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東學之人生觀 註解書(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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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學之人生觀 註解書(14-5)
曰 「爲富면 不仁」이란 陽虎의 말을 칭찬하였고, 「不義로서 富貴하는 것은 내 그를 浮雲과 같이 보노라」한 말과 같이 그의 言行 가운데서 그를 얼마든지 였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평생 마음 가운데 무한한 法悅이 차있었다.「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學而時習之 不亦悅乎」「仁者樂山 知者樂水」「安貧樂道」「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등의 言行은 실로 그의 道的 法悅로부터 솟아나온 喜悅이다. 친구에도 즐겁고 譯書(曆書나 易書의 잘못인 듯-오암)에도 즐겁고 산도 물도 가난도 심지어 曲肱가운데도 樂이 있었다. 그의 樂은 內的으로 존재한 法悅이므로 무엇이든지 樂이 없는 곳이 없다는 것을 說破한 기록이다./ PP.174-177.
註 00 ; 爲富면 不仁 - 성간이 제 경공에게 말하길 그도 대장부이고 나도 대장부인데 내 어찌 그를 두려워하겠는가. 양호가 말하길 치부를 하면 인자하지 못하고 인을 행하면 치부를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成覵이 謂齊景公曰 彼丈夫也며 我丈夫也니 吾何畏彼哉리오 陽虎曰 爲富면 不仁矣오 爲仁이면 不富矣라 하니이다./ 『孟子』 梁惠王 章句 上.
■ 陽虎의 亂 / 『論語』 陽貨篇을 참조바람.
■ 孟子는 滕나라 文公에게 정치의 근본은 백성들의 生業을 안정시키는 데 있으므로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과도하게 걷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고서 魯나라 陽虎의 말을 인용해 貪慾과 仁政은 兩立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陽虎는 곧 陽貨로, 춘추시대 노나라 季氏의 가신으로서 국정을 장악했던 인물이다. ‘논어’ ‘양화’편에 보면 양화는 공자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돼지를 공자에게 선물했다. 공자는 양화가 없는 틈을 타 그의 집으로 가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오다가 양화를 만났다. 양화는 “보배로운 재주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나라의 혼란을 내버려둔다면 어질다고 할 수 있겠소?”라고 했다. 공자는 무도한 양화를 섬길 수가 없어서 막연하게 “내가 장차 나아가 벼슬하겠소”라고 말했다.
‘爲富면 不仁矣오 爲仁이면 不富矣라’는, 위정자가 富를 추구하면 필시 어질지 못하게 되고 거꾸로 어진 정치를 행하면 부유하게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양호는 仁政을 행하면 위정자가 부유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이 對仗(대장)으로 표현했으나, 맹자는 위정자가 부유하려 하다 보면 仁政을 행할 수 없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했다. 주자(주희)는 天理와 人慾은 병립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소인은 인욕을 따르므로 어질고자 하면 부유하게 될 수 없고, 군자는 천리를 따르므로 부유하려다 보면 어질지 못하게 된다고 구분했다. 하지만 천리와 인욕이 반드시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부유하면서도 기부 등 선행을 하는 사람도 많다. 공자는 ‘논어’ ‘里仁’편에서 ‘君子는 喩於義(유어의)하고 小人은 喩於利(유어리)니라’라고 했을 따름이다. 군자는 義에 밝아서 일마다 義를 표준으로 삼지만 소인은 利에 밝아서 일마다 利를 표준으로 삼는다고 한 것이다.
‘爲富不仁矣’라는 것은 앞서의 ‘焉有仁人在位 罔民而可爲也’라는 말과 호응한다. ‘爲仁不富矣’는 것은 ‘賢君必恭儉禮下取於民有制’라고 했던 말과 호응한다고 봄이 옳다
./http://news.donga.com/3/all/20111223/42820739/1#csidx78470722ca4fe3 edacf56fa34c7006f5
註 00 ; 不義으로 얻은 부와 귀는(浮雲富貴) - “나물죽을 먹고 찬물을 마시며 팔을 베고 누웠어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不義)으로 얻은 부와 귀는 내게는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같다.”/子曰:[飯疏食,飲水,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不義而富且貴,於我如浮雲/ 『論語』述而篇.
註 00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나서 수시로 익힌다면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먼 곳에서 (학문적 뜻이 맞는) 친구가 찾아와 준다면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않겠는가?/ 이것을 孔子의 君子三樂이라고도 한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論語』學而篇. / ※ 『論語』는 약 1 만 6,000여 자의 내용은 군자에서 시작해서 군자로 끝난다고 보면 된다. 107회에 달하는 ‘君子’란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사상에 대하여 언급했기 때문이다. ‘君子’란 유교에서 '성품이 어질고 학식이 높은 지성인'을 가리키거나, 군자란 자발적으로 꾸준한 노력 에 의해서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참된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龜鑑(귀감)이 되는 사람을 가리킨다./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 孔子의 君子三益과 孟子의 君子三樂 - 孔子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세 가지 ‘즐김’과 손해를 끼치는 세 가지 ‘해로움’을 말했다. 군자에게는 유익한 세 가지 즐김과 해로운 세 가지 즐김이 있다. 예악을 절도에 맞게 행하는 것을 즐기고, 남의 선을 말하기를 즐기며, 어진 벗을 많이 가지기를 즐기는 것은 이롭다. 교만방탕의 즐거움을 즐기고, 편히 노는 즐거움을 즐기며, 잔치의 즐거움을 즐기는 것은 해롭다./益者三樂, 損者三樂. 樂節禮樂, 樂道人之善, 樂多賢友, 益矣. 樂驕樂, 樂逸樂, 樂宴樂, 損矣.」/《論語)》季氏篇.
孟子는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왕이 되어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여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고 형제들이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땅을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들을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愧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孟子 》盡心章 上.
註 00 ;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활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평정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즐길 줄 알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知者樂水, 仁者樂山가 仁者樂山 知者樂水로 뒤바뀜.『論語』雍也篇
註 00 ;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 공자가 말하기를,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꿈치를 굽혀 베개를 삼아도, 즐거움은 바로 그 가운데 있다. 의롭지 못하게 부유하고 귀한들 나에게는 뜬구름 같은 것이니라. /子曰飯疏食(자왈반소사)에 飮水(음수)하고 曲肱而枕之(곡굉이침지)라도 樂亦在其中矣(낙역재기중의)니 不義而富且貴(불의이부차귀)는 於我如浮雲(어아여부운)이니라/『논어論語』述而篇 15章.
■ 중국 상고시대부터 전해지는 격양가(擊壤歌)가 있다. /일설에는 요임금에 얽힌 이야기라 한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日出而作日入而息)/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으니(鑿井而飮 耕田而食)/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랴(帝力于我何有哉).” 한 노인이 길가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들기고, 또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장단에 맞추어 불렀다고 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의 요체(要諦)는 제왕의 다스림에 대한 고마움을 전혀 느끼기조차 못하게 하는 정치가 진실로 위대한 정치라는 것이다. 이는 장자가 말하는 ‘다스림의 최고 경지’이기도 하다./관련 자료들에서 정리.
註 00 ; 毁與褒貶 - 칭찬(稱讚)하고 비방(誹謗)하는 말과 행동을 의미하는 훼예포폄(毁譽褒貶)의 잘못인 듯. 毁譽褒貶은 일반적으로 세간의 평판을 의미하는 일본의 四字成語이다./포폄(褒貶/옳고 그름이나 착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 또는 관리의 근무 성적을 고과하여 그 벼슬을 올리고 내리는 일/조선시대 관리의 근무성적 평가제도 -오암.)
■ 인도포폄(人道褒貶)-최한기(崔漢綺)
人道侵害(인도침해)嚴懲堤坊(엄징제방)人道補益(인도보익)激勸褒揚(격권포양)卽人道中褒貶也(즉인도중포폄야)亦人道之修明也(역인도지수명야) :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인도를 침해하는 자는 엄격하게 막고 징계하며 인도에 보탬이 되는 자는 권장하고 포양(褒揚)하는 것이 인도를 포폄(褒貶/옳고 그름이나 착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 또는 관리의 근무 성적을 고과하여 그 벼슬을 올리고 내리는 일/조선시대 관리의 근무성적 평가제도 -오암.) 하는 것이며 인도를 수명(修明)하는 길이다.
若不有褒貶修明(약불유포폄수명)而惟有人道云人道云(이유유인도운인도운)竟何益焉(경하익언)人生大道(인생대도)統合天下人民而成其道(통합천하인민이성기도)非擧一家一國而名人道也(비거일가일국이명인도야)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만약 인도를 포폄 수명하지 못하고 오직 말로만 인도를 찾는다면, 끝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인생의 대도(大道)는 천하 인민을 통합하여 그 도를 이루는 것이요, 한 가정 한 나라만을 가지고 인도라 이름한 것이 아니다.
一褒而天下皆褒(일포이천하개포)乃大同人道之褒(내대동인도지포)一貶而天下同貶(일폄이천하동폄)乃大同人道之貶(내대동인도지폄)若半天下褒(약반천하포)而半天下貶(이반천하폄)非大同人道之褒貶也(비대동인도지포폄야)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한 사람을 포상한 것이 천하의 포상으로 되는 것이 대동적인 인도의 포상이며, 한 사람을 폄하는 것이 천하의 폄으로 되는 것이 대동적인 인도의 폄이다. 천하의 반은 포상되고 반이 폄되면 이는 대동적인 인도의 포폄이 아니다.
五倫修行(오륜수행)天下豈有不褒者(천하기유불포자)五倫傷害(오륜상해)天下豈有不貶者乎(천하기유불폄자호)民安其分(민안기분)天下豈有不褒者(천하기유불포자)擾民不安(요민불안)天下豈有不貶者乎(천하기유불폄자호) :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오륜(五倫)을 수행하면 천하에 포상하지 않을 사람이 어찌 있을 것이며, 오륜을 해치면 천하에 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백성이 제 분수를 편히 지키게 하면 천하에 포상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백성을 불안하게 하면 천하에 폄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政敎公明(정교공명)綱紀振刷(강기진쇄)天下皆褒(천하개포)政敎渾暗(정교혼암) 綱紀紊亂(강기문란)天下皆貶(천하개폄)賢俊登庸(현준등용)豈有非之者(기유비지자)奸佞肆行(간녕사행)豈有是之者乎(기유시지자호)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정교(政敎)가 공명하고 기강(紀綱)이 쇄신되면 천하가 다 포상하며, 정교가 혼암(渾暗)하고 기강이 문란하면 천하가 다 폄한다. 현준(賢俊)이 등용되면 어찌 비난할 자가 있겠으며, 간사하고 아첨한 자가 횡행하면 옳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行事善惡(행사선악)所以勸懲人道也(소이권징인도야)天下褒貶(천하포폄)所以修明人道也(소이수명인도야)測人之術(측인지술)至人道而止善(지인도이지선)人道之大(인도지대)得褒貶而止善(득포폄이지선)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행사의 선악의 구별은 인도를 권징(勸懲)하는 것이며, 천하의 포폄은 인도를 수명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을 헤아리는 기술은 인도에 이르러 선에 그치는 것이고 인도의 큰 것은 포폄을 얻어 선에 그치는 것이다.
註 00 ; 壽富貴多男子 - 壽富多男子의 활용이거나 잘못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관련된 이야기는 『莊子』 外篇 第12篇 天地에 있다.
華封人들이 오, 성인이시여, 삼가 임금님의 장래를 축수하겠습니다. 華封人들이 요임금도 오래 살고 부자가 되고 자식을 많이 두라는 축복을 사양하여 ‘자식이 많으면 두려움이 많고 부자가 되면 일이 많고 오래 살면 치욕스러운 일이 많아진다.(華封人曰 噫 請祝聖人 使聖人 壽富多男子 堯曰辭 多男子則多懼 富則多事 壽則多辱)라고 하며 사양하였다. /「장자」천지편에 나온 '華封三祝(화봉삼축)'고사에서, 요 임금이 華(화)지방을 순시할 때 그곳을 지키던 華封人(화봉인)이 나와 세 가지를 축원한 華封三祝(화봉삼축)에서 유래 된 말로, 堯임금에게 세 가지를 축원하였다. 이때 화봉인이 말하기를 "聖人(요임금)에게 축원하오니 오래 사십시오."하니 요임금은 "싫다"하였다. 이어 화봉인이 "부자가 되십시오."하니 요임금은 다시 "싫다"하였다. 이어 화봉인이 "자손을 많이 두십시오."하니 요임금이 "싫다" 하였다. / 使聖人壽 使聖人富 使聖人多男子. 다시금 화봉인이 “壽辱多(오래 살기를 바라고(壽), 부자 되기를 바라고(辱,) 자식을 많이 두기를 바람(多)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바인데 어찌 혼자만 싫다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하니, 다시 말하길 ‘오래 사는 것은 욕됨이 많고, 부자는 일이 많고, 자식을 많이 둠은 걱정이 많으므로 이 세 가지 덕을 기르는 것은 所以(소이)가 아니다.’라 말 하였다.
■ 莊子(外篇) 第12篇 天地.의 原文.의 註解.
요 임금이 華(화)지방을 순시할 때 그곳을 지키던 華封人(화봉인)이 나와 성인께서는 오래 오래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국경을 지키는 사람이 말했다. “성인께서 부자가 되도록 하여 주십시오.”
요임금이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국경지기가 말했다. “성인께서 많은 아들을 낳게 하여 주십시오.”
요임금이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그러자 국경지기가 말했다. “오래 살고, 부자가 되고, 많은 아들을 낳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일입니다. 홀로 그것을 원하지 않으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요임금이 말했다.
“아들이 많으면 근심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면 일이 많아지고,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아집니다. 이 세 가지 것들은 덕을 기르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어서 사양하는 것입니다.”
국경지기가 말했다.
“처음에 나는 당신을 성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군자 정도에 지나지 않는군요. 하늘은 모든 사람을 낳고 그들에게 합당한 직분을 줍니다. 아들이 많다 해도 그들에게 직분이 주어지는데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부자가 된다 해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면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성인이란 메추리처럼 일정한 거처도 없고, 병아리처럼 부실하게 먹으면서도 새처럼 날아다니며 행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천하에 올바른 도가 행하여지면 모두가 번창하지만 천하에 도가 행하여지지 않을 때에는 덕이나 닦으면서 한가히 지냅니다. 천년이나 세상을 피해 살다가 세상을 떠나 신선 세상으로 올라갑니다. 하늘의 흰 구름을 타고서 하느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는 것이지요. 앞의 세 가지가 환란으로써 닥쳐올 수가 없으며 몸에는 언제나 재앙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욕된 일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국경지기가 떠나가자, 요임금이 뒤따라가면서 말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국경지기가 말했다. “물러가시오.” 더 드릴 말이 없습니다. / 莊子(外篇) 第12篇 天地.의 原文.
堯觀乎華.華封人曰:「嘻. 聖人, 請祝聖人.「使聖人壽.」堯曰:「辭.」「使聖人富.」堯曰「辭」使聖人多男子.」堯曰:「辭.」 封人曰:「壽.富.多男子.人之所欲也, 女獨不欲, 何邪?」 堯曰:「多男子則多懼, 富則多事, 壽則多辱. 是三者, 非所以養德也, 故辭.」封人曰:「始也我以女爲聖人邪, 今然君子也. 天生萬民, 必授之職, 多男子而授之職, 則何懼之有? 富而使人分之, 則何事之有! 夫聖人, 鶉居而鷇食, 鳥行而无彰, 天下有道, 則與物皆昌. 天下无道, 則修德就閒. 千歲厭世, 去而上倦. 乘彼白雲, 至於帝鄕. 三患莫至, 身常无殃. 則何辱之有!」 封人去之. 堯隨之, 曰:「請問?」 封人曰:「退已!」
註 00 ; 富則多事 多事則多憂 多憂則多苦이니 富의 喜悅과 多事 多苦의 번뇌 중 어느것이 행복이 될 것인가? 壽則多辱이라 했으니 辱則 生苦 老苦 病苦를 이름이다.- 위 문장은 出典未詳의 문장으로, 야뢰가 堯曰:「多男子則多懼, 富則多事, 壽則多辱. 是三者, 非所以養德也, 故辭.」의 문장 내용을 바탕으로 추론한 것으로 보인다./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사람이 부귀해졌다는 것은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고, 일이 많아졌다는 것은 근심걱정거리가 많아졌다는 것이고, 근심걱정거리가 많아졌다는 것은 고뇌가 많아 졌다는 것이니 부귀의 희열과 다사 다고의 번뇌 중에 어느 것이 더 행복할 것인가? 壽則多辱이라 했으니, 삶이 욕되고 수고로워진다는 것은, 생활고와 늙고 병드는 고통을 말하는 것이다.
註 00 ; 許由 巢父(소보 또는 소부) - 중국 하남성(河南省) 등봉현(登封縣) 동남쪽에 있는 기산(箕山)은, 요임금 때의 고사(高士)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은둔했던 산이다. 허유(許由)는 본시 중국의 패택(沛澤)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던 어진 은자(隱者)였다. 그는 바르지 않은 자리에는 앉지도 않았고, 부정한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의(義)를 지키면서 살았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요임금은 천하(王位)를 그에게 물려주려고 찾아갔다. 이 제의를 받은 허유는 거절하며 말하였다. / 『莊子』의 逍遙遊, 徐無鬼, 襄王 등의 편에 기술됨.
"이렇게 천하를 잘 다스리신 요임금을 어찌하여 볼품없는 저 같은 자가 이를 대신하여 자리에 오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말없이 기산(箕山) 밑을 흐르는 영수(穎水) 근처로 가버렸다. 요임금이 다시 구주(九州 : 중국 전토)라도 맡아 달라고 청하자 허유(許由)는 이를 거절하고 '구질구질한 말을 들은 내 귀가 더러워졌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아무 말 없이 자기의 귀를 흐르는 영수(穎水) 물에 씻었다. 이 때 소부(巢父)가 조그만 망아지 한 마리를 앞세우고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며 그 광경을 보고 허유(許由)에게 물었다. "왜 갑작스레 강물에 귀를 씻으시오?"라 묻자 허유는 "요임금이 찾아와 나더러 천하나 구주(九州)라도 맡아 달라고 하기에 행여나 귀가 더러워지지 않았을까 하고 씻는 중이요". 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자 소부(巢父)는 "하, 하, 하!" 하며 목소리를 높여 크게 웃는 것이었다. "여보, 소부(巢父)님 왜 그리 웃으시오?" 하고 허유가 민망스러워하며 묻자 소부는 " 숨어 사는 은자(隱者)라는 것은 애당초부터 은자라고 하는 이름조차 밖에 알려지게 하여서는 아니 되는 법이오. 한데 그대는 여지것 은자라는 이름을 은근히 퍼뜨려 명성을 얻은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서는 소부는 망아지를 몰고 다시 영수(穎水)를 거슬러 올라가더니 망아지에게 물을 먹이며 말하였다. "그대의 귀를 씻은 구정물을 내 망아지에게 먹일 수 없어 이렇게 위로 올라와 먹이는 것이요” 뒤에 허유가 죽자 요임금은 기산에 허유를 묻어주고 그의 무덤을 기산공신(箕山公神)이라 하였다. 이 두 고사(高士)의 절개와 지조를 이른바 기산지절(箕山之節) 또는 기산지조(箕山之操)라 하였다. 천하를 호령하는 천자의 자리도 더럽게 여기며 숨어사는 현자 소부와 허유가 사는 산천을 우리 조상들은 다음과 같이 상상하였다 한다.
층암절벽상(層巖絶壁上)의 폭포수는 콸콸,
수정렴(水晶簾) 드리운 듯,
이 골 물이 주룩주룩, 저 골 물이 솰솰,
열의 열골 물이 한데 합수하여
천방져 지방져 소쿠라져 펑퍼져 넌출지고 방울져,
건너 병풍석으로 으르렁 콸콸 흐르는 물결이 은옥(銀玉)같이 흩어지니
소부 허유 문답하던 기산영수(箕山潁水)가 예 아니냐/ 十二雜歌의 하나인 作者未詳의「遊山歌」중에서
■ 十二雜歌 - 잡가의 한 갈래로 서울·경기도 지방에서 불리던 12가지 노래. 사설이 길다는 뜻에서 긴잡가 라고도 하며, 앉아 부르기 때문에 좌창이라고도 한다. 〈유산가 遊山歌〉·〈적벽가 赤壁歌〉·〈제비가〉·〈소춘향가 小春香歌〉·〈집장가 執杖歌〉·〈형장가 刑杖歌〉·〈평양가 平壤歌〉·〈선유가 船遊歌〉·〈月令歌/달거리〉·〈십장가 十杖歌〉·〈방물가 房物歌〉·〈출인가 出引歌〉이다.〈유산가〉에서 〈선유가〉까지를 8잡가라 하고, 〈달거리〉 뒤의 4가지 잡가를 잡잡가라고도 한다. /백과전 등에서 발췌하여 정리함.
석가는 본래가 萬乘의 位(天子 또는 帝王의 자리-오암)라는 권세와 물질적 행복을 廢履(헌 신짝 버리듯이-오암)같이 버리고 六年 苦行을 자진하여 체험하리 만치 그는 물질적 희열의 본질을 人生苦의 원인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영원한 불변의 法悅을 얻기 위하여 生死의 原理를 大覺하였다. 그리하여 法悅의 빛은 眉間으로 솟아 나와 三千大天世界를 덮었다는 상징적 大歡喜를 獅子吼하였다. 지금 佛像의 偶像 위에 나타나 있는 面點을 보아도 大歡喜의 기분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感이 있다.
法悅의 境涯를 가장구체적 기분적으로 표현한 이는 수운선생이다. 수운선생이 지은 歌詞八篇은 교훈인 동시에 法悅을 나타낸 글이다. 敎訓歌 중 一節에 曰「이 말씀 들은 후에 心 獨喜 自負)로다」「喜樂은 벗을 삼고 苦生은 喜樂이라」이 말씀은 降話之敎라는 內的 降神的으로 솟아 나오는 內有神靈의 至上命令이다. 心 獨喜는 他人과 같이 기뻐할 수 없는 內的 直覺, 直觀的 喜悅이다. 自負는 人格的 自身을 이름이다. 法悅이란 것은 오히려 無人靜夜(아무도 없는 고요한 밤-오암)에 혼자서만 느낄 때에 한층 자부심이 나는 것이다. 음식의 맛은 먹는 사람 혼자만이 아는것과 같이 정신적 法悅의 맛도 圓滿太極的 氣化神의 감응이다. 劍歌에 曰「時乎 時乎 이내 時乎 不再來之 時乎로다. 萬世一之丈夫로서 五萬年之 時乎로다 龍泉劍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舞袖長衫 떨쳐 입고 이 칼 저 칼 넌즛 들어, 浩浩茫茫 넓은 天地 一身으로 비껴서서, 칼 노래 한 곡조를 時乎 時乎 불러내니, 龍泉劍 날랜 칼은 日月을 戱弄하고 게으른 舞袖長衫 宇宙에 덮여있네, 萬古名將 어디 있나 丈夫當前 無壯士라,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 身命 좋을시고」이것은 氣化的 降神을 부르짖는 法悅의 詩歌다. 時乎 時乎는 此生의 성공을 이름이다. 此生四十平生의 단명으로 五萬年의 理想을 가진 無極大道 大德無爲和氣를 믿는 聖雄大丈夫의 氣分이었다. 龍泉劍은 聖勇(聖人의 勇氣-오암)을 표시한 것이며, 舞袖長衫은 學德을 표시한 것이다. 前者는 强을 意味한 것이며 後者는 柔를 표시한 것이다. 無限大의 大宇宙와 無限小의 此一身, 이 얼마나 모순적 대조이냐? 그러나 無限小의 此一身 가운데는 無限大의 大宇宙가 道的으로 들어 있다. 日光은 龍泉劍 끝에 달린 戱弄物이고, 우주는 舞袖長衫 속에 싸여있는 한개의 寶玉이다. 萬國都城은 蟻垤(개미집-오암)이오 千家豪傑(수많은 호걸-오암)은 하루살이다. 萬古名將(오랜 역사 속에서 잘 알려진 명장들-오암)아 있거든 나오너라 壯士 앞에 다시 壯士가 있을소냐. 壯絶, 奇絶한 大宇宙 大法悅의 용솟음이었다. 이 劍歌(劍訣이라고도 함. 가사 팔편에는 들어가지 않음-오암)의 진미를 음미하는 자라면 누구나 法悅的 手舞足蹈(기뻐 손을 흔들고 발을 들어 춤추는 것-오암)를 禁치 못할 것이다. 法悅은 獨喜(홀로 기뻐하는 것-오암) 自負 만을 주로 하는 것이 아니오 물이 웅덩이에 넘쳐 흐르는 것과 같이 필경 與人同樂(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즐거워하는 것-오암)이 되어진다. 이것이 布德이요 道會 卽 敎會이다. 또 말하되
「그제야 이날부터 부처가(부처간) 마주 앉아 이 말 저 말 다한 후에 희희락락(희희낙담) 그 뿐일세/경전 중 교훈가 대조-오암)」「通開重門/洞開重門하여 두고 오는 사람 가르치니 不勝堪當 되었더라 현인군자 모아(여)들어 명명기덕 하여내니 성운성덕 분명하다/경전 중 교훈가 대조-오암)」「秦始皇 漢武帝가 무엇 없어 죽었던(는)고 내가 그 때 났었다(더)면 불사약을 손에 들고 조롱만상 하올것을 늦게 나니 한이로세(다), 좋을시구(고) 좋을시구(고) 이내신명 좋을시구(고)/경전 중 안심가 대조-오암)」라고 하였다. 첫절은 夫妻間이 새로운 法悅 가운데서 즐거워 하는 상태이고 布德이 늘어 法悅의 同德이 많아 질수록 不勝其樂케 된다. 이러한 無量大福의 大法悅은 秦始皇 漢武帝의 地位로서 바꾸어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法悅의 大理想은 우주 자신을 理想化하여 三千大天世界를 燃燒하는 횃불이다. 禍가 무엇이며 福이 무엇인가? 苦가 무엇이며 樂이 무엇인가? 그러한 福은 禍를 초월한 樂이며 그러한 樂은 苦를 초월한 樂이다. 念의 造化로 극치에 이르면 神의 裏에 달하는 것이다. PP.177-180.
註 00 ; 三千大天世界 - 줄여서 三千世界라고도 말하며, 불교에서 삼천대천세계는 우주를 말한다. 고대 인도인의 世界觀에 따른 全體 宇宙(미산을 중심으로 한 우주)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하나의 태양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세계를 一小世界(일소세계)라 하는데 여기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七山八海(칠산팔해)를 交互(교호)로 번갈아 두르고 鐵圍山(철위산)을 가장 밖에 있는 외곽으로 한 세계를 말한다. 그래서 九山八海(구산팔해) 즉, 아홉 산과 여덟 바다인데 그 이름이 다 있다. 현대 천문학에서도 太陽系 밖에 銀河系가 또 끝없이 많이 전개된다고 한다.
■ 三千 大千 世界 - 하나의 태양계를 중심으로 여러 유성이 도는 한 단위의 세계 즉 一小世界로, 須彌山을 中心으로 七山八海를 交互(교호)로 두르고 鐵圍山을 外廓으로 한 世界를 말항다. (하나의 태양 중심으로 한 세계). 하나의 一小世界(일소세계)에는 하나의 태양, 달, 염파제, 위타니, 울담과 월, 불파제, 수미산, 사천왕, 장소, 삼십삼천, 야마천, 도솔타천, 화자재천, 대범천이 있음
小千世界(소천세계) : 一小世界(태양등이 각각 천개씩 존재함)를 천개 합한 수의 세계 → 千小世界
中千世界(중천세계) : 一小千世界를 천개 합한 수의 세계 → 百萬小世界. 이 소천 세계가 천이 모여 이천중천세계(二天中天世界)를 이룸
大千世界(대천세계) : 一中千世界를 천개 합한 수의 세계 → 十億小世界. 이 이천중천세계 천이 모인 것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라고 함. 즉 大千世界(대천세계)는 수치로 보면 십억소세계(十億小世界)임
註 00 ; 獅子吼 - 사자의 울부짖음. 큰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태어나시자마자,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시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시며 일곱 발자국을 떼시고 사방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시기를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우주 속에 나보다 더 존귀한 것은 없다.)’이라고 하셨다.」
이 이야기는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도솔천에 태어나시어, 손을 나누어 하늘과 땅을 가리키시며 사자후의 소리를 내셨다.(牟尼佛生兜率天, 分手指天地, 作獅子吼聲.)」또한 《유마경(維摩經) 〈불국품(佛國品)〉》에서는 「석가모니 설법의 위엄은 마치 사자가 부르짖는 것과 같으며, 그 강설은 우레가 울려 퍼지는 것과 같았다.(演法無畏, 猶獅子吼. 其所講說, 乃如雷震.)」고 기록하고 있다.
‘사자후’는 뭇 짐승들이 사자의 울부짖음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듯이 석가의 설법 앞에서는 모두 마음을 사로잡힌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말이었는데, 현재는 주로 열변을 토해 내는 것을 비유할 때 사용되며, 때로는 앙칼진 목소리로 대드는 아내를 뜻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註 00 ; 面點 -얼굴에 난 주근깨를 말하나, 부처님의 眉間의 點을 의미한다.
註 00 ; 聖勇義知仁 - 春秋時代에 孔子에게 호통을 쳤던 盜跖은 大盜의 魁首답게 도둑에게도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며 聖勇義知仁의 다섯 가지 도를 지니지 못하면 큰 도둑이 될 수 없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도둑을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을 일컫는 君子에 비유한 것은 비아냥거린 표현일 수밖에 없기에 이 말이 더 많이 애용됐을 것이다. 도둑을 梁上君子(대들보위에 숨은 도둑-오암)라 한 것은 '後漢書'의 陳寔傳에서 비롯됐다.
도둑의 聖勇義知仁이란, 聖은 훔칠 물건이 많은 부자집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통찰력이나 예측, 선견지명이고, 勇이란 남보다 먼저 담장을 넘을 수 있는 용기, 난간에 부닥쳤을 때 해쳐나가는 용기이며, 義는 도둑질을 하고 현장을 빠져나올 때 조직을 위해 맨 뒤에 나오는 희생정신이이고, 知란 도둑질을 할 때 정보와 지식으로 귀중품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후각 능력이이며, 仁은 훔친 물건을 배분할 때 아래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윗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요구함이다, 그러나 은혜와 의리는 반드시 보답하고, 許諾한 일은 반드시 移行하며, 천리 먼 곳에서도 신의를 지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의 평판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聖勇義知仁을 갖춘 사람이, 炎凉世態에서 曲學阿世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현실에서 도둑들이 아닌, 세상 사람들을 대하는데 필요한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닐까?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四 念과 業因; P.181.
念은 此生의 福을 창조할 뿐 아니라 來世 禍福의 業因도 된다. 이것을 일러 인간의 운명이라 하며 사회의 운명이라 한다. 社會과 前社會의 業因으로부터 後社會의 운명을 豫測하는 것과 같이 個性도 前生의 業因이 今生의 운명이 되며 今生의 業因이 來世의 운명을 창조하는 것이다.
業因은 念에 結晶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念은 行과 合一되는 것이다. 念이 卽地(일이 진행되는 바로 그 때. 또는 그 자리. 卽席, 卽座-오암)에 行과 合一되는 것도 있고 잠재의식으로 서서히 行과 合一되는 것도 있다. 卽地的 念行合一은 가까운 시간 중에서 사실로 나타나는 현상이요 잠재의식으로 서서히 行과 合一되는 것은 幾十年 또는 死後 來世에 가서 事實로 나타난다. 고로 業因을 廣義로 말하면 어제의 행위가 오늘의 報酬로 速決되는 것은 日時間의 業因이라 할 수 있고 수십년 전의 잠재의식적 念行이 수십년 후에 나타나는 것은 現世的 業果라 할 수 있으며 前生의 業因이 今生의 業果가 되고 今生의 業因이 來世의 業果가 되는 것을 生死의 因果라 한다. 萬一 三生의 因果가 業因의 법칙대로 一律不變(사물의 상태나 어떤 일을 하는 방법 따위가 한결같이 변하지 않음-오암)하게 流轉된다면 人生 一個人의 운명은 永劫을 가도 풀릴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주 靈理法에서 생긴 것이므로(人生에 限하여) 인간에게는 自由意志의 특권을 부여한 것이다. 自由意志의 특권은 前生 業因을 취소 멸망케 하는 특권을 절대로 가지지 못하나 그러나 今生의 생활에 있어 前生 業因과 調和타협할 가능성이 있는 고로 운명의 개조는 어떤 善念 善行에 依하여 확실히 개조될수 있다. 즉 今生의 念은 前生 業因과 今生의 自由 意志에 의하여 善念 善果, 惡念 惡果의 새 業因을 지을 수 있다. 이것이 곧 修人事 待天命의 원리이다. 이 점에서 인간 세계에는 도덕이 있게 되고 도덕을 가르치는 종교나 道學 修鍊의 敎가 있게 된다./ PP.181-182.
註 00 ; 業因 - 불교용어로, 업인이란, 善惡행위로 인한 과보(果報)를 일으키는 원인을 말하고, 果報란 사람이 과거에 지은 선악의 인업(因業)으로 인하여 생기는 업보(業報)를 말한다.
註 00 ; 念行合一 - 念行合一은 야뢰가 念과 業因을 설명하기 위하여 任意로 만든 新造語로서 인간의 본질적인 생각과 그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念과 行이 合一되듯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라고 추측된다. 일반적으로는 知行合一, 知行一致, 言行一致 등등으로 사용한다.
■ 知行合一 - 유교에서는 일찍부터 인간의 인식과 실천의 상호관련성을 설명했는데, 그것이 지행론의 형태로 체계적인 탐구의 대상이 된 것은 성리학이 발흥하면서부터이다. 주희는 "지가 행보다 앞서는 것이지만 중요성은 오히려 행에 있다"고 하여 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왕수인은 지와 행이 본래 합일되어 있음을 주장하면서 주희의 지행론이 애초 분리될 수 없는 지와 행을 분리했다고 비판하고, 그 대신 지행합일론을 내세웠다. 주희의 지행론이 마음속에 존재하는 이의 실천, 즉 행이 사사물물에 존재하는 이(理)를 인식하는지의 결과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는 당위를 말하는 것이라면, 왕수인의 지행합일론은 지와 행 양자의 근원적 통일성을 말하는 것이다. 왕수인에 의하면 지와 행은 심에 존재하는 양지의 발현이라는 형태로 처음부터 결합되어 있다.
유교에서는 일찍부터 인간의 인식과 실천의 상호관련성을 설명했는데, 그것이 지행론(知行論)의 형태로 체계적인 탐구의 대상이 된 것은 성리학이 발흥하면서부터이다. 주희(朱熹)의 지행론은 흔히 선지후행론(先知後行論)이라고 하듯이, 궁리와 함양(涵養), 또는 치지(致知)와 역행(力行), 도문학(道問學)과 존덕성(尊德性)을 각각 지와 행의 내용으로 이해하면서 궁리·치지·도문학이 함양·역행·존덕성에 앞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희도 "지가 행보다 앞서는 것이지만 중요성은 오히려 행에 있다"고 하여 행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지와 행을 함께 힘써야 한다는 지행병진론을 주장했다.
■ 주희(朱熹/Chu Hsi) - 성리학(주자학)을 창시하여 완성시킨 인물. 그러나 왕수인은 지와 행이 본래 합일되어 있음을 주장하면서 주희의 지행론이 애초 분리될 수 없는 지와 행을 분리했다고 비판하고, 그 대신 지행합일론을 내세웠다. 주희의 지행론이 마음속에 존재하는 이의 실천, 즉 행이 사사물물(事事物物)에 존재하는 이를 인식하는지의 결과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는 당위를 말하는 것이라면, 왕수인의 지행합일론은 지와 행 양자의 근원적 통일성을 말하는 것이다. 왕수인의 학문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주희의 격물설(格物說)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 왕수인(王守仁) - 중국 명나라 중기의 유학자인 왕양명의 중심적 주장으로, 도덕적 지식과 실천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명을 건국한 홍무제는 몽골족의 풍습을 폐지하고, 성리학(주자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명이 도덕적 통치를 위해 성리학을 강요하고, 성리학을 과거 합격을 위한 학문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화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실천을 강조하는 양명학이 등장하였다. 왕양명은 마음이 곧 만물의 원리라는 심즉리 명제를 만들었고, 인간은 본질적으로 평등하므로 태어났을 때의 착한 마음을 수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하였다. 심즉리 사상은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보다는 개인의 깨달음과 실천(지행합일)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왕양명의 사상은 사대부 계층뿐만 아니라 서민과 상공업자들에게도 큰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지나친 공론화로 흐르는 폐단도 나타났다. 그는 주희가 격물을 사사물물에 존재하는 이에 대한 탐구로 이해하는 것을 비판하고, 이는 심(心)에서만 존재하며 그 심에 존재하는 이에 의해 물을 바로잡는 것이 격물이라고 했다. 왕수인의 이러한 격물설과 심즉리설을 통합한 이론이 치양지설(致良知說)이다. 양지(良知)는 심에 존재하는 이로서 선천적 본원인 도덕지를 가리키며, 그것을 사사물물에서 발현하는 것을 치양지라 했다. 따라서 왕수인의 치양지설에서는 주희의 경우와 같이 사사물물에 존재하는 이에 대한 탐구와 심에 존재하는 이의 실천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지와 행은 심에 존재하는 양지의 발현이라는 형태로 처음부터 결합되어 있다./다음백과와 어학사전에서 발췌하여 재정리.
註 00 ; 靈理法 - 신령스런 이치의 원리, 우주 이치의 법칙 또는 질서, 신의 섭리의 법칙
註 00 ; 修人事 待天命 -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다음에, 천명을 기다림.
■ 盡人事待天命 -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이 용어의 출전은「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려라.(盡人事而待天命.)」宋나라 호인(胡寅)의 치당독서관견(致堂讀書管見)이다. 盡人事待天命을 盡人事聽天命이라고도 한다.「사람이 할 일을 다 하고 천명을 기다리라고 했는데, 지금 女道士(仙姑)께서는 참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할 일도 다 하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도록 만들었으니, 어떻게 천명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소?(盡人事以聽天命. 今仙姑旣不能忍, 又人事未盡, 以致如此, 何能言得天命.)」淸나라 이여진(李汝珍)의 《경화연(鏡花緣)》에서
‘선고(仙姑)’는 선경(仙境)에 산다는 신선 할미를 가리킨다. ‘진인사대천명’은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成事在天)’과 기본적으로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자료를 보면 ‘진인사대천명’이 다음과 같이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유비(劉備)와 손권(孫權)의 연합군에게 대패한 조조(曹操)는 겨우 1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패주했다. 제갈량(諸葛亮)은 조조가 퇴각하는 요소요소에 군사들을 매복시켰는데, 그중 화용도(華容道)에 매복했던 관우(關羽)는 과거에 조조에게 입은 은혜가 있어 차마 조조를 죽이지 못하고 길을 내주어 달아나게 했다. 제갈량이 관우를 참수하려고 하였으나 유비의 간청에 못 이겨 관우를 살려 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천문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날 조조에게 은혜를 입었던 관우에게 그 은혜를 갚으라고 화용도로 보냈던 것입니다. 저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쓰고 하늘의 명을 기다렸던 것입니다.(修人事待天命.)”」
이 이야기가 바로 ‘진인사대천명’의 출전이고, 이 이야기에 나오는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이 바로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설명을 달고 있다. 그런데 《삼국연의》의 이 부분을 보면 제갈량이 유비의 간청에 못 이기는 척 관운장을 용서하면서 유비에게 한 말이나, ‘수인사대천명’ 같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각설하고, 관운장(關雲長, 관우)은 조조를 보내 주고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운장만은 홀로 사람 하나, 말 한 필 획득하지 못하고 빈 몸으로 돌아와 현덕(玄德, 유비)을 만났다. 공명(孔明, 제갈량)이 마침 현덕과 함께 축하를 하다가 운장이 왔다는 보고를 받고 자리를 떠나 술잔을 들고 맞이하며 말했다. “장군이 세상을 덮을 만한 공을 세우고 하늘 아래 큰 해악을 제거했으니 기쁘오. 멀리까지 나와 경하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소?” 운장이 묵묵히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공명이 말했다. “장군은 설마하니 우리가 더 일찍 멀리까지 나와 맞이하지 않았다고 즐거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면서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대들은 무슨 까닭에 일찍 보고하지 않았소?” 운장이 말했다. “이 관 아무개가 특별히 죽음을 청하러 왔소이다.” 공명이 말했다. “조조가 화용도 길로 오지 않은 건 아니겠지요?” 운장이 말했다. “그리로 왔소. 그런데 관 아무개가 무능해서 달아나게 놔두고 말았소.” 공명이 말했다. “그러면 어떤 장수나 병졸을 잡아왔소?” 운장이 대답했다. “아무도 잡지 못했소.” 공명이 말했다. “이는 운장이 조조가 베푼 옛 은혜를 생각하여 고의로 풀어 준 것이오. 하지만 군령장이 여기에 있으니 군법에 의하지 않을 수 없구려.” 그러고는 무사에게 운장을 참하라고 큰소리로 명했다. ······ (이상 제50회, 이하 제51회) 각설하고, 공명이 운장을 참형에 처하려고 하자 현덕이 말했다. “옛날 우리 세 사람이 결의를 할 때, 함께 살고 함께 죽자고 맹세했소. 지금 운장이 법을 어겼다고 하지만 차마 이전의 맹세를 어길 수가 없구려. 잠시 과오를 기록해 두었다가 공을 세워 속죄하게 해 주기를 바라오.” 공명은 비로소 (관운장을)용서했다.(却說關雲長放了曹操, 引軍自回. ······ 獨雲長不獲一人一騎, 空身回見玄德. 孔明正與玄德作賀, 忽報雲長至. 孔明忙離坐席, 執杯相迎曰, 且喜將軍立此蓋世之功, 與普天下除大害. 合宜遠接慶賀. 雲長默然. 孔明曰, 將軍莫非因吾等不曾遠接, 故爾不樂樂. 回顧左右曰, 汝等緣何不先報. 雲長曰, 關某特來請死. 孔明曰, 莫非曹操不曾投華容道上來. 雲長曰, 是從那里來. 關某無能, 因此被他走脫. 孔明曰, 拿得甚將士來. 雲長曰, 皆不曾拿. 孔明曰, 此是雲長想曹操昔日之恩, 故意放了. 但旣有軍令狀在此, 不得不按軍法. 遂叱武士推出斬之. ······ 却說孔明欲斬雲長, 玄德曰, 昔吾三人結義時, 誓同生死. 今雲長雖犯法, 不忍違却前盟. 望權記過, 容將功贖罪. 孔明方才饒了.)」
이 이야기는 三國志 제50회의 마지막 부분과 제51회의 첫 부분에 나오는데, 현덕이 간청하자 제갈량이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관운장을 용서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끝을 맺고 있다. 제갈량이 천문을 보고 조조가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라며 관우에게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했다는 말은 제49회에서도 ‘수인사대천명’이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공명은 현덕, 유기(劉琦)와 함께 군막을 세우고 좌정한 후, 조운(趙雲, 조자룡(趙子龍))에게 말했다. “자룡은 삼천 군마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 지름길로 오림(烏林)의 소로로 가 나무와 갈대가 무성한 곳을 골라 매복을 하시오. 오늘 밤 사경 이후에 조조가 반드시 그 길로 도망을 할 것이오. 그들의 군마가 지나가면 반쯤 지나갔을 때 불을 지르시오. 다 죽이지는 못해도 절반은 죽일 수 있을 거요.” 조운이 물었다. “오림에는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남군(南郡)으로 통하는 길이고, 하나는 형주(荊州)로 가는 길입니다. 어느 길로 갈지를 모르겠습니다.” 공명이 말했다. “남군으로 가는 길이 험하기 때문에 조조는 감히 그 길로 가지 못할 거요. 반드시 형주로 간 후에 대군이 허창(許昌)으로 가게 될 것이오.” 조운이 계략을 받아들고 출발했다.
공명은 또 장비(張飛)를 불러 말했다. “익덕(翼德, 장비)은 삼천 병사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 이릉(彛陵)의 길을 끊고 호로곡(葫蘆谷) 입구에 매복하시오. ······ 조조를 잡지는 못해도 익덕의 이번 판의 공이 적지 않을 것이오.” 장비는 계책을 받고 출발했다. ······ 공명이 현덕에게 말했다. “주공께선 번구(樊口)에 둔병하여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며 오늘 밤 주랑(周郞)이 큰 공을 세우는 것을 앉아서 보십시오.”
이때 운장이 옆에 있었지만 공명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운장이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관 아무개가 형장을 따라 작전에 출정하여 여러 해 동안 한 번도 뒤처진 적이 없었소. 그런데 오늘 큰 적을 앞에 두고 군사(軍師)께서는 나를 쓰려고 하지 않으니 이는 무엇 때문이오?” 공명이 웃으며 말했다. “운장은 괴이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아무개가 본래 그대를 가장 중요한 요충지에 보내려고 했으나, 걸리는 일이 있어 감히 가도록 하지를 못하는 것이오.” 운장이 말했다. “무슨 걸리는 일이란 말이오. 빨리 가르쳐 주시오.” 공명이 말했다. “옛날 조조가 그대를 심히 우대했으므로 그대가 보답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오. 오늘 조조가 패하여 반드시 화용도로 지나갈 것이오. 만약 그대를 보내면 분명 그가 지나가도록 풀어 줄 것이오. 그래서 감히 가도록 하지를 못하는 것이오.” 운장이 말했다. “군사께서는 호의를 너무 많이 가지고 계시오. 당시 조조가 아무개에게 무겁게 대해 주었지만 아무개는 이미 안량(顔良)과 문추(文醜)를 베어 백마성(白馬城)의 포위를 풀어 주어 다 갚았소. 오늘 만나게 되면 절대로 놓아 보내지 않으리다.” 공명이 말했다. “만약 놓아주면 어떻게 하겠소?” 운장이 말했다. “군법에 의해 처벌받겠소.” 공명이 말했다. “그렇다면 즉시 문서를 작성하시오.” 운장은 군령장을 주었다. 운장이 말했다. “만약 조조가 그 길로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소?” 공명이 말했다. “나도 그대에게 군령장을 주겠소.” 운장은 크게 기뻐했다.
공명이 말했다. “운장은 화용의 좁은 길 위의 높은 곳에서 땔나무와 풀을 쌓고 불을 붙여 연기를 올려 조조를 그리로 오도록 유인하시오.” 운장이 말했다. “조조가 연기를 보면 매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텐데 어떻게 오려고 하겠소?” 공명이 웃으며 말했다. “병법의 허허실실 이론도 듣지 못했소? 조조가 용병에 능하다고 하나 이번에만은 그를 속일 수 있을 것이오.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허장성세라고 말하고 분명히 이 길로 오게 될 것이오. 장군은 정에 못 이겨 관용을 베풀지나 마시오.” 운장은 명령을 받잡고 관평(關平)과 주창(周倉) 및 5백 명의 교도수(칼을 지닌 병사)를 거느리고 화용도로 매복을 하러 갔다. 현덕이 말했다. “내 아우가 의기를 아주 중히 여겨 만약 조조가 정말로 화용도로 들어오면 진짜로 풀어 주게 될 것이오.” 공명이 말했다. “제가 밤에 천상(天象)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운장에게 인정을 남기도록 하게 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현덕이 말했다. “선생의 신산은 세상에 따라갈 사람이 없구려.”(孔明便與玄德, 劉琦升帳坐定, 謂趙雲曰, 子龍可帶三千軍馬, 渡江徑取烏林小路, 揀樹木蘆葦密處埋伏. 今夜四更已後, 曹操必然從那條路奔走. 等他軍馬過, 就半中間放起火來. 雖然不殺他盡絶, 也殺一半. 雲曰, 烏林有兩條路, 一條通南郡, 一條取荊州. 不知向那條路來. 孔明曰, 南郡勢迫, 曹操不敢往. 必來荊州, 然後大軍投許昌而去. 雲領計去了. 又喚張飛曰, 翼德可領三千兵渡江, 截斷彝陵這條路, 去葫蘆谷口埋伏. ······ 雖然不捉得曹操, 翼德這場功料也不小. 飛領計去了. ······ 孔明謂玄德曰, 主公可於樊口屯兵, 凭高而望, 坐看今夜周郞成大功也. 時雲長在側, 孔明全然不睬. 雲長忍耐不住, 乃高聲曰, 關某自隨兄長征戰, 許多年來, 未嘗落後. 今日逢大敵, 軍師却不委用, 此是何意. 孔明笑曰, 雲長勿怪. 某本欲煩足下把一個最緊要的隘口, 怎奈有些違碍, 不敢敎去. 雲長曰, 有何違碍. 願卽見諭. 孔明曰, 昔日曹操待足下甚厚, 足下當有以報之. 今日操兵敗, 必走華容道. 若令足下去時, 必然放他過去. 因此不敢敎去. 雲長曰, 軍師好心多. 當日曹操果是重待某, 某已斬顔良, 誅文醜, 解白馬之圍, 報過他了. 今日撞見, 豈肯放過. 孔明曰, 倘若放了時, 却如何. 雲長曰, 願依軍法. 孔明曰, 如此, 立下文書. 雲長便與了軍令狀. 雲長曰, 若曹操不從那條路上來, 如何. 孔明曰, 我亦與你軍令狀. 雲長大喜. 孔明曰, 雲長可於華容小路高山之處, 堆積柴草, 放起一把火烟, 引曹操來. 雲長曰, 曹操望見烟, 知有埋伏, 如何肯來. 孔明笑曰, 豈不聞兵法虛虛實實之論. 操雖能用兵, 只此可以瞞過他也. 他見烟起, 將謂虛張聲勢, 必然投這條路來. 將軍休得容情. 雲長領了將令, 引關平, 周倉幷五百校刀手, 投華容道埋伏去了. 玄德曰, 吾弟義氣深重, 若曹操果然投華容道去時, 只恐端的放了. 孔明曰, 亮夜觀乾象, 操賊未合身亡. 留這人情, 敎雲長做了, 亦是美事. 玄德曰, 先生神算, 世所罕及.)」/故事成語 大事典에서 발췌하여 정리함
-----------------------------------------------東學之人生觀 註解書 14-5. 끝.
曰 「爲富면 不仁」이란 陽虎의 말을 칭찬하였고, 「不義로서 富貴하는 것은 내 그를 浮雲과 같이 보노라」한 말과 같이 그의 言行 가운데서 그를 얼마든지 였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평생 마음 가운데 무한한 法悅이 차있었다.「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學而時習之 不亦悅乎」「仁者樂山 知者樂水」「安貧樂道」「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등의 言行은 실로 그의 道的 法悅로부터 솟아나온 喜悅이다. 친구에도 즐겁고 譯書(曆書나 易書의 잘못인 듯-오암)에도 즐겁고 산도 물도 가난도 심지어 曲肱가운데도 樂이 있었다. 그의 樂은 內的으로 존재한 法悅이므로 무엇이든지 樂이 없는 곳이 없다는 것을 說破한 기록이다./ PP.174-177.
註 00 ; 爲富면 不仁 - 성간이 제 경공에게 말하길 그도 대장부이고 나도 대장부인데 내 어찌 그를 두려워하겠는가. 양호가 말하길 치부를 하면 인자하지 못하고 인을 행하면 치부를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成覵이 謂齊景公曰 彼丈夫也며 我丈夫也니 吾何畏彼哉리오 陽虎曰 爲富면 不仁矣오 爲仁이면 不富矣라 하니이다./ 『孟子』 梁惠王 章句 上.
■ 陽虎의 亂 / 『論語』 陽貨篇을 참조바람.
■ 孟子는 滕나라 文公에게 정치의 근본은 백성들의 生業을 안정시키는 데 있으므로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과도하게 걷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고서 魯나라 陽虎의 말을 인용해 貪慾과 仁政은 兩立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陽虎는 곧 陽貨로, 춘추시대 노나라 季氏의 가신으로서 국정을 장악했던 인물이다. ‘논어’ ‘양화’편에 보면 양화는 공자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돼지를 공자에게 선물했다. 공자는 양화가 없는 틈을 타 그의 집으로 가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오다가 양화를 만났다. 양화는 “보배로운 재주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나라의 혼란을 내버려둔다면 어질다고 할 수 있겠소?”라고 했다. 공자는 무도한 양화를 섬길 수가 없어서 막연하게 “내가 장차 나아가 벼슬하겠소”라고 말했다.
‘爲富면 不仁矣오 爲仁이면 不富矣라’는, 위정자가 富를 추구하면 필시 어질지 못하게 되고 거꾸로 어진 정치를 행하면 부유하게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양호는 仁政을 행하면 위정자가 부유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이 對仗(대장)으로 표현했으나, 맹자는 위정자가 부유하려 하다 보면 仁政을 행할 수 없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했다. 주자(주희)는 天理와 人慾은 병립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소인은 인욕을 따르므로 어질고자 하면 부유하게 될 수 없고, 군자는 천리를 따르므로 부유하려다 보면 어질지 못하게 된다고 구분했다. 하지만 천리와 인욕이 반드시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부유하면서도 기부 등 선행을 하는 사람도 많다. 공자는 ‘논어’ ‘里仁’편에서 ‘君子는 喩於義(유어의)하고 小人은 喩於利(유어리)니라’라고 했을 따름이다. 군자는 義에 밝아서 일마다 義를 표준으로 삼지만 소인은 利에 밝아서 일마다 利를 표준으로 삼는다고 한 것이다.
‘爲富不仁矣’라는 것은 앞서의 ‘焉有仁人在位 罔民而可爲也’라는 말과 호응한다. ‘爲仁不富矣’는 것은 ‘賢君必恭儉禮下取於民有制’라고 했던 말과 호응한다고 봄이 옳다
./http://news.donga.com/3/all/20111223/42820739/1#csidx78470722ca4fe3 edacf56fa34c7006f5
註 00 ; 不義으로 얻은 부와 귀는(浮雲富貴) - “나물죽을 먹고 찬물을 마시며 팔을 베고 누웠어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不義)으로 얻은 부와 귀는 내게는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같다.”/子曰:[飯疏食,飲水,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不義而富且貴,於我如浮雲/ 『論語』述而篇.
註 00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나서 수시로 익힌다면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먼 곳에서 (학문적 뜻이 맞는) 친구가 찾아와 준다면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않겠는가?/ 이것을 孔子의 君子三樂이라고도 한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論語』學而篇. / ※ 『論語』는 약 1 만 6,000여 자의 내용은 군자에서 시작해서 군자로 끝난다고 보면 된다. 107회에 달하는 ‘君子’란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사상에 대하여 언급했기 때문이다. ‘君子’란 유교에서 '성품이 어질고 학식이 높은 지성인'을 가리키거나, 군자란 자발적으로 꾸준한 노력 에 의해서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참된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龜鑑(귀감)이 되는 사람을 가리킨다./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 孔子의 君子三益과 孟子의 君子三樂 - 孔子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세 가지 ‘즐김’과 손해를 끼치는 세 가지 ‘해로움’을 말했다. 군자에게는 유익한 세 가지 즐김과 해로운 세 가지 즐김이 있다. 예악을 절도에 맞게 행하는 것을 즐기고, 남의 선을 말하기를 즐기며, 어진 벗을 많이 가지기를 즐기는 것은 이롭다. 교만방탕의 즐거움을 즐기고, 편히 노는 즐거움을 즐기며, 잔치의 즐거움을 즐기는 것은 해롭다./益者三樂, 損者三樂. 樂節禮樂, 樂道人之善, 樂多賢友, 益矣. 樂驕樂, 樂逸樂, 樂宴樂, 損矣.」/《論語)》季氏篇.
孟子는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왕이 되어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여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고 형제들이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땅을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들을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愧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孟子 》盡心章 上.
註 00 ;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활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평정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즐길 줄 알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知者樂水, 仁者樂山가 仁者樂山 知者樂水로 뒤바뀜.『論語』雍也篇
註 00 ;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 공자가 말하기를,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꿈치를 굽혀 베개를 삼아도, 즐거움은 바로 그 가운데 있다. 의롭지 못하게 부유하고 귀한들 나에게는 뜬구름 같은 것이니라. /子曰飯疏食(자왈반소사)에 飮水(음수)하고 曲肱而枕之(곡굉이침지)라도 樂亦在其中矣(낙역재기중의)니 不義而富且貴(불의이부차귀)는 於我如浮雲(어아여부운)이니라/『논어論語』述而篇 15章.
■ 중국 상고시대부터 전해지는 격양가(擊壤歌)가 있다. /일설에는 요임금에 얽힌 이야기라 한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日出而作日入而息)/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으니(鑿井而飮 耕田而食)/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랴(帝力于我何有哉).” 한 노인이 길가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들기고, 또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장단에 맞추어 불렀다고 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의 요체(要諦)는 제왕의 다스림에 대한 고마움을 전혀 느끼기조차 못하게 하는 정치가 진실로 위대한 정치라는 것이다. 이는 장자가 말하는 ‘다스림의 최고 경지’이기도 하다./관련 자료들에서 정리.
註 00 ; 毁與褒貶 - 칭찬(稱讚)하고 비방(誹謗)하는 말과 행동을 의미하는 훼예포폄(毁譽褒貶)의 잘못인 듯. 毁譽褒貶은 일반적으로 세간의 평판을 의미하는 일본의 四字成語이다./포폄(褒貶/옳고 그름이나 착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 또는 관리의 근무 성적을 고과하여 그 벼슬을 올리고 내리는 일/조선시대 관리의 근무성적 평가제도 -오암.)
■ 인도포폄(人道褒貶)-최한기(崔漢綺)
人道侵害(인도침해)嚴懲堤坊(엄징제방)人道補益(인도보익)激勸褒揚(격권포양)卽人道中褒貶也(즉인도중포폄야)亦人道之修明也(역인도지수명야) :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인도를 침해하는 자는 엄격하게 막고 징계하며 인도에 보탬이 되는 자는 권장하고 포양(褒揚)하는 것이 인도를 포폄(褒貶/옳고 그름이나 착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 또는 관리의 근무 성적을 고과하여 그 벼슬을 올리고 내리는 일/조선시대 관리의 근무성적 평가제도 -오암.) 하는 것이며 인도를 수명(修明)하는 길이다.
若不有褒貶修明(약불유포폄수명)而惟有人道云人道云(이유유인도운인도운)竟何益焉(경하익언)人生大道(인생대도)統合天下人民而成其道(통합천하인민이성기도)非擧一家一國而名人道也(비거일가일국이명인도야)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만약 인도를 포폄 수명하지 못하고 오직 말로만 인도를 찾는다면, 끝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인생의 대도(大道)는 천하 인민을 통합하여 그 도를 이루는 것이요, 한 가정 한 나라만을 가지고 인도라 이름한 것이 아니다.
一褒而天下皆褒(일포이천하개포)乃大同人道之褒(내대동인도지포)一貶而天下同貶(일폄이천하동폄)乃大同人道之貶(내대동인도지폄)若半天下褒(약반천하포)而半天下貶(이반천하폄)非大同人道之褒貶也(비대동인도지포폄야)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한 사람을 포상한 것이 천하의 포상으로 되는 것이 대동적인 인도의 포상이며, 한 사람을 폄하는 것이 천하의 폄으로 되는 것이 대동적인 인도의 폄이다. 천하의 반은 포상되고 반이 폄되면 이는 대동적인 인도의 포폄이 아니다.
五倫修行(오륜수행)天下豈有不褒者(천하기유불포자)五倫傷害(오륜상해)天下豈有不貶者乎(천하기유불폄자호)民安其分(민안기분)天下豈有不褒者(천하기유불포자)擾民不安(요민불안)天下豈有不貶者乎(천하기유불폄자호) :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오륜(五倫)을 수행하면 천하에 포상하지 않을 사람이 어찌 있을 것이며, 오륜을 해치면 천하에 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백성이 제 분수를 편히 지키게 하면 천하에 포상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백성을 불안하게 하면 천하에 폄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政敎公明(정교공명)綱紀振刷(강기진쇄)天下皆褒(천하개포)政敎渾暗(정교혼암) 綱紀紊亂(강기문란)天下皆貶(천하개폄)賢俊登庸(현준등용)豈有非之者(기유비지자)奸佞肆行(간녕사행)豈有是之者乎(기유시지자호)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정교(政敎)가 공명하고 기강(紀綱)이 쇄신되면 천하가 다 포상하며, 정교가 혼암(渾暗)하고 기강이 문란하면 천하가 다 폄한다. 현준(賢俊)이 등용되면 어찌 비난할 자가 있겠으며, 간사하고 아첨한 자가 횡행하면 옳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行事善惡(행사선악)所以勸懲人道也(소이권징인도야)天下褒貶(천하포폄)所以修明人道也(소이수명인도야)測人之術(측인지술)至人道而止善(지인도이지선)人道之大(인도지대)得褒貶而止善(득포폄이지선)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행사의 선악의 구별은 인도를 권징(勸懲)하는 것이며, 천하의 포폄은 인도를 수명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을 헤아리는 기술은 인도에 이르러 선에 그치는 것이고 인도의 큰 것은 포폄을 얻어 선에 그치는 것이다.
註 00 ; 壽富貴多男子 - 壽富多男子의 활용이거나 잘못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관련된 이야기는 『莊子』 外篇 第12篇 天地에 있다.
華封人들이 오, 성인이시여, 삼가 임금님의 장래를 축수하겠습니다. 華封人들이 요임금도 오래 살고 부자가 되고 자식을 많이 두라는 축복을 사양하여 ‘자식이 많으면 두려움이 많고 부자가 되면 일이 많고 오래 살면 치욕스러운 일이 많아진다.(華封人曰 噫 請祝聖人 使聖人 壽富多男子 堯曰辭 多男子則多懼 富則多事 壽則多辱)라고 하며 사양하였다. /「장자」천지편에 나온 '華封三祝(화봉삼축)'고사에서, 요 임금이 華(화)지방을 순시할 때 그곳을 지키던 華封人(화봉인)이 나와 세 가지를 축원한 華封三祝(화봉삼축)에서 유래 된 말로, 堯임금에게 세 가지를 축원하였다. 이때 화봉인이 말하기를 "聖人(요임금)에게 축원하오니 오래 사십시오."하니 요임금은 "싫다"하였다. 이어 화봉인이 "부자가 되십시오."하니 요임금은 다시 "싫다"하였다. 이어 화봉인이 "자손을 많이 두십시오."하니 요임금이 "싫다" 하였다. / 使聖人壽 使聖人富 使聖人多男子. 다시금 화봉인이 “壽辱多(오래 살기를 바라고(壽), 부자 되기를 바라고(辱,) 자식을 많이 두기를 바람(多)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바인데 어찌 혼자만 싫다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하니, 다시 말하길 ‘오래 사는 것은 욕됨이 많고, 부자는 일이 많고, 자식을 많이 둠은 걱정이 많으므로 이 세 가지 덕을 기르는 것은 所以(소이)가 아니다.’라 말 하였다.
■ 莊子(外篇) 第12篇 天地.의 原文.의 註解.
요 임금이 華(화)지방을 순시할 때 그곳을 지키던 華封人(화봉인)이 나와 성인께서는 오래 오래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국경을 지키는 사람이 말했다. “성인께서 부자가 되도록 하여 주십시오.”
요임금이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국경지기가 말했다. “성인께서 많은 아들을 낳게 하여 주십시오.”
요임금이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그러자 국경지기가 말했다. “오래 살고, 부자가 되고, 많은 아들을 낳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일입니다. 홀로 그것을 원하지 않으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요임금이 말했다.
“아들이 많으면 근심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면 일이 많아지고,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아집니다. 이 세 가지 것들은 덕을 기르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어서 사양하는 것입니다.”
국경지기가 말했다.
“처음에 나는 당신을 성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군자 정도에 지나지 않는군요. 하늘은 모든 사람을 낳고 그들에게 합당한 직분을 줍니다. 아들이 많다 해도 그들에게 직분이 주어지는데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부자가 된다 해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면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성인이란 메추리처럼 일정한 거처도 없고, 병아리처럼 부실하게 먹으면서도 새처럼 날아다니며 행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천하에 올바른 도가 행하여지면 모두가 번창하지만 천하에 도가 행하여지지 않을 때에는 덕이나 닦으면서 한가히 지냅니다. 천년이나 세상을 피해 살다가 세상을 떠나 신선 세상으로 올라갑니다. 하늘의 흰 구름을 타고서 하느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는 것이지요. 앞의 세 가지가 환란으로써 닥쳐올 수가 없으며 몸에는 언제나 재앙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욕된 일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국경지기가 떠나가자, 요임금이 뒤따라가면서 말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국경지기가 말했다. “물러가시오.” 더 드릴 말이 없습니다. / 莊子(外篇) 第12篇 天地.의 原文.
堯觀乎華.華封人曰:「嘻. 聖人, 請祝聖人.「使聖人壽.」堯曰:「辭.」「使聖人富.」堯曰「辭」使聖人多男子.」堯曰:「辭.」 封人曰:「壽.富.多男子.人之所欲也, 女獨不欲, 何邪?」 堯曰:「多男子則多懼, 富則多事, 壽則多辱. 是三者, 非所以養德也, 故辭.」封人曰:「始也我以女爲聖人邪, 今然君子也. 天生萬民, 必授之職, 多男子而授之職, 則何懼之有? 富而使人分之, 則何事之有! 夫聖人, 鶉居而鷇食, 鳥行而无彰, 天下有道, 則與物皆昌. 天下无道, 則修德就閒. 千歲厭世, 去而上倦. 乘彼白雲, 至於帝鄕. 三患莫至, 身常无殃. 則何辱之有!」 封人去之. 堯隨之, 曰:「請問?」 封人曰:「退已!」
註 00 ; 富則多事 多事則多憂 多憂則多苦이니 富의 喜悅과 多事 多苦의 번뇌 중 어느것이 행복이 될 것인가? 壽則多辱이라 했으니 辱則 生苦 老苦 病苦를 이름이다.- 위 문장은 出典未詳의 문장으로, 야뢰가 堯曰:「多男子則多懼, 富則多事, 壽則多辱. 是三者, 非所以養德也, 故辭.」의 문장 내용을 바탕으로 추론한 것으로 보인다./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사람이 부귀해졌다는 것은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고, 일이 많아졌다는 것은 근심걱정거리가 많아졌다는 것이고, 근심걱정거리가 많아졌다는 것은 고뇌가 많아 졌다는 것이니 부귀의 희열과 다사 다고의 번뇌 중에 어느 것이 더 행복할 것인가? 壽則多辱이라 했으니, 삶이 욕되고 수고로워진다는 것은, 생활고와 늙고 병드는 고통을 말하는 것이다.
註 00 ; 許由 巢父(소보 또는 소부) - 중국 하남성(河南省) 등봉현(登封縣) 동남쪽에 있는 기산(箕山)은, 요임금 때의 고사(高士)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은둔했던 산이다. 허유(許由)는 본시 중국의 패택(沛澤)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던 어진 은자(隱者)였다. 그는 바르지 않은 자리에는 앉지도 않았고, 부정한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의(義)를 지키면서 살았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요임금은 천하(王位)를 그에게 물려주려고 찾아갔다. 이 제의를 받은 허유는 거절하며 말하였다. / 『莊子』의 逍遙遊, 徐無鬼, 襄王 등의 편에 기술됨.
"이렇게 천하를 잘 다스리신 요임금을 어찌하여 볼품없는 저 같은 자가 이를 대신하여 자리에 오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말없이 기산(箕山) 밑을 흐르는 영수(穎水) 근처로 가버렸다. 요임금이 다시 구주(九州 : 중국 전토)라도 맡아 달라고 청하자 허유(許由)는 이를 거절하고 '구질구질한 말을 들은 내 귀가 더러워졌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아무 말 없이 자기의 귀를 흐르는 영수(穎水) 물에 씻었다. 이 때 소부(巢父)가 조그만 망아지 한 마리를 앞세우고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며 그 광경을 보고 허유(許由)에게 물었다. "왜 갑작스레 강물에 귀를 씻으시오?"라 묻자 허유는 "요임금이 찾아와 나더러 천하나 구주(九州)라도 맡아 달라고 하기에 행여나 귀가 더러워지지 않았을까 하고 씻는 중이요". 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자 소부(巢父)는 "하, 하, 하!" 하며 목소리를 높여 크게 웃는 것이었다. "여보, 소부(巢父)님 왜 그리 웃으시오?" 하고 허유가 민망스러워하며 묻자 소부는 " 숨어 사는 은자(隱者)라는 것은 애당초부터 은자라고 하는 이름조차 밖에 알려지게 하여서는 아니 되는 법이오. 한데 그대는 여지것 은자라는 이름을 은근히 퍼뜨려 명성을 얻은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서는 소부는 망아지를 몰고 다시 영수(穎水)를 거슬러 올라가더니 망아지에게 물을 먹이며 말하였다. "그대의 귀를 씻은 구정물을 내 망아지에게 먹일 수 없어 이렇게 위로 올라와 먹이는 것이요” 뒤에 허유가 죽자 요임금은 기산에 허유를 묻어주고 그의 무덤을 기산공신(箕山公神)이라 하였다. 이 두 고사(高士)의 절개와 지조를 이른바 기산지절(箕山之節) 또는 기산지조(箕山之操)라 하였다. 천하를 호령하는 천자의 자리도 더럽게 여기며 숨어사는 현자 소부와 허유가 사는 산천을 우리 조상들은 다음과 같이 상상하였다 한다.
층암절벽상(層巖絶壁上)의 폭포수는 콸콸,
수정렴(水晶簾) 드리운 듯,
이 골 물이 주룩주룩, 저 골 물이 솰솰,
열의 열골 물이 한데 합수하여
천방져 지방져 소쿠라져 펑퍼져 넌출지고 방울져,
건너 병풍석으로 으르렁 콸콸 흐르는 물결이 은옥(銀玉)같이 흩어지니
소부 허유 문답하던 기산영수(箕山潁水)가 예 아니냐/ 十二雜歌의 하나인 作者未詳의「遊山歌」중에서
■ 十二雜歌 - 잡가의 한 갈래로 서울·경기도 지방에서 불리던 12가지 노래. 사설이 길다는 뜻에서 긴잡가 라고도 하며, 앉아 부르기 때문에 좌창이라고도 한다. 〈유산가 遊山歌〉·〈적벽가 赤壁歌〉·〈제비가〉·〈소춘향가 小春香歌〉·〈집장가 執杖歌〉·〈형장가 刑杖歌〉·〈평양가 平壤歌〉·〈선유가 船遊歌〉·〈月令歌/달거리〉·〈십장가 十杖歌〉·〈방물가 房物歌〉·〈출인가 出引歌〉이다.〈유산가〉에서 〈선유가〉까지를 8잡가라 하고, 〈달거리〉 뒤의 4가지 잡가를 잡잡가라고도 한다. /백과전 등에서 발췌하여 정리함.
석가는 본래가 萬乘의 位(天子 또는 帝王의 자리-오암)라는 권세와 물질적 행복을 廢履(헌 신짝 버리듯이-오암)같이 버리고 六年 苦行을 자진하여 체험하리 만치 그는 물질적 희열의 본질을 人生苦의 원인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영원한 불변의 法悅을 얻기 위하여 生死의 原理를 大覺하였다. 그리하여 法悅의 빛은 眉間으로 솟아 나와 三千大天世界를 덮었다는 상징적 大歡喜를 獅子吼하였다. 지금 佛像의 偶像 위에 나타나 있는 面點을 보아도 大歡喜의 기분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感이 있다.
法悅의 境涯를 가장구체적 기분적으로 표현한 이는 수운선생이다. 수운선생이 지은 歌詞八篇은 교훈인 동시에 法悅을 나타낸 글이다. 敎訓歌 중 一節에 曰「이 말씀 들은 후에 心 獨喜 自負)로다」「喜樂은 벗을 삼고 苦生은 喜樂이라」이 말씀은 降話之敎라는 內的 降神的으로 솟아 나오는 內有神靈의 至上命令이다. 心 獨喜는 他人과 같이 기뻐할 수 없는 內的 直覺, 直觀的 喜悅이다. 自負는 人格的 自身을 이름이다. 法悅이란 것은 오히려 無人靜夜(아무도 없는 고요한 밤-오암)에 혼자서만 느낄 때에 한층 자부심이 나는 것이다. 음식의 맛은 먹는 사람 혼자만이 아는것과 같이 정신적 法悅의 맛도 圓滿太極的 氣化神의 감응이다. 劍歌에 曰「時乎 時乎 이내 時乎 不再來之 時乎로다. 萬世一之丈夫로서 五萬年之 時乎로다 龍泉劍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舞袖長衫 떨쳐 입고 이 칼 저 칼 넌즛 들어, 浩浩茫茫 넓은 天地 一身으로 비껴서서, 칼 노래 한 곡조를 時乎 時乎 불러내니, 龍泉劍 날랜 칼은 日月을 戱弄하고 게으른 舞袖長衫 宇宙에 덮여있네, 萬古名將 어디 있나 丈夫當前 無壯士라,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 身命 좋을시고」이것은 氣化的 降神을 부르짖는 法悅의 詩歌다. 時乎 時乎는 此生의 성공을 이름이다. 此生四十平生의 단명으로 五萬年의 理想을 가진 無極大道 大德無爲和氣를 믿는 聖雄大丈夫의 氣分이었다. 龍泉劍은 聖勇(聖人의 勇氣-오암)을 표시한 것이며, 舞袖長衫은 學德을 표시한 것이다. 前者는 强을 意味한 것이며 後者는 柔를 표시한 것이다. 無限大의 大宇宙와 無限小의 此一身, 이 얼마나 모순적 대조이냐? 그러나 無限小의 此一身 가운데는 無限大의 大宇宙가 道的으로 들어 있다. 日光은 龍泉劍 끝에 달린 戱弄物이고, 우주는 舞袖長衫 속에 싸여있는 한개의 寶玉이다. 萬國都城은 蟻垤(개미집-오암)이오 千家豪傑(수많은 호걸-오암)은 하루살이다. 萬古名將(오랜 역사 속에서 잘 알려진 명장들-오암)아 있거든 나오너라 壯士 앞에 다시 壯士가 있을소냐. 壯絶, 奇絶한 大宇宙 大法悅의 용솟음이었다. 이 劍歌(劍訣이라고도 함. 가사 팔편에는 들어가지 않음-오암)의 진미를 음미하는 자라면 누구나 法悅的 手舞足蹈(기뻐 손을 흔들고 발을 들어 춤추는 것-오암)를 禁치 못할 것이다. 法悅은 獨喜(홀로 기뻐하는 것-오암) 自負 만을 주로 하는 것이 아니오 물이 웅덩이에 넘쳐 흐르는 것과 같이 필경 與人同樂(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즐거워하는 것-오암)이 되어진다. 이것이 布德이요 道會 卽 敎會이다. 또 말하되
「그제야 이날부터 부처가(부처간) 마주 앉아 이 말 저 말 다한 후에 희희락락(희희낙담) 그 뿐일세/경전 중 교훈가 대조-오암)」「通開重門/洞開重門하여 두고 오는 사람 가르치니 不勝堪當 되었더라 현인군자 모아(여)들어 명명기덕 하여내니 성운성덕 분명하다/경전 중 교훈가 대조-오암)」「秦始皇 漢武帝가 무엇 없어 죽었던(는)고 내가 그 때 났었다(더)면 불사약을 손에 들고 조롱만상 하올것을 늦게 나니 한이로세(다), 좋을시구(고) 좋을시구(고) 이내신명 좋을시구(고)/경전 중 안심가 대조-오암)」라고 하였다. 첫절은 夫妻間이 새로운 法悅 가운데서 즐거워 하는 상태이고 布德이 늘어 法悅의 同德이 많아 질수록 不勝其樂케 된다. 이러한 無量大福의 大法悅은 秦始皇 漢武帝의 地位로서 바꾸어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法悅의 大理想은 우주 자신을 理想化하여 三千大天世界를 燃燒하는 횃불이다. 禍가 무엇이며 福이 무엇인가? 苦가 무엇이며 樂이 무엇인가? 그러한 福은 禍를 초월한 樂이며 그러한 樂은 苦를 초월한 樂이다. 念의 造化로 극치에 이르면 神의 裏에 달하는 것이다. PP.177-180.
註 00 ; 三千大天世界 - 줄여서 三千世界라고도 말하며, 불교에서 삼천대천세계는 우주를 말한다. 고대 인도인의 世界觀에 따른 全體 宇宙(미산을 중심으로 한 우주)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하나의 태양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세계를 一小世界(일소세계)라 하는데 여기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七山八海(칠산팔해)를 交互(교호)로 번갈아 두르고 鐵圍山(철위산)을 가장 밖에 있는 외곽으로 한 세계를 말한다. 그래서 九山八海(구산팔해) 즉, 아홉 산과 여덟 바다인데 그 이름이 다 있다. 현대 천문학에서도 太陽系 밖에 銀河系가 또 끝없이 많이 전개된다고 한다.
■ 三千 大千 世界 - 하나의 태양계를 중심으로 여러 유성이 도는 한 단위의 세계 즉 一小世界로, 須彌山을 中心으로 七山八海를 交互(교호)로 두르고 鐵圍山을 外廓으로 한 世界를 말항다. (하나의 태양 중심으로 한 세계). 하나의 一小世界(일소세계)에는 하나의 태양, 달, 염파제, 위타니, 울담과 월, 불파제, 수미산, 사천왕, 장소, 삼십삼천, 야마천, 도솔타천, 화자재천, 대범천이 있음
小千世界(소천세계) : 一小世界(태양등이 각각 천개씩 존재함)를 천개 합한 수의 세계 → 千小世界
中千世界(중천세계) : 一小千世界를 천개 합한 수의 세계 → 百萬小世界. 이 소천 세계가 천이 모여 이천중천세계(二天中天世界)를 이룸
大千世界(대천세계) : 一中千世界를 천개 합한 수의 세계 → 十億小世界. 이 이천중천세계 천이 모인 것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라고 함. 즉 大千世界(대천세계)는 수치로 보면 십억소세계(十億小世界)임
註 00 ; 獅子吼 - 사자의 울부짖음. 큰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태어나시자마자,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시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시며 일곱 발자국을 떼시고 사방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시기를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우주 속에 나보다 더 존귀한 것은 없다.)’이라고 하셨다.」
이 이야기는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도솔천에 태어나시어, 손을 나누어 하늘과 땅을 가리키시며 사자후의 소리를 내셨다.(牟尼佛生兜率天, 分手指天地, 作獅子吼聲.)」또한 《유마경(維摩經) 〈불국품(佛國品)〉》에서는 「석가모니 설법의 위엄은 마치 사자가 부르짖는 것과 같으며, 그 강설은 우레가 울려 퍼지는 것과 같았다.(演法無畏, 猶獅子吼. 其所講說, 乃如雷震.)」고 기록하고 있다.
‘사자후’는 뭇 짐승들이 사자의 울부짖음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듯이 석가의 설법 앞에서는 모두 마음을 사로잡힌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말이었는데, 현재는 주로 열변을 토해 내는 것을 비유할 때 사용되며, 때로는 앙칼진 목소리로 대드는 아내를 뜻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註 00 ; 面點 -얼굴에 난 주근깨를 말하나, 부처님의 眉間의 點을 의미한다.
註 00 ; 聖勇義知仁 - 春秋時代에 孔子에게 호통을 쳤던 盜跖은 大盜의 魁首답게 도둑에게도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며 聖勇義知仁의 다섯 가지 도를 지니지 못하면 큰 도둑이 될 수 없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도둑을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을 일컫는 君子에 비유한 것은 비아냥거린 표현일 수밖에 없기에 이 말이 더 많이 애용됐을 것이다. 도둑을 梁上君子(대들보위에 숨은 도둑-오암)라 한 것은 '後漢書'의 陳寔傳에서 비롯됐다.
도둑의 聖勇義知仁이란, 聖은 훔칠 물건이 많은 부자집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통찰력이나 예측, 선견지명이고, 勇이란 남보다 먼저 담장을 넘을 수 있는 용기, 난간에 부닥쳤을 때 해쳐나가는 용기이며, 義는 도둑질을 하고 현장을 빠져나올 때 조직을 위해 맨 뒤에 나오는 희생정신이이고, 知란 도둑질을 할 때 정보와 지식으로 귀중품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후각 능력이이며, 仁은 훔친 물건을 배분할 때 아래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윗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요구함이다, 그러나 은혜와 의리는 반드시 보답하고, 許諾한 일은 반드시 移行하며, 천리 먼 곳에서도 신의를 지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의 평판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聖勇義知仁을 갖춘 사람이, 炎凉世態에서 曲學阿世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현실에서 도둑들이 아닌, 세상 사람들을 대하는데 필요한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닐까?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四 念과 業因; P.181.
念은 此生의 福을 창조할 뿐 아니라 來世 禍福의 業因도 된다. 이것을 일러 인간의 운명이라 하며 사회의 운명이라 한다. 社會과 前社會의 業因으로부터 後社會의 운명을 豫測하는 것과 같이 個性도 前生의 業因이 今生의 운명이 되며 今生의 業因이 來世의 운명을 창조하는 것이다.
業因은 念에 結晶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念은 行과 合一되는 것이다. 念이 卽地(일이 진행되는 바로 그 때. 또는 그 자리. 卽席, 卽座-오암)에 行과 合一되는 것도 있고 잠재의식으로 서서히 行과 合一되는 것도 있다. 卽地的 念行合一은 가까운 시간 중에서 사실로 나타나는 현상이요 잠재의식으로 서서히 行과 合一되는 것은 幾十年 또는 死後 來世에 가서 事實로 나타난다. 고로 業因을 廣義로 말하면 어제의 행위가 오늘의 報酬로 速決되는 것은 日時間의 業因이라 할 수 있고 수십년 전의 잠재의식적 念行이 수십년 후에 나타나는 것은 現世的 業果라 할 수 있으며 前生의 業因이 今生의 業果가 되고 今生의 業因이 來世의 業果가 되는 것을 生死의 因果라 한다. 萬一 三生의 因果가 業因의 법칙대로 一律不變(사물의 상태나 어떤 일을 하는 방법 따위가 한결같이 변하지 않음-오암)하게 流轉된다면 人生 一個人의 운명은 永劫을 가도 풀릴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주 靈理法에서 생긴 것이므로(人生에 限하여) 인간에게는 自由意志의 특권을 부여한 것이다. 自由意志의 특권은 前生 業因을 취소 멸망케 하는 특권을 절대로 가지지 못하나 그러나 今生의 생활에 있어 前生 業因과 調和타협할 가능성이 있는 고로 운명의 개조는 어떤 善念 善行에 依하여 확실히 개조될수 있다. 즉 今生의 念은 前生 業因과 今生의 自由 意志에 의하여 善念 善果, 惡念 惡果의 새 業因을 지을 수 있다. 이것이 곧 修人事 待天命의 원리이다. 이 점에서 인간 세계에는 도덕이 있게 되고 도덕을 가르치는 종교나 道學 修鍊의 敎가 있게 된다./ PP.181-182.
註 00 ; 業因 - 불교용어로, 업인이란, 善惡행위로 인한 과보(果報)를 일으키는 원인을 말하고, 果報란 사람이 과거에 지은 선악의 인업(因業)으로 인하여 생기는 업보(業報)를 말한다.
註 00 ; 念行合一 - 念行合一은 야뢰가 念과 業因을 설명하기 위하여 任意로 만든 新造語로서 인간의 본질적인 생각과 그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念과 行이 合一되듯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라고 추측된다. 일반적으로는 知行合一, 知行一致, 言行一致 등등으로 사용한다.
■ 知行合一 - 유교에서는 일찍부터 인간의 인식과 실천의 상호관련성을 설명했는데, 그것이 지행론의 형태로 체계적인 탐구의 대상이 된 것은 성리학이 발흥하면서부터이다. 주희는 "지가 행보다 앞서는 것이지만 중요성은 오히려 행에 있다"고 하여 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왕수인은 지와 행이 본래 합일되어 있음을 주장하면서 주희의 지행론이 애초 분리될 수 없는 지와 행을 분리했다고 비판하고, 그 대신 지행합일론을 내세웠다. 주희의 지행론이 마음속에 존재하는 이의 실천, 즉 행이 사사물물에 존재하는 이(理)를 인식하는지의 결과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는 당위를 말하는 것이라면, 왕수인의 지행합일론은 지와 행 양자의 근원적 통일성을 말하는 것이다. 왕수인에 의하면 지와 행은 심에 존재하는 양지의 발현이라는 형태로 처음부터 결합되어 있다.
유교에서는 일찍부터 인간의 인식과 실천의 상호관련성을 설명했는데, 그것이 지행론(知行論)의 형태로 체계적인 탐구의 대상이 된 것은 성리학이 발흥하면서부터이다. 주희(朱熹)의 지행론은 흔히 선지후행론(先知後行論)이라고 하듯이, 궁리와 함양(涵養), 또는 치지(致知)와 역행(力行), 도문학(道問學)과 존덕성(尊德性)을 각각 지와 행의 내용으로 이해하면서 궁리·치지·도문학이 함양·역행·존덕성에 앞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희도 "지가 행보다 앞서는 것이지만 중요성은 오히려 행에 있다"고 하여 행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지와 행을 함께 힘써야 한다는 지행병진론을 주장했다.
■ 주희(朱熹/Chu Hsi) - 성리학(주자학)을 창시하여 완성시킨 인물. 그러나 왕수인은 지와 행이 본래 합일되어 있음을 주장하면서 주희의 지행론이 애초 분리될 수 없는 지와 행을 분리했다고 비판하고, 그 대신 지행합일론을 내세웠다. 주희의 지행론이 마음속에 존재하는 이의 실천, 즉 행이 사사물물(事事物物)에 존재하는 이를 인식하는지의 결과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는 당위를 말하는 것이라면, 왕수인의 지행합일론은 지와 행 양자의 근원적 통일성을 말하는 것이다. 왕수인의 학문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주희의 격물설(格物說)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 왕수인(王守仁) - 중국 명나라 중기의 유학자인 왕양명의 중심적 주장으로, 도덕적 지식과 실천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명을 건국한 홍무제는 몽골족의 풍습을 폐지하고, 성리학(주자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명이 도덕적 통치를 위해 성리학을 강요하고, 성리학을 과거 합격을 위한 학문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화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실천을 강조하는 양명학이 등장하였다. 왕양명은 마음이 곧 만물의 원리라는 심즉리 명제를 만들었고, 인간은 본질적으로 평등하므로 태어났을 때의 착한 마음을 수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하였다. 심즉리 사상은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보다는 개인의 깨달음과 실천(지행합일)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왕양명의 사상은 사대부 계층뿐만 아니라 서민과 상공업자들에게도 큰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지나친 공론화로 흐르는 폐단도 나타났다. 그는 주희가 격물을 사사물물에 존재하는 이에 대한 탐구로 이해하는 것을 비판하고, 이는 심(心)에서만 존재하며 그 심에 존재하는 이에 의해 물을 바로잡는 것이 격물이라고 했다. 왕수인의 이러한 격물설과 심즉리설을 통합한 이론이 치양지설(致良知說)이다. 양지(良知)는 심에 존재하는 이로서 선천적 본원인 도덕지를 가리키며, 그것을 사사물물에서 발현하는 것을 치양지라 했다. 따라서 왕수인의 치양지설에서는 주희의 경우와 같이 사사물물에 존재하는 이에 대한 탐구와 심에 존재하는 이의 실천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지와 행은 심에 존재하는 양지의 발현이라는 형태로 처음부터 결합되어 있다./다음백과와 어학사전에서 발췌하여 재정리.
註 00 ; 靈理法 - 신령스런 이치의 원리, 우주 이치의 법칙 또는 질서, 신의 섭리의 법칙
註 00 ; 修人事 待天命 -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다음에, 천명을 기다림.
■ 盡人事待天命 -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이 용어의 출전은「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려라.(盡人事而待天命.)」宋나라 호인(胡寅)의 치당독서관견(致堂讀書管見)이다. 盡人事待天命을 盡人事聽天命이라고도 한다.「사람이 할 일을 다 하고 천명을 기다리라고 했는데, 지금 女道士(仙姑)께서는 참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할 일도 다 하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도록 만들었으니, 어떻게 천명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소?(盡人事以聽天命. 今仙姑旣不能忍, 又人事未盡, 以致如此, 何能言得天命.)」淸나라 이여진(李汝珍)의 《경화연(鏡花緣)》에서
‘선고(仙姑)’는 선경(仙境)에 산다는 신선 할미를 가리킨다. ‘진인사대천명’은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成事在天)’과 기본적으로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자료를 보면 ‘진인사대천명’이 다음과 같이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유비(劉備)와 손권(孫權)의 연합군에게 대패한 조조(曹操)는 겨우 1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패주했다. 제갈량(諸葛亮)은 조조가 퇴각하는 요소요소에 군사들을 매복시켰는데, 그중 화용도(華容道)에 매복했던 관우(關羽)는 과거에 조조에게 입은 은혜가 있어 차마 조조를 죽이지 못하고 길을 내주어 달아나게 했다. 제갈량이 관우를 참수하려고 하였으나 유비의 간청에 못 이겨 관우를 살려 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천문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날 조조에게 은혜를 입었던 관우에게 그 은혜를 갚으라고 화용도로 보냈던 것입니다. 저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쓰고 하늘의 명을 기다렸던 것입니다.(修人事待天命.)”」
이 이야기가 바로 ‘진인사대천명’의 출전이고, 이 이야기에 나오는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이 바로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설명을 달고 있다. 그런데 《삼국연의》의 이 부분을 보면 제갈량이 유비의 간청에 못 이기는 척 관운장을 용서하면서 유비에게 한 말이나, ‘수인사대천명’ 같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각설하고, 관운장(關雲長, 관우)은 조조를 보내 주고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운장만은 홀로 사람 하나, 말 한 필 획득하지 못하고 빈 몸으로 돌아와 현덕(玄德, 유비)을 만났다. 공명(孔明, 제갈량)이 마침 현덕과 함께 축하를 하다가 운장이 왔다는 보고를 받고 자리를 떠나 술잔을 들고 맞이하며 말했다. “장군이 세상을 덮을 만한 공을 세우고 하늘 아래 큰 해악을 제거했으니 기쁘오. 멀리까지 나와 경하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소?” 운장이 묵묵히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공명이 말했다. “장군은 설마하니 우리가 더 일찍 멀리까지 나와 맞이하지 않았다고 즐거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면서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대들은 무슨 까닭에 일찍 보고하지 않았소?” 운장이 말했다. “이 관 아무개가 특별히 죽음을 청하러 왔소이다.” 공명이 말했다. “조조가 화용도 길로 오지 않은 건 아니겠지요?” 운장이 말했다. “그리로 왔소. 그런데 관 아무개가 무능해서 달아나게 놔두고 말았소.” 공명이 말했다. “그러면 어떤 장수나 병졸을 잡아왔소?” 운장이 대답했다. “아무도 잡지 못했소.” 공명이 말했다. “이는 운장이 조조가 베푼 옛 은혜를 생각하여 고의로 풀어 준 것이오. 하지만 군령장이 여기에 있으니 군법에 의하지 않을 수 없구려.” 그러고는 무사에게 운장을 참하라고 큰소리로 명했다. ······ (이상 제50회, 이하 제51회) 각설하고, 공명이 운장을 참형에 처하려고 하자 현덕이 말했다. “옛날 우리 세 사람이 결의를 할 때, 함께 살고 함께 죽자고 맹세했소. 지금 운장이 법을 어겼다고 하지만 차마 이전의 맹세를 어길 수가 없구려. 잠시 과오를 기록해 두었다가 공을 세워 속죄하게 해 주기를 바라오.” 공명은 비로소 (관운장을)용서했다.(却說關雲長放了曹操, 引軍自回. ······ 獨雲長不獲一人一騎, 空身回見玄德. 孔明正與玄德作賀, 忽報雲長至. 孔明忙離坐席, 執杯相迎曰, 且喜將軍立此蓋世之功, 與普天下除大害. 合宜遠接慶賀. 雲長默然. 孔明曰, 將軍莫非因吾等不曾遠接, 故爾不樂樂. 回顧左右曰, 汝等緣何不先報. 雲長曰, 關某特來請死. 孔明曰, 莫非曹操不曾投華容道上來. 雲長曰, 是從那里來. 關某無能, 因此被他走脫. 孔明曰, 拿得甚將士來. 雲長曰, 皆不曾拿. 孔明曰, 此是雲長想曹操昔日之恩, 故意放了. 但旣有軍令狀在此, 不得不按軍法. 遂叱武士推出斬之. ······ 却說孔明欲斬雲長, 玄德曰, 昔吾三人結義時, 誓同生死. 今雲長雖犯法, 不忍違却前盟. 望權記過, 容將功贖罪. 孔明方才饒了.)」
이 이야기는 三國志 제50회의 마지막 부분과 제51회의 첫 부분에 나오는데, 현덕이 간청하자 제갈량이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관운장을 용서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끝을 맺고 있다. 제갈량이 천문을 보고 조조가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라며 관우에게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했다는 말은 제49회에서도 ‘수인사대천명’이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공명은 현덕, 유기(劉琦)와 함께 군막을 세우고 좌정한 후, 조운(趙雲, 조자룡(趙子龍))에게 말했다. “자룡은 삼천 군마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 지름길로 오림(烏林)의 소로로 가 나무와 갈대가 무성한 곳을 골라 매복을 하시오. 오늘 밤 사경 이후에 조조가 반드시 그 길로 도망을 할 것이오. 그들의 군마가 지나가면 반쯤 지나갔을 때 불을 지르시오. 다 죽이지는 못해도 절반은 죽일 수 있을 거요.” 조운이 물었다. “오림에는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남군(南郡)으로 통하는 길이고, 하나는 형주(荊州)로 가는 길입니다. 어느 길로 갈지를 모르겠습니다.” 공명이 말했다. “남군으로 가는 길이 험하기 때문에 조조는 감히 그 길로 가지 못할 거요. 반드시 형주로 간 후에 대군이 허창(許昌)으로 가게 될 것이오.” 조운이 계략을 받아들고 출발했다.
공명은 또 장비(張飛)를 불러 말했다. “익덕(翼德, 장비)은 삼천 병사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 이릉(彛陵)의 길을 끊고 호로곡(葫蘆谷) 입구에 매복하시오. ······ 조조를 잡지는 못해도 익덕의 이번 판의 공이 적지 않을 것이오.” 장비는 계책을 받고 출발했다. ······ 공명이 현덕에게 말했다. “주공께선 번구(樊口)에 둔병하여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며 오늘 밤 주랑(周郞)이 큰 공을 세우는 것을 앉아서 보십시오.”
이때 운장이 옆에 있었지만 공명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운장이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관 아무개가 형장을 따라 작전에 출정하여 여러 해 동안 한 번도 뒤처진 적이 없었소. 그런데 오늘 큰 적을 앞에 두고 군사(軍師)께서는 나를 쓰려고 하지 않으니 이는 무엇 때문이오?” 공명이 웃으며 말했다. “운장은 괴이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아무개가 본래 그대를 가장 중요한 요충지에 보내려고 했으나, 걸리는 일이 있어 감히 가도록 하지를 못하는 것이오.” 운장이 말했다. “무슨 걸리는 일이란 말이오. 빨리 가르쳐 주시오.” 공명이 말했다. “옛날 조조가 그대를 심히 우대했으므로 그대가 보답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오. 오늘 조조가 패하여 반드시 화용도로 지나갈 것이오. 만약 그대를 보내면 분명 그가 지나가도록 풀어 줄 것이오. 그래서 감히 가도록 하지를 못하는 것이오.” 운장이 말했다. “군사께서는 호의를 너무 많이 가지고 계시오. 당시 조조가 아무개에게 무겁게 대해 주었지만 아무개는 이미 안량(顔良)과 문추(文醜)를 베어 백마성(白馬城)의 포위를 풀어 주어 다 갚았소. 오늘 만나게 되면 절대로 놓아 보내지 않으리다.” 공명이 말했다. “만약 놓아주면 어떻게 하겠소?” 운장이 말했다. “군법에 의해 처벌받겠소.” 공명이 말했다. “그렇다면 즉시 문서를 작성하시오.” 운장은 군령장을 주었다. 운장이 말했다. “만약 조조가 그 길로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소?” 공명이 말했다. “나도 그대에게 군령장을 주겠소.” 운장은 크게 기뻐했다.
공명이 말했다. “운장은 화용의 좁은 길 위의 높은 곳에서 땔나무와 풀을 쌓고 불을 붙여 연기를 올려 조조를 그리로 오도록 유인하시오.” 운장이 말했다. “조조가 연기를 보면 매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텐데 어떻게 오려고 하겠소?” 공명이 웃으며 말했다. “병법의 허허실실 이론도 듣지 못했소? 조조가 용병에 능하다고 하나 이번에만은 그를 속일 수 있을 것이오.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허장성세라고 말하고 분명히 이 길로 오게 될 것이오. 장군은 정에 못 이겨 관용을 베풀지나 마시오.” 운장은 명령을 받잡고 관평(關平)과 주창(周倉) 및 5백 명의 교도수(칼을 지닌 병사)를 거느리고 화용도로 매복을 하러 갔다. 현덕이 말했다. “내 아우가 의기를 아주 중히 여겨 만약 조조가 정말로 화용도로 들어오면 진짜로 풀어 주게 될 것이오.” 공명이 말했다. “제가 밤에 천상(天象)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운장에게 인정을 남기도록 하게 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현덕이 말했다. “선생의 신산은 세상에 따라갈 사람이 없구려.”(孔明便與玄德, 劉琦升帳坐定, 謂趙雲曰, 子龍可帶三千軍馬, 渡江徑取烏林小路, 揀樹木蘆葦密處埋伏. 今夜四更已後, 曹操必然從那條路奔走. 等他軍馬過, 就半中間放起火來. 雖然不殺他盡絶, 也殺一半. 雲曰, 烏林有兩條路, 一條通南郡, 一條取荊州. 不知向那條路來. 孔明曰, 南郡勢迫, 曹操不敢往. 必來荊州, 然後大軍投許昌而去. 雲領計去了. 又喚張飛曰, 翼德可領三千兵渡江, 截斷彝陵這條路, 去葫蘆谷口埋伏. ······ 雖然不捉得曹操, 翼德這場功料也不小. 飛領計去了. ······ 孔明謂玄德曰, 主公可於樊口屯兵, 凭高而望, 坐看今夜周郞成大功也. 時雲長在側, 孔明全然不睬. 雲長忍耐不住, 乃高聲曰, 關某自隨兄長征戰, 許多年來, 未嘗落後. 今日逢大敵, 軍師却不委用, 此是何意. 孔明笑曰, 雲長勿怪. 某本欲煩足下把一個最緊要的隘口, 怎奈有些違碍, 不敢敎去. 雲長曰, 有何違碍. 願卽見諭. 孔明曰, 昔日曹操待足下甚厚, 足下當有以報之. 今日操兵敗, 必走華容道. 若令足下去時, 必然放他過去. 因此不敢敎去. 雲長曰, 軍師好心多. 當日曹操果是重待某, 某已斬顔良, 誅文醜, 解白馬之圍, 報過他了. 今日撞見, 豈肯放過. 孔明曰, 倘若放了時, 却如何. 雲長曰, 願依軍法. 孔明曰, 如此, 立下文書. 雲長便與了軍令狀. 雲長曰, 若曹操不從那條路上來, 如何. 孔明曰, 我亦與你軍令狀. 雲長大喜. 孔明曰, 雲長可於華容小路高山之處, 堆積柴草, 放起一把火烟, 引曹操來. 雲長曰, 曹操望見烟, 知有埋伏, 如何肯來. 孔明笑曰, 豈不聞兵法虛虛實實之論. 操雖能用兵, 只此可以瞞過他也. 他見烟起, 將謂虛張聲勢, 必然投這條路來. 將軍休得容情. 雲長領了將令, 引關平, 周倉幷五百校刀手, 投華容道埋伏去了. 玄德曰, 吾弟義氣深重, 若曹操果然投華容道去時, 只恐端的放了. 孔明曰, 亮夜觀乾象, 操賊未合身亡. 留這人情, 敎雲長做了, 亦是美事. 玄德曰, 先生神算, 世所罕及.)」/故事成語 大事典에서 발췌하여 정리함
-----------------------------------------------東學之人生觀 註解書 14-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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