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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東學之人生觀 註解書(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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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댓글 0건 조회 1,987회 작성일 17-06-1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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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學之人生觀 註解書(14-14)


正菴. 그런데 인간의 지식만이 이 原理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무슨 原因인가?
夜雷. 그것은 利己 利他 이상의 全的 目的과 價値의 存在를 망각한 까닭이다. 生存이 自己 生存이 아니요, 價値 目的이 自己 一個體의 價値가 아니다. 生存 이상의 大生存이 있고 目的 이상의 大目的이 있다. 大生存을 위하여 自己 生存이 있고 大目的을 위하여 自己 目的이 있다. 小生存은 大生存을 위하는데 生存의 價値와 目的이 있게 된다. 만약 小生存이 大生存을 망각할 때는 果實이 未熟한 채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가 될 것이다.
正菴. 지금의 例는 人間의 利己的 행위가 大生存인 大我 卽 우주생활에 離脫한 행위라는 말인데 그것을 깨닫게 하는 敎化는 무엇인가?
夜雷. 迷의 解脫에 있다.
註 00 ; 迷의 解脫에 있다. - 迷妄에 벗어나는데 있다. 迷妄이란 사리에 어두워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헤맴을 의미한다./어학사전들에서.
正菴. 迷란 것은 무엇인가?
夜雷. 念이 어떤 一個의 事理에 愛着이 될 때에 迷라고 하는 暗의 假相이 일어난다. 例컨대 의 말에 「好德如好色」이라는 말이 있는데 德은 明德의 全的 活用을 이름이오 色은 愛着의 慾求를 이름이다. 그러기 때문에 好色의 慾求는 性慾의 動機라 할 수 있다. 性慾은 본래가 종족 번식에서 나온 것이어서 自然界의 樂天的 性慾은 일정한 規律下에 종족 번식의 한계 내에서 발작된다. 그런데 인간의 性慾은 分에 넘치는 濫用에서 淫佚(음일/거리낌 없이 음란하고 방탕하게 노는 것을 말함-오암)스러운 弊가일어난다. 다른 慾望도 모두 이와 같아서 인간의 마음이 한번 個體 慾望 卽 過分(지나침-오암)에 빠지고 나면 五里霧中에 빠진 難航이 되고 만다./안개 속에서 航路를 잃어 헤매는 배와 같다.-오암. 이것이 인간의 迷를 가지게 된 원인이 된다.
註 00 ; 好德如好色 - 잘못 인용한 것 같다. 好德如好色을 만약 덕을 좋아하는 것이 여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의 의미로 인용했다면 잘못 인용한 것이 된다. 아래의 原文 章에서의 의미를 잘 살펴 보기바람.
『論語』·衛靈公編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끝난 것인가? 나는 아직까지 덕을 좋아하기를 여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子曰: 已矣乎. 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 『論語』 子罕(자한)편에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여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덕을 좋아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子曰: 吾未見好德, 如好色者也 라고 하였다.
正菴. 人間이 그러한 迷에 醉할만한 행위를 갖고 있다는 것은 역시 인간이 오히려 동물보다 못한 존재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夜雷. 그것은 인간의 어두운 面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말이요 밝은 면을 생각하지 않는 偏見이다. 인간은 自由意志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다른 동물에 비하여 특색이 있는 점이며 自由意志 그 자가 인간을 어두운 면으로 끌기도 하고 光明의 方向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正菴. 인간의 光明의 方向은 무엇인가?
夜雷. 그것이 大生存 大目的인 大我의 存在이다.
正菴. 수운선생이 말씀하신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아닌가/興比歌 經典對照」라고 한 無窮我 그것인가?
夜雷. 그렇다. PP.271-275.
十 無窮我; P.275.
正菴. 無窮我의 境涯 - 침으로 좋은 理想이다. 無窮我란 대체 어떤 것인가?
夜雷. 無窮我를 말하기 전에 먼저 「무궁한 이 울」이라는 뜻부터 설명해 보자. 무궁이라는 뜻은 無限大라는 뜻이다. 「울」은 「울타리」라는 범위를 표준한 말도 되고 「우리」라는 我等의 의미도 된다. 그러므로 「큰 울」이라는 것은 형식으로 보면 大宇宙의 大範圍를 지칭한 말이 되고「우리」卽 我等이라는 뜻으로 보면「큰 나」라는 뜻으로 된다. 그러므로 水雲선생의「無窮한 이 울」이라는 것은 큰 집이라든가 큰 身이라는 뜻으로 표현하였고 이 큰 집, 큰 몸 속에는 無窮我 즉 大天主가 있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註 00 ; 大天主라 표현하면 天主 卽 한울님은 어떤 천주며 어떤 한울님이 되는 것일까? 天主에 大天主가 있고 小天主가 있다면, 天主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좋을지는 몰라도 수운의 한울님은 아닐 것이다. 야뢰는 윗글들의 여러 곳에서 관형사로 大를 사용하여 만들어 낸 신조어들이 무척 많다. 이렇게 만들어진 용어들의 올바른 의미는 무엇인지가 분명하지가 않다.
正菴. 天地是吾身 上帝卽吾心이라는 말이 아닌가?
夜雷. 보통 그렇게들 말을 하나 그렇게 잘못된 말을 가지고는 體의 眞味를 把持하였다고 할 수 없지.
註 00 ; 天地是吾身 上帝卽吾心 - 야뢰가 만든 잘못된 문장으로 그 뜻은, 천지가 나의 몸이요, 상제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다. /天心卽吾心/人心卽天心/吾心卽汝心.
正菴. 그러면 實感이 나야 하지 않겠나? 음식을 먹으면 맛이 나듯이 實味(실제의 맛, 본질적인 맛, 사물의 본질이나 핵심-오암)가 나야 하지 않겠는가?
夜雷. 實感, 實感에 대해 말해보란 말이지. 자 實感 하나를 말할가? /말할까? 가 바른 표기. 南華經에 있는 이야기를 해보자.
齊나라 서울에 어떤 姓名不知의 名唱이 나타났다. 그는 첫날에 보통 사람이 들을만한 名歌를 불렀다. 한즉 男女老少가 그름같이 모였다. 이튿날 그는 그보다 高級노래를 불렀다. 그랬더니 意外에도 사람은 전날의 절반이나 減少되었다. 그 다음날은 보다 훨씬 高級노래를 불렀더니 그것을 듣는 사람은 겨우 二,三인에 지나지 않았다. 再明日 그는 鬼神이 哭할 독특한 노래를 불렀는데 한 사람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홀로 신이 나서 노래를 다 부른 후에 그 자리에서 自殺하고 말았다. 그것이 대체 무슨 의미일까?
註 00 ; 南華經 - 『南華眞經』 또는 『莊子南華經』이라고도 한다. 원래 이름은 『莊子』였으나 당나라 현종(玄宗)이 천보(天寶) 원년(742)에 존경하고 숭상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 때 장주에게도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는 존호(尊號)가 붙여졌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경사편(經史篇) 도장류(道藏類)에 따르면 ‘남화’라는 명칭은 장자가 살던 마을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여러 가지 판본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곽상주(郭象注) 33권이 정통본으로 인정되고 있다. 최근에 둔황(敦煌)에서 발견된 당나라 필사본과 북송 여혜경(呂惠卿)의 여관문진장자의본(呂觀文進莊子義本), 일본 경도(京都)의 다카야마사(高山寺)에서 발견된 필사본이 있으나 모두 완전하지 못하다. 내용은 내편(內篇) 7권, 외편(外篇) 15권, 잡편(雜篇) 11권으로 나누어졌는데, 내편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장자사상의 정수가 포함되어 있다고 평가된다. 장자의 사상은 세속적인 관습과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자유로운 인간이 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노자의 입장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노장사상(老莊思想)으로 통칭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읽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문헌에는 고려시대의 <한림별곡>에 나타나 있다. <한림별곡>에는 지식인들이 읽어야 할 책을 열거하고 있는데, 노자의 『도덕경』과 더불어 『남화경』이 들어 있다. 또한, 충렬왕 때의 문신인 추적(秋適)이 편간한 ≪명심보감 明心寶鑑≫에는 부분적으로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성리학 자체가 도가의 논법을 포함하고 있었고, 이황(李滉)이나 이이(李珥) 같은 훌륭한 유학자들도 도가서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거의 다 도가서를 읽었는데, 특히 『남화경』은 그 유려한 문체 때문에 널리 애독되었다. 더욱이 일부 유학자들은 유교와 도가의 이론이 서로 배치되지 않을 뿐더러 핵심 내용은 공통점이 많다는 방향으로 도가서의 가치를 옹호하기도 하였다. 임희일(林希逸)의 ≪구해남화경 句解南華經≫은 장자의 입장이 유가경전의 뜻과 매우 부합됨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주해서이다.
박세당(朴世堂)은 현재 전해지는 임희일 구해본에 현토(懸吐)와 해석을 해놓은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유가사상의 입장에서 도가사상을 받아들이는 기본 관점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주해서를 펴냈다. 한원진(韓元震)도 유교 제일주의를 내세우고 도가사상을 비판하기도 하였지만 ≪장자변해 莊子辨解≫라는 제목으로 내편 6편의 해설을 쓰는 등 도가서를 깊이 연구하였다. 한편,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결선생(百結先生)의 “죽고 사는 데에는 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 그것들이 닥쳐오면 막아서는 안 되고, 그것들이 떠나가면 쫓아가서는 안 된다…….”라는 구절은 바로 외편 삼목편(三木篇)에 나오는 구절인 “내자물금 왕자물지(來者勿禁 往者勿止)”의 생활철학과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능화(李能和)는 외편 재유편(在宥篇)에 나오는, 황제(黃帝)가 공동산(空同山)으로 광성자(廣成子)를 찾아가서 장생(長生)의 도를 묻고 교시를 받았다는 부분에 착안하여 광성자의 거처인 공동산이 우리나라인 청구(靑丘:중국에서 우리 나라를 일컫던 말)임을 밝히기 위하여 여러 가지 고증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正菴. 自己의 神通한 노래를 알아보는 사란이 없다는 不平으로 自殺하였다는 말이지.
夜雷. 그랬을런지도 모르지. 그러나 나는 그의 自殺 理由보다도 그의 實感의 境地가 무엇인지 알고 싶단 말이야.
正菴. 猩猩如猩猩 豪傑知豪傑이라 했으니 그 사람의 정도가 아니면 그 사람이 實感을 알 수 없겠지.
夜雷. 莊子의 妻가 죽었다. 그는 叩盆하면서 노래를 하는데 마침 그의 知己인 惠子가 弔喪을 왔다. 惠子는 莊子의 所爲를 責하며(所行/장자가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항아리 모양의 악기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행위를 크게 꾸짖으며-오암)말했다. 「夫婦間이란 누구보다도 親分이 있는 사이가 아닌가? 한평생을 喜怒哀樂을 같이 하면서 아들 딸 낳고 살다가 이제 幽明이 永訣되었기늘 그에 대하여 哭하지 않는 것도 한 罪이어든 하물며 노래가 當한 일이냐?」하였다. 이 말을 듣고 莊子는 「生이란 것은 한 개의 泡沫(파도가 부딪칠 때에 일어나는 물거품-오암)이다. 한 개의 혹이다. 물거품이 터져 물이 돌아갔고 혹이 터져 本色으로 돌아갔다. 그는 지금 大自然의 품 속에서 大安樂을 누리는 것이다. 그런 좋은 일을 노래로 맞이하지 않고 哭으로 맞이한다는 말이 理由에 當然한 것이냐?」하고 反責(되돌려 꾸짖었다-오암)하였다. 그 후 莊子가 弟子들을 데리고 惠子의 墓를 지내다가 墓앞에서 나아가 大聲痛哭을 하였다. 이 광경을 보고 弟子들이 물었다. 「선생께서 生前師母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鼓盆而歌를 하시다가 지금 惠子의 墓를 대하고는 大聲痛哭을 하시니 어찌된 理由입니까?」하고 물었다. 莊子는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弟子에게 말했다. 옛날 齊東에 「긴 자귀」를 잘 쓰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긴 자귀」를 어떻게 잘 쓰는지 사람의 코 끝에 진흙을 콩알만하게 묻혀놓고 긴 자귀로 깎아 내는데 은 추호도 다치지 않고 진흙을 물에 씻은듯이 깎아냈다. 그 소문이 퍼져서 드디어 齊王의 귀에 들리게 되자 王은 호기심으로 그를 불러 재주를 부려보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王命을 듣고 말없이 울었다. 王이 그 이유를 물은 즉 그의 말이 「小臣이 과연 그러한 재주는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 지금 그 재주를 쓰지 못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臣의 친구 한사람이 臣과 같은 膽力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코 끝에 진흙을 바르고 臣이 긴 자귀로 그것을 깎아도 그는 神色自若 泰山不動의 姿勢로 直立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臣의 才能과 그의 神力의 相合으로 그런 才能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제 그는 죽었나이다. 臣의 才能은 비록 그대로 있으나 그것을 받을 神力을 가진 사람이 없나이다. 臣이 으는 理由는 오늘로부터 臣의 才能은을 발휘할 곳이 없기 때문에 때문입니다」하였다. 내가 지금 惠子의 墓앞에서 통곡하는 이유는 평소에 내 뜻을 아는 사람은 宇宙間(이 세상에서-오암)에 惠子 한사람 뿐이었는데 이제 그는 나보다 먼저 죽었다. 이제 宇宙間에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나는 통곡한다고 하였다.
註 00 ; 猩猩如猩猩 豪傑知豪傑 - 야뢰가 만든 한문투 문장이다. 猩猩은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짐승으로. 사람과 비슷하나 몸은 개와 같고, 털은 주홍색이며 길다. 그리고 사람의 말을 이해하며 술을 좋아한다고 한다. 猩猩이를 우랑우탄으로 번역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문장의 풀이는, 성성이는 같은 성성이끼리 모여 살고, 영웅호걸은 영웅호걸을 알아본다.
註 00 ; 叩盆而歌를 하시다가 - 『莊子』 外篇 第18篇 至樂 4.에 記述된 原文.의 내용과는 조금 다르다. 장자(莊子/BC 369∼BC 289)의 고분이가(鼓盆而歌)에 대한 故事成語 해설을 보면, 장자가 여름날 아내와 산길을 가는데 소복 입은 젊은 여인이 무덤에 부채질하고 있었는데 이유인즉 남편이 죽기 전 내가 죽으면 무덤에 풀이나 마르거든 개가하라고 유언하여 그렇게 되려면 올여름도 그냥 보내야 하기에 풀을 빨리 말리기 위해 부채질을 한 것이라 라는 이야기를 들은 장자의 아내는 분개하며 자신은 절대 개가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장자의 아내는 소복을 입고 풀을 부채질하는 여인보다도 지조가 없어 장자가 죽은 상중에 조문 온 왕자의 청혼을 받아들였다가 장자가 살아나 처는 부끄러워 물동이를 뒤집어쓰고 마당가 우물에 빠져 죽자 혜자가 조문을 와 물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는데 여기서 상처(傷處)를 뜻하는 叩盆之痛 또는 叩盆之嘆이 나왔다고 한다.
『莊子』 外篇 第18篇 至樂 4.에 記述된 原文.
莊子妻死, 惠子弔之, 莊子則方箕踞鼓盆而歌.
惠子曰..[與人居,長者.老.身死,不哭,亦足矣,又鼓盆而歌,不亦甚乎!]
莊子曰..[不然. 是其始死也, 我獨何能无槪然! 察其始而本无生, 非徒无生也而本无形, 非徒无形也而本无氣. 雜乎芒芴之間, 變而有氣, 氣變而有形, 形變而有生, 今又變而之死, 是相與爲春秋冬夏四時行也. 人且偃然寢於巨室, 而我噭噭然隨而哭之, 自以爲不通乎命, 故止也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장자의 아내가 죽자, 혜자가 조문을 하려 찾아왔다. 그런데 그 때 장자는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항아리 모양의 악기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말하기를 그 분과 함께 살았고, 자식을 기르며 함께 늙은, 그런 부인이 죽었는데 곡을 안 하는 것은, 혹 그럴 수도 있겠으나 항아리 같은 악기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
장자가 대답하기를, 그런 것이 아니다. 그녀가 죽고서 처음에는 나라고 어찌 슬프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가 태어나기 이전을 생각해 보니 본시는 삶이 없었던 것이었고, 그녀의 삶만 없었을 뿐만 아니라 형체조차 없었으며,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기운조차 없었던 것이다. 흐릿하고 아득한(混沌) 사이에 섞여 있었으나 그것이 변화하여 기운이 있게 되었고, 기운이 변화하여 형체가 있게 되었으며, 형체가 변화하여 삶이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에 그런 아내가 또 변화하여 죽어간 것이다. 이것은 봄·가을과 여름·겨울의 사철이 운행하는 것(元亨利貞)과 같은 변화였던 것이다. 그 사람은 지금 하늘과 땅이라는 거대한 방 속에 편안히 잠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소리 내어 그의 죽음을 따라 곡을 한다면 천명에 통달하지 못한 짓이라 스스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곡을 하지 않고 노래를 부른 것이다.” /이 문답은 無爲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예문으로 제시된 글이다. 芒芴寓話라고도 한다./『莊子』와 故事成語 사전과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註 00 ;『莊子』雜篇 徐無鬼 第二十四章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莊子送葬,過惠子之墓,顧謂從者曰:
「郢人堊慢其鼻端若蠅翼,使匠石斲之。匠石運斤成風,聽而斲之,盡堊而鼻不傷,郢人立不失容。宋元君聞之,召匠石曰『嘗試為寡人為之』匠石曰:『臣則嘗能斲之。雖然,臣之質死久矣』自夫子之死也,吾無以為質矣,吾無與言之矣!」/ 堊,白泥也。漫其鼻端如蝇翼,言薄之甚也。鼻端固难斲,而堊薄又难之尤难者,乃匠石运斤如风,堊尽去而鼻不伤,匠石之技可谓精绝矣!然非有立不失容之郢人,则匠亦无所施其巧者。是郢人者,匠石之质也。质,如‘绘工以素为质’。此喻必有惠子之强辩,然后我得以其说穷之。
自惠子死,则天下无与我相持者,而我亦无与之言矣。盖惠子真是木强,说他不倒,如郢人之立不失容者,若一折便到倒,则何俟多言?今天下之为惠子者岂少哉?独使之人费词以穷之,难矣!难矣!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장자가 어느 날 장례식에 가다가 惠子의 묘 앞을 지나게 되자 따르던 제자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楚나라의 도읍인 영(郢)에 흙을 바르는 장인(匠人)이 있었다. 그는 자기 코끝에 백토(白土)를 파리의 날개만큼 얇게 바르고 장석(匠石)에게 이것을 깎아 내게 하였다. 장석(匠石)은 도끼를 바람소리가 나게 휘둘렀으나 영(郢)의 장인은 그저 듣기만 하고 그대로 있었다(匠石運斤成風, 聽而斲之). 백토는 모두 깎여 떨어졌지만 코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고 영(郢)의 장인도 선 채로 모습을 바꾸지 않았다.
宋나라의 元君이 이 이야기를 듣고 匠石을 불려 들여 시험 삼아 자기에게도 해 보여 주기를 청했지만, 匠石은 '이전에는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기술의 근원이 되는 사람이 죽고 없어서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도 이제 惠子가 죽었으니 더불어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졌구나.”
■ 運斤成風 - 도끼를 움직여 바람을 일으킨다. 최고의 경지(境地)에 도달한 빼어난 기술(技術)을 비유하는 말. /類似語로는, 匠石運斤(장석운근), 神工鬼斧(신공귀부), 郢匠運斧(영장운부), 부정(斧正)이 있다./ 『莊子』와 故事成語 사전과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註 00 ; 神色自若 泰山不動 - 얼굴빛이 조금도 변하지 않아 태연자약했으며, 태산과 같은 큰 산이 흔들리거나 꿈적하지 않는 것과 같은 태연한 모습/ 神色은 얼굴을 높여서 부르는 말. / 四字成語와 어학사정에서 정리.
正菴. 그 말 속에는 高次元의 實感을 아는 사람이 적자는 의미도 되고 實感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 이 세상 더 큰 행복이 없다는 말도 되지 않는가?
夜雷. 그 보다도 나는 莊子와 惠子 사이에 相通되는 實感이 무엇이었든가 하는 그 점이 g항상 궁금하단 말이야.
正菴. 밤 낮 마찬가지 말이 아닌가?
夜雷. 아니야. 그 중에 큰 實感이 들어 있지 않은가? 또 李白의 詩 하나를 들어 볼까? 「問餘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이것은 李白이 德者의 實感을 憧憬한 詩다. 李白 자신이 笑而不答의 境涯에 간 詩人인지는 모르되 隱士 그 자의 心中에는 桃花流水의 別乾坤이 있었을 것이다. 自然對象인 桃花流水의 경치와 대응되는 心理의 桃花流水의 別乾坤이 있었을 것이다. 心境속의 桃花流水의 別乾坤을 他人에게 說破하는데는 笑而不答心自閑 이외에 다른 웅변이 없다.(우렁찬 목소리로 유창하고 당당하게 다른 세상이 있다고 말해줄 곳이 없다.-오암).
註 00 ; 李白의 「山中問答」/七言絶句.
問餘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내게 무슨 뜻으로 푸른 산속에서 홀로 사느냐고 물으니
빙긋이 웃으며 대답은 하지 않고. 마음만은 절로 한가롭다 하네
복숭아꽃이 떠돌며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묘연히 흘러간다.
별천지가 있으니 인간 세상이 아니더라.
■ 別天地 - 俗世와 달리 경치나 분위기가 아주 좋은 세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유토피아. 理想鄕을 참조.
■ 李白(701~762) - 唐나라 玄宗과 양귀비의 시대에 뛰어난 자질을 발휘하며 살아간 천재 시인이다. 성은 李, 이름은 白, 자는 太白, 호는 淸蓮居士라고 한다. ‘詩仙’이라 불리며 杜甫와 함께 중국 詩史의 巨星으로 推仰받는다. 자유롭고 장엄한 시풍을 보인 그는 자신의 시와 잘 어울리는 생애를 보냈으나, 중국의 지식인이 그러하듯이 그 또한 정치적 활약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절대지식 중국고전과 백과사전에서 재정리.
正菴. 그것은 無窮我의 實感을 말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夜雷. 아무리 바빠도 참고서 한마디 더 들어 보게. 이번에는 佛敎의 象徵을 말해보자.
佛敎에는 象徵的인 것이 많은 줄 안다. 어떤 佛敎에 있는 바와 같이 佛이 法悅을 할 때면 菩薩이 죽 늘어 앉는다.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예고도 없이 오는 것이다.
天上의 三十三天王, 仙人, 天人, 인간으로는 阿難, 迦葉과 같은 尊者로부터 보통 승려, 優婆夷, 優婆塞, 居士 등, 鬼神界로는 阿修羅界의 大王 乃至는 鬼王, 海中龍王 등등이 각기 권속(眷屬/家族들-오암)을 거느리고 온다. 億萬 距離 밖에 있는 妙音鳥(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을 하고 있다는, 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오암)도 靈感으로 그 소식을 알고 순간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보니 全宇宙가 다 참석한 셈이다. 말하자면 우주의 有形 無形의 모든 존재가 法悅에 感化된다는 뜻을 상징적으로 또는 인간의 지식으로 槪念을 가지기 쉽도록 기록한 것이다. 실지야 그랬든 안 그랬든 實感으로 말하면 조금도 허황한 말이 아니다. 그저 全宇宙 萬有가 다 귀를 기울이고 說法을 들었다느니 보다 知識의 範疇에 맞도록 象徵的 實感을 쓴 것이다. 즉 實感을 象徵的으로 나타낸 것이다.
正菴. ---
夜雷. 李白의 詩에 別有天地非人間이라는 境涯는 인간의 최고 본능으로 나온 無窮我의 境界의 初學入門이다. 그는 桃花流水의 현상보다 現象의 桃花流水의 絶景에 대응되는 胸中의 別乾坤을 가졌다. 그만이 그런 것이 아니오 인간이면 누구나 다 그런 高級 本能을 가졌다고 하나 보통 인간은 그 본능의 境涯가 아직 개척되지 않았다. 다음 莊子와 惠子 間의 實感에 있어서 그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고급 본능이 상통된 것이다. 그들은 笑而不答의 境涯를 초월하여 비록 두 사람이지마는 全宇宙는 그들의 소유물이었기 때문에 人間의 高級實感은 한층 더 나타났다. 莊子는 惠子가 있으므로써 大我의 實感을 말할 수 있고 惠子는 莊子로 因하여 그 實感을 개척하게 된다. 物質的인 경우에는 서로 爭奪하는 것을 快感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으나 정신적인 경우에는 덜어주는 것이 大我의 領域이 커지는 것이다. 석가의 경우에는 大宇宙의 大我를 說法으로서 天地萬有에게 돌려주었다. 말로 하지 못할 일은 기적으로 보여 주었다. 우주가 나요 나가 우주이다. 萬有는 다 한 家庭이다. 眞景(실제의 아름다운 경치- 아름다운 세상-오암)에서 모두 한 몸이다.
正菴. 그는 그러하려니와 내가 말하는 大我의 實感이라는 것은 내가 직접 음식을 먹고 내가 直感하는 實感이란 말이야. 남의 밥 먹는 實感을 이야기로 듣기만 하자는 것이 아니란 말이야.
夜雷. 그러면 君이 먹는 밥을 君이 좋건 싫건 내 손으로 떠서 먹여 달라는 말이 아닌가?
正菴. 아니 그런 억지의 말이 아니야. 내가 方今 하는 비록 적은 일 가운데서도 大我의 實感을 얻을 수 없느냐 하는 말이야.
夜雷. 그거야 大我의 心境만 가졌다면 一擧手一投足 사이에서도 大我의 實感을 가질 수 있다. 一動一靜이 다 全宇宙의 動靜이라는 實感을 느끼게 된다.
註 00 ; 一擧手一投足 -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는 뜻으로,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이르는 말./사람이 수족을 움직여 살아가는 수고로움을 의미한다. / 類似語는 一擧一動.
■ 「아무 날 아무 일에 유(愈)가 재배합니다. 천지의 물가나 큰 강가에 괴물이 산다고 합니다. 이는 보통 비늘을 가진 물고기나 조개 따위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물을 얻으면 변화를 일으켜 비바람을 몰아치게 하고, 하늘을 아래위로 오르내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물을 만나지 못하면 평범한 작은 물고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높은 산이나 구릉이 없어도 길은 멀어지고 끊기고 험준해져 막히고 떨어지게 됩니다. 물이 말라 버리거나 옅은 물에 있다면 스스로 물에 갈 수가 없어서 수달 따위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가 열에 여덟아홉입니다. 그러나 만약 힘 있는 사람이 그 말라 버린 것을 안타깝게 여겨 옮겨 준다면 그것은 손 한 번 움직이고 다리 한 번 움직이는 노고에 불과하지만, 이 괴물에게는 뭇 동물보다 다름을 짊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또 모래나 진흙에서 문드러져 죽어도 내 차라리 즐거워할지언정, 머리를 숙이고 귀를 늘어뜨리고 꼬리를 흔들며 가엾음을 구걸하는 것은 저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드립니다. 이런 까닭으로 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자세히 보지만 마치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그 죽고 사는 것은 진실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힘 있는 사람이 그 앞에 서 있어 시험 삼아 고개를 들고 한번 우렁차게 울어 봅니다. 어찌 힘 있는 사람이 그 말라 버린 것을 애달프다 여겨 손 한 번 움직이고 다리 한 번 움직이는 노고를 잊어버리고, 그를 맑은 물에 옮겨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애달프게 여기는 것도 운명이고 여기지 않는 것도 운명에 달렸다는 것을 알고도 또 울부짖는 것 역시 운명입니다. 저는 지금 진실로 이와 같은 처지이니 이런 까닭으로 부족하고 어리석은 허물도 잊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각하께서 가엾게 여겨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月日, 愈再拜. 天池之濱, 大江之濆, 曰有怪物焉. 蓋非常麟凡介之品彙匹儔也. 其得水, 變化風雨. 上下於天不難也. 其不及水蓋尋常尺寸之間耳. 無高山大陵, 曠途絶險爲之關隔也. 然其窮, 涸不能自致乎水. 爲濱獺之笑者, 蓋十八九矣. 如有力者哀其窮而運轉之, 蓋一擧手一投足之勞也. 然是物也, 負其異於衆也. 且曰, 爛死於沙泥, 吾寧樂之若, 俛首帖耳. 搖尾而乞憐者, 非我之志也. 是以有力者遇之, 熟視之若無睹也. 其死其生固不可知也. 今又有有力者, 當其前矣. 聊試仰首一鳴號焉. 庸詎知有力者不哀其窮, 而忘一擧手一投足勞, 而轉之淸波乎. 其哀之命也, 其不哀之命也, 知其在命, 而且鳴號之者亦命也. 愈今者實有類於是, 是以忘其疎愚之罪, 而有是說焉. 閣下其亦憐察之.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과거에 응시하면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뜻의 〈응과목시여인서(應科目時與人書)〉인데, 여기에 ‘일거수일투족’이 나온다. 당나라 때의 과거 시험은 먼저 예부(禮部)에서 시험을 치르고, 여기서 합격한 사람들은 다시 이부(吏部)의 시험을 치러야 했다. 한유도 25세에 예부 시험을 통과했지만 이부 시험에서는 몇 번을 응시했어도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당시에는 서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알리기 위해 미리 지은 시문(詩文)을 시험관에게 보내는 관행이 있었는데, 한유도 이부 시험에 실패하고 난 뒤 시험관에게 이 편지를 보냈다./고사성어 대사전에서 발췌.
正菴. 그러기에 말아야. 大我의 心境은 누구나 다 가질 수 있지.
夜雷. 內的으로 大我를 찾는 이야기는 그만하기로 하고 外的 즉 格物致知의 理論에서 밖으로부터 안으로 들어가는 境界를 말해 보자.
여기에 한개의 樹木이 있다. 千枝萬葉이 凌雲의 勢(커다란 나무들이 구름을 뚫고 뻗혀 나가는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오암)로 뻗혀 있다. 枝枝葉葉 저들대로의 滿足의 法悅을 가지고 커나간다. 枝枝葉葉 各個體로 보면 自體 自體가 다 自力으로 살아가는 듯이 생각한다고 假定하자. 그러나 그것은 樹木의 全的 大生命에 의존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卽 內的 依存이 없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것은 同時에 外的 依存이 없어도 안된다. 空氣 光線 水分 등 直接的 依存이 없으면 살 수 없다. 그것이 間接的 依存으로 옮겨 一例를 들면 光線은 光源을 연상케 하고 光源은 他太陽界을 연상케 되는 점에서 樹木의 一枝一葉의 存在도 究極 全宇宙의 存在와 연결된다. 究竟 一枝一葉의 存在는 다른 大我의 存在를 연상하게 된다.
인간의 경우도 外的 狀態로 생각하면 역시 그러하다. 無政府主義者라고 自稱하는 한 청년이 年前에 나를 찾아와 個人主義의 絶對自由를 찬미하는 말 가운데 「나는 唯一者이다. 우주 가운데 나같은 것은 오직 하나이므로 나는 唯一이다. 唯一이므로 나는 獨尊이다 누구를 위해 사는 것도 아니오 누구의 惠澤으로 사는 것도 아니다 나는 오직 내 힘으로 살고 나 이외의 것은 存在는 있어도 없는거와 같은 것이다」라고 個人主義 思想을 力說하였다. 그는 아직 靑年이라 미숙한 사상으로 氣分的으로 말하기는 하였지만 나 역시 그저 있기가 無心한듯 싶어서 그와 問答을 시작했다.「그대가 지금 저녁밥은 먹고 왔겠지?」「그렇죠」「그 저녁밥은 누가 지었나?」「우리 妻가 지었소」「材料는 어떻게 된 것인가?」「 農夫가 지은 쌀을 사 왔지요」「 그 음식을 먹지 않고는 그대가 살 수 없지 않은가?」「그렇지요」「그대가 입은 옷은 누가 지었나?」「洋服店에서 지었습니다」「洋服地는 어디서 난 것인가?」「工場에서 만들었지요」「衣服을 입지 않고는 살 수 없겠지?」「물론 그렇지요」「 다음은 日光 空氣 水分 등이 없으면 살 수 있겠나? 」「역시 살 수 없지요」「 살 수 없다는 말은 自我가 없어진다는 말과 같은 말이 아닌가?」「그렇지요」「그러면 그대는 이제 다시 반성해 보라 음식이 없어도 내가 없고 의복이 없어도 내가 없고 공기, 日光, 水分 등이 없어도 내가 없고 間接에 間接으로 日月星辰이 없어도 내가 없고 自然界의 動物, 植物, 鑛物이 없어도 내가 없지 않겠는가?」「그렇지요」「그러면 그 모든 것이 모여서 그대의 自我를 이루어 놓은 것이 아닌가? 이제 그 모든 것을 떼어 놓고 자네가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게」靑年은 침묵하고 생각하더니「과연 내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졸지간(
猝地間/ 주로 ‘졸지에’의 꼴로 쓰여, 뜻밖에 갑작스러운 판국을 말한다. 깜박하는 사이에-오암) 에 어디로 갔을까요?」하고 나도 또한 大笑一番(큰 소리로 한 번 웃었다.-오암)을 한다.「大笑一番 그 가운데에 그대의 大我(本然我-오암)가 있는 것이야」하고 나도 또한 大笑一番을 한 일이 있다. 어디서나 생각할 수 있는 現實이다. 實感만 있으면 그렇게 日常問題와 卑近한 것 중에서도 大我의 形態를 憧憬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을 格物致知라 하는 것이다.
註 00 ; 格物致知 -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가면 앎에 이른다.(朱子). 마음을 바로잡으면 양良知에 이른다.(王陽明). 四書五經 중의 하나인 『大學』은 유가의 교리를 간결하고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인데, 크게 三綱領과 八條目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강령은 ‘明德’, ‘新民’, ‘(至於至善’이고, 팔조목은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이다. 이 팔조목 중 格物과 致知를 제외한 나머지는 『大學』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뜻이 적혀 있지 않아 후세에 그 해석을 놓고 여러 학파가 생겨났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朱子學派와 陽明學派이다.
朱熹는 “세상의 삼라만상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이치를 갖추고 있다. 이 이치를 하나씩 따져 들어가면 마침내 확연하게 세상 만물의 이치를 밝혀낼 수가 있게 된다.”고 말했다. 주자는 格을 이른다(至)는 뜻으로 보아 格物을 ‘만물이 지닌 이치를 추구하는 窮理로 해석하여,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가면(格物) 앎에 이른다(致知)’고 하는 ‘性卽理說’를 확립했다.
왕양명은 주자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겼다. 그는 먼저 이치를 캐내기 위해 대나무 한 그루를 오랫동안 세심하게 관찰하고 심지어는 갈라 보기까지 하면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러나 이치를 명확하게 알아낼 수가 없자, 주자의 이론에 의심을 품고 다른 방향에서 궁구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어 내었다. “격물의 ‘물’이란 사물을 가리키는 것이니 ‘사(事, 일)’이다. ‘사’란 부모를 모시거나 임금을 섬기는 일 따위와 같이 일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말한다. 그러므로 ‘사’의 이면에는 마음이 있으며, 마음의 겉에는 달리 물건이나 이치가 있을 리가 없다. 때문에 격물의 ‘격’이란 ‘바로 잡는다’로 해석해야 한다. 일을 바로잡고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격물이다. 악을 버리고 마음을 바로잡음으로써 사람의 마음속에 선험적으로 지니고 있는 양심과 지혜를 밝힐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致知’이다.” 왕양명은 良知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물욕을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하여, 격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풀이한 心卽理說을 확립했다.
주자의 ‘격물치지’가 지식 위주인 것에 반해 왕양명은 도덕적 실천을 중시하여, 주자학을 이학(理學)이라 하고, 양명학을 심학(心學)이라고도 한다. 격물치지 해석문의 보충, 즉 격물치지보전은 〈대학〉 원문 중 "그 뜻을 성실하게 하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아는 것을 극진히 해야 할 것이니 아는 것을 극진히 하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데에 있다"(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라는 구절을 주희가 간결하게 정리한 이론이다.
「大學章句」에 따르면 그 이론의 주된 내용은 卽物窮理로 다음과 같다.
致知在格物이란 나의 아는 것을 이루고자 하면 사물에 나아가서 그 이치를 궁구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대개 사람의 마음이 신령한 것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천하에 사물의 이치가 없는 데가 없지만 오직 이치에 궁진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므로 다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인식주관으로서의 마음의 이(理)와 인식객관으로서의 사물의 이가 상응하기 때문에 우리의 인식은 가능한데, 오늘 한 사물의 이를 탐구하고, 또 내일 한 사물의 이를 탐구하여 지식을 확충하면 자연히 우리는 활연관통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격물치지는 결국 마음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현실적 인간은 기질지성(氣質之性)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불완전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 불완전한 상태를 완전한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나의 밖에 있는 이를 궁구하여야 한다. 이것은 내 안에 있는 이를 아는 데 도움이 되며 기질지성을 본연지성(本然之性)과 일치시키는 데 유익하다.
격물치지의 해석에 관해 주희 이전에도 많은 주석이 있었으나 주희의 즉물궁리설적 격물치지론이 오랫동안 통용되어왔으며 많은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그런데 격물치지론에 있어서 주희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명(明)의 왕수인(王守仁)이다. 왕수인은 『禮記』중의 〈대학〉 즉 〈고본대학〉을 그대로 인정하며 주희의 격물치지보망장은 불필요하다고 보았다. 격물치지의 해석문은 주희가 말하는 바와 같이 빠진 것이 아니라 〈대학〉 원문 중에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왕수인은 격물치지를 심즉리 체계 안에서 설명하고 있다. 격물치지는 다름 아닌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모든 이는 내 마음에 있으며 사물의 바름과 부정도 내 마음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마음의 부정을 바로 잡아 회복하는 것이 그의 격물이요 마음을 발휘하여 모든 사물이 이를 얻는 것이 치지인 것이다. 왕수인이 주희의 설을 반대한 것은 격물치지설이 직접적으로 나의 마음에서 이를 구하지 않고 마음 바깥에서 이를 구하여, 외적 지식의 탐구에 급급해 결국 주체를 상실할 우려가 있는 주자학의 폐단을 시정하려고 한 것이 목적이었다./고사성어 대사전과 백과사전 에 발췌하여 재정리.
正菴. 「그 가운데 그대의 大我가 있다」는 것. 그렇지 그 가운데에 어떤 妙味가 있지---,조금만 더 나아가면 大我가 나올듯 한데.
夜雷. 「格物致知라는」「知」字는 朱子의 해석에 의하면 知識이라는 「知」字로 理解하였고 王陽明에 의하면 直觀的 「知」로 해석하였는데 나도 역시 直觀知라는 것이 妙味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역시 格物致知의 가운데도 먼저 心境이 필요하다고할 수 있지.
正菴. 그러니까 無窮我는 필경 自我本質 그 자체가 無窮我라는 말이지. 그저 내 自體의 眞我가 無窮我라고 할때 實感만 가질 수 있다면 卽地成佛(곧바로 부처님이 된다.-오암)도 할 수 있으며 實感이 없으면 千萬劫을 지나도 無窮我는 發見할 수 없는 것이란 말이지. PP.275-287./大尾.
參考文獻 目錄
『신인철학(新人哲學)』(李敦化, 천도교중앙종리원, 1926)
『인내천요의(人乃天要義)』(李敦化, 천도교중앙종리원, 1926)·
『천도교창건사(天道敎創建史)』(李敦化,천도교중앙종리원, 1933)
『동학지인생관(東學之人生觀)』(李敦化,천도교 북조선 종리원, 1946)
『교정쌍전(敎政雙全)』(李敦化,천도교 북조선 종리원, 1946)·/東學之人生觀의 附錄.
『당지(黨志)』 李敦化. 北朝鮮 宗學院出版部. 大深印刷所. 1946.
『乙酉文庫-84-千字文』 李民樹 註解. 乙酉文化社. 1972.
『老子 莊子』 老子 張基槿, 莊子 李錫浩譯. 三省出版社. 1982初版 1983.12版.
四書五經(全 16卷) 1. 大學 中庸. 現代文化社. 1986.
四書五經(全 16卷) 5. 詩經(Ⅱ) 書經(Ⅰ). 現代文化社. 1986.
四書五經(全 16卷) 6. 『書經』(Ⅱ). 現代文化社. 1986.
『古文眞寶 全集』 第5卷 황견 엮음. 이장우·우재호·장세후·박세욱 옮김 전집 개정판 2007.
각종 관련 연구논문 다수와 대백과사전, 각종 어학사전, 각종 분야별 사전, 각종 고사성어 사전, 등등.
---------------------------------------東學之人生觀 註解書 14-14. 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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