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기성세대가 정말 저주받아야 할 세대인가(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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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가 정말 저주받아야 할 세대인가(12-4)
/ 버림받고 있는 부모세대들이 울부짖는다.
이 같은 것들이 버릇이 마음을 해롭게 하는 것들인 것이다. 그 나머지는 다 열거하기 어렵다. 이런 버릇이 사람들에게 뜻을 굳게 하지 못하게 하고 행실을 후덕하게 하지 못하게 만들어, 오늘 한 일을 내일에 고치기 어렵고 아침에 그 행실을 뉘우치고서 저녁에 다시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반드시 용맹스런 뜻을 크게 떨쳐서 마치 한 칼에 뿌리째 끊어버리듯이 마음을 깨끗이 씻어 털끝만큼도 남음이 없게 하고, 때때로 늘 깊이 반성하는 공을 들여 마음에 한 점 더러운 구습을 혁신하여 없게 하고서야 진학하는 공부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제 3장 지신(持身): 자기 몸과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는데 필요한 요목을 말하면서 학문하는 자가 자기 몸을 올바로 갖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라 하며 공자의 말을 인용했다. 공자는 "진실하고 거짓 없는 마음과 믿음을 주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자는 이 말을 “사람이 진실하고 거짓 없는 마음과 믿음이 없으면 일마다 모두 실상이 없어, 악하여지기는 쉽고 선하여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것으로 주장을 삼아야 한다.”고 해석하였다. 반드시 충신으로 주장을 삼고서 용맹스럽게 공부를 하고 난 뒤라야 성취가 있을 수 있다. 이는 황 면재(黃勉齋)가 말한 “진실한 마음가짐과 각고(刻苦)의 공부.”라는 두 마디가 이것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자기의 성의를 다하는 마음과 진실하고 거짓 없는 마음을 가지고 용맹스럽게 공부를 해나간 뒤라야 능히 성취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 장에서는 구용(九容), 구사(九思)로부터 시작하여 사물(四勿), 즉 네 가지 해서는 안 될 일과 칠호(七好), 즉 일곱 가지 좋아해서는 안 될 일 등을 설명하고 있다. 자기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수습하는 데 있어서는 구용(九容)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고, 또 학문을 진보시키고 지혜를 더하는 데 있어서는 구사(九思)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한다.
註 23; 黃勉齋-면제는 宋代의 朱子의 제자여 사위인 황간(黃幹)의 호로 처음으로 行狀이란 방대한 문장형태로 발전시킨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다.
구용(九容)과 구사(九思).
구용(九容)
1. 족용중(足容重) : 발 거동은 무겁게 하고, 가볍게 행동하지 않는다. 장자(長者) 앞에서 걸을 적에는 여기에 구애될 수 없다.
2. 수용공(手容恭) : 손 거동은 공손하게 하며, 손놀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일이 없을 때는 마땅히 손을 모으고 망동하지 않는다.
3. 목용단(目容端) : 눈 거동은 단정히 하고, 눈동자를 안정시켜 마땅히 바르게 보아야 하며 흘겨보거나 째려보아서는 아니 된다.
4. 구용지(口容止) : 입 거동을 그치며,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니면 항시 움직이지 않는다.
5. 성용정(聲容靜) : 소리 거동은 고요히 하고, 마땅히 형기를 가다듬어야 하며 구역질을 하거나 트림을 하는 따위의 잡소리를 내어서는 아니 된다.
6. 두용직(頭容直) : 머리 거동을 곧게 하며, 마땅히 머리를 바르게 하고 몸을 곧게 해야 하며 기울여 돌리거나 한쪽으로 치우쳐서도 아니 된다.
7. 기용숙(氣容肅) : 기운의 거동은 엄숙히 하고, 마땅히 숨을 고르게 쉬어야 하며 거친 소리가 나게 해서는 아니 된다.
8. 입용덕(立容德) : 서는 거동은 덕 있게 해야 하며, 똑바로 서고 앉아서 엄연히 덕 있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 얼굴 거동은 씩씩하게 해야 하는 것들이다.
9. 색용장(色容壯) : 얼굴빛을 단정히 하여 태만한 기색이 없어야 한다.
구사(九思)
1. 시사명(視思明) : 눈으로 볼 때는 밝고 바르게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사물을 볼 때 가리운 바가 없으면 밝아서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
2. 청사총(聽思聰) : 귀로 들을 때는 그 소리의 참뜻을 밝게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들을 때 막힌 바가 없으면 총명하여 들리지 않은 것이 없다.
3. 색사온(色思溫) : 표정을 지을 때는 온화하게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얼굴빛을 화하고 부드럽게 하여 골을 부리고 성내는 기색이 없어야 한다.
4. 모사공(貌思恭) : 몸가짐이나 옷 차람은 공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태도가 단정하고 씩씩하지 않은 것이 없게 한다.
5. 언사충(言思忠) : 말할 때는 참되고 거짓 없이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마디를 하더라도 충성되고 신의가 있지 않은 것이 없게 한다.
6. 사사경(事思敬) : 어른을 섬길 때는 공경스럽게 할 것을 생각하며, 한 가지의 일을 하더라도 공경하거나 조심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7. 의사문(疑思問) : 의심나고 모르는 일이 있을 때는 물어서 완전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속에 의심이 생기면 반드시 먼저 깨달음이 있는 이에게 잘 물어서 모르는 그대로 두어서는 아니 된다.
8. 분사난(忿思難) : 분하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는 어려움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 분이 나면 중계하여 이성으로 스스로 견뎌야 한다.
9. 견득사의(見得思義) :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보았을 때는 그것이 의(儀)로운 것인가를 생각한다.
이상에서 말한 구용(九容)과 구사(九思)는 항상 마음속에 두면서 자기 몸과 마음을 살피고 한시라도 그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한가로이 오가는 말이 가히 풍진을 일으키고, 한가로이 오가는 말이 능히 풍진을 없앤다. 자기 한 몸 수습하기를 천금같이 무겁게 하라. 한 순간의 편안함과 위태로움도 마음가짐에 있다. 마음을 황하수 같이 깊게 하고, 입은 곤륜산같이 무겁게 한다. / 閑談敍話可起風塵 閑談敍話能消風塵 一身收拾重千金 頃刻安危在處心 心深黃河水 口重崑崙山
사물(四勿)과 칠호(七好).
사물(四勿);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
1. 비례물시(非禮勿視) : 예가 아니면 눈으로 보지 말라.
2. 비례물청(非禮勿聽) : 예가 아니면 듣지 말라.
3. 비례물언(非禮勿言) :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
4. 비례물동(非禮勿動) :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이상 네 가지는 곧 자기 몸을 닦아나가는 요점이다. 이 예와 예가 아닌 것에 대해서 처음 배우는 자는 분별하기 어려운 것이니 반드시 이치를 궁리하여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이미 아는 바를 힘써 행한다면 그 생각하는 것이 전체의 예의에 반은 넘을 것이다. 학문하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 있다. 만약 평소에 거처를 공손히 하고 일처리를 공경히 하고 남과의 접대에 성실했다면 이는 학문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글을 읽는 것은 이 이치를 밝히고자 하는 것뿐이다. 의복은 호화로운 것을 입지 말고 추위를 막을 뿐이며, 음식은 감미로워서는 아니 되며 주림을 채우면 그만이며, 거처는 편안하게 해서는 아니 되며 병나지 않게 하면 그만이다. 오직 이 학문의 공과 심술(心術)의 올바름과 위의(威儀)의 법칙에는 날마다 힘쓰고 힘써서 스스로 만족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칠호(七好) : 극기(克己) 공부로서 일곱 가지 좋아해서는 안 되는 일
1. 호색호(好色乎) : 색(色)을 좋아하지 않는가.
2. 호리호(好利乎) : 이익을 좋아하지 않는가.
3. 호명예호(好名譽乎) : 명예를 좋아하지 않는가.
4. 호사환호(好仕宦乎) : 벼슬을 바라지 않는가.
5. 호안일호(好安逸乎) : 안일한 것을 바라지 않는가.
6. 호연락호(好宴樂乎) : 잔치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가.
7. 호진완호(好珍玩乎) : 진기하고 볼 만한 물건을 갖고 싶어 하지 않는가.
극기(克己) 공부가 일용(日用)에 가장 절실하다. 이른바 기(己)라 함은 내 마음에 좋게 느껴진 것이 천리(天理)에 부합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극기 공부는 사욕을 이겨나가는 공부로서 날마다 행동하는 일을 삼가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는 것이다. 말 많고 생각 많은 것이 심술(心術)에 가장 해롭다. 일이 없으면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지키고, 남을 접대할 적에는 말을 가려서 간중(簡重)히 하며 말차례가 되었을 때 말을 한다. 이와 같이 하면 말이 간결하지 않을 수 없고 말이 간결한 자는 도(道)에 가까워 질 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한 결 같이 도(道)에다 마음을 쏟아 외물(外物)에 빼앗긴 바가 되어서는 안 되며, 외물의 바르지 못한 것은 일체 마음에 유념하지 말아야 한다. 고을 사람이 모인 곳에서 만약 박혁(博奕)이나 저포(樗蒲) 따위의 놀음을 벌렸거든 마땅히 눈여겨보지 말고 못 본 체 물러 나와야 하며, 만약 창기(娼妓)의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만났거든 반드시 피해야 한다.
만약 향중(鄕中)의 큰 모임을 당하여 혹 존장(尊長)이 굳이 만류하여 피할 수 없거든 비록 자리에 있더라도 몸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맑게 하여 간악한 소리나 음란한 여색이 나에게 범접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잔치를 당하여 술을 마시더라도 만취가 되도록 마시면 안 되며 적당할 때 그만 마시는 것이 좋다. 모든 음식은 마땅히 알맞게 먹을 것이요 입맛대로 먹다가 기(己)를 손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말과 웃음은 마땅히 간중(簡重)히 할 것이요 시끄럽게 떠들어서 절도에 벗어나서는 안 되며, 행동거지는 마땅히 점잖게 할 것이요 경솔하여 그 위의를 잃어서는 아니 된다. 일이 있으면 그 이치로 일에 대응하고 글을 읽으면 정성으로 궁구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밖에는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거두어 잡아 이 마음이 고요하여 어지럽게 일어나는 생각이 없게 하고 환히 빛나서 혼매한 잘못이 없게 해야 할 것이니, 이른바 '경으로 마음을 곧게 한다(敬以直內)'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마땅히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안팎을 한 결 같이 해야 한다. 어두운 곳에 거처해서도 밝은 곳에 있듯이 하고, 홀로 있을 때에도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 있듯이 하여 내 마음을 마치 푸른 하늘에 밝은 해처럼 사람마다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항상 의롭지 못한 일을 하거나 죄 없는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을지라도 하지 않겠다는 불의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의사를 가슴 속에 간직해야 한다. 거경(居敬)으로 그 근본을 세우고, 궁리(窮理)로 선을 밝히고, 역행(力行)으로 그 진실을 실천한다는 세 가지는 종신(終身)의 사업인 것이다. 생각에 사(邪)가 없을 것, 불경이 없을 것, 이 두 글귀는 평생 동안 받아들여 살아도 끝이 없을 것이니, 마땅히 벽 위에 걸어두고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매일 매일 마음이 간직하지 않았는가, 학문이 진전되지 못했는가, 행실을 바르게 하지 않았는가를 스스로 점검하고 있었다면 고치고, 없었다면 더욱 힘써 부지런히 하고 게을리 함이 없어서 죽은 뒤에 그만두어야 한다.
註 24; 궁리(窮理)로서의 선(善)- 이는 지선(至善)으로 곧 인심(人心)과 천명(天命)의 본연(本然)을 이르는 하나의 큰 덕목(德目)이다. 「중용(中庸)」20장에 “선을 밝히지 못하면 몸을 성실히 할 수 없다./不明乎善 不誠乎身矣.” 라 하였고 그 주석에 선(善)을 성(性)의 원두처(源頭處)라 하였다.
제 4장. 독서(讀書): 책을 읽어서 이치를 구하자라는 독서의 의의와 자세, 그리고 독서의 순서, 방법을 말하고 있다.
1. 독서의 의의
반드시 이치를 궁리하고 착한 것을 밝힌 뒤에 자신이 당연히 실행해야 할 도가 뚜렷하게 보여 앞으로 나갈 수가 있는 것이므로 이 도에 들어가려면 먼저 근본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먼저 글을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현들의 마음을 쓴 자취와 착한 일을 본받는 것과 악한 일을 경계하는 것들이 모두 이 글 속에 있기 때문이다.
2. 독서의 자세
글을 읽는 자는 반드시 단정하게 손을 마주잡고 반듯하게 앉아서 공손히 책을 펴놓고 마음을 모으고 뜻을 극진히 하여 골똘히 생각하면서 깊이 연구하여 의의와 취지를 깊이 이해하여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만일 입으로만 읽고서 마음으로 체득하지 않고 몸으로도 실행하지 않으면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 될 것이니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3. 독서의 순서
소학(小學)으로부터 읽기 시작하여 오서 오경(五書五經: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과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을 골고루 다 읽은 후에, 송나라 성현들이 저술한 성리학에 관한 글을 읽어야 한다. 먼저 소학(小學)을 읽어서 부모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고 군주에게 충성하고 어른께 공경하고 스승을 높이고 벗을 친근히 하는 도리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음미하고 힘써 실행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대학(大學)과 대학혹문(大學或問)을 읽어서 궁리(窮理)와 정심(正心),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도리에 관하여, 하나하나 진실 되게 알고 실행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논어(論語)를 읽어서, 인(仁)을 구하고 자신을 위하여 본원을 함양하는 공부에 관하여, 하나하나 골똘하게 생각하여 깊이 체득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맹자(孟子)를 읽어서, 의(義)와 이(利)를 분명히 가리고, 인간의 욕심을 막고 하늘의 이치를 유지하는 설(說)들에 관하여, 하나하나 밝게 살피고 확충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중용(中庸)을 읽어서, 성정(性情)의 덕과, 미루어서 이루는 공효와 천지가 안정하고 만물이 생육하는 묘리를 하나하나 완색(玩索)하여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 다음에는 시경(詩經)을 읽어서, 성정의 사정(邪正)과 선악의 포계(褒戒; 포상과 징계)에 관하여, 하나하나 찬찬히 풀어서 감동을 일으키고 징계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예경(禮經)을 읽어서, 천리의 절문(節文)과 의칙(儀則)의 제정된 차례에 관하여, 하나하나 강구하여 확립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다음에는 서경(書經)을 읽어서 천하를 다스리는 큰 경륜과 큰 법칙에 관하여, 하나하나 요령을 터득하고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 찾아야 한다. 다음에는 역경(易經)을 읽어서, 길흉과 존망, 진퇴와 소장(消長)의 기틀에 관하여 하나하나 살피고 음미하며 궁구하고 연마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춘추(春秋)를 읽어서 성인이 선을 상찬하고 악을 징벌하는 억양조종(抑揚操縱)의 은미한 말과 깊은 의의에 관하여, 하나하나 정밀히 연구하여 적확하게 깨달아야 한다.
위의 오서(五書)·오경(五經)을 돌려가며 익히고 읽고 하여 이해하기를 멈추지 않아 의리가 날로 밝아지게 해야 하며, 송대(宋代)의 선현이 저술한 「근사록(近思錄)」·「가례(家禮)」·「심경(心經)」·「이정전서(二程全書)」·「주자대전(朱子大全)」·「주자어류(朱子語類)」와 그 밖의 성리학설(性理學說)들을 틈틈히 정독하여, 의리가 항상 마음에 젖어듦이 서로 멀어짐이 없게 한다. 이렇게 한 다음에 여력이 있으면 역사책을 읽어서 고금의 역사와 일이 변화하는 이치를 꿰뚫고 모두 알아내어 식견으로 기르되 이단(異端) · 잡류(雜類)의 올바르지 못한 글은 잠시도 보지 않아야 할 것이다.
4. 독서의 방법
무릇 독서하는 데는 반드시 한 책을 숙독하여 뜻을 다 알아내고 꿰뚫어 의심이 없고 난 뒤에 다른 책을 바꾸어 읽어야 한다. 많이 읽으려고 바쁘게 책장을 넘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제5장 사친(事親): 무릇 사람이 부모에게 당연히 효도하여야 함을 모르지는 않으나 효도하는 사람이 매우 드문 것은 부모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가 나를 기르시니 은덕을 갚으려 해도 하늘과 같아 끝이 없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식으로서 목숨을 받음에 성명(性命)과 혈육(血肉)은 모두 부모가 끼쳐 준 것이므로 호흡과 기운과 맥박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몸은 내 사사로운 것이 아니고 부모가 끼쳐 준 기(氣)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시경에 “애달프다, 부모가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수고로웠다.” 하였으니, 부모의 은혜를 무엇이라 말을 하랴! 어찌 감히 몸을 제 것으로 생각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극진하게 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늘 이러한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저절로 부모에 대한 정성이 생길 것이다.
무릇 부모를 섬기는 자는 한 가지 일, 한 가지 행동이라도 감히 제 마음대로 하지 말고 반드시 명령을 받고서 행하여야 한다. 만일 당연히 할 만한 일을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반드시 자세히 말씀드려 승낙을 얻은 뒤에 행해야 하고, 만일 끝내 허락하지 않으시더라도 곧바로 제 생각대로 하여서는 안 된다. 매일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 빗고 의관을 정제한 다음, 부모의 침소에 가서 호흡을 낮추고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의복이 따뜻한지 차가운지와 몸의 안부를 물을 것이며, 저녁이면 침소에 가서 이부자리를 보아 드리고 따뜻한가 써늘한가를 살피며, 낮에 모실 때에도 항상 부드러운 낯빛과 온순한 용모로 공경히 응대하고, 오른쪽이며 왼쪽 필요해 하시는 곳을 좇아 봉양하면서 극진히 그 정성을 다하고, 나들이할 때에는 반드시 절하고 아뢰고 뵈어야 한다.
지금 사람들은 흔히 부모에게 양육(養育)되고서도 자기의 힘으로 부모를 봉양(奉養)하지 않고 있다. 이렇듯 세월만 넘기다가는 끝내 부모를 정성껏 봉양할 시절이 없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살림을 몸소 주관하여 스스로 맛있는 반찬을 준비하고 난 뒤라야 자식의 직분을 닦았다 할 것이다. 만일 부모가 굳이 따라주시지 않으면, 비록 살림은 주관하지 못하더라도 당연히 주선(周旋)해드리고 도와드리면서 힘을 다 쏟아 반찬을 맛있게 할 재료들을 구하여 어버이의 구미(口味)에 맞게 해 드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일 생각이 늘 어버이를 봉양하는 데에만 있다면 진미(珍味)도 반드시 얻어질 것이다. 예전에 왕연(王延 ;중국 진(晉)나라 서하(西河) 사람으로 효행이 특히 뛰어났다./小學 六 ) 한겨울 큰 추위에 자신은 온전한 옷을 입지 못하면서도 부모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극진하게 해 드렸다는 것을 늘 생각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과 눈물을 흘리게 한다. 보통 가정에서 부자간의 사랑이 공경보다 넘치고 있으니, 반드시 예전 버릇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존경을 극진히 하여야 할 것이다. 부모가 앉고 눕던 자리는 자식이 감히 자기의 손님을 접대치 않아야 하며, 부모가 말을 타고 내리던 곳에서는 자식이 감히 말을 타고 내리지 않아야 한다.
부모의 뜻하신 바가 의리에 해로운 것이 아니면 당연히 말씀하기 전에 받아들여 조금도 어겨서는 안 되며, 이치에 해로운 일일 것 같으면 화평(和平)한 기색(氣色)과 좋은 낯빛, 부드러운 음성으로 간언(諫言)하되 반복하여 아뢰어서 꼭 들어 주시도록 하여야 한다. 부모에게 병환(病患)이 있으시면 마음은 우울해 하고 기색은 꺾여 다른 일은 버려둔 채 다만 의원을 데려오고 약을 짓기에만 힘쓰다가 병이 나으시면 평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날마다 생활하는 중에 잠시라도 부모를 잊지 않고 난 뒤라야 효자라고 이름 할 것이다. 저들 몸가짐을 삼가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면서 유희(遊戱)로 날을 보내는 자는 다 부모를 잊은 자들이다. 세월은 물 흐르듯 하여 어버이 섬김도 오래 할 수가 없으므로 자식 된 자는 모름지기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듯이 해야 한다.
옛 사람의 시에 "옛 사람이 하루 동안 그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삼공(三公: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정승)의 부귀와 바꿀 것이 아니다." 라고 하였으니 부모를 모시는 날을 하루하루 아껴가면서 효도를 다한다는 애일지성(愛日之誠))이란 이와 같은 것이다.
註 25; 애일지성(愛日之誠)- 효자가 하루하루 세월이 흘러 어버이가 늙어가는 것을 애석해 하여 하루하루를 아낀다는 말이다. 「논어(論語)」이인(里仁) 편의 “부모의 연세는(父母之年)” 주석에 '날짜를 아끼는 정성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愛日之誠 自有不能己)'고 하였다.
제6장 상제(喪制): 율곡은 "대체로 초상이란 그 슬퍼하는 마음이 부족하고 예법에만 충실(忠實)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예법에는 부족하더라도 슬퍼하는 것이 나은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초상 치르는 일이란 그 서러워하고 공경하는 것을 다할 뿐이다." 라고 강조했다. 또 부모의 상을 당하여 지나치게 슬퍼하여 생명을 잃는 것이 큰 불효라며 경계하고 있다. 상제는 의당 한 결같이 주 문공(朱文公: 朱熹)의 가례(家禮)를 따르되 만일 의심이 나고 모를 것이 있으면, 예(禮)를 잘 아는 선생이나 어른에게 물어서 반드시 예를 다하여야 옳다. 복(復)할 때에 세속에서 으례 이름을 부르는데 이는 예가 아니다. 젊은이라면 이름을 부를 수도 있겠으나, 어른이라면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것이니 생시에 부르던 호칭대로 부르는 것이 옳다. 부녀자라면 이름을 부르는 것이 더욱 마땅하지 않다.
註 00; 복(復); 사람이 막 숨졌을 때 죽은 사람이 평소에 입었던 저고리를 들고 지붕으로 올라가 왼손으로는 저고리의 동정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저고리의 허리춤을 잡고서 죽은 사람의 평소의 호칭을 세 번 부르는 초혼의식. 이미 떠난 영혼이 행여 다시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시이다. 세속에서는 혹 그 옷을 지붕 위에 한참 그대로 두기도 하나 이는 잘못이며 지붕에서 내려올 때 그 옷도 가지고 내려와 시체를 덮는 것이 옳은 일이다. 《四禮便覽 喪禮 復》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아버지가 상주(喪主)가 되어, 모든 축문에 다 지아비가 아내에게 고하는 식례(式禮)를 써야 한다. 부모가 처음 돌아가시면 처, 첩과 며느리 및 여자들은 다 머리를 풀고, 남자들은 머리를 풀고 위의 옷의 옷섶을 띠에 끼우고 버선을 벗어야 한다. 소렴(小斂)을 하고서는 남자는 왼 어깨를 드러내고 머리를 묶으며 부인네도 머리를 묶는다. 만일 남에게 양자 간 아들이나 시집간 딸은 다 머리를 풀거나 버선을 벗지 않는다. 남자는 관을 벗는다.
시체가 방에 있고 아직 빈소를 차리기 이전 남녀가 시체 곁에 있을 때에는 그 석차가 남쪽이 윗사람의 석차가 되니, 시체의 머리가 두어진 곳으로 윗자리를 삼아서이다. 빈소를 차린 뒤에는, 여자는 여전히 당상에서 남쪽을 윗자리로 하고 남자는 뜰에서 북쪽을 윗자리로 해야 하니, 빈소가 있는 쪽이 윗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발인(發引)할 때에는 남녀의 석차가 다시 남쪽을 윗자리로 삼으니, 영구가 있는 곳이 윗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위치를 바꾸면서도 각기 예의가 담겨져 있다.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예를 모르고서, 조객이 위문할 때마다 전혀 일어나 움직이려 않고 단지 엎드려 있기만 하려하고 있다. 이것은 예가 아니다. 조객이 영좌(靈座)에 절하고서 나오면 상주는 당연히 상차(喪次)에서 나와 조객에게 재배하고 곡하여야 한다. 조객도 답배하여야 한다. 상복은 질병이나 일할 때가 아니면 벗을 수 없다.
「가례(家禮)」에, “부모의 상을 당하면 성복(成服)하는 날 비로소 죽을 먹고, 졸곡(卒哭)하는 날 비로소 소식(蔬食)에 곱게 봐?않은 곡식으로 지은 밥. 물만 마시고 국을 먹지 않음. 채소·과실은 먹지 않다가, 소상(小祥) 뒤에 비로소 채소와 과실을 먹는다.” 국도 먹을 수 있다. 하였다. 예문(禮文)이 이와 같으니 병이 없으면 예문대로 따라야 한다. 어떤 사람은 예에 지나쳐서 3 년이 지나도록 죽만 먹는 이가 있으나 만일 효성이 남보다 뛰어나서 조금도 억지로 하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면, 비록 예에 지나치다면 이는 스스로를 속이고 부모를 속이는 것이다. 절대로 삼가 해야 한다.
註 26; 성복(成服)- 사람이 죽은 지 나흘째가 되는 날의 새벽에, 죽은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상복을 차려 입는 것으로 3년, 1년, 9개월, 5개월, 3개월 등의 차등(差等)에 따라 입는 옷도 서로 다르다 《四禮便覽喪禮 成服》
지금 예를 아는 집에서는 흔히 장사지낸 뒤에 반혼(返魂)한다. 이것은 정말 바른 예이다. 다못 세속 사람들이 잘못 본따 여묘살이하는 풍속을 폐지하고 반혼한 뒤에 각기 제집으로 돌아와 처자와 한데 거처하여서 예법을 크게 무너뜨리니 매우 한심하다. 모든 부모상을 당한 사람은 스스로 헤아려보아 하나하나 예문에 따라 조금도 부족이 없을 자신이 있으면 예대로 집에 반혼하고, 혹시 그렇지 못하면 옛풍속대로 여묘살이를 하는 것이 옳다. 어버이의 상에 성복전에는 울음이 입에서 그치지 않고 기진하면 하인이 대신 곡하게 한다. 장사지내기 전에는 때를 정하지 않고 슬퍼지면 곡하며, 졸곡 뒤에는 아침과 저녁 두 때만 곡한다. 예문은 대개 이러하나, 만일 효자가 정이 지극하다면 울음이 어찌 정한 횟수가 있으랴. 초상에 애통이 부족하고 예절이 넉넉한 것보다는 차라리 예절이 부족되고 애통이 넘치는 것이 낫다. 상사는 애통과 공경을 다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註 27; 반혼(返魂)- 묘소에서 신주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 이 신주를 3년 동안 모시고 제를 올린다. 《四禮便覽 喪禮 反哭》
註 28; 여묘살이- 묘소에 움막을 짓고서 3년 동안 지내는 일. 이때는 물론 반혼(返魂)하지 않으며 또 남자만이 이 움막에서 거처한다. 그러나 이것은 바른 예는 아니다. 중국에서는 자공(子貢)이 공자가 돌아가셨을 때 시행한 것이 기록에 보이고 그 뒤로는 한과 당(漢唐)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孟子 文公上》·《四禮便覽 喪禮 反哭注》
증자(曾子)가 말한, “사람이 스스로 그 극진한 정성을 다할 자 있지 않으나 반드시 부모의 상을 당하였을 때에는 정성을 다한다."고 하였으니, 상사(喪事)는 부모를 섬기는 큰 예절이다. 여기에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어디에 정성을 다하겠는가. 예전에 ‘소련(少連), 대련(大連)이 거상(居喪)을 잘하여, 3일 동안 게을리 하지 않고 3개월 동안 늦추지 않고 1년 동안 슬퍼하고 3년 동안 근심하였다.’ 이것이 바로 거상하는 방법이다. 효성이 극진한 사람은 힘쓰지 않아도 이렇게 할 수 있으나 미치지 못하는 자는 힘써 이것을 따라해야 한다. 거상(居喪)하는 사람으로서 간혹 자질(資質)은 훌륭하나 배우지 못한 자가 그저 대대로 지키는 것만이 효도인 줄만 알고 몸을 상(傷)하게 하는 것이 바른 도리를 잃은 것인 줄 몰라 지나친 슬픔으로 몸을 상해 병이 벌써 생겼는데도 권도(權道: 임시변통의 방법. 병이 나면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를 차마 따르지 못하다가 생명을 버리기까지 하는 사람이 혹간(或間)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므로 슬픔에 몸을 여위어 생명을 손상(損傷)하는 것을 군자는 불효라고 한다. 무릇 복을 입을 친척의 상사를, 만약 객지에서 부음을 들었으면 위패(位牌)를 마련하고서 소리 내어 울어야 한다. 만일 분상(奔喪)을 하게 된다면 집에 와서 성복하고, 만일 분상을 못하면 4일 만에 성복하고, 만일 재최복(齋崔服)이면 아직 성복하기 이전의 3일 중에는 조석으로 위패를 뫼시고서 곡하여야 한다. 재최복으로서 대공(大功 : 9개월)으로 낮추어진 자도 이와 같다.
사우(師友)로서 의리가 중한 이와, 친척으로서 복은 없지만, 정(情)이 두터운 이와 서로 사귀는 교분(交分)이 친밀(親密)한 이는 모두 부음(訃音)을 들은 날에, 만일 길이 멀어서 갈 수 없으면 위패를 마련하고서 곡하여야 한다. 스승은 정의(情義)가 엷고 깊음에 따라 혹 심상(心喪)으로 3년 또는 1년 하기도 하고 9개월 또는 5개월 하기도 하고 3개월 하기도 하며, 벗은 가장 중하게 하여도 3개월을 넘길 수 없다. 만일 스승의 상에 3년이나 1년의 복을 입으려는 사람이 분상(奔喪)하지 못하면 조석으로 위패를 마련하고서 4일간 곡하다가 4일째 아침에 그쳐야 한다. 정이 중한 자라면 이 한정에 구애되지 않는다. 무릇 복을 입게 된 자는 매월 초하룻날 정하여진 복을 입고서 회곡(會哭)한다. 사우(師友)에는 복이 없으나 역시 이와 같다. 복을 입을 달수가 다 차면 다음 달에 회곡하고 복을 벗는다. 그 사이에도 슬퍼지면 곡하는 것이 좋다. 무릇 대공(大功) 이상의 상사에 장사하기 이전에는 일 없이 나들이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또한 남에게 조상하는 것도 옳지 않다. 늘 상사를 주선하고 예문을 강구하기를 일삼아야 한다.
註 29; 소련(少連)과 대련(大連)의 거상(居喪)- 이 인용문은 「예기(禮記)」잡기(雜記) 하에 보인다. 소련(少連)과 대련(大連)은 어느 때 사람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동이족(東夷族)이라고만 밝혀져 있다.
註 30; 재최복(齋崔服)3년과 1년, 5개월과 3개월 등의 나뉨이 있다. 곧 1년을 이른다. 《四禮便覽 喪禮 成服》
註 31; 대공(大功 : 9개월)- 원래는 1년 복에 해당하나 어떤 경우로 9개월로 낮추어 진 것을 이른다. 그것은 양자로 간 사람이나 시집간 사람들의 경우에서만 생겨난다. 본래 양자를 가지 않고 시집가지 않았으면, 통상 1년을 복상(服喪)하여야 할 사람들에게 환경의 변화로 한 등급을 내려 입음을 이른 것이다. 4촌 형제가 이에 해당한다.《四禮便覽 喪禮 成服》
註 32; 심상(心喪)- 스승의 죽음에 제자들이 마음으로 입는 상(喪)이다. 부모의 상과 똑같이 하면서 오직 바깥으로 드러난 옷가지 등의 예절이 없어 붙여진 말이다. 《禮記 檀弓 上》
註 33; 분상(奔喪)과 회곡(會哭)- 분상이란 타방(他邦)에 거주하면서 향당(鄕黨)의 상(부모나 친족)을 전해 듣고 급히 돌아가는 예이다. 분(奔)이란 급함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친족이 멀수록 급함의 차이는 달라진다. 『예기』 분상(奔喪)./ 회곡(會哭)은 문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곡을 하거나 오는 순서대로 하는 것이다.
제7장 제례(祭禮): 제사(祭祀)는 의당 가례(家禮)에 따라, 반드시 사당을 세워서 선대(先代)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위토답(位土畓: 祭田)을 마련하고 제기(祭器)를 갖춘 다음 종자(宗子)가 이것을 주관하여야 한다. 사당(祠堂)을 주관하는 사람은 매일 새벽에 대문 안에서 재배(再拜)하고 주관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주관하는 사람을 따라 함께 뵙는 것도 무방하다. 나들이 할 때는 반드시 고하여야 한다. 혹 수재(水災)나 화재(火災)가 생기거나 도둑이 들면 먼저 사당부터 구하여 신주와 물려온 책들을 옮기고 다음으로 제기를 치우고 난 뒤에 집안의 재물을 구하여야 한다.
설날 · 동지· 초하루 · 보름에는 사당에 참례하고, 단오 · 추석 등 풍속에서의 명절에는 그 계절의 음식을 올려야 한다. 시제(時祭)에는 산재(散齋)를 4일을 하고 치재(致齋)는 3일을 하며, 기제(忌祭)에는 산재를 2일 하고 치재를 1일 하며, 참례(參禮)에는 재숙(齋宿) 1일을 한다. 산재라는 것은 조문하지 않고 문병하지 않고 육식(肉食)하지 않고 술을 마셔도 취하기까지 하지 않으며, 모든 흉하고 더러운 일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길에서 흉하고 더러운 것을 갑자기 만나면 눈을 가리고 피하여 보지 말아야 한다. 치재라는 것은 음악을 듣지 않고 나들이를 하지 않고 전심(全心)으로 제사 받을 부모나 조상만을 생각하여, 거처하시던 것을 회상하고 웃고 말하시던 것을 회상하고 좋아하시던 것을 회상하고 즐기시던 음식을 회상하는 것을 이른다.
이렇게 하고서야 제사를 드릴 때에 형용(形容)이 보이는 듯하고 음성이 들리는 듯할 것이다. 정성이 지극해야 신(神)이 흠향(歆饗)하신다. 대체로 제주(祭主: 제사의 주장이 되는 사람)는 사랑하는 마음과 공경하는 정성을 다할 뿐이다. 가난하면 집의 형편에 어울리게 하고, 병이 있으면 자신의 기운을 헤아려 제사를 지내야 한다. 재물과 자신의 기운이 미칠 수 있는 사람이면 의당 의식대로 행해야 한다.
묘제(墓祭)와 기제(忌祭)를 세속에서 자손들 간에 돌려가며 지내는데 이것은 예가 아니다. 묘제는 비록 돌아가며 지낸다 하더라도 모두 묘소에서 제사를 올리니 그런대로 괜찮으나 기제는 신주(神主)에 제사 지내지 않고 지방(紙榜)에 제사를 지내야 하니 매우 미안한 일이다. 비록 돌아가며 지내더라도 제물을 갖추어 가묘(家廟)에서 지낸다면 거의 괜찮을 것이다. 상제(喪祭)는 두 가지 예절에는 자손으로서 가장 정성을 쏟아야 할 부분이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는 다시 봉양할 수 없으니, 만일 초상에서 예를 다하지 않고 제사에서 정성을 다하지 못했다면 그 영원한 애통(哀痛)함을 붙일 곳이 없고 흘려버릴 만한 때가 없을 것이다. 자식이 된 정의에 어떠하겠는가. 증자(曾子)의 말에, “신종(愼終: 초상에 예를 다함)하고 추원(追遠: 조상을 추모하여 제사 지내는 것)하면, 백성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간다." 하였으니, 아들이 된 사람은 의당 깊이 명심하여야 한다.
요즈음 풍속에서 흔히 예를 몰라, 제사 지내는 의식이 집집마다 다르니 심히 가소롭다. 만일 예법대로 한번 제재하지 않게 되면 끝내는 문란하고 질서가 없어 오랑캐의 풍속이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에 제례를 초록(抄錄)하여 뒤에 부록(附錄)으로 붙이고 또 그것을 위해 도식(圖式)을 마련했다. 자세히 살펴 본떠 행하되 만일 부형이 들어 주시지 않거든 곡진(曲盡)히 아뢰어서 기필코 바르게 하도록 해야 한다.
註 34; 시제(時祭)- 사시제(四時祭)의 줄임 말이다. 사시제는 매 계절의 중간 달에 정침(正寢)에서 지내는 제사로 육갑(六甲)으로 따져 천간(天干)에 정(丁)이 드는 날이나 지지(地支)에 해(亥)가 드는 날을 가려 지낸다. 세속에서 5대가 넘어 묘제(墓祭)로 지내는 제사를 시제(時祭)라 하니 잘못이다. 《四禮便覽 祭禮 四時祭》
註 35; 참례(參禮)- 이는 설날·동지·초하루·보름 등에 사당을 참배하는 예절이다. 이때 조상들에게 새로 난 과실들을 올리기도 한다. 《四禮便覽 祭禮 祠堂》
제 8장. 거가(居家): 집안을 편안히 하기 위하여 집에 있을 때 다스리고 또 지켜야 할 일을 열거하고 있다. 대체로 집에 있을 때에는 신중(愼重)하게 예법(禮法)을 지켜 처자와 집안사람들을 거느려야 한다. 직분을 나누고 일을 주어 성공(成功)을 책임지우고, 재용(財用)의 씀씀이를 제정(制定)하여 수입을 헤아려서 지출하고, 가산(家産)의 정도에 맞추어 위아래 사람들의 의식(衣食)과 길흉의 비용을 충당하되 모두 품절(品節)을 두어 고르게 해야 하고, 낭비를 줄이고 사치를 막아 늘 조금의 여분을 두고 뜻밖의 일에 대비하여야 한다.
/ 기성세대가 정말 저주받아야 할 세대인가(12-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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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림받고 있는 부모세대들이 울부짖는다.
이 같은 것들이 버릇이 마음을 해롭게 하는 것들인 것이다. 그 나머지는 다 열거하기 어렵다. 이런 버릇이 사람들에게 뜻을 굳게 하지 못하게 하고 행실을 후덕하게 하지 못하게 만들어, 오늘 한 일을 내일에 고치기 어렵고 아침에 그 행실을 뉘우치고서 저녁에 다시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반드시 용맹스런 뜻을 크게 떨쳐서 마치 한 칼에 뿌리째 끊어버리듯이 마음을 깨끗이 씻어 털끝만큼도 남음이 없게 하고, 때때로 늘 깊이 반성하는 공을 들여 마음에 한 점 더러운 구습을 혁신하여 없게 하고서야 진학하는 공부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제 3장 지신(持身): 자기 몸과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는데 필요한 요목을 말하면서 학문하는 자가 자기 몸을 올바로 갖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라 하며 공자의 말을 인용했다. 공자는 "진실하고 거짓 없는 마음과 믿음을 주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자는 이 말을 “사람이 진실하고 거짓 없는 마음과 믿음이 없으면 일마다 모두 실상이 없어, 악하여지기는 쉽고 선하여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것으로 주장을 삼아야 한다.”고 해석하였다. 반드시 충신으로 주장을 삼고서 용맹스럽게 공부를 하고 난 뒤라야 성취가 있을 수 있다. 이는 황 면재(黃勉齋)가 말한 “진실한 마음가짐과 각고(刻苦)의 공부.”라는 두 마디가 이것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자기의 성의를 다하는 마음과 진실하고 거짓 없는 마음을 가지고 용맹스럽게 공부를 해나간 뒤라야 능히 성취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 장에서는 구용(九容), 구사(九思)로부터 시작하여 사물(四勿), 즉 네 가지 해서는 안 될 일과 칠호(七好), 즉 일곱 가지 좋아해서는 안 될 일 등을 설명하고 있다. 자기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수습하는 데 있어서는 구용(九容)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고, 또 학문을 진보시키고 지혜를 더하는 데 있어서는 구사(九思)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한다.
註 23; 黃勉齋-면제는 宋代의 朱子의 제자여 사위인 황간(黃幹)의 호로 처음으로 行狀이란 방대한 문장형태로 발전시킨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다.
구용(九容)과 구사(九思).
구용(九容)
1. 족용중(足容重) : 발 거동은 무겁게 하고, 가볍게 행동하지 않는다. 장자(長者) 앞에서 걸을 적에는 여기에 구애될 수 없다.
2. 수용공(手容恭) : 손 거동은 공손하게 하며, 손놀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일이 없을 때는 마땅히 손을 모으고 망동하지 않는다.
3. 목용단(目容端) : 눈 거동은 단정히 하고, 눈동자를 안정시켜 마땅히 바르게 보아야 하며 흘겨보거나 째려보아서는 아니 된다.
4. 구용지(口容止) : 입 거동을 그치며,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니면 항시 움직이지 않는다.
5. 성용정(聲容靜) : 소리 거동은 고요히 하고, 마땅히 형기를 가다듬어야 하며 구역질을 하거나 트림을 하는 따위의 잡소리를 내어서는 아니 된다.
6. 두용직(頭容直) : 머리 거동을 곧게 하며, 마땅히 머리를 바르게 하고 몸을 곧게 해야 하며 기울여 돌리거나 한쪽으로 치우쳐서도 아니 된다.
7. 기용숙(氣容肅) : 기운의 거동은 엄숙히 하고, 마땅히 숨을 고르게 쉬어야 하며 거친 소리가 나게 해서는 아니 된다.
8. 입용덕(立容德) : 서는 거동은 덕 있게 해야 하며, 똑바로 서고 앉아서 엄연히 덕 있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 얼굴 거동은 씩씩하게 해야 하는 것들이다.
9. 색용장(色容壯) : 얼굴빛을 단정히 하여 태만한 기색이 없어야 한다.
구사(九思)
1. 시사명(視思明) : 눈으로 볼 때는 밝고 바르게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사물을 볼 때 가리운 바가 없으면 밝아서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
2. 청사총(聽思聰) : 귀로 들을 때는 그 소리의 참뜻을 밝게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들을 때 막힌 바가 없으면 총명하여 들리지 않은 것이 없다.
3. 색사온(色思溫) : 표정을 지을 때는 온화하게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얼굴빛을 화하고 부드럽게 하여 골을 부리고 성내는 기색이 없어야 한다.
4. 모사공(貌思恭) : 몸가짐이나 옷 차람은 공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태도가 단정하고 씩씩하지 않은 것이 없게 한다.
5. 언사충(言思忠) : 말할 때는 참되고 거짓 없이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마디를 하더라도 충성되고 신의가 있지 않은 것이 없게 한다.
6. 사사경(事思敬) : 어른을 섬길 때는 공경스럽게 할 것을 생각하며, 한 가지의 일을 하더라도 공경하거나 조심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7. 의사문(疑思問) : 의심나고 모르는 일이 있을 때는 물어서 완전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속에 의심이 생기면 반드시 먼저 깨달음이 있는 이에게 잘 물어서 모르는 그대로 두어서는 아니 된다.
8. 분사난(忿思難) : 분하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는 어려움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 분이 나면 중계하여 이성으로 스스로 견뎌야 한다.
9. 견득사의(見得思義) :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보았을 때는 그것이 의(儀)로운 것인가를 생각한다.
이상에서 말한 구용(九容)과 구사(九思)는 항상 마음속에 두면서 자기 몸과 마음을 살피고 한시라도 그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한가로이 오가는 말이 가히 풍진을 일으키고, 한가로이 오가는 말이 능히 풍진을 없앤다. 자기 한 몸 수습하기를 천금같이 무겁게 하라. 한 순간의 편안함과 위태로움도 마음가짐에 있다. 마음을 황하수 같이 깊게 하고, 입은 곤륜산같이 무겁게 한다. / 閑談敍話可起風塵 閑談敍話能消風塵 一身收拾重千金 頃刻安危在處心 心深黃河水 口重崑崙山
사물(四勿)과 칠호(七好).
사물(四勿);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
1. 비례물시(非禮勿視) : 예가 아니면 눈으로 보지 말라.
2. 비례물청(非禮勿聽) : 예가 아니면 듣지 말라.
3. 비례물언(非禮勿言) :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
4. 비례물동(非禮勿動) :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이상 네 가지는 곧 자기 몸을 닦아나가는 요점이다. 이 예와 예가 아닌 것에 대해서 처음 배우는 자는 분별하기 어려운 것이니 반드시 이치를 궁리하여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이미 아는 바를 힘써 행한다면 그 생각하는 것이 전체의 예의에 반은 넘을 것이다. 학문하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 있다. 만약 평소에 거처를 공손히 하고 일처리를 공경히 하고 남과의 접대에 성실했다면 이는 학문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글을 읽는 것은 이 이치를 밝히고자 하는 것뿐이다. 의복은 호화로운 것을 입지 말고 추위를 막을 뿐이며, 음식은 감미로워서는 아니 되며 주림을 채우면 그만이며, 거처는 편안하게 해서는 아니 되며 병나지 않게 하면 그만이다. 오직 이 학문의 공과 심술(心術)의 올바름과 위의(威儀)의 법칙에는 날마다 힘쓰고 힘써서 스스로 만족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칠호(七好) : 극기(克己) 공부로서 일곱 가지 좋아해서는 안 되는 일
1. 호색호(好色乎) : 색(色)을 좋아하지 않는가.
2. 호리호(好利乎) : 이익을 좋아하지 않는가.
3. 호명예호(好名譽乎) : 명예를 좋아하지 않는가.
4. 호사환호(好仕宦乎) : 벼슬을 바라지 않는가.
5. 호안일호(好安逸乎) : 안일한 것을 바라지 않는가.
6. 호연락호(好宴樂乎) : 잔치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가.
7. 호진완호(好珍玩乎) : 진기하고 볼 만한 물건을 갖고 싶어 하지 않는가.
극기(克己) 공부가 일용(日用)에 가장 절실하다. 이른바 기(己)라 함은 내 마음에 좋게 느껴진 것이 천리(天理)에 부합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극기 공부는 사욕을 이겨나가는 공부로서 날마다 행동하는 일을 삼가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는 것이다. 말 많고 생각 많은 것이 심술(心術)에 가장 해롭다. 일이 없으면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지키고, 남을 접대할 적에는 말을 가려서 간중(簡重)히 하며 말차례가 되었을 때 말을 한다. 이와 같이 하면 말이 간결하지 않을 수 없고 말이 간결한 자는 도(道)에 가까워 질 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한 결 같이 도(道)에다 마음을 쏟아 외물(外物)에 빼앗긴 바가 되어서는 안 되며, 외물의 바르지 못한 것은 일체 마음에 유념하지 말아야 한다. 고을 사람이 모인 곳에서 만약 박혁(博奕)이나 저포(樗蒲) 따위의 놀음을 벌렸거든 마땅히 눈여겨보지 말고 못 본 체 물러 나와야 하며, 만약 창기(娼妓)의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만났거든 반드시 피해야 한다.
만약 향중(鄕中)의 큰 모임을 당하여 혹 존장(尊長)이 굳이 만류하여 피할 수 없거든 비록 자리에 있더라도 몸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맑게 하여 간악한 소리나 음란한 여색이 나에게 범접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잔치를 당하여 술을 마시더라도 만취가 되도록 마시면 안 되며 적당할 때 그만 마시는 것이 좋다. 모든 음식은 마땅히 알맞게 먹을 것이요 입맛대로 먹다가 기(己)를 손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말과 웃음은 마땅히 간중(簡重)히 할 것이요 시끄럽게 떠들어서 절도에 벗어나서는 안 되며, 행동거지는 마땅히 점잖게 할 것이요 경솔하여 그 위의를 잃어서는 아니 된다. 일이 있으면 그 이치로 일에 대응하고 글을 읽으면 정성으로 궁구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밖에는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거두어 잡아 이 마음이 고요하여 어지럽게 일어나는 생각이 없게 하고 환히 빛나서 혼매한 잘못이 없게 해야 할 것이니, 이른바 '경으로 마음을 곧게 한다(敬以直內)'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마땅히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안팎을 한 결 같이 해야 한다. 어두운 곳에 거처해서도 밝은 곳에 있듯이 하고, 홀로 있을 때에도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 있듯이 하여 내 마음을 마치 푸른 하늘에 밝은 해처럼 사람마다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항상 의롭지 못한 일을 하거나 죄 없는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을지라도 하지 않겠다는 불의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의사를 가슴 속에 간직해야 한다. 거경(居敬)으로 그 근본을 세우고, 궁리(窮理)로 선을 밝히고, 역행(力行)으로 그 진실을 실천한다는 세 가지는 종신(終身)의 사업인 것이다. 생각에 사(邪)가 없을 것, 불경이 없을 것, 이 두 글귀는 평생 동안 받아들여 살아도 끝이 없을 것이니, 마땅히 벽 위에 걸어두고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매일 매일 마음이 간직하지 않았는가, 학문이 진전되지 못했는가, 행실을 바르게 하지 않았는가를 스스로 점검하고 있었다면 고치고, 없었다면 더욱 힘써 부지런히 하고 게을리 함이 없어서 죽은 뒤에 그만두어야 한다.
註 24; 궁리(窮理)로서의 선(善)- 이는 지선(至善)으로 곧 인심(人心)과 천명(天命)의 본연(本然)을 이르는 하나의 큰 덕목(德目)이다. 「중용(中庸)」20장에 “선을 밝히지 못하면 몸을 성실히 할 수 없다./不明乎善 不誠乎身矣.” 라 하였고 그 주석에 선(善)을 성(性)의 원두처(源頭處)라 하였다.
제 4장. 독서(讀書): 책을 읽어서 이치를 구하자라는 독서의 의의와 자세, 그리고 독서의 순서, 방법을 말하고 있다.
1. 독서의 의의
반드시 이치를 궁리하고 착한 것을 밝힌 뒤에 자신이 당연히 실행해야 할 도가 뚜렷하게 보여 앞으로 나갈 수가 있는 것이므로 이 도에 들어가려면 먼저 근본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먼저 글을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현들의 마음을 쓴 자취와 착한 일을 본받는 것과 악한 일을 경계하는 것들이 모두 이 글 속에 있기 때문이다.
2. 독서의 자세
글을 읽는 자는 반드시 단정하게 손을 마주잡고 반듯하게 앉아서 공손히 책을 펴놓고 마음을 모으고 뜻을 극진히 하여 골똘히 생각하면서 깊이 연구하여 의의와 취지를 깊이 이해하여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만일 입으로만 읽고서 마음으로 체득하지 않고 몸으로도 실행하지 않으면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 될 것이니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3. 독서의 순서
소학(小學)으로부터 읽기 시작하여 오서 오경(五書五經: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과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을 골고루 다 읽은 후에, 송나라 성현들이 저술한 성리학에 관한 글을 읽어야 한다. 먼저 소학(小學)을 읽어서 부모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고 군주에게 충성하고 어른께 공경하고 스승을 높이고 벗을 친근히 하는 도리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음미하고 힘써 실행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대학(大學)과 대학혹문(大學或問)을 읽어서 궁리(窮理)와 정심(正心),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도리에 관하여, 하나하나 진실 되게 알고 실행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논어(論語)를 읽어서, 인(仁)을 구하고 자신을 위하여 본원을 함양하는 공부에 관하여, 하나하나 골똘하게 생각하여 깊이 체득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맹자(孟子)를 읽어서, 의(義)와 이(利)를 분명히 가리고, 인간의 욕심을 막고 하늘의 이치를 유지하는 설(說)들에 관하여, 하나하나 밝게 살피고 확충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중용(中庸)을 읽어서, 성정(性情)의 덕과, 미루어서 이루는 공효와 천지가 안정하고 만물이 생육하는 묘리를 하나하나 완색(玩索)하여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 다음에는 시경(詩經)을 읽어서, 성정의 사정(邪正)과 선악의 포계(褒戒; 포상과 징계)에 관하여, 하나하나 찬찬히 풀어서 감동을 일으키고 징계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예경(禮經)을 읽어서, 천리의 절문(節文)과 의칙(儀則)의 제정된 차례에 관하여, 하나하나 강구하여 확립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다음에는 서경(書經)을 읽어서 천하를 다스리는 큰 경륜과 큰 법칙에 관하여, 하나하나 요령을 터득하고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 찾아야 한다. 다음에는 역경(易經)을 읽어서, 길흉과 존망, 진퇴와 소장(消長)의 기틀에 관하여 하나하나 살피고 음미하며 궁구하고 연마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춘추(春秋)를 읽어서 성인이 선을 상찬하고 악을 징벌하는 억양조종(抑揚操縱)의 은미한 말과 깊은 의의에 관하여, 하나하나 정밀히 연구하여 적확하게 깨달아야 한다.
위의 오서(五書)·오경(五經)을 돌려가며 익히고 읽고 하여 이해하기를 멈추지 않아 의리가 날로 밝아지게 해야 하며, 송대(宋代)의 선현이 저술한 「근사록(近思錄)」·「가례(家禮)」·「심경(心經)」·「이정전서(二程全書)」·「주자대전(朱子大全)」·「주자어류(朱子語類)」와 그 밖의 성리학설(性理學說)들을 틈틈히 정독하여, 의리가 항상 마음에 젖어듦이 서로 멀어짐이 없게 한다. 이렇게 한 다음에 여력이 있으면 역사책을 읽어서 고금의 역사와 일이 변화하는 이치를 꿰뚫고 모두 알아내어 식견으로 기르되 이단(異端) · 잡류(雜類)의 올바르지 못한 글은 잠시도 보지 않아야 할 것이다.
4. 독서의 방법
무릇 독서하는 데는 반드시 한 책을 숙독하여 뜻을 다 알아내고 꿰뚫어 의심이 없고 난 뒤에 다른 책을 바꾸어 읽어야 한다. 많이 읽으려고 바쁘게 책장을 넘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제5장 사친(事親): 무릇 사람이 부모에게 당연히 효도하여야 함을 모르지는 않으나 효도하는 사람이 매우 드문 것은 부모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가 나를 기르시니 은덕을 갚으려 해도 하늘과 같아 끝이 없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식으로서 목숨을 받음에 성명(性命)과 혈육(血肉)은 모두 부모가 끼쳐 준 것이므로 호흡과 기운과 맥박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몸은 내 사사로운 것이 아니고 부모가 끼쳐 준 기(氣)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시경에 “애달프다, 부모가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수고로웠다.” 하였으니, 부모의 은혜를 무엇이라 말을 하랴! 어찌 감히 몸을 제 것으로 생각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극진하게 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늘 이러한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저절로 부모에 대한 정성이 생길 것이다.
무릇 부모를 섬기는 자는 한 가지 일, 한 가지 행동이라도 감히 제 마음대로 하지 말고 반드시 명령을 받고서 행하여야 한다. 만일 당연히 할 만한 일을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반드시 자세히 말씀드려 승낙을 얻은 뒤에 행해야 하고, 만일 끝내 허락하지 않으시더라도 곧바로 제 생각대로 하여서는 안 된다. 매일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 빗고 의관을 정제한 다음, 부모의 침소에 가서 호흡을 낮추고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의복이 따뜻한지 차가운지와 몸의 안부를 물을 것이며, 저녁이면 침소에 가서 이부자리를 보아 드리고 따뜻한가 써늘한가를 살피며, 낮에 모실 때에도 항상 부드러운 낯빛과 온순한 용모로 공경히 응대하고, 오른쪽이며 왼쪽 필요해 하시는 곳을 좇아 봉양하면서 극진히 그 정성을 다하고, 나들이할 때에는 반드시 절하고 아뢰고 뵈어야 한다.
지금 사람들은 흔히 부모에게 양육(養育)되고서도 자기의 힘으로 부모를 봉양(奉養)하지 않고 있다. 이렇듯 세월만 넘기다가는 끝내 부모를 정성껏 봉양할 시절이 없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살림을 몸소 주관하여 스스로 맛있는 반찬을 준비하고 난 뒤라야 자식의 직분을 닦았다 할 것이다. 만일 부모가 굳이 따라주시지 않으면, 비록 살림은 주관하지 못하더라도 당연히 주선(周旋)해드리고 도와드리면서 힘을 다 쏟아 반찬을 맛있게 할 재료들을 구하여 어버이의 구미(口味)에 맞게 해 드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일 생각이 늘 어버이를 봉양하는 데에만 있다면 진미(珍味)도 반드시 얻어질 것이다. 예전에 왕연(王延 ;중국 진(晉)나라 서하(西河) 사람으로 효행이 특히 뛰어났다./小學 六 ) 한겨울 큰 추위에 자신은 온전한 옷을 입지 못하면서도 부모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극진하게 해 드렸다는 것을 늘 생각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과 눈물을 흘리게 한다. 보통 가정에서 부자간의 사랑이 공경보다 넘치고 있으니, 반드시 예전 버릇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존경을 극진히 하여야 할 것이다. 부모가 앉고 눕던 자리는 자식이 감히 자기의 손님을 접대치 않아야 하며, 부모가 말을 타고 내리던 곳에서는 자식이 감히 말을 타고 내리지 않아야 한다.
부모의 뜻하신 바가 의리에 해로운 것이 아니면 당연히 말씀하기 전에 받아들여 조금도 어겨서는 안 되며, 이치에 해로운 일일 것 같으면 화평(和平)한 기색(氣色)과 좋은 낯빛, 부드러운 음성으로 간언(諫言)하되 반복하여 아뢰어서 꼭 들어 주시도록 하여야 한다. 부모에게 병환(病患)이 있으시면 마음은 우울해 하고 기색은 꺾여 다른 일은 버려둔 채 다만 의원을 데려오고 약을 짓기에만 힘쓰다가 병이 나으시면 평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날마다 생활하는 중에 잠시라도 부모를 잊지 않고 난 뒤라야 효자라고 이름 할 것이다. 저들 몸가짐을 삼가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면서 유희(遊戱)로 날을 보내는 자는 다 부모를 잊은 자들이다. 세월은 물 흐르듯 하여 어버이 섬김도 오래 할 수가 없으므로 자식 된 자는 모름지기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듯이 해야 한다.
옛 사람의 시에 "옛 사람이 하루 동안 그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삼공(三公: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정승)의 부귀와 바꿀 것이 아니다." 라고 하였으니 부모를 모시는 날을 하루하루 아껴가면서 효도를 다한다는 애일지성(愛日之誠))이란 이와 같은 것이다.
註 25; 애일지성(愛日之誠)- 효자가 하루하루 세월이 흘러 어버이가 늙어가는 것을 애석해 하여 하루하루를 아낀다는 말이다. 「논어(論語)」이인(里仁) 편의 “부모의 연세는(父母之年)” 주석에 '날짜를 아끼는 정성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愛日之誠 自有不能己)'고 하였다.
제6장 상제(喪制): 율곡은 "대체로 초상이란 그 슬퍼하는 마음이 부족하고 예법에만 충실(忠實)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예법에는 부족하더라도 슬퍼하는 것이 나은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초상 치르는 일이란 그 서러워하고 공경하는 것을 다할 뿐이다." 라고 강조했다. 또 부모의 상을 당하여 지나치게 슬퍼하여 생명을 잃는 것이 큰 불효라며 경계하고 있다. 상제는 의당 한 결같이 주 문공(朱文公: 朱熹)의 가례(家禮)를 따르되 만일 의심이 나고 모를 것이 있으면, 예(禮)를 잘 아는 선생이나 어른에게 물어서 반드시 예를 다하여야 옳다. 복(復)할 때에 세속에서 으례 이름을 부르는데 이는 예가 아니다. 젊은이라면 이름을 부를 수도 있겠으나, 어른이라면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것이니 생시에 부르던 호칭대로 부르는 것이 옳다. 부녀자라면 이름을 부르는 것이 더욱 마땅하지 않다.
註 00; 복(復); 사람이 막 숨졌을 때 죽은 사람이 평소에 입었던 저고리를 들고 지붕으로 올라가 왼손으로는 저고리의 동정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저고리의 허리춤을 잡고서 죽은 사람의 평소의 호칭을 세 번 부르는 초혼의식. 이미 떠난 영혼이 행여 다시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시이다. 세속에서는 혹 그 옷을 지붕 위에 한참 그대로 두기도 하나 이는 잘못이며 지붕에서 내려올 때 그 옷도 가지고 내려와 시체를 덮는 것이 옳은 일이다. 《四禮便覽 喪禮 復》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아버지가 상주(喪主)가 되어, 모든 축문에 다 지아비가 아내에게 고하는 식례(式禮)를 써야 한다. 부모가 처음 돌아가시면 처, 첩과 며느리 및 여자들은 다 머리를 풀고, 남자들은 머리를 풀고 위의 옷의 옷섶을 띠에 끼우고 버선을 벗어야 한다. 소렴(小斂)을 하고서는 남자는 왼 어깨를 드러내고 머리를 묶으며 부인네도 머리를 묶는다. 만일 남에게 양자 간 아들이나 시집간 딸은 다 머리를 풀거나 버선을 벗지 않는다. 남자는 관을 벗는다.
시체가 방에 있고 아직 빈소를 차리기 이전 남녀가 시체 곁에 있을 때에는 그 석차가 남쪽이 윗사람의 석차가 되니, 시체의 머리가 두어진 곳으로 윗자리를 삼아서이다. 빈소를 차린 뒤에는, 여자는 여전히 당상에서 남쪽을 윗자리로 하고 남자는 뜰에서 북쪽을 윗자리로 해야 하니, 빈소가 있는 쪽이 윗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발인(發引)할 때에는 남녀의 석차가 다시 남쪽을 윗자리로 삼으니, 영구가 있는 곳이 윗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위치를 바꾸면서도 각기 예의가 담겨져 있다.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예를 모르고서, 조객이 위문할 때마다 전혀 일어나 움직이려 않고 단지 엎드려 있기만 하려하고 있다. 이것은 예가 아니다. 조객이 영좌(靈座)에 절하고서 나오면 상주는 당연히 상차(喪次)에서 나와 조객에게 재배하고 곡하여야 한다. 조객도 답배하여야 한다. 상복은 질병이나 일할 때가 아니면 벗을 수 없다.
「가례(家禮)」에, “부모의 상을 당하면 성복(成服)하는 날 비로소 죽을 먹고, 졸곡(卒哭)하는 날 비로소 소식(蔬食)에 곱게 봐?않은 곡식으로 지은 밥. 물만 마시고 국을 먹지 않음. 채소·과실은 먹지 않다가, 소상(小祥) 뒤에 비로소 채소와 과실을 먹는다.” 국도 먹을 수 있다. 하였다. 예문(禮文)이 이와 같으니 병이 없으면 예문대로 따라야 한다. 어떤 사람은 예에 지나쳐서 3 년이 지나도록 죽만 먹는 이가 있으나 만일 효성이 남보다 뛰어나서 조금도 억지로 하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면, 비록 예에 지나치다면 이는 스스로를 속이고 부모를 속이는 것이다. 절대로 삼가 해야 한다.
註 26; 성복(成服)- 사람이 죽은 지 나흘째가 되는 날의 새벽에, 죽은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상복을 차려 입는 것으로 3년, 1년, 9개월, 5개월, 3개월 등의 차등(差等)에 따라 입는 옷도 서로 다르다 《四禮便覽喪禮 成服》
지금 예를 아는 집에서는 흔히 장사지낸 뒤에 반혼(返魂)한다. 이것은 정말 바른 예이다. 다못 세속 사람들이 잘못 본따 여묘살이하는 풍속을 폐지하고 반혼한 뒤에 각기 제집으로 돌아와 처자와 한데 거처하여서 예법을 크게 무너뜨리니 매우 한심하다. 모든 부모상을 당한 사람은 스스로 헤아려보아 하나하나 예문에 따라 조금도 부족이 없을 자신이 있으면 예대로 집에 반혼하고, 혹시 그렇지 못하면 옛풍속대로 여묘살이를 하는 것이 옳다. 어버이의 상에 성복전에는 울음이 입에서 그치지 않고 기진하면 하인이 대신 곡하게 한다. 장사지내기 전에는 때를 정하지 않고 슬퍼지면 곡하며, 졸곡 뒤에는 아침과 저녁 두 때만 곡한다. 예문은 대개 이러하나, 만일 효자가 정이 지극하다면 울음이 어찌 정한 횟수가 있으랴. 초상에 애통이 부족하고 예절이 넉넉한 것보다는 차라리 예절이 부족되고 애통이 넘치는 것이 낫다. 상사는 애통과 공경을 다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註 27; 반혼(返魂)- 묘소에서 신주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 이 신주를 3년 동안 모시고 제를 올린다. 《四禮便覽 喪禮 反哭》
註 28; 여묘살이- 묘소에 움막을 짓고서 3년 동안 지내는 일. 이때는 물론 반혼(返魂)하지 않으며 또 남자만이 이 움막에서 거처한다. 그러나 이것은 바른 예는 아니다. 중국에서는 자공(子貢)이 공자가 돌아가셨을 때 시행한 것이 기록에 보이고 그 뒤로는 한과 당(漢唐)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孟子 文公上》·《四禮便覽 喪禮 反哭注》
증자(曾子)가 말한, “사람이 스스로 그 극진한 정성을 다할 자 있지 않으나 반드시 부모의 상을 당하였을 때에는 정성을 다한다."고 하였으니, 상사(喪事)는 부모를 섬기는 큰 예절이다. 여기에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어디에 정성을 다하겠는가. 예전에 ‘소련(少連), 대련(大連)이 거상(居喪)을 잘하여, 3일 동안 게을리 하지 않고 3개월 동안 늦추지 않고 1년 동안 슬퍼하고 3년 동안 근심하였다.’ 이것이 바로 거상하는 방법이다. 효성이 극진한 사람은 힘쓰지 않아도 이렇게 할 수 있으나 미치지 못하는 자는 힘써 이것을 따라해야 한다. 거상(居喪)하는 사람으로서 간혹 자질(資質)은 훌륭하나 배우지 못한 자가 그저 대대로 지키는 것만이 효도인 줄만 알고 몸을 상(傷)하게 하는 것이 바른 도리를 잃은 것인 줄 몰라 지나친 슬픔으로 몸을 상해 병이 벌써 생겼는데도 권도(權道: 임시변통의 방법. 병이 나면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를 차마 따르지 못하다가 생명을 버리기까지 하는 사람이 혹간(或間)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므로 슬픔에 몸을 여위어 생명을 손상(損傷)하는 것을 군자는 불효라고 한다. 무릇 복을 입을 친척의 상사를, 만약 객지에서 부음을 들었으면 위패(位牌)를 마련하고서 소리 내어 울어야 한다. 만일 분상(奔喪)을 하게 된다면 집에 와서 성복하고, 만일 분상을 못하면 4일 만에 성복하고, 만일 재최복(齋崔服)이면 아직 성복하기 이전의 3일 중에는 조석으로 위패를 뫼시고서 곡하여야 한다. 재최복으로서 대공(大功 : 9개월)으로 낮추어진 자도 이와 같다.
사우(師友)로서 의리가 중한 이와, 친척으로서 복은 없지만, 정(情)이 두터운 이와 서로 사귀는 교분(交分)이 친밀(親密)한 이는 모두 부음(訃音)을 들은 날에, 만일 길이 멀어서 갈 수 없으면 위패를 마련하고서 곡하여야 한다. 스승은 정의(情義)가 엷고 깊음에 따라 혹 심상(心喪)으로 3년 또는 1년 하기도 하고 9개월 또는 5개월 하기도 하고 3개월 하기도 하며, 벗은 가장 중하게 하여도 3개월을 넘길 수 없다. 만일 스승의 상에 3년이나 1년의 복을 입으려는 사람이 분상(奔喪)하지 못하면 조석으로 위패를 마련하고서 4일간 곡하다가 4일째 아침에 그쳐야 한다. 정이 중한 자라면 이 한정에 구애되지 않는다. 무릇 복을 입게 된 자는 매월 초하룻날 정하여진 복을 입고서 회곡(會哭)한다. 사우(師友)에는 복이 없으나 역시 이와 같다. 복을 입을 달수가 다 차면 다음 달에 회곡하고 복을 벗는다. 그 사이에도 슬퍼지면 곡하는 것이 좋다. 무릇 대공(大功) 이상의 상사에 장사하기 이전에는 일 없이 나들이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또한 남에게 조상하는 것도 옳지 않다. 늘 상사를 주선하고 예문을 강구하기를 일삼아야 한다.
註 29; 소련(少連)과 대련(大連)의 거상(居喪)- 이 인용문은 「예기(禮記)」잡기(雜記) 하에 보인다. 소련(少連)과 대련(大連)은 어느 때 사람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동이족(東夷族)이라고만 밝혀져 있다.
註 30; 재최복(齋崔服)3년과 1년, 5개월과 3개월 등의 나뉨이 있다. 곧 1년을 이른다. 《四禮便覽 喪禮 成服》
註 31; 대공(大功 : 9개월)- 원래는 1년 복에 해당하나 어떤 경우로 9개월로 낮추어 진 것을 이른다. 그것은 양자로 간 사람이나 시집간 사람들의 경우에서만 생겨난다. 본래 양자를 가지 않고 시집가지 않았으면, 통상 1년을 복상(服喪)하여야 할 사람들에게 환경의 변화로 한 등급을 내려 입음을 이른 것이다. 4촌 형제가 이에 해당한다.《四禮便覽 喪禮 成服》
註 32; 심상(心喪)- 스승의 죽음에 제자들이 마음으로 입는 상(喪)이다. 부모의 상과 똑같이 하면서 오직 바깥으로 드러난 옷가지 등의 예절이 없어 붙여진 말이다. 《禮記 檀弓 上》
註 33; 분상(奔喪)과 회곡(會哭)- 분상이란 타방(他邦)에 거주하면서 향당(鄕黨)의 상(부모나 친족)을 전해 듣고 급히 돌아가는 예이다. 분(奔)이란 급함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친족이 멀수록 급함의 차이는 달라진다. 『예기』 분상(奔喪)./ 회곡(會哭)은 문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곡을 하거나 오는 순서대로 하는 것이다.
제7장 제례(祭禮): 제사(祭祀)는 의당 가례(家禮)에 따라, 반드시 사당을 세워서 선대(先代)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위토답(位土畓: 祭田)을 마련하고 제기(祭器)를 갖춘 다음 종자(宗子)가 이것을 주관하여야 한다. 사당(祠堂)을 주관하는 사람은 매일 새벽에 대문 안에서 재배(再拜)하고 주관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주관하는 사람을 따라 함께 뵙는 것도 무방하다. 나들이 할 때는 반드시 고하여야 한다. 혹 수재(水災)나 화재(火災)가 생기거나 도둑이 들면 먼저 사당부터 구하여 신주와 물려온 책들을 옮기고 다음으로 제기를 치우고 난 뒤에 집안의 재물을 구하여야 한다.
설날 · 동지· 초하루 · 보름에는 사당에 참례하고, 단오 · 추석 등 풍속에서의 명절에는 그 계절의 음식을 올려야 한다. 시제(時祭)에는 산재(散齋)를 4일을 하고 치재(致齋)는 3일을 하며, 기제(忌祭)에는 산재를 2일 하고 치재를 1일 하며, 참례(參禮)에는 재숙(齋宿) 1일을 한다. 산재라는 것은 조문하지 않고 문병하지 않고 육식(肉食)하지 않고 술을 마셔도 취하기까지 하지 않으며, 모든 흉하고 더러운 일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길에서 흉하고 더러운 것을 갑자기 만나면 눈을 가리고 피하여 보지 말아야 한다. 치재라는 것은 음악을 듣지 않고 나들이를 하지 않고 전심(全心)으로 제사 받을 부모나 조상만을 생각하여, 거처하시던 것을 회상하고 웃고 말하시던 것을 회상하고 좋아하시던 것을 회상하고 즐기시던 음식을 회상하는 것을 이른다.
이렇게 하고서야 제사를 드릴 때에 형용(形容)이 보이는 듯하고 음성이 들리는 듯할 것이다. 정성이 지극해야 신(神)이 흠향(歆饗)하신다. 대체로 제주(祭主: 제사의 주장이 되는 사람)는 사랑하는 마음과 공경하는 정성을 다할 뿐이다. 가난하면 집의 형편에 어울리게 하고, 병이 있으면 자신의 기운을 헤아려 제사를 지내야 한다. 재물과 자신의 기운이 미칠 수 있는 사람이면 의당 의식대로 행해야 한다.
묘제(墓祭)와 기제(忌祭)를 세속에서 자손들 간에 돌려가며 지내는데 이것은 예가 아니다. 묘제는 비록 돌아가며 지낸다 하더라도 모두 묘소에서 제사를 올리니 그런대로 괜찮으나 기제는 신주(神主)에 제사 지내지 않고 지방(紙榜)에 제사를 지내야 하니 매우 미안한 일이다. 비록 돌아가며 지내더라도 제물을 갖추어 가묘(家廟)에서 지낸다면 거의 괜찮을 것이다. 상제(喪祭)는 두 가지 예절에는 자손으로서 가장 정성을 쏟아야 할 부분이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는 다시 봉양할 수 없으니, 만일 초상에서 예를 다하지 않고 제사에서 정성을 다하지 못했다면 그 영원한 애통(哀痛)함을 붙일 곳이 없고 흘려버릴 만한 때가 없을 것이다. 자식이 된 정의에 어떠하겠는가. 증자(曾子)의 말에, “신종(愼終: 초상에 예를 다함)하고 추원(追遠: 조상을 추모하여 제사 지내는 것)하면, 백성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간다." 하였으니, 아들이 된 사람은 의당 깊이 명심하여야 한다.
요즈음 풍속에서 흔히 예를 몰라, 제사 지내는 의식이 집집마다 다르니 심히 가소롭다. 만일 예법대로 한번 제재하지 않게 되면 끝내는 문란하고 질서가 없어 오랑캐의 풍속이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에 제례를 초록(抄錄)하여 뒤에 부록(附錄)으로 붙이고 또 그것을 위해 도식(圖式)을 마련했다. 자세히 살펴 본떠 행하되 만일 부형이 들어 주시지 않거든 곡진(曲盡)히 아뢰어서 기필코 바르게 하도록 해야 한다.
註 34; 시제(時祭)- 사시제(四時祭)의 줄임 말이다. 사시제는 매 계절의 중간 달에 정침(正寢)에서 지내는 제사로 육갑(六甲)으로 따져 천간(天干)에 정(丁)이 드는 날이나 지지(地支)에 해(亥)가 드는 날을 가려 지낸다. 세속에서 5대가 넘어 묘제(墓祭)로 지내는 제사를 시제(時祭)라 하니 잘못이다. 《四禮便覽 祭禮 四時祭》
註 35; 참례(參禮)- 이는 설날·동지·초하루·보름 등에 사당을 참배하는 예절이다. 이때 조상들에게 새로 난 과실들을 올리기도 한다. 《四禮便覽 祭禮 祠堂》
제 8장. 거가(居家): 집안을 편안히 하기 위하여 집에 있을 때 다스리고 또 지켜야 할 일을 열거하고 있다. 대체로 집에 있을 때에는 신중(愼重)하게 예법(禮法)을 지켜 처자와 집안사람들을 거느려야 한다. 직분을 나누고 일을 주어 성공(成功)을 책임지우고, 재용(財用)의 씀씀이를 제정(制定)하여 수입을 헤아려서 지출하고, 가산(家産)의 정도에 맞추어 위아래 사람들의 의식(衣食)과 길흉의 비용을 충당하되 모두 품절(品節)을 두어 고르게 해야 하고, 낭비를 줄이고 사치를 막아 늘 조금의 여분을 두고 뜻밖의 일에 대비하여야 한다.
/ 기성세대가 정말 저주받아야 할 세대인가(12-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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