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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동학교’의 내력과 영인본 경전 사진
현재 ‘상주 동학교당’이라 알려진 상주 ‘동학교’의 내력을 ‘한국신흥종교연구소’에서 1992년(대흥 기획) 펴낸 ‘한국신흥종교총감-저자 이강오’ 내용을 요약하여 알려드리겠습니다.
한국신흥종교들은 1860년 경주에서 수운 최제우선생이 창도한 동학(東學)에서 비롯된다.
전략)동학의 교파는 크게 나눠 ‘전통교단과 방계교단, 그리고 변성(變成)교단으로 구분된다. 상주 동학교는 방계교단으로 구분된다. 방계교단이란 동학 정통파의 밖에서 교법의 공식적인 과정 없이 자기 나름으로 창교한 교파, 즉 동학교단이라 자처하는 교단들이다.
상주 동학교는 수운의 제자라 하는 김시종(金時宗)이 1869년 동학의 접주(接主)라 자칭하면서 경북 안동지역에서 동학교라는 명칭으로 교파를 만든 것이 시작이다. 그 뒤 김주희(金周熙)라는 자에 의하여 궁을도(弓乙道)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궁을도는 현재의 상주동학교당 자리에 본부를 두고 포교를 시작한다.
김시종이 동학교의 분파의 원조로서 스스로 남접도주(南接道主)라 칭하면서 1909년 동학교(東學敎)라는 명칭으로 교단을 만들었다. 경북 안동지역을 중심으로 포교활동을 하다가 2대교주 김낙춘(金落春)을 거쳐 3대교주 김주희(金周熙)가 상주군 은천면에 본부를 옮겨 포교하였다. 김주희는 동학교의 교명을 궁을도라 개명하였으나, 교리는 동학의 교리와 비슷하나 신비적 경향이 짙다. 궁을도는 미약한 교세로 유지되고 있었다.(궁을도는 현재 동학교라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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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상주 동학교당 즉 김주희는 동학교의 교주도 아니고 원래 김시중이 동학접주 또는 동학남접도주를 자칭한 동학의 법통과 전혀 상관없는 동학의 방계교단 즉 스스로 분파한 것이다. 현재 상주시나 상주동학교당 관게자들이 김주희를 동학의 남접교주라라는 역사를 완전 왜곡을 하고 있는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하겠다. 김주희는 정확이 말해 동학에서 스스로 분파한 동학의 정통과 관계없는 동학교를 다시 궁을도라 칭하고 교주가 된 자이다.
어찌 수운 최제우 대신사로부터 직접 남접의 도주자리를 물려받았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동학역사를 홍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동학의 남접과 북접이 사실상 없었다. 수운 대신사가 자신의 운명 즉 순교를 예견하고 대신사가 계시는 곳에서 북쪽에 있는 해월 최시형 신사에게 북접도주를 임명하였다가 다시 동학의 도주 즉 교주자리를 물려준 역사가 분명 있는데, 이를 왜곡하여 남접교주 운운하는 것은 김주희가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처음 동학에서 분파하여 스스로 접주와 남접도주라 자칭한 김시종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상주동학교당 김주희가 만들었다는 ‘상주동학경전’의 내용을 보면,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 직필한 동경대전 내용을 그대로 모방한 것은, 대신사 경전을 손수 편찬한 해월 최시형 신사의 목판본 필사본 등 경전을 그대로 인용하였다는 것으로 쉽게 알 수 있다. 원래 동경대전 내용에다 김주희의 작품을 첨가하였고 또한 김주희 작품으로 추정되는 여러 내용들이 추가된 것으로 봐 동학의 경전과 연관이 없는 것으로 본다.
*상주동학경전 영인본은 198페이지로 이루어졌다. 수운 대신사님의 동경대전과 같은 내용에, 임의로 추가한 '무제, 분합무두'를 대신사님 경전으로 혼동되게 묘한 결합으로 되어있다. 이는 동학, 천도교경전(동경대전, 용담유사, 시문)외 전부 김주희가 첨부 한 내용이다.
동경대전에 이어, 어떤 설명도 없이, 궁을경(심론), 통운역대(수덕문 외, 22편), 도원경(천지인 외, 2편), 도화경(1~4장), 성경(논학편 외, 6편), 도성경(1~3장 외, 1편), 축식(혼례편-상례펀 외, 5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상주동학경전영인본>
또한, '용담유사, 임하유서(林下遺書), 허황가(虛荒歌) 등 동학가사(東學歌辭), 림하유셔,챵덕가, 챵도가, 챵화가, 인션슈덕가 등 한글본 국한문 혼용본, 경호당(敬浩堂), 동학교적(東學敎籍) 등 기타 판본이 있다.제작시기는 대체로 1920년∼1930년대이다.'<민족백과사전>
*참고문헌*
1. 한국신흥종교총감 130~136쪽(한국신흥종교연구소 이강오 저, 1992년발행-대흥기획)
2. 상주동학경전 영인본(국역상주동학경전 2008년발행-경북대학교퇴계연구소 역자 김문기)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상주동학교당유물 중 경전내용-1920~1930 제작, 김용만 글)
포덕 155(2014)년 1월 10일
동학혁명기념관장 송암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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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동학경전 영인본 제목과 목차를 중심으로 각 항목 시작되는 부분만 사진을 소개해본다.
<상주동학경전 제목, 목차에 따른 영인본사진>
현재 ‘상주 동학교당’이라 알려진 상주 ‘동학교’의 내력을 ‘한국신흥종교연구소’에서 1992년(대흥 기획) 펴낸 ‘한국신흥종교총감-저자 이강오’ 내용을 요약하여 알려드리겠습니다.
한국신흥종교들은 1860년 경주에서 수운 최제우선생이 창도한 동학(東學)에서 비롯된다.
전략)동학의 교파는 크게 나눠 ‘전통교단과 방계교단, 그리고 변성(變成)교단으로 구분된다. 상주 동학교는 방계교단으로 구분된다. 방계교단이란 동학 정통파의 밖에서 교법의 공식적인 과정 없이 자기 나름으로 창교한 교파, 즉 동학교단이라 자처하는 교단들이다.
상주 동학교는 수운의 제자라 하는 김시종(金時宗)이 1869년 동학의 접주(接主)라 자칭하면서 경북 안동지역에서 동학교라는 명칭으로 교파를 만든 것이 시작이다. 그 뒤 김주희(金周熙)라는 자에 의하여 궁을도(弓乙道)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궁을도는 현재의 상주동학교당 자리에 본부를 두고 포교를 시작한다.
김시종이 동학교의 분파의 원조로서 스스로 남접도주(南接道主)라 칭하면서 1909년 동학교(東學敎)라는 명칭으로 교단을 만들었다. 경북 안동지역을 중심으로 포교활동을 하다가 2대교주 김낙춘(金落春)을 거쳐 3대교주 김주희(金周熙)가 상주군 은천면에 본부를 옮겨 포교하였다. 김주희는 동학교의 교명을 궁을도라 개명하였으나, 교리는 동학의 교리와 비슷하나 신비적 경향이 짙다. 궁을도는 미약한 교세로 유지되고 있었다.(궁을도는 현재 동학교라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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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상주 동학교당 즉 김주희는 동학교의 교주도 아니고 원래 김시중이 동학접주 또는 동학남접도주를 자칭한 동학의 법통과 전혀 상관없는 동학의 방계교단 즉 스스로 분파한 것이다. 현재 상주시나 상주동학교당 관게자들이 김주희를 동학의 남접교주라라는 역사를 완전 왜곡을 하고 있는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하겠다. 김주희는 정확이 말해 동학에서 스스로 분파한 동학의 정통과 관계없는 동학교를 다시 궁을도라 칭하고 교주가 된 자이다.
어찌 수운 최제우 대신사로부터 직접 남접의 도주자리를 물려받았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동학역사를 홍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동학의 남접과 북접이 사실상 없었다. 수운 대신사가 자신의 운명 즉 순교를 예견하고 대신사가 계시는 곳에서 북쪽에 있는 해월 최시형 신사에게 북접도주를 임명하였다가 다시 동학의 도주 즉 교주자리를 물려준 역사가 분명 있는데, 이를 왜곡하여 남접교주 운운하는 것은 김주희가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처음 동학에서 분파하여 스스로 접주와 남접도주라 자칭한 김시종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상주동학교당 김주희가 만들었다는 ‘상주동학경전’의 내용을 보면,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 직필한 동경대전 내용을 그대로 모방한 것은, 대신사 경전을 손수 편찬한 해월 최시형 신사의 목판본 필사본 등 경전을 그대로 인용하였다는 것으로 쉽게 알 수 있다. 원래 동경대전 내용에다 김주희의 작품을 첨가하였고 또한 김주희 작품으로 추정되는 여러 내용들이 추가된 것으로 봐 동학의 경전과 연관이 없는 것으로 본다.
*상주동학경전 영인본은 198페이지로 이루어졌다. 수운 대신사님의 동경대전과 같은 내용에, 임의로 추가한 '무제, 분합무두'를 대신사님 경전으로 혼동되게 묘한 결합으로 되어있다. 이는 동학, 천도교경전(동경대전, 용담유사, 시문)외 전부 김주희가 첨부 한 내용이다.
동경대전에 이어, 어떤 설명도 없이, 궁을경(심론), 통운역대(수덕문 외, 22편), 도원경(천지인 외, 2편), 도화경(1~4장), 성경(논학편 외, 6편), 도성경(1~3장 외, 1편), 축식(혼례편-상례펀 외, 5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상주동학경전영인본>
또한, '용담유사, 임하유서(林下遺書), 허황가(虛荒歌) 등 동학가사(東學歌辭), 림하유셔,챵덕가, 챵도가, 챵화가, 인션슈덕가 등 한글본 국한문 혼용본, 경호당(敬浩堂), 동학교적(東學敎籍) 등 기타 판본이 있다.제작시기는 대체로 1920년∼1930년대이다.'<민족백과사전>
*참고문헌*
1. 한국신흥종교총감 130~136쪽(한국신흥종교연구소 이강오 저, 1992년발행-대흥기획)
2. 상주동학경전 영인본(국역상주동학경전 2008년발행-경북대학교퇴계연구소 역자 김문기)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상주동학교당유물 중 경전내용-1920~1930 제작, 김용만 글)
포덕 155(2014)년 1월 10일
동학혁명기념관장 송암심고.
...................................
* 상주동학경전 영인본 제목과 목차를 중심으로 각 항목 시작되는 부분만 사진을 소개해본다.
<상주동학경전 제목, 목차에 따른 영인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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