아는 자를 군자로, 막히면 물어서 배우는 자는 소인으로, 막혀도 배우지 못하는 자를 민중(大衆/民草)이니 下가 된다.’고 말했다. 중국의 고대 사상에서의 君子(한국에서의 선비와 같은 의미.-오암)는 '성품이 어질고 학식이 높은 '지성인'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 춘추시대 때에 군자는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을 부르는 말로도 쓰였고, 아내가 남편을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禮記』 곡례편(曲禮篇)에 따르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착하고 선량한 언행을 하려는데 힘쓰면서 게으르지 않은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博聞强識而讓 敦善行而不怠 謂之君子. 고 하였으며, 論語』이인편(里仁篇)에서는 군자는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잘 알고, 소인은 어떤 것이 이익인지 잘 안다./子曰 君子 喩於義 小人 喩於利. /소인은 利己立志小人心 군자는 利他自義善行心. 군자는 어찌하면 훌륭한 덕을 갖출까 생각하고, 소인은 어찌하면 편히 살 것인가 생각한다./子曰: 君子懷德, 小人懷土.는 말로 군자를 정의하였다. 또 이 글의 다른 문장에서는 군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말을 어눌하게 하고, 실천에는 민첩해야 한다./子曰 君子欲訥於言, 而敏於行.’고 말했다.
공자가 말하기를‘알기만 하고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 말하고 또 그것을 스스로 실천하는 것이 군자라는 것이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알 뿐 아니라 그것을 말하는 이가 군자이며 실천하는 이가 군자이다./故君子名之, 必可言也, 言之, 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論語』 子路 3章.라 하였으며, 군자는 모든 책임의 소재를 자신에게서 찾으나, 소인은 남(타인)에게서 찾는다. 謝良佐(1050~1130/宋)는, 군자는 돌이켜 자기에게 구하지 않음이 없고 소인은 이와 반대가 된다. 이 때문에 군자와 소인이 나누어지는 것이다/子曰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謝氏曰 君子無不反求諸己, 小人反是. 此君子小人所以分也./『論語』衛靈公篇 20章.
이런 까닭에, 군자는 자기가 갖추어놓은 뒤 남에게 요구하며,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大學章句 傳之九章.라 하였고, 또 이어서 군자가 이른바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한 다음에 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집안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능히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없다./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大學章句 傳之九章.라 하여 자신을 다스리고 돌아봄이 먼저라는 것이다. 또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 제자 안회(顔回)는 공자에게 군자와 소인의 차이를 묻는 대목이 나온다.
공자가, 군자는 언행으로 말하고, 소인은 혀로 말한다./君子以行言 小人以舌言. 고 대답을 했다,
공자는『論語』계씨편(季氏篇)에서, 군자가 마땅히 지켜야 할 세 가지 계율로서 '군자삼계'(君子三戒)를 제시하였다. 공자께서 말하기를 군자에게는 경계해야 할 일이 세 가지 있으니 젊을 때는 혈기가 잡히지 않은지라 경계할 것이 여색이고, 장성하여 혈기가 강해지면 경계할 것이 싸움이며, 나이가 들어 혈기가 쇠진하면 경계할 것이 물욕이다./子曰 君子有三戒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長也 血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在得. 라 하였다. 또 계씨편에서 또 군자가 두려워해야 할 세 가지로 '군자삼외'(君子三畏)가 있다. 공자께서 말하기를 군자에게는 두려운 것이 세 가지 있으니 하늘의 명을 두려워하고, 대인(자신보다 학덕이 높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한다./子曰 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이라고 말하고 있다.
공자께서 군자의 실천방법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군자는 먹는 것에 대해 배부름을 추구하지 않고, 거처하는데 편안함을 얻으려하지 않는다. 일을 할 때는 민첩하고, 말을 할 때는 신중하고, 도의를 아는 사람에게서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는다. 이런 사람이라면 학문을 좋아한다고 할 만하다./子曰,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論語』 學而篇 14장.
군자란 공자의 이상적인 인물상이다. 노자의 이상형은 성인을 내세웠고, 장자는 대장부를, 맹자는 진인(眞人)을 가장 이상적인 인물의 상징인물로 내세웠다. 공자가 말하기를 앎에는 세 단계가 있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生而知之)는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자(學而知之)는 그 다음이고,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배우지 아니하는 자는 최하(困而不學 民斯爲下矣 /계씨편, 9장)라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生而知之)가 곧 성인인데, 공자는 스스로에 대해 말하길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안 사람이 아니다./我非生而知之者/述而篇, 19章. 라고 했다. 즉 스스로 성인이 아니라고 말한 셈이다. 공자에게 있어 배움이란 그 자체가 道이자 人道였기 때문이다. 공자에게 군자(君子)란, 이미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배움의 길 위에서 끊임없이 스스로 갈고 다듬어가는 존재, 다시 말해 학생(學生)을 말하는 것이었다.
중국 고전의 번역가 임동석이 해설한 『국어』 노어상(魯語上)편에는 노나라의 장수였던 조귀(曹劌)의 말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군자는 다스리기(政治)에 힘쓰고, 소인은 노동에 힘쓴다./君子務治 小人務力. 군자는 당시의 통치계급을 가리키고 소인은 육체노동에 종사하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춘추 말년 이후 군자는 점차 도덕수양을 갖춘 사람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禮記』 곡례편에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선한 행동에 힘쓰면서 게으르지 않은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군자와 소인 또는 천인(賤人) 역할 또는 임무를 다르게 표현하였다.
『左傳』에서는 君子는 마음으로 수고하고, 소인은 노동력으로 수고하도록 하는 것이 선왕의 제도이다./君子勞心 小人勞力 先王之制也(左傳/襄公 9년). 또 다른 글에서는 君子는 禮를 행함에 힘쓰고, 小人은 노동에 盡力함에 힘쓴다./君子勤禮 小人盡力(左傳/成公 13년) /다움 백과와 관련 자료들에서 부분 발췌하여 재정리함.
위키 백과사전의 설명에 의하면, 사전적 의미로서의 도(道)란, 끝(首)을 향해 서서히 걸어가는 모습이라 한다. 끝을 향해 쉬엄쉬엄 걸어간다. 는 의미는 사물의 근원적 이치를 밝히기 위하여 공부한다는 것을 말한다. 수(首)는 시초. 먼저, 앞, 선두(先頭). 머리. 우두머리. 임금. 첫째, 으뜸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가진 글자이다. 사물의 근원적 이치를 밝힌다는
여우가 죽을 때면 본디 살던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首丘初心.는 것을 이해한다면‘근본을 잊지 않음’이란 비유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도의 일반 사전적인 의미는‘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또는‘깊이 깨우친 이치'인데, 유가와 도가 등의 동양 종교사상의 전통에서 도는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즉, 도란 천지만물에 선행해서 존재한 것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해 내는 근원이며, 우주를 지배하는 대조화의 이법 즉 진리인 것으로 본다. 불교, 힌두교 등의 동양 종교사상의 전통에서는 도는 기본적으로 진리에 이르는 길을 의미하는데, 이 뜻에서 나아가 진리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동양인의 윤리 도덕의 근저에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 내지 우주의 이법 또는 그 이법을 깨닫는 길 또는 그 이법과 합치하는 길로서의 도에 대한 사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도교, 불교, 유교 등의 해석에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도교에서는 도가 신격화되어서 최고신인 원시천존(元始天尊)으로 되었으며, 불교에서는 대부분의 경우에서 길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데 도가의 영향을 받아 특히 선종에서는 진리 자체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도에 대한 사상은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 동양인의 세계관이나 역사관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흥미로운 주제이다
수운의 핵심적인 사상을 요약한다면, 동학. 심학. 무극대도라 할 수 있다. 이런 용어들로 설명되는 수운의 핵심적인 사상을 법설을 통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수덕문에서
인의예지는 옛 성현들의 가르친 것이지만, 수심정기는 내가 다시 정한 것이다./仁義禮智 先聖之所敎 修心正氣 惟我之更定. 라 말씀하셨고, 論學文에서는 우리 도는 무위이화이다.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하고 한울님의 성품을 거느리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자연한 가운데 화해나는 것이 우리 도의 근본이다./曰吾道無爲而化矣 守其心正其氣 率其性受其敎 化出於自然之中也 하셨다. 그런데 이들 법설에서 강조된 ‘修心正氣/守心正氣’의 구체적인 의미는
修心은 固我心柱 乃知道味 一念在玆 萬事如意의 마음을 갈고 닦음과 지킴을 말하는 것이고, 正氣는 消除濁氣 兒養淑氣 非徒心至 惟在正心 隱隱聰明 仙出自然의 기운을 바르게 세워 오래도록 지켜 행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來頭百事 同歸一理이고, 修心正氣의 結果後에 道人들의 對處는 他人細過 勿論我心 我心小慧 以施於人 하라는 것이다.
수운의 법설인 수덕문에서 강조한, 仁義禮智 先聖之所敎란 맹자의 ‘存心養性’이란 인간의 본심인 사단의 보존을 통해 인간이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본성인 仁義禮智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修心正氣 惟我之更定은 맹자의 存心養性(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知天矣)은 수운의 언어로 修心正氣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修心은 存心과 같고 正氣는 正 正氣이기 때문에 養性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 存心養性 - 맹자가 제시한 도덕 수양에 관한 명제로 存養이라고도 한다. 『孟子』 盡心章 上 1.에서 "자기의 본심을 간직하고 자신의 본성을 기르는 것이 바로 하늘을 안다는 것이다./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知天矣" 라고 한 데서 비롯한다. 여기서 심은 惻隱, 羞惡, 辭讓, 是非의 4가지 마음으로 四端이라 하며, 성은 천부의 선한 성을 가리킨다. “그 마음을 간직하고 그 성품을 기르는 것은 그것이 하늘을 섬기는 것이 된다. 일찍 죽고 오래 사는 것에 상관없이 몸을 닦아 기다리는 것은 그것이 곧 명을 세우는 것이다” 또 『中庸』에서도 “하늘이 주신 것이 성품/天命之謂性"이라 했고, 맹자는 "마음을 간직하고 성품을 기르는 것이 곧 하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성(性)은 천부(天賦)의 선한 성을 가르친다. 존심양성이란 인간의 본심인 사단의 보존을 통해 인간이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본성인 仁義禮智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맹자는 인간이 가진 본심을 보존하고 선한 성을 기르면 궁극적으로 도덕적 완성자인 군자가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天命을 받들어 어기지 않고, 하늘을 섬기는 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天人合一思想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보았으며 宋代 주자학이나 명대 양명학의 주요한 근거로서 활용되었다
조선에서도 인격을 다듬는 함양방법으로써 ‘순수한 마음의 힘 기르기’인 존양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조선 말기의 학자인 南塘 韓元震(1682~1751)은 존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존양(存養)은 이기적 욕구의 노예가 되는 탁하고 조잡한 마음의 기질을,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맑고 순수한 기질로 변화시키는 일종의 ‘순수한 마음의 힘 기르기’ 공부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런 공부 방법은 사람의 마음의 근본은 본래부터 맑고 순수하며, 사람의 본성은 본래부터 선(善)하다는 유학의 성선설적 인간관에 기초한 것이다. 그런데 특히 현대인들에게 존양은 마음뿐만 아니라 이것이 이어지는 몸을 양생하는 방법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상당수는 우리가 지나치게 일에 몰두하느라, 우리의 생명이 다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중국의 명나라 사람인 여곤(呂坤 1536-1618)은 일찍이 ‘달팽이는 껍질 속에 숨고, 뜨거운 태양은 해를 지나도 수척해지지 않는다./蝸藏於殼, 烈日經年而不枯./『呻吟語』라는 말로 사람의 생명에는 반드시 위대한 축양(蓄養), 즉 모으고 기르는 것이 있어야 크게 될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옛 사람들은 생명의 리듬을 파악하고 심신이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 즉 양생을 위해 항상 힘썼으며 언제 어디서나 노력했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의 성패를 분명하게 알려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한가로운 마음을 가져야 하고, 아무리 괴로워도 양생을 통해 천수를 누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 마음, 즉 양심을 잃지 말고 그대로 간직하여, 그 성품, 즉 하늘이 주신 본성을 키워 나간다는 의미의 존양을 생각하며, 욕심으로 몸을 괴롭힐 것이 아니라, 생명의 리듬을 잘 유지해나가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 다음백과와 관련 자료들의 종합 /필자의 미발표 원고. 自我開闢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에서.
註 00 ; 水雲은 歎道儒心急/교도(도인 또는 도유)들의 마음이 조급함을 탄식함/에서 消除濁氣 兒養淑氣라 하였는데, 兒養淑氣란 存養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존양이란『孟子』盡心章 上篇에 나오는 말로, 나 자신을 다스리는 수신의 방법으로 진심(塵心)을 다해 본심을 보존하고 본성을 배양한다. 는 존심양성(存心養性)을 말한다. 그 마음, 즉 양심을 잃지 말고 그대로 간직하여, 그 성품, 즉 하늘이 주신 본성을 키워 나가라는 뜻이다.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 정리함.
■固我心柱 乃知道味 一念在玆 萬事如意 消除濁氣 兒養淑氣 非徒心至 惟在正心/歎道儒心急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나의 마음의 줏대를(主體性) 굳건히 해야 도의 참맛(진정한 의미)을 알게 될 것이요, 한결같은 생각이 이 도에 있으면 무위이화의 이치대로 모든 일이 뜻대로 될 것이다. 흐린 생명에 기운(욕심이 가득 찬 마음)을 깨끗이 씻고 어린아이와 같은 고운 마음씨(욕심이 없는 순진무구한 마음)를 길러라. 오직 마음을 닦는데 힘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르게 갖는 데 있다.
註 00 ; 『呻吟語』- 한 국가를 경영하는 요체를 밝힌 책. 인간의 마음, 인간의 도리, 도를 논하는 방법, 국가 공복의 의무, 세상의 운세 그리고 성인과 현인, 국가를 경영하는 요체 등의 주제로 나뉘어 있다.『신음어(呻吟語)』는 여곤(呂坤)이 정치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여러 문제로부터 일상으로 흔히 있는 모든 문제에 이르기까지의 우려(憂慮)·분만·내성(內省)·위구(危懼)·대책(對策)·신념(信念) 등을 솔직하게 피력한 것으로서, 단편적인 이야기가 집적된 것이면서도 저자의 인품이 여실히 배어 나온다고 하겠다. 그 집필의 동기는 저자의 서문에 보면 이러하다.
“신음이란 병자의 앓는 소리다. 신음어란 병이 들었을 때의 아파하는 말이다. 병중의 아픔은 병자만이 알고 남은 몰라준다. 그 아픔은 병들었을 때에만 느끼고 병이 나으면 곧 잊어버린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약질(弱質)이어서 병에 잘 걸렸다. 앓고 있을 때 앓는 소리를 하게 되면, 그 괴로움을 기록하여 후회하고 조심하면 다시는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심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병에 걸리고, 또 그 괴로움을 겪는다.”
이 책이 처음으로 간행된 것은 만력(萬曆) 21년이었던 것 같으나, 얼마 되지 않고 호평을 받아 각지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출판이 행하여졌다. 그러나 내용의 선택이 불충분하기도 하고, 교정이 부정확하기도 해서, 여곤 자신이 첨삭(添削)을 가하기도 하고, 원고를 바꾸기도 하고, 약간의 속편(續編)을 더하기도 하여, 만력 44년에 『신음어적(呻吟語摘)』이라고 제(題)하여 간행하였다.
그 내용은 내외(內外) 2편에 6권으로 되어 있다. 6권은 예·악·사·어·서·수(藝·樂·射·御·書·數)의 6집(六集)인데, 내편에서 예집(藝集)은 성명(性命)·존심(存心)·윤리(倫理)·담도(談道)로 나누어졌다. 악집(樂集)은 수신(修身)·문학(問學)이며, 사집(射集)은 응무(應務)·양생(養生)으로 분류, 총 3권으로 이루어졌다. 또 외편에서 어집(御集)은 천지(天地)·세운(世運)·성현(聖賢)·품조(品藻)이며, 서집(書集)은 치도(治道)의 한 부분으로 되었으며 수집(數集)은 인정(人情)·물리(物理)·광유(廣喩)·사장(詞章)으로 구분하고 3권으로 이루어 졌다./ 자유문고 고전에서 배우다. 에서 발췌.
또 水雲은 동학을 우리도(吾道) 또는 이 도(此道)라고 지칭하면서 座箴과 修德文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먼저 座箴에서는,
吾道博而約 不用多言義 別無他道理 誠敬信三字
這裏做工夫 透後方可知 不怕塵念起 惟恐覺來知/座箴.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우리 도(동학)의 깊은 뜻은 넓으나 간략하게 설명할 수 있어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이해시키는데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성․ 경․ 신 세 가지를 온전히 행하는 데 온 힘을 다하라.
성․ 경․ 신을 體行하는 속에서 공부하여 터득한 뒤에라야 마침내 모든 이치를 알 것이니, 잡념이 일어나는 것을 무서워하지(아랑곳 하지) 말고 오직 동학의 참다운 이치를 깨우쳐 「참다운 앎」에 이르게 되는(깨닫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하지마라. 라고 간략하게 설명하고,
註 00 ; 不怕 - 무서워하다. 두려워하다. 또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註 00 ; 아랑곳하다 - 흔히 ‘않다’와 같은 부정어와 함께 쓰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일이나 사정에 대하여 관심을 갖거나 참견하는 것을 말한다.
修德文에서 誠敬信을 體行하는 올바른 길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大抵此道 心信爲誠 以信爲幻 人而言之 言之其中 曰可曰否 取可退否 再思心定 定之後言 不信曰信 如斯修之 乃成其誠 誠與信兮 其則不遠 人言以成 先信後誠 吾今明諭 豈非信言 敬以誠之 無違訓辭 ⑫/修德文.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대체로 이 도(동학)는 마음으로 믿는 것을 정성이라 한다. 믿을 신자를 풀어 보면, 사람의 말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말에는 옳고 그름이 담겨 있는 데, 그 중에서 옳은 말은 취하고 그른 말은 버리어 거듭거듭 생각하여 마음을 정하라. 한번 마음을 정한 뒤에는 다른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믿음이니 이와 같이 닦아야 마침내 그 정성에 이를 수 있다. 정성과 믿음이여, 그 정성과 믿음이 멀지 아니하다. 사람의 말로 이루었으니 먼저 믿고 뒤에 정성을 다하라. 내가 지금 분명하게 가르치노니 어찌 미더운 말이 아니겠는가. 공경하고 정성들여 가르치는 말에 어김이 없도록 노력하라. 는 것을 당부하고 있다.
子貢이 정(政/政治) 즉 나라를 일으키고 지키는 중요한 핵심을 묻는 질문에 孔子는 '信, 食, 兵'이라고 대답했다. 信은 믿음이고, 食은 식량이며, 兵은 국방력을 뜻한다. 『論語』顔淵篇에 나오는 이야기로, 백성을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요체는 믿음을 주는 것, 잘 먹여 주는 것, 외세로부터의 위험을 막아 주는 것 등 세 가지라는 의미이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자공이 정(政/政治 또는 政事)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식(食)을 족(足)하게 하고 병(兵)을 족(足)하게 하고, 민(民)이 신(信)하게 하는데 있다.’라고 답하자 자공이 다시 묻기를‘반드시 부득이하여 버리려하면 이 삼자(三者)에서 무엇을 먼저 버릴 수 있을까요.’하자, 답하기를 병을 버려야 할 것이다. 자공이 다시 또 묻기를 반드시 부득이하여 또 버리게 되면 이 둘 중(二者)에서 무엇을 먼저 버릴 수 있을까요.’하자, 또 대답하기를 식을 버려야 할 것이다. 예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게 되면 죽음은 있는 것이지만,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는 존립할 수가 없다.”/여기에서 足食 足兵 民信이란, 식량을 풍족하게 하는 것, 군비를 넉넉히 하는 것, 백성들이 믿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 /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 何先 曰去兵 子貢曰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 何先 曰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論語』顔淵篇 7章.
이 글에서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대를 충분히 하고,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라고 대답하면서 食, 兵, 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자공이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가장 먼저 兵이라고 하면서 나라를 지킬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포기해야 할 것으로 食을 들었다. 자고로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기고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잘만 먹여주면 불평 없이 따르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식량을 오히려 信(믿음)보다도 가볍게 여기면서,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올바로 서지 못 한다" 고 말하고 있다.
"만약 셋 중에서 덜 중요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계속되는 제자의 질문에 공자는 주저 없이 '병(兵)'이라 말씀하신다. 나라를 지키는 요체가 국방력인데 그것을 가장 먼저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리시겠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식(食)이라고 대답했다. 자고이래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기고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잘 먹여 주면 불평 없이 따르는 법인데도 공자는 오히려 그것을 신(信)보다 가벼이 여겼던 것이다.
신은 신뢰, 곧 상대에 대한 믿음이다. 백성과 백성 사이에도 신의가 있어야 하지만 백성과 통치자 사이에는 더욱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사실 믿음만 있으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존경하고 믿을 수만 있다면 굶음을 참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맨손으로라도 사나운 외적을 내칠 수도 있다.
공자가 말미에 저 유명한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소신을 밝힘으로써 모름지기 지도자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안연이 군자가 갖추어야 할 인(仁)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하고 있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안연이 인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기심을 극복해서 예로 돌아가는 것을 인이라 할 수 있다. 하루만이라도 이기심을 극복하여 예를 회복한다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을 실천하는 것은 자기 몸에 달린 것이지, 남에게 달린 것이겠는가?” 안연이 “청컨대 그 실천 항목을 묻겠습니다.” 하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예가 아니면 보지를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도 말아라.” 그러자 안연이 말하기를, “제가 비록 똑똑하지는 못하지만 이 말씀을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論語』顔淵篇.
이 대화의 핵심적인 의미는, 이기주의를 극복해서 공동체의 목표를 다 같이 지향하기 위하여 공동체 전체의 질서와 조화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의 정신. 즉 예가 아니면 아예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할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심을 받아드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인간중심주의의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의 변전을 통하여 실천에 바로 옮기는 그러한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며 지행일치의 근본이치를 깨닫는 순간, 바로 실천해서 습관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는 것이다./현대인을 위한 고전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3. 동양 윤리 사상의 흐름
동양 윤리 사상은 중국에서 비롯된 유교, 도가 · 도교, 그리고 인도에서 기원하는 불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흔히 삼교(三敎)로 불리는 유 · 불 · 도 사상은 대체로 기원전 6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구체화되었으며, 역사적 조건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동양의 여러 나라에 수용되어 다양한 변용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교 사상은 중국의 춘추 시대라는 혼란기에 형성되었다. 주(周)나라의 인문주의적 전통을 계승한 공자는 인간의 도덕성을 회복하고 안정된 사회를 이루고자 인(仁)의 사상을 제시하였고, 도덕 정치로서 덕치(德治)와 예치(禮治)를 강조하였다. 그의 사상을 계승한 맹자(孟子)와 순자(荀子)는 전국 시대의 혼란기 속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를 통해 자신들의 인성론과 사회사상을 제시하였다. 노자(老子)와 장자(莊子)로 대표되는 도가사상은 유교의 인위적인 세계관을 비판하고 무위자연의 삶을 강조하였다. 만물의 근원인 도(道)를 중심으로 사상을 전개한 이들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을 이상으로 여겼으며, 이를 통해 평등한 인간관을 지향하였다.
춘추 전국 시대에는 유가와 도가 외에도 묵자, 고자, 한비자 등 여러 사상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들은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려 나가는 이치나 개인의 처세 등에 관한 나름의 학설을 주장하면서 당시의 혼란한 사회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들의 사상은 이후 동양 사상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진(秦)나라의 통일 이후, 분서갱유로 한때 여러 사상들이 위축되었지만, 한(漢)나라 이후 유교는 국학으로 자리 잡아 크게 융성하였다. 한(漢) 대에는 유교 경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훈고학적인 경향도 두드러졌다. / 관련 자료들에서 일부 발췌하여 재정리함.
송(宋)나라 때 유교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였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치밀한 탐구를 통해 실천적 수양을 강조하는 학문적 경향이 태동하였고, 여러 학자들의 지적 탐구를 거쳐 주희(朱熹)에 의해 성리학으로 집대성되었다. 명(明) 대에 이르러서는 성리학과 구별되는 양명학이 왕수인(王守仁)에 의해 체계화되었으며, 이러한 새로운 유학 사상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전파되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
청(淸) 대에 이르러 성리학과 양명학은 공허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러한 비판 속에서 실학(實學)이 태동하였다. 실학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사실을 밝히고자 하는 학문적 입장에서 서양 학문에 대한 비판적 수용과 더불어 전통 사상에 대한 비판적 계승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였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유교를 비롯한 동양의 윤리 사상은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드러나는 폐해를 극복하는 데 이바지하는 한편, 인류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사상으로서 새롭게 변모하며 동양을 넘어 세계 사상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한(漢) 대에 이르러 황로학(黃老學)이 대표적인 도교 학파로 대두하였고, 후한(後漢) 시대에 이전의 신선 사상과 도가 사상을 수용한 오두미교(五斗米敎)가 체계를 갖추면서 도교가 본격적으로 민간에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위 · 진(魏晉) 시대의 혼란기를 맞아 일신의 안위를 도모하고 은둔 생활을 즐긴 청담(淸談) 사상도 널리 퍼졌다. 도교는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여러 나라에 수용되어 국가적인 의식으로 행해지기도 하였고, 민간의 풍속과 결합하여 일상생활에 녹아들었다.
인도 문명에서 비롯된 불교가 중국을 비롯한 동양 세계에 전래한 시기는 후한 시대였다. 인도 전통 사상에 대한 비판적 수용을 통해 구체화된 석가모니의 불교 사상은 소승 불교 시대를 거치면서 경전 체계가 구체화되는 등 이론화되었다. 그리고 대승 불교가 등장하여 개인의 해탈은 물론 대중의 구제에 관한 관심과 실천이 체계화되었으며, 이론적으로도 공(空) 사상이 확립되었다. 중국에 수용된 불교는 경전 번역 사업과 더불어 경전에 대한 재해석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종파로 나뉘어 발전하였다. 특히, 현세주의적 성격이 강한 중국과 한국 등에 수용되면서 불교는 동양의 전통 사유 체계에 변화를 가져왔고,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는 데 공헌하였다./ 관련 자료들에서 부분 발췌.
註 00 ; 春秋戰國時代 - 추전국시대란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통틀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춘추시대는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5세기에 이르는 고대 중국의 변혁기이고, 전국시대는 춘추 시대 이후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에 걸친 혼란기를 말한다. 전국이라는 이름은 이 시기의 역사를 다룬 고대의 역사서 “전국책(戰國策)”에서 유래하였다.
註 00 ; 분서갱유(焚書坑儒) : 진시황이 유가의 정치 비판을 봉쇄하기 위해 실용적인 서적을 제외한 모든 책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암매장한 사건을 말한다.
註 00 ; 훈고학(訓古學) : 경서의 글자와 구절을 충실하게 해명함으로써 경서 본래의 사상을 이해하고자 한 학문이다.
중국 고대 사상에서 도가사상의 특징은, 자연은 도법자연(道法自然)에서 나온 것으로 외부의 간섭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을 따른다는 것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뜻이다. 이러한 도는 천하 만물의 본성이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무위는 도항무위(道恒無爲)에서 나온 말로 스스로의 본성을 따라서 저절로 사는 모습을 말한다. 무위의 바탕은 하늘과 땅이 천하 만물에 대하여 조건 없이 주는 ‘사랑’과 ‘순수한 앎‘이다. 노자는 하늘과 땅이 그러하듯이 언제나 타율보다는 자율, 규범보다는 스스로의 본성을 따르게 하여 나라를 안정시키고 다스리는 것을 택했다. 따라서 도가에서 말하는 성인은 천지의 덕을 본받아서 백성들에게 무위로 행하고 부모처럼 무언(無言)으로 가르치는 어른이며, 이러한 성인이 사회의 지도층이 될 때 비로소 사회는 안정되고, 백성들은 순박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간다고 보았다. 또한 노자는 세상에서는 무위에 도달하려면 본래의 족함과 멈춤을 알라고 하며 /지족지지(知足知止), 이로써 점차 우리가 보통으로 알고 있는 이름과 수많은 관념이라는 인식의 틀로부터 벗어나게 되는데, 이를 무명(無名)이라 했다. 무명은 사람들이 말하는 견성이자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 관련 자료들에서 일부 발췌하여 재정리함.
도가에서 도(道)는 우주의 근원이고, 천지 만물은 모두 이것으로부터 말미암는다고 규정한다. 그래서 도를 ‘천하의 어머니’로 비유한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공평한 사랑을 베풀듯이, 도는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는다.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도 앞에서 평등한 가치를 지니며, 그 어떤 것도 버릴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자는 보통 사람들이 귀하고 천하거나, 선하고 악하다고 나누는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도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가치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귀천, 선악 등은 ‘도에서 함께 나왔으나 이름을 달리한 것’이고, 유교에서 강조하는 도덕이나 예(禮)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고 상대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註『00 ; “이름이 없음은 하늘과 땅의 시작이요, 이름이 있음은 온갖 것들의 어미이다. 따라서 욕심을 없앰으로써 그 오묘함을 보고 욕심을 가짐으로써 그 가장자리(울타리 또는 경계선)를 본다. 이 두 가지는 함께 나왔으나 이름을 달리한 것이니 함께 일컬어 신비하다고 한다. 신비하고 또 신비하니 뭇 오묘함이 나오는 문이로다.”(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此兩者同出, 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老子』1章. 體道, P.27.)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요 부드러움(유약함)이 도의 쓰임이다.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이 다 유에서 나왔고, 유는 무에서 나왔다.”(反者, 道之動, 弱者, 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老子』40章. 去用. P.119.) 나아가 노자는 천지와 더불어 인간이 본보기로 삼아야 할 궁극적인 표준인 도는 항상 무위하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 규범도 무위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노자는 “성인은 무위로써 일을 처리하고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한다.”고 하였고, 무위의 가르침을 정치의 원리로 활용하여 “무위를 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노자는 유교의 예치(禮治)를 인위의 정치라고 보고, “예라는 것은 진실과 신의가 엷어진 것이요, 혼란의 근원”이라고 지적하였다. 인의와 같은 도덕은 대도가 무너진 뒤에 있게 되는 것이고, 인의도 모두 인위라고 비판하였다. 무위자연을 강조하는 도가의 세계관에서는 유교에서 제시하는 인간 중심의 사고를 부정하고,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도덕을 비판한다. 인간의 올바른 삶을 이끌기 위해 만든 인위적인 예악(禮樂)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유해하다고 본 것이다.
도가 사상은 인간이 타락하고 도덕이 타락한 것은 순박한 경지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였다. “도(道)를 잃자 덕(德)이 있게 되었고, 덕이 없어지자 인(仁)이 생겨났으며, 인이 없어지자 의(義)가 생겨났고, 의가 없어지자 예(禮)가 생겨났다. 무릇 예란 충신이 희박해지므로 해서 나타났으니 환란의 시초다(“도덕경”38장).”
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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