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천도교의 우주관과 역사관 연구(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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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우주관과 역사관 연구(7-5)
註 00; 이말씀 들은후에 심독희(心獨喜) 자부(自負)로다
어화세상 사람들아 무극지운(無極之運) 닥친줄을
너희어찌 알까보냐 기장하다 기장하다
이내운수 기장하다 구미산수 좋은승지(勝地)
무극대도(無極大道) 닦아내니 오만년지(五萬年之) 운수(運數)로다. / 용담가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이 말씀을 들은 후에 홀로 마음속으로 기뻐하고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했다. 아아 세상 사람들아 무극대도의 후천운수가 가까이 다가오는 줄을 너희들이 어떻게 알 것인가? 기이하기도 하고 장엄하기도 하구나 내가 받은 무극대도가 기장(奇壯)하다. 득도를 한 용담(龍潭)의 구미산(龜尾山) 산수(山水)가 훌륭한 명승지(名勝地)였구나! 이리 산수가 좋은, 이 용담에서 무극대도를 닦아내니 후천 오만년의 운수를 타고 났구나!
윗글에서 ‘이 말씀’ 이란 수운이 득도과정에서 주고받은 천사문답으로
‘한울님 하신말씀 개벽후 오만년에
네가또한 첨이로다 나도또한 개벽이후
노이무공 하다가서 너를만나 성공하니
나도성공 너도득의 너희집안 운수로다.’ 를 의미한다.
註 00; ‘하원갑(下元甲) 지내거든 상원갑(上元甲) 호시절(好時節)에
만고(萬古)없는 무극대도(無極大道) 이세상에 날것이니
너는또한 연천(年淺)해서 억조창생(億兆蒼生) 많은백성
태평곡(太平曲) 격양가(擊壤歌)를 불구(不久)에 볼것이니
이세상 무극대도(無極大道) 전지무궁(傳之無窮) 아닐런가’ / 몽중노소문답가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하원갑(1803년-1863년)이 지나거든 상원갑(1864년-1924년)의 좋은 때에 과거에 없었던 무극대도가 이 세상에 나올 것이다. 너는 또한 나이가 아직 어려서 억조창생과 수많은 백성이 태평곡과 격양가를 온 세상의 사람들이 다 함께 부르는 것을 오래지 아니하여 보게 될 것이니,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난 무극대도가 영원히 전해지지 아니 하겠는가.
註 00; 태평곡(太平曲)과 격양가(擊壤歌) - 태평곡(太平曲; 또는 太平歌)은, 한국 전통음악인 가곡 중 마지막 곡으로, 가필주대(歌畢奏臺)·편대(編臺)라고도 한다. 남창·여창·남녀창으로 부른다. 계면조(界面調)의 이삭대엽(二數大葉)을 변주한 것으로 장단은 16박 1장단으로 되어 있다. 초장 1각에서 거문고가 독주로 11박을 연주한 후 12박부터 노래와 관현반주가 시작된다. 형식은 대여음(大餘音) 없이 5장과 중여음(中餘音)으로 되어 있고, 매우 느리고 장중한 곡이다. 하규일 전창에 시조시를 붙여 부른 1곡은 다음과 같다. "이려도 태평성대/저려도 태평성대/요지일월(堯之日月)이요 순지건곤(舜之乾坤)이로다/우리도/태평성대니 놀고 놀려 하노라." 〈휘음가곡보〉·〈방산한씨 금보〉에 악보가 있고 〈가곡원류〉에 가사가 전한다. 태평곡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이 알려지고 있다.
1. 고려 충렬왕 때 김원상(金元祥:?~1339)이 지은 가요로, 가사는 전하지 않고 재작 동기 관한 것이 〈고려사〉 권 125, 〈고려사절요〉 권 21, 〈동국통감〉 권 40에 전한다. 적선래(謫仙來)라는 기생이 충렬왕의 총애를 받았는데 김원상과 내시 박윤재가 그 기생과 한마을에 살아서 서로 왕래했다. 김원상이 새 노래(新調)인 〈태평곡〉을 지어 적선에게 연습시켰다. 어느 날 잔치에서 적선이 그 노래를 부르자 왕은 질투로 안색이 변해 이 노래는 글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지을 수 없는데 누가 지었느냐고 물었다. 적선이 자기의 오라비인 김원상과 박윤재가 지었다고 하자 왕은 그 재주를 높이 사 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라는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김원상은 궁중에서 기생·무당들에게 〈쌍화점곡〉을 가르쳐 노래하게 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가요 창작에 재능이 있었던 인물로 추정된다.
2. 조선 중기에, 승려 침굉(枕肱)이 지은 가사(歌辭). 사이비 승려에 대한 질책과 승려 본연의 사명인 중생 제도의 염원을 읊은 것으로, ≪침굉집≫에 실려 있다.
3. 조선 중기의 유학자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지은 경기체가로, 1541년(중종 36)에 풍기군수로 있으면서 지었다. 5장으로 구성되었고 태평성세를 이룩했던 중국의 임금과 성현(聖賢)을 찬송했다. 그의 다른 경기체가 작품인 〈도동곡 道東曲〉·〈육현가 六賢歌〉·〈엄연곡 儼然曲〉 등과 마찬가지로 풍속을 교화하기 위해 지은 교훈적 시가이다. 경기체가의 정격형태가 거의 파괴되어 있는 쇠퇴기의 작품이다. 〈죽계지 竹溪誌〉·〈무릉잡고〉에 전한다.
격양가(擊壤歌; 또는 고복격양가(鼓腹擊壤歌)/고복격양 - 배불리 먹고 배(腹)를 두드리면서(鼓)박자에 맞춰 땅을 친다.)는, 요임금 때 지은 노래라고 하나, 후세의 위작(僞作)일 것이라는 설이 강하다. 격양이란 양(壤)이라는 악기를 치는 것, 또는 나무로 만든 양이라는 신발처럼 생긴 놀이 기구를 하나는 땅에 세워두고 그 곳에서 조금 떨어져 다른 하나를 던지는 고대의 놀이라고도 하며, 땅[壤]을 치는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 노래는 왕충(王充)의 『논형』 「오감허」에 나오는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지만, 『고시원(古詩源)』의 주(注)에는 『제왕세기(帝王世紀)』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고, 『악부시집(樂府詩集)』에도 "제왕세기에 말하기를--- "이라고 하고 있다. 요임금이 제위에 오른 지 50년이 되어 평민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을 때 요임금은 먼저 "우리 백성들을 살게 하는 것은(立我烝民) 그대의 지극함 아닌 것이 없다(莫匪爾極).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不識不知) 임금의 법에 따르고 있다(順帝之則)"라는 아이들의 노래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임금님이 인간의 본성에 따라 백성을 도리에 맞게 인도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법이니 정치니 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자연 임금님의 가르침에 따르게 된다는 뜻으로, 이 노래를 강구요(康衢謠)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요임금은 한 노인이 길가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들기고 또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장단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 노래의 내용은 "해가 뜨면 일하고(日出而作), 해가 지면 쉬고(日入而息), 우물 파서 마시고(鑿井而飮), 밭을 갈아 먹으니(耕田而食),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帝力于我何有哉)"라는 것이었다. 이는 정치의 고마움을 알게 하는 정치보다는 그것을 전혀 느끼지도 못하게 하는 정치가 진실로 위대한 정치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 노래가 격양가이다. 이것은 강구요와 함께 고대로부터 구전(口傳)되어 불리었으며, 『예문류취』·『태평어람』에 인용되어 있는 외에 『고시집』·『고시기』에도 수록되어 있다. 그 후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풍년이 들어 오곡이 풍성하고 민심이 후한 태평시대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브리태니커와 두산 백과사전과 관련 자료의 종합.
또 몽중노소문답가의 다른 구절)에서
삼각산(三角山) 한양도읍(漢陽都邑) 사백년(四百年) 지낸후(後)에
하원갑(下元甲) 이세상에 남녀간(男女間) 자식없어
산제불공(山祭佛供) 하다가서 두늙은이 마주앉아
탄식(歎息)하고 하는말이 우리도 이세상에
명명(明明)한 천지운수(天地運數) 남과같이 타고나서
기궁(奇窮)한 내팔자(八字) 일점혈육(一點血肉) 없단말가.
라 하여 매우 기구하고 가난한 자신의 가정 형편과 한 명의 자손도 없음을 한탄하였다. ‘하원갑(下元甲) 이세상에’ 란 그 시기가 언제인가에 대하여 권학가(勸學歌)에서
하원갑(下元甲) 경신년(庚申年)에 전해오는 세상(世上)말이
요망(妖妄)한 서양적(西洋賊)이 중국(中國)을 침범(侵犯)해서
천주당(天主堂) 높이세워 거소위 하는도(道)를
천하(天下)에 편만(遍滿)하니 가소(可笑)절창 아닐런가
라 하여 하원갑(下元甲)이 경신년(庚申年; 1860년)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시대적 상황은 ‘요망(妖妄)한 서양적(西洋賊)이 천하(天下)에 편만(遍滿)하니 가소(可笑)절창(絶唱)) 아닐런가’/ 요사스러우며 간사하고 정신이 나간 서양의 도적떼들이 온 세상에 가득 차서, 남의 나라를 공격하여 나라를 빼앗는 것이 흔한 일이 된 것은 매우 우스꽝스러워 크게 웃을 일이 아닌가?/매우 크게 웃을 가소로운 일이 아닌가?/필자)라 하여 매우 어려운 시절이라고 전해주고 있다.
註 00; 상원갑(上元甲)과 하원갑(下元甲) - 복희 8괘도(伏羲八卦圖 : 先天·시간·四象·정신·형이상의 세계를 암시하고, 理先氣後에 입각하고 있다.)에 따른 선천방위(先天方位)와 문왕 8괘도(文王八卦圖 : 後天·공간·五行·물질·형이하의 세계를 암시하고, 氣先理後에 입각하고 있다.)에 따른 후천방위(後天方位)를 사용하고 있는데, 음택에서는 선천방위를 사용하며 양택에서는 후천방위를 사용한다. 후천방위는 북서(乾)·남서(坤)·북동(艮)·서(兌)·동(震)·남동(巽)·남(離)·북(北)의 8방위로 구분하여 음양과 오행의 상생상극을 보아 역(易)에 의한 풀이로 점정(占定)한다. 또 24방위는 10간(十干 :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에서 무기(戊己)를 제외한 8간과 12지(十二支 :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를 포함한 건(乾)·곤(坤)·간(艮)·손(巽)의 4괘로 구성하고 있는데, 주로 좌향을 논할 때 사용된다. 60년을 단위로 원(元)으로 하여 상원갑(上元甲)과 중원갑(中元甲) 그리고 하원갑(下元甲)으로 나눈다. 60갑자가 한번 돌아오는 데 60년이 걸리는데, 이를 1갑(甲)이라고 한다. 같은 경인년이라 해도 상원갑(上元甲), 중원갑(中元甲), 하원갑(下元甲)으로 시대가 달라지는데, 60년 전이 중원갑 시대였다면, 이제는 하원갑 시대가 된다.
갑자甲子에서 계해(癸亥)까지 육십갑자가 한 바퀴 돌면, 이것을 ‘일원(一元)이라고 하고, 세 바퀴 돌면 삼원(三元) 혹은 삼원갑(三元甲)이라고 한다. 즉 삼원갑에는 세 개의 갑자가 있는 셈인데, 1804-1864년은 하원갑 60년(1860년 경신년(庚申年)은 하원갑(下元甲)에 속함 그러므로 1864년은 상원갑의 시작이 된다.), 1864-1924년은 상원갑 60년, 1924-1984년은 중원갑 60년, 1984-2024년은 하원갑 60년이 되므로, 1864-2024년은 상원갑 180년이 된다.
삼원갑을 년 단위로 보면 180년이요, 월 단위로는 180월, 일 단위로는 180일, 시간 단위로는 180시시간이 된다. 이중 주로 사용되는 것은 년 단위의 삼원갑이며, 삼원갑 180년 중에서 첫 갑자년부터 60년 동안을 상원갑(上元甲) 다음 60년간을 중원갑(中元甲), 마지막 60년간을 하원갑(下元甲)이라 부른다. 삼원갑의 상원갑이 제일 처음 시작된 해는 ‘제원갑자(濟元甲子: 육십갑자가 최초로 시작된 해’라고 부르며 1983년을 기준으로 10,155,940년 전으로서 육십갑자로는 169,265 甲子 전(前)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해 동지일이 甲子年 甲子月 甲子日 甲子時가 되고, 이때부터 상원갑 ․ 중원갑 ․ 하원갑의 삼원갑이 끊임없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계산해 보면 1864년-1923년까지의 상원갑에 해당한다. 즉 ‘상원갑전계산(上元甲前計算)’에서 상원갑이란 바로 이 60년을 말하는 것이다.
또 삼갑(三甲)이란 역(曆)에서 말하는 상원갑(上元甲), 중원갑(中元甲), 하원갑(下元甲)을 합해서 부르는 말이다. 상원갑자 갑자(甲子)년부터 계해(癸亥)년 까지가 60년임으로, 삼갑년을 합산하면 180년이 된다. 그러나 삼갑년으로 햇수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계속 반복(反復)하여 상원갑으로, 중원갑으로, 하원갑으로, 이어져가면서 우주와 함께 지구와 함께 끊임없이 유전(流轉)하는 것이 우주의 원리(原理)이다. 그러므로 삼갑회(三甲回)는 우주의 원리에 따라 우주와 함께 지구와 함께 인류가 존재하는 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평화세계를 영속(永續)하도록 하는 모임임을 의미하는 것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양택 [陽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관련 자료들을 종합 정리함
註 00; 72둔(遁) - 옛날에는 지금 시간과 달리 하루를 12시간으로 했다. 이렇게 하루가 12시간이니 같은 간지(干支)의 시간이 돌아오기까지는 60시간이 걸린다. 60시간을 날짜로 따지면 5일이다. 따라서 5일이 지나면 1원갑(一元甲)이 지나간다.
처음의 1원갑(一元甲)은 상원갑(上元甲)이요, 두 번째 1원갑(一元甲)은 중원갑(中元甲) 세 번째 1원갑(一元甲)은 하원갑(下元甲)이다. 이것을 통칭(通稱)해서 3원갑(三元甲)이라 한다. 둔(遁)은 상원갑(上元甲)에 한번 생기고 중원갑(中元甲)에 또 한 번 생기고 하원갑(下元甲)에 한번 생기니 1년으로 계산하면 360일/5일=72 해서 72둔(遁)이 생긴다. 시간적으로 3원갑(三元甲)이 지나면 다시 상원갑(上元甲)이 돌아오기 때문에 날짜로는 15일 만에 한 절후(節候)가 바뀌게 된다. 따라서 1달에 2번 절후(節候)가 바뀌니 1년에 12달☓2회=24절후(節候)하여 1년이 24절후(節候)가 된다. 1년은 달로는 12달 날짜는 360일 시간으로는 4,320시간 절후(節候)로는 24절후(節候) 둔(遁)으로는 72둔(遁)이 되는 것이다.
이 둔(遁)은 도술(道術)계류가 아니고 조화(造化)계류이다. 72둔(遁)은 전능(全能)이고, 12통(通)은 전지(全知)이다. 도술(道術) 조화(造化)의 최고(最高) 극치(極致)가 창조(創造)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註 00; 육십갑자(六十甲子) - 10간(干)과 12지(支)를 결합하여 만든 60개의 간지(干支)를 육십간지·육갑이라고도 한다. 10간은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 계(癸)이고, 12지는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 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이다. 결합방법은 처음에 10간의 첫째인 갑과 12지의 첫째인 자를 붙여서 갑자를 얻고, 다음에 그 둘째인 을과 축을 결합하여 을축을 얻는다. 이와 같이 순서에 따라 하나씩의 간지를 구해 나가 60개의 간지를 얻은 후, 다시 갑자로 되돌아온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간에 6개의 지가 배당되는 셈이다. 간과 지가 사용된 역사는 매우 오래전인 듯하다.
중국의 BC 1766∼BC 1123년에 걸친 상(商)나라의 역대 왕의 이름을 살펴보면 태갑(太甲)·옥정(沃丁)·천을(天乙) 등 10간의 글자로 된 이름이 많으며, 이것으로 보아 이 시대에 이미 간지를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60간지는 원래 날짜를 세기 위하여 썼을 것이다. 이 60이라는 주기는 두 달쯤에 해당하는 적당한 주기이다. 또 십간십이지는 중국의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과 결합하여 만물의 길흉을 판단하는 데 쓰였다. 즉 사람의 성질과 운세(運勢)를 점치기도 하고, 나날의 길흉과 방위의 선택 등을 살펴보기도 한다. 범띠인 사람은 성질이 거칠다고 하고, 소띠는 느긋하다고 한다. 또 병오생(丙午生)인 여성에 대해서는, 오행설에 의하면 병(丙)은 화(火)이고 오(午)도 화이므로 화에 화가 겹쳤으니 이런 띠의 여성은 불에 불이 겹쳤다고 하여 성격이 거칠어서 남편을 짓밟는다는 속신(俗信)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미신이다. 간지를 나날에 하나씩 배당한 것을 일진(日辰), 다달에 하나씩 배당한 것을 월건(月建), 해마다 하나씩 배당한 것을 태세(太歲)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사전에서
海月神師 說法 中 ‘靈符呪文’ 에서
心者在我之本然天也 天地萬物本來一心 心有先天後天之心 氣亦有先天後天之氣 天地之心神神靈靈 天地之氣浩浩蒼蒼 滿乎天地亘乎宇宙也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마음이란 것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한울님이다 천지만물이 본래부터(根源的으로) 모두 다 한마음이다. 마음은 선천과 후천의 마음이 있는 것과 같이 기운도 또한 선천과 후천의 기운이 있다. 천지의 마음은 신기하고 기이하며 신령스럽고 영검하고 천지의 기운은 도도하게 흐르는 물줄기와 같고 검푸른 바다와 같이 커서 천지에 가득 차고 우주에 끝이 없이 뻗쳐(이어져) 있다.
‘開闢運數’에서는
先天生後天 先天之運生後天之運 運之變遷 道之變遷 同時出顯也故 運則 天皇氏始創之運也 道則天地開闢日月初明之道也 事則今不聞古不聞之事也 法則今不比古不比之法也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선천이 후천을 낳았으므로 선천의 기운(또는 운세)이 후천의 기운을 낳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운의 변천과 도의 변천은 같은 때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운세인즉 천황씨가 새로 시작되는 운세요, 도인즉 천지가 개벽하여 일월이 처음으로 밝힌 도요, 만사(萬事)인즉 지금도 들은 바가 없고 옛날에도 들은 바가 없었던 일이요, 법(法)인즉 지금도 없고 옛날에도 없었던 법이라 할 수 있다 .
吾道之運 堯舜孔孟之聖材多出矣 吾道 回復天皇氏之根本大運也 天皇氏無爲化氣之根本 孰能知之 知者鮮矣 人是天人 道是大先生主無極大道也 有運有信者一言而盡 不信天理者雖千言萬談 無可奈何也 一言而蔽之 都是在運數也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내가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도의 운수에는, 요순과 공맹과 같은 성인들이 많이 태어날 것이다. 나의 도는 천황씨의 근원적이고 본래적인 큰 운수가 반드시 다시 회복할 것이다. 천황씨의 무위화기의 근본을 누가 능히 알 수 있겠는가. 아는 사람이 적다. 사람이 한울님이요, 도는 대 선생님의 무극대도라 한다. 도운(道運)이 있고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한번 말하면 천지만물의 근본을 다 알아 들어 알 수 있으나, 천리를 믿지 않는 사람은 비록 천만마디의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하니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일이니, 한마디 말로 하면 모든 것이 운수에 달린 것이라 할 수 있다.
註 00; 무위화기(無爲化氣) - 무위화기란 인위적(人爲的)이 아닌, 작위적(作爲的)이 아닌(自然的으로) 또는 억지로 꾸미지 않은/만들지 않은 변화된 기운으로 천지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이 되는 기운이다. 즉 천지에 가득히 차서만물이 나고 자라는 힘의 근원을 말한다. 화기(化氣)란 다른 말로 하면 정(精)이 변전(變轉)하여 된 기운이다. 정(精)이란 생명의 발생과 그 활동을 유지하는 데 기본이 되는 물질로, 생명의 발생에 필요한 선천지정(先天之精)과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후천지정(後天之精)을 말한다. 또는 부모에게서 받은 선천지정(先天之精)과 음식을 먹어서 만들어내는 후천지정(後天之精)으로 나누기도 한다. 동의고전(東醫古典)에서는, 정(精)은 수곡지기(水穀之氣)와 호흡지기(呼吸之器)에 의하여 생성되며 신(腎)에 저장된다고 하였다. / 각종 어학사전과 문화콘텐츠닷컴 용어사전에서 종합정리함.
또 海月神師 說法 中 其他에서
天皇氏는 元來 天人合一의 名辭라, 故로 天皇氏는 先天開闢― 有人의 始神의 機能으로 人의 原理를 包含한 義가 有하니, 萬物이 皆 天皇氏의 一氣라. 今日 大神師 天皇氏로써 自處하심은 大神師 亦是 神이신 人이시니 後天五萬年에 此理를 傳케 함이니라.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천황씨는 원래 한울과 사람이 합일한 명사라, 그러므로 천황씨는 선천개벽으로 사람을 있게 한 시조신의 기능으로 사람의 원리를 포함한 뜻이 있으니, 만물이 다 천황씨의 한 기운이니라. 오늘 대신사께서 천황씨로써 자처하심은 대신사 역시 신이신 사람이시니 후천 오만년에 이 이치를 전케함이니라.
註 00; 천인합일(天人合一) - 천인합일이란 중국의 전통적인 고전사상으로 하늘과 사람이 합일체임을 밝히는 유교적 개념의 하나이다. 한울과 인간을 별개의 존재로 보지 않고 서로 상응하는 존재로 파악하는 사유(思惟)방식이다 한울과 사람은 상응(相應;상호 감응)하며 상생(相生)하여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또 천인합일이란 자연법칙이 인체상에 나타난다는 뜻도 있다. 즉 ”천상(天象)과 인사(人事)는 하나이다.” 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외계(外界)의 환경 문제는 인체의 내부에 드러난다.” 는 뜻이다. 황제내경에 ”유제내필형제외(有諸內必形諸外)” 란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안에 있는 것은 반드시 밖으로 나타난다.” 는 뜻이다. 즉 “인체의 내부에 있는 어떤 문제는 신체의 외부로 반드시 나타난다.” 는 뜻이다. 또 어떤 사람의 언행(言行)을 보고 그 사람의 인성(人性)과 신체적인 여러 가지 문제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은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루는 것을 요하며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룰 때 가장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은 한의학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이다. 그리고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은 풍수지리(風水地理)와 한의학(韓醫學)의 기본사상으로 운용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의 기원은, 중국의 하(夏)·상(商)·서주(西周) 시대에는 하늘이 자연과 사회를 주재하는 최고의 신(神)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천명론(天命論)은 춘추시대에 들어와 동요하기 시작해 춘추 말년에는 "천도(天道)는 멀고 인도(人道)는 가까우니 천도는 알지 못한다."라고 하여 천도와 인도를 구별하게 되었다. 공자(孔子)는 전통적 천명관을 수정하여 하늘이 인격신(人格神)이라는 생각은 부정하고 단지 천명(天命)의 작용만을 인정했다. 동시에 "하늘이 나에게 덕(德)을 주었다"라고 하여 인간이 가진 덕성을 천부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전국시대에 맹자(孟子)는 "마음을 다하는 것은 성(性)을 아는 것이며, 성을 아는 것은 하늘을 아는 것"이라고 하여 사람의 마음과 성이 하늘과 본래 일체이며, 진심(盡心)·지성(知性)이면 능히 천명을 얻는다고 했다. 맹자의 이러한 사고는 하늘이 모든 것을 포함하며 동시에 사람의 마음에 이것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천인합일 사상의 명확한 표현이었다. 한(漢)나라의 동중서(董仲舒)는 이러한 천인합일 사상을 계승하여 천명론과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을 결합한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사상체계를 세웠다. 그는 "사람은 하늘에 근본하여 만들어졌으며 하늘은 사람의 증조부(曾祖父)"라고 하며 하늘이 최고의 신이며 인간은 하늘이 창조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인간의 일체 행위가 천의(天意)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했다. 이와 함께 하늘과 사람 사이에는 상호 감응이 작용해서, 양자가 합해져 하나가 된다고 설명했다. 송대(宋代)에 들어와서 성리학자(性理學者)들은 이(理), 성(性), 명(命) 등의 개념을 가지고 천인합일을 논증하고자 했다. 이 가운데 정이(程頤)는 "하늘과 사람이 본래 둘이 아니므로 합(合)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고, 주희도 "하늘과 사람은 일물(一物)인데, 내외(內外)가 일리(一理)로 유통(流通) 관철(貫徹)하므로 간격(間隔)이 없다"고 설명했다. 천인합일은 천인관계를 파악하는 유교의 기본관점으로서 중국을 비롯한 동양 전통사상의 중요한 구성요소였다. / 브리태니커와 각종사전에 종합정리.
그리나 서소약(徐小躍)은『禪과 老莊』에서 ‘장자는 매우 명확하게 天과 人을 대비하여, 상호관계 가운데 각자의 특성을 얻게 하였다. 중국사상사에서 장자가 처음으로 명확하게 天人을 대비하여 해석하였고, 그에 따라 천인지학으로 하여금 함의가 매우 넓은 대학문으로 되게 하였다. 道家 自然主義의 天人關係는 실제로 장자로부터 진정으로 開創하였다.’ 고 했다/P230∼231.
註 00; 논어(論語)에 나타난 공자의 천인합일 사상 - 述而(22)편에서 ‘天生德於予/ 한울이 내 안에 德을 갖추도록 해 주었다.(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에서 덕(德)은 인간의 도덕적 본성을 의미한다. 한울이 인간에게 도덕적 가능성을 갖추도록 해주었고, 인간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즉 덕을 키우는 것이다. 한울과 사람의 관계는 도덕성을 부여해 주는 관계로 시작된다. 고 했으며 憲問 (37)편에서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其天乎/ ‘한울과 남을 원망하지 않고, 기초(또는 기본)를 익히고 배워서 높은 경지에 도달됐으니 나를 아는 것은 오직 한울(天)뿐이 아니겠는가?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라고 했다. 이는 일상사(下學)를 통해 天理(上達)를 알게 되었을 때 하늘도 자신을 잘 알아 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교의 천인합일 사상은 <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梵我一如)적인 존재론적 일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울은 인간에게 덕(德)을 주는 존재이고, 인간은 그 덕을 닦는 관계라는 차이가 있고, 그 덕을 닦아 인격을 완성한 후에야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공자의 사상에서 지행합일(知行合一)도 중요하고 정경합일(情景合一)도 중요한데 정경(情景)의 분야에서는 공자가 음악을 중시한 점이 <논어>에 나온다. 고 한다. / 논어와 관련 자료에서 종합
해월신사가 스승인 대신사가 천황씨라고 자처한 것에 대한 설법의 의도는, 동학이 어떤 부분에서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을 바탕으로 한 무극대도이며 이런 이치를 후천 오만년에 전하는데 의의가 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 있었다.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의 본원지(本源地)는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보고 있다. 朱熹가 지은 『近思錄』 上卷 PP.200-201. 近思錄 卷之一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濂溪先生曰 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 分陰分陽 兩儀立焉 陽變陰合 而生水火木金土 五氣順布 陽變陰合 而生水火木金土 五氣順布 四時行焉 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本無極也 五行之生也 各一其性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 而變化無窮焉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주 염계선생이 말하기를 ‘무극은 무극 그 자체이면서 태극이기도 하다. 무극은 동(動)과 정(靜)이 없으나, 태극은 움직이어 양을 낳고 움직임이 그 극에 이르게 되면 고요하게 되고 일동일정(하나하나의 움직임. 곧 모든 동작/필자)이 고요하여 음을 낳는다. 음이 고요하여 그 극에 도달하면 다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한 번 움직이고 한 번고요해지는 것이 양과 음의 서로 간에 그 근원(根源)이 되어, 음과 양으로 나눔에 양의(易學에서, 陽과 陰)또는 天地를 아울러서 이르는 말/필자)가 만들어져 따로따로 독립하게 되는 것이다. 양과 음이 서로 변하고 합해져서 수, 화, 목, 금, 토의 오행(五行)을 낳아 오행의 기운이 고루(또는 순차적으로) 퍼짐에 사시(春夏秋冬)가 이루어져 운행되는 것이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요 하나의 태극으로 태극은 본래(本來)는 무극인 것이다. 오행이 생겨남에 각기 그 성(性; 성품. 성정, 천성. 성질. 본질. 생명/필자)을 간직하니 무극의 진리와 음양오행의 정기(二五之精; 陰陽의 二氣와 五行의 純精/필자)가 심오하고 기묘하게 합쳐지고 엉기어서 건(乾)의 도는 남자를 이루고 곤(坤)의 도는 여자가 된다, 이 두 정기의 기운이 서로 교감하여 만물을 변화하고 새로 태어나고 무성하게 자라게 하니, 만물은 끊임없이 서로 생성하면서 무궁히 변화하는 것이 끝이 없는 것이다 / 近思錄 卷之一의 위의 인용문에는 ‘而生水火木金土’에서 ‘而生水木金土’으로 ‘火’ 字가 빠져 있다. / 필자 확인.
惟人也 得其秀而最靈 形旣生矣 神發知矣 五性感動而善惡分 萬事出矣 聖人定之以中正仁義(本註; 聖人之首 仁義中正而己矣) 而主靜(本註; 欲故靜) 立人極焉 故聖人與天地合其德 日月合其明 四時合其序 鬼神合其吉凶 君子修之吉 小人 悖之凶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오직 사람만이 그 만물 중에서 빼어난 기를 얻어서 가장 신령스러운 존재가 되어 형체가 이루어지고 나서는 정신이 앎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다섯 가지 성품(性稟;사람의 다섯 가지 성정(性情). 곧 기쁨(喜), 노여움(怒), 욕심(慾), 두려움(懼), 근심(愁) 또는 仁義禮智信을 말한다./필자)이 움직이어서 선함과 악함으로 나누어지고, 만사가 출현하게 된다. 성인들께서 중정(中正; 太極의 體用 곧 仁義에 對照되는 말이다./필자)과 인의(仁義)로써 안정시키고 고요함을 위주로 하여 사람의 법도를 세우셨다. 그러므로 성인이란 천지와 더불어 그의 덕이 합치며 해와 달과 더불어 그의 밝음이 합치되며, 사시와 더불어 그의 질서가 합치며, 귀신과 더불어 그의 길흉이 합치되는 것이니 군자는 이런 이치를 갈고 닦음으로써 길(吉)하게 되고 소인의 무리는 이를 거스르게 함으로써(천리, 천명, 천도를 따르지 않음으로써/順天理 順天命) 흉(凶)하게 되는 것이다
/ (本註; 聖人之首 仁義中正而己矣/ 성인의 도는, 인의와 중정이 으뜸으로 이것뿐인 것이다./필자) (本註; 欲故靜/ 만사에 욕심을 내지 않음으로 마음이 항상 편안하고 고요해지는 것이다/필자))
故曰 立天之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又曰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 大哉 易也 斯其至矣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그러므로 주역(周易)에서 말하기를, “하늘의 도 즉 천도(天道)를 정립하여 음과 양이라 하고, 땅의 도 즉 지도(地道)를 정립하여 부드러움과 강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사람의 도 즉 인도(人道/주역의 說卦傳에서는 人極이라 했다/필자)를 정립하여 인과 의를 드러내는 것이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시작을 근원(始原)으로 하여 종말로 돌아가므로 죽고 사는 것에 대한 원리(根源的인 理致/필자)를 알게 되는 것이다”고도 하였다. 위대함이여 그 변전(變轉; 易/필자)이여 그 이치의 무궁함과 지극(至極)함이여! / 주역의 說卦傳에서는 天道, 地道, 人道를 ‘三才의 道’라 한다.
誠無爲 幾善惡德 愛曰仁 宜曰義 理曰禮 通曰智 守曰信 性焉安焉之謂聖 復焉執焉之謂賢 發微不可見 充周不可窮之謂神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인성(人性)의 본질을 성이라 할 수 있으므로, 그것은 지선(至善)으로서 오상(五常)이므로 주역의 이치에 따라 움직이고.(여기에선 노자의 무위자연인 꾸미지 않은 인위적인 아닌 작위적(作爲的)이 아닌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천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無爲; 順天理 順天命/필자) 처음부터 인간의 성정에는 선과 악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한 선악의 덕 가운데서 사랑하는 것을 인(仁)이라 하고, 사물의 이치에 따라 옳은 것 즉 인간의 도리에 맞는 것을 의(義)라 하고, 천리에 맞는 것을 예(禮)리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을 지(智)라 하며, 천리에 어긋나지 않게 지키고 행하는 것을 신(信)이라 한다. 타고난 본성에 따르는 것(安居)을 성인이라 하고, 타고난 본성으로 돌아가 그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을 현인(賢人)이라 하나 그렇게 드러나는 것을 보기는 드문 것이다 골고루 충만하여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을 신(神; 天理의 作用이 微妙함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말한다. 人格神이 아니다./필자)이라 부른다.
伊川先生曰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中也者 言寂然不動者也 故曰天下之大本 發而皆中節 謂之和 和也者 言感而遂通者也 故曰 天下之達道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이천 정이(程頤)선생이 말하기를 ‘喜怒哀樂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을 중용(中庸)이라 한다. 중용이라는 것은, 본래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으므로 이것을 말한다. 그런 까닭에 천하의 대본(가장 큰 근본/필자)이라 말한다. 드러나서 모두가 절도(節度)에 맞는 것을 화(調和)라 한다. 조화란 것은 천리에 감응하여 마침내 천리와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천하의 달도(達道; 시간과 장소의 변화와 상관없이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필자)라고 한다./中庸 장구(章句) 1 에 있는 말./ 『論語 中庸』 P. 372.
註 00; 『論語 中庸』 P. 372.와 『大學 中庸』 P. 146.에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中也者 言寂然不動者也 故曰天下之大本 發而皆中節 謂之和 和也者 言感而遂通者也 故曰 天下之達道 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이라 하고 있다.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의 뜻은 위에서 말한 ‘중화(中和)의 덕(德)을 지극하게 하면, 한울과 땅이 제 자리에 바로 서서(제 역할을 다하여), 만물을 육성(育成)하게 된다.’ 는 뜻이다.
心一也 有指體而言者(本註; 寂然不動 是也) 惟觀其所見如何耳 乾天也 天者乾之形體 乾者天之性情 乾健也 健而無息之謂乾 夫天 專言之則道也 天且弗違是也 分而言之 則而形體謂之天 以主宰謂之帝 以功用謂之鬼神 以妙用謂之神 以性情謂之乾 四德之元 猶五常之仁 偏言則一事 專言則包四者 天所賦爲命 物所受爲性 鬼神者造化之迹也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마음이 하나라고 하는 것은, 마음은 본래 적연(寂然)하여 움직임이 없는 까닭에 본체(本體; 性)로 설명을 할 때가 있고, 작용(作用; 情)으로 말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관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잘 살펴야 한다. 건(乾)이란 한울을 말한다. 한울은 건이 나타난 형체이며, 한울의 성정인 것이다. 건은 한울이 운행(運行)하는 것으로 운행하여 조금도 쉬지 않는 것을 건이라 한다. 대체로 한울을 한마디 말로 하면 도(道)인 것이다. 한울은 또한 운행에 어긋남이 없는 것을 말한다. 자세히 나누어 설명하면 형체를 말할 때는 한울이라 하고, 주제자로 말할 때는 상제(上帝)라 하고, 공용(功用; 조화의 작용으로 나타난 흔적)으로 말할 때는 귀신(鬼神)이라 말하고, 묘용(妙用; 신묘한 작용, 또는 불가사의한 작용)으로 말할 때는 신(神)이라 말하며 성정(性情)으로서는 건(乾)이라 말한다. 한울의 사덕인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원(元)은 오상의 인(仁)과 같다. 한 편으로 치우친 말로 하면, 하나이지만, 전체적(總括的)으로 말하면 위에서 설명한 네 가지를 포함하게 된다. 한울이 부여한 것을 명(命; 天命)이라 하고, 만물이 품수(稟受; 선천적으로 재능이나 성품을 타고남/필자)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 귀신이라는 것은 조화의 자취(痕迹; 자국 또는 드러난 모습/필자)인 것이다./『近思錄』上卷 卷之一 P. 201.의 원문에는 ‘物所受爲性’이 누락(漏落)되어 있다.
한상봉 기자가 2010년 1O월 18일자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민중 신학의 쇠퇴. 새로운 민중개념이 필요하다. 라는 세미나에 발표된 ‘씨알사상과 비참의 현상학 제기’ 의 내용 중에서
‘이 자리에서 박재순 소장(씨알사상연구소)은 민중신 학을 평가하면서, "민중 신학은 서구신학과 기독교가 영적 생명력을 잃어버렸을 때, 예수와 오늘의 민중을 동일시함으로써 예수와 민중을 지금 여기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끌어들였다"며 특히 침묵을 강요당하던 1970-80년대의 한국 민중들의 증언자로서, 민중을 사랑하고 그들의 처지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고난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민중 신학은 민중이 곧 오늘의 그리스도라는 '민중 그리스도론'과 오늘의 구원은 민중의 고난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민중 구원론'을 내세웠으며, 이는 인내천(人乃天) 등 신인합일(神人合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전통을 지닌 아시아적 전통에 맞닿아 있다고 평가했다. -중략- 씨알사상만이 오늘날의 사회경제정치의 문제뿐 아니라 생태적 영성적 위기를 극복하고, 민족국가의 모순과 갈등을 넘어서는 평화를 바랄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즉, "씨알사상은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를 심화시키고 정화시키며, 결국 자기를 넘어서 서로 연대하게 만들며, 고난에도 절망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게 한다."고 말했다.’ / 이하 생략<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고 한다. 이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씨알사상까지도 동학이 가지고 있는 핵심 사상들인 인내천(人乃天) 등 신인합일(神人合一), 천인합일(天人合一)을 민족의 전통사상으로 평가 수용하면서 더 나아가 이 사상들이 아시아적 전통에 맞닿아 있다고 평가하고, 왜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가? 라는 점에 대하여 천도교는 관심이 가는 것이다.
2004년에 발표된 정경일의 ‘동학의 문법. 不然其然 이야기’에서 ‘수운의 불연기연은 존재론을 극복한 창조적 진화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라고 하여 창조적 진화론이란 용어가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교단 내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다.
‘첫째, 불연기연은 '생성'의 이야기이다. 수운은 "불연기연" 둘째 절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사물의 형체를 보고 헤아리는 생각으로 말하면, 모두 그럴 듯하여 그런 것 같고, 사물의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서 가늠하여 살펴보면, 그 이치가 멀고도 멀어서 이 모든 그윽하고 아득한 일이므로 헤아려 말하기 어려우니라."
註 00; 번역은 동학연구원 편, 한글 동경대전(서울 : 자농 1991)을 따랐다고 註에서 밝히고 있고 인용문의 原文은 不然其然의/ ‘歌曰 而千古之萬物兮 各有成各有形 所見以論之則 其然而似然 所自以度之則 其遠而甚遠 是亦杳然之事 難測之言’을 찾아 필자가 덧붙임.
이 뜻을 풀이하면, 현상으로 보면 그런 것 같지만 그 근본으로 보면 말하기 어려운 것(難測之言)이라는 이야기다. 여기서 '기연', '그렇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 즉 생각이 미친 것을 의미하고, '불연',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생각이 '아직' 미치지 못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연'이라는 '테제'와 '불연'이라는 '안티테제'에서 기연은 존재의 질서로서 밝힐 수 있는 것, 즉 현상적인 관찰이 가능한 세계이며, 불연은 생성의 원리이므로 밝혀지기 어려운 것, 그러나 그렇게 되고야 마는 필연성이다. 이것은 '존재'가 아닌 '생성'의 차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론을 나타내고 있다. 수운은 형태를 갖추면서 생성, 진화하고 있는 천고의 만물들이 그 현상으로 보면 그렇고 그런 것 같이(其然似然) 보이지만, 그 생성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不然)고 했다. 그러므로 생성하는 것을 변하지 않고 고정된 틀, 즉 '존재'의 구조로 보면 '그렇다'와 '아니다'의 대립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긍정과 부정의 이원론이란 '생성'을 '존재'로 보는데서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운의 불연기연은 존재론을 극복한 창조적 진화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창조적 진화론이라는 것의 근거는 다음의 성찰이다.
내가 나를 생각하여 보면 부모가 여기에 있고, 뒤로 후손을 생각하여 보면 자손이 저기에 있느니라. 미래의 세상일과 견주어 보면, 이치는 지금 내가 나를 생각하여 보는 것과 다름이 없고, 지나간 세상일을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사람은 어떻게 해서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의심스런 마음을 분간하기 어렵도다.
註 00; 번역은 동학연구원 편, 한글 동경대전을/P. 164. 따랐다고 註에서 밝히고 있어, 인용문의 原文/ ‘我思我則 父母在玆 後思後則 子孫存彼 來世而比之則 理無異於我思我 去世而尋之則惑難分於人爲人’을 찾아 필자가 덧붙임.
위의 글에서 수운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순차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미래가 들어오고, 과거가 들어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김지하는 수운의 '불연기연론'을 동양 최초의 진화사상이라고 설명하고, 그 특징으로 창조론과 진화론을 결합시키는 은유와 암시의 체계라고 하였다. 3) 또 다른 글에서는 '화엄적 진화론'이라고 설명하는데, 그 내용은 수운의 진화론은 시간방향의 미래주의적 진화가 아니라 사방팔방 시방(十方)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진화이며 동시에 생명의 근원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가는 진화론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생성이란 현재에서만 생겨나는 현재 이후의 사건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함께 작용하며 만들어내는 화엄적 생성인 것이다.
둘째, 불연기연은 '반대일치'의 이야기이다. 하나의 평범한 사실에는 항상 두 가지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한국인의 넓은 마음이다. 수운의 논리구조는 보편과 특수를 분별하면서도 그것을 근원적인 통일성 속에서 파악하는 반대일치의 논리속에서 사물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논리구조이다. '그렇다'와 '아니다'라는 모순율, 배반율의 양극적 판단은 수운에게서는 조화를 이룬다. 그는 절대통일의 자기분화성을 체험함으로서 이 이율배반의 세계현실을 '불연'과 '기연'의 두 명제로 표현했고, 이 이원화된 시공의 우주를 다시 절대모순의 자기동일성으로 환원시키려는 조화적 원리를 전개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불연기연의 반대일치의 논리는 '상보성'으로 해석된다. 즉 기연으로 이해되는 앎이 전부가 아니므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여기서 기연과 불연, 긍정과 부정은 동전의 양면이지 대립 갈등의 구조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상보성을 강조한 것이다.
"아아! 이와 같이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림이여! 그것이 어찌하여 그런가를 살펴보니,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것 같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렇지 않도다"
註 00; 번역은 동학연구원 편, 한글 동경대전을/ P. 165. 따랐다고 註에서 밝히고 있어, 인용문의 原文 / ‘噫 如斯之忖度兮 由其然而看之則 其然如其然 探不然而思之則 不然于不然’을 찾아 필자가 덧붙임.
수운의 '불연기연'을 요소적이고 환원적인 방법으로 분석한다면 반드시 '논리적 부적합성'의 평가를 내리게 될 것이다. '불연'은 '불연'이고 '기연'은 '기연'이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인 논리이며, 현실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보이는 것'에만 그 관심을 기울이려 하는 세계관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예수는 "너는 나를 보았으므로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요한복음서 20:29) 라고, '오늘' 도마에게 '보지 않고도' 믿는 마음을 요구하셨다. 눈에 보이고 확인되고 객관적으로 검증되는 것만이 세계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아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이 떨어지지 않고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세계현실이다. 그 현실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 때 그 이야기는 생명의 문법이 되는 것이며, 살아있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면에서 수운의 '불연기연'은 일반논리로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삶에서는 살아있는 본질을 말하는 살아있는 이야기이다. 세계는 역설로 가득하며, 반대들이 하나로 일치하고 있으며, 모든 것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어떻게 하느님이 인간이 되실 수 있는지, 왜 그토록 투박하고 먹고 마시기를 탐하며 죄인과 어울려 지냈던 이단아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높일 수 있는지를 되새기는 것은 삼단논법, 형식논리로는 신앙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를 따라 죽기까지 충성하고자 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본질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문법이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부적합성을 적합성으로 받아들이고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현실이다. 수운의 불연기연은 본질적으로 이 세계의 각 부분이 서로를 적대하고, 억누르고, 밟고 넘어서는 것이 아님을 밝히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바다로 '살아있는 이야기'의 추구이다. 이 역설과 생성과 일치의 문법으로 동학의 한울님 사상, 인간관, 자연관의 요체를 파악하여, 그 생명 사상적 이야기로서의 한국적 생명신학의 가능성을 찾아보도록 한다. / ‘동학의 문법 不然其然 이야기’에서 발췌.
천도교의 우주관과 역사관 연구.(7-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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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00; 이말씀 들은후에 심독희(心獨喜) 자부(自負)로다
어화세상 사람들아 무극지운(無極之運) 닥친줄을
너희어찌 알까보냐 기장하다 기장하다
이내운수 기장하다 구미산수 좋은승지(勝地)
무극대도(無極大道) 닦아내니 오만년지(五萬年之) 운수(運數)로다. / 용담가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이 말씀을 들은 후에 홀로 마음속으로 기뻐하고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했다. 아아 세상 사람들아 무극대도의 후천운수가 가까이 다가오는 줄을 너희들이 어떻게 알 것인가? 기이하기도 하고 장엄하기도 하구나 내가 받은 무극대도가 기장(奇壯)하다. 득도를 한 용담(龍潭)의 구미산(龜尾山) 산수(山水)가 훌륭한 명승지(名勝地)였구나! 이리 산수가 좋은, 이 용담에서 무극대도를 닦아내니 후천 오만년의 운수를 타고 났구나!
윗글에서 ‘이 말씀’ 이란 수운이 득도과정에서 주고받은 천사문답으로
‘한울님 하신말씀 개벽후 오만년에
네가또한 첨이로다 나도또한 개벽이후
노이무공 하다가서 너를만나 성공하니
나도성공 너도득의 너희집안 운수로다.’ 를 의미한다.
註 00; ‘하원갑(下元甲) 지내거든 상원갑(上元甲) 호시절(好時節)에
만고(萬古)없는 무극대도(無極大道) 이세상에 날것이니
너는또한 연천(年淺)해서 억조창생(億兆蒼生) 많은백성
태평곡(太平曲) 격양가(擊壤歌)를 불구(不久)에 볼것이니
이세상 무극대도(無極大道) 전지무궁(傳之無窮) 아닐런가’ / 몽중노소문답가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하원갑(1803년-1863년)이 지나거든 상원갑(1864년-1924년)의 좋은 때에 과거에 없었던 무극대도가 이 세상에 나올 것이다. 너는 또한 나이가 아직 어려서 억조창생과 수많은 백성이 태평곡과 격양가를 온 세상의 사람들이 다 함께 부르는 것을 오래지 아니하여 보게 될 것이니,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난 무극대도가 영원히 전해지지 아니 하겠는가.
註 00; 태평곡(太平曲)과 격양가(擊壤歌) - 태평곡(太平曲; 또는 太平歌)은, 한국 전통음악인 가곡 중 마지막 곡으로, 가필주대(歌畢奏臺)·편대(編臺)라고도 한다. 남창·여창·남녀창으로 부른다. 계면조(界面調)의 이삭대엽(二數大葉)을 변주한 것으로 장단은 16박 1장단으로 되어 있다. 초장 1각에서 거문고가 독주로 11박을 연주한 후 12박부터 노래와 관현반주가 시작된다. 형식은 대여음(大餘音) 없이 5장과 중여음(中餘音)으로 되어 있고, 매우 느리고 장중한 곡이다. 하규일 전창에 시조시를 붙여 부른 1곡은 다음과 같다. "이려도 태평성대/저려도 태평성대/요지일월(堯之日月)이요 순지건곤(舜之乾坤)이로다/우리도/태평성대니 놀고 놀려 하노라." 〈휘음가곡보〉·〈방산한씨 금보〉에 악보가 있고 〈가곡원류〉에 가사가 전한다. 태평곡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이 알려지고 있다.
1. 고려 충렬왕 때 김원상(金元祥:?~1339)이 지은 가요로, 가사는 전하지 않고 재작 동기 관한 것이 〈고려사〉 권 125, 〈고려사절요〉 권 21, 〈동국통감〉 권 40에 전한다. 적선래(謫仙來)라는 기생이 충렬왕의 총애를 받았는데 김원상과 내시 박윤재가 그 기생과 한마을에 살아서 서로 왕래했다. 김원상이 새 노래(新調)인 〈태평곡〉을 지어 적선에게 연습시켰다. 어느 날 잔치에서 적선이 그 노래를 부르자 왕은 질투로 안색이 변해 이 노래는 글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지을 수 없는데 누가 지었느냐고 물었다. 적선이 자기의 오라비인 김원상과 박윤재가 지었다고 하자 왕은 그 재주를 높이 사 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라는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김원상은 궁중에서 기생·무당들에게 〈쌍화점곡〉을 가르쳐 노래하게 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가요 창작에 재능이 있었던 인물로 추정된다.
2. 조선 중기에, 승려 침굉(枕肱)이 지은 가사(歌辭). 사이비 승려에 대한 질책과 승려 본연의 사명인 중생 제도의 염원을 읊은 것으로, ≪침굉집≫에 실려 있다.
3. 조선 중기의 유학자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지은 경기체가로, 1541년(중종 36)에 풍기군수로 있으면서 지었다. 5장으로 구성되었고 태평성세를 이룩했던 중국의 임금과 성현(聖賢)을 찬송했다. 그의 다른 경기체가 작품인 〈도동곡 道東曲〉·〈육현가 六賢歌〉·〈엄연곡 儼然曲〉 등과 마찬가지로 풍속을 교화하기 위해 지은 교훈적 시가이다. 경기체가의 정격형태가 거의 파괴되어 있는 쇠퇴기의 작품이다. 〈죽계지 竹溪誌〉·〈무릉잡고〉에 전한다.
격양가(擊壤歌; 또는 고복격양가(鼓腹擊壤歌)/고복격양 - 배불리 먹고 배(腹)를 두드리면서(鼓)박자에 맞춰 땅을 친다.)는, 요임금 때 지은 노래라고 하나, 후세의 위작(僞作)일 것이라는 설이 강하다. 격양이란 양(壤)이라는 악기를 치는 것, 또는 나무로 만든 양이라는 신발처럼 생긴 놀이 기구를 하나는 땅에 세워두고 그 곳에서 조금 떨어져 다른 하나를 던지는 고대의 놀이라고도 하며, 땅[壤]을 치는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 노래는 왕충(王充)의 『논형』 「오감허」에 나오는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지만, 『고시원(古詩源)』의 주(注)에는 『제왕세기(帝王世紀)』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고, 『악부시집(樂府詩集)』에도 "제왕세기에 말하기를--- "이라고 하고 있다. 요임금이 제위에 오른 지 50년이 되어 평민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을 때 요임금은 먼저 "우리 백성들을 살게 하는 것은(立我烝民) 그대의 지극함 아닌 것이 없다(莫匪爾極).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不識不知) 임금의 법에 따르고 있다(順帝之則)"라는 아이들의 노래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임금님이 인간의 본성에 따라 백성을 도리에 맞게 인도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법이니 정치니 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자연 임금님의 가르침에 따르게 된다는 뜻으로, 이 노래를 강구요(康衢謠)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요임금은 한 노인이 길가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들기고 또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장단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 노래의 내용은 "해가 뜨면 일하고(日出而作), 해가 지면 쉬고(日入而息), 우물 파서 마시고(鑿井而飮), 밭을 갈아 먹으니(耕田而食),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帝力于我何有哉)"라는 것이었다. 이는 정치의 고마움을 알게 하는 정치보다는 그것을 전혀 느끼지도 못하게 하는 정치가 진실로 위대한 정치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 노래가 격양가이다. 이것은 강구요와 함께 고대로부터 구전(口傳)되어 불리었으며, 『예문류취』·『태평어람』에 인용되어 있는 외에 『고시집』·『고시기』에도 수록되어 있다. 그 후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풍년이 들어 오곡이 풍성하고 민심이 후한 태평시대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브리태니커와 두산 백과사전과 관련 자료의 종합.
또 몽중노소문답가의 다른 구절)에서
삼각산(三角山) 한양도읍(漢陽都邑) 사백년(四百年) 지낸후(後)에
하원갑(下元甲) 이세상에 남녀간(男女間) 자식없어
산제불공(山祭佛供) 하다가서 두늙은이 마주앉아
탄식(歎息)하고 하는말이 우리도 이세상에
명명(明明)한 천지운수(天地運數) 남과같이 타고나서
기궁(奇窮)한 내팔자(八字) 일점혈육(一點血肉) 없단말가.
라 하여 매우 기구하고 가난한 자신의 가정 형편과 한 명의 자손도 없음을 한탄하였다. ‘하원갑(下元甲) 이세상에’ 란 그 시기가 언제인가에 대하여 권학가(勸學歌)에서
하원갑(下元甲) 경신년(庚申年)에 전해오는 세상(世上)말이
요망(妖妄)한 서양적(西洋賊)이 중국(中國)을 침범(侵犯)해서
천주당(天主堂) 높이세워 거소위 하는도(道)를
천하(天下)에 편만(遍滿)하니 가소(可笑)절창 아닐런가
라 하여 하원갑(下元甲)이 경신년(庚申年; 1860년)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시대적 상황은 ‘요망(妖妄)한 서양적(西洋賊)이 천하(天下)에 편만(遍滿)하니 가소(可笑)절창(絶唱)) 아닐런가’/ 요사스러우며 간사하고 정신이 나간 서양의 도적떼들이 온 세상에 가득 차서, 남의 나라를 공격하여 나라를 빼앗는 것이 흔한 일이 된 것은 매우 우스꽝스러워 크게 웃을 일이 아닌가?/매우 크게 웃을 가소로운 일이 아닌가?/필자)라 하여 매우 어려운 시절이라고 전해주고 있다.
註 00; 상원갑(上元甲)과 하원갑(下元甲) - 복희 8괘도(伏羲八卦圖 : 先天·시간·四象·정신·형이상의 세계를 암시하고, 理先氣後에 입각하고 있다.)에 따른 선천방위(先天方位)와 문왕 8괘도(文王八卦圖 : 後天·공간·五行·물질·형이하의 세계를 암시하고, 氣先理後에 입각하고 있다.)에 따른 후천방위(後天方位)를 사용하고 있는데, 음택에서는 선천방위를 사용하며 양택에서는 후천방위를 사용한다. 후천방위는 북서(乾)·남서(坤)·북동(艮)·서(兌)·동(震)·남동(巽)·남(離)·북(北)의 8방위로 구분하여 음양과 오행의 상생상극을 보아 역(易)에 의한 풀이로 점정(占定)한다. 또 24방위는 10간(十干 :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에서 무기(戊己)를 제외한 8간과 12지(十二支 :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를 포함한 건(乾)·곤(坤)·간(艮)·손(巽)의 4괘로 구성하고 있는데, 주로 좌향을 논할 때 사용된다. 60년을 단위로 원(元)으로 하여 상원갑(上元甲)과 중원갑(中元甲) 그리고 하원갑(下元甲)으로 나눈다. 60갑자가 한번 돌아오는 데 60년이 걸리는데, 이를 1갑(甲)이라고 한다. 같은 경인년이라 해도 상원갑(上元甲), 중원갑(中元甲), 하원갑(下元甲)으로 시대가 달라지는데, 60년 전이 중원갑 시대였다면, 이제는 하원갑 시대가 된다.
갑자甲子에서 계해(癸亥)까지 육십갑자가 한 바퀴 돌면, 이것을 ‘일원(一元)이라고 하고, 세 바퀴 돌면 삼원(三元) 혹은 삼원갑(三元甲)이라고 한다. 즉 삼원갑에는 세 개의 갑자가 있는 셈인데, 1804-1864년은 하원갑 60년(1860년 경신년(庚申年)은 하원갑(下元甲)에 속함 그러므로 1864년은 상원갑의 시작이 된다.), 1864-1924년은 상원갑 60년, 1924-1984년은 중원갑 60년, 1984-2024년은 하원갑 60년이 되므로, 1864-2024년은 상원갑 180년이 된다.
삼원갑을 년 단위로 보면 180년이요, 월 단위로는 180월, 일 단위로는 180일, 시간 단위로는 180시시간이 된다. 이중 주로 사용되는 것은 년 단위의 삼원갑이며, 삼원갑 180년 중에서 첫 갑자년부터 60년 동안을 상원갑(上元甲) 다음 60년간을 중원갑(中元甲), 마지막 60년간을 하원갑(下元甲)이라 부른다. 삼원갑의 상원갑이 제일 처음 시작된 해는 ‘제원갑자(濟元甲子: 육십갑자가 최초로 시작된 해’라고 부르며 1983년을 기준으로 10,155,940년 전으로서 육십갑자로는 169,265 甲子 전(前)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해 동지일이 甲子年 甲子月 甲子日 甲子時가 되고, 이때부터 상원갑 ․ 중원갑 ․ 하원갑의 삼원갑이 끊임없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계산해 보면 1864년-1923년까지의 상원갑에 해당한다. 즉 ‘상원갑전계산(上元甲前計算)’에서 상원갑이란 바로 이 60년을 말하는 것이다.
또 삼갑(三甲)이란 역(曆)에서 말하는 상원갑(上元甲), 중원갑(中元甲), 하원갑(下元甲)을 합해서 부르는 말이다. 상원갑자 갑자(甲子)년부터 계해(癸亥)년 까지가 60년임으로, 삼갑년을 합산하면 180년이 된다. 그러나 삼갑년으로 햇수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계속 반복(反復)하여 상원갑으로, 중원갑으로, 하원갑으로, 이어져가면서 우주와 함께 지구와 함께 끊임없이 유전(流轉)하는 것이 우주의 원리(原理)이다. 그러므로 삼갑회(三甲回)는 우주의 원리에 따라 우주와 함께 지구와 함께 인류가 존재하는 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평화세계를 영속(永續)하도록 하는 모임임을 의미하는 것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양택 [陽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관련 자료들을 종합 정리함
註 00; 72둔(遁) - 옛날에는 지금 시간과 달리 하루를 12시간으로 했다. 이렇게 하루가 12시간이니 같은 간지(干支)의 시간이 돌아오기까지는 60시간이 걸린다. 60시간을 날짜로 따지면 5일이다. 따라서 5일이 지나면 1원갑(一元甲)이 지나간다.
처음의 1원갑(一元甲)은 상원갑(上元甲)이요, 두 번째 1원갑(一元甲)은 중원갑(中元甲) 세 번째 1원갑(一元甲)은 하원갑(下元甲)이다. 이것을 통칭(通稱)해서 3원갑(三元甲)이라 한다. 둔(遁)은 상원갑(上元甲)에 한번 생기고 중원갑(中元甲)에 또 한 번 생기고 하원갑(下元甲)에 한번 생기니 1년으로 계산하면 360일/5일=72 해서 72둔(遁)이 생긴다. 시간적으로 3원갑(三元甲)이 지나면 다시 상원갑(上元甲)이 돌아오기 때문에 날짜로는 15일 만에 한 절후(節候)가 바뀌게 된다. 따라서 1달에 2번 절후(節候)가 바뀌니 1년에 12달☓2회=24절후(節候)하여 1년이 24절후(節候)가 된다. 1년은 달로는 12달 날짜는 360일 시간으로는 4,320시간 절후(節候)로는 24절후(節候) 둔(遁)으로는 72둔(遁)이 되는 것이다.
이 둔(遁)은 도술(道術)계류가 아니고 조화(造化)계류이다. 72둔(遁)은 전능(全能)이고, 12통(通)은 전지(全知)이다. 도술(道術) 조화(造化)의 최고(最高) 극치(極致)가 창조(創造)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註 00; 육십갑자(六十甲子) - 10간(干)과 12지(支)를 결합하여 만든 60개의 간지(干支)를 육십간지·육갑이라고도 한다. 10간은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 계(癸)이고, 12지는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 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이다. 결합방법은 처음에 10간의 첫째인 갑과 12지의 첫째인 자를 붙여서 갑자를 얻고, 다음에 그 둘째인 을과 축을 결합하여 을축을 얻는다. 이와 같이 순서에 따라 하나씩의 간지를 구해 나가 60개의 간지를 얻은 후, 다시 갑자로 되돌아온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간에 6개의 지가 배당되는 셈이다. 간과 지가 사용된 역사는 매우 오래전인 듯하다.
중국의 BC 1766∼BC 1123년에 걸친 상(商)나라의 역대 왕의 이름을 살펴보면 태갑(太甲)·옥정(沃丁)·천을(天乙) 등 10간의 글자로 된 이름이 많으며, 이것으로 보아 이 시대에 이미 간지를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60간지는 원래 날짜를 세기 위하여 썼을 것이다. 이 60이라는 주기는 두 달쯤에 해당하는 적당한 주기이다. 또 십간십이지는 중국의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과 결합하여 만물의 길흉을 판단하는 데 쓰였다. 즉 사람의 성질과 운세(運勢)를 점치기도 하고, 나날의 길흉과 방위의 선택 등을 살펴보기도 한다. 범띠인 사람은 성질이 거칠다고 하고, 소띠는 느긋하다고 한다. 또 병오생(丙午生)인 여성에 대해서는, 오행설에 의하면 병(丙)은 화(火)이고 오(午)도 화이므로 화에 화가 겹쳤으니 이런 띠의 여성은 불에 불이 겹쳤다고 하여 성격이 거칠어서 남편을 짓밟는다는 속신(俗信)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미신이다. 간지를 나날에 하나씩 배당한 것을 일진(日辰), 다달에 하나씩 배당한 것을 월건(月建), 해마다 하나씩 배당한 것을 태세(太歲)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사전에서
海月神師 說法 中 ‘靈符呪文’ 에서
心者在我之本然天也 天地萬物本來一心 心有先天後天之心 氣亦有先天後天之氣 天地之心神神靈靈 天地之氣浩浩蒼蒼 滿乎天地亘乎宇宙也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마음이란 것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한울님이다 천지만물이 본래부터(根源的으로) 모두 다 한마음이다. 마음은 선천과 후천의 마음이 있는 것과 같이 기운도 또한 선천과 후천의 기운이 있다. 천지의 마음은 신기하고 기이하며 신령스럽고 영검하고 천지의 기운은 도도하게 흐르는 물줄기와 같고 검푸른 바다와 같이 커서 천지에 가득 차고 우주에 끝이 없이 뻗쳐(이어져) 있다.
‘開闢運數’에서는
先天生後天 先天之運生後天之運 運之變遷 道之變遷 同時出顯也故 運則 天皇氏始創之運也 道則天地開闢日月初明之道也 事則今不聞古不聞之事也 法則今不比古不比之法也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선천이 후천을 낳았으므로 선천의 기운(또는 운세)이 후천의 기운을 낳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운의 변천과 도의 변천은 같은 때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운세인즉 천황씨가 새로 시작되는 운세요, 도인즉 천지가 개벽하여 일월이 처음으로 밝힌 도요, 만사(萬事)인즉 지금도 들은 바가 없고 옛날에도 들은 바가 없었던 일이요, 법(法)인즉 지금도 없고 옛날에도 없었던 법이라 할 수 있다 .
吾道之運 堯舜孔孟之聖材多出矣 吾道 回復天皇氏之根本大運也 天皇氏無爲化氣之根本 孰能知之 知者鮮矣 人是天人 道是大先生主無極大道也 有運有信者一言而盡 不信天理者雖千言萬談 無可奈何也 一言而蔽之 都是在運數也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내가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도의 운수에는, 요순과 공맹과 같은 성인들이 많이 태어날 것이다. 나의 도는 천황씨의 근원적이고 본래적인 큰 운수가 반드시 다시 회복할 것이다. 천황씨의 무위화기의 근본을 누가 능히 알 수 있겠는가. 아는 사람이 적다. 사람이 한울님이요, 도는 대 선생님의 무극대도라 한다. 도운(道運)이 있고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한번 말하면 천지만물의 근본을 다 알아 들어 알 수 있으나, 천리를 믿지 않는 사람은 비록 천만마디의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하니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일이니, 한마디 말로 하면 모든 것이 운수에 달린 것이라 할 수 있다.
註 00; 무위화기(無爲化氣) - 무위화기란 인위적(人爲的)이 아닌, 작위적(作爲的)이 아닌(自然的으로) 또는 억지로 꾸미지 않은/만들지 않은 변화된 기운으로 천지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이 되는 기운이다. 즉 천지에 가득히 차서만물이 나고 자라는 힘의 근원을 말한다. 화기(化氣)란 다른 말로 하면 정(精)이 변전(變轉)하여 된 기운이다. 정(精)이란 생명의 발생과 그 활동을 유지하는 데 기본이 되는 물질로, 생명의 발생에 필요한 선천지정(先天之精)과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후천지정(後天之精)을 말한다. 또는 부모에게서 받은 선천지정(先天之精)과 음식을 먹어서 만들어내는 후천지정(後天之精)으로 나누기도 한다. 동의고전(東醫古典)에서는, 정(精)은 수곡지기(水穀之氣)와 호흡지기(呼吸之器)에 의하여 생성되며 신(腎)에 저장된다고 하였다. / 각종 어학사전과 문화콘텐츠닷컴 용어사전에서 종합정리함.
또 海月神師 說法 中 其他에서
天皇氏는 元來 天人合一의 名辭라, 故로 天皇氏는 先天開闢― 有人의 始神의 機能으로 人의 原理를 包含한 義가 有하니, 萬物이 皆 天皇氏의 一氣라. 今日 大神師 天皇氏로써 自處하심은 大神師 亦是 神이신 人이시니 後天五萬年에 此理를 傳케 함이니라.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천황씨는 원래 한울과 사람이 합일한 명사라, 그러므로 천황씨는 선천개벽으로 사람을 있게 한 시조신의 기능으로 사람의 원리를 포함한 뜻이 있으니, 만물이 다 천황씨의 한 기운이니라. 오늘 대신사께서 천황씨로써 자처하심은 대신사 역시 신이신 사람이시니 후천 오만년에 이 이치를 전케함이니라.
註 00; 천인합일(天人合一) - 천인합일이란 중국의 전통적인 고전사상으로 하늘과 사람이 합일체임을 밝히는 유교적 개념의 하나이다. 한울과 인간을 별개의 존재로 보지 않고 서로 상응하는 존재로 파악하는 사유(思惟)방식이다 한울과 사람은 상응(相應;상호 감응)하며 상생(相生)하여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또 천인합일이란 자연법칙이 인체상에 나타난다는 뜻도 있다. 즉 ”천상(天象)과 인사(人事)는 하나이다.” 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외계(外界)의 환경 문제는 인체의 내부에 드러난다.” 는 뜻이다. 황제내경에 ”유제내필형제외(有諸內必形諸外)” 란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안에 있는 것은 반드시 밖으로 나타난다.” 는 뜻이다. 즉 “인체의 내부에 있는 어떤 문제는 신체의 외부로 반드시 나타난다.” 는 뜻이다. 또 어떤 사람의 언행(言行)을 보고 그 사람의 인성(人性)과 신체적인 여러 가지 문제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은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루는 것을 요하며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룰 때 가장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은 한의학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이다. 그리고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은 풍수지리(風水地理)와 한의학(韓醫學)의 기본사상으로 운용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의 기원은, 중국의 하(夏)·상(商)·서주(西周) 시대에는 하늘이 자연과 사회를 주재하는 최고의 신(神)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천명론(天命論)은 춘추시대에 들어와 동요하기 시작해 춘추 말년에는 "천도(天道)는 멀고 인도(人道)는 가까우니 천도는 알지 못한다."라고 하여 천도와 인도를 구별하게 되었다. 공자(孔子)는 전통적 천명관을 수정하여 하늘이 인격신(人格神)이라는 생각은 부정하고 단지 천명(天命)의 작용만을 인정했다. 동시에 "하늘이 나에게 덕(德)을 주었다"라고 하여 인간이 가진 덕성을 천부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전국시대에 맹자(孟子)는 "마음을 다하는 것은 성(性)을 아는 것이며, 성을 아는 것은 하늘을 아는 것"이라고 하여 사람의 마음과 성이 하늘과 본래 일체이며, 진심(盡心)·지성(知性)이면 능히 천명을 얻는다고 했다. 맹자의 이러한 사고는 하늘이 모든 것을 포함하며 동시에 사람의 마음에 이것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천인합일 사상의 명확한 표현이었다. 한(漢)나라의 동중서(董仲舒)는 이러한 천인합일 사상을 계승하여 천명론과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을 결합한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사상체계를 세웠다. 그는 "사람은 하늘에 근본하여 만들어졌으며 하늘은 사람의 증조부(曾祖父)"라고 하며 하늘이 최고의 신이며 인간은 하늘이 창조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인간의 일체 행위가 천의(天意)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했다. 이와 함께 하늘과 사람 사이에는 상호 감응이 작용해서, 양자가 합해져 하나가 된다고 설명했다. 송대(宋代)에 들어와서 성리학자(性理學者)들은 이(理), 성(性), 명(命) 등의 개념을 가지고 천인합일을 논증하고자 했다. 이 가운데 정이(程頤)는 "하늘과 사람이 본래 둘이 아니므로 합(合)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고, 주희도 "하늘과 사람은 일물(一物)인데, 내외(內外)가 일리(一理)로 유통(流通) 관철(貫徹)하므로 간격(間隔)이 없다"고 설명했다. 천인합일은 천인관계를 파악하는 유교의 기본관점으로서 중국을 비롯한 동양 전통사상의 중요한 구성요소였다. / 브리태니커와 각종사전에 종합정리.
그리나 서소약(徐小躍)은『禪과 老莊』에서 ‘장자는 매우 명확하게 天과 人을 대비하여, 상호관계 가운데 각자의 특성을 얻게 하였다. 중국사상사에서 장자가 처음으로 명확하게 天人을 대비하여 해석하였고, 그에 따라 천인지학으로 하여금 함의가 매우 넓은 대학문으로 되게 하였다. 道家 自然主義의 天人關係는 실제로 장자로부터 진정으로 開創하였다.’ 고 했다/P230∼231.
註 00; 논어(論語)에 나타난 공자의 천인합일 사상 - 述而(22)편에서 ‘天生德於予/ 한울이 내 안에 德을 갖추도록 해 주었다.(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에서 덕(德)은 인간의 도덕적 본성을 의미한다. 한울이 인간에게 도덕적 가능성을 갖추도록 해주었고, 인간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즉 덕을 키우는 것이다. 한울과 사람의 관계는 도덕성을 부여해 주는 관계로 시작된다. 고 했으며 憲問 (37)편에서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其天乎/ ‘한울과 남을 원망하지 않고, 기초(또는 기본)를 익히고 배워서 높은 경지에 도달됐으니 나를 아는 것은 오직 한울(天)뿐이 아니겠는가?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라고 했다. 이는 일상사(下學)를 통해 天理(上達)를 알게 되었을 때 하늘도 자신을 잘 알아 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교의 천인합일 사상은 <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梵我一如)적인 존재론적 일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울은 인간에게 덕(德)을 주는 존재이고, 인간은 그 덕을 닦는 관계라는 차이가 있고, 그 덕을 닦아 인격을 완성한 후에야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공자의 사상에서 지행합일(知行合一)도 중요하고 정경합일(情景合一)도 중요한데 정경(情景)의 분야에서는 공자가 음악을 중시한 점이 <논어>에 나온다. 고 한다. / 논어와 관련 자료에서 종합
해월신사가 스승인 대신사가 천황씨라고 자처한 것에 대한 설법의 의도는, 동학이 어떤 부분에서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을 바탕으로 한 무극대도이며 이런 이치를 후천 오만년에 전하는데 의의가 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 있었다.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의 본원지(本源地)는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보고 있다. 朱熹가 지은 『近思錄』 上卷 PP.200-201. 近思錄 卷之一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濂溪先生曰 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 分陰分陽 兩儀立焉 陽變陰合 而生水火木金土 五氣順布 陽變陰合 而生水火木金土 五氣順布 四時行焉 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本無極也 五行之生也 各一其性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 而變化無窮焉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주 염계선생이 말하기를 ‘무극은 무극 그 자체이면서 태극이기도 하다. 무극은 동(動)과 정(靜)이 없으나, 태극은 움직이어 양을 낳고 움직임이 그 극에 이르게 되면 고요하게 되고 일동일정(하나하나의 움직임. 곧 모든 동작/필자)이 고요하여 음을 낳는다. 음이 고요하여 그 극에 도달하면 다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한 번 움직이고 한 번고요해지는 것이 양과 음의 서로 간에 그 근원(根源)이 되어, 음과 양으로 나눔에 양의(易學에서, 陽과 陰)또는 天地를 아울러서 이르는 말/필자)가 만들어져 따로따로 독립하게 되는 것이다. 양과 음이 서로 변하고 합해져서 수, 화, 목, 금, 토의 오행(五行)을 낳아 오행의 기운이 고루(또는 순차적으로) 퍼짐에 사시(春夏秋冬)가 이루어져 운행되는 것이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요 하나의 태극으로 태극은 본래(本來)는 무극인 것이다. 오행이 생겨남에 각기 그 성(性; 성품. 성정, 천성. 성질. 본질. 생명/필자)을 간직하니 무극의 진리와 음양오행의 정기(二五之精; 陰陽의 二氣와 五行의 純精/필자)가 심오하고 기묘하게 합쳐지고 엉기어서 건(乾)의 도는 남자를 이루고 곤(坤)의 도는 여자가 된다, 이 두 정기의 기운이 서로 교감하여 만물을 변화하고 새로 태어나고 무성하게 자라게 하니, 만물은 끊임없이 서로 생성하면서 무궁히 변화하는 것이 끝이 없는 것이다 / 近思錄 卷之一의 위의 인용문에는 ‘而生水火木金土’에서 ‘而生水木金土’으로 ‘火’ 字가 빠져 있다. / 필자 확인.
惟人也 得其秀而最靈 形旣生矣 神發知矣 五性感動而善惡分 萬事出矣 聖人定之以中正仁義(本註; 聖人之首 仁義中正而己矣) 而主靜(本註; 欲故靜) 立人極焉 故聖人與天地合其德 日月合其明 四時合其序 鬼神合其吉凶 君子修之吉 小人 悖之凶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오직 사람만이 그 만물 중에서 빼어난 기를 얻어서 가장 신령스러운 존재가 되어 형체가 이루어지고 나서는 정신이 앎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다섯 가지 성품(性稟;사람의 다섯 가지 성정(性情). 곧 기쁨(喜), 노여움(怒), 욕심(慾), 두려움(懼), 근심(愁) 또는 仁義禮智信을 말한다./필자)이 움직이어서 선함과 악함으로 나누어지고, 만사가 출현하게 된다. 성인들께서 중정(中正; 太極의 體用 곧 仁義에 對照되는 말이다./필자)과 인의(仁義)로써 안정시키고 고요함을 위주로 하여 사람의 법도를 세우셨다. 그러므로 성인이란 천지와 더불어 그의 덕이 합치며 해와 달과 더불어 그의 밝음이 합치되며, 사시와 더불어 그의 질서가 합치며, 귀신과 더불어 그의 길흉이 합치되는 것이니 군자는 이런 이치를 갈고 닦음으로써 길(吉)하게 되고 소인의 무리는 이를 거스르게 함으로써(천리, 천명, 천도를 따르지 않음으로써/順天理 順天命) 흉(凶)하게 되는 것이다
/ (本註; 聖人之首 仁義中正而己矣/ 성인의 도는, 인의와 중정이 으뜸으로 이것뿐인 것이다./필자) (本註; 欲故靜/ 만사에 욕심을 내지 않음으로 마음이 항상 편안하고 고요해지는 것이다/필자))
故曰 立天之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又曰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 大哉 易也 斯其至矣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그러므로 주역(周易)에서 말하기를, “하늘의 도 즉 천도(天道)를 정립하여 음과 양이라 하고, 땅의 도 즉 지도(地道)를 정립하여 부드러움과 강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사람의 도 즉 인도(人道/주역의 說卦傳에서는 人極이라 했다/필자)를 정립하여 인과 의를 드러내는 것이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시작을 근원(始原)으로 하여 종말로 돌아가므로 죽고 사는 것에 대한 원리(根源的인 理致/필자)를 알게 되는 것이다”고도 하였다. 위대함이여 그 변전(變轉; 易/필자)이여 그 이치의 무궁함과 지극(至極)함이여! / 주역의 說卦傳에서는 天道, 地道, 人道를 ‘三才의 道’라 한다.
誠無爲 幾善惡德 愛曰仁 宜曰義 理曰禮 通曰智 守曰信 性焉安焉之謂聖 復焉執焉之謂賢 發微不可見 充周不可窮之謂神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인성(人性)의 본질을 성이라 할 수 있으므로, 그것은 지선(至善)으로서 오상(五常)이므로 주역의 이치에 따라 움직이고.(여기에선 노자의 무위자연인 꾸미지 않은 인위적인 아닌 작위적(作爲的)이 아닌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천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無爲; 順天理 順天命/필자) 처음부터 인간의 성정에는 선과 악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한 선악의 덕 가운데서 사랑하는 것을 인(仁)이라 하고, 사물의 이치에 따라 옳은 것 즉 인간의 도리에 맞는 것을 의(義)라 하고, 천리에 맞는 것을 예(禮)리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을 지(智)라 하며, 천리에 어긋나지 않게 지키고 행하는 것을 신(信)이라 한다. 타고난 본성에 따르는 것(安居)을 성인이라 하고, 타고난 본성으로 돌아가 그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을 현인(賢人)이라 하나 그렇게 드러나는 것을 보기는 드문 것이다 골고루 충만하여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을 신(神; 天理의 作用이 微妙함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말한다. 人格神이 아니다./필자)이라 부른다.
伊川先生曰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中也者 言寂然不動者也 故曰天下之大本 發而皆中節 謂之和 和也者 言感而遂通者也 故曰 天下之達道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이천 정이(程頤)선생이 말하기를 ‘喜怒哀樂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을 중용(中庸)이라 한다. 중용이라는 것은, 본래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으므로 이것을 말한다. 그런 까닭에 천하의 대본(가장 큰 근본/필자)이라 말한다. 드러나서 모두가 절도(節度)에 맞는 것을 화(調和)라 한다. 조화란 것은 천리에 감응하여 마침내 천리와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천하의 달도(達道; 시간과 장소의 변화와 상관없이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필자)라고 한다./中庸 장구(章句) 1 에 있는 말./ 『論語 中庸』 P. 372.
註 00; 『論語 中庸』 P. 372.와 『大學 中庸』 P. 146.에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中也者 言寂然不動者也 故曰天下之大本 發而皆中節 謂之和 和也者 言感而遂通者也 故曰 天下之達道 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이라 하고 있다.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의 뜻은 위에서 말한 ‘중화(中和)의 덕(德)을 지극하게 하면, 한울과 땅이 제 자리에 바로 서서(제 역할을 다하여), 만물을 육성(育成)하게 된다.’ 는 뜻이다.
心一也 有指體而言者(本註; 寂然不動 是也) 惟觀其所見如何耳 乾天也 天者乾之形體 乾者天之性情 乾健也 健而無息之謂乾 夫天 專言之則道也 天且弗違是也 分而言之 則而形體謂之天 以主宰謂之帝 以功用謂之鬼神 以妙用謂之神 以性情謂之乾 四德之元 猶五常之仁 偏言則一事 專言則包四者 天所賦爲命 物所受爲性 鬼神者造化之迹也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마음이 하나라고 하는 것은, 마음은 본래 적연(寂然)하여 움직임이 없는 까닭에 본체(本體; 性)로 설명을 할 때가 있고, 작용(作用; 情)으로 말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관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잘 살펴야 한다. 건(乾)이란 한울을 말한다. 한울은 건이 나타난 형체이며, 한울의 성정인 것이다. 건은 한울이 운행(運行)하는 것으로 운행하여 조금도 쉬지 않는 것을 건이라 한다. 대체로 한울을 한마디 말로 하면 도(道)인 것이다. 한울은 또한 운행에 어긋남이 없는 것을 말한다. 자세히 나누어 설명하면 형체를 말할 때는 한울이라 하고, 주제자로 말할 때는 상제(上帝)라 하고, 공용(功用; 조화의 작용으로 나타난 흔적)으로 말할 때는 귀신(鬼神)이라 말하고, 묘용(妙用; 신묘한 작용, 또는 불가사의한 작용)으로 말할 때는 신(神)이라 말하며 성정(性情)으로서는 건(乾)이라 말한다. 한울의 사덕인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원(元)은 오상의 인(仁)과 같다. 한 편으로 치우친 말로 하면, 하나이지만, 전체적(總括的)으로 말하면 위에서 설명한 네 가지를 포함하게 된다. 한울이 부여한 것을 명(命; 天命)이라 하고, 만물이 품수(稟受; 선천적으로 재능이나 성품을 타고남/필자)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 귀신이라는 것은 조화의 자취(痕迹; 자국 또는 드러난 모습/필자)인 것이다./『近思錄』上卷 卷之一 P. 201.의 원문에는 ‘物所受爲性’이 누락(漏落)되어 있다.
한상봉 기자가 2010년 1O월 18일자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민중 신학의 쇠퇴. 새로운 민중개념이 필요하다. 라는 세미나에 발표된 ‘씨알사상과 비참의 현상학 제기’ 의 내용 중에서
‘이 자리에서 박재순 소장(씨알사상연구소)은 민중신 학을 평가하면서, "민중 신학은 서구신학과 기독교가 영적 생명력을 잃어버렸을 때, 예수와 오늘의 민중을 동일시함으로써 예수와 민중을 지금 여기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끌어들였다"며 특히 침묵을 강요당하던 1970-80년대의 한국 민중들의 증언자로서, 민중을 사랑하고 그들의 처지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고난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민중 신학은 민중이 곧 오늘의 그리스도라는 '민중 그리스도론'과 오늘의 구원은 민중의 고난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민중 구원론'을 내세웠으며, 이는 인내천(人乃天) 등 신인합일(神人合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전통을 지닌 아시아적 전통에 맞닿아 있다고 평가했다. -중략- 씨알사상만이 오늘날의 사회경제정치의 문제뿐 아니라 생태적 영성적 위기를 극복하고, 민족국가의 모순과 갈등을 넘어서는 평화를 바랄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즉, "씨알사상은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를 심화시키고 정화시키며, 결국 자기를 넘어서 서로 연대하게 만들며, 고난에도 절망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게 한다."고 말했다.’ / 이하 생략<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고 한다. 이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씨알사상까지도 동학이 가지고 있는 핵심 사상들인 인내천(人乃天) 등 신인합일(神人合一), 천인합일(天人合一)을 민족의 전통사상으로 평가 수용하면서 더 나아가 이 사상들이 아시아적 전통에 맞닿아 있다고 평가하고, 왜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가? 라는 점에 대하여 천도교는 관심이 가는 것이다.
2004년에 발표된 정경일의 ‘동학의 문법. 不然其然 이야기’에서 ‘수운의 불연기연은 존재론을 극복한 창조적 진화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라고 하여 창조적 진화론이란 용어가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교단 내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다.
‘첫째, 불연기연은 '생성'의 이야기이다. 수운은 "불연기연" 둘째 절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사물의 형체를 보고 헤아리는 생각으로 말하면, 모두 그럴 듯하여 그런 것 같고, 사물의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서 가늠하여 살펴보면, 그 이치가 멀고도 멀어서 이 모든 그윽하고 아득한 일이므로 헤아려 말하기 어려우니라."
註 00; 번역은 동학연구원 편, 한글 동경대전(서울 : 자농 1991)을 따랐다고 註에서 밝히고 있고 인용문의 原文은 不然其然의/ ‘歌曰 而千古之萬物兮 各有成各有形 所見以論之則 其然而似然 所自以度之則 其遠而甚遠 是亦杳然之事 難測之言’을 찾아 필자가 덧붙임.
이 뜻을 풀이하면, 현상으로 보면 그런 것 같지만 그 근본으로 보면 말하기 어려운 것(難測之言)이라는 이야기다. 여기서 '기연', '그렇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 즉 생각이 미친 것을 의미하고, '불연',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생각이 '아직' 미치지 못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연'이라는 '테제'와 '불연'이라는 '안티테제'에서 기연은 존재의 질서로서 밝힐 수 있는 것, 즉 현상적인 관찰이 가능한 세계이며, 불연은 생성의 원리이므로 밝혀지기 어려운 것, 그러나 그렇게 되고야 마는 필연성이다. 이것은 '존재'가 아닌 '생성'의 차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론을 나타내고 있다. 수운은 형태를 갖추면서 생성, 진화하고 있는 천고의 만물들이 그 현상으로 보면 그렇고 그런 것 같이(其然似然) 보이지만, 그 생성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不然)고 했다. 그러므로 생성하는 것을 변하지 않고 고정된 틀, 즉 '존재'의 구조로 보면 '그렇다'와 '아니다'의 대립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긍정과 부정의 이원론이란 '생성'을 '존재'로 보는데서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운의 불연기연은 존재론을 극복한 창조적 진화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창조적 진화론이라는 것의 근거는 다음의 성찰이다.
내가 나를 생각하여 보면 부모가 여기에 있고, 뒤로 후손을 생각하여 보면 자손이 저기에 있느니라. 미래의 세상일과 견주어 보면, 이치는 지금 내가 나를 생각하여 보는 것과 다름이 없고, 지나간 세상일을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사람은 어떻게 해서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의심스런 마음을 분간하기 어렵도다.
註 00; 번역은 동학연구원 편, 한글 동경대전을/P. 164. 따랐다고 註에서 밝히고 있어, 인용문의 原文/ ‘我思我則 父母在玆 後思後則 子孫存彼 來世而比之則 理無異於我思我 去世而尋之則惑難分於人爲人’을 찾아 필자가 덧붙임.
위의 글에서 수운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순차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미래가 들어오고, 과거가 들어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김지하는 수운의 '불연기연론'을 동양 최초의 진화사상이라고 설명하고, 그 특징으로 창조론과 진화론을 결합시키는 은유와 암시의 체계라고 하였다. 3) 또 다른 글에서는 '화엄적 진화론'이라고 설명하는데, 그 내용은 수운의 진화론은 시간방향의 미래주의적 진화가 아니라 사방팔방 시방(十方)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진화이며 동시에 생명의 근원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가는 진화론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생성이란 현재에서만 생겨나는 현재 이후의 사건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함께 작용하며 만들어내는 화엄적 생성인 것이다.
둘째, 불연기연은 '반대일치'의 이야기이다. 하나의 평범한 사실에는 항상 두 가지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한국인의 넓은 마음이다. 수운의 논리구조는 보편과 특수를 분별하면서도 그것을 근원적인 통일성 속에서 파악하는 반대일치의 논리속에서 사물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논리구조이다. '그렇다'와 '아니다'라는 모순율, 배반율의 양극적 판단은 수운에게서는 조화를 이룬다. 그는 절대통일의 자기분화성을 체험함으로서 이 이율배반의 세계현실을 '불연'과 '기연'의 두 명제로 표현했고, 이 이원화된 시공의 우주를 다시 절대모순의 자기동일성으로 환원시키려는 조화적 원리를 전개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불연기연의 반대일치의 논리는 '상보성'으로 해석된다. 즉 기연으로 이해되는 앎이 전부가 아니므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여기서 기연과 불연, 긍정과 부정은 동전의 양면이지 대립 갈등의 구조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상보성을 강조한 것이다.
"아아! 이와 같이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림이여! 그것이 어찌하여 그런가를 살펴보니,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것 같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렇지 않도다"
註 00; 번역은 동학연구원 편, 한글 동경대전을/ P. 165. 따랐다고 註에서 밝히고 있어, 인용문의 原文 / ‘噫 如斯之忖度兮 由其然而看之則 其然如其然 探不然而思之則 不然于不然’을 찾아 필자가 덧붙임.
수운의 '불연기연'을 요소적이고 환원적인 방법으로 분석한다면 반드시 '논리적 부적합성'의 평가를 내리게 될 것이다. '불연'은 '불연'이고 '기연'은 '기연'이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인 논리이며, 현실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보이는 것'에만 그 관심을 기울이려 하는 세계관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예수는 "너는 나를 보았으므로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요한복음서 20:29) 라고, '오늘' 도마에게 '보지 않고도' 믿는 마음을 요구하셨다. 눈에 보이고 확인되고 객관적으로 검증되는 것만이 세계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아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이 떨어지지 않고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세계현실이다. 그 현실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 때 그 이야기는 생명의 문법이 되는 것이며, 살아있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면에서 수운의 '불연기연'은 일반논리로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삶에서는 살아있는 본질을 말하는 살아있는 이야기이다. 세계는 역설로 가득하며, 반대들이 하나로 일치하고 있으며, 모든 것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어떻게 하느님이 인간이 되실 수 있는지, 왜 그토록 투박하고 먹고 마시기를 탐하며 죄인과 어울려 지냈던 이단아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높일 수 있는지를 되새기는 것은 삼단논법, 형식논리로는 신앙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를 따라 죽기까지 충성하고자 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본질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문법이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부적합성을 적합성으로 받아들이고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현실이다. 수운의 불연기연은 본질적으로 이 세계의 각 부분이 서로를 적대하고, 억누르고, 밟고 넘어서는 것이 아님을 밝히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바다로 '살아있는 이야기'의 추구이다. 이 역설과 생성과 일치의 문법으로 동학의 한울님 사상, 인간관, 자연관의 요체를 파악하여, 그 생명 사상적 이야기로서의 한국적 생명신학의 가능성을 찾아보도록 한다. / ‘동학의 문법 不然其然 이야기’에서 발췌.
천도교의 우주관과 역사관 연구.(7-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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