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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無極大道는 得道, 東學은 創道, 天道敎는 大告天下.(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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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댓글 0건 조회 1,962회 작성일 18-02-0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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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極大道는 得道, 東學은 創道, 天道敎는 大告天下.
천도교 홈에 게재된, 본인의 모든 글과 동학, 천도교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은, 모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카페(http://cafe.daum.net/oamdonghak)의 김 용천 자료실과 교리, 교사 연구 논문과 학술논문 자료실에 게재되어 있사오니, 자주 방문하시어 많이 읽어주시고, 교단발전에 널리 활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알림 ; 방문자 여러분의 연구소 방문은, 필자의 카페주소인,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http://cafe.daum.net/oamdonghak)를 클릭하여 ‘김 용천 자료실’을 찾으시면, 회원이 아니시더라도, 방문객은 누구나 각 종 분야에서 선정(選定)한, 일만여 건(一萬餘 件)의 자료들을 검색하여 읽고,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포덕 159(2018)년 2월 3일.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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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極大道는 得道, 東學은 創道, 天道敎는 大告天下.(2-1)
천도교의 자유게시판뿐만 아니라, 개별적 목적과 다양한 指向點을 가진 수많은 사회단체 조직들의 자유게시판, 그리고 개개인이 개설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사이트에 마련된 자유게시판은 가장 제약이 적은 개방형 의사소통의 광장이라 할 수 있다.
‘자유게시판이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나 홈페이지에 거의 반드시 하나 정도는 있는 게시판. 자유게시판이라는 명칭이 가장 널리 쓰이지만 이름이 달라도 이 기능을 하는 게시판은 어지간하면 하나는 존재한다. 특정한 주제 없이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담당하며, '자유게시판'을 줄여서 자게라고도 하며, '자유게시판 이용자'를 줄여서 자게이라고 하기도 한다.
SLR클럽의 자유게시판에서 파생한 '자게이'라는 사이트도 있다.
1. 높은 접근성 - 클릭 횟수나 커뮤니티 접속 시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메뉴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또 활동하는 데 등업이 존재하는 커뮤니티의 경우 대게 자유게시판은 회원등급이 낮아도 활동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2. 주제의 잡합성- 대다수의 커뮤니티는 결성 목적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건프라 커뮤니티의 경우 대부분 건프라 출시정보나 구입루트, 조립방법, 리뷰 등등을 다루게 되는데, 리뷰 게시판 같은 곳에는 당연히 건프라 리뷰를 해야 하며 다른 주제의 글은 제한 당한다. 하지만 자유게시판은 건프라와 전혀 상관없는 주제에 대해 써도 큰 문제없이 허용되는 경우가 많다.’ 라고 나무위키는 정리를 내리고 있다.
여기에서는 익명성(匿名性)에 대한 설명이 없지만, 상당수의 게시판에서는 익명성을 수용하고 있다. 익명성을 수용하는 상황, 이로 인한 폐단은 감수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종교집단의 모든 게시판은 익명이 아닌 실명으로 활동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자의 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종교인의 익명은 반종교적이며, 이율배반적이다.
註 00 ; 인터넷의매체적 특성
인터넷의 개방적 구조(Open Architecture)에 의해서 정보개발과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방적인 구조의 인터넷이 가질 수 있었던 특징으로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자유로운 정보의 공유 및 자기표현의 공간이다. 이 특징은 전세계의 여러 통신망들이 합쳐서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네트워크로 인터넷의 구조적 특징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두 번째, 컴퓨터를 이용한 각종 매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의 공간이다. 인터넷이 연결된 모든 컴퓨터는 사이버공간으로 모두 편입되게 되면서 모든 매체는 인터넷이라는 킬러 어플리케이션(Killer Application)으로 통합되는 특징을 말한다. 그 예로, 인터넷 신문, 웹캐스팅, 인터넷 라디오, 인터넷극장 등 현실세계에서 존재하는 오프라인상의 모든 매체들은 이미 온라인과 연계시킴으로써 온․오프라인의 벽은 거의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세 번째, 현실세계의 공간과 시간의 제약 극복이다. 즉, 인터넷은 기존의 물리적․시간적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를 하나로 묶음으로써 진정한 글로벌화를 이루었다.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논한 시공간의 압축(time-space compression)으로 인해서, 산업혁명 이후까지도 국지적인 제약에 묶여 있던 정보와 자본 등이 거의 빛의 속도에 가깝게 사이버 공간속에서 전송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면서, 정보혁명, 디지털 혁명으로 표현되는 정보의 빅뱅을 이루게 되었다. 그 결과 인류의 기술적인 발전은 과거와의 확연히 다른 발전 속도를 보이고 있다. /출처:http://kin.naver.com/qna/detail.nhn?
자유게시판은 다양한 雜合性의 정보 교류와 사회적 신분과 계층의 제한이 없는 接近을 통한 의사소통의 광장이란 점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뿐만 아니라 所信이 있는 주장과 의견을 표현하여 방문자들에게 共感을 유도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종교단체와 같은 특수한 목적을 가진 단체의 자유게시판은, 약간의 접근성이 떨어지더라도 방문자에 대한 일정부분 제약을 가할 필요가 있게 된다.
교단의 포교나 발전에 저해될 수 있는 요인이 내재되어 있다고 판단되는 잘못된 내용의 글이 광범위하게 파급되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한 제약이 묵인된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게재된 내용이 의도적이거나 不實에 의해 교단의 공식적인 기록이나 입장에 반하는 글에 대한 심사가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게 한다.
교단의 중견 원, 주직이라 할 수 있는 교구장(전교실과 종학대학 그리고 수도수련원 포함)을 필두로 한 임직원에 해당되는 동덕이 필자가 되어 게시한 글에는, 교단의 공식적인 기록이나 입장에 반하는 글의 내용이 게재되어서는 안 된다. 중견 지도자급이라 할 수 있는 교단의 중견 원, 주직에 해당하는 분들의 글은, 교리와 교사에 관련하여서 철저한 자료 검증을 통한 글이어야 하고, 교의(敎義)나 교사의 해석에 있어 교단의 공식적인 기록이나 입장에 반하여서는 안 된다. 비록 교리 교사의 전문연구 게재난이 아닌 자유게시판에 게재되었더라도, 안으로는 교도 교화의 기능을 다하는 것이고, 밖으로는 천도교에 대한 홍보의 기능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기술이란 있을 수 없다. 다음은 어떤 중견 교역자가 써 최근에 게시한 글 중에서 잘못된 것을 발췌하여 왜 잘못되었는가를 밝혀보고자 한다.
‘일직이 동학· 천도교 창시자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말씀이 생각난다.’에서
‘일직이’는, 이른 시기에. 또는 매우 오래전에. 란 의미를 가진 ‘일찍이’가 표준어이므로 잘못된 표기이다.
‘동학· 천도교 창시자 수운 최제우 대신사’에서’ 수운 대신사는 동학의 창시자 또는 창도자이지, 동학· 천도교 창시자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아니다. 그 이유를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밝혀보겠다. 천도교 중앙총부가 간행하여 배포하고 있는 천도교의 안내서이자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 『천도교』 P, 6. 註에서
‘水雲은 崔濟愚의 號이고 大神師는 천도교에서 최제우 선생을 높여 부르는 존칭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자상하게 설명되어 있는데도 이런 잘못을 저지르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위의 입문서인 『천도교』 P, 6.의 수운대신사와 창도정신의 첫줄에
‘동학· 천도교를 창도한 수운대신사(水雲大神師)의 이름은 최제우(崔濟愚)이다.’ 라고 한 잘못된 기술에서 출발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학· 천도교 창시자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말씀’의 올바른 기술은, 최소한으로 ‘천도교의 전신인 동학의 창도자 또는 창시자이신 수운 대신사 최제우의 말씀’이어야 하는 데, 이 기술이 매우 어색하므로 간략하게 ‘동학을 창도한 수운대신사의 말씀’이 가장 올바른 기술이 된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아니고 ‘수운 대신사 최제우’가 올바른 존칭의 표기이다.
올바른 기술의 예를 들면,
수운대신사께서는 동학을 창도하셨다. 또는 동학을 창도하신 수운대신사께서는 ---
의암성사께서는 천도교를 대고천하하셨다. 또는 천도교를 대고천하하신 의암성사께서는---이라고 기술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 된다.
필자가 과거 교단 내에서 스승님에 대한 올바른 존칭을 사용하고 있지 않는 상황을 우려하여, 2003년 7월 4일자로 천도교 자유게시판과 관련게시판 20여 곳의 자유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게시한 바가 있다.
‘스승님의 존칭을 바로 쓰자.
교단 안에서 우리 스스로가 스승님의 존칭을 몇 대 몇 대 교주로 쓰는 것은, 비교인뿐만 아니라 타 종교인들에게 우리의 모습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교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공식 명칭을 써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스승님을 비하하거나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못 말하고, 모든 기록에 잘못 쓰면, 남들은 의심 없이 그것을 믿고 사용하게 됨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스승님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입니다. 스승님의 공식 명칭은 다음과 같습니다. 포덕 122(1981)년 1 월 1 일에 간행한 천도교 백년 약사<상권> 1-4페이지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제 1 세 교조 수운 대신사 최 제 우.(第 1 世 敎祖 水雲 大神師 崔 濟 愚)
제 2 세 교조 해월신사 최 시 형.(第 2 世 敎祖 海月神師 崔 時 亨)
제 3 세 교조 의암성사 손 병 희.(第 3 世 敎祖 義菴聖師 孫 秉 熙)
제 4 세 대도주 춘암상사 박 인 호.(第 4 世 大道主 春菴上師 朴 寅 浩)
우리들의 잘못으로 시중의 수많은 기록물에 도주, 교주 또는 몇 대 몇 대로 기록된 우리 교단의 스승님들께 죄송함을 금할 길이 없을 뿐더러, 제가 천도교인이라고 알고 있는 주위 분들을 볼 때마다, 제 스승님 하나 제대로 불러드리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바로 씁시다. /2003, 7, 4. /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카페 / 김용천 자료실에 게재, /http://cafe.daum.net/oamdonghak/EpI/4.’
‘동학· 천도교 창시자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잘못된 기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교단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天道敎創建史』에 의하면,
布德一年 庚申四月五日 己時(午前十一時)에 일어난 수운의 득도과정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PP.11-14.) 이어서 大覺(二)라는 소제목 아래 庚申四月五日부터 庚申九月二十日까지의 天師問答의 과정과 장면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PP.14-17.) 이로써 수운은 무극대도를 대각 또는 득도를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에는 대각 또는 득도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다.
수운이 布德二年 辛酉布德을 하면서 論學文(一名 東學論)의 핵심적인 내용을 도제들과의 문답에서 도의 이름은 천도이고, 학은 동학이라고 설파함으로써 東學이라는 도학이 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論學文이 집필되어 발표된 것이
‘1861년 6월에 무극대도를 포덕하기 시작한지 6개월만인 1862년 1월에 비로소 동학이라고 학의 이름을 선언한 셈이다.' /P.170. 『동학 1』 표영삼 통나무 2004.라고 기술하고 있으므로, 동학의 창도는 정확히 말하면 1862년 1월부터라 할 수 있다.
천도교가 동학과 천도교에 대한 교단의 공식입장을 밝힌 바는 없지만, 교단이 간행한 핵심적인 출판물들에서 기술된 것을 발판으로 정리한다면, 동학은 유불선 3교의 도학을 뛰어넘은 ‘後天의 道學’이라는 의미의 기술을 하고 있었고, 천도교는 세계적 종교이며, 개방적 종교이고 민족종교이며 고급종교라고 기술하고 있다.
天道敎의 敎名은 『天道敎創建史』에 의하면,
-前略 十二月一日에 敎名을 天道敎라하니 이는 大神師의 道則天道라 하신 本名을그대로내놓은것이요 다시 天道敎의 이름을 天下에 廣佈하고 - 以下省略/P.53. 第三編 第七章 甲辰革新運動.
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교단의 다른 기록 중의 하나인 趙基周著 『東學의 源流』에서. 천도교의 大告天下에 대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大告天道敎出顯 / 현대어 에선 出現
道則(雖)天道 學則東學이니 卽 古之東學이 今之天道敎라.
宗旨는 人乃天이요,
綱領은 性身雙全 敎政一致요,
目的은 輔國安民 布德天下 廣濟蒼生 地上天國建設이요,
倫理는 事人如天이요,
修行道德은 誠敬信이다.’ 라고 상세히 기록하였다.
註 00 ; 위의 내용은, 1979년 7월 17일에 간행된 趙基周著 『東學의 源流』에서. / 1905년 12월 1일자 게재신문인 일본신문의 이름과 몇 면, 몇 단 크기의 광고인지 밝혀져 있지 않다.>에만 있는 것으로 PP.230-232. 참조하시면 그때 정황을 자세히 알 수 있다. / 筆者의 拙著 “東學思想 展開의 題 問題” 중 ‘인내천의 참 뜻과 유래의 관한 연구’에서.
註 00 ; 顯道의 意味는 ‘道의 正體를 밝고 뚜렷하게 세상에 알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顯’ 字가 담고 있는 뜻은, 밝은 것, 뚜렷이 나타난 것, 뚜렷한 것, 구체적인 것, 환한 것을 의미하고 있다. 例로 다음의 단어들의 뜻을 살펴보면, 顯道의 意味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顯出(두드러지게 드러남. 또는 드러냄.) 顯名(이름을 세상에 드러냄.) 顯示(두렷하게 나타내어 보여줌.), 顯顯(명백하게 들어난 것.), 顯現(명백하게 나타남과 또는 나타냄.), 顯密(뚜렷하고 은밀함. 顯敎와 密敎) 顯彰(밝게 나타냄 또는 뚜렷하게 나타냄.) 顯著(뚜렷하게 드러남.), 顯道(밝고 뚜렷한 도.), 顯赫(빛나게 드러나서 뚜렷하다.), 顯效(두드러진 보람 또는 뚜렷하게 나타난 효험.)
이로써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는 어지러운 세상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의 길을 얻고자 주유팔로(周遊八路)를 하고 돌아와 布德一年 庚申四月五日 己時(午前十一時)에 大神師께서는 無極大道를 得道를 하였다. 그후 天師問答을 통하여 동학을 大覺 創道하셨다. 동학은 창도이후 수많은 수난을 겪으면서 1905년에 이르러 12월 1일자로 第三世 敎祖이신 義菴聖師 孫秉熙께서 ‘道則(雖)天道 學則東學이니 卽 古之東學이 今之天道敎라.’고 만천하에 선언(大告天下)하시면서 ‘大告天道敎出顯’케 하였다.
註 00 ; ‘水雲은 崔濟愚의 號이고 大神師는 천도교에서 최제우 선생을 높여 부르는 존칭이다.’ 『천도교』 P, 6.
註 00 ; 일반적으로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세태와 물정을 두루 살펴보는 것을 周遊天下라 표현하는 데, 천도교에서는 수운의 周遊天下를 周遊八路라고 기술한다. 『천도교』 P, 6.에서
‘또한 이러한 대신사의 행각을 천도교에서는 ‘주유팔로(周遊八路)’라고 부른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의암 손병희선생이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大告天下)한 이유와 의미 그리고 시대적 상황을 『義菴孫秉熙先生傳記』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李容九의 親日賣國行動으로 因하여 극도로 화가 난 의암선생은 李容九一派와 分離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겼다. 그대로 참고 있다가는 자신도 親日이란 누명을 벗어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孫秉熙란 제三세교조의 이름을 팔아서 순진한 동학교도들이 李容九의 속임수에 빠져넘어갈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乙巳條約이란 亡國條約이 一九O五년 一一월 一七일에 맺어졌는데 電擊的으로 맺어진 이 條約後에 더 이상 日本에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의암선생은 즉각적으로 東學을 天道敎라고 改稱하였다. 이것은 一九O五년 一二월 一일이며 天道敎란 名稱의 由來는 東經大典에 道則天道란 데서 따온 것이며 敎字만은 義菴선생이 마음대로 宗敎란 뜻에서 붙인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崔水雲선생께서 일찍이 「道」는 天道이나 學인즉 東學이란 말에서 근거한 것이다. 이 敎字를 붙인 연유에 대하여 의암선생은
「敎라 함은 宗敎라는 敎字를 의미한 것이니 只今 世界를 당하여 文明各國이 信敎의 자유를 허락한다 하는 法界에 의하여 그러한 것이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와 같이 東學을 天道敎로 선포한 것은 동학이 은도로 四六년간 지목을 받으면서 현도가 되지 못하였던 것을 손병희선생이 四五세 되던 해로 포덕 四六년 서기 一九O五년 一二월 一일에 이르러 天道敎라고 天下에 宣布하였다. / P.203.
위에서 교조와 동학의 창도에 대하여 살펴본 글 다음에 기술된 다음의 글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수운 선생은 남북과 일본에 관련된 예언적 경고적 말씀을 경전에 남겼다. 먼저 남북과 관련된 말씀을 동경대전 시편 우음 첫머리에 ‘남진원만북하회(南辰圓滿北河回) 대도여천탈겁회(大道如天脫劫灰)-남쪽별이 둥글게 차고 북쪽 하수가 돌아오면 대도가 하늘같이 겁회를 벗으리라’고 하였다. 즉 남한사람들이 화합과 통합을 이루게 되면 북한사람들도 마음이 돌아와 갈라진 것이 없는 하늘처럼 남북이 상극을 벗어버리고 상생의 대화합 즉 평화통일의 길로 들어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라고 기술한 것은, 우음의 첫 시구인 ‘남진원만북하회(南辰圓滿北河回) 대도여천탈겁회(大道如天脫劫灰)’ 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일 수 있다. 그러나 교단 내에서는 위와 같은 해석을 하는데 대한 교단의 공식적인 입장도 없고, 학계와 교단 내에서 천도교를 대표할 만한 천도교경전을 연구번역을 하신 분 중에도 없다. 위와 같은 예언적 해석은 동학의 창도정신과 천도교의 대고천하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도학과 종교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동학과 천도교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한데서 나온 잘못이라 할 수 있다.
천도교중앙총부와 교단을 대표할 만한 표영삼, 그리고 윤석산의 저작물에 나타난 것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1. 『天道敎經典』 천도교중앙총부. 포덕 142년 3월 1일. 5판.
南辰圓滿北河回 大道如天脫劫灰/偶吟.
남쪽 별이 둥글게 차고 북쪽 하수가 돌아오면 대도가 한울같이 겁회를 벗으리라./P.92.
註 00 ; 겁회(劫灰) - (화재나 전란 등) 대재난을 겪은 흔적.
2. 『동학 1』 표영삼. 통나무. 2004.
南辰圓滿北河回 大道如天脫劫灰
남쪽별이 돌아서 차면 은하수도 차지만 큰 도는 하늘같아 생명시간을 벗어나네. /PP.181-182.
3. 『東經大全』 尹錫山. 동학사. 1998.
南辰圓滿北河回 大道如天脫劫灰 / P.248
남쪽의 별이 가득차 오르고 북으로는 은하수가 둘러져 있구나. 대도는 바로 이 천체의 변화와 같아 크나큰 재앙에서부터 벗어나리라./ P.252. 라 해석하고 尹錫山은 註解에서 南辰圓滿과 北河回를 천체의 커다란 변화로 보고, 선천과 후천의 세상의 갈아듦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위의 3개의 자료에서 南辰圓滿北河回 大道如天脫劫灰의 시문의 해석에 있어서의 차이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남쪽 별이 둥글게 차고 북쪽 하수가 돌아오면 대도가 한울같이 겁회를 벗으리라.
2. 남쪽별이 돌아서 차면 은하수도 차지만 큰 도는 하늘같아 생명시간을 벗어나네.
3. 남쪽의 별이 가득차 오르고 북으로는 은하수가 둘러져 있구나. 대도는 바로 이 천체의 변화와 같아 크나큰 재앙에서부터 벗어나리라.
「偶吟」의 시적 구조와 내용에 대하여 천도교 중앙총부는 부연설명을 하고 있지 않지만, 표영삼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862년 1월부터 6월까지 교령산성에 체류하면서 두 가지 짤막한 시를 지었다. 하나는 南辰圓滿北河回에서 鳳鳴周室爾應知 까지이고, 하나는 高峯屹立에서 百用之不紆까지이다. 앞의 우음(偶吟)은 “말 위에서 한식을 맞으니 고향이 아니로다. 내 집에 돌아가 옛 일을 벗 삼으리라.”라는 대목이 들어 있어 3월에 지은 것으로 여겨진다.
뒤의 우음(流高吟의 잘못-오암)은 여름철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검은 구름이 떠오르니 마치 행렬을 지어가는 군사들의 위엄을 보는 것 같다” 는 구절이 있다. 이 두 편의 시는 한구절 한구절마다 독립된 사상을 담고 있다. 따라서 구절마다 떼어서 감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남쪽별이 두루치면 은하수도 돌아가니, 대도는 천체처럼 겁회(劫灰)를 벗어나네”라는 식으로 음미하여 볼 수 있다. 이 시는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은적암에서 지은 느낌이 든다. /P.181.
라고 표영삼은 우음에 대한 창작시기와 장소에 대하여 위와 같이 해설하고 있지만 소홀이 다루고 있다. 流高吟의 시문을 우음으로 착각하거나 원문의 해석에 있어 한 페이지 사이에서 다른 기술을 하고 있다. P.181.에서 우음의 한 시문장을 “남쪽별이 두루치면 은하수도 돌아가니, 대도는 천체처럼 겁회(劫灰)를 벗어나네” 라 했다가 P.182.에서는 “남쪽별이 돌아서 차면 은하수도 차지만 큰 도는 하늘같아 생명시간을 벗어나네.”라고 달리 해석하고 있다 또 우음의 전 시문장이 『天道敎經典』에서는
不見天下聞九州 空使男兒心上遊
聽流覺非洞庭湖 坐榻疑在岳陽樓
吾心極思杳然間 疑隨太陽流照影 로 끝나고 있는 데, 하나는 ‘南辰圓滿北河回에서 鳳鳴周室爾應知 까지이고,’ 라고 잘못 기술하고 있어 6구의 시문장이 누락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학 1』 P.183에서는 吾心極思杳然間 疑隨太陽流照影 의 두 구의 시문이 누락되는 커다란 실수를 범하고 있다.
註 00 ; 「偶吟」
南辰圓滿北河回 大道如天脫劫灰
鏡投萬里眸先覺 月上三更意忽開
何人得雨能人活 一世從風任去來
百疊塵埃吾欲滌 飄然騎鶴向仙臺
淸霄月明無他意 好笑好言古來風
人生世間有何得 問道今日授與受
有理其中姑未覺 志在賢門必我同
天生萬民道又生 各有氣像吾不知
通于肺腑無違志 大小事間疑不在
馬上寒食非故地 欲歸吾家友昔事
義與信兮又禮智 凡作吾君一會中
來人去人又何時 同坐閑談願上才
世來消息又不知 其然非然聞欲先
雲捲西山諸益會 善不處卞名不秀
何來此地好相見 談且書之意益深
不是心泛久不此 又作他鄕賢友看
鹿失秦庭吾何群 鳳鳴周室爾應知
不見天下聞九州 空使男兒心上遊
聽流覺非洞庭湖 坐榻疑在岳陽樓
吾心極思杳然間 疑隨太陽流照影
註 00 ; 流高吟
高峯屹立 群山統率之像
流水不息 百川都會之意
明月虧滿 如節夫之分合
黑雲騰空 似軍伍之嚴威
地納糞土 五穀之有餘
人修道德 百用之不紆
이와는 달리 윤석산은 『東經大全』 의 PP. 251-252의 해설에서
‘우음(偶吟)’아란 우연히 쓰게된, 혹은 우연히 읊조리게 된 시라는 뜻이다. 언제 지어졌는지는 밝혀지고 있지 않다. 다만 마지막의 “오심극사(吾心極思)---”하는 시는 대신사께서 계해년(1963) 10월 27일, 당신의 생신 전날에 지었다가, 생신날 모인 사람들을 향하여 시를 읊고 또 뜻을 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사실들로 보아 ‘우음’은 연속되는 하나의 시작품이 아니라, 그때 그때 우연히 지어진 단편적인 시를 모은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어느 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여러 기간을 걸쳐 쓰여진 시들의 모음이라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라는 추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문은 독립된 여러 개의 시의 모음이므로 해석에 있어 여러 시점이나 상황과 시적 감흥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종교가 源泉的으로 지니고 있다고 믿고 있는 神秘性을 확대하기 위하여 抽象과 想像을 활용하여 讖緯書(讖書)나 秘記와 같은 예언에 까지 나간다면, 인간에게는 필요가 없는 邪敎가 될 것이다. 종교 경전에 담겨 있는 일부의 抽象과 想像이라고 생각되는 법설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豫測할 수 있는 범위까지로 한정하는 것이 종교답다. 만약에 종교 경전에 담겨 있는 일부의 抽象과 想像의 법설을 讖書나 秘記와 같은 예언으로 확신하여 해설한다면 巫俗信仰과 다를 바가 없다.


註 00 ; 참위서(讖緯書) - 앞일을 예언하는 말들을 적은 책./어학사전.
註 00 ; 비기(秘記) - 은밀하게 적어 놓은 기록. 또는 은밀하게 기록하는 것이나 또는 ㅡ민속에서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예언하여 적은 기록을 말하는 것으로, 조선 전래의 비기에는 대표적으로 정감록(鄭鑑錄)이 있다. /어학사전.
----------------------------------------------------------------------------2-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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