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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암
댓글 0건 조회 2,042회 작성일 13-07-0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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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각 지방교구의 교당에 모셔진 초상화는
1977년(포덕 118년) 쯤 이영복 교령님 재임시,
시천교의 초상화나 의복은 너무 귀족적인 분위인데다가
이런 저런 초상화가 산재함으로, 전국의 대신사 초상화를 통일시킬 목적으로
고희동 화백의 초상화를 각색하여 만든 다음, 결의를 거쳐
전국의 교당에 통일시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희동화백의 초상화는 시천교초상화와 차별화하기 위해 다시 제작한 것으로 사료됨)
그 후, 몇 년이 지나서 당시의 상주 선도사님이시던 표영삼 선생이
1893년 일본 조일신문에 게재된 초상화를 발견하여(신문기사 사본까지 보여주며)
대신사님을 직접 모시던 해월신사님의 생존 시에 그려진 초상화이므로
실물에 가장 근접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 하시곤 하였습니다.
(1890년대-1860년대 ? 불과 20 ~ 30년)
그리고 현 교당에 모셔진 초상화는 실재보다는 너무 노인연령의 초상으로
불과 나이 41세까지 생존하셨던 대신사님 초상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말씀을 간간이 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후 1997년(포덕138년) 경, 당시 연원회 의장이시던 고문해 연원회 의장께서
당시의 교화관장인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우이동 봉황각 의창수도원 천정을
뜯어내면 그 속에 의암성사님이 소장하시던 유물들이 감추어져 있을 것이므로
그것을 정리하여 전시회를 갖는게 좋겠다 하므로,
당시의 김재중 교령의 결재로 교화관장이 주동이 되어, 천정 해체 작업을 한 결과
의암성사님과 주옥경사모님이 소장하시던 유물, 약 50여점만 발굴 되었고,
누군가에 의해서 유실된 것도 많은 것 같다는 연원회 의장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유실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일이 사진을 찍어서 교화관의
앨범으로 보관하고, 낡고 곰팡이가 낀 유물들을 전문기술자들에게 의뢰하여
손을 본 다음, 지일기념일을 기점으로 수운회관 빈 사무실 공간을 활용하여
약 1주일동안 공개 전시를 한 다음, 그 중 일부는 청주 의암성사님 생가의
전시용으로 청주시청에 임대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유물 가운데, 일본 신문에 게재되었던 사진과 거의 동일하지만
수염의 모양 등 일부 각색된, 가로 한자 새로 두자 쯤 되는 대신사님 채색초상화

족자(簇子)가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성사님 유물품 초상화를 표영삼 상주선도사에게 보였더니,
그것을 확대 복사한 다음, 총부 의논 절차를 거쳐서
현재의 용담정에 모셔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래되어 기억나는 대로 기록하니. 다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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