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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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3)
18세기 이후 일어난 많은 민중운동은 정감록신앙과 남조선신앙의 합작물이었다. 당시의 민중들에게 두 개의 신앙은 양반의 성리학적 사고체계에 대하여 계급차별을 부정하는 민중지향적이며, 왕조의 교체를 예언하는 반왕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1737년(영조 13) 지리산 하동(河東) 일원에 신왕조의 도읍이 예정되었다고 하는 남변(南變)은 곽재우(郭再祐)· 서경덕(徐敬德) 등의 주기론적 영향 아래, 비기(秘記)를 신봉하는 유랑지식인들의 변란으로서 직접적으로는 참설이나 감결과 관련이 있지만, 그 저변에는 남조선신앙의 미래국토 대망사상이 본류를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1748년의 이른바 '이재궁궁'(利在弓弓)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일어난 민중반란도 남조선신앙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영·정조 때에는 19세기와 같은 대규모의 농민반란이 일어나지는 않았으나 정감록신앙과 감결이 크게 유행하여 소규모의 사회적 반역의 무리들이 예외없이 진인출현설이나 감결을 가탁(假託)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부터 남조선신앙은 비록 완성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민중운동의 저변을 흐르는 미래국토의 대망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모습으로 채색되어갔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것을 신앙의 논리로 정연하게 체계화시킨 것이 바로 최제우(崔濟愚)의 동학운동에 나타난 후천개벽으로 인해 형성되는 지상천국의 이상사회였다. 이때부터 남조선신앙과 같은 미래국토의 대망이 단순히 즉흥적인 가구(假構/허구와 유사한 의미-오암)가 아니라 보다 현실적 정황에 접근하는 형태의 후천개벽 사상으로 전개되었다. 물론 동학운동은 순수한 종교운동으로서의 한계에 안주하려는 북접(北接)과, 이것을 사회개조의 이데올로기로서 생각하는 남접(南接)과의 노선투쟁에서 남접측이 갑오농민전쟁을 주도하게 됨으로써 종교적 신앙 내지 신비적인 성격이 많이 퇴색한 대신 현실개혁의 의지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따라서 남조선신앙이 내포하는 소박한 원초적인 원망이라는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동기는 민중을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하게 하는 데 기여했을 뿐 당시 사회개혁의 청사진으로서는 별로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갑오농민전쟁이 실패로 끝난 직후부터 20세기 초에 대두하는 민중종교운동에는 이 남조선신앙의 원형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고 설명하고 있다./다움백과 요약정리.
註 00 ; 원형이정(元亨利貞) - 주역(周易) 〈건괘(乾卦)〉에 나오는 사덕(四德)을 말한다.
출전 「건(乾)은 원형이정이다.(乾, 元亨利貞.)」주역 건괘 /이에 대해 《주역 〈문언전(文言傳)〉》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원은 모든 선의 수장(首長)이고 형은 아름다움이 모인 것이며, 이는 의로움의 조화이고 정은 사물의 근간이다. 군자는 인을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고,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어 예와 합치할 수 있으며, 사물을 이롭게 하여 의로움과 화합할 수 있고, 곧음을 굳게 하여 사물의 근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군자는 이 사덕을 실행한다. 그러므로 건은 원형이정이라고 하는 것이다.(元者, 善之長也. 亨者, 嘉之會也. 利者, 義之和也. 貞者, 事之幹也. 君子體仁足以長人, 嘉會足以合禮, 利物足以和義. 貞固足以幹事. 君子行此四德者, 故曰, 乾, 元亨利貞.)」
‘원’은 만물이 시작되는 때로 봄에 속하며, 인(仁)으로 이루어진다. ‘형’은 만물이 성장하는 때로 여름에 속하며, 예(禮)로 실천된다. ‘이’는 만물이 이루어지는 때로 가을에 속하며, 의(義)로 행해진다. ‘정’은 만물이 완성되는 때로 겨울에 속하며, 지(智)로 이루어진다./ 고사성어대사전
註 00 ; 건(乾) - 3효로 이루어진 8괘에서의 괘상은 ☰이고, 6효로 이루어진 64괘에서의 괘상은 이미지이다. 곤괘(坤卦)가 땅, 즉 여성을 상징하며 유순함을 그 특징으로 하는 데 비해, 건괘는 하늘, 즉 남성을 상징하며 강건함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3효로 이루어진 8괘[小成卦]에서의 괘상은 ☰이고, 6효로 이루어진 64괘[大成卦]에서의 괘상은 이미지이다. 소성괘 건(乾)은 양효 3획으로 이루어진 건3련(乾三連)으로, 순수하게 양(陽)으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하늘[天]을 상징하며 그 성질은 강건하다. 대성괘 건은 소성괘의 건괘가 중첩되어 있는 8순괘(八純卦)의 하나로 괘 이름도 소성괘와 같고 매우 강건한 덕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곤괘가 만물을 포용하고 길러주는 생육자로서의 땅, 즉 '지도'를 의미하는 데 비해 건괘는 끊임없이 만물을 창조하는 생명력의 근원으로서의 '천도'를 의미한다. 곤괘가 만물을 포용하고 길러주는 생육자(生育者)로서의 땅, 즉 '지도'(地道)를 의미하는 데 비해서, 건괘는 끊임없이 만물을 창조하는 생명력의 근원으로서의 '천도'(天道)를 의미한다(〈周易〉 乾卦:大哉 乾元 萬物資始 乃統天). 나아가 건괘는 자연의 운행법칙인 원형이정(元亨利貞)을 제시함으로써 천도의 전개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 변화로 대표될 수 있는 만물의 생장수성(生長遂成)을 의미한다. 건괘는 자연의 운행법칙인 원형이정을 제시함으로써 천도의 전개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 변화로 대표될 수 있는 만물의 생장수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강건한 기세를 보이는 성운의 괘이지만 효사에서는 이 성운을 다루는 데 신중을 기하고 있다.
이러한 건괘가 갖는 의미는 인간의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즉 군자는 강건한 천도의 운행을 본받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周易〉 乾卦:天行健 君子以自彊不息), 천도의 전개과정이자 우주의 질서인 원형이정을 본받아 4가지 덕[仁義禮智]을 길러 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周易〉 乾卦:君子行此四德者 故乾元亨利貞). 한편 건괘는 이처럼 강건한 기세를 보이는 성운(盛運)의 괘이지만 효사(爻辭)에서는 이 성운을 다루는 데 신중을 기하고 있다. 즉 맨 위의 양효는 더 오를 수 없는 절정에까지 이르러 함부로 치닫는 항룡(亢龍)의 상이 되어 재앙을 예고하고 있는데(〈周易〉 乾卦:亢龍有悔 窮之災也), 이는 때를 만나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가운데서도 분수에 넘는 지나친 행동이나 호운(好運)에 심취하여 교만함이 없도록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건괘가 갖는 의미는 천도와 인도(人道)의 결합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의 문제에 다가서는 것이며, 천지자연의 섭리에 입각해서 인간의 문제를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역〉은 단순한 점서 이상의 의미를 갖는 철학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다움백과에서 요약정리.
공자는 태어날 때부터 천도의 이치를 알았다는 성인이지만, 인간의 본성을 중요시 하지 않고 학습을 매우 중요시 했다. 그 증거로는 공자의 君子三樂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또 亞聖이라 할 수 있는 맹자도 人生三樂에서 학습의 근본인 교육을 인생삼락의 하나로 삼고 있다.
孔子의 君子三樂.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배우고 때에 맞추어(timely) 학습을 하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 하는 친한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達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論語』 學而第一 1. 凡十六章/『論語 中庸』 三省出版社.1983.
孟子의 人生三樂
군자에게는 삶의 행복이 세 가지가 있다. 그러나 천하의 왕 노릇하는 즐거움은 이 세 가지 행복 중에 끼지 못한다. 첫 번째는, 부모가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들이 아무런 탈 없이 건강한 것이 처음의 행복이고. 두 번째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고, 땅을 내려다보아도 남에게 창피하지 않게 사는 인생이 두 번째 행복이며. 세 번째는, 천하의 똑똑한 영재들을 모아서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인생의 행복이다. 즉 人生三樂이란 하늘에 대해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들과는 우애있게 잘 어울리며, 빼어난 영재들을 찾아내어서 가르치는 것이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의 즐거움이 있는데, 天下의 왕 노릇을 하는 것은 군자삼락에는 들어있지 않다.”고 하셨다.
/孟子曰 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 /『孟子』 盡心章句 上 20./『孟子 大學』三省出版社.1986.
또 子思가 중용(中庸/공자의 손자 子思가 저술했다는 四書의 하나)에서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지상(天道之常)이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라. 이라 하였는데 그 의미는 원형이정은 하늘의 변함없는 도리로서 봄(元) 여름(亨) 가을(利) 겨울(貞) 4계절의 천체 운행(우주의 근본 원리)을 뜻하며, 인의예지(사람이 태어날 때 부터 마음에 지닌 4가지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德 또는 도덕, 이를 四端이라 함)는 인간 본연의 성품을 이루는 주된 근간의 도리라고 말했다. 즉 인성(人性)은 천성(天性)과 같아서 천성으로 타고난 인성을 자연의 순리대로 길러야 한다는 뜻이라 할 수 있다. 고 했다.
천도교의 신앙자들 중에는 상당수가 세 분의 스승님들이 모두 선천시대의 성인과 같은 훌륭한 분들이라 믿고 스승님들의 법설에 얽매여 법설에 담겨진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잘못 읽고 어리석은 수도수련과 말씀을 스승님들의 참다운 수행과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승님들의 법설을 색독(色讀)을 함으로써 자자구구의 직역에 얽매여서 一字一句에 담겨진 참뜻을 지나치고 있다. 또 행간(行間)에 숨겨진 스승님들의 참다운 마음의 숨소리를 못들을 뿐만 아니라 법설의 대의를 읽어내지 못하여 스승님들의 따뜻한 마음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스승님들 법설의 字字句句에 얽매여 근본을 지킨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은 매우 불행일로 개인이나 교단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색독을 하는 경우에 박이부정(博而不精/널리 알 되 정밀하지 못함)이란 통폐가 생기기 때문에 반드시 정독을 해야 한다.
註 00 ; 색독(色讀) : 글을 읽을 때 문장 전체의 의미를 파악하지 아니하고 글자가 표현하는 뜻만을 이해하며 읽음.
동학만을 추종하는 것은 근본주의에 해당되는 것이고, 천도교를 올바로 신앙하는 것은 다원화 사회의 근대주의(modernism)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종교적인 근본주의란 무엇인가? 를 학계의 정의에 따라 살펴보려 한다.
근본주의(fundamentals)의 근본의 어학사전적 의미는, 사물이나 생각 등이 생기는 본바탕 또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생기는 본바탕이 되다. 이다. 근본의 중국어 의미는, 根은 뿌리 근 자이고, 本은 근본 본 또는 근원 본, 밑 본 자이다. 따라서 글자의 뜻대로는 나무의 뿌리라는 뜻에서 사물이 발생하는 근원 또는 모든 것의 기초라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므로 만물만사를 이해하려면 사물이 발생하는 근원 또는 모든 것의 기초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올바른 것이지만 종교에 있어서 근본주의의 근본은 사물이 발생하는 근원 또는 모든 것의 기초에 고착되어서 매우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되어서 교단 발전의 저해요소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적 근본주의(fundamentalism)의 근본주의라는 용어는 일련의 원칙이나 신념을 엄격하게 고수하는 것을 표현하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종교적 근본주의는 기본 경전이나 교본을 원본대로 직역하여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 집단이 취하는 태도로서, 경전의 액면 그대로의 해석과 그러한 해석에서 비롯되는 교의들의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삶의 모든 측면에 곧이곧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종교적 근본주의의 위력은 그 시대의 종교들의 종교적 세속화(secularization)가 근대 사회를 지배해 온 과정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지표이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오직 하나만의 세계관이 가능하고 자신들의 세계관이 바로 올바른 그것이라고 믿는다. 애매모호하거나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없다. 종교적 근본주의 운동 내부에서는 경전의 정확한 의미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일련의 특권적 ‘해석가들’-승려, 목사 및 기타 종교 지도자들-에 국한되어 있다. 이로 인해 이들 지도자들은 종교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문제에서도 상당한 권위를 부여받는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반정부 진영에서, 주류 정당 내부에서(미국의 경우를 포함하여), 그리고 국가의 지도자로서(이란의 경우처럼)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종교적 근본주의는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이런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은 불과 20~30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은 대체로 세계화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근대화의 힘이 점차 사회의 전통적 요소(핵가족, 남성의 여성 지배 등과 같은 것들.)를 점차로 약화시켜 가는 와중에 근본주의는 전통적 신념을 수호하기 위해 등장했다. 합리적 사고를 요구하는 세계화 시대에 근본주의는 신념에 근거한 해답과 의례적 진리에 의존할 것을 고집한다. 다시 말해 근본주의는 전통적 방식으로 수호된 전통을 중요시 한다. 근본주의는 신념 그 자체의 내용보다는 신념이 옹호되고 정당화되는 방식과 더 많은 관련이 있다. 이러한 근본주의의 요구에 대한 종교적 근본주의란 어떤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가 있다.
종교적 근본주의란 세계적인 근대화, 세속화의 압력에 대한 방어기제로서 순수하게 종교적 기반에 의해 건설된 공동체로의 복귀를 시도하는 노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화 과정에서 야기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균열 그리고 문화적 획일화에 대한 가장 흔한 대응방식은 종교적 근본주의로의 회귀이다. 종교적 근본주의는 개인이 경험하는 엄청난 변화와 불안정에 대해 종교적 확신과 안정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특히 경쟁에서 도태된 패자들일수록 현재의 사회질서 및 규범은 악에 의해 강제된 것이므로 지킬 이유가 없다고 설파하는 종교적 근본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註 00 ; 기제(機制) - 기본의미는 일정한 조직이나 기관의 구성 체계이지만, 防禦機制와 같이 활용될 때에는,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의 작용이나 원리로서 어떤 현상이나 구조 따위를 생성하는 계기. 혹은 동기로 작용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각종 어학사전과 관련 자료에서 재정리.
종교적 근본주의에 빠진 패자들은 적을 소멸하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투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고 이로 인해 맞는 죽음을 거룩한 순교로 이해한다. 이런 의미에서 빈 라덴의 “신의 전사”들은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줄 아는 살아있는 폭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965년 이후 종교적 근본주의 운동과 테러집단의 수 역시 괄목하게 증가했으며 현재 활동하고 있는 테러집단들의 약 40%가 종교차원에서 정당화되고 있다. 특히 1965년부터 최근까지 종교적 테러집단의 수는 5배 이상 증가했다. /종교사전과 어학사전과 관련 자료들에서 부분 발췌하여 재정리.
註 00 ; 근대주의(modernism/모더니즘) - 기존의 리얼리즘과 합리적인 기성도덕, 전통적인 신념 등을 일체 부정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 도시 문명이 가져다 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문제의식 등에 기반을 둔 다양한 문예사조로. 19세기 말엽부터 유럽 소시민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발생하기 시작하여 20세기에 들어와 크게 유행한 문예사조로 ‘근대주의’ 또는 ‘현대주의’라고도 한다. 기존의 사회질서·종교· 도덕의 전통을 밑받침하고 있던 확실성에 대해 회의를 품은 니체(Nietzsche, F.W.)의 허무주의, 마르크스(Marx, K.)의 유물사관과 혁명이론, 프로이트(Freud, S.)의 정신분석학 등의 선구적 사상들이 이미 그 토대를 마련해놓았으며, 세계를 정신적·물질적으로 황폐화시킨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크게 성행하였다.
모더니즘은 다양한 양상으로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전개되었다. 표현주의(expressionism)·미래파(futurism)·이미지즘(imagism)·다다이즘(dadaism)·초현실주의(surrealism)·주지주의(intellectualism)·신즉물주의(Neue Sachlichkeit) 등이 있다. 한편 미술에서는 입체파(cubism)·야수파(fauvism)·추상적 표현주의 등으로, 음악에서는 기존의 관계를 파괴한 스트라빈스키(Stravinsky, I.)의 실험적인 음악 등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다양성 때문에 노만주의나 사실주의와 대등한 중요한 문예사조이면서도 그 개념의 정립이 막연할 수밖에 없다. 모더니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것은 신모더니즘(neo-modernism) 혹은 후기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 불린다.
나치의 전체주의와 대량 학살, 원자폭탄의 위험, 자연환경의 황폐, 인구의 폭발적 증가 등의 전후(戰後) 상황 속에서, 후기모더니즘은 전기모더니즘으로부터 이탈하여 그 극복을 지향하는 양상과, 존재의 ‘무의미성’과 허무의 세계로 더욱 심화되는 두 가지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재정리.
참고문헌
『문예사조』(문덕수, 개문사, 1979)
『모던이즘』(Faulkner, P., 황동규 역, 서울대학교출판부, 1980)
『한국모더니즘시연구』(문덕수, 시문학사, 1981)
『문예사조』(박철희 편, 이우출판사, 1985)
『모더니즘시연구』(원명수, 계명대학교출판부, 1987)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종교 간의 갈등문제의 중심이 된 원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의 종교만이 최고의 종교이고, 기타 다수의 다른 종교들은 종교성이 없는 민족 신앙이거나 유사종교라고 비하하여 보고 대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문제점으로 다른 종교들과 갈등을 불러오고 심하면 다른 종교들과 충돌을 초래하기 때문에 갈등의 문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종교 근본주의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들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들은 이슬람 경전인 『코란』 속에 기술된 전쟁 등을 잘못 해석하여 이슬람의 종교적 근본주의를 사수하기 위하여 극단적인 폭력으로 합리화를 한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 개신교가 근본주의에 물든 이유를 기독교만이 최고의 종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천도교가 1920년대 중반부터 아직까지도 사그라지지 않은 신,구파의 갈등의 원인이, 구파의 천도교적 근본주의의 강력한 주장과 신앙이 불러온 재앙이라 할 수 있다면, 300여만 명의 대 교단이, 오늘의 천도교의 모습으로 변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의 가장 중대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천도교인들 중에서는 천도교가 고급종교이고 민족종교로서 유일한 정통의 종교라고 믿고 주장하는 교인들이 다수 있다. 이는 천도교신앙에 대한 자긍심을 갖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타 종교인들과의 교류에서 지나친 주장은 일방적인 아전인수격의 편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김환영은 ‘모든 종교의 공통현상 근본주의’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근본주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적 근본주의도 좋은 뜻일까? 근본주의란 무엇일까?
종교적 근본주의는 세계적 현상이다. 소위 아브라함의 종교라 불리는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불교· 유교 등 모든 종교에서 근본주의가 생겨났다. 왜일까? 종교가 없는 곳은 없다. 종교가 있는 곳에 근본주의가 있다. 근본주의의 반대말은 근대주의(modernism)다. 왼손·오른손이 있듯이 사람의 입장은 크게 둘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근본주의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기반으로 한다. 정치에 여당·야당, 진보·보수, 좌파·우파가 있듯이 종교에는 근본주의와 근대주의가 있다.
종교와 정치는 만난다. 근본주의는 크게 보면 정치적 현상으로 이해된다. 근본주의는 정치화(politicization)된 종교다.(근대주의 또한 미묘한 형태로 정치화돼 있다) 근대주의는 근본주의를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의 아성처럼 여긴다. 예컨대 근본주의자들은 ‘무식해서’ 진화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근본주의자들도 진화론을 이해한다. 그들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성경적’ 시각에 찬성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 또한 비합리적인 게 나이라 이성적·논리적이다. 또한 근본주의가 근대성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선별적으로 수용한다. 그들의 신앙에 어긋나는 현대문화의 일부 측면에 반대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 또한 목적을 위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정보기술(IT)을 활용한다.
근대주의 입장에서 보면, 성경을 글자 그대로 단어의 기본적·일반적 뜻에 따라 읽어야 한다는 ‘문자주의(文字主義, literalism)’는 전통을 파괴했다.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은 문자주의를 표방하며 믿음에도 지켜야 할 근본(fundamentals)이 있다고 주장했다. 가장 중요한 신앙적 근거는 성경에는 잘못이 없다는 ‘성경의 무오성(無誤性·inerrancy)’이었다. /김환영의 종교 이야기(11)./월간중앙에 연재. 201703호 (2017.02.17). ‘모든 종교의 공통현상 근본주의’에서 발췌 정리.
註 00 ; 성경의 무오성(無誤性·inerrancy/無誤謬性 infallibility) -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이란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과 성경에 계시된 교리들과 생활 원리들이 참되고 확실한 진리들이요 어떤 오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성경의 원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본들이나 번역본들에 약간의 부정확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된다. 그러나 사본들과 번역본들의 차이점들이란 내용상 심각한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며 그것들의 비교 연구를 통해 성경 원본의 본문은 거의 확정된다. 특히 신약성경의 경우, 원본의 본문은 변질되거나 변개됨 없이 전통적 다수 사본들을 통해 잘 보존되고 전달되어 왔다고 본다.
그런데 20세기에 교회를 크게 부패시키고 혼란시키기 시작한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을 믿을 만하지 못한 오류투성이의 책으로 간주하며 성경의 기본적 교리들을 부정하였다. 성경에 오류처럼 보이는 부분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가능한 설명들을 가지는 한, 오류는 아니다. 오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백히 확증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성경에 그러한 오류들은 없다. 역사상 성경의 많은 난제(難題)들은 고고학의 발달로 해명되었다. 아직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믿음과 기도로 겸손히 그 뜻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을 믿는 까닭은 첫째로 성경의 신적 권위 때문이며, 둘째로 성경의 축자(逐字, 단어) 영감 때문이며, 셋째로 성경의 독특한 목적 때문이다
■ 가톨릭과 교황의 무류성(無謬性) - 하느님의 말씀은 절대적 진리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무류성(無謬性=無誤謬性)이 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신적 계시를 수호하기 위하여 지상에서의 대리자로서 교황에게, 성령을 통해 무류성(無謬性)을 지니게 한다. 교황이 그릇된 교리를 가르칠 수 있다면 이미 교회의 반석이 될 수 없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언약에 반하여 지옥의 문(죽음의 문)이 기세를 떨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성서나 교회의 역사에 의해서도 증명이 되고 있다. 교황이 지니는 무류성(無謬性)의 범위는 비록 하느님처럼 무제한적이지는 않지만, 계시와 직접 관련이 있는 교의나 사실들을 판단하는 것은 교황이 지닌 무류성(無謬性)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 교황무류성 敎皇無謬性/papal infallibility) - 로마 가톨릭 신학에서 교황은 최고의 교사로서 그리고 특정 조건하에서 신앙이나 윤리에 관한 문제를 가르칠 때 잘못을 범할 수 없다는 교리로, 교회무류성에 대한 더 포괄적인 이해의 한 요소인 이 교리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를 가르치도록 위탁받았으며, 그것이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된 것이기에 성령의 도움으로 그 가르침에 충실할 것이라는 믿음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처럼 교황무류성은 무부패성이나 교회에게 약속된 은총이 종말까지 이어진다는 교리와 비록 구분은 되지만 연관을 갖고 있다.무류성이라는 용어는 초대 교회와 중세 교회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이 교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교회사에서 교황들이 이단설을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여러 경우들을 지적한다. 그 대표적인 예는 교황 호노리우스 1세(625~638 재위)로서, 그는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80~681, 제6차 에큐메니컬 공의회)에서 단죄를 받았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70)가 상당한 논쟁을 겪은 뒤에 내놓은 규정은 교황을 가리켜 오류가 없다고, 혹은 권위를 지닌다고(ex cathedra:최고 교사로서의 '권좌로부터') 말할 수 있는 조건들을 진술했다. 그 전제조건은 교황이 특정한 신앙이나 윤리의 면에서 전체 교회로부터 철회할 수 없는 동의를 요구할 의도를 갖는다는 데 있다.
교황무류성 교리는 적용할 만한 경우가 거의 없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에서 주교들의 권위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말에 벌어지고 있는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에 큰 장애물로 남아 있었으며,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였다. /다음백과
공자의 수제자인 증자는 선비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필자의 실험족인 풀이 – 증자가 말하기를 사(士/君子)의 뜻은 가히 넓고 굳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맡은 일은 무겁고, 도성덕립의 길(道達; 도의 이치에 막힘이 없이 두루 통함(達通)/道成德立))은 멀기 때문이다. 군자는 仁으로써 자기의 책임을 삼으니 또한 막중하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라야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니 또한 도성입덕이 멀지 아니하랴?/" 이 말은 선비의 뜻은 넓고 굳세며 책임은 무겁고 도를 완성하기에는 멀어서 어렵다./군자의 도성덕립이 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論語』泰伯第八.
『論語』의 學而篇에서 孔子는 ‘君子務本 本立而道生’이라고 했는데 이 말의 뜻은 ‘군자는 근본을 세우는데 힘쓴다. 사물의 근본이 서면 길은(도는) 저절로 열린다는 것으로 기본이 바로 서야 나아갈 길(人道/도덕적 삶의 실현)이 저절로 열린다는 安貧樂道라는 理想의 추구를 위한 爲己之學의 한 단면인 것이다.
동양사상의 원천이라 하는 중국의 고대사상에 있어서 공맹지도가 추구했던 것이 安貧樂道라는 理想을 위한 爲己之學이라 한다면, 수운이 추구했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의 출발에서 살펴본다면 다시 개벽이라는 후천개벽이라 할 수 있다.
수운사상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동학론인 論學文에서, 영세불망 만사지에 대한 설명인 ‘不忘者 存想之意也 萬事者 數之多也 知者 知其道而受其知也 故 明明其德 念念不忘則 至化至氣 至於至聖 ⑬’과 도덕가에서 ‘大學에 이른 道는 明明其德하여 내어 止於至善 아닐런가’가와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모두가 先天之敎요 先天之道가 분명한 것으로 후천 개벽의 시대에 先天之敎가 왜 필요한가? 를 물어야 하고, 지금 4차 산업혁명시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고 이끌어 갈 천도교의 사상이 무엇인지 그 답을 빨리 찾아야 할 것이다.
교훈가에서 ‘儒道佛道 累千年에 運이 亦是 다했던가’ 라고 하여 수운은 시대의 변화를 직시하고 계셨다. 또 교훈가에서 ‘열세자 至極하면 萬卷詩書 무엇하며 心學이라 하였으니 不忘其意 하였어라 賢人君子될것이니 道成立德 못미칠까’ 와 몽중노소문답가 에서의 ‘아셔시라 아셔시라 八道구경 다 던지고 故鄕에나 돌아가서 百家詩書 외워보세’의 대립된 법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또 몽중노소문답가에서 ‘八歲에 入學해서 許多한 萬卷詩書 無不通知하여 내니 生而知之 彷彿하다’ 라는 법설은, 열세자 至極하면 萬卷詩書가 필요 없다는 말인가? 萬卷詩書나 百家詩書를 더 숙독하여 공부해야 된다는 말씀인가? 헤아리기가 어렵다. 座箴에서의 ‘吾道博而約 不用多言義 別無他道理 誠敬信三字’는 주문 ‘열세자로 명명기덕을 염염불망’하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이러한 의문의 답이, 다시 개벽이 시작되는 새로운 시대에 우리가 이시대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천도교의 사상을 세상에 공포(公布)하고 실천에 매진해야 할 견고한 동력이 될 것이다. 이것이 신,성사님께서 바라던 세상 즉 지상천국이 아니겠는가?
註 00 ; 여기에서 百家詩書는 諸子百家들의 詩文을 의미하고, 萬卷詩書란 수운이전에 만들어져 중국과 조선에서 필독서로 널리 알려져 많이 읽혀진 수많은 책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책들을 의미하는 말들로는 남자(大丈夫)라면 다섯 대의 수레에 실을 만큼의 수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의 ‘南兒須讀 五車書’가 있다. 이 말은 杜甫의 「题 柏学士茅屋」의 마지막 詩句인 ‘富贵必從勤苦得, 男兒须读五車書’에서 알려졌으나 원래는 莊子가 그의 친구인 惠施의 책이 많음을 표현한 말에서 왔다
『莊子』 제33편 天下編 - 제7장 惠施 16.에서 惠施多方,其書五車,其道舛駁(淺薄과 동일함)/ 혜시는 다방면에 밝은 사람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장서는 다섯 대의 수레에 실을 만큼의 양이었다. 그러나 그의 학문과 생각 그리고 언행에 있어 깊이도 없고 품행이 바르지 않았다.(경망스러웠다/輕擧妄動). 또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뻘뻘 흘릴 정도의 책을 서고에 쌓으면 대들보까지 닿을 만큼 책이 많다는 뜻의 汗牛充棟이 있다.
註 00 ; 諸子百家 - 제자백가란, 문자 그대로 여러 스승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학파라는 의미로서, 이 어휘는 정작 춘추전국시대에는 없었고 『사기(史記)』 「가의열전(賈誼列傳)」에 “제자백가의 학문에 매우 통달했다.”라는 구절이 최초의 용례이다. 현재로서 가장 오래된 도서목록인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에는 ‘제자략(諸子略)’이라는 항목이 있고, 거기에는 189가, 4,324편의 문헌이 저록되어 있다. 이처럼 다양한 학파와 사상이 등장하여 이른바 백가쟁명(百家爭鳴)할 수 있었던 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당시의 중국이 정치적 구심점이 결여된 분열의 시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제자백가(Hundred Schools of Thought) 또는 현상적 표현인 백가쟁명(百家爭鳴/Contention of a Hundred Schools of Thought)은 중국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의 여러 사상가들과 그 학파들을 말한다. 주나라(周)가 동으로 천도한 후의 동주(東周: 기원전 771~256) 시대에서는 종주권이 쇠약해짐에 따라 제후들이 세력을 추구함에 있어 거리낌이 없어져서 약육강식이 잇달아 일어나자 중국 천하는 소란하게 되었다. 이 시기를 춘추전국시대라고 한다.
춘추전국시대는 선진시대(先秦時代)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기원전 221년의 진나라에 의한 중국 통일 이전의 시기를 뜻한다. 이 시대는 중국사상의 개화결실의 시기였다. 이 시대의 사상가들을 제자(諸子)라 하며 그 학파들을 백가(百家)라 부른다. 춘추전국시대는 사회 · 경제 · 정치상의 일대 변혁기였다. 이는 씨족제적인 사회의 해체기이며, 주나라의 봉건 제도와 그에 따르는 질서가 붕괴되는 시기이며, 또한, 경제적 · 군사적 실력주의의 대두기였다. 구체적으로는 주 왕조의 권위의 실추에 따르는 제후의 독립과 대립 항쟁의 시대였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중국의 사상계는 최초로 활발해졌다./백과사전과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
註 00 ; 독서의 방법에는 독서를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자세 그리고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는 이런 방법들이 있다 한다.
■색독(色讀) : 글을 읽을 때 문장 전체의 의미를 파악하지 아니하고 글자가 표현하는 뜻만을 이해하며 읽음.
■ 체독(體讀) : 글을 읽을 때 글자에 표현되어 있는 것 이상으로 그 참뜻을 체득하여 읽음
■ 숙독(熟讀) : 글을 익숙하게 잘 읽음. 글의 뜻을 잘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하나하나 읽음
■ 안광지배철(眼光紙背撤/眼光撤紙背) - 눈빛이 종이의 뒤까지 꿰뚫어본다는 뜻으로, 독서(讀書)의 이해력(理解力)이 날카롭고 깊음을 이르는 말인 ‘행간(行間)을 읽다.’의 행간에 담긴 필자의 의도를 살펴 파악하면서 읽는다. 는 의미와 유사하다.
2012년에 청림출판사에서 출간한 한국의 석학들이 ‘내일의 한국사회를 진단한다.’ 는 전제하에 최재천외 다수의 각 분야의 전문 학자들이 집필하여 발간한 『10년후세상』의 CHAPTER 3 문화와 교육 중에 TREND 11. 비종교인의 증가와 기독교에서의 ‘차이나 파워’란 글 중에서 다음과 같이 종교의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이 내용의 상당부분은 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종교의 몰락에서 이미 밝혀진 내용들이다.
-전략- ‘16-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이후 국가와 종교의 미래에 대해 ‘과격한‘ 전망을 내놓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계몽주의자들과 그 후예들 중에서는 국가나 종교는 ‘딱 하나만 남는다.’, ‘완전히 사라진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나왔다. -중략-영국의 작가이자 문명비평가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는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나치스 독일의 패망, 유럽연합, 프리섹스 등의 사건들을 족집게처럼 맞혔다. 웰스는 독재적인 ‘세계정부’가 출범해 모든 종교를 말살한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1960-1970년대까지도 많은 학자, 사상가들이 종교의 소멸을 자신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세계 4대종교인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불교를 비롯한 모든 주요 종교가 교세를 확장하고 있다. 일부 학자는 종교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종교적 본능은 인간 뇌에 뿌리내린 실체라는 것이다. /PP.155-156.
-중략- 원리주의 기독교나 자유주의 기독교나 모두 한계에 도달했다고 진단하는 학자들은 앞으로 엣스터시Ecstasy, 성령체험, 명상 등 일상과 다른 체험을 줄 수 있는 기독교회나 다른 종교가 인기를 끌 것이 라고 전망한다.
종교와 비종교, 반종교 사이에서 제3의 길은 영성spirituality이다.
유럽, 미국에서는 ‘영성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는spiritual but not religious’ 사람들이 더욱 증가할 것이다. 영성주의자들은 제도적인 종교에는 속하지 않지만 종교서적 읽기, 명상, 봉사, 환경보호 활동 등을 통해 종교적, 영성적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한국에서는 종교학자들과 종교종사자들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냉담자(冷淡者), 냉담교우 또는 쉬는 교우라고 지칭하면서 그들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오암)
-중략- 앞으로 10년 동안 종교들이 대립하는 양상이 유지되겠지만 종교와 비종교, 반종교의 대립구도도 점차 선명해질 것이다. 유전자 조작 등의 문제에 대해 종교들이 공동 대처할 필요성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P.162. 이 글에 대한 특별기고문이라 할 수 있는 ‘빠르게 증가하는 SBNR’/영성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는 사람들을 /PP.162-164. 필독하시기를 권장합니다.-오암.
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으므로, 제 4차 산업혁명으로부터 촉발된 종교소멸에 대한 각 종교들이 각자 그들만의 종교적 교의에 따라 그 시대에 당면한 문제해결에 대한 최선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천도교는 주체성과 정체성에 대한 정립이 되어 있지 않은 현실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답답한 심정뿐이다.
이 주제에 대한 최후 결론이며 예측이라 할 수 있는 ‘빠르게 증가하는 SBNR’/영성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는 사람들. -오암. /PP.162-164. 필독하시기를 권장합니다.-오암.
註 00 ;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1946)는 <타임머신>(1895), <투명인간>(1897), <우주전쟁>(1898) 같은 공상과학소설과 대중을 위한 역사서 <세계문화사 대계>(1920, 개정판 1931)로 이름을 떨쳤다.
조그만 시골학교의 교생으로 자신의 지적 능력을 발휘하여 런던의 과학사범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학위를 따지는 못했지만, 3년간의 학창시절은 그의 작가적 상상력에 낭만적인 과학개념을 새겨놓았으며, 훗날 소설을 쓰는데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1895년 <타임머신> 발표와 함께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사이에 〈우주전쟁〉을 비롯한 공상과학소설을 잇달아 발표했다. 문명비평에 대한 관심으로 페이비언 협회에 가입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세계질서의 불안정함을 일깨우는 활동을 시작했고, 1930년대 내내 문명이 파괴될 수 있을법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 격동의 현장에 있었다. /다움백과에서
註 00 ; 냉담자(冷淡者/Lapsed Catholic), - 냉담교우 또는 쉬는 교우는 실천적이지 않는(교회에 나가지 않는)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을 가리키는 기독교 용어이다. 냉담자라고 하여 반드시 신앙심이 부족하다는 것과 연관되지는 않는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판공성사 즉, 1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고해성사를 3년(6회) 이상 보지 않은 신자를 쉬는 교우 또는 냉담자라고 한다. 성공회에서는 감사성찬례, 즉 미사 참석률이 1년에 50% 미만인 신자를 냉담자라고 한다. 즉, 냉담자는 교회의 성사나 예배에 무관심한 신자를 가리키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개신교에서도 교회를 다니다가 더이상 나가지 않거나 쉬는 신자들이 있다. 개신교는 단일 교단이 아니므로 통일된 교적이 없으나 개별 교단 또는 교회 차원에서 '잃은양' 등의 이름을 붙여 관리하기도 한다.
종교적 의미를 넘어 더 보편적으로는 어떤 대상에 흥미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위키백과에서 발췌,
교훈가에서 ‘열세자 至極하면 萬卷詩書 무엇하며 心學이라 하였으니 不忘其意 하였어라 賢人君子될것이니 道成立德 못미칠까’ 라는 수운의 심법에서 무엇을 취하여 지금의 修道修鍊으로 修行을 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하고, 呪文의 중요성은 더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매년 수없는 특별기도 행사에서 집행부나 교인들이 하는 呪文이라는 형식의 틀 속에서 修道修鍊(黙誦이든 顯誦이든, 特別祈禱 포함)을 통하여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 구체적으로
直觀으로 얻어진 具體的 知識은 어떤 것이 있는가? 를 심사숙고해봐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고 볼 수 있다. 거의 연례적이고 맹목적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교단행사를 통하여 교단은 얼마나 성장했으며, 교인들의 수는 얼마나 늘었으며, 교인들의 신앙은 얼마나 향상되었는가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특별기도에 내 건 목적이 너무나 형식적이며 현실과 미래에 대한 기대와 예측이 황당한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확실한 것은, 1960-70년대의 교단이 보여주었던 저력을 가진 그런 교단이 아니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수많은 특별기도와 설교를 통하여 남겨진 것은, 끝을 모르게 흘러가는 퇴행과 쇄락이 있을 뿐이었다. 매번 전국대회에서 당선된 교령이나 교령을 보좌했던 집행부가 보여준 화려하고 찬란했던 청사진은 간 곳이 없고 그들은 항상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기처럼 사라져왔다.
註 00 ; 直觀 - 철학적 의미로는 對象이나 現象을 보고 卽刻的으로 느끼는 깨달음. /哲學的 直觀. 敎育의 側面에서는, 感官의 作用으로 직접 外界의 事物에 관한 具體的 知識을 얻음.
수운뿐만 아니라 모든 신,성사님과 그 분들을 모시고 수행했던 집행부의 원로들은 知行一致을 통하여, 진정 안다는 것은 그 앎을 바탕으로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을 몸소들 체행을 하시어 많은 분들이 순교를 하셨고, 남은 분들은 온갖 고초를 담담하게 겪으시면서 몸과 마음을 다 받쳐, 우리 교단을 지키어서 대 교단으로 키우셨다고 우리는 교사와 수많은 기록들을 통하여 보고 배워왔다. 그런데 해방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교단을 대표해온 지도자와 집행부의 원로들은 무엇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겨주었을까를 근현대 70여년을 되돌아보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급변해온 역사와 너무나 오래 단절되어 있었다고 느껴진다.
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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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이후 일어난 많은 민중운동은 정감록신앙과 남조선신앙의 합작물이었다. 당시의 민중들에게 두 개의 신앙은 양반의 성리학적 사고체계에 대하여 계급차별을 부정하는 민중지향적이며, 왕조의 교체를 예언하는 반왕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1737년(영조 13) 지리산 하동(河東) 일원에 신왕조의 도읍이 예정되었다고 하는 남변(南變)은 곽재우(郭再祐)· 서경덕(徐敬德) 등의 주기론적 영향 아래, 비기(秘記)를 신봉하는 유랑지식인들의 변란으로서 직접적으로는 참설이나 감결과 관련이 있지만, 그 저변에는 남조선신앙의 미래국토 대망사상이 본류를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1748년의 이른바 '이재궁궁'(利在弓弓)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일어난 민중반란도 남조선신앙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영·정조 때에는 19세기와 같은 대규모의 농민반란이 일어나지는 않았으나 정감록신앙과 감결이 크게 유행하여 소규모의 사회적 반역의 무리들이 예외없이 진인출현설이나 감결을 가탁(假託)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부터 남조선신앙은 비록 완성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민중운동의 저변을 흐르는 미래국토의 대망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모습으로 채색되어갔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것을 신앙의 논리로 정연하게 체계화시킨 것이 바로 최제우(崔濟愚)의 동학운동에 나타난 후천개벽으로 인해 형성되는 지상천국의 이상사회였다. 이때부터 남조선신앙과 같은 미래국토의 대망이 단순히 즉흥적인 가구(假構/허구와 유사한 의미-오암)가 아니라 보다 현실적 정황에 접근하는 형태의 후천개벽 사상으로 전개되었다. 물론 동학운동은 순수한 종교운동으로서의 한계에 안주하려는 북접(北接)과, 이것을 사회개조의 이데올로기로서 생각하는 남접(南接)과의 노선투쟁에서 남접측이 갑오농민전쟁을 주도하게 됨으로써 종교적 신앙 내지 신비적인 성격이 많이 퇴색한 대신 현실개혁의 의지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따라서 남조선신앙이 내포하는 소박한 원초적인 원망이라는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동기는 민중을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하게 하는 데 기여했을 뿐 당시 사회개혁의 청사진으로서는 별로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갑오농민전쟁이 실패로 끝난 직후부터 20세기 초에 대두하는 민중종교운동에는 이 남조선신앙의 원형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고 설명하고 있다./다움백과 요약정리.
註 00 ; 원형이정(元亨利貞) - 주역(周易) 〈건괘(乾卦)〉에 나오는 사덕(四德)을 말한다.
출전 「건(乾)은 원형이정이다.(乾, 元亨利貞.)」주역 건괘 /이에 대해 《주역 〈문언전(文言傳)〉》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원은 모든 선의 수장(首長)이고 형은 아름다움이 모인 것이며, 이는 의로움의 조화이고 정은 사물의 근간이다. 군자는 인을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고,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어 예와 합치할 수 있으며, 사물을 이롭게 하여 의로움과 화합할 수 있고, 곧음을 굳게 하여 사물의 근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군자는 이 사덕을 실행한다. 그러므로 건은 원형이정이라고 하는 것이다.(元者, 善之長也. 亨者, 嘉之會也. 利者, 義之和也. 貞者, 事之幹也. 君子體仁足以長人, 嘉會足以合禮, 利物足以和義. 貞固足以幹事. 君子行此四德者, 故曰, 乾, 元亨利貞.)」
‘원’은 만물이 시작되는 때로 봄에 속하며, 인(仁)으로 이루어진다. ‘형’은 만물이 성장하는 때로 여름에 속하며, 예(禮)로 실천된다. ‘이’는 만물이 이루어지는 때로 가을에 속하며, 의(義)로 행해진다. ‘정’은 만물이 완성되는 때로 겨울에 속하며, 지(智)로 이루어진다./ 고사성어대사전
註 00 ; 건(乾) - 3효로 이루어진 8괘에서의 괘상은 ☰이고, 6효로 이루어진 64괘에서의 괘상은 이미지이다. 곤괘(坤卦)가 땅, 즉 여성을 상징하며 유순함을 그 특징으로 하는 데 비해, 건괘는 하늘, 즉 남성을 상징하며 강건함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3효로 이루어진 8괘[小成卦]에서의 괘상은 ☰이고, 6효로 이루어진 64괘[大成卦]에서의 괘상은 이미지이다. 소성괘 건(乾)은 양효 3획으로 이루어진 건3련(乾三連)으로, 순수하게 양(陽)으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하늘[天]을 상징하며 그 성질은 강건하다. 대성괘 건은 소성괘의 건괘가 중첩되어 있는 8순괘(八純卦)의 하나로 괘 이름도 소성괘와 같고 매우 강건한 덕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곤괘가 만물을 포용하고 길러주는 생육자로서의 땅, 즉 '지도'를 의미하는 데 비해 건괘는 끊임없이 만물을 창조하는 생명력의 근원으로서의 '천도'를 의미한다. 곤괘가 만물을 포용하고 길러주는 생육자(生育者)로서의 땅, 즉 '지도'(地道)를 의미하는 데 비해서, 건괘는 끊임없이 만물을 창조하는 생명력의 근원으로서의 '천도'(天道)를 의미한다(〈周易〉 乾卦:大哉 乾元 萬物資始 乃統天). 나아가 건괘는 자연의 운행법칙인 원형이정(元亨利貞)을 제시함으로써 천도의 전개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 변화로 대표될 수 있는 만물의 생장수성(生長遂成)을 의미한다. 건괘는 자연의 운행법칙인 원형이정을 제시함으로써 천도의 전개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 변화로 대표될 수 있는 만물의 생장수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강건한 기세를 보이는 성운의 괘이지만 효사에서는 이 성운을 다루는 데 신중을 기하고 있다.
이러한 건괘가 갖는 의미는 인간의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즉 군자는 강건한 천도의 운행을 본받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周易〉 乾卦:天行健 君子以自彊不息), 천도의 전개과정이자 우주의 질서인 원형이정을 본받아 4가지 덕[仁義禮智]을 길러 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周易〉 乾卦:君子行此四德者 故乾元亨利貞). 한편 건괘는 이처럼 강건한 기세를 보이는 성운(盛運)의 괘이지만 효사(爻辭)에서는 이 성운을 다루는 데 신중을 기하고 있다. 즉 맨 위의 양효는 더 오를 수 없는 절정에까지 이르러 함부로 치닫는 항룡(亢龍)의 상이 되어 재앙을 예고하고 있는데(〈周易〉 乾卦:亢龍有悔 窮之災也), 이는 때를 만나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가운데서도 분수에 넘는 지나친 행동이나 호운(好運)에 심취하여 교만함이 없도록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건괘가 갖는 의미는 천도와 인도(人道)의 결합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의 문제에 다가서는 것이며, 천지자연의 섭리에 입각해서 인간의 문제를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역〉은 단순한 점서 이상의 의미를 갖는 철학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다움백과에서 요약정리.
공자는 태어날 때부터 천도의 이치를 알았다는 성인이지만, 인간의 본성을 중요시 하지 않고 학습을 매우 중요시 했다. 그 증거로는 공자의 君子三樂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또 亞聖이라 할 수 있는 맹자도 人生三樂에서 학습의 근본인 교육을 인생삼락의 하나로 삼고 있다.
孔子의 君子三樂.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배우고 때에 맞추어(timely) 학습을 하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 하는 친한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達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論語』 學而第一 1. 凡十六章/『論語 中庸』 三省出版社.1983.
孟子의 人生三樂
군자에게는 삶의 행복이 세 가지가 있다. 그러나 천하의 왕 노릇하는 즐거움은 이 세 가지 행복 중에 끼지 못한다. 첫 번째는, 부모가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들이 아무런 탈 없이 건강한 것이 처음의 행복이고. 두 번째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고, 땅을 내려다보아도 남에게 창피하지 않게 사는 인생이 두 번째 행복이며. 세 번째는, 천하의 똑똑한 영재들을 모아서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인생의 행복이다. 즉 人生三樂이란 하늘에 대해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들과는 우애있게 잘 어울리며, 빼어난 영재들을 찾아내어서 가르치는 것이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의 즐거움이 있는데, 天下의 왕 노릇을 하는 것은 군자삼락에는 들어있지 않다.”고 하셨다.
/孟子曰 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 /『孟子』 盡心章句 上 20./『孟子 大學』三省出版社.1986.
또 子思가 중용(中庸/공자의 손자 子思가 저술했다는 四書의 하나)에서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지상(天道之常)이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라. 이라 하였는데 그 의미는 원형이정은 하늘의 변함없는 도리로서 봄(元) 여름(亨) 가을(利) 겨울(貞) 4계절의 천체 운행(우주의 근본 원리)을 뜻하며, 인의예지(사람이 태어날 때 부터 마음에 지닌 4가지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德 또는 도덕, 이를 四端이라 함)는 인간 본연의 성품을 이루는 주된 근간의 도리라고 말했다. 즉 인성(人性)은 천성(天性)과 같아서 천성으로 타고난 인성을 자연의 순리대로 길러야 한다는 뜻이라 할 수 있다. 고 했다.
천도교의 신앙자들 중에는 상당수가 세 분의 스승님들이 모두 선천시대의 성인과 같은 훌륭한 분들이라 믿고 스승님들의 법설에 얽매여 법설에 담겨진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잘못 읽고 어리석은 수도수련과 말씀을 스승님들의 참다운 수행과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승님들의 법설을 색독(色讀)을 함으로써 자자구구의 직역에 얽매여서 一字一句에 담겨진 참뜻을 지나치고 있다. 또 행간(行間)에 숨겨진 스승님들의 참다운 마음의 숨소리를 못들을 뿐만 아니라 법설의 대의를 읽어내지 못하여 스승님들의 따뜻한 마음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스승님들 법설의 字字句句에 얽매여 근본을 지킨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은 매우 불행일로 개인이나 교단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색독을 하는 경우에 박이부정(博而不精/널리 알 되 정밀하지 못함)이란 통폐가 생기기 때문에 반드시 정독을 해야 한다.
註 00 ; 색독(色讀) : 글을 읽을 때 문장 전체의 의미를 파악하지 아니하고 글자가 표현하는 뜻만을 이해하며 읽음.
동학만을 추종하는 것은 근본주의에 해당되는 것이고, 천도교를 올바로 신앙하는 것은 다원화 사회의 근대주의(modernism)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종교적인 근본주의란 무엇인가? 를 학계의 정의에 따라 살펴보려 한다.
근본주의(fundamentals)의 근본의 어학사전적 의미는, 사물이나 생각 등이 생기는 본바탕 또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생기는 본바탕이 되다. 이다. 근본의 중국어 의미는, 根은 뿌리 근 자이고, 本은 근본 본 또는 근원 본, 밑 본 자이다. 따라서 글자의 뜻대로는 나무의 뿌리라는 뜻에서 사물이 발생하는 근원 또는 모든 것의 기초라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므로 만물만사를 이해하려면 사물이 발생하는 근원 또는 모든 것의 기초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올바른 것이지만 종교에 있어서 근본주의의 근본은 사물이 발생하는 근원 또는 모든 것의 기초에 고착되어서 매우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되어서 교단 발전의 저해요소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적 근본주의(fundamentalism)의 근본주의라는 용어는 일련의 원칙이나 신념을 엄격하게 고수하는 것을 표현하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종교적 근본주의는 기본 경전이나 교본을 원본대로 직역하여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 집단이 취하는 태도로서, 경전의 액면 그대로의 해석과 그러한 해석에서 비롯되는 교의들의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삶의 모든 측면에 곧이곧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종교적 근본주의의 위력은 그 시대의 종교들의 종교적 세속화(secularization)가 근대 사회를 지배해 온 과정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지표이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오직 하나만의 세계관이 가능하고 자신들의 세계관이 바로 올바른 그것이라고 믿는다. 애매모호하거나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없다. 종교적 근본주의 운동 내부에서는 경전의 정확한 의미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일련의 특권적 ‘해석가들’-승려, 목사 및 기타 종교 지도자들-에 국한되어 있다. 이로 인해 이들 지도자들은 종교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문제에서도 상당한 권위를 부여받는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반정부 진영에서, 주류 정당 내부에서(미국의 경우를 포함하여), 그리고 국가의 지도자로서(이란의 경우처럼)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종교적 근본주의는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이런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은 불과 20~30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은 대체로 세계화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근대화의 힘이 점차 사회의 전통적 요소(핵가족, 남성의 여성 지배 등과 같은 것들.)를 점차로 약화시켜 가는 와중에 근본주의는 전통적 신념을 수호하기 위해 등장했다. 합리적 사고를 요구하는 세계화 시대에 근본주의는 신념에 근거한 해답과 의례적 진리에 의존할 것을 고집한다. 다시 말해 근본주의는 전통적 방식으로 수호된 전통을 중요시 한다. 근본주의는 신념 그 자체의 내용보다는 신념이 옹호되고 정당화되는 방식과 더 많은 관련이 있다. 이러한 근본주의의 요구에 대한 종교적 근본주의란 어떤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가 있다.
종교적 근본주의란 세계적인 근대화, 세속화의 압력에 대한 방어기제로서 순수하게 종교적 기반에 의해 건설된 공동체로의 복귀를 시도하는 노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화 과정에서 야기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균열 그리고 문화적 획일화에 대한 가장 흔한 대응방식은 종교적 근본주의로의 회귀이다. 종교적 근본주의는 개인이 경험하는 엄청난 변화와 불안정에 대해 종교적 확신과 안정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특히 경쟁에서 도태된 패자들일수록 현재의 사회질서 및 규범은 악에 의해 강제된 것이므로 지킬 이유가 없다고 설파하는 종교적 근본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註 00 ; 기제(機制) - 기본의미는 일정한 조직이나 기관의 구성 체계이지만, 防禦機制와 같이 활용될 때에는,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의 작용이나 원리로서 어떤 현상이나 구조 따위를 생성하는 계기. 혹은 동기로 작용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각종 어학사전과 관련 자료에서 재정리.
종교적 근본주의에 빠진 패자들은 적을 소멸하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투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고 이로 인해 맞는 죽음을 거룩한 순교로 이해한다. 이런 의미에서 빈 라덴의 “신의 전사”들은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줄 아는 살아있는 폭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965년 이후 종교적 근본주의 운동과 테러집단의 수 역시 괄목하게 증가했으며 현재 활동하고 있는 테러집단들의 약 40%가 종교차원에서 정당화되고 있다. 특히 1965년부터 최근까지 종교적 테러집단의 수는 5배 이상 증가했다. /종교사전과 어학사전과 관련 자료들에서 부분 발췌하여 재정리.
註 00 ; 근대주의(modernism/모더니즘) - 기존의 리얼리즘과 합리적인 기성도덕, 전통적인 신념 등을 일체 부정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 도시 문명이 가져다 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문제의식 등에 기반을 둔 다양한 문예사조로. 19세기 말엽부터 유럽 소시민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발생하기 시작하여 20세기에 들어와 크게 유행한 문예사조로 ‘근대주의’ 또는 ‘현대주의’라고도 한다. 기존의 사회질서·종교· 도덕의 전통을 밑받침하고 있던 확실성에 대해 회의를 품은 니체(Nietzsche, F.W.)의 허무주의, 마르크스(Marx, K.)의 유물사관과 혁명이론, 프로이트(Freud, S.)의 정신분석학 등의 선구적 사상들이 이미 그 토대를 마련해놓았으며, 세계를 정신적·물질적으로 황폐화시킨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크게 성행하였다.
모더니즘은 다양한 양상으로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전개되었다. 표현주의(expressionism)·미래파(futurism)·이미지즘(imagism)·다다이즘(dadaism)·초현실주의(surrealism)·주지주의(intellectualism)·신즉물주의(Neue Sachlichkeit) 등이 있다. 한편 미술에서는 입체파(cubism)·야수파(fauvism)·추상적 표현주의 등으로, 음악에서는 기존의 관계를 파괴한 스트라빈스키(Stravinsky, I.)의 실험적인 음악 등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다양성 때문에 노만주의나 사실주의와 대등한 중요한 문예사조이면서도 그 개념의 정립이 막연할 수밖에 없다. 모더니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것은 신모더니즘(neo-modernism) 혹은 후기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 불린다.
나치의 전체주의와 대량 학살, 원자폭탄의 위험, 자연환경의 황폐, 인구의 폭발적 증가 등의 전후(戰後) 상황 속에서, 후기모더니즘은 전기모더니즘으로부터 이탈하여 그 극복을 지향하는 양상과, 존재의 ‘무의미성’과 허무의 세계로 더욱 심화되는 두 가지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재정리.
참고문헌
『문예사조』(문덕수, 개문사, 1979)
『모던이즘』(Faulkner, P., 황동규 역, 서울대학교출판부, 1980)
『한국모더니즘시연구』(문덕수, 시문학사, 1981)
『문예사조』(박철희 편, 이우출판사, 1985)
『모더니즘시연구』(원명수, 계명대학교출판부, 1987)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종교 간의 갈등문제의 중심이 된 원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의 종교만이 최고의 종교이고, 기타 다수의 다른 종교들은 종교성이 없는 민족 신앙이거나 유사종교라고 비하하여 보고 대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문제점으로 다른 종교들과 갈등을 불러오고 심하면 다른 종교들과 충돌을 초래하기 때문에 갈등의 문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종교 근본주의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들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들은 이슬람 경전인 『코란』 속에 기술된 전쟁 등을 잘못 해석하여 이슬람의 종교적 근본주의를 사수하기 위하여 극단적인 폭력으로 합리화를 한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 개신교가 근본주의에 물든 이유를 기독교만이 최고의 종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천도교가 1920년대 중반부터 아직까지도 사그라지지 않은 신,구파의 갈등의 원인이, 구파의 천도교적 근본주의의 강력한 주장과 신앙이 불러온 재앙이라 할 수 있다면, 300여만 명의 대 교단이, 오늘의 천도교의 모습으로 변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의 가장 중대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천도교인들 중에서는 천도교가 고급종교이고 민족종교로서 유일한 정통의 종교라고 믿고 주장하는 교인들이 다수 있다. 이는 천도교신앙에 대한 자긍심을 갖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타 종교인들과의 교류에서 지나친 주장은 일방적인 아전인수격의 편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김환영은 ‘모든 종교의 공통현상 근본주의’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근본주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적 근본주의도 좋은 뜻일까? 근본주의란 무엇일까?
종교적 근본주의는 세계적 현상이다. 소위 아브라함의 종교라 불리는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불교· 유교 등 모든 종교에서 근본주의가 생겨났다. 왜일까? 종교가 없는 곳은 없다. 종교가 있는 곳에 근본주의가 있다. 근본주의의 반대말은 근대주의(modernism)다. 왼손·오른손이 있듯이 사람의 입장은 크게 둘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근본주의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기반으로 한다. 정치에 여당·야당, 진보·보수, 좌파·우파가 있듯이 종교에는 근본주의와 근대주의가 있다.
종교와 정치는 만난다. 근본주의는 크게 보면 정치적 현상으로 이해된다. 근본주의는 정치화(politicization)된 종교다.(근대주의 또한 미묘한 형태로 정치화돼 있다) 근대주의는 근본주의를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의 아성처럼 여긴다. 예컨대 근본주의자들은 ‘무식해서’ 진화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근본주의자들도 진화론을 이해한다. 그들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성경적’ 시각에 찬성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 또한 비합리적인 게 나이라 이성적·논리적이다. 또한 근본주의가 근대성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선별적으로 수용한다. 그들의 신앙에 어긋나는 현대문화의 일부 측면에 반대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 또한 목적을 위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정보기술(IT)을 활용한다.
근대주의 입장에서 보면, 성경을 글자 그대로 단어의 기본적·일반적 뜻에 따라 읽어야 한다는 ‘문자주의(文字主義, literalism)’는 전통을 파괴했다.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은 문자주의를 표방하며 믿음에도 지켜야 할 근본(fundamentals)이 있다고 주장했다. 가장 중요한 신앙적 근거는 성경에는 잘못이 없다는 ‘성경의 무오성(無誤性·inerrancy)’이었다. /김환영의 종교 이야기(11)./월간중앙에 연재. 201703호 (2017.02.17). ‘모든 종교의 공통현상 근본주의’에서 발췌 정리.
註 00 ; 성경의 무오성(無誤性·inerrancy/無誤謬性 infallibility) -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이란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과 성경에 계시된 교리들과 생활 원리들이 참되고 확실한 진리들이요 어떤 오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성경의 원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본들이나 번역본들에 약간의 부정확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된다. 그러나 사본들과 번역본들의 차이점들이란 내용상 심각한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며 그것들의 비교 연구를 통해 성경 원본의 본문은 거의 확정된다. 특히 신약성경의 경우, 원본의 본문은 변질되거나 변개됨 없이 전통적 다수 사본들을 통해 잘 보존되고 전달되어 왔다고 본다.
그런데 20세기에 교회를 크게 부패시키고 혼란시키기 시작한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을 믿을 만하지 못한 오류투성이의 책으로 간주하며 성경의 기본적 교리들을 부정하였다. 성경에 오류처럼 보이는 부분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가능한 설명들을 가지는 한, 오류는 아니다. 오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백히 확증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성경에 그러한 오류들은 없다. 역사상 성경의 많은 난제(難題)들은 고고학의 발달로 해명되었다. 아직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믿음과 기도로 겸손히 그 뜻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을 믿는 까닭은 첫째로 성경의 신적 권위 때문이며, 둘째로 성경의 축자(逐字, 단어) 영감 때문이며, 셋째로 성경의 독특한 목적 때문이다
■ 가톨릭과 교황의 무류성(無謬性) - 하느님의 말씀은 절대적 진리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무류성(無謬性=無誤謬性)이 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신적 계시를 수호하기 위하여 지상에서의 대리자로서 교황에게, 성령을 통해 무류성(無謬性)을 지니게 한다. 교황이 그릇된 교리를 가르칠 수 있다면 이미 교회의 반석이 될 수 없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언약에 반하여 지옥의 문(죽음의 문)이 기세를 떨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성서나 교회의 역사에 의해서도 증명이 되고 있다. 교황이 지니는 무류성(無謬性)의 범위는 비록 하느님처럼 무제한적이지는 않지만, 계시와 직접 관련이 있는 교의나 사실들을 판단하는 것은 교황이 지닌 무류성(無謬性)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 교황무류성 敎皇無謬性/papal infallibility) - 로마 가톨릭 신학에서 교황은 최고의 교사로서 그리고 특정 조건하에서 신앙이나 윤리에 관한 문제를 가르칠 때 잘못을 범할 수 없다는 교리로, 교회무류성에 대한 더 포괄적인 이해의 한 요소인 이 교리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를 가르치도록 위탁받았으며, 그것이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된 것이기에 성령의 도움으로 그 가르침에 충실할 것이라는 믿음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처럼 교황무류성은 무부패성이나 교회에게 약속된 은총이 종말까지 이어진다는 교리와 비록 구분은 되지만 연관을 갖고 있다.무류성이라는 용어는 초대 교회와 중세 교회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이 교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교회사에서 교황들이 이단설을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여러 경우들을 지적한다. 그 대표적인 예는 교황 호노리우스 1세(625~638 재위)로서, 그는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80~681, 제6차 에큐메니컬 공의회)에서 단죄를 받았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70)가 상당한 논쟁을 겪은 뒤에 내놓은 규정은 교황을 가리켜 오류가 없다고, 혹은 권위를 지닌다고(ex cathedra:최고 교사로서의 '권좌로부터') 말할 수 있는 조건들을 진술했다. 그 전제조건은 교황이 특정한 신앙이나 윤리의 면에서 전체 교회로부터 철회할 수 없는 동의를 요구할 의도를 갖는다는 데 있다.
교황무류성 교리는 적용할 만한 경우가 거의 없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에서 주교들의 권위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말에 벌어지고 있는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에 큰 장애물로 남아 있었으며,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였다. /다음백과
공자의 수제자인 증자는 선비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필자의 실험족인 풀이 – 증자가 말하기를 사(士/君子)의 뜻은 가히 넓고 굳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맡은 일은 무겁고, 도성덕립의 길(道達; 도의 이치에 막힘이 없이 두루 통함(達通)/道成德立))은 멀기 때문이다. 군자는 仁으로써 자기의 책임을 삼으니 또한 막중하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라야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니 또한 도성입덕이 멀지 아니하랴?/" 이 말은 선비의 뜻은 넓고 굳세며 책임은 무겁고 도를 완성하기에는 멀어서 어렵다./군자의 도성덕립이 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論語』泰伯第八.
『論語』의 學而篇에서 孔子는 ‘君子務本 本立而道生’이라고 했는데 이 말의 뜻은 ‘군자는 근본을 세우는데 힘쓴다. 사물의 근본이 서면 길은(도는) 저절로 열린다는 것으로 기본이 바로 서야 나아갈 길(人道/도덕적 삶의 실현)이 저절로 열린다는 安貧樂道라는 理想의 추구를 위한 爲己之學의 한 단면인 것이다.
동양사상의 원천이라 하는 중국의 고대사상에 있어서 공맹지도가 추구했던 것이 安貧樂道라는 理想을 위한 爲己之學이라 한다면, 수운이 추구했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의 출발에서 살펴본다면 다시 개벽이라는 후천개벽이라 할 수 있다.
수운사상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동학론인 論學文에서, 영세불망 만사지에 대한 설명인 ‘不忘者 存想之意也 萬事者 數之多也 知者 知其道而受其知也 故 明明其德 念念不忘則 至化至氣 至於至聖 ⑬’과 도덕가에서 ‘大學에 이른 道는 明明其德하여 내어 止於至善 아닐런가’가와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모두가 先天之敎요 先天之道가 분명한 것으로 후천 개벽의 시대에 先天之敎가 왜 필요한가? 를 물어야 하고, 지금 4차 산업혁명시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고 이끌어 갈 천도교의 사상이 무엇인지 그 답을 빨리 찾아야 할 것이다.
교훈가에서 ‘儒道佛道 累千年에 運이 亦是 다했던가’ 라고 하여 수운은 시대의 변화를 직시하고 계셨다. 또 교훈가에서 ‘열세자 至極하면 萬卷詩書 무엇하며 心學이라 하였으니 不忘其意 하였어라 賢人君子될것이니 道成立德 못미칠까’ 와 몽중노소문답가 에서의 ‘아셔시라 아셔시라 八道구경 다 던지고 故鄕에나 돌아가서 百家詩書 외워보세’의 대립된 법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또 몽중노소문답가에서 ‘八歲에 入學해서 許多한 萬卷詩書 無不通知하여 내니 生而知之 彷彿하다’ 라는 법설은, 열세자 至極하면 萬卷詩書가 필요 없다는 말인가? 萬卷詩書나 百家詩書를 더 숙독하여 공부해야 된다는 말씀인가? 헤아리기가 어렵다. 座箴에서의 ‘吾道博而約 不用多言義 別無他道理 誠敬信三字’는 주문 ‘열세자로 명명기덕을 염염불망’하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이러한 의문의 답이, 다시 개벽이 시작되는 새로운 시대에 우리가 이시대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천도교의 사상을 세상에 공포(公布)하고 실천에 매진해야 할 견고한 동력이 될 것이다. 이것이 신,성사님께서 바라던 세상 즉 지상천국이 아니겠는가?
註 00 ; 여기에서 百家詩書는 諸子百家들의 詩文을 의미하고, 萬卷詩書란 수운이전에 만들어져 중국과 조선에서 필독서로 널리 알려져 많이 읽혀진 수많은 책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책들을 의미하는 말들로는 남자(大丈夫)라면 다섯 대의 수레에 실을 만큼의 수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의 ‘南兒須讀 五車書’가 있다. 이 말은 杜甫의 「题 柏学士茅屋」의 마지막 詩句인 ‘富贵必從勤苦得, 男兒须读五車書’에서 알려졌으나 원래는 莊子가 그의 친구인 惠施의 책이 많음을 표현한 말에서 왔다
『莊子』 제33편 天下編 - 제7장 惠施 16.에서 惠施多方,其書五車,其道舛駁(淺薄과 동일함)/ 혜시는 다방면에 밝은 사람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장서는 다섯 대의 수레에 실을 만큼의 양이었다. 그러나 그의 학문과 생각 그리고 언행에 있어 깊이도 없고 품행이 바르지 않았다.(경망스러웠다/輕擧妄動). 또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뻘뻘 흘릴 정도의 책을 서고에 쌓으면 대들보까지 닿을 만큼 책이 많다는 뜻의 汗牛充棟이 있다.
註 00 ; 諸子百家 - 제자백가란, 문자 그대로 여러 스승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학파라는 의미로서, 이 어휘는 정작 춘추전국시대에는 없었고 『사기(史記)』 「가의열전(賈誼列傳)」에 “제자백가의 학문에 매우 통달했다.”라는 구절이 최초의 용례이다. 현재로서 가장 오래된 도서목록인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에는 ‘제자략(諸子略)’이라는 항목이 있고, 거기에는 189가, 4,324편의 문헌이 저록되어 있다. 이처럼 다양한 학파와 사상이 등장하여 이른바 백가쟁명(百家爭鳴)할 수 있었던 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당시의 중국이 정치적 구심점이 결여된 분열의 시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제자백가(Hundred Schools of Thought) 또는 현상적 표현인 백가쟁명(百家爭鳴/Contention of a Hundred Schools of Thought)은 중국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의 여러 사상가들과 그 학파들을 말한다. 주나라(周)가 동으로 천도한 후의 동주(東周: 기원전 771~256) 시대에서는 종주권이 쇠약해짐에 따라 제후들이 세력을 추구함에 있어 거리낌이 없어져서 약육강식이 잇달아 일어나자 중국 천하는 소란하게 되었다. 이 시기를 춘추전국시대라고 한다.
춘추전국시대는 선진시대(先秦時代)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기원전 221년의 진나라에 의한 중국 통일 이전의 시기를 뜻한다. 이 시대는 중국사상의 개화결실의 시기였다. 이 시대의 사상가들을 제자(諸子)라 하며 그 학파들을 백가(百家)라 부른다. 춘추전국시대는 사회 · 경제 · 정치상의 일대 변혁기였다. 이는 씨족제적인 사회의 해체기이며, 주나라의 봉건 제도와 그에 따르는 질서가 붕괴되는 시기이며, 또한, 경제적 · 군사적 실력주의의 대두기였다. 구체적으로는 주 왕조의 권위의 실추에 따르는 제후의 독립과 대립 항쟁의 시대였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중국의 사상계는 최초로 활발해졌다./백과사전과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
註 00 ; 독서의 방법에는 독서를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자세 그리고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는 이런 방법들이 있다 한다.
■색독(色讀) : 글을 읽을 때 문장 전체의 의미를 파악하지 아니하고 글자가 표현하는 뜻만을 이해하며 읽음.
■ 체독(體讀) : 글을 읽을 때 글자에 표현되어 있는 것 이상으로 그 참뜻을 체득하여 읽음
■ 숙독(熟讀) : 글을 익숙하게 잘 읽음. 글의 뜻을 잘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하나하나 읽음
■ 안광지배철(眼光紙背撤/眼光撤紙背) - 눈빛이 종이의 뒤까지 꿰뚫어본다는 뜻으로, 독서(讀書)의 이해력(理解力)이 날카롭고 깊음을 이르는 말인 ‘행간(行間)을 읽다.’의 행간에 담긴 필자의 의도를 살펴 파악하면서 읽는다. 는 의미와 유사하다.
2012년에 청림출판사에서 출간한 한국의 석학들이 ‘내일의 한국사회를 진단한다.’ 는 전제하에 최재천외 다수의 각 분야의 전문 학자들이 집필하여 발간한 『10년후세상』의 CHAPTER 3 문화와 교육 중에 TREND 11. 비종교인의 증가와 기독교에서의 ‘차이나 파워’란 글 중에서 다음과 같이 종교의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이 내용의 상당부분은 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종교의 몰락에서 이미 밝혀진 내용들이다.
-전략- ‘16-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이후 국가와 종교의 미래에 대해 ‘과격한‘ 전망을 내놓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계몽주의자들과 그 후예들 중에서는 국가나 종교는 ‘딱 하나만 남는다.’, ‘완전히 사라진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나왔다. -중략-영국의 작가이자 문명비평가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는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나치스 독일의 패망, 유럽연합, 프리섹스 등의 사건들을 족집게처럼 맞혔다. 웰스는 독재적인 ‘세계정부’가 출범해 모든 종교를 말살한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1960-1970년대까지도 많은 학자, 사상가들이 종교의 소멸을 자신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세계 4대종교인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불교를 비롯한 모든 주요 종교가 교세를 확장하고 있다. 일부 학자는 종교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종교적 본능은 인간 뇌에 뿌리내린 실체라는 것이다. /PP.155-156.
-중략- 원리주의 기독교나 자유주의 기독교나 모두 한계에 도달했다고 진단하는 학자들은 앞으로 엣스터시Ecstasy, 성령체험, 명상 등 일상과 다른 체험을 줄 수 있는 기독교회나 다른 종교가 인기를 끌 것이 라고 전망한다.
종교와 비종교, 반종교 사이에서 제3의 길은 영성spirituality이다.
유럽, 미국에서는 ‘영성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는spiritual but not religious’ 사람들이 더욱 증가할 것이다. 영성주의자들은 제도적인 종교에는 속하지 않지만 종교서적 읽기, 명상, 봉사, 환경보호 활동 등을 통해 종교적, 영성적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한국에서는 종교학자들과 종교종사자들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냉담자(冷淡者), 냉담교우 또는 쉬는 교우라고 지칭하면서 그들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오암)
-중략- 앞으로 10년 동안 종교들이 대립하는 양상이 유지되겠지만 종교와 비종교, 반종교의 대립구도도 점차 선명해질 것이다. 유전자 조작 등의 문제에 대해 종교들이 공동 대처할 필요성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P.162. 이 글에 대한 특별기고문이라 할 수 있는 ‘빠르게 증가하는 SBNR’/영성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는 사람들을 /PP.162-164. 필독하시기를 권장합니다.-오암.
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으므로, 제 4차 산업혁명으로부터 촉발된 종교소멸에 대한 각 종교들이 각자 그들만의 종교적 교의에 따라 그 시대에 당면한 문제해결에 대한 최선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천도교는 주체성과 정체성에 대한 정립이 되어 있지 않은 현실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답답한 심정뿐이다.
이 주제에 대한 최후 결론이며 예측이라 할 수 있는 ‘빠르게 증가하는 SBNR’/영성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는 사람들. -오암. /PP.162-164. 필독하시기를 권장합니다.-오암.
註 00 ;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1946)는 <타임머신>(1895), <투명인간>(1897), <우주전쟁>(1898) 같은 공상과학소설과 대중을 위한 역사서 <세계문화사 대계>(1920, 개정판 1931)로 이름을 떨쳤다.
조그만 시골학교의 교생으로 자신의 지적 능력을 발휘하여 런던의 과학사범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학위를 따지는 못했지만, 3년간의 학창시절은 그의 작가적 상상력에 낭만적인 과학개념을 새겨놓았으며, 훗날 소설을 쓰는데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1895년 <타임머신> 발표와 함께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사이에 〈우주전쟁〉을 비롯한 공상과학소설을 잇달아 발표했다. 문명비평에 대한 관심으로 페이비언 협회에 가입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세계질서의 불안정함을 일깨우는 활동을 시작했고, 1930년대 내내 문명이 파괴될 수 있을법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 격동의 현장에 있었다. /다움백과에서
註 00 ; 냉담자(冷淡者/Lapsed Catholic), - 냉담교우 또는 쉬는 교우는 실천적이지 않는(교회에 나가지 않는)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을 가리키는 기독교 용어이다. 냉담자라고 하여 반드시 신앙심이 부족하다는 것과 연관되지는 않는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판공성사 즉, 1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고해성사를 3년(6회) 이상 보지 않은 신자를 쉬는 교우 또는 냉담자라고 한다. 성공회에서는 감사성찬례, 즉 미사 참석률이 1년에 50% 미만인 신자를 냉담자라고 한다. 즉, 냉담자는 교회의 성사나 예배에 무관심한 신자를 가리키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개신교에서도 교회를 다니다가 더이상 나가지 않거나 쉬는 신자들이 있다. 개신교는 단일 교단이 아니므로 통일된 교적이 없으나 개별 교단 또는 교회 차원에서 '잃은양' 등의 이름을 붙여 관리하기도 한다.
종교적 의미를 넘어 더 보편적으로는 어떤 대상에 흥미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위키백과에서 발췌,
교훈가에서 ‘열세자 至極하면 萬卷詩書 무엇하며 心學이라 하였으니 不忘其意 하였어라 賢人君子될것이니 道成立德 못미칠까’ 라는 수운의 심법에서 무엇을 취하여 지금의 修道修鍊으로 修行을 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하고, 呪文의 중요성은 더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매년 수없는 특별기도 행사에서 집행부나 교인들이 하는 呪文이라는 형식의 틀 속에서 修道修鍊(黙誦이든 顯誦이든, 特別祈禱 포함)을 통하여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 구체적으로
直觀으로 얻어진 具體的 知識은 어떤 것이 있는가? 를 심사숙고해봐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고 볼 수 있다. 거의 연례적이고 맹목적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교단행사를 통하여 교단은 얼마나 성장했으며, 교인들의 수는 얼마나 늘었으며, 교인들의 신앙은 얼마나 향상되었는가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특별기도에 내 건 목적이 너무나 형식적이며 현실과 미래에 대한 기대와 예측이 황당한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확실한 것은, 1960-70년대의 교단이 보여주었던 저력을 가진 그런 교단이 아니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수많은 특별기도와 설교를 통하여 남겨진 것은, 끝을 모르게 흘러가는 퇴행과 쇄락이 있을 뿐이었다. 매번 전국대회에서 당선된 교령이나 교령을 보좌했던 집행부가 보여준 화려하고 찬란했던 청사진은 간 곳이 없고 그들은 항상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기처럼 사라져왔다.
註 00 ; 直觀 - 철학적 의미로는 對象이나 現象을 보고 卽刻的으로 느끼는 깨달음. /哲學的 直觀. 敎育의 側面에서는, 感官의 作用으로 직접 外界의 事物에 관한 具體的 知識을 얻음.
수운뿐만 아니라 모든 신,성사님과 그 분들을 모시고 수행했던 집행부의 원로들은 知行一致을 통하여, 진정 안다는 것은 그 앎을 바탕으로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을 몸소들 체행을 하시어 많은 분들이 순교를 하셨고, 남은 분들은 온갖 고초를 담담하게 겪으시면서 몸과 마음을 다 받쳐, 우리 교단을 지키어서 대 교단으로 키우셨다고 우리는 교사와 수많은 기록들을 통하여 보고 배워왔다. 그런데 해방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교단을 대표해온 지도자와 집행부의 원로들은 무엇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겨주었을까를 근현대 70여년을 되돌아보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급변해온 역사와 너무나 오래 단절되어 있었다고 느껴진다.
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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