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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기술 과학문명과 미래종교(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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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댓글 0건 조회 2,070회 작성일 12-12-30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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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과학문명과 미래종교(5-5)
'前略- 앞서의 장에서는,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세계 여러 국민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 있어서의 최소한도의 일치점과 획일성이 세계정부 설립을 위한 필수조건의 하나라는 것을 지적했다. 과거에 있어서의 몇몇 역사상의 예로는, 주민이 예를 들면 인신 공물(供物)과 노예제도와 같은 논쟁의 불씨가 될 제도의 선악에 관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할 경우에는 지방 국가의 통일을 유지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근본적인 도덕 문제에 있어서 공통되는 도덕 기준을 갖고 있는 것은 사회적, 정치적 연대(連帶)의 불가결한 기조인 모양이다. 도덕은 종교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종교는 인생의 중심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국가에 있어서의 획일성의 필요가 종교의 분야에까지도 미치는 것인가 어떤가를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문자 그대로 세계적 규모의 세계국가를 건설하고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 저치 구조를 견고히 하기 위해서 오늘날 이 세계에 공존하는 서로 다른 종교나 철학 및 사상을 모두 융합(融合)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인가.
세계국가의 건설자와 그들의 후계자들은 어느 정도의 종교적 통일이 정치적 통일처럼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세계의 정치적인 통일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여러 가지 종교 제도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하고 새로 채용하기도 했다. 이집트, 로마, 중국, 안데스의 세계국가에 있어서는 집단적인 힘의 세계 공동체의 대한 신앙은 그 지배자의 인격 속에 신격화되었다. / P. 187.
토인비는 인간이 종교에 접근여부에 대한 상황이나 선택하는 방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고대사회에서는 한 개인이 태어난 때와 장소에 따라 우연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었으나, 거리가 말살된 오늘날은 즉 세계가 교통수단의 발랄로 인하여 거의 일일 생활권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 사고들이 실 시간으로 전달되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현대의 상황에서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현존하는 종교나 철학이나 이데올로기를 모두 알게 되며, 이것들 가운데서 가장 공감이 가는 것으로 선택할 수가 있을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서양에서는 중세 까지, 한국에서는 중세를 지나 근대사회까지도 계대교인(繼代敎人/ 배냇교인/ 胎生敎人/ 母胎信仰-필자 주)이 대다수였으나, 기술과 과학문명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현대에서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도가(道家)의 완성이 매우 어렵게 된다고 보고 있다. 그것은 인간 개개인이, 옛날처럼 가족이나 모국(母國)의 종교를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무조건적이나 관습적(慣習的)으로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넓은 세계를 보고 이해하며 역사의 맥락(脈絡)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사리(事理)를 판단하여 종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질 것이다. 라고 예견하고 있다.
'前略- 그러나 인간의 심리학적인 타이프, 기질, 성향은 이와 같이 지리적으로 각기 다른 지방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 어떠한 인간 사회를 보아도 그것이 아무리 적은 수일지라도 이미 지적한 것처럼 온갖 형(型)의 인간을 찾아낼 수가 없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결과로 보아 지금까지의 종교는, 보통 그 기질에 따라서 개인적으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때와 장소에 따라 우연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었다. 실제로는 보통 선조 대대로 내려온 종교를 그 사람과 같은 기질의 인간에게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은 별문제로 치고 계승되는 것이었다. 만일 계승된 종교가 그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면 그것은 다행스러운 우연이었던 것이다. 그 사람에게 가장 알맞은 종교가 어쩌다가 지구상의 그 사람이 사는 장소와 지리적으로 정반대 쪽이라면, 교통기관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사실상 그 곳과 접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가 말살된 오늘날은, 세계 어떠한 곳에서 태어난 어떤 개인이라 해도 현존하는 종교나 철학이나 이데올로기를 모두 알게 되며, 이것들 가운데서 가장 공감이 가는 것으로 선택할 수가 있을 것이다. 옛날처럼 가족이나 모국의 종교를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자동적으로 이어받는 대신, 사리를 판단할 줄 아는 개인이 종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의 종교를 갖는 변화가 진전함에 따라 세계의 종교 분포도가 변할 것이다. / PP. 194-195
여러 종교에 있어서의 신자가 지리적 위치의 우연성에 의해서 모이는 대신, 개인적인 선택에 의해서 모이게 되면. 고등종교는 비로소 그 존재이유를 완전히 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여러 고등종교의 공통된 사명은 개인을 그가 속한 공통체로부터 해방시켜 우주의 모든 현상의 배후에 있는 영적 실재에 직접 접촉케 하여 그것과의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중략- 우리 모두가 인생에 있어서 번민하는 개인적인 시련, 고뇌, 죄, 실패, 이별 등에 대해 이데올로기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각 이데올로기의 일시적 흥륭(興隆)과 진보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여러 번뇌는 -인간에 있어서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면이다- 의연히 역사적인 고등종교와 철학의 영역인 것이다.
고등종교의 불행임과 동시에 인류의 불행이었던 것은 고등종교가 인류를 그 고대사회라는 감옥으로부터 구원해 낸 뒤에 다시 고등종교 자신이 구축해 놓은 새 감옥 속에 가두어 놓지 않을 수 없게 된 일이다. 이것은 이미 지적한 이유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었다. 종교란 개인적인 활동임과 동시에 사회적인 활동이다. 그리고 사회적인 활동은 뼈대를 필요로 한다. -중략-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그 본성에 의해서 칭칭 감겨진 사회의 망(網) 속에서 완전히 빠져 나올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사회적 속박의 압박도는 여러 가지 일수가 있다. 인간이 그 곳에 태어남으로써 선천적으로 자기 때문에 정해진 사회라는 감옥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할 때 개인적인 자유는 최소한의 상태에 있음을 알게 된다. 자유 자체로서는 몇몇 감옥 속에서 선택 할 수 있는 것이 차선책이요, 그것은 귀의(歸依)할 종교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P.195.
종교의 복수성과 다양성이 바람직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편견이 없는 관대함을 조장하고, 인간 정신이 자칫하면 교리에 빠져 버리기 쉬운 경향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보장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고등종교가 관계하고 있는 존재의 수준이라는 것은, 과학과 기술의 수준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에 있어서는 비교적 중요하지 않고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에 과학이나 기술은 그것들이 제기하는 비교적 작은 문제에 정확한 답을 줄 수가 있다. 이네 대해서 여러 고등종교는 우주의 신비를 깨고 인간의 혼을 여러 현상ㅇ의 배후에 묻힌 궁극의 영적 실재에 접촉시켜 이것과 조화를 이루게 하려는 굉장히 큰 시도인 것이다. 이들 종교가 제기하는 문제는 인간이 결코 묻는 일을 멈추지 않는 종류의, 그러나 과학적인 정확도로 답할 수는 도저히 없는 종류의 문제인 것이다. 종교의 말은 과학이나 기술의 말이 아니다. 그것은 시(詩)와 예언서의 말인 것이다. 종교는 인간 정신의 심층(深層)에서 솟아나오는 것으로, 종교가 찾아내는 것은 그 대상을 말로 나타낼 수 없는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시적인 것이 된다. 교의(敎義)는 종교적 진리를 과학의 말로 나타내려고 하는 계산 착오적인 시도의 결과이다. 각종의 종교가 여러 소리를 말한다는 것은, 그런 어느 것이나 교조적으로 받아드려서는 안 된다는 경고인 것이다. 만일 현존하는 모든 종교, 철학, 사상이 하나로 융합되어 버린다면, 인류가 교조주의적인 정신적 마비에 빠질 위험은 현재보다 더욱 많아진다. 왜냐하면 융합의 결과로 나온 혼합물이 유일한 정교(正敎)로서 신성시화 되는 일은 거의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중략- 정치적으로 통일된 세계에 있어서 종교의 복수성과 다수성이 바람직한 또 하나의 이유는 세계국가는 권태로 번민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세계국가는 집단 자살을 대신하는 유일한 필연적인 귀결이다. 그러나 모든 은혜에는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지루함은 안전이라는 은혜에 따르는 대가의 일부가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거의 어찌할 수 없는 정도로 다양하고, 괴로울 정도로 흥미로운 세계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전쟁을 폐지하고, 세계 인구를 안정시켜 현재의 3배 또는 4배가 된 인구를 충분히 부양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 창조되는 사회를 그려 보려면 상상력을 왕성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신기한 세계에서는 가치의 역전(逆轉)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안전이 따라서 통일과 획일성이 존중된다. / PP. 196-197.
20世紀의 世界에 있어서의 宗敎的展望에서 토인비는 새 시대에 있어서의 새로운 종교 신앙의 필요성은, 20세기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20세기 중엽인 지금 서구화해 가고 있는 세계에서는 자유를 적대시하고 규제와 조직적 통제를 환영하는 적어도 세 개의 힘차고 집요하고 더구나 널리 보급되어 있는 요구가 존재했다. 안전 보장의 요구, 사회주의 요구, 보다 높은 수준의 물질적인 생활의 요구가 바로 이것이다.'/ 한 歷史家의 宗敎觀 PP. 247-248.에서
그러나 개인의 종교 신앙에 대한 관용이나 강요는 있을 수 없으므로, 개인적인 종교의 선택과 신앙은 매우 개인적인 권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인 종교 신앙을 그 누구도 강압적인 방법으로 강요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우주나 절대적인 실재에 대하여 완전하게 전부를 파악하고 인식할 수 없는 한계가 있으므로, 우주나 절대적인 실재에 대한 충분하고 완전한 판단을 할 수 없어 종교 신앙에 있어 최상의 것과 옳은 것 그리고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보고 있다.
'종교적 관용의 기초가 되어야할 적극적인 동기는 종교적인 싸움이 단지 폐해를 끼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의 죄라고 하는 진리를 인정하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성 안에 있는 야수성을 일깨우기 때문에 죄가 된다. 종교적 박해도 또한 타인의 영혼과 신 사이를 가로 막을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하는 이유에서 죄이다. 모든 영(靈)은 신과 그 영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신과 교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그리고 이 특수한 방법은 신과 당사자인 영에게만 관계되는 문제이다. 누구든 비폭력적인 포교이외의 어떤 수단으로도 이에 간섭할 권리는 부여받지 않고 있다. 또 이 분야에서는 폭력은 죄일 뿐만 아니라 무익하다. 종교는 강압적인 힘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순수한 자발적인 내적 확신을 통하여 자유로운 의지로 믿을 수 없다는 신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실재는 신비이며, 현재까지 인간 정신으로 통찰된 것 혹은 인간 정신에 제시된 것은 이 실재의 한 단편(斷片)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 歷史家의 宗敎觀 PP. 259-260.에서
라고 강조하고 있다. 토인비는 20세기에서 살아가야 할 젊은이들에 자신의 사상과 미래에 대한 예견을 다음과 같은 암시적인 시로 표현하여 전하고 있다.
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 세상은 결코 텅 비지도 조용하지도 않은 투기장(鬪技場) 투기자와 관중은 재빨리 바뀐다. 그들은 왔다가는 가나, 연기(演技)는 계속된다. 나는 열렬한 참가자요, 날카로운 관찰자였다. 나는 인간이 점점 힘차게 점점 힘없이, 점점 거칠게 점점 착란(錯亂)해 가는 것을 보아 왔다. 어떤 인과(因果)를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저장하고 있는 걸까? 나는 그 극의 결말, 아니 이제 진행 중인 참혹한 막이 내려지는 것마저 보지 못한 채 죽으리라. 내가 죽은 뒤에 무엇이 일어날지 마음에 걸린다. 나는 젊은 세대와 아직 태어나지 않는 후계자를 더듬는다. 머지않아 나는 떠나리라, 하지만 후대(後代)에 대한 관심은 남으리라. 그것은 인류와 더불어 머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미래의 전 세대를 포괄하기 때문에- Leaving the World This world is an arena that is never empty, never quiet. Actors and spectators change fast. They come and go, but the action continues. I have been an eager participant and a keen observer. I have watched Man growing more powerful, more helpless, more violent, more distraught. What Karma is Man putting in store for himself? I shall not live to see the end of the play or even the close of this agonising act. I care about what is going to happen after I am dead: I feel for the rising generation and for their still unborn successors. Soon I shall be gone, but my concern for posterity will remain. It will last as long as mankind, for it embraces all future generations. 自己를 탈피하면서 이제 런던에는 단풍(秋色)이 찬란하다. 석양(落日)은 나무 가지가 벌거벗기 전에 서둘러 갖가지 색을 나무 위에 불타게 한다. 바로 어제 잎은 푸르렀다. 오늘 그것은 황금색과 주홍(朱紅)색이다. 내일은 곧 쉴 대지(大地)의 빛을 걸치고 있으리라. 계절과 더불어 색을 바꾸면서, 잎은 그것이 비롯한 곳에 끝난다. 그리고 나의 육체도 곧 나뭇잎의 길을 밟아 가리라. 즉 나를 낳아 준 나라의 대지로 되돌아가는 거다. 나도 또한 돌아가겠지만 대지에로 가는 것은 아니다. 왜냐고, 나는 나의 육체가 아니기에 나는 시공(時空)안에 없노라. 그리고 내가 미지(未知)의 원천(源泉)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그것을 모를 것이다. 왜냐고, 그것은 이미 내가 아니기에 지식의 대상(代償)은 분리(分離)이다. 내가 미지인 것과 다시 결합했을 때, 나는 그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미지라는 것은 과거이며, 현재이며, 미래와 다름없기 때문에- Shedding my Self In London now the autumn colours are bright. The setting Sun hastens to make the colours glow on the trees before the boughs are bare. Only yesterday, the leaves were green; today they are golden and scarlet; tomorrow they will have taken the colour of the earth on which they will be resting. Changing their colour with the seasons, the leaves end where they began, and my body will soon go the leaves, way; it will return to the earth from which it came.
I too shall return, but not to the earth; for I am not my body; I am not in time and space. And when I have returned to my unknown source, I shall not know; for it will no longer be.'I' The price of knowledge is separation. When I have been reunited with the unknown, I shall not know, bur It was and is and will be.
/ 위의 두 편의 시는 토인비역사전집 2권 “미래에 살다./미래의 전망” PP. 266-268. 에서 인용했다. 와까이즈미 교수가 대화가 끝나갈 무렵 ‘교수님께서는 일찍이 시를 좋아하시어 스스로 창작하신다고 듣고 있습니다만 이 기회에 젊은 세대의 사람들에게 시를 한 편 선사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라는 즉석 주문에, 토인비는 그럼 두 편의 시를 드리겠습니다. 라고 답하고 주었다. 이 때 토인비 교수의 나이는 80 세가 넘은 나이가 되었을 때이다.
註 00; 카르마(Karma)- 카르마는 산스크리트 어로 된 불교의 경전에 나오는 말로 누적(累積)된 과오(過誤)인 업(業)을 의미한다. 또는 광범위한 의미로 원인과 결과의 인과법칙을 통틀어 카르마(karma)라고 한다. 그래서 카르마를 업이 아닌 인과응보라고 의역하기도 하는데, 응보(vipaka)란 원인이 되어 따라오는 반응이다. 즉,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의 존재, 영혼이나 자아도 카르마요, 생명현상도 카르마이다. 자아나 영혼의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보를 받고 괴로움을 겪고 드디어 죽음에 이르는 것은 오로지 카르마일 뿐이다. 또 카르마는 과거에 우리가 행했던 행위와 말과 생각의 결과이다(身口意 三業). 아직까지 남아있는 비참하고 어두운 기억이나 자기기만의 어두운 그림자가 바로 카르마이다. 습관이나 공포 또한 카르마에서 비롯한다. 고 보고 있다.
윌리엄 맥닐은 그의 저서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책인 "西歐의 發興/ The Rise of the West(1963)"에서, 기록으로 남아 있는 5,000년에 이르는 인류역사 속에서 여러 문명이 등장하고 발전하며 서로 교류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 문명을 똑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으며,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를 비롯해 콜럼버스 발견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 발전도 언급하고 있다. 맥닐은 모든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문명의 역사는 끊임없는 변화와 문화의 전파(傳播)가 이루어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유럽 문명이 1500년 이후부터 세계를 주도하는 문명이 된 요인은 극심한 불안정성(不安定性)에 있으며, 서양 문명은 항상 무언가를 바꾸어보려는 역동적(力動的)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대부터 내려온 동양 문명의 문화적 균형(均衡)을 뒤집어엎고 추월(追越)했다고 했다. 이러한 이론은 아놀드 토인비의 견해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데, 토인비는 문명이 어떤 외부의 힘과는 관계없이 자체의 주기적 운동에 따라 발흥(發興)했다가 몰락(沒落)한다고 보았다.
註 00; 맥닐(William H(ardy). McNeill)- 1917년 10월 31일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밴쿠버에서 태어나 생존하고 있는 미국의 역사가이다.〈서구의 발흥/ The Rise of the West〉이란 저서로 잘 알려져 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인간역사의 전 과정을 포괄하고 있는 이 책은 역사이론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시카고대학교(1938 학사, 1939 석사)와 코넬대학교(1947 박사)를 다녔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군으로 참전했다(1941~46). 이 기간 중 그리스 주재 미국 대사관 무관의 보좌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1944~46). 1947년부터 시카고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가르쳤으며 1957년 교수로 임명된 뒤 1961~69년에 학과장을 지냈다.
맥닐은 주로 문화적 영향과 그 전파수단에 관한 중요한 역사학 서적을 많이 썼다. 그가 쓴 책들로는 〈전후 그리스의 딜레마 Greek Dilemma:War and Aftermath〉(1947)·〈문명사 안내서 History Handbook of Civilization〉(1953, 개정판 1969)·〈유럽 변경의 초원지대 1500~1800 Europe's Steppe Frontier 1500~1800〉(1964)·〈세계사 A World History〉(1967)·〈전염병과 인간 Plagues and Peoples〉(1976)·〈인간조건:생태학적·역사적 관점 The Human Condition:An Ecological and Historical View〉(1980) 등이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시급히 요구되는 현상의 파악과 근본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유럽을 중심으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로마 클럽(Club of Rome / Roma Club )은 상당한 기간 동안 철저한 현상파악과 대안을 마련하여 “成長의 限界”(국내에서는 “人類의 危機”란 제목으로 번역 간행; The Limits to Growth)라는 이름으로 1971년 여름에 모스크바와 리오데 자네이로에서 열린 두 국제회의에 제출되었다. 이 보고서의 목적과 연구의의와 결과는 다음과 같다 ./ “人類의 危機”의 ‘로마 클럽의 견해’(PP.219-221)에서
‘이 연구를 MIT팀에 의뢰할 때 우리들은 두 가지 주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世界라는 「시스템」의 限界와 그것이 人口와 人間활동에 대하여 부과하는 制約에 관해 透視를 가능케 하자는 것이다. 오늘날 인간은 종래 이상으로 人口, 土地利用, 生産, 消費, 廢棄物 등의 모든 면에서 계속적으로 그리고 여러 경우 加速度的인 成長견향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배후에는 환경은 이와 같은 擴大를 許容할 수 있을 것이라든지, 다른 「구릅」에 속하는 사람들이 길을 양보해 줄 것이라든지, 또는 과학 기술이 장애를 제거해 주리라는 그런 맹목적인 前提가 있다. 成長에 대한 이와 같은 태도는 우리들이 사는 有限한 地球의 규모와 어느 정도까지 兩立할 수 있는가? 우리들이 구축하고 있는 世界社會의 基本的인 要請- 社會的, 政治的인 긴장의 완화에서 모든 사람들의 質的 向上에 이르기까지의-과 어느 정도까지 兩立할 수 있는가, 이런 것을 探究하고자 우리들은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世界「시스템」의 長期的 動向에 영향을 주는 지배적 諸要因과 그들 사이의 相互作用을 발견하여 연구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知識은 흔히 행해지고 있는 것과 같은 一國의 「시스템」의 分析과 短期的인 分析에 노력을 集中하는 것으로써는 획득할 수 없는 것이라고 우리들은 믿고 있다. 또 이 「프로젝트」는 未來學의 一翼을 담당하는 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 도리어 現在의 경향, 그 相互영향력, 그리고 일어날 수 있는 결과를 분석하는 것이 당초부터의 意圖였다. 우리들의 목표는 이러한 경향을 放置한 경우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世界의 危機에 警告를 함으로써 그와 같은 危機의 發生을 未然에 방지하기 위해 政治, 經濟, 社會 등의「시스템」을 변경할 機會를 주는데 있었다.
로마 클럽이 오래 동안 연구 보고한 “성장의 한계”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현대의 문명은 무엇 하나 천연자원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로마클럽이 지구 자원의 고갈과 성장의 한계에 대해 경고를 내렸다. 앞만 보고 달리던 산업문명의 질주가 작은 돌 뿌리에 채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구리가 제일 먼저 부족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 세계의 동 값은 2배로 뛰었고 일부 석유회사들은 동광을 매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랴. 동선보다 싸면서도 그 용량은 10배가 넘는 광섬유가 곧 발명 됐고 동 값은 최근 15년 동안 잠잠한 채로 있다. 그래도 로마클럽의 예언은 20세기 문명에 큰 못을 박았다. 지금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새 유행어가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유럽의 학자, 기업인, 교육자들로 구성된 로마클럽은 1972년에 첫 번째 보고서인 '성장의 한계'를 발표했다. 로마클럽의 의뢰에 의해 미국 MIT대학 메도우 교수팀이 만든 이 보고서는 인류가 앞으로 당면할 위기의 요인과 양상을 다룬 것이었다. 투자, 인구, 환경오염, 자원, 식량 등을 중심으로 수학적 분석을 통해 작성한 '성장의 한계'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비해 자원은 감소하고 있어 멀지 않은 장래 에 인류가 쓸 수 있는 자원의 양은 인구 성장을 지탱해 줄 수 없을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경제가 전례가 없는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던 시기에 나온 '성장의 한계'는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비판자들은 이 보고서가 자원 위기의 실상을 과장했으며 위기를 극복해 가는 인간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인류 전체의 위기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선진국과 후진국의 자원 이용 불균형을 희석시켜 불평등한 경제관계를 유지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성장의 한계' 발표를 전후하여 일어난 세계 환경회의, 석유위기 등은 이 보고서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그 결과 '성장의 한계'는 37개 언어로 번역돼 총 1200만부가 판매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로마클럽은 1968년 4월 '인류에게 다가오는 위기'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는 유럽의 경제학자와 과학자, 기업인 등 36명이 로마에서 모임을 갖고 결성했다. 이보다 한해 앞서 이탈리아 기업가 아우렐리오 페체이는 영국 과학자 알렉산더 킹과 함께 인류의 장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조직 결성을 제안했고 이에 호응한 사람들이 한데 모인 것이다. 로마클럽은 점차 각계 전문가의 참여 폭을 넓혔고 현재 52개국, 100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연례 회의와 보고서 발간을 통해 인류의 미래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발전 시켜 왔다. 73년 석유 위기가 발발하자 이것이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잘츠부르크선언'을 발표했고 74년에는 '남-북 문제'를 처음으로 본격 제기했다. 또 '전환점 에 선 인류' '세계질서 재편' '인류의 지향점' '낭비의 시대를 넘어서' 등의 보고서를 통해 '성장의 한계'의 문제의식을 심화시켰다. 로마클럽은 또 80년대 이후 전산화와 자동화가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하자 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는 등 시대 변화에도 발 빠르게 대처했다. 또 미-소 양국 정상에게 무기 판매의 중지를 촉구하고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환경 캠프를 조직하는 등 점차 직접 활동에도 나섰다.
96년에는 21세기의 활동 방향을 담은 '브뤼셀 선언'을 발표하고 인터넷에 웹 사이트를 개설하는 등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그들을 후원하는 산업자본가와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반영한 다는 비판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로마클럽만큼 인류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초국가적인 조직을 찾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 백과사전과 관련 자료에서 정리.
주(註) 00; 로마 클럽(Club of Rome / Roma Club ) - 1968년 4월 실업가인 아우렐리오 페체이(Aurelio peccei 1900~83)의 제창으로 1970년 3월에 스위스 법인체로 설립된 민간단체이다. 지구의 유한성(有限性)이라는 공통의 문제의식을 가진 세계 각국의 지식인(경영자, 과학자, 교육자 등)으로 구성하여 천연자원의 고갈, 공해에 의한 환경오염, 개발도상국의 폭발적인 인구증가, 군사기술의 진보에 의한 대규모의 파괴력의 위협 등 인류가 처한 위기를 모면할 길을 모색하여 경고, 조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68년 로마에서 첫 회합을 열고 이후 ‘성장의 한계’ 등의 제언(提言)을 포함한 여러 보고서를 발표한데서 붙여진 명칭이다. 천연자원의 고갈, 환경오염 등 인류의 위기 타개를 모색, 경고·조언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1972년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발표, 제로성장의 실현을 주장하여 주목을 받았다. 로마에서 첫 회의를 가졌던 '로마클럽'의 본부는 로마에 있으며 따로 제네바와 헤이그에 각각 연구소가 설치되어 있다. 이 클럽은 1972년 '성장한계론'이라는 보고서를 발표, 제로성장의 실현을 주장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 클럽은 서구의 산업자본가와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후원받아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이 보고서에서는 암묵적으로 현재의 불평등한 경제관계를 계속 유지하여 제3세계에 대한 착취를 지속시키려는 시도가 깔려있다는 비난이 있다. / 위키백과와 여러 자료들의 종합정리.
주(註) 00;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 - 지난 72년 국제미래연구기관인 로마클럽은 지구의 자원의 고갈을 예측하여 인구, 자원, 환경의 문제를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인류의 위기를 전망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경제 성장(成長) 한계론(限界論)은 첫 번째 보고서인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에 의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보고서는 현대 사회의 성장과 발전에 영향을 주는 심각한 생물, 물리학적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현재의 인구 성장, 산업 발전, 그리고 자원 사용이 지속된다면 다음 세기 중반까지 지구는 생태학적(生態學的) 파멸(破滅)을 경험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국내에서 “人類의 危機-삼성문화문고 15.”라는 제목으로 번역 간행되었다.
이 보고서는 MIT 공과대학의 연구진들이 역사적으로 세계의 발달을 이룩해온 물리, 경제, 사회적 관계의 모든 요인들을 고려한 후, 향후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는 미래의 현상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객관적으로 예측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더불어서, 이 보고서는 20세기의 자원이용과 고갈상태, 인구성장, 공해, 소득, 개인별 식량소비 등의 변수들을 지구 전체적 차원에서 함수로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1900년부터 2100년까지의 기간을 대상으로 현재 나타나고 있는 여러 관계가 연속될 것이라는 가정 아래 인구성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해서 자원의 고갈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멀지 않은 장래에 인류가 쓸 수 있는 자원의 양은 인구성장을 지탱해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인구폭발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자원 측면에서는 천연자원의 고갈, 공해에 의한 환경오염, 개발도상국의 인구증가 등으로 100년 이네에 지구상에는 '성장의 한계' 가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즉,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명제를 제시한 것이다. 이는 21세기에 이류가 직면할 위기를 전망한 인간의 예견력과 대응력이 발휘된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경제성장(經濟成長)의 한계론(限界論)은 1970년대 세계적 석유 위기로 관심을 끌다가, 그 후 차츰 관심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최근 환경 문제가 다시 글로벌 이슈로 떠오르고, 자원의 유한성으로 인해 성장이 한계에 부딪힐 것이란 측면에서 경제 성장 한계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학적 접근에서도 대체로 환경 문제의 근본 원인을 최근의 급격한 경제 성장에서 찾고 있다. 경제 성장은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생태계의 수용 능력에 중대한 위협을 가함으로써 환경 문제를 야기했으며,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 즉 잉여를 동원해서 지속적으로 생산을 확장함으로써 자연 환경이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결과에 까지 이르도록 했다는 것이다. / 人類의 危機와 관련자료 등에서 정리.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그의 저서인 “역사의 연구; A Study of History.”에서 새로운 문명관을 제시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율동(律動/胎動)과 탄생(誕生), 성장(成長)과 붕괴(崩壞), 그리고 해체(解體)에 대한 설명의 핵심으로 그의 역사관(전집 5권)과 사관(전집 2권)에서 ‘도전(挑戰)과 응전(應戰)’(challenge and response.)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새로운 문명관을 보여주었다.
미래사회는 결국 여러 가지 가치의 충돌로 인하여 서로 도전(挑戰)하며, 응전(應戰)을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고의 가치가 없는 세계는, 각각의 가치가 독립적인 의미를 갖게 되고 그 가치가 중시(重視)되어 좌우로 필요에 따라 충돌(衝突)하게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 개개인의 욕구와 상황적인 요구에 따라 수용되고 버려지거나 가치의 충돌로 인성(人性)과 삶이 송두리째 붕괴될 수 있다. 다원화 사회란 개별적인 가치의 존중이라는 점에서는 소중하지만 통합적(統合的)이고 융합적(融合的)인 최고의 기준 가치가 없음으로 인하여 공존공영(共存共榮)의 공동목표(共同目標)의 추구와 실현이 모호(模糊)해지거나 상실(喪失)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중에 가장 위협적인 것이 종교와 과학의 대척(對蹠)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건설해야 할 미래사회가 어떤 사회인가를 확정할 수 있다면, 과학과 종교의 기본적인 가치를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까?는 충돌함이 없이 확정(確定)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천도교의 중흥 즉 미래사회를 창조 건설하여 지상천국을 건설하려면, 먼저 천도교가 어떤 종교이며 어떤 종교여야 하는가는 선택의 문제로 신, 성사님의 교의를 어떻게 해석하여 미래사회에 도전과 응전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 기술 과학문명과 미래종교(5-5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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