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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東學之人生觀 註解書(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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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댓글 0건 조회 2,116회 작성일 17-06-17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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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學之人生觀 註解書(14-12)


三 旣成宗敎; P.238.


正菴. 夜雷의 인생관적 입장에서 旣成宗敎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夜雷. 어떤 종교든지 無窮的 神觀을 갖고 있는 동시에 生滅的 時代性을 가졌다. 그래서 그 時代性이 그 종교의 如在가 된다. 말하자면 그 종교의 方便的 敎理, 儀式, 誡命, 道德등이 종교의 如在이며 그 종교의 如在表現이 곧 그 종교의 존재로서 종교의 如在的 본질은 시대성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正菴. 宗敎的 時代性이란 무엇인가?
夜雷. 종교적 시대성은 어떤 종교의 발생 당시의 사회환경, 역사적 습관 풍속 문화의 발달정도 등등을 이름인데, 종교적 定在性,이 이들 대상과 결합하여 新 敎化的 형태를 이루는 것을 이름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시대성은 新舊 兩時代가 교체되면 필연적으로 그 효과를 잃고 다른 역사적 기록으로만 남아 있게 된다.
正菴. 종교도 소멸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가?
夜雷. 원칙상으로 물론 가지고 있다. 다른 사물의 生滅에 비하여 극히 장구한 시간을 요한다. 神話時代의 종교였든 巫卜이 아직도 俗間(俗世-오암)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물론 그가 교화적 대상, 숭배적 대상은 아니라 할지라도 어쨌든 그 흔적이 근절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종교의 교체는 실로 긴 세월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다.
註解 ; 윗글에서 소멸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 종교의 예를, 아직도 俗間에 남아 있는 巫卜을 神話時代의 종교라고 규정하고 종교의 교체는 실로 긴 세월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은, 故意가 아니라면 너무나 衒學的이라 할 수 있다. 인류가 信徒라는 자격으로 종교를 신앙하기 시작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短時間內에 明滅한 종교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중에는 인류에게 너무나 많은 害惡을 끼친 종교도 하나 둘이 아니다. 대개 邪敎나 異端으로 몰리었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이름이 있는 巨大한 旣成宗敎로 인류에게 위안과 광명을 주는 이면에는 인류가 치른 전쟁의 사상자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지하고 있다. 근자에 세계 도처에서 보여주고 있는 종교간의 갈등으로 인한 명분이 없는 무자비한 IS의 대량살상테러행위와 인류가 영원히 보존해야 할 세계문화유산의 폭파 등의 만행을 보면 이해가 빠를 수 있다. 이 또한 인류의 災殃이며 종교의 害毒인 것이다. 그런데도 야뢰는 가장 수명이 긴 巫卜을 예를 들었다. 무복이란 巫俗信仰이며, 유사종교이며, 민족마다 매우 다양한 巫術行爲이고, 넓은 의미로 민속이라 할 수도 있는 것을 왜 예로 들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무속신앙이 일정 부분에서는 盲信的인 일부의 무지하고 줏대가 없고, 자기 삶에 무력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을 해독을 끼치고 있는 지를 도외시 하고 있다.
正菴. 현대의 旣成 宗敎도 교체의 運에 當하였다고 볼 수 있는가?
夜雷. 그렇다. 이 시대는 正히 宗敎 교체시대의 初頭(어떤 일이나 기간 혹은 내용 따위의 첫머리 또는 시작./類義語는 初葉, 劈頭-오암)라 볼 수 있다. 無神論 唯物主義 등의 발생은 旣成 宗敎에 弔鐘을 울리는 兆朕으로서 교체 시대의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正菴. 종교의 교체라 하면 旣成 종교의 衰敗(老衰하여 敗亡함-오암)를 의미하는 동시에 새 宗敎가 그를 引繼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夜雷. 물론 그런 것이다. 그러나 다른 事實의 교체와 같이 형식적 교체가 아니요 정신적 교체인 까닭에 교체하는 新舊 兩者의 授受的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第三位인 人心 如何에 의하여 서서히 신앙적 태도로 결정되는 까닭에 장시간의 세월을 요하여 個性意識의 망각 가운데서 無爲而化로 行하여진다.PP.238-240.
四 福善禍淫; P.240.
正菴. 福善禍淫(착한 사람에게는 복을 받고 악한/음란한 사람에게는 재앙이 찾아옴-오암)을 問答해 보려고 하는데 그 보다 먼저 기초 지식으로 善, 淫, 福, 禍라는 것을 端的으로 설명해 주기 바란다. 우선 善부터 말하기로 하자.
夜雷. 이것은 위에 第一編에서 이미 말하였으나 간단히 말하기 위하여 善을 따로 떼어 말할 것이 아니라 福善을 그대로 말해보기로 하자. 福과 善은 두가지가 아니요 그저 하나라고 생각한다. 福卽善이오 善卽福이란 말이다.
正菴. 福卽善 善卽福 대단히 좋은 말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저 하는 것은 세상에는 善하되 福이 없는 사람이 있고, 福은 있으되 不善한 사람이 정말로 있지 않은가? 사실적 입장에서 그것을 설명하면 모순이 있지 않는가?
夜雷. 福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壽 富貴 多男子를 말하는 것인데 善한 사람도 壽 富貴 多男子가 못되니 그것이 모순이란 말인가?
正菴. 그렇다. 사실 惡하고도 壽 富貴 多男子한 사람이 실지로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夜雷. 그러면 福이라는 것 부터 말하지 않으면 대답이 시원치 못하겠다. 福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흔히 부르는 人間 五福(壽 富 康寧 攸好德 考終命)이라는 것을 그대로 인정해 놓고, 위선 壽에서 부터 의 原理를 말하겠다.
正菴. 자 내가 구체적인 사실을 들어 물을 것이니 그것을 端的으로 대답해 보라. 옛날 顔回는 孔子의 다음 가는 大賢이 아닌가? 그는 겨우 三十餘歲에 夭折하였다. 하고, 盜跖이란 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臥席終身하였다 하여 顔夭跖壽(안회는 요절하고 도척은 장수하였다.-오암)란 말이 있지 않은가? 그것부터가 위선 모순이 아닌가? 그와 같은 例는 세상에 얼마던지 있지 않은가?
夜雷. 무슨 일에든지 量과 質이 있는 것과 같이 壽에도 質과 量이 있는 것이다. 연령의 長短은 量으로 볼수 있고, 연령의 시간 가운데 쌓아 놓은 功德은 質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두가지를 가지고 福善을 이해하여야 한다. 顔回의 三十餘歲의 質的 공덕은 다른 사람이 수백년의 세월을 요하여도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顔回는 質에서 장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 위에 名傳千秋(그의 名聲이 千秋萬代/ 몇 천 년의 긴 세월 또는 후손 만대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기간 동안 전해지는 것-오암)까지 겸한다면 顔回의 一生이 짧다고 하드라도 그러한 것으로 가치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註 00 ; 盜跖 - 中國 春秋時代의 큰 도둑으로. 孔子와 같은 시대의 魯나라 사람이다. 賢人(賢人) 유 하혜(柳下惠)의 아우로, 그의 徒黨 9천 명과 떼 지어 항상 전국을 휩쓸었고, 태산(泰山) 기슭에서 사람의 간을 회로 썰어 먹었다고는 하지만 일부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황제(黃帝) 때의 대도(大盜) 이름으로, 이 때문에 도척으로 불렸다고 한다. /몹시 邪惡한 사람을 비유(比喩ㆍ譬喩)하여 이르는 말이다.『莊子』 雜篇 第二十九編 盜跖란에 공자와 도척 간에 얽힌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다./『莊子』와 어학사전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正菴. 그야 물론 그렇지, 그렇지만 一生이 짧은 것은 우리로 보면 유감이 아닌가? 그 위에 여생이 길었다면 그 보다 더 큰 공덕이 있지 않았을까? 壽만 떼어 놓고 보면 그렇다는 말일세.
夜雷. 壽라고 하면 質과 量을 다 가지고 하는 말인데 壽만을 떼어 본다는 말이 구구한 生慾에서 생기는 邪念이라고 생각되네. 일부러 犧牲死를 취하여 萬代에 교훈을 주고저 아니했는가? 福을 壽의 長短으로 보지 말고 質의 大小.로 본다면 善卽福 福卽善의 이유기 되지 않는가?
正菴. 자 그것은 그렇다 하고 다음은 富로 옮겨 보세, 夜雷도 福으로 인정하는가?
夜雷. 나의 富에 대한 觀念도 亦是 조건이 붙는다. 富는 生活의 安全정도까지는 절대 福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富도 생활안전 이상이면 그것은 淫卽惡(너무 지나치면 나쁘다-오암)이다. 淫이란 過를 이름이다. 過食, 過飮, 過色, 過慾 등을 이름이나. 그러므로 大富는 소위 淫에는 禍가 붙는다. 그러니까 그것은 禍淫側(악한 사람에게는 오는 재앙 편-오암)이 에 것이요 福善 편에 드는 것이 아니다.
正菴. 富가 禍淫 편에 드는 이유를 말해 보세.
夜雷. 堯聖(성인이신 요임금-오암)의 말에 富卽多事(부자가 되면 쓸데없는 일이 많아져 번거롭게 되니 적당히 욕심을 내서 살라.-오암)라 하였으니 多事卽多憂 多憂卽多苦(일이 많으면 근심 걱정이 많아지고, 근심 걱정이 많아지면 매우 고통스럽게 된다.-오암)다. 多事多憂라 할지라도 그것이 質에서 社會的 공덕을 쌓은 多事多憂라면 그는 積善의 의미에서 福이 된다. 그러나 보통 富라고 말하는 多事多憂는 無用의 多事多憂요 痴의 多事多憂이다. 여기 금강산에 관광여행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관광여행에는 一定시간에 필요한 여행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너무 많은 여행구를 짊어지고 갔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큰 勞苦를 치루었으며 짐에 돌아 오는 날이면 그 여행구를 버리고 돌아오게 된다. 그런것은 일종의 의 행위이다.
이와 같이 富는 無用의 所有物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필요 이상의 소유물로 인하여 過勞 를 하다가 필경은 그것을 세상에 버리고 他界로 가게 된다. 그 뿐 아니라 過度한 所有物로 인하여 패가망신의 경우를 당하는 變도 많이 있다. 石崇이와 같은 大富도 究竟은 富로 인하여 三族이 멸망하였다. 어쨌든 大富는 禍淫 측에 드는 것이요 福善 측에 드는 것은 아니다.
註 00 ; 富卽多事 - 부자가 되면 쓸데없는 일이 많아져 번거롭게 되니 적당히 욕심을 내서 살라는 것. 『莊子』의 天地篇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중국의 고대 전설상의 임금인 堯가 백성들의 삶을 살피기 위해 순행을 하다가 화(華)라는 지방에 이르렀다. 변경을 지키던 하급관리가 공손히 요를 맞으며 “임금님! 만수무강하십시오” 하고 말했다. 요임금은 “나는 장수하기를 원치 않소” 하였다. 관리가 “그러면 부자가 되십시오” 하자 요임금은 “지금의 재물로도 충분하니 더 부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소” 하였다. 관리가 다시 “그러면 아들을 많이 두십시오” 하자 요임금은 이번에도 예를 차리며 사양하였다. 의아하게 생각한 관리가 “오래 살고, 부자가 되고, 많은 아들을 두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진실로 바라는 일인데 임금께서는 모두 싫다고 하시니 어인 일입니까?” 하고 묻자 요임금은 “아들이 많으면 걱정이 많고, 부자가 되면 번거로운 일이 많아지고,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은 법입니다(多男子卽多懼 富卽多事 壽卽多辱)”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관리는 “성인이신 줄 알았더니 군자에 불과하십니다 그려. 아들이 많으면 각자에게 맞는 일을 시키면 되고, 재산이 많으면 남에게 나누어주면 될 것이며, 장수하다가 세상이 싫어지면 선인이 되어 하늘나라에 오르면 될 것 아닙니까?”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문득 깨달음을 얻은 요 임금은 그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지만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찾을 길이 없었다고 한다. /『莊子』天地篇과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註 00 ; 石崇(AD249-300) - 중국 서진(西晉) 시대의 문인(文人)이자 관리로 항해와 무역으로 큰 부자가 되어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여 중국과 한국 등지에서 후대에도 부자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자(字)는 계륜(季倫)이고, 어려서의 이름은 제노(齊奴)이다. 원적지(原籍地)는 발해군(渤海郡)의 남피(南皮, 지금의 허베이성 난피)이며, 청주(青州, 지금의 山東省 青州市)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위(魏, 220~266)의 장수로 서진(西晉, 265~316)에서 표기장군(驃騎將軍) 등의 관직을 지낸 석포(石苞)이다. 서진(西晉)의 무제(武帝, 재위 265~290) 때에 수무령(修武令)으로 관직을 시작해 성양태수(城陽太守) 등을 지내고 안양향후(安陽鄕侯)로 봉해졌다. 혜제(惠帝, 재위 290~306) 때에는 중랑장(中郎將), 형주자사(荊州刺史) 등의 벼슬을 하였다. 형주(荊州, 지금의 河南省 南陽市 일대) 자사(刺史)로 있으면서 항해와 무역으로 큰 부자가 되었는데, <진서(晉書)>에는 "멀리 가는 상인과 상인을 위협하여 치부하였다(劫遠使商客 致富不貲)”고 기록되어 있다. 혜제(惠帝)의 황후인 가후(賈后, 256~300)가 조정에서 전권(專權)을 휘두르며 가씨(賈氏) 일족(一族)의 권세가 커지자 가후(賈后)의 조카인 가밀(賈謐, 277~300)과 가까이 지내며 이른바 '24명의 벗(二十四友)' 가운데 하나로 불렸다. 학문과 시에도 능통하여 문인(文人)으로서의 명성도 높았다. 6권으로 된 문집(文集)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에도 '사귀인(思歸引)', '사귀탄(思歸歎)' 등의 시가 전해진다.
석숭(石崇)은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였는데, <진서(晉書)>와 <세설신어(世說新語)> 등에는 황제의 인척인 왕개(王愷)와 부를 다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뤄양[洛陽] 서쪽에 금곡원(金谷園)을 지었는데, 집안을 매우 호화롭게 꾸며 뒷간도 화려한 옷을 입은 십여명의 시녀들이 화장품과 향수를 들고 접대하게 하여 손님들은 침실인 줄 알고 놀라 돌아올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금곡원(金谷園)에 관리와 문인들을 초대하여 주연(酒宴)을 자주 열며 풍류를 즐겼는데, 주연(酒宴)에서 시를 짓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벌로 세 말의 술을 마시게 하였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금곡주수(金谷酒數)'라는 말은 '술자리에서 받는 벌주'를 가리키게 되었다. 석숭에게는 녹주(綠珠)라는 애첩(愛妾)이 있었는데, 피리를 잘 불 뿐 아니라 악부(樂府)도 잘 지었다. 그는 녹주를 총애하여 '원기루(苑綺樓)' 또는 '녹주루(綠珠樓)'라고 하는 백장(百丈) 높이의 누각을 지었다.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 ?~301)의 측근이었던 손수(孫秀)가 녹주의 미색을 탐하였으나 석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300년(永康 원년) 조왕 사마륜이 가후(賈后)의 세력을 제거하고 전권을 장악하자, 석숭은 황문랑(黃門郞) 반악(潘岳)과 함께 회남왕(淮南王) 사마윤(司馬允, 272~300),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 ?~302) 등과 연합해 사마륜(司馬倫)을 제거하려 했다. 손수(孫秀)가 이를 알고 대군을 이끌고 금곡원(金谷園)을 포위하자, 녹주는 누각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였고, 석숭은 반악(潘岳) 등과 함께 사로잡혀 참수(斬首)되었다.
석숭은 관직을 이용해 향료 무역 등을 독점하여 큰 부자가 되었는데, 백여명의 처첩(妻妾)을 거느렸으며, 집안의 하인도 8백여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은 물론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오랜 기간 동안 부자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중국에서 석숭은 복(福), 녹(祿), 수(壽)의 삼선(三仙)의 가운데 녹(祿)을 상징하는 인물로 숭앙되었다. / 에서
■ 무당들이 보통 아이들의 복을 빌 때 넋두리로 늘어놓는 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壽命은 동방삭(東方朔)이요, 부자는 석숭(石崇)이오, 문장은 이태백(李太白)이오, 인물은 두목지(杜牧之)요, 알기로는 소강절(邵康節)이라.’ 라고---
正菴. 매우 적당한 理論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은 어떠한가?
夜雷. 健康은 무조건하고 福이다. 그러나 나의 무조건이라는 康寧은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을 합하여 하는 말이다. 肉體만 건강하고 念이 不善한 사람이라면 그 건강은 도리어 禍를 짓는 도구가 된다. 강도나 과 같은 자는 말할 것도 없고, 세상의 예를 보드라도 修行이 없는 자라면 신체의 건장함을 믿고 도덕적 죄악과 禍淫의 害를 입는다. 그러므로 心化氣化의 康寧은 곧 福이 된다.
正菴. 攸好德(五福의 하나.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일을 말한다.-오암)은 물론 말할 것도 없겠지?
夜雷. 그렇다. 攸好德은 壽에도 攸好德이 아니면 福卽善이 되지 못하고 富, 康寧에도 攸好德이 아니면 善卽 福이 못된다. 그러므로 攸好德은 萬福의 源이다.
正菴. 考終命에도 논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夜雷. 考終命도 攸好德이 붙지 않으면 福이라 할 수 없다.PP.240-246.
五 攸好德; P.246.
正菴. 攸好德이란 무엇인가?
夜雷. 攸好德에는 德의 體라고 하는 道가 있어야 하는 것일세.
正菴. 道라는 것은 종교의 신앙의 이름인가?
夜雷.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를 신앙하면서도 攸好德은 따로 있다. 세상의 종교 신자 중에 假善을 하는 자는 말할 것도 없고 篤信者일지라도 편견, 고집에 빠지든지 獨善其身의 獨覺이 되든지, 慧가 없는 盲信에 빠지면 그것은 德의 體인 成道가 되지 못한다. 道成德立이라는 成道의 理를 모르면 道自道 我自我(도는 도대로 나는 나대로 즉 도덕적인 인간이 되지 못한다.-오암)가 된다. 道成은 德立과 竝行하여 가므로 종교를 신앙하면서도 德의 用으로 인하여 究竟 道의 體를 알게 된다. 故로 수운선생은 「德唯明而是道」라 하였다.
註 00 ; 德唯明而是道 - 原文은「歎道儒心急」의 ‘心兮本虛 應物無迹 心修來而知德 德惟明而是道 在信不在於工 在近不在於遠 在誠不在於求 不然而其然 似遠而非遠’ 에서 인용했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마음이란 본래 비고 고요한 것이므로, 만물을 맞아들이는 그 자취가 없다. 마음을 바르게 닦음으로써 덕을 잘 알게 될 것이다. 덕은 오로지 밝게 밝혀야 참다운 도가 된다. 도는 들를 공부만 하는 사람에게 있지 않고 믿음에 있고, 먼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가까운 데 있고, 정성에 있는 것이지 그냥 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듯하면서 그러하고 먼 데 있는듯하면서 멀지 않은 데 있는 것이다.
正菴. 그러면 道와 德은 상호 관계 되는 것이 아닌가?
夜雷. 道는 光源이요 德은 光線이다. 光源을 알려면 光線을 쏘여 보아야 아는 것과 같이 을 얻는다. 道가 있는 증거는 마음의 明德을 활용하는데 있고 그리하여 道의 體를 自覺한 후에야 攸好德의 源泉을 얻는다. 즉 이 된다. 그러므로 道成德立이다.
正菴. 그러면 攸好德의 活用自在로 德立이 되기 전부터 德立될 만한 用德의 方法을 알아야 하는가?
夜雷. 그렇다.
正菴. 그것은 무엇인가? 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가?
夜雷. 攸好德의 用心에는 먼저 일상 생활의 待人接物에서 부터 시작하여야 되는데 예를 들자면 첫째가 嗔卽怒를 금해야 한다. 嗔은 번뇌로 부터 생기는 것이로되 嗔은 또한 번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嗔은 번뇌의 원인과 결과가 된다.
正菴. 孟子에「一怒而安天下」라는 怒도 그러한가?
註 00 ; 一怒而安天下 - 『孟子』梁惠王章句 下 三章에
‘詩云 王赫斯怒 爰整其旅 以遏徂莒 以篤周祜 以對于天下. 文王一怒而安天下之民
書曰 天降下民 作之君 作之師 惟曰其助上帝寵之 四方有罪無罪惟我在 天下曷敢有越厥志?' 一人衡行於天下 武王恥之 此武王之勇也. 而武王亦一怒而安天下之民 今王亦一怒而安天下之民 民惟恐王之不好勇也’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詩經』에서 말하기를 왕께서 이것에 크게 노하여 많은 사람들을 정돈하여 침략하러 가는 무리들을 막으시고, 주나라의 복을 돈독하게 하여 천하에 답하였다. 이것은 문왕의 용맹이며 문왕이 한번 노하여 천하의 백성을 편안케 하신 것이다.
『書經』에 하늘이 백성을 태어나게 하고 그들의 임금과 스승으로 나를 세워 명하시기를 上帝를 도와서 천하의 백성들을 寵愛하고 편안케 하라고 하였다. 죄가 있는 자는 처벌하고 죄가 없는 자는 편안케 하는 것은 오직 나의 책임이다. 이 세상에서 누가 감히 하늘의 뜻을 무시하는 반역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무왕은 한 사람이 천하를 횡행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었다. 이것을 무왕의 용기라 한다. 무왕도 또 한 번 성내어서 천하의 백성들을 편안케 하였다. 이제 왕께서도 한번 성내어서 천하의 백성을 편안하게 하실 수가 있으시다면, 백성들은 오직 왕께서 용맹을 좋아하지 않으실까 두려워할 것이다./ 『孟子』와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夜雷. 그것은 嗔이 아니다. 義憤으로 나오는 義勇이다. 그러므로 義憤과 嗔은 區別해서 보아야 한다.
正菴. 그러면 怒卽嗔은 利己的 貪慾으로 나오는 것을 이름인가?
夜雷. 貪嗔痴 三毒이라 하지만 정연한 體系가 있는 것은 아니요 互相關係는 된다.
正菴. 嗔을 소멸하는데 간단하고 필요한 방법이 없는가?
夜雷. 「忍」一字가 嗔을 소멸케 할 뿐 아니라 立德의 入門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佛敎에서 忍辱이라고 하여 修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된다.
註 00 ; 忍辱 - 불교에서 여섯 가지 바라밀(波羅蜜) 중의 하나로. 모든 모욕과 박해를 받고도 참고 견디며 화를 내거나 한탄하지 않는 것이다. 또는 치욕스러운 일을 참음 오행(五行)의 하나이기도 하다. 原語는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은 참는다는 뜻도 있지만 욕됨을 용서한다는 뜻도 내포한다. 기본적인 불교수행법 가운데 하나이다.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기꺼이 받는다는 적극적인 뜻과, 모든 일에 대하여 喜怒哀樂함이 없고 동요됨이 없이 사물의 본성이 평등무이(平等無二)함을 깨닫는다는 해탈에까지 확산된다. 즉, 이 인욕 없이는 어떠한 일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는 이 인욕을 배우는 자는 남으로부터 괴로움을 당하였을 때 마땅히 참고, 마음속에 원수 갚을 마음을 품지 않으며, 자기를 이롭게 하거나 자기를 훼방하거나 칭찬하거나, 또 자기에게 고통을 주거나 안락을 주더라도 모든 일을 참고 용서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인욕에 대한 분류법으로는 2·3·4·5·6·8·10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3인설과 4인설을 가장 널리 채택하고 있다.
3인은 내원해인(耐怨害忍)·안수고인(安受苦忍)·제찰법인(諦察法印)이다. 이때의 인은 모든 좋고 나쁜 대경(對境)을 향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을 뜻한다. 내원해인은 원수나 적의 해침을 받고도 복수할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고, 안수고인은 질병이나 수재·화재·폭력의 고통을 달게 받는 것이며, 제찰법인은 진리를 자세히 관찰하여 불생불멸하는 이치에 마음을 안주하는 것이다.
4인은 복인(伏忍)·유순인(柔順忍)·무생인(無生忍)·적멸인(寂滅忍)으로 분류된다.
첫째, 복인은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먼저 성나는 그 마음을 조복하여 억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역경(逆境)만 참아서는 아니 되며, 자기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순경(順境)도 참아야 한다. 그 이유는 역경을 참지 못하면 번뇌가 치밀어서 투쟁하기 쉽고, 순경을 참지 못하면 유혹에 빠져서 몸과 마음을 버리기가 쉽기 때문이다.
둘째, 유순인은 사람이 항상 참기를 많이 하면 저절로 조복되어서 역경이나 순경을 만날지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를 말한다.
셋째, 무생인은 참고 견디어 보살의 지위에 오른 사람의 인욕행으로서, 인생이 무상하며 세상이 허황함을 깨닫고 일체만법이 인연으로 흩어지는 진리를 깨닫고 보면, 별로 성낼 것도 없고 참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넷째, 적멸인은 부처님의 지위에 있어서와 같은 인욕행으로, 생사고해에 뛰어나서 본래부터 적멸한 열반의 경지에 서 있는, 한 물건도 없는 경지를 의미한다. 이것은 인욕행을 애써 닦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한 생각도 일으킴이 없음을 체득하여 인욕을 완성하는 것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관련 자료에서 재정리함.
註 00 ; 五行 - 불교 수행에서 보살이 수행하는 다섯 가지의 행법(行法)이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지관(止觀)의 다섯 가지 수행(修行)을 말한다. 또는 보살이 자기의 해탈과 남의 교화를 위하여 닦는 다섯 가지의 수행. 성행(聖行), 범행(梵行), 천행(天行), 영아행(嬰兒行), 병행(病行) 들이다./어학사전에서 정리함.
正菴. 이야기 삼아서 재미 있는 前例 몇가지를 들어 보라.
夜雷. 忍에 대한 실지 사실은 고금을 통하여 광범위하게 있다. 그 중에서 내가 감격한 몇가지를 이야기 해본다.
첫째. 唐나라 때 張九藝의 전설은 당당히 역사에 기록되어 있으니만치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張이 九代를 同居하는 동안 평화 무사히 지냈기 때문에 太宗(唐太宗-오암)이 그를 갸륵히 여겨 그 이유를 물은즉 張은「忍」字 몇백個를 내어 올리며 「이것이 小臣이 九代 同居케 된 사실입니다」하였다. 二代 三代만 동거하는데도 父兄子弟 夫婦 奴僕 등 개성관계 애정충돌로 평화를 유지하기가 如干 일이 아니거늘 九代라는 多數의 인간이 오랜 세월을 平和無事히 지냈다는 것은 굉장한 것인데 그것을 실행한 원동력은「忍」一字에 있었다. 忍의 德이 可히 크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註 00 ; 張九藝의 전설 - 出典 未詳이나 다음과 같은 기술을 찾을 수 있었다. 客家人的家族制都是數代却堂,唐代的張九藝九世却居,宋代的陳昉十三世却居,是客家人欣羨歌頌的對象/臺灣 國立中央大學校 何瑞玲의 碩士論文「客家宗族與在地社會變遷 -以新竹新豐鳳山崎何氏宗族為例」에서 발췌.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가족제도는 여러 代의 祖孫이 모여 大小家를 이루어 사는 것으로, 당나라 때에 張九藝의 九世 大小家의 同居와 송나라 때에 陳昉의 十三世 大小家의 同居가 널리 알려졌다. 이들 客家人의 同居에 대하여 몹시 부러워하고 찬양하는 대상이 되었다.
正菴. 그것은 아는 일이니 다른 例 몇 가지만 들어 보라.
夜雷. 傳說로 들은 이야기를 한마디 하자.
正宗 때 洪思國이란 유명한 사람이 있지 않았는가? 그가 청년 때 관상가에게 相을 뵈인즉 관상에 大臣之相格像이 갖추었으니 좋은 것은 다 말할 것 없으나 한 가지 걱정은 불원간 殺人할 殺氣를 띄었으니 그 점이 큰일이라 하였다. 洪은 그것을 면할 방법이 없느냐고 간절히 청한즉 그의 하는 말이 집에 돌아 가거든 「忍」字 몇백개를 써서 항상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두면 혹 면할른지 모른다고 하였다. 洪은 그의 말대로 실행하고 몇달을 지내는 중 하루는 朝廷에서 나와 밤 중에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그가 침실로 들어가 방안을 살펴 본즉 그의 愛妻가 어떤 총각을 안고 누워 있지 않은가. 그는 돌연 노발하여 三尺 長劍을 빼어 卽斬코저 할 순간 正面에 붙여 둔 「忍」字가 눈에 띄었다. 하 하고 머리를 左로 돌린즉 거기에도 「忍」字, 右로 돌려 본즉 거기에도「忍」字, 그래서 잠간 참고 劍을 걷우어 드릴 때 두사람은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 알고 본즉 총각은 곧 그의 妻弟였다는 것이다. /洪思國의 전설은 출전 미상.
註 00 ; 洪思國(1883~1969) - 字는 군일(君一)이고 號는 동호(東湖)이며 이성(以成)의 後孫으로 경전자집(經傳子集)에 能通하였고 治山 正訓이 훌륭하였으며 주정학에 잠심(潛心) 하여 유고(遺稿)가 전(傳) 한다./어학사전과 봉화일보의 南陽洪氏에서
그 보다 한층 더 기적과 같은 흥미 있는 實話가 있다. 이것은 谷口雅春氏의 「生長의 家」에서 본 事實談이다. 東京에 A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성질이 극히 신경과민이어서 무엇을 대하든지 癎疾的 怒氣를 發하는 못된 短氣(성질이 너그럽지 못하고 조급함-오암) 가 있었다. 그 뿐 아니라 그의 內君(상대방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오암)도 그의 못지 않은 신경질이다. 그러고 보니 가정의 평화란 다시 말할 여지도 없고 하루에도 몇번식 수라장이 되는 악마의 가정이었다. 그는 필경 화에 치받쳐 눈이 멀었다. 보통 때도 잘못된 가정이 家長이란 者가 盲人이 되고 보니 그야말로 패가 그는 위선 眼盲을 치료키 위해 眼科병원을 찾아 수년을 치료했으나 아무 효과가 없었다. 하루는 문득 생각한즉 金光敎에서는 무료로 정신치료를 한다는 것을 알고 金光敎의 敎主를 찾아가 사실을 이야기 했다. 그러자 敎主의 말이 「치료비 百萬圓만 교회에 기부하면 치료할 도리가 확실히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敎主는 이런 말을 하였다. (그대가-오암)十圓의 금전도 없는 줄 안다. 그러나 君의 몸에는 百萬圓의 가치를 가진 重寶(매우 비싼 보물-오암)가 있다. 그것을 교회에 기부하라」고 한즉 그는「百萬원 가치 되는게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그것은 별것이 아니요 『感謝』라는 것이다. 君이 만일 오늘부터 어떤 불쾌한 일을 대하든지 감사하다는 표정을 하라는 말이다. 그것이 百萬圓을 교회에 기부한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는 생각하였다. 자기에게 못된 버릇을 가진 아내가 있는데 위선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敎主에게 물었다.「마음으로 싫은 것을 겉으로만 감사하다고 하여도 眼盲이 고쳐집니까?」「마음에 없는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이 百萬圓의 가치를 가진 것이요」라고 하였다. 그는 敎主의 말을 듣고 집에 돌아온즉 마침 저녁 식사시간인지라 夫人이 밥상을 앞에 놓고 밥 공기를 떠서 그에게 권하고 다음 국그릇을 들어 家君에게 전 할 때 실수를 하여 그릇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내는 당장에 그 실수를 남편의 잘못이라고 힐책(詰責/잘못을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꾸짖음 -오암))하였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싸움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꾹 참았다. 그리고 그는 「감사합니다」하는 말을 억지로 하였다. 아내는 그 말을 듣자 화를 벌컥 내면서 「오늘은 별꼴을 다 보겠군」하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러나 그는 죽기를 맹세코 참았다. 다음은 기회만 있으면 감사하다는 표정을 하였다. 상대방이야 옳게 듣든 그르게 듣든 그는 꾸준히 실행하였다. 그렇게 하기를 몇개월이 지났다. 하루는「감사합니다」하는 말을 아내에게 하는 순간에 마음 속으로 어떤 광명이 비치면서 여지껏 억지로 하든 감사가 진정한 마음으로 우러나왔다. 그리고 그는 마음 속으로 후회하였다.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다. 나는 億萬劫을 죽어도 죄를 모두 벗지 못할 놈이다 불상한 아내에게 지금껏 고통을 준 것은 모두 나의 죄이다. 아내에게는 하등의 잘못이 없다는 후회감이 전광석적으로(깜짝하는 순간에-오암) 일어나는 순간 아내도 문득 깨달은 바 있어 「감사합니다」하고 남편에 말하였다 정말로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두사람의 마음은 화평하였다. 雲淡風輕한 好天氣(엷은 구름에 산들바람이 부는 듯한 기분 좋은 맑은 날씨-오암)와 같았고 무한한 法悅이 마음속에서 솟아났다. 그래서 그 날부터 행복을 되찾아 嚴冬雪寒 같이 처참하든 가정이 春風和氣와 같이 平和스러웠다. 그 뿐 아니라 어린애들이나 동네 사람들 까지도 서로 감사하다는 말을 주고 받게 되어 그 마을은 感謝村이 되고 그 집은 「感謝집」이라는 별호를 얻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그의 눈은 어느 사이엔가 밝아지고 말았다. 기적은 사실로 일어났고 은 그들에게 떨어졌다.
여기에 한가지 신통한 일은 억지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든 그에게 졸지에(갑자기-오암) 마음에 光明이 비추이면서 진정한 감사와 참회가 일어났을 뿐 아니라 이제껏 증오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대하든 그의 아내가 동시에 마음 속에 광명이 비치며 꼭 같은 마음으로 진정한 감사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註 00 ; 谷口雅春(타니구치 마사하루-오암)氏의 「生長의 家」- 谷口雅春는 神道계통의 신흥종교인 일본 생명의 집인 生長の家/세이초노이에 의 창설자이며 실질적인 대표이다. 타니구치 마사하루(1893(明治26)- 1985(昭和60)가 神의 啓示를 받았다 하여, 1930년(昭和/쇼와 5년)에 창간한 개인잡지 「生長の家」를 통해서 포교. 우주를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라 파악하고 만교귀일(萬教歸一)과 천황 절대(生長の家는 궁극적으로 천황제 국가의 복원을 꿈꾸는 신흥종교)를 강조한다. 「生長의 家」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우익 정치단체인 日本會議의 대표이기도 하다. 「生長의 家」는 한국에서 ‘光明의 집’으로 소개되었다. 經典으로는 '생명의 실상', '감로의 법우', '일곱 개 등대 점등자의 신시(神示)' 등이 있다./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 이것은 谷口雅春氏의 「生長의 家」에서 본 事實談이다. - 事實談은 著者가 「生長の家/1944년 발행」에 실려 있는 이야기라고 소개했지만, 단행본인지, 개인잡지인지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註 00 ; 金光敎(곤코교/Konko-kyo) - 19세기에 일본에서 창시된 종교운동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세력을 확대한 '신흥종교'의 전형이다. 이 운동은 1859년 지금의 오카야마 현[岡山縣]에 살았던 농부인 가와데 분지로[川手文治郞]에 의해 창시되었다. 그는 자신이 惡神인 곤진[金神]의 새로운 이름인 곤코[金光]로부터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로 활동할 것을 지목받았다고 믿었다. 이 중개자는 추종자들의 고통을 신에게 전달해주며, 후계는 창시자의 남자 자손들이 잇는다. 곤코교는 신과 인간의 상호의존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비유된다. 이 종교는 교파신도의 한 종파로 인정받았으며 1978년에 신자가 약 48만 명에 달했다. /다움백과에서
■ 敎派神道/Kyoha Shinto - 일본의 민간 종교운동 집단으로. 1882년 정부포고령에 따라 초종교적 국가종교인 국가신도에서 분리되었다. 이들은 공식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었으며 교회 또는 교파로 불렸는데 이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사원으로서 국가기관처럼 간주되던 신사와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정부는 이들을 1908년까지 13개 교파로 정리했다. 학자들은 이들을 종교적 신앙의 특성에 따라 몇 개의 집단으로 분류했다. 주요한 집단은
① 복고신도:신토타이교[神道大敎], 신리교[神理敎], 이즈모오야시로교[出雲親代敎] 또는 다이샤교[大社敎], ② 유교계:신토슈세이파[神道修成派], 신토타이세이파[神道大成派], ③ 산악신앙계:짓코교[實行敎], 후소교[扶桑敎], 미타케교 또는 온타케교[御岳敎], ④ 순신도계:신슈교[神修敎], 미소기교[禊敎], ⑤ 이상 또는 신앙요법 분파:구로즈미교[黑住敎], 곤코교[金光敎], 덴리교[天理敎] 등이 있다.
이 분파들은 수많은 산하 분파들과 신도조직들을 발전시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자적인 조직이 허용되자 종래의 13개에서 75개로 늘어났다. 논리정연한 교리, 개종, 전도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현대 일본에서 발생한 '신흥종교'의 원형이 된 것들도 있다. 이중 영향력이 가장 큰 것은 덴리교이다. /다음백과에서
正菴. 참으로 좋은 이야기요. 나도 역시 그 점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 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을까? 한개의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까?
夜雷. 기적이라면 기적이 될른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당연한 神靈의 妙法이라 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든지 꼭같이 神靈의 明德(사람의 마음이 본디 지니고 있는 신령스럽고 맑은 본성-오암)이 있다. r들 夫婦에게도 명덕이 있는 것은 明若觀火이다. 그러나 그들은 無明의 번뇌가 明德을 가리웠던 것이다. 지금까지 싸우고 不和한 것은 明德의 眞相이 그러한 것이 아니요 無明이 無明과 싸운 것이다. 그는 金光敎主에게 「感謝」 두 글자를 기회 있을 때마다 표정으로 나타내라는 暗示를 받았다. 그는 그 暗示를 꼭 믿었다. 그 결과 그의 一念은 기타 잡념인 無明의 번뇌를 解脫하였다. 여기서 明德의 光은 그로 하여금 人生의 眞面目에 돌아오게 하였다.
正菴. 그는 그렇고 그의 妻가 동시에 光明이 일어난 것은 무슨 때문인가?
夜雷. 그럴 수 밖에 없지않은가? 無明이란 것은 본래가 없는 假想(사실이 아니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사실이거나 실제로 있는 것처럼 가정하여 생각함/유사어 想像-오암)인 까닭에 實相인 光明이 비치우면 즉시로 소멸 될 것이 아닌가? 한쪽에서 無明의 陽電이 일어나니까 저 쪽에서 無明의 陰電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쪽의 無明의 明德이 光明에 의하여 스러지고 보니 저쪽도 자연히 소멸될 것은 사실이고 그 결과 明德과 明德이 合一되고 보니春風和氣가 들어올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말하자면 그것이 感謝라는 呪文에 의하여 정신 통일이 되고, 정신통일에 의하여 明德의 光明이 나타나고 明德의 光明이 나타나자 無明의 번뇌가 스러졌다는 이유이지, 그러니까 攸好德은 필경 정신통일의 방법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PP.246-255.
六 精神統一; P.255.
正菴. 정신통일의 방법을 알고자 하는데 그 보다도 정신통일의 상태부터 설명하여 보라.
夜雷. 君이 나를 道通이나 靈通(性靈으로 통하는-오암)한 사람으로 아는가? 나는 정신통일을 해본 적도 없고 또 방법을 알아본 적도 없다.
正菴. 六十餘 一生을 그 방면으로 專門한 사람이 그것을 모른다면 정신통일이란 본래가 꿈과 같은 헛소리가 아닌가?
夜雷. 아니야. 나는 정신통일을 체험한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연구해 보는 사람이요 내가 그것을 지식으로 생각하는 學人의 한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正菴.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 또는 지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그것을 말할 수는 없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본래 實體가 없는 꿈같은 것이 아닌가?
夜雷. 그럴리가 있나? 음식을 먹어본 사람이라야 그 음식의 맛을 아는 것과 같은 것이지, 그 음식을 손수 만든 사람이라도 만드는것 까지는 말할수 있으나 먹어보지 않고는 그 맛을 말할 수 없지 않은가? 또 설사 음식을 먹고 맛을 체험한 사람이라도 남에게 그것을 자기가 느낀 실감 그대로 알릴 수는 없지 않은가?
正菴. 그야 그렇지, 그러니까 정신통일의 방법을 말할 수 있으나 상태는 말할 수 없단 말이지 方法 말이 났으니 말할 수 있는데 까지 말할 수 있지 않은가?
夜雷. 그러면 정신통일 상태의 울타리 쯤 그려 놓을 것이니 그 안은 君이 홀로 추측해 볼 수 밖에 없네. 君도 혹시 크게 무서운 일이나 크게 기쁜 일이나 크게 슬픈 일을 당해 본 적이 있겠지?
正菴. 구체적으로 말해 보게.
夜雷. 가령 君이 옛날 말로 三族을 離滅 당할 큰 죄를 밤 중에 도망을 친다고 하자. 그리고 뒤에 捕將 捕卒이 따른다고 하자. 그 때 호랑이나 惡鬼나 도적이나 기타 무서운 것이 나타난다는 山谷(깊은 산골짜기 속-오암)을 넘어간다고 하자. 평상시 같으면 모발이 송연(悚然/두려워서 소름이 끼치다. 오싹하다-오암)하고 손 발이 떨릴 만큼 무서울 것이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도망 칠 그런것들이 평상시와 같이 무섭겠는가 상상해보라.
註 00 ; 三族을 離滅 당할 큰 죄를 짓고 - 아버지, 나, 자손의 三代를 三族이라 한다. 삼족이 이별하여 흩어지고 죽임을 당해 큰 죄를 짓고. 일반적으로는 ‘三代가 滅族을 당할 큰 죄’ 라고 표현 하고 있다. 離滅은 般若心經에 나오는 成住壞空 生住離滅에서 인용된 것 같다. 불교에서는 이 우주안의 만물은 생성, 변화, 발전, 소멸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을 '성주괴공 (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離滅)'이란 말로 설명한다. 성주괴공이란 물질이 되었다 없어지는 기간을 사기(四期)로 나눈 것이다. 물질이 처음에 생겨서 얼마 동안 존재하다가 점차 파괴되어 끝내 없어져 공무(空無)한 것을 성주괴공이라고 말한다. 또 생주이멸은 주로 정신적인 측면의 변화 상태를 말하고 있다. 한 가지 생각이 일어나서 머물렀다가 변화하여 소멸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연기의 법칙은 절대적이다. 어떤 존재이든 모든 것은 성주괴공, 생주이멸의 과정을 거친다. 고정불변한 존재는 없다. 모든 현상은 단순하게 보이지만 온갖 복잡한 인연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라고 본다. / 반야심경과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 滅 - 열반(涅槃). 음역하여 니반나(泥畔那), 니원(泥洹), 열반나(涅槃那)라고 하며, 뜻으로는 멸(滅), 적멸(寂滅), 멸도(滅度), 원적(圓寂), 안락(安樂), 해탈(解脫)이라 번역한다./백과사전에서
--------------------------------------------東學之人生觀 註解書 14-12.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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