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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승민
댓글 0건 조회 2,280회 작성일 12-08-25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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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사람들
도쿄재판 부실로 과거청산 실패…전범 후손들이 역사 바로 잡겠나
진실 모르는 일본 국민만 우민화(愚民化)될 뿐
2007년의 일이다.
인도를 방문한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2박3일간의 일정이 마무리되자 뉴델리에서 1100㎞나 떨어진 콜카타로 서둘러 날아갔다.
‘라다비노드 팔’의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가 누구이기에 일본 총리가 시간을 쪼개 찾아갔을까?
일본 도쿄의 야스쿠니신사를 가봤는지 모르겠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의 위패를 보관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 그 신사 말이다.
그곳 본관 옆의 유물관 쪽으로 들어서면 뜰 한켠에 ‘팔 박사 현창비(顯彰碑)’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그게 라다비노드 팔의 공적비다.
전범을 합사한 일본 신사에 웬 인도인 공적비냐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겠다.
하지만 팔은 다신교 성향의 일본인들에겐 이미 신과 같은 존재다.
태평양전쟁의 전범 처리를 위한 소위 도쿄재판에서 일본의 전쟁을 옹호하며 11명의 재판관 중 유일하게 A급 전범 전원에 대해 무죄의견을 낸 사람이다.
구미야말로 침략의 원흉이며,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아시아 민중에 각성을 불러온 일본이야말로 명예로운 나라라고 칭송한 그다.
그의 의견서가 오죽했으면 법원에서 낭독이 금지됐고, 연합군 사령부가 인쇄를 불허했을까.
그는 이후 일본에 수차례 초청돼 칙사 대접을 받는다.
특히 1966년에는 기시 노부스케가 다리를 놓아 일왕 히로히토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용의자였다.
그러나 A급 전범 25명에 대한 판결 이후 도쿄재판 자체가 돌연 종결되면서 불기소 석방됐고, 이후 정계에 복귀해 총리직까지 오른 사람이다.
팔은 그에게 생명은 물론, 나라의 체면까지 세워준 은인이었던 셈이다. 그가 바로 팔의 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다.
도쿄재판-팔-기시-아베의 관계를 일일이 설명한 것은 이 같은 고리가 일본을 아시아의 독불장군으로 머물게 만든 구조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도쿄재판은 패전 독일을 처리한 ‘뉴른 베르크’ 재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실패작이었다.
식민주의를 단죄하지 않았고, 일왕 히로히토의 최종 책임도 묻지 않았다.
게다가 25명을 제외한 A급 전범들이 모두 석방됐다.

태평양전쟁을 법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구성된 도쿄재판이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자 일본인들은 이 재판을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의 정치적 보복쯤으로 여기게 됐고,
오히려 원자탄을 투하한 미국이 전범이라고 주장한 인도인 팔이 이상적인 인물로 우상화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에게 전쟁이 정당했다는 잘못된 신념을 깊게 심어준 계기가 아이로니컬하게도 도쿄재판이었던 것이다.
단죄를 모면한 전범들은 전후 일본의 정계와 경제계를 장악했다.
정치세습을 통해 권력을 물려받은 그들의 후손들도 지금 일본의 중심 세력이 돼 전쟁을 미화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총리만 따져보자.

아베 신조만이 아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전쟁 주동자 ‘도조 히데키’를 지원한 ‘고이즈미 마타치로’ 중의원 부의장의 손자다.
‘아베 신조’의 뒤를 이은 ‘후쿠다 야스오’는 전후 처음으로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한 총리 ‘후쿠다 다케오’의 아들이다.
그 다음 ‘아소 타로’는 조선인 근로자 학대로 유명한 아소탄광 소유주의 아들이자, 만주 침탈의 배후인 총리 ‘요시다 시게루’의 외손자다.
그에게서 바통을 넘겨받은 ‘하토야마 유키오’ 역시 할아버지가 정치적 추방령을 받았지만 결국 정계에 복귀해 자민당 창당을 주도했다.
이들의 망언이 뼛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유다. 과연 이들에게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얼마 전 한국으로 시집온 일본 여성들이 위안부 문제 사죄를 촉구하는 집회에 나와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어디 그것이 그들의 잘못인가. 그들이 가장 안타까워한 것은 일본에서는 이런 역사를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일본 지도층은 국민들을 그렇게 바보로 만들어왔다.
독일의 과거사 청산의 기반은 민주주의 교육이었다. ‘뉴른베르크’재판은 독일 나치의 범죄를 사법적으로 청산해줬고, 연합국은 그것을 토대로 탈 나치화와 민주주의 교육을 동시에 시작할 수 있었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가까워온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여전히 군국주의 시대를 헤매고 있다.

일본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언제까지 국민들을 과거의 시간 속에 가둬둘지 답답할 뿐이다.

<2012년 8월 22일 한국경제: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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