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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무지(無知)보다 더 무서운 건 莫知 (작가 현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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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영
댓글 0건 조회 1,837회 작성일 16-09-2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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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無知)보다 더 무서운 건 막지(莫知)
나이가 들면 저절로 현명해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이 든 분들이 자기 직관과 경험을 과신하면서 편협해지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특히 요즘 노인들의 정치적 완고함과 맹목성은 젊은이들을
질리게 합니다.
“무지가 죄란 말이 있잖아요.
진실이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종북좌빨이 뭔지도 모르고 무지한 사람들.
이게 무지로만 끝나면 그냥 순진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근데 완강하게 무지를 고수하려는 사람들,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이게 더 무서운 거야. 알게 되면 자기 신념에 손상이 올까봐
‘쟤네 종북인데, 왜 아니라고 하지?’ 하면서 누구 말을 들으려고도 안 하고,
책이나 기사를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 그게 ‘막지’(莫知)예요.
아는 거를 금하는 거. 압축성장기를 거쳐 온 우리 사회 70·80대들은
책도 잘 안 읽어요.”
-그 연배가 되면 자기가 잘못 알았다는 걸 인정하기가 그렇게 어려워집니까?
“두려움 때문이죠. 자기들이 바뀔 생각은 않고 기존의 신념을 교리처럼 섬기니까.”
-나이가 들면 신체적 노화만 오는 게 아니라 권력의 중심부에서도
서서히 밀려나게 되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세를 과시하려고 하고
‘뒷방 늙은이’ 소리 들을까봐 노심초사하는 걸로 보여요.
“노년이 되면 집안에서 가부장으로서 가지던 권력도 쇠퇴하고
직장에서 누리던 권력도 다시 못 누리게 되죠.
욕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못하면, 노여움만 쌓여요.
특히 이름과 명예에 연연해온 사람은 이름의 노예가 돼서
두 번의 죽음을 겪게 됩니다. 자기 이름이 잊히는 것 때문에
‘죽음 같은 쓴맛’을 겪고, 뒤이어서 육체적 죽음을 맞는 거예요.
인생이란, 앞 강물, 뒷 강물 하면서 흘러가다가 하구에 이르면 바다로 빠지는 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난 바다로 안 갈래’ 하면서 버티면, 그게 웅덩이가 돼서
고이고 썩는 거지. 그러면 노년이 추해져요. 자연스럽게 강물 따라 흘러가 버리면
되는데 말예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자연하고 잘 어울려야 해요.
자연 속에선 그게 다 치유가 됩니다.”
현기영 작가는 요즘 부쩍, 흙냄새를 맡으며 풀과 나무를 가까이하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흙으로 돌아가 내 몸을 구성했던 원소들을
초목의 뿌리에 내줄 때를 예감하기 때문”이라면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그렇게 너나없이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현기영 1994년 작. <마지막 테우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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