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東學之人生觀 註解書(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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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學之人生觀 註解書(14-6)
第二章 人間五福; P.183.
法悅이 萬福의 근원이 되는 所以는 第一章에서 論한 바와 같다. 그러나 法悅이라면 단순히 추상적 보편적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法悅이 神의 無爲而化的 直觀으로 나올 수 있다고 할수 있더라도 의식을 가진 사람인 이상 추상적 개념인 法悅의 내용에 어떤 구체적 본질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즉 구체적으로 복이 되는 조건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것을 수운 선생의 福念에서 例를 들어보면 다섯가지의 큰 문제를 제출할 수 있다. 인간으로 이 다섯가지의 福念만 실행한다면 결과는 곧 지상천국의 세계 실현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면 그 人間五福이란 무엇인가? / P.183.
註 00 ; 法悅 - 불교용어로, 부처의 가르침을 설법으로 듣고 진리를 깨달아 마음속에 일어나는 기쁨이나 환희 또는 깊고 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기쁨이나 환희를 말한다. 類義語는 법열감(法悅感)과 법희(法喜)가 있다./어학사전과 불교용어사전에서.
註 00 ; 위의 글 ‘第二章 人間五福’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자료들을 熟讀詳味하실 것을 권합니다.
■ 李敦化의 「人生七大福. 1-7」『新人間』통권 92-98호/ 1935-1936.을 참조할 것.
人生七大福 1. 緖言 第一章 한울님을믿음은「無窮我」를獲得하는道이다.『新人間』통권92호
人生七大福 2. 第一章 無窮我의獲得(續) 『新人間』통권 93호.
人生七大福 3. 第二章 地上神仙의大人格의獲得 『新人間』통권 94호.
人生七大福 4. 第二章 地上神仙의大人格의獲得(2) 『新人間』통권 95호.
人生七大福 5. 第三章 此生極樂과法悅. 『新人間』통권 96호.
人生七大福 6. 第三章 法悅과此生極樂(二).『新人間』통권 97호.
人生七大福 7. 小題目은 없음. 『新人間』통권 98호.
■ 『복념』 -李敦化가 포덕 77(1936)년 8월 15일에 출간한 單行本. 이 책은 포덕 108(1967)년 5월 13일에 천도교청년회가 57페이지로 된 4X6판형 프린본으로 복간했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一. 한울님의 영광. PP.1-5.
二. 스승의 은덕. PP.5-10.
三. 인생의 목적. PP.10-17.
四. 七大福. PP.17-53./ 내용에서는 四. 인생칠대복으로 됨. /전체 분량의 약 3분의 2.
五. 수도생활. PP.54-57.
※※※ 四. 인생칠대복의 구체적인 내용. 위에서 알린 『新人間』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요약한 것임.
甲. 무궁아를 얻는 복. P.17.
乙. 지상신선의 대인격을 얻는 복. P.20.
丙. 차생극락의 복. P.26.
丁. 영적장생의 복. P.32.
戊. 선지각을 얻는 복. P.38.
己. 동귀일체의 복. P.42.
庚. 지상천국의 복. PP.49./ 필자의 -夜雷 李敦化의 生涯와 思想(10-5) 의 末에 수록된 것임.
一 濟人疾病 ; P.184.
인간의 본래의 苦인 生 老 病 死 四大苦 가운데 生老死 세가지는 석가의 말씀같이 無明의 大本源으로부터 흘러온 것이기 때문에 그는 可히 한울님이 정한 바이며 대자연의 理法 아래서 절대 불가항력에 속한 것이다. 人知가 如何히 발달된다고 할지라도 無明의 종자를 없애기 전에는 그를 論理조차 할 修鍊力, 기화적 수양력 등에 의하여 퇴치할 수 있는 가능적 본질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위선 병이란 무엇인가 하는 병의 본질부터 설명하면 석가가 말한 병은 俠義의 의미로서의 병인 듯하다. 즉 육체적 의미의 병을 말한듯 하다. 그런데 수운선생이 云謂하는 病은 정신적 육체적인 병을 통칭하여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수운선생은 勿藥自效리 하여 육체적 질병을 건지는 道는 藥物보다도 心化氣化의 정신수련을 주장하였으므로 써이다. 즉 인간의 질병을 건지는 道는 같으면서도 정신적 질병의 퇴치로 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적 질병이라는 것도 한마디로 총괄하면 번뇌라고 할수 있다. 번뇌는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인간 개체의 생존욕의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육체적 질병이 부작용의 발생에 수반하여 그 위험성이 증가하는 것과 같이 인간의 생존욕도 번뇌나 苦의 부작용에서 우환이 나오게 된다.
天師問答에 曰「吾有靈符 其名仙藥 其形太極 又形弓弓 受我此符 濟人疾病 受我呪文 敎人爲我 則 汝亦長生 布德天下矣/ 布德文 原文確認-오암」(啓示)
이것은 神의 계시로서 인간의 행복은 濟人疾病으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계시한 것이다. 인생은 與憂患俱生이란 말과 같이 인간으로서 누구나 질병적 상태가 아닌 사람은 없다. 육체적 질병이 없는 육체적 건강자는 세상에 간혹 있으되 정신적 질병인 貪 嗔 痴 등을 一切 가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貪은 物慾이나 物慾에 대한 過分을 이름이요, 嗔은 怒 憎惡 질투 등을 이름이요, 痴은(‘치(痴)는’ 이 올바른 표기이다.-오암) 無慧 不滿足 取越苦 등을 이르는 것이라면 이러한 惡.을 退治하는데는 靈符의 위력이 아니면 도저히 불능하다는 것이다. 靈符는 보통 天心이라 해석하는데 「胸藏不死之藥하니 弓乙其形이다./原文;胸藏不死之藥 弓乙其形 口誦長生之呪 三七其字/ 修德文 對照-오암」한 것으로 보면 인간의 神的 본질인 內有神靈의 靈動形態로서의 靈符을 가르킨(‘영부를 가르친’ 이 바른 표기-오암)것이 명백하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貪 嗔 痴 등의 번뇌는 인간의 念의 內有神靈의 至上命令과 背馳될 때에 생기는 작용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念이 內有神靈과 合一하게 되면 번뇌는 거기서 소멸될 것이다. 靈符라는 符字는 符合이라는 意도 되며 如合符節(사물이 꼭 들어맞음 또는 꼭 들어맞는 듯하다.-오암)이라는 合一의 意義도 된다. 符合의 뜻은 內有神靈의 靈動을 표시한 것이며 合一의 뜻은 天人合一을 의미한 것이다. 수운선생은 내유신령의 靈動의 形을 有形의 符로 상징하여 神靈의 분명한 존재를 徒弟에게 가르쳤다. 그러므로 紙上에 그린 符道는 일종의 暗示작용으로 念의 방향 전환을 촉진하는 교화 방편이다. 여지껏 肉身의 생존경쟁 속에서 貪嗔痴에 몰두하든 念을 內有神靈의 內在存在편으로 단연 방향을 전환케하는 至上命令의 神印인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계약에는 印章을 요한다. 印章의 印은 無形心의 誓約을 重盟의 형식으로 취하기 위한 眞心의 表象이다. 太古의 순박한 백성들에게도 結繩의 政이 있었다. 結繩은 일종의 印이다. 印은 마음의 誓約의 表象이다. 神과 사람늬 誓約에도 어떤 誓約의 印이 필요하다. PP.184-187.
註 00 ; 貪 嗔 痴- 불교에서 탐욕적이고(貪), 성내고(嗔), 남을 의심하는 어리석음(痴)에 빠지는 것을 인간다움을 해치는 것을 三毒心이라 한다. 三毒心은 인간내면에 실재하고 있어 불도를 닦아 열반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 고 한다. 그래서 修鍊을 통하여 三毒心을 淨化하여 마음의 平靜을 얻도록 항시 노력해야 한다.
註 00 ; 取越苦 -일본어 取越苦労를 활용한 것 같다. 取越이란 정해진 기간 이전을 의미하는 말로 활용된다고 한다. 取越苦는 이미 지니고 있는 고통과 수고로움의 의미로 사용한 듯하다./오암.
註 00 ; 天人合一 - 중국인의 세계관의 하나로, 하늘과 사람과는 도리를 매개로 하여 하나로 연결되어 합쳐서 한울과 사람이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에는 사람의 마음(心) ‧ 성(性)은 하늘과 통해 있다거나(孟子), 또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했다.(董仲舒) 전자인 맹자의 天人相通論은 송나라 시대에 발전하여 송학의 중요한 기초관념이 되었다. 천도교에서는 한울님과 사람은 하나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人乃天)./ 類義語는 神人合一
天人合一의 사상은, 하늘과 사람이 합일체임을 밝히는 유교적 개념. 중국 하(夏)·상(商)·서주(西周) 시대에는 하늘이 자연과 사회를 주재하는 최고의 신(神)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천명론(天命論)은 춘추시대에 들어와 동요하기 시작해 춘추 말년에는 "天道는 멀고 人道는 가까우니 천도는 알지 못한다."라고 하여 천도와 인도를 구별하게 되었다. 孔子는 전통적 天命觀을 수정하여 하늘이 인격신(人格神)이라는 생각은 부정하고 단지 天命의 작용만을 인정했다. 동시에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었다"라고 하여 인간이 가진 덕성을 천부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戰國時代에 맹자는 "마음을 다하는 것은 性을 아는 것이며, 성을 아는 것은 하늘을 아는 것"이라고 하여 사람의 마음과 성이 하늘과 본래 일체이며, 盡心, 知性이면 능히 천명을 얻는다. 고 했다. 맹자의 이러한 사고는 하늘이 모든 것을 포함하며 동시에 사람의 마음에 이것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천인합일 사상의 명확한 표현이었다.
漢나라의 동중서는 이러한 천인합일 사상을 계승하여 천명론과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을 결합한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사상체계를 세웠다. 그는 "사람은 하늘에 근본하여 만들어졌으며 하늘은 사람의 증조부(曾祖父)"라고 하며 하늘이 최고의 신이며 인간은 하늘이 창조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인간의 일체 행위가 천의(天意)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했다. 이와 함께 하늘과 사람 사이에는 상호 감응이 작용해서, 양자가 합해져 하나가 된다고 설명했다.
宋代에 들어와서는 성리학자(性理學者)들은 이(理)·성(性)·명(命) 등의 개념을 가지고 천인합일을 논증하고자 했다. 이 가운데 정이(程頤)는 "하늘과 사람이 본래 둘이 아니므로 합(合)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고, 朱熹도 "하늘과 사람은 일물(一物)인데, 내외가 일리(一理)로 유통 관철하므로 간격이 없다."고 설명했다. 천인합일은 천인관계를 파악하는 유교의 기본관점으로서 중국을 비롯한 동양 전통사상의 중요한 구성요소였다./관련 자료 종합 정리.
■ 天人合一說 - 유교 철학에서 하늘과 사람은 合一體라는 학설. 『中庸』에서는 ‘天命之謂性’이라 하여 인간 존재의 본질인 성(性)을 천명과 동일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성이라는 글자의 모양이 ‘忄(心)’와 ‘生’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살려는 마음’·‘살려는 의지’로 이해할 수 있는데, ‘살려는 의지’는 인간의 지각(知覺)이나 의식(意識)을 초월한 본질적인 것으로서 깊은 잠에 들었을 때도 심장을 움직이고 호흡을 하게 하는 근원자인 것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로서의 성은 한 개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동일한 것이며, 또한 만물에 내재되어 있는 생(生)의 본질과도 동일한 것이다. 말하자면, 개체의 본질이 바로 전체의 본질인 것이다.
다만 개체의 본질을 가리켜 말할 때는 성이라 하고 만물 전체의 본질을 가리켜 말할 때는 하늘의 작용이라는 의미로서 천명이라고 한 것이지, 성과 천명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개체적 존재이면서 본질적으로는 전체적 존재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하늘과 사람은 합일체라는 것이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감각 기관이 발달하게 되는데 이 감각 기관은 육체를 중심으로 하여 남과 나를 구별하는 쪽으로 작용하여 점차 인간은 전체적 존재로서의 본질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전체적 존재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은 상태의 인간이란 바로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맹자는 ‘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라 하여 그가 이상적 인간으로 설정한 대인은 갓 태어난 아기 때의 마음을 잃지 않고 보존하는 자라고 설명하였다. 이때의 대인은 천인합일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맹자는 이미 전체적 존재로서의 본질인 천명의 성을 잃어버린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과제로서 학문을 설정하고, 학문의 길은 잃어버린 마음을 다시 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또 ‘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라 하여 전체적 본질로서의 성을 다시 구하는 과정으로서 학문의 길을 진심(盡心)·지성(知性)·지천(知天)의 세 단계로 세분하였다.
『中庸』에서는 성을 다시 구하여 천인합일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성(誠)의 실천을 제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이라야 능히 자기의 성을 다하니 자기의 성을 다하면 남의 성을 다하고 남의 성을 다하면 물(物)의 성을 다하며 물의 성을 다하면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고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더불어 그 작용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心)을 다하여 성(誠)을 실천하고 천명의 성(性)을 다시 구하여 천인합일이 되면 인간은 개체적 존재를 극복하여 전체적 존재를 실천하게 되는데, 그러한 때의 인간 행위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맹자는 ‘與天地同流’라 하였다.
『周易』에서는 “천지와 그 덕을 합하고 일월(日月)과 그 밝음[明]을 합하고 사시(四時)와 그 차례[序]를 합하고 귀신과 그 길흉을 합하여 천지와 혼연일체가 되어 같이 흐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아니하였다”라고 한 공자의 실천 세계도 또한 천인합일의 세계로 이해할 수 있다.
천인합일사상은 인간을 본질적으로 전체적인 조화 속에서 존재하는 자로 봄으로써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을 도출하게 되는데, 전국 시대 말기에 태어나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면서 투쟁에 염증을 느끼고 그 해결 방법을 모색하려던 순자(荀子)는 성선설이나 천인합일사상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투쟁의 직접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인간은 본질적으로 서로 투쟁하게 되어 있다고 봄으로써 성악설을 제창하고 아울러 천인분리사상을 주창하여 인간은 천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힘에 의해 인간 사회의 조화와 질서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고 그 원리로서 예(禮)를 강조하였다.
漢代)의 董仲舒는 “하늘도 인간과 같은 희로애락이 있다”고 설명함으로써 천인합일사상을 더욱 발전시켰다. 唐末의 이고(李翺)는 천인합일의 방법론으로서 복성론(復性論)을 제창하고 다시 복성의 방법으로서 성(誠)의 실천과 멸정(滅情)을 제시하였는데, 주돈이(周敦頤)에 이르러 이는 성(誠)의 실천과 무욕(無欲)으로 계승되고 또 복성의 객관적인 방법으로서 우주론이 전개되었다.
주돈이의 사상은 다시 장재(張載)·정이(程頤) 등을 거쳐 주희(朱熹)에 이르러 성리학으로 완성되는데, 주희는 성의 실천과 무욕을 거경(居敬), 우주론을 궁리(窮理)로 집약하여 복성의 방법을 거경과 궁리로 정리하였다.
한국 유학에서는 천인합일사상보다 더욱 밀도가 높은 天人無間思想이 발달하였다. 천인합일이 천과 인이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일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 천인무간은 천과 인이 애당초 간격이 없이 하나라는 의미이다. 천인무간사상에서 나타나는 한국적 특징으로는 궁리보다도 복성의 직접적인 방법인 거경을 중심으로 하는 고도의 修養哲學과 至治主義運動과 같은 강렬한 정치적 실천 의욕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천인무간의 사상은 인간의 감정까지도 긍정하게 되어 천의 의지를 인간이 따른다는 천 중심의 천인합일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천이 따른다는 인간 중심의 천인합일사상으로서 인내천사상(人乃天思想)이 발달하게 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문헌
『중용(中庸)』
『맹자(孟子)』
『주역(周易)』
『입학도설(入學圖說)』
註 00 ; 神印 - 신인과 관련된 이야기가『삼국유사』선덕여왕지기삼사에 기술된 내용으로 알려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唐은 문무왕 4년(679) 신라가 웅진도독부를 공격한다는 핑계로 50만 대군을 일으켰다. 이때 당에 유학하고 있던 의상 스님이 그 사실을 미리 알고 귀국해 왕에게 알리자 왕은 곧 신하들을 불러 대책을 논의했는데 다의 침략을 막아낼 사람으로 각간 김천존이 명랑 스님을 천거했다. 고 한다.
명랑 스님은 낭산 남쪽 신유림 안에 있는 사천왕사를 세워 적의 침략을 막을 것을 건의하였지만, 당의 대군은 이미 해로(海路)를 통해 침입하고 있는 중이었다. 명랑 스님은 급히 비단으로 절터를 두르고 오방(五方)에 신장상을 모시고 유가명승(瑜伽明僧) 열두 분을 모셔 문두루(文豆婁, mudra = 神印) 비법을 쓰게 했다. 그러자 신라와 싸우기도 전에 바람과 물결이 사납게 일어 당의 군함이 모두 침몰했습니다. 명랑 스님은 문무왕 11년(671) 당이 다시 신라를 침략했을 때도 문두루 비법으로 물리쳤다 합니다. 스님이 썼다는 문두루비법이 어떤 주술이었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 다만 학자들은 《금광명경(金光明經)》의 가르침을 따르는 비밀주법(秘密呪法)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관련 자료에서 재 정리함.
위와 같은 내용으로 보아 神印은 신의 가늠할 수 없는 超能力이나 조화를 의미한다고 추리해 볼 수 있다.-오암.
註 00 ; 結繩의 政 - 結繩之政을 말하는 것으로, 고대 중국의 정치를 이르는 말이다. 글자가 없던 시대에 끈이나 띠로 매듭을 지어 의사 표시를 하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 『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와 《사기(史記)》 권1 오제본기(五帝本紀)에 신농씨(神農氏)때 글자가 없던 시대에 글자 대신 노끈을 맺어 일을 표시하던 행정[結繩之政]를 펼치다가, 복희씨(伏羲氏) 때에 이르러 창힐(蒼頡)이라는 신하가 만든 문자로 서계(書契나무에 새겨서 썼다는 최초의 문자)를 만들어서 이를 대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史記』 〈보사기(補史記)〉의 삼황본기(三皇本紀)와 《사기색은(史記索隱)》 권30의 삼황본기(三皇本紀)에 공히 보이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호 포희씨는 풍성으로 수인씨를 대신하여 계속 천하를 다스렸는데,……성덕이 있었다. 위로 하늘의 상과 아래로 땅의 법을 관찰하고 곁으로 새와 짐승의 문과 천지의 마땅함을 관찰하며 가까이로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로는 물건에서 취하여, 비로소 팔괘를 만들어 신명의 덕을 통하고 만물의 정을 분류하였으며 서계를 만들어 결승의 정치를 대신하였다./太皡庖犧氏風姓 代燧人氏繼天……有聖德. 仰則觀象於天 俯則觀法於地 旁觀鳥獸之文與地之宜 近取諸身 遠取諸物 始畫八卦 以通神明之德 以類萬物之情 造書契 以代結繩之政
■ 창힐(蒼頡) - 창힐은 중국의상고 복희씨(伏羲氏) 시대에 黃帝의 신하로, 새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상형문자(象形文字)를 만들어 결승지정(結繩之政)을 대신하였다. /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그러므로 수운선생이 庚申四月五日 神의 啓示를 받은 후에 靈眼으로 靈符의 形을 보았다. 神이 天心 그대로의 靈動形相을 靈符로 보여 주었고 선생 역시 靈眼으로 이를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受我靈符의 증거이다. 이 증거가 곧 神의 至上命令의 神印이다. 印은 곧 誓約의 증거이며 증거의 표시이다. 神과 선생은 無形의 神印을 無形으로 授受한 것이다. 이 증거를 無知한 世人에게 肉眼으로 보이게 하는 방법으로 符圖가 생겼다. 無形的인 符가 有形의 符圖로 된 것이다. 비록 有形의 符圖라고 할지라도 神印의 弓乙形太極形은 본래 그대로이므로 인간과 인간의 天心 誓約에서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受我靈符 濟人疾病의 原理는 어떤 사람에게도 보편타당성을 갖는다.
靈符 卽 至上命令의 神印을 받자마자 人間의 念은 정신적 大喝一聲(크게 꾸짖는 소리나 크게 외치는 한마디의 소리-오암)의 靈波로 곧 方向전환이 된다. 찰나적으로 정신개벽이 일어난다. 정신의 부작용에는 번뇌는 明來暗滅과 같이 本無가 本無로 소멸한다. 雲捲하니 靑天白日이요, 地盡하니 天風海濤라 神人到處에 衆魔消滅이로다.
인간의 본래 面目(사물의 상태나 겉모양.-오암)으로는 疾病은 本無한 것이다. 明의 背影으로 暗이 생기는 것과 같이 질병은 神의 理念(攝理또는 자연의 질서)을 背逆(거역허거나 배반하는 것-오암)한데서 一時的 假相으로 육체상에 나타나는 변태작용(일종의 돌연변이작용-오암)이다. 그러므로 念의 方向 전환에 의하여 神明의 靈光의 照臨할 때에 病의 假相은本無로 돌아 간다. 즉 念이 復其初에 因한 인간 본래의 面目(참모습-오암)이 들어나는 것이다. 神의 至上命令的 神印 즉 靈符는 修者의 靈化정도에 따라 自由自在로 변하게 된다. 이는 선생의 기적적 행적을 보아도 넉넉히 알수 있다. 선생은 自初에 紙上符圖로서 神印의 상징으로하여 念의 復其初를 암시하였다. 그러나 점차 靈力이 진전함에 따라 神印의 상징은 일정하지 않았다. 어느 해 寧海 지방에 惡病이 유행한다는 徒弟의 말을 듣고 「得難求難 實是非難 心和氣和 以待春和/ 題書 대조-오암」라는 文句를 써서 그 지방에 보내었드니 질병은 즉시 소멸되고 말았다. 그 다음 手撫病愈(손으로 患部를 쓰다듬어 병을 낫게 하다/민간요법 중의 하나.-오암)의 사실과 같은 것은 연속하여 있었다. 언젠가 慶州 府尹이 자기 부인의 병을 치료해 주기를 간청하였는데 선생은 使者에게 「病은 이미 낳았다 돌아가라」고 해서 돌아와 본즉 과연 말씀과 같았다. 이러한 것은 모두 靈符의 自在自由한 것을 증거하는것이다. 원래 神印 즉 명부(영부의 잘못-오암)는 神의 至上命令인 고로 인간은 누구나 自心의 內有神靈에서 自在的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念과 內有神靈의 背馳로 인하여 神의 至上命令이 自我에 感化를 주지 못하므로 대개는 有若無의 상태로 되어 진다. 허나 信者 자신이 守心正氣의 修鍊으로 神의 至上命令인 靈力이 나타나면 疾病은 本無한 것이므로 질병의 有無를 본래 論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설사 불행이라고 할까, 神의 일시적 시험이라고 할가 질병에 걸린다고 할지라도 心和氣和의 힘에 의하여 勿藥自效가 될 것은 理의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濟人疾病의 理想은 질병자 자신이 타인의 靈力에 의하여 그를 치료하는 것 보다 자기가 자기의 靈力으로 그를 치료하는 것이 본연의 행사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각 개인이 가 같이 정신적 또는 육체적으로 질병을 몰아내면 그것은 자신의 행복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보편적인 행복이 될 것이다. 수운선생은 曰 「入道한 세상 사람 그 날부터 君子되어 無爲而化 될것이니 地上神仙 네 아니냐/ 敎訓歌 대조 - 오암)」라고 했다. 地上神仙(理想的인 人間)은 無爲而化의 君子的 인격에서 되고 君子的 인격은 濟人疾病에서 원인되는 것이므로 濟人疾病은 人間幸福의 入德之門이 된다. PP.187-190.
註 00 ; 明來暗滅 - 초거명래(悄去明來/남이 알지 못하게 갔다가 성공하여 공공연히 당당하게 돌아옴)에서 명래를, 일승암멸(日昇暗滅/ 태양이 떠오르니 어둠이 사라짐)에서 암멸을 활용하여 4字成語, 明來暗滅를 만든 듯.-오암.
註 00 ; 본무(本無) - 위진시대(魏晉時代:3~4세기) 현학가 하안(何晏)· 왕필(王弼)이 제창했던 중국의 철학사상의 하나이다. 선진시대의 도가학설로부터 발전된 것이다. 何晏은「無爲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지만물은 모두 無를 本으로 한다. 무라는 것은 모든 사물을 생성·변화·발전시키는 것으로, 어디에든 존재하지 않음이 없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모든 유형유상의 사물들은 무형무상의 본체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물은 '무'와 비교해 보면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이다. 이 때문에 하안과 왕필을 위진 玄學의 本無派 혹은 貴無派라고 불렸다. 한대(漢代) 신학의 목적론과 비교해볼 때, 이들이 주장한 本無思想은 이론적 사유 수준에서 한걸음 진전했음을 보여준다.
■ 本無에 대한 例文들을 참조.
本無生死 - 태어나고 죽는 것이 본래 다로 없다는 것이 진리.
此心平等本無凡聖 -마음이란 본래 평등하여 범부와 성인이 따로 없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 - 사람이 산다는 것은 한 조각의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으며, 죽는다는 것은 한 조각의 뜬구름이 흩어져 사라지는 것과 같다, 뜬구름이란 본래 그 자체가 없는 것이므로 생과 사, 그리고 가고 옴이 또한 이와 같다.
天下本無事 - 세상사란 본래 없는 데서 시작된다.
得之本有 失之本無 -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얻었다 한들 본래 있었던 것을 얻는 것이며, 잃었다 한들 본래 없던 것을 잃은 것이다./다움 백과를 바탕으로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풀이는 오암이 함.
註 00 ; 雲捲하니 靑天白日이요, 地盡하니 天風海濤라 神人到處에 衆魔消滅이로다./ 出典未詳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구름이 다 걷히니 푸른 하늘과 밝은 해가 뜨고, 땅이 다하도록 땅 끝에 이르니 하늘에 부는 바람과 파도치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신인이 도처에 있으니 온갖 악마가 모두 다 사라진다(소멸된다).
二 長生不死; P.190.
長生이 理에 대하여는 이 책 전부를 長生觀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하겠다. 長生은 종교적 來世觀이 그의 중심인 것은 물론이나 수운선생의 長生觀은 이를 세 가지로 말씀 하셨다. 一曰 肉的 長生 二曰 靈的 長生 三曰 德業長生이 그것이다.
① 肉的 長生 ; 肉的 長生은 天命死 즉 自然死를 가르친(잘못된 표기. 아래 註 참조-오암) 것이다. 위에서 述한바와 같이 인생은 본래 無病인 고로 無故한 사람에게 본래 病死 또는 變死가 있을 理 없다. 왜 그러냐 하면 疾病死나 變死의 원인은 전부가 정신적인 질병인 苦惱와 육체적인 질병인 氣의 不調和로 생기는 것이므로 心化 氣化의 神靈的 본질은 守行하는 사람에게는 此等의 부자연한 死가 있을리가 없고 天然自然으로 天命死에 이르게 된다. 天命死의 한계는 과학적 설명을 빌면 成長期間의 五倍라 하나 인간에게 있어서는 이것은 確信할 定說이 못된다. 사람은 신령의 편으로 보면, 肉體靈化의 가능성을 가짐과 동시에 物慾의 편으로 보면, 동물 이하의 타락성도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간의 육체적 수명은 그의 長短이 일정하지 못할 것이다. 수운선생은 天道를 儒彿仙 合一이라 하여 仙道도 東學의 一部로 인정하였다.
仙道는 本來 養生의 道이다. 그러므로 그는 육체의 長生을 목적으로 한 道이다. 그것은 인간 세계에 당연히 있을 만한 道이다. 仙道의 육체의 長生은 理想的 神仙說로 化하여 육신이 영원장생한다는 점에 이르러서는 누구나 의문을 가질 수 없다. 수운선생의 道說중에도 「仙」字가 많이 있는 것을 보면 선생도 神仙의 理想을 시인한 듯하다.「」
「나도 또한 神仙이라 飛上天한다 해도 이내 仙境 龜尾龍潭 다시 보기 어렵도다」(몽중노소 문답가/出典이 잘못됨. 龍潭歌 대조-오암) 「百疊塵埃吾欲滌 飄然騎鶴向仙台(臺/경전 대조-오암)」(偶吟) 等은 神仙의 實在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선생의 地上神仙說로 보면 人格의 神仙化를 상징한 것이 분명하고 古來의 神仙說은 理想的 憧憬이나 詩的 存在로 시인한 듯하다.
神仙的 理想은 西洋의 天使的 理想과 같이 神과 사람 사이의 간접적 존재였다. 그러므로 神仙은 순수한 靈的 존재도 아니요 순수한 人的 존재도 아닌 肉體의 靈化的 인간을 이름이다. 인간의 육체도 어떤 高度의 修鍊에 의하여는 육체적 본질인 至氣의 本體에 復其初(맨 처음으로 돌아감-오암)하여 上天下天(이 세상 또는 온누리-오암)의 자유스러운 境涯(境地/학문이나 예술 따위에서 일정한 체계로 이루어진 어떤 영역이나 분야-오암)에 達할 만한 理論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보편타당성에서 벗어난 행위로서 道敎에서 신앙하는 崇拜的 對象은 될지언정 實踐的 도덕은 아니다. 神仙說을 實踐的으로 道德化하기 위하여는 地上神仙의 理想이 보편타당성을 가졌다. 신선을 육체적 존재로 보지 말고 神仙的 본질인 養生 養氣, 平和的 氣像, 自由自在, 無爲而化의 順應, 無邪氣(邪惡한 기운이 없는-오암) 狀態, 自然의 大道에 體應(몸으로 體得하거나 適應하는 것-오암) 등의 성질은 人間純化의 敎化로서 精神 藝術的 價値를 가졌다. 이런 等의 人格的 理想이 곧 地上神仙이다. 수운선생의 長生의 내용에는 實로 地上神仙의 내용이 포함된 듯하다. 그러한 인간의 死는 死가 아니고 純化이다. 死는 곧 修道人의 仙化狀態에 지나지 않는다. 육체적 생명이 살대로 다 살아 가지고 天然自然의 理法으로 因하여 靈化의 境涯에 들어가는 天命死이다. 이것이 肉的 長生이다.
地上神仙의 人格에 達하면 死는 이미 死가 아니오 人間本體에 自在한 靈化의 本面目이 나타나는 變化의 현상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러한 사람은 死의 공포를 가지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千里遠客(천리 밖 먼 타향에서 떠돌던 나그네-오암)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直感을 가질 수 있다. 어려서 고향을 떠난 放浪孤客(정처 없이 물결처럼 타향을 떠도는 고독한 나그네-오암) 이 고향의 有無도 확실히 모르고 더욱이 가족의 有無도 막연한 때에는 還故鄕(고향으로 되돌아감-오암)이란 것도 결코 반가운 것이 못된다. 그러나 고향의 부모형제가 명백히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그는 고향에 호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自然死가 결코 멸망의 상태가 아닌 것을 안다면 肉的 長生은 그대로 지속되는 것이요, 육체의 파괴는 持續을 維持하는 한 작용으로 일게 될 것이다. PP.190-193.
註 00 ; 가르치다와 가리키다 - 가르치다는 知識(理致)이나 技藝(技術)를 알게 하거나 익히게 하는 것이고, 가리키다는 무엇이 있는 곳(方向과 對象)이나 事物을 말이나 손짓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참고로 ‘가르치다와 가리키다’를 구분한 것은, 1930년대에 조선어학회가 중심이 되어 말글 규범을 정할 때에, 이 두 부류의 낱말을 별개의 낱말로 처리하여 별도의 의미를 부여하는 쪽으로 정리하였다. 즉, '가르치다'는 <교육하다>의 의미로, '가리키다'는 <지시하다>를 뜻하는 형태로 독립시켜 차별화한 것이다./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註 00 ; 此等 - 文章語에서,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복수의 대상을 가리키는 말로, 이들. 이런 것들의 의미를 갖고 활용된다.
② 靈的 長生 ; 靈的 長生의 意義는 위에 死의 原理에서 槪說하였으므로 여기에는 簡單히 적는다.
원래 靈的 長生은 肉的 長生과 떨어진 長生이 아니오 人間不死의 原理가 계속되는 長生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로 본다면 수운선생의 말씀과 같이 人間은 본래 不死이다. 不死의 본질을 지속키 위하여 生死의 현상이 일어난다. 선생은 曰 「胸藏不死之藥 弓乙其形 口誦長生之呪 三七其字/修德文 대조-오암」「秦始皇 漢武帝가 무엇 없어 죽었던(는)고 내가 그 때 났었더면 不死藥을 손에 들고 조롱만상(嘲弄萬狀) 하올것을 늦게 나니 恨이로다./ 安心歌 대조-오암」라고 했다. 不死藥이란 것은 人間不死의 본질을 이름이다. 이 본질의 有無를 直覺한다면 三 七字의 長生呪文을 외어 정신통일로 靈知神識을 現顯케 하는데 있다
이간이 根本에서 不死하는 본질을 가졌다고 하면 意識的 無意識的을 不問하고, 또는 善惡의 구별도 없이 一律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교육은 모르나 死에 대한 敎化 즉 종교적 교화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종교는 靈的 長生을 가르치는 道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항상 無宗敎人의 질문의 단서가 되고 같은 종교가일지라도 피차 자기 종교가 정말 바른 길을 가르치는 바른 神을 믿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점이 된다. 衆生이 나갈 길을 여기서 迷惑彷徨케 되는 것이다.
첫째 점에 있어서 종교는 各其 方便(方法-오암)이 있다. 무엇이냐 하면 물론 어떤 종교이든지 인간의 본질은 불멸이라 하되 來世의 효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佛敎의 六道輪廻, 기독교의 천당과 지옥과 같은 것이다.
둘째 점은 종교 자신이 벌써 旣存 종교의 운명종말을 고백하는 惡투쟁이 된다. 이러한 악투쟁은 善意로 해석한다면 현대와 같이 자유신앙 아래서 각 종교가 대립하는 이상 勢不得 자기의 地盤을 넓힐 필요성 때문에 자연적 투쟁이 없을 수 없고 또는 敎理上의 相違(서로 다름. 문자의 내용으로는 矛盾.-오암)로 理論的 是非경쟁이 없을 수 없는 필연적 所爲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덧 旣成 종교 자신의 시대성 결핍을 성언하는 것이다. 기성 종교로서의 시대적 결핍은 피차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敎理上의 모순도 피차 동일하다. 각 종교의 시대성 결핍의 폐해가 그들의 악투쟁을 일으키게 하고 악투쟁이 필경은 피차 종교의 공동 불변의 진리인 人間長生에 까지 악영향을 미쳐 長生의 원리로 부터 생긴 종교가 도리어 長生을 疑惑케하는 반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것이 종교 交替의 운명이 시작된 兆朕이다. 이 交替運命을 타고 啓示된 長生說이 人乃天의 靈的 長生이다. PP.193-196.
註 00 ; 靈知神識 - 神靈스러운 것을 알고 神의 實在 有無를 인식하는 것. 神識을 정신 또는 意識이라고도 한다.
註 00 ; 現顯 - 겉으로 뚜렷하게 들어나는 것 또는 들어내는 것.
註 00 ; 迷惑彷徨 - 마음이 흐려지도록 무엇에 홀리어 어찌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함 또는 이리저리 정처 없이 헤매며 다님/ 迷惑의 類義語는 매료(魅了),매혹(魅惑),현혹(眩惑)
註 00 ; 六道輪廻 - 불교에서는 절대적인 신은 인정하고 있지 않으나 윤회하는 작은 신(神)들은 일단 인정을 하고 있다. 靈界는 부처님께서도 인정하는 여섯 중생계 중의 한 곳이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각자가 지은 업에 따라 여섯 가지 세상을 돌아가며 태어나고 죽어 가는데 이를 육도윤회 라고 한다. 인간도 자신의 업에 따라 來生에 여섯 가지 중 한 곳에 태어나게 되고 다시 그 곳에 사는 동안 지은 업에 따라 다음 생을 결정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어느 한 생애에서 영원한 생명은 없으며 지옥에서도 선업을 많이 닦으면 다시 아귀도, 인간도, 천도로 유한의 생을 번갈아 태어나게 된다. 고 한다. 그래서 중생은 다음의 여섯 세상(六道)을 윤회하고 있다. 그곳은
① 天上界, - 행복이 두루 갖추어진 하늘세계. 환희(歡喜) 곧 기쁨의 세계. 기쁜 마음이 가슴에 가득하여 다른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하늘에 오른 듯한 기분이 오래도록 계속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부언하면, 인간계의 땅을 떠난 것 같은 충만한 기쁨에 젖는 것이 천상계이다.
② 餓鬼界, - 지옥보다 육체적 고통은 덜 받으나 굶주림의 고통을 받는다. 탐욕 곧 욕심냄이 근원이 됨.
③ 人間界, - 우리 인간이 사는 세상. 평정(平正)의 세계. 지옥(地獄)ㆍ아귀(餓鬼)ㆍ축생(畜生)ㆍ아수라(阿修羅)의 네 가지의 마음의 세계는 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가면 멈추는 것이 인간계이다.
④ 畜生界, - 네발 달린 짐승을 비롯해 새, 고기, 벌레, 뱀까지도 모두 포함됨. 우치(愚痴) 곧 어리석음이다. 우치라는 것은 눈앞의 것만 보고 앞뒤를 보지 않는 것.
⑤ 阿修羅界, - 노여움이 가득찬 세상으로 끝없는 다툼의 세계. 서로 다투고 서로 싸우는 곳이 아수라계. 다툼을 일으키는 근본은 인간의 첨곡(諂曲), 곧 억지 쓰는 마음이다.
⑥ 地獄界. -가장 고통이 심한 세상. 심한 육체적 고통을 받는다. 嗔에 곧 성냄의 세계 /각종 어학사전과 관련 자료에서 발췌 재정리함.
註 00 ; 기독교의 천당과 지옥 - 천당과 지옥이라는 개념은 원래 유태교 히브리 사상에는 없던 것이라고 한다. 유태인들은 하나님만 영원하시고, 인간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유한한 존재로 보았다, 희랍의 이원론과 영혼불멸사상, 그리고 이란의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천당과 지옥의 개념이 나중에 도입이 되었다고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개 천당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참된 종교의 가르침처럼, 진정한 천당과 지옥은 우리가 마음속에서 무엇을 만드는가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천당과 지옥이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음은 종교의 선각자들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수많은 국가와 사회세력이 서로 대립하며 각기 ‘평화’와 ‘진보’를 내세우지만, 자기 자신이나 자기 집단만을 배부르게 하겠다는 이러한 태도 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바로 지옥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종교의 차이를 넘어, 우리 모두는 혹시 자신의 무지와 편견이 다른 사람들을 지옥의 불구덩이로 몰아넣고 있지는 않은가 항상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천당도 지옥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이 당신의 일생을 결정할 것이다.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 재정리함
註 00 ; 惡투쟁 - 만사를 선악으로 나누어서 본 이분법 입장에서의 악을 제거하기 위하여 힘써 싸움./ 鬪爭은 어떤 단체나 개인 등이 어떤 목적을 이루거나 상대편을 극복하기 위하여 힘쓰거나 싸움을 의미한다. 유의어는 ‘싸우다’이다. /필자가 어학 사전을 바탕으로 문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새로이 기술함.
註 00 ; 所爲 - 이미 하고 있거나 해 놓은 일. 또는 이미 저질러 놓은 일이나 짓. 類義語는 所行.
註 00 ; 兆朕 - 나중 일이 벌어지는 양상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그 이전 단계의 움직임이나 변화나 상서로운 조짐./ 유의어 조상(兆祥), 증후(證候,) 전조(前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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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章 人間五福; P.183.
法悅이 萬福의 근원이 되는 所以는 第一章에서 論한 바와 같다. 그러나 法悅이라면 단순히 추상적 보편적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法悅이 神의 無爲而化的 直觀으로 나올 수 있다고 할수 있더라도 의식을 가진 사람인 이상 추상적 개념인 法悅의 내용에 어떤 구체적 본질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즉 구체적으로 복이 되는 조건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것을 수운 선생의 福念에서 例를 들어보면 다섯가지의 큰 문제를 제출할 수 있다. 인간으로 이 다섯가지의 福念만 실행한다면 결과는 곧 지상천국의 세계 실현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면 그 人間五福이란 무엇인가? / P.183.
註 00 ; 法悅 - 불교용어로, 부처의 가르침을 설법으로 듣고 진리를 깨달아 마음속에 일어나는 기쁨이나 환희 또는 깊고 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기쁨이나 환희를 말한다. 類義語는 법열감(法悅感)과 법희(法喜)가 있다./어학사전과 불교용어사전에서.
註 00 ; 위의 글 ‘第二章 人間五福’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자료들을 熟讀詳味하실 것을 권합니다.
■ 李敦化의 「人生七大福. 1-7」『新人間』통권 92-98호/ 1935-1936.을 참조할 것.
人生七大福 1. 緖言 第一章 한울님을믿음은「無窮我」를獲得하는道이다.『新人間』통권92호
人生七大福 2. 第一章 無窮我의獲得(續) 『新人間』통권 93호.
人生七大福 3. 第二章 地上神仙의大人格의獲得 『新人間』통권 94호.
人生七大福 4. 第二章 地上神仙의大人格의獲得(2) 『新人間』통권 95호.
人生七大福 5. 第三章 此生極樂과法悅. 『新人間』통권 96호.
人生七大福 6. 第三章 法悅과此生極樂(二).『新人間』통권 97호.
人生七大福 7. 小題目은 없음. 『新人間』통권 98호.
■ 『복념』 -李敦化가 포덕 77(1936)년 8월 15일에 출간한 單行本. 이 책은 포덕 108(1967)년 5월 13일에 천도교청년회가 57페이지로 된 4X6판형 프린본으로 복간했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一. 한울님의 영광. PP.1-5.
二. 스승의 은덕. PP.5-10.
三. 인생의 목적. PP.10-17.
四. 七大福. PP.17-53./ 내용에서는 四. 인생칠대복으로 됨. /전체 분량의 약 3분의 2.
五. 수도생활. PP.54-57.
※※※ 四. 인생칠대복의 구체적인 내용. 위에서 알린 『新人間』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요약한 것임.
甲. 무궁아를 얻는 복. P.17.
乙. 지상신선의 대인격을 얻는 복. P.20.
丙. 차생극락의 복. P.26.
丁. 영적장생의 복. P.32.
戊. 선지각을 얻는 복. P.38.
己. 동귀일체의 복. P.42.
庚. 지상천국의 복. PP.49./ 필자의 -夜雷 李敦化의 生涯와 思想(10-5) 의 末에 수록된 것임.
一 濟人疾病 ; P.184.
인간의 본래의 苦인 生 老 病 死 四大苦 가운데 生老死 세가지는 석가의 말씀같이 無明의 大本源으로부터 흘러온 것이기 때문에 그는 可히 한울님이 정한 바이며 대자연의 理法 아래서 절대 불가항력에 속한 것이다. 人知가 如何히 발달된다고 할지라도 無明의 종자를 없애기 전에는 그를 論理조차 할 修鍊力, 기화적 수양력 등에 의하여 퇴치할 수 있는 가능적 본질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위선 병이란 무엇인가 하는 병의 본질부터 설명하면 석가가 말한 병은 俠義의 의미로서의 병인 듯하다. 즉 육체적 의미의 병을 말한듯 하다. 그런데 수운선생이 云謂하는 病은 정신적 육체적인 병을 통칭하여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수운선생은 勿藥自效리 하여 육체적 질병을 건지는 道는 藥物보다도 心化氣化의 정신수련을 주장하였으므로 써이다. 즉 인간의 질병을 건지는 道는 같으면서도 정신적 질병의 퇴치로 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적 질병이라는 것도 한마디로 총괄하면 번뇌라고 할수 있다. 번뇌는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인간 개체의 생존욕의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육체적 질병이 부작용의 발생에 수반하여 그 위험성이 증가하는 것과 같이 인간의 생존욕도 번뇌나 苦의 부작용에서 우환이 나오게 된다.
天師問答에 曰「吾有靈符 其名仙藥 其形太極 又形弓弓 受我此符 濟人疾病 受我呪文 敎人爲我 則 汝亦長生 布德天下矣/ 布德文 原文確認-오암」(啓示)
이것은 神의 계시로서 인간의 행복은 濟人疾病으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계시한 것이다. 인생은 與憂患俱生이란 말과 같이 인간으로서 누구나 질병적 상태가 아닌 사람은 없다. 육체적 질병이 없는 육체적 건강자는 세상에 간혹 있으되 정신적 질병인 貪 嗔 痴 등을 一切 가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貪은 物慾이나 物慾에 대한 過分을 이름이요, 嗔은 怒 憎惡 질투 등을 이름이요, 痴은(‘치(痴)는’ 이 올바른 표기이다.-오암) 無慧 不滿足 取越苦 등을 이르는 것이라면 이러한 惡.을 退治하는데는 靈符의 위력이 아니면 도저히 불능하다는 것이다. 靈符는 보통 天心이라 해석하는데 「胸藏不死之藥하니 弓乙其形이다./原文;胸藏不死之藥 弓乙其形 口誦長生之呪 三七其字/ 修德文 對照-오암」한 것으로 보면 인간의 神的 본질인 內有神靈의 靈動形態로서의 靈符을 가르킨(‘영부를 가르친’ 이 바른 표기-오암)것이 명백하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貪 嗔 痴 등의 번뇌는 인간의 念의 內有神靈의 至上命令과 背馳될 때에 생기는 작용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念이 內有神靈과 合一하게 되면 번뇌는 거기서 소멸될 것이다. 靈符라는 符字는 符合이라는 意도 되며 如合符節(사물이 꼭 들어맞음 또는 꼭 들어맞는 듯하다.-오암)이라는 合一의 意義도 된다. 符合의 뜻은 內有神靈의 靈動을 표시한 것이며 合一의 뜻은 天人合一을 의미한 것이다. 수운선생은 내유신령의 靈動의 形을 有形의 符로 상징하여 神靈의 분명한 존재를 徒弟에게 가르쳤다. 그러므로 紙上에 그린 符道는 일종의 暗示작용으로 念의 방향 전환을 촉진하는 교화 방편이다. 여지껏 肉身의 생존경쟁 속에서 貪嗔痴에 몰두하든 念을 內有神靈의 內在存在편으로 단연 방향을 전환케하는 至上命令의 神印인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계약에는 印章을 요한다. 印章의 印은 無形心의 誓約을 重盟의 형식으로 취하기 위한 眞心의 表象이다. 太古의 순박한 백성들에게도 結繩의 政이 있었다. 結繩은 일종의 印이다. 印은 마음의 誓約의 表象이다. 神과 사람늬 誓約에도 어떤 誓約의 印이 필요하다. PP.184-187.
註 00 ; 貪 嗔 痴- 불교에서 탐욕적이고(貪), 성내고(嗔), 남을 의심하는 어리석음(痴)에 빠지는 것을 인간다움을 해치는 것을 三毒心이라 한다. 三毒心은 인간내면에 실재하고 있어 불도를 닦아 열반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 고 한다. 그래서 修鍊을 통하여 三毒心을 淨化하여 마음의 平靜을 얻도록 항시 노력해야 한다.
註 00 ; 取越苦 -일본어 取越苦労를 활용한 것 같다. 取越이란 정해진 기간 이전을 의미하는 말로 활용된다고 한다. 取越苦는 이미 지니고 있는 고통과 수고로움의 의미로 사용한 듯하다./오암.
註 00 ; 天人合一 - 중국인의 세계관의 하나로, 하늘과 사람과는 도리를 매개로 하여 하나로 연결되어 합쳐서 한울과 사람이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에는 사람의 마음(心) ‧ 성(性)은 하늘과 통해 있다거나(孟子), 또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했다.(董仲舒) 전자인 맹자의 天人相通論은 송나라 시대에 발전하여 송학의 중요한 기초관념이 되었다. 천도교에서는 한울님과 사람은 하나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人乃天)./ 類義語는 神人合一
天人合一의 사상은, 하늘과 사람이 합일체임을 밝히는 유교적 개념. 중국 하(夏)·상(商)·서주(西周) 시대에는 하늘이 자연과 사회를 주재하는 최고의 신(神)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천명론(天命論)은 춘추시대에 들어와 동요하기 시작해 춘추 말년에는 "天道는 멀고 人道는 가까우니 천도는 알지 못한다."라고 하여 천도와 인도를 구별하게 되었다. 孔子는 전통적 天命觀을 수정하여 하늘이 인격신(人格神)이라는 생각은 부정하고 단지 天命의 작용만을 인정했다. 동시에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었다"라고 하여 인간이 가진 덕성을 천부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戰國時代에 맹자는 "마음을 다하는 것은 性을 아는 것이며, 성을 아는 것은 하늘을 아는 것"이라고 하여 사람의 마음과 성이 하늘과 본래 일체이며, 盡心, 知性이면 능히 천명을 얻는다. 고 했다. 맹자의 이러한 사고는 하늘이 모든 것을 포함하며 동시에 사람의 마음에 이것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천인합일 사상의 명확한 표현이었다.
漢나라의 동중서는 이러한 천인합일 사상을 계승하여 천명론과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을 결합한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사상체계를 세웠다. 그는 "사람은 하늘에 근본하여 만들어졌으며 하늘은 사람의 증조부(曾祖父)"라고 하며 하늘이 최고의 신이며 인간은 하늘이 창조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인간의 일체 행위가 천의(天意)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했다. 이와 함께 하늘과 사람 사이에는 상호 감응이 작용해서, 양자가 합해져 하나가 된다고 설명했다.
宋代에 들어와서는 성리학자(性理學者)들은 이(理)·성(性)·명(命) 등의 개념을 가지고 천인합일을 논증하고자 했다. 이 가운데 정이(程頤)는 "하늘과 사람이 본래 둘이 아니므로 합(合)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고, 朱熹도 "하늘과 사람은 일물(一物)인데, 내외가 일리(一理)로 유통 관철하므로 간격이 없다."고 설명했다. 천인합일은 천인관계를 파악하는 유교의 기본관점으로서 중국을 비롯한 동양 전통사상의 중요한 구성요소였다./관련 자료 종합 정리.
■ 天人合一說 - 유교 철학에서 하늘과 사람은 合一體라는 학설. 『中庸』에서는 ‘天命之謂性’이라 하여 인간 존재의 본질인 성(性)을 천명과 동일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성이라는 글자의 모양이 ‘忄(心)’와 ‘生’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살려는 마음’·‘살려는 의지’로 이해할 수 있는데, ‘살려는 의지’는 인간의 지각(知覺)이나 의식(意識)을 초월한 본질적인 것으로서 깊은 잠에 들었을 때도 심장을 움직이고 호흡을 하게 하는 근원자인 것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로서의 성은 한 개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동일한 것이며, 또한 만물에 내재되어 있는 생(生)의 본질과도 동일한 것이다. 말하자면, 개체의 본질이 바로 전체의 본질인 것이다.
다만 개체의 본질을 가리켜 말할 때는 성이라 하고 만물 전체의 본질을 가리켜 말할 때는 하늘의 작용이라는 의미로서 천명이라고 한 것이지, 성과 천명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개체적 존재이면서 본질적으로는 전체적 존재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하늘과 사람은 합일체라는 것이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감각 기관이 발달하게 되는데 이 감각 기관은 육체를 중심으로 하여 남과 나를 구별하는 쪽으로 작용하여 점차 인간은 전체적 존재로서의 본질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전체적 존재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은 상태의 인간이란 바로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맹자는 ‘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라 하여 그가 이상적 인간으로 설정한 대인은 갓 태어난 아기 때의 마음을 잃지 않고 보존하는 자라고 설명하였다. 이때의 대인은 천인합일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맹자는 이미 전체적 존재로서의 본질인 천명의 성을 잃어버린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과제로서 학문을 설정하고, 학문의 길은 잃어버린 마음을 다시 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또 ‘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라 하여 전체적 본질로서의 성을 다시 구하는 과정으로서 학문의 길을 진심(盡心)·지성(知性)·지천(知天)의 세 단계로 세분하였다.
『中庸』에서는 성을 다시 구하여 천인합일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성(誠)의 실천을 제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이라야 능히 자기의 성을 다하니 자기의 성을 다하면 남의 성을 다하고 남의 성을 다하면 물(物)의 성을 다하며 물의 성을 다하면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고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더불어 그 작용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心)을 다하여 성(誠)을 실천하고 천명의 성(性)을 다시 구하여 천인합일이 되면 인간은 개체적 존재를 극복하여 전체적 존재를 실천하게 되는데, 그러한 때의 인간 행위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맹자는 ‘與天地同流’라 하였다.
『周易』에서는 “천지와 그 덕을 합하고 일월(日月)과 그 밝음[明]을 합하고 사시(四時)와 그 차례[序]를 합하고 귀신과 그 길흉을 합하여 천지와 혼연일체가 되어 같이 흐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아니하였다”라고 한 공자의 실천 세계도 또한 천인합일의 세계로 이해할 수 있다.
천인합일사상은 인간을 본질적으로 전체적인 조화 속에서 존재하는 자로 봄으로써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을 도출하게 되는데, 전국 시대 말기에 태어나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면서 투쟁에 염증을 느끼고 그 해결 방법을 모색하려던 순자(荀子)는 성선설이나 천인합일사상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투쟁의 직접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인간은 본질적으로 서로 투쟁하게 되어 있다고 봄으로써 성악설을 제창하고 아울러 천인분리사상을 주창하여 인간은 천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힘에 의해 인간 사회의 조화와 질서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고 그 원리로서 예(禮)를 강조하였다.
漢代)의 董仲舒는 “하늘도 인간과 같은 희로애락이 있다”고 설명함으로써 천인합일사상을 더욱 발전시켰다. 唐末의 이고(李翺)는 천인합일의 방법론으로서 복성론(復性論)을 제창하고 다시 복성의 방법으로서 성(誠)의 실천과 멸정(滅情)을 제시하였는데, 주돈이(周敦頤)에 이르러 이는 성(誠)의 실천과 무욕(無欲)으로 계승되고 또 복성의 객관적인 방법으로서 우주론이 전개되었다.
주돈이의 사상은 다시 장재(張載)·정이(程頤) 등을 거쳐 주희(朱熹)에 이르러 성리학으로 완성되는데, 주희는 성의 실천과 무욕을 거경(居敬), 우주론을 궁리(窮理)로 집약하여 복성의 방법을 거경과 궁리로 정리하였다.
한국 유학에서는 천인합일사상보다 더욱 밀도가 높은 天人無間思想이 발달하였다. 천인합일이 천과 인이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일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 천인무간은 천과 인이 애당초 간격이 없이 하나라는 의미이다. 천인무간사상에서 나타나는 한국적 특징으로는 궁리보다도 복성의 직접적인 방법인 거경을 중심으로 하는 고도의 修養哲學과 至治主義運動과 같은 강렬한 정치적 실천 의욕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천인무간의 사상은 인간의 감정까지도 긍정하게 되어 천의 의지를 인간이 따른다는 천 중심의 천인합일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천이 따른다는 인간 중심의 천인합일사상으로서 인내천사상(人乃天思想)이 발달하게 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문헌
『중용(中庸)』
『맹자(孟子)』
『주역(周易)』
『입학도설(入學圖說)』
註 00 ; 神印 - 신인과 관련된 이야기가『삼국유사』선덕여왕지기삼사에 기술된 내용으로 알려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唐은 문무왕 4년(679) 신라가 웅진도독부를 공격한다는 핑계로 50만 대군을 일으켰다. 이때 당에 유학하고 있던 의상 스님이 그 사실을 미리 알고 귀국해 왕에게 알리자 왕은 곧 신하들을 불러 대책을 논의했는데 다의 침략을 막아낼 사람으로 각간 김천존이 명랑 스님을 천거했다. 고 한다.
명랑 스님은 낭산 남쪽 신유림 안에 있는 사천왕사를 세워 적의 침략을 막을 것을 건의하였지만, 당의 대군은 이미 해로(海路)를 통해 침입하고 있는 중이었다. 명랑 스님은 급히 비단으로 절터를 두르고 오방(五方)에 신장상을 모시고 유가명승(瑜伽明僧) 열두 분을 모셔 문두루(文豆婁, mudra = 神印) 비법을 쓰게 했다. 그러자 신라와 싸우기도 전에 바람과 물결이 사납게 일어 당의 군함이 모두 침몰했습니다. 명랑 스님은 문무왕 11년(671) 당이 다시 신라를 침략했을 때도 문두루 비법으로 물리쳤다 합니다. 스님이 썼다는 문두루비법이 어떤 주술이었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 다만 학자들은 《금광명경(金光明經)》의 가르침을 따르는 비밀주법(秘密呪法)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관련 자료에서 재 정리함.
위와 같은 내용으로 보아 神印은 신의 가늠할 수 없는 超能力이나 조화를 의미한다고 추리해 볼 수 있다.-오암.
註 00 ; 結繩의 政 - 結繩之政을 말하는 것으로, 고대 중국의 정치를 이르는 말이다. 글자가 없던 시대에 끈이나 띠로 매듭을 지어 의사 표시를 하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 『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와 《사기(史記)》 권1 오제본기(五帝本紀)에 신농씨(神農氏)때 글자가 없던 시대에 글자 대신 노끈을 맺어 일을 표시하던 행정[結繩之政]를 펼치다가, 복희씨(伏羲氏) 때에 이르러 창힐(蒼頡)이라는 신하가 만든 문자로 서계(書契나무에 새겨서 썼다는 최초의 문자)를 만들어서 이를 대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史記』 〈보사기(補史記)〉의 삼황본기(三皇本紀)와 《사기색은(史記索隱)》 권30의 삼황본기(三皇本紀)에 공히 보이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호 포희씨는 풍성으로 수인씨를 대신하여 계속 천하를 다스렸는데,……성덕이 있었다. 위로 하늘의 상과 아래로 땅의 법을 관찰하고 곁으로 새와 짐승의 문과 천지의 마땅함을 관찰하며 가까이로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로는 물건에서 취하여, 비로소 팔괘를 만들어 신명의 덕을 통하고 만물의 정을 분류하였으며 서계를 만들어 결승의 정치를 대신하였다./太皡庖犧氏風姓 代燧人氏繼天……有聖德. 仰則觀象於天 俯則觀法於地 旁觀鳥獸之文與地之宜 近取諸身 遠取諸物 始畫八卦 以通神明之德 以類萬物之情 造書契 以代結繩之政
■ 창힐(蒼頡) - 창힐은 중국의상고 복희씨(伏羲氏) 시대에 黃帝의 신하로, 새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상형문자(象形文字)를 만들어 결승지정(結繩之政)을 대신하였다. /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그러므로 수운선생이 庚申四月五日 神의 啓示를 받은 후에 靈眼으로 靈符의 形을 보았다. 神이 天心 그대로의 靈動形相을 靈符로 보여 주었고 선생 역시 靈眼으로 이를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受我靈符의 증거이다. 이 증거가 곧 神의 至上命令의 神印이다. 印은 곧 誓約의 증거이며 증거의 표시이다. 神과 선생은 無形의 神印을 無形으로 授受한 것이다. 이 증거를 無知한 世人에게 肉眼으로 보이게 하는 방법으로 符圖가 생겼다. 無形的인 符가 有形의 符圖로 된 것이다. 비록 有形의 符圖라고 할지라도 神印의 弓乙形太極形은 본래 그대로이므로 인간과 인간의 天心 誓約에서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受我靈符 濟人疾病의 原理는 어떤 사람에게도 보편타당성을 갖는다.
靈符 卽 至上命令의 神印을 받자마자 人間의 念은 정신적 大喝一聲(크게 꾸짖는 소리나 크게 외치는 한마디의 소리-오암)의 靈波로 곧 方向전환이 된다. 찰나적으로 정신개벽이 일어난다. 정신의 부작용에는 번뇌는 明來暗滅과 같이 本無가 本無로 소멸한다. 雲捲하니 靑天白日이요, 地盡하니 天風海濤라 神人到處에 衆魔消滅이로다.
인간의 본래 面目(사물의 상태나 겉모양.-오암)으로는 疾病은 本無한 것이다. 明의 背影으로 暗이 생기는 것과 같이 질병은 神의 理念(攝理또는 자연의 질서)을 背逆(거역허거나 배반하는 것-오암)한데서 一時的 假相으로 육체상에 나타나는 변태작용(일종의 돌연변이작용-오암)이다. 그러므로 念의 方向 전환에 의하여 神明의 靈光의 照臨할 때에 病의 假相은本無로 돌아 간다. 즉 念이 復其初에 因한 인간 본래의 面目(참모습-오암)이 들어나는 것이다. 神의 至上命令的 神印 즉 靈符는 修者의 靈化정도에 따라 自由自在로 변하게 된다. 이는 선생의 기적적 행적을 보아도 넉넉히 알수 있다. 선생은 自初에 紙上符圖로서 神印의 상징으로하여 念의 復其初를 암시하였다. 그러나 점차 靈力이 진전함에 따라 神印의 상징은 일정하지 않았다. 어느 해 寧海 지방에 惡病이 유행한다는 徒弟의 말을 듣고 「得難求難 實是非難 心和氣和 以待春和/ 題書 대조-오암」라는 文句를 써서 그 지방에 보내었드니 질병은 즉시 소멸되고 말았다. 그 다음 手撫病愈(손으로 患部를 쓰다듬어 병을 낫게 하다/민간요법 중의 하나.-오암)의 사실과 같은 것은 연속하여 있었다. 언젠가 慶州 府尹이 자기 부인의 병을 치료해 주기를 간청하였는데 선생은 使者에게 「病은 이미 낳았다 돌아가라」고 해서 돌아와 본즉 과연 말씀과 같았다. 이러한 것은 모두 靈符의 自在自由한 것을 증거하는것이다. 원래 神印 즉 명부(영부의 잘못-오암)는 神의 至上命令인 고로 인간은 누구나 自心의 內有神靈에서 自在的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念과 內有神靈의 背馳로 인하여 神의 至上命令이 自我에 感化를 주지 못하므로 대개는 有若無의 상태로 되어 진다. 허나 信者 자신이 守心正氣의 修鍊으로 神의 至上命令인 靈力이 나타나면 疾病은 本無한 것이므로 질병의 有無를 본래 論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설사 불행이라고 할까, 神의 일시적 시험이라고 할가 질병에 걸린다고 할지라도 心和氣和의 힘에 의하여 勿藥自效가 될 것은 理의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濟人疾病의 理想은 질병자 자신이 타인의 靈力에 의하여 그를 치료하는 것 보다 자기가 자기의 靈力으로 그를 치료하는 것이 본연의 행사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각 개인이 가 같이 정신적 또는 육체적으로 질병을 몰아내면 그것은 자신의 행복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보편적인 행복이 될 것이다. 수운선생은 曰 「入道한 세상 사람 그 날부터 君子되어 無爲而化 될것이니 地上神仙 네 아니냐/ 敎訓歌 대조 - 오암)」라고 했다. 地上神仙(理想的인 人間)은 無爲而化의 君子的 인격에서 되고 君子的 인격은 濟人疾病에서 원인되는 것이므로 濟人疾病은 人間幸福의 入德之門이 된다. PP.187-190.
註 00 ; 明來暗滅 - 초거명래(悄去明來/남이 알지 못하게 갔다가 성공하여 공공연히 당당하게 돌아옴)에서 명래를, 일승암멸(日昇暗滅/ 태양이 떠오르니 어둠이 사라짐)에서 암멸을 활용하여 4字成語, 明來暗滅를 만든 듯.-오암.
註 00 ; 본무(本無) - 위진시대(魏晉時代:3~4세기) 현학가 하안(何晏)· 왕필(王弼)이 제창했던 중국의 철학사상의 하나이다. 선진시대의 도가학설로부터 발전된 것이다. 何晏은「無爲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지만물은 모두 無를 本으로 한다. 무라는 것은 모든 사물을 생성·변화·발전시키는 것으로, 어디에든 존재하지 않음이 없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모든 유형유상의 사물들은 무형무상의 본체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물은 '무'와 비교해 보면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이다. 이 때문에 하안과 왕필을 위진 玄學의 本無派 혹은 貴無派라고 불렸다. 한대(漢代) 신학의 목적론과 비교해볼 때, 이들이 주장한 本無思想은 이론적 사유 수준에서 한걸음 진전했음을 보여준다.
■ 本無에 대한 例文들을 참조.
本無生死 - 태어나고 죽는 것이 본래 다로 없다는 것이 진리.
此心平等本無凡聖 -마음이란 본래 평등하여 범부와 성인이 따로 없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 - 사람이 산다는 것은 한 조각의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으며, 죽는다는 것은 한 조각의 뜬구름이 흩어져 사라지는 것과 같다, 뜬구름이란 본래 그 자체가 없는 것이므로 생과 사, 그리고 가고 옴이 또한 이와 같다.
天下本無事 - 세상사란 본래 없는 데서 시작된다.
得之本有 失之本無 -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얻었다 한들 본래 있었던 것을 얻는 것이며, 잃었다 한들 본래 없던 것을 잃은 것이다./다움 백과를 바탕으로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풀이는 오암이 함.
註 00 ; 雲捲하니 靑天白日이요, 地盡하니 天風海濤라 神人到處에 衆魔消滅이로다./ 出典未詳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구름이 다 걷히니 푸른 하늘과 밝은 해가 뜨고, 땅이 다하도록 땅 끝에 이르니 하늘에 부는 바람과 파도치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신인이 도처에 있으니 온갖 악마가 모두 다 사라진다(소멸된다).
二 長生不死; P.190.
長生이 理에 대하여는 이 책 전부를 長生觀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하겠다. 長生은 종교적 來世觀이 그의 중심인 것은 물론이나 수운선생의 長生觀은 이를 세 가지로 말씀 하셨다. 一曰 肉的 長生 二曰 靈的 長生 三曰 德業長生이 그것이다.
① 肉的 長生 ; 肉的 長生은 天命死 즉 自然死를 가르친(잘못된 표기. 아래 註 참조-오암) 것이다. 위에서 述한바와 같이 인생은 본래 無病인 고로 無故한 사람에게 본래 病死 또는 變死가 있을 理 없다. 왜 그러냐 하면 疾病死나 變死의 원인은 전부가 정신적인 질병인 苦惱와 육체적인 질병인 氣의 不調和로 생기는 것이므로 心化 氣化의 神靈的 본질은 守行하는 사람에게는 此等의 부자연한 死가 있을리가 없고 天然自然으로 天命死에 이르게 된다. 天命死의 한계는 과학적 설명을 빌면 成長期間의 五倍라 하나 인간에게 있어서는 이것은 確信할 定說이 못된다. 사람은 신령의 편으로 보면, 肉體靈化의 가능성을 가짐과 동시에 物慾의 편으로 보면, 동물 이하의 타락성도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간의 육체적 수명은 그의 長短이 일정하지 못할 것이다. 수운선생은 天道를 儒彿仙 合一이라 하여 仙道도 東學의 一部로 인정하였다.
仙道는 本來 養生의 道이다. 그러므로 그는 육체의 長生을 목적으로 한 道이다. 그것은 인간 세계에 당연히 있을 만한 道이다. 仙道의 육체의 長生은 理想的 神仙說로 化하여 육신이 영원장생한다는 점에 이르러서는 누구나 의문을 가질 수 없다. 수운선생의 道說중에도 「仙」字가 많이 있는 것을 보면 선생도 神仙의 理想을 시인한 듯하다.「」
「나도 또한 神仙이라 飛上天한다 해도 이내 仙境 龜尾龍潭 다시 보기 어렵도다」(몽중노소 문답가/出典이 잘못됨. 龍潭歌 대조-오암) 「百疊塵埃吾欲滌 飄然騎鶴向仙台(臺/경전 대조-오암)」(偶吟) 等은 神仙의 實在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선생의 地上神仙說로 보면 人格의 神仙化를 상징한 것이 분명하고 古來의 神仙說은 理想的 憧憬이나 詩的 存在로 시인한 듯하다.
神仙的 理想은 西洋의 天使的 理想과 같이 神과 사람 사이의 간접적 존재였다. 그러므로 神仙은 순수한 靈的 존재도 아니요 순수한 人的 존재도 아닌 肉體의 靈化的 인간을 이름이다. 인간의 육체도 어떤 高度의 修鍊에 의하여는 육체적 본질인 至氣의 本體에 復其初(맨 처음으로 돌아감-오암)하여 上天下天(이 세상 또는 온누리-오암)의 자유스러운 境涯(境地/학문이나 예술 따위에서 일정한 체계로 이루어진 어떤 영역이나 분야-오암)에 達할 만한 理論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보편타당성에서 벗어난 행위로서 道敎에서 신앙하는 崇拜的 對象은 될지언정 實踐的 도덕은 아니다. 神仙說을 實踐的으로 道德化하기 위하여는 地上神仙의 理想이 보편타당성을 가졌다. 신선을 육체적 존재로 보지 말고 神仙的 본질인 養生 養氣, 平和的 氣像, 自由自在, 無爲而化의 順應, 無邪氣(邪惡한 기운이 없는-오암) 狀態, 自然의 大道에 體應(몸으로 體得하거나 適應하는 것-오암) 등의 성질은 人間純化의 敎化로서 精神 藝術的 價値를 가졌다. 이런 等의 人格的 理想이 곧 地上神仙이다. 수운선생의 長生의 내용에는 實로 地上神仙의 내용이 포함된 듯하다. 그러한 인간의 死는 死가 아니고 純化이다. 死는 곧 修道人의 仙化狀態에 지나지 않는다. 육체적 생명이 살대로 다 살아 가지고 天然自然의 理法으로 因하여 靈化의 境涯에 들어가는 天命死이다. 이것이 肉的 長生이다.
地上神仙의 人格에 達하면 死는 이미 死가 아니오 人間本體에 自在한 靈化의 本面目이 나타나는 變化의 현상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러한 사람은 死의 공포를 가지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千里遠客(천리 밖 먼 타향에서 떠돌던 나그네-오암)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直感을 가질 수 있다. 어려서 고향을 떠난 放浪孤客(정처 없이 물결처럼 타향을 떠도는 고독한 나그네-오암) 이 고향의 有無도 확실히 모르고 더욱이 가족의 有無도 막연한 때에는 還故鄕(고향으로 되돌아감-오암)이란 것도 결코 반가운 것이 못된다. 그러나 고향의 부모형제가 명백히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그는 고향에 호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自然死가 결코 멸망의 상태가 아닌 것을 안다면 肉的 長生은 그대로 지속되는 것이요, 육체의 파괴는 持續을 維持하는 한 작용으로 일게 될 것이다. PP.190-193.
註 00 ; 가르치다와 가리키다 - 가르치다는 知識(理致)이나 技藝(技術)를 알게 하거나 익히게 하는 것이고, 가리키다는 무엇이 있는 곳(方向과 對象)이나 事物을 말이나 손짓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참고로 ‘가르치다와 가리키다’를 구분한 것은, 1930년대에 조선어학회가 중심이 되어 말글 규범을 정할 때에, 이 두 부류의 낱말을 별개의 낱말로 처리하여 별도의 의미를 부여하는 쪽으로 정리하였다. 즉, '가르치다'는 <교육하다>의 의미로, '가리키다'는 <지시하다>를 뜻하는 형태로 독립시켜 차별화한 것이다./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註 00 ; 此等 - 文章語에서,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복수의 대상을 가리키는 말로, 이들. 이런 것들의 의미를 갖고 활용된다.
② 靈的 長生 ; 靈的 長生의 意義는 위에 死의 原理에서 槪說하였으므로 여기에는 簡單히 적는다.
원래 靈的 長生은 肉的 長生과 떨어진 長生이 아니오 人間不死의 原理가 계속되는 長生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로 본다면 수운선생의 말씀과 같이 人間은 본래 不死이다. 不死의 본질을 지속키 위하여 生死의 현상이 일어난다. 선생은 曰 「胸藏不死之藥 弓乙其形 口誦長生之呪 三七其字/修德文 대조-오암」「秦始皇 漢武帝가 무엇 없어 죽었던(는)고 내가 그 때 났었더면 不死藥을 손에 들고 조롱만상(嘲弄萬狀) 하올것을 늦게 나니 恨이로다./ 安心歌 대조-오암」라고 했다. 不死藥이란 것은 人間不死의 본질을 이름이다. 이 본질의 有無를 直覺한다면 三 七字의 長生呪文을 외어 정신통일로 靈知神識을 現顯케 하는데 있다
이간이 根本에서 不死하는 본질을 가졌다고 하면 意識的 無意識的을 不問하고, 또는 善惡의 구별도 없이 一律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교육은 모르나 死에 대한 敎化 즉 종교적 교화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종교는 靈的 長生을 가르치는 道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항상 無宗敎人의 질문의 단서가 되고 같은 종교가일지라도 피차 자기 종교가 정말 바른 길을 가르치는 바른 神을 믿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점이 된다. 衆生이 나갈 길을 여기서 迷惑彷徨케 되는 것이다.
첫째 점에 있어서 종교는 各其 方便(方法-오암)이 있다. 무엇이냐 하면 물론 어떤 종교이든지 인간의 본질은 불멸이라 하되 來世의 효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佛敎의 六道輪廻, 기독교의 천당과 지옥과 같은 것이다.
둘째 점은 종교 자신이 벌써 旣存 종교의 운명종말을 고백하는 惡투쟁이 된다. 이러한 악투쟁은 善意로 해석한다면 현대와 같이 자유신앙 아래서 각 종교가 대립하는 이상 勢不得 자기의 地盤을 넓힐 필요성 때문에 자연적 투쟁이 없을 수 없고 또는 敎理上의 相違(서로 다름. 문자의 내용으로는 矛盾.-오암)로 理論的 是非경쟁이 없을 수 없는 필연적 所爲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덧 旣成 종교 자신의 시대성 결핍을 성언하는 것이다. 기성 종교로서의 시대적 결핍은 피차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敎理上의 모순도 피차 동일하다. 각 종교의 시대성 결핍의 폐해가 그들의 악투쟁을 일으키게 하고 악투쟁이 필경은 피차 종교의 공동 불변의 진리인 人間長生에 까지 악영향을 미쳐 長生의 원리로 부터 생긴 종교가 도리어 長生을 疑惑케하는 반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것이 종교 交替의 운명이 시작된 兆朕이다. 이 交替運命을 타고 啓示된 長生說이 人乃天의 靈的 長生이다. PP.193-196.
註 00 ; 靈知神識 - 神靈스러운 것을 알고 神의 實在 有無를 인식하는 것. 神識을 정신 또는 意識이라고도 한다.
註 00 ; 現顯 - 겉으로 뚜렷하게 들어나는 것 또는 들어내는 것.
註 00 ; 迷惑彷徨 - 마음이 흐려지도록 무엇에 홀리어 어찌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함 또는 이리저리 정처 없이 헤매며 다님/ 迷惑의 類義語는 매료(魅了),매혹(魅惑),현혹(眩惑)
註 00 ; 六道輪廻 - 불교에서는 절대적인 신은 인정하고 있지 않으나 윤회하는 작은 신(神)들은 일단 인정을 하고 있다. 靈界는 부처님께서도 인정하는 여섯 중생계 중의 한 곳이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각자가 지은 업에 따라 여섯 가지 세상을 돌아가며 태어나고 죽어 가는데 이를 육도윤회 라고 한다. 인간도 자신의 업에 따라 來生에 여섯 가지 중 한 곳에 태어나게 되고 다시 그 곳에 사는 동안 지은 업에 따라 다음 생을 결정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어느 한 생애에서 영원한 생명은 없으며 지옥에서도 선업을 많이 닦으면 다시 아귀도, 인간도, 천도로 유한의 생을 번갈아 태어나게 된다. 고 한다. 그래서 중생은 다음의 여섯 세상(六道)을 윤회하고 있다. 그곳은
① 天上界, - 행복이 두루 갖추어진 하늘세계. 환희(歡喜) 곧 기쁨의 세계. 기쁜 마음이 가슴에 가득하여 다른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하늘에 오른 듯한 기분이 오래도록 계속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부언하면, 인간계의 땅을 떠난 것 같은 충만한 기쁨에 젖는 것이 천상계이다.
② 餓鬼界, - 지옥보다 육체적 고통은 덜 받으나 굶주림의 고통을 받는다. 탐욕 곧 욕심냄이 근원이 됨.
③ 人間界, - 우리 인간이 사는 세상. 평정(平正)의 세계. 지옥(地獄)ㆍ아귀(餓鬼)ㆍ축생(畜生)ㆍ아수라(阿修羅)의 네 가지의 마음의 세계는 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가면 멈추는 것이 인간계이다.
④ 畜生界, - 네발 달린 짐승을 비롯해 새, 고기, 벌레, 뱀까지도 모두 포함됨. 우치(愚痴) 곧 어리석음이다. 우치라는 것은 눈앞의 것만 보고 앞뒤를 보지 않는 것.
⑤ 阿修羅界, - 노여움이 가득찬 세상으로 끝없는 다툼의 세계. 서로 다투고 서로 싸우는 곳이 아수라계. 다툼을 일으키는 근본은 인간의 첨곡(諂曲), 곧 억지 쓰는 마음이다.
⑥ 地獄界. -가장 고통이 심한 세상. 심한 육체적 고통을 받는다. 嗔에 곧 성냄의 세계 /각종 어학사전과 관련 자료에서 발췌 재정리함.
註 00 ; 기독교의 천당과 지옥 - 천당과 지옥이라는 개념은 원래 유태교 히브리 사상에는 없던 것이라고 한다. 유태인들은 하나님만 영원하시고, 인간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유한한 존재로 보았다, 희랍의 이원론과 영혼불멸사상, 그리고 이란의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천당과 지옥의 개념이 나중에 도입이 되었다고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개 천당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참된 종교의 가르침처럼, 진정한 천당과 지옥은 우리가 마음속에서 무엇을 만드는가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천당과 지옥이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음은 종교의 선각자들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수많은 국가와 사회세력이 서로 대립하며 각기 ‘평화’와 ‘진보’를 내세우지만, 자기 자신이나 자기 집단만을 배부르게 하겠다는 이러한 태도 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바로 지옥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종교의 차이를 넘어, 우리 모두는 혹시 자신의 무지와 편견이 다른 사람들을 지옥의 불구덩이로 몰아넣고 있지는 않은가 항상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천당도 지옥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이 당신의 일생을 결정할 것이다.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 재정리함
註 00 ; 惡투쟁 - 만사를 선악으로 나누어서 본 이분법 입장에서의 악을 제거하기 위하여 힘써 싸움./ 鬪爭은 어떤 단체나 개인 등이 어떤 목적을 이루거나 상대편을 극복하기 위하여 힘쓰거나 싸움을 의미한다. 유의어는 ‘싸우다’이다. /필자가 어학 사전을 바탕으로 문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새로이 기술함.
註 00 ; 所爲 - 이미 하고 있거나 해 놓은 일. 또는 이미 저질러 놓은 일이나 짓. 類義語는 所行.
註 00 ; 兆朕 - 나중 일이 벌어지는 양상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그 이전 단계의 움직임이나 변화나 상서로운 조짐./ 유의어 조상(兆祥), 증후(證候,) 전조(前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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