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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後經의 資料分析 比較硏究(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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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댓글 0건 조회 117회 작성일 16-10-2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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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經의 資料分析 比較硏究(10-9)

後經 二/印刷本/大壽死生必無善惡必無音聲必無動作必無空無寂無相無色無上下必無古今必無言無書無難形難言
後經 二/謄寫本/大壽는死生必無오善惡必無오音聲必無오動作必無오空無寂無오相無色無오上下必無오古今必無오言無書無니難形難言이니라
後經 二/創建本/大壽는 死生도없고 善惡도없고 動作도없고 空寂도없고 色相도없고 上下도없고 古今도없고 言과書도없나니 形키難하고 言키難하니라.
後經 二/三部本/大壽는 無死生無善惡 無動作 無空寂 無色相 無上下 無古今 無言書니 難形難言이니라
後經 二/經典本/大壽는 無死生 無善惡 無動作 無空寂 無色相 無上下 無古今 無言書니 難形難言이니라
註 ; 後經 二/創建本과 後經 二/三部本, 後經 二/經典本에서는 ‘音聲必無’ 가 漏落됨.
後經 二/筆寫本/大壽난無死生無善惡無動作無空寂無色相無上下無古今無言無書하니形키難하고 言키難하니라.
後經 二/筆耕本/大壽는無死生無善惡無動作無空寂無色相無上下無古今無言無書하니形키難하고 言키難하니라.
後經 二/抄稿本/大壽無死生無善惡無動作無空寂無色相無上下無古今無言書無難形難言何也
後經 二/叢書本/大壽는 死生이 無하고 善惡이 無하고 動作이 無하고 空寂이 無하고 色相이 無하고 上下가 無하고 古今이 無하고 言이 無하며 書 l 無하니 形키 難하고 言키 難하니라.」
註 ; 後經二/抄稿本/大壽無死生無善惡無動作無空寂無色相無上下無古今無言書無難形難言何也 는 大壽死生必無善惡必無音聲必無動作必無空無寂無相無色無上下必無古今必無言無書無難形難言 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큰 수명 곧 대 우주의 질서는 생사도 없고, 선악도 없고, 움직이는 것도 없고, 비고 고요함도 없고, 빛깔과 형상도 없고, 위도 아래도 없고, 예와 지금도 없고, 말과 글도 없는 것이니 글로써 형용하기도 어렵고 말로써 그 이치를 설명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後經 二/印刷本/問曰難形難言何也
後經 二/謄寫本/問曰難形難言은何也이닛고
後經 二/創建本/問曰形키難하고 言키難함은 무엇이니잇고
後經 二/三部本/曰難形難言은 何也이까.
後經 二/經典本/曰 「難形難言은 何也니이까」
註 ; 後經 二/三部本과 後經 二/經典本은 後經 二/印刷本에서의 問曰이 曰로 問이 누락되었다.
後經 二/筆寫本/問曰形키難하고言키難함은무엇이닛고
後經 二/筆耕本/問曰形키難하고言키難함은무엇이닛고
後經 二/抄稿本/ 省略
後經 二/叢書本/問曰「形하기 難하고 言하기 難함은 何也니까」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도제들이 다시 묻기를 「그러면 글로써 형용하기도 어렵고 말로써 그 이치를 설명하기도 어려운 것이란 무엇입니까.」
後經 二/印刷本/聖師曰爾問只是色相發爾之不問不聽爲難形難言
後經 二/謄寫本/聖師曰爾問이只是色相發이오爾之不問不聽이爲難形難言이니라
後經 二/創建本/曰爾의問이 이色相의發함이니 爾의不問不聽이 形키難하고 言키難함이니라.
後經 二/三部本/曰爾問是色相所發이요 爾不問不聽이 是難形難言이니라
後經 二/經典本/曰 「爾問이 只是 色相所發이요 爾之不問不聽이 是難形難言이니라
註 ; 後經 二/創建本 이후에는 聖師가 누락되었다,
後經 二/筆寫本/曰爾의問이是 l 色相의發함이오爾의不問不聽이形키難하고 言키難함이니라.
後經 二/筆耕本/曰爾의問이是 l 色相의發함이오爾의不問不聽이形키難하고 言키難함이니라.
後經 二/抄稿本/曰爾問是色相所發爾不問不聽是難形難言
後經 二/叢書本/曰「爾의 問함이 是 l 色相의 發함이오 爾의 不問不聽이 形하기 難하고 言하기 難함이 되나니라.」
註 ; 後經二/抄稿本/曰爾問是色相所發爾不問不聽是難形難言 은 聖師曰爾問只是色相發爾之不問不聽爲難形難言 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성사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들의 물음이 다만 색상(色相)에서 나온 것이요, 너희가 묻지도 아니하고 듣지도 못하는 것이 바로 형용하기 어렵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 색상(色相) - 불교에서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을 의미하고 교의로 보면 불신(佛身)의 모습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들의 주변을 둘러보면 수많은 색깔들이 있다. 이 색깔들은 고유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저마다의 고유한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느낌이 제각각 다르다
後經 二/印刷本/性無空無寂無法無相無色無動靖
後經 二/謄寫本/性은無空無實無法無相無色無動靜이니라
後經 二/創建本/性은 無空寂 無色相 無動靜이나
後經 二/三部本/性은 無空寂 無色相 無動靜이나
後經 二/經典本/性은 無空寂하며 無色相 無動靜이나
註 ; 後經 二/謄寫本의 性은無空無實無法無相無色無動靜은 後經 二/印刷本/性無空無寂無法無相無色無動靖의 誤記이고 後經 二/創建本 以後에는 無法이 漏落되었다.
後經 二/筆寫本/性은無空寂無色相無動靜이나
後經 二/筆耕本/性은無空寂無色相無動靜이나
後經 二/抄稿本/性無空寂無色相無動靜
後經 二/叢書本/性은 空寂이 無하고 色相이 無하고 動靜이 無하나
註 ; 後經二/抄稿本/性無空寂無色相無動靜 은 性無空無寂無法無相無色無動靖 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성품에는 공적(空寂)도 없으며 색상(色相)도 없으며 움직임도 고요함도 없으나,
後經 二/印刷本/然凝氣血脈相通有時有動
後經 二/謄寫本/然이나凝氣하야血脈이相通하야有時有動이니라
後經 二/創建本/然이나 氣 l 凝하야 血脈이 相通하면 時로動함이 有하나니
後經 二/三部本/然而氣凝而血脈相通이면 有時有動이니
後經 二/經典本/然이나 凝氣하여 血脈相通이면 有時有動하나니
註 ; 後經 二/三部本/然而氣凝而血脈相通이면 은 後經 二/印刷本/然凝氣血脈相通에 而가 揷入된 것이다.
後經 二/筆寫本/然이나氣 l 凝하야血脈이相通하면時로動함이有하나니
後經 二/筆耕本/然이나氣 l 凝하야血脈이相通하면時로動함이有하나니
後經 二/抄稿本/然而氣凝而血脈相通有時有動
後經 二/叢書本/然而 氣가 凝하여 血脈이 相通하면 時로 動함이 有하나니
註 ; 後經二/抄稿本/然而氣凝而血脈相通有時有動 은 然凝氣血脈相通有時有動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활동지기(活動之氣)의 기운이 뒤엉기어 혈맥이 서로 통하면 때가 있고 움직임이 있으니,
※ 혈맥(血脈) - 기혈이 운행하는 통로로 신체 각 부분들을 서로 통하게 하여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의학용어로는 몸에서 피가 도는 줄기’ 즉 혈관을 의미한다. 동양의학대사전에는 혈맥(血脈)은 즉 경맥(經脈)이며, 맥(脈)이라 약칭하기도 하는데, 기혈(氣血)이 운행하는 통로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혈맥에 대해서 《영추(靈樞)• 구침론(九鍼論)》에서는 “사람이 생장할 수 있는 것은 혈맥(血脈)의 영양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활인서(活人書)》권3에서는 “혈맥(血脈)은 백해(百骸)를 영양하고 오장(五臟)을 자윤(滋潤)한다.”고 하였다. 한의학에서는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혈(血)과 육안으로 관찰할 수 없는 기(氣)가 함께 온몸을 순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혈(氣血)이 운행하는 통로’를 혈맥(血脈)이라고 한다.
혈관(血管)은 당연히 기혈(氣血)의 통로인 혈맥(血脈)에 속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기(氣)가 운행하는 통로인 경락(經絡: 경맥과 락맥)도 혈맥(血脈)이라고 한다.
혈맥은 좁은 의미로는 혈관, 넓은 의미로는 인체의 각 부분을 서로 통하게 하여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통로를 말한다. 물론 신경도 기가 통하는 통로이므로 포함이 된다.
佛敎에서는 불교의 전통, 法統을 의미하며, 스승이 소지(所持)하는 佛法을 제자에게 전수하는 것 그리고 그 차례와 계통을 말한다. /각 종 사전과 관련 자료 종합.
後經 二/印刷本/此謂有天有人有情有神
後經 二/謄寫本/此ㅣ謂有天有人하며有情有神이니라
後經 二/創建本/此를 有天有人이라하며 有情有神이라하나니라
後經 二/三部本/此之謂有天 有人 有情 有神이니라
後經 二/經典本/此之謂有天有人 有情有神이니라
註 ; 後經 二/印刷本의 此謂有天을 後經 二/三部本 以後에는 此之謂有天으로 之 字를 揷入 添加하고 있다.
後經 二/筆寫本/此를有天有人이라하며有情有神이라하나니라
後經 二/筆耕本/此를有天有人이라하며有情有神이라하나니라
後經 二/抄稿本/此之謂有天有人有情有神
後經 二/叢書本/此를 有天有人하며 有情有神이라 謂하나니라
註 ; 後經二/抄稿本/此之謂 는 此謂 의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이것을 한울이 있다, 사람이 있다, 정이 있다, 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後經 二/印刷本/凡夫凡眼只以自身感覺靈識光內對照不知光外无量廣大之性
後經 二/謄寫本/凡夫凡眼은只以自身靈感靈識으로光內對照오不知光外無量廣大之性이니라
後經 二/創建本/凡夫凡眼은 다만自身의 靈感靈識으로써 光內에對照할뿐이요 光外에 無量廣大의性을 不知하나니라
後經 二/三部本/凡夫凡眼은 但以自身靈光靈識으로 對照於光內요 不知光內無量廣大之性이니라
後經 二/經典本/凡夫凡眼은 但以自身感覺靈識으로 對照於光內하고 不知光外 無量廣大之性이니라
註 ; 後經 二/謄寫本/ 只以自身感覺靈識과 後經 二/三部本의 但以自身靈光靈識은 後經 二/印刷本의 只以自身感覺靈識 의 誤記이고. 後經 二/印刷本의 光內對照 를 後經 二/三部本 以後에 對照於光內하고 한 것은 誤記이다.
後經 二/筆寫本/凡夫凡眼은只히自身의感覺靈識으로써光內에對照할뿐이오光外에無量廣大의性을不知하나니라
後經 二/筆耕本/凡夫凡眼은只히自身의感覺靈識으로써光內에對照할뿐이오光外에無量廣大의性을不知하나니라
後經 二/抄稿本/凡夫凡眼但以自身靈光靈識對照於光內不知光內無量廣大之性
後經 二/叢書本/凡夫凡眼은 다만 自身의 感覺靈識으로써 光內에 對照할뿐이오 光外에 無量廣大의 性을 不知하나니라.」
註 ; 後經二/抄稿本/凡夫凡眼但以自身靈光靈識對照於光內不知光內無量廣大之性 은 凡夫凡眼只以自身感覺靈識光內對照不知光外无量廣大之性 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보통 사람들의 눈은 다만 자신의 감각 영식으로써 광내에서 대조할 뿐이요, 광외에 한량없이 넓고 큰 본성은 알지 못하느니라.」
※ 광내(光內)와 광외(光外) - 담대(膽大)하면 영력(靈力)이 강(强)하여 영중(靈中)의 우주핵심(宇宙核心)인 명(明)을 이루는 시간(時間)까지 담대영강(膽大靈强)하여 최종극(最終極)에 달(達)하면 대명(大明)을 이룬다. 그런 대명(大明)을 따라 대각(大覺)을 하게 되나니 태양화광중(太陽火光中)에는 신(神)의 명(明)을 이루면 신명(神明)이라 하고 광명(光明)이라 한다.
광외(光外)에서 명(明)을 이루면 영명(靈明)이라 하니 태양광명(太陽光明)과 지구중심화구(地球中心火球)에서 통(通)하는 광명(光明)과 지구(地球)에서 수화(水火)의 광명(光明)이 합(合)하여 영명(靈明)하나니 광(光)에서 이뤄지는 명(明)은 대통(大通)하고 영(靈)에서 이뤄지는 명(明)은 대각(大覺)할 수 있다고 했다./불교와 관련 자료들의 종합.
後經 二/印刷本/問曰无量廣大何處在
後經 二/謄寫本/問曰無量廣大ㅣ何處在이닛고
後經 二/創建本/問曰无量廣大 l 何處에 在하나니잇고
後經 二/三部本/曰無量廣大何處在오.
後經 二/經典本/曰「無量廣大는 何處在니이까」
註 ; 後經 二/三部本과 後經 二/經典本은 問曰에서 曰로 問이 누락되었다.
後經 二/筆寫本/問曰無量廣大 l 何處에 在하니잇고
後經 二/筆耕本/問曰無量廣大 l 何處에 在하니잇고
後經 二/抄稿本/曰無量廣大何處在
後經 二/叢書本/問曰「無量廣大는 何處에 在하니잇까.」
註 ; 問曰无量廣大 를 後經二/抄稿本에서는 曰無量廣大 로 記述.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도제들이 다시 묻기를 「한량없이 넓고 큰 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 무량광대(無量廣大) - 사전적 의미로는 무량은 너무 많아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음을 말한다. 기독교에서의 무량은 하나님의 무한성(無限性)을 의미하고, 불교에서는 가히 비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를 의미한다. 광대는 크게 번성함을 말한다.
무량광대는 광대무량(廣大無量)과 같은 뜻을 가진 단어로 광대무량은 무한하게 탁 트인 텅 빈 공간(空間) 또는 텅 빈 하늘을 즉 태초(太初)의 하늘, 본질(本質)의 하늘, 영성(靈性)의 하늘을 의미한다. 또 광대무변과 같은 말로 사용한다. 한없이 넓고 커서 헤아릴 수 없는 천지의 도(道). 천지는 광대무량해서 유무를 총섭(總攝)한다. 그래서 무량무변한 만물을 다 포용한다. 는 의미가 있다.
後經 二/印刷本/聖師曰爾之感覺所到有相有色爾之感覺不到是無量廣大
後經 二/謄寫本/聖師ㅣ曰爾之感覺所到은有相有色이오爾之感覺不到은是無量廣大니라
後經 二/創建本/曰爾의 感覺所到는 有相有色뿐이오 爾의 感覺不到는 是 l 無量廣大니라
後經 二/三部本/曰爾之感覺所到는 是有相有色而也요 爾之感覺不到는 是無量廣大니라
後經 二/經典本/曰 「爾之感覺所到는 是有相有色而已요 爾之感覺不到는 是無量廣大니라
註 ; 後經 二/創建本 以後는 聖師曰에서 聖師가 누락되었고 後經 二/三部本과 後經 二/經典本는 원문에 是, 而, 也등의 조사들을 임의로 첨가하고 있다.
後經 二/筆寫本/曰爾의感覺所到는有相有色뿐이오爾의感覺不到는是 l 無量廣大니라
後經 二/筆耕本/曰爾의感覺所到는有相有色뿐이오爾의感覺不到는是 l 無量廣大니라
後經 二/抄稿本/曰爾之感覺所到是有相有色而己爾之感覺不到是無量廣大
後經 二/叢書本/曰「爾의 感覺所到는 是 l 有相有色뿐이오 爾의 感覺不到는 是 l 無量廣大니라
註 ; 後經二/抄稿本/曰爾之感覺所到是有相有色而己 는 聖師曰爾之感覺所到有相有色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성사께서 대답하시기를 「너의 감각이 미치는 것은 형상이 있고 빛깔이 있는 것일 뿐이고, 너의 감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한량없이 넓고 큰 것이다.
後經 二/印刷本/爾自无量廣大淸淨界中來故本無業障久沉苦海如雲蔽心
後經 二/謄寫本/爾自無量廣大淸淨界中來故로本無業障이더니久沈苦海하야如雲蔽心이니라
後經 二/創建本/爾 l 또한 無量廣大淸淨의界로부터 來하야 本來業障이 無하엿거늘 苦海에 久沈하야 浮雲이 日을 蔽함과 如하나니
後經 二/三部本/爾亦自無量廣大淸淨界而來之하여 本無業障而久沈苦海하여 如浮雲蔽日하니
後經 二/經典本/爾亦自無量廣大淸淨界中來라 故로 本無業障이어늘 久沈苦海하여 如浮雲蔽日이니라
註 ; 後經 二/印刷本의 원문의 久沉苦海如雲蔽心를 後經 二/三部本과 後經 二/經典本에서는 久沈苦海하여 如浮雲蔽日로 誤記를 하고 있다 그리고 앞 문장에서와 같이 원문에 亦, 而, 之등의 조사들을 임의로 첨가하고 있다.
後經 二/筆寫本/爾 l 또한無量廣大淸淨의界로붓혀來하야本來業障이無하엿거늘苦海에久沉하야 浮雲이日을蔽함과如하니
後經 二/筆耕本/爾 l 또한無量廣大淸淨의界로부혀來하야本來業障이無하얏거늘苦海에久沉하야 浮雲이日를蔽함과如하니
後經 二/抄稿本/爾亦自無量廣大淸淨界而來之本無業障而久沉苦海淨雲蔽
後經 二/叢書本/爾 l 또한 無量廣大한 淸淨界로부터 來하여 本來業障이 無하엿거늘 苦海에 久沈하여 浮雲이 日을 蔽함과 如하니
註 ; 後經二/筆耕本의 界로부혀 와 日를蔽함과 의 부혀와 日를 은 誤記이다. 後經二/抄稿本/爾亦自無量廣大淸淨界而來之本無業障而久沉苦海淨雲蔽 는 爾自无量廣大淸淨界中來故本無業障久沉苦海如雲蔽心 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너도 또한 무량광대하고 청정한 세계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므로 본래는 업인과 장애가 없었거늘 오랫동안 고해에 빠져 떠도는 뜬구름이 햇빛을 가린 것과 같다.
※ 업인(業因) - 선악의 인과응보(因果應報)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행위.
※ 장애(障碍) - 어떤 일의 성립, 진행을 가로막아서 거치적거려 방해하거나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게 함. 또는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를 말하고 종교적으로는 참선이나 수도 수련을 할 때 잡념과 같은 여러 가지 상념(想念)이 일어나 방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後經 二/印刷本/爾不覺自性自心雖身破如塵終不得大成
後經 二/謄寫本/爾不覺自性自心이면雖身破如塵이라도終不成大成이니라
後經 二/創建本/爾 l 自性과自心을覺치못하면 비록身이破하야 塵과如할지라도 마침내 大成을 得치못할지요,
後經 二/三部本/爾無覺自性自心이면 雖破身如塵이니 終不得大成이오
後經 二/經典本//爾不覺 自性自心이면 雖身破如塵이라도 終不成大成이요
註 ; 後經 二/謄寫本/終不成大成이니라 라는 後經 二/印刷本의 終不得大成의 誤記임.
後經 二/筆寫本/爾 l 自性과自心을覺치못하면비록身이破하야塵과如할지라도맛참내大成을得치못할지오,
後經 二/筆耕本/爾 l 自性과自心을覺치못하면비록身이破하야塵과如할지라도맛참내大成을得치못할지오,
後經 二/抄稿本/曰爾無覺自性自心雖破身如塵終不得大成
後經 二/叢書本/爾 l 自性에 自心을 不覺하면 비록 身이 破하여 塵과 如할지라도 終하여 大成을 得할지오,
註 ; 後經二/抄稿本/曰爾無覺自性自心雖破身如塵終不得大成 은 爾不覺自性自心雖身破如塵終不得大成 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그대들 자신의 성품과 마음이 온 바를 깨닫지 못하면, 비록 몸을 깨뜨려 티끌같이 된다 할지라도 끝내 커다란 성공을 이루지 못할 것이요,
後經 二/印刷本/爾不知自性自大自心有道說得千經萬說必不辨
後經 二/謄寫本/爾ㅣ不知自性自大하며自心有道면說得千經萬說이라도必不辨이니라
後經 二/創建本/爾ㅣ自性의自大와 自心의有道를 知치못하면 비록千經萬書를說할지라도 반드시 分辨치못하나니라
後經 二/三部本/爾不知自性自大와 自心有道則 雖說千經萬讀이라도 必無分辨이니라.
後經 二/經典本/爾不知 自性自大하며 自心有道면 雖說得千經萬讀이라도 必不辨하리라
註 ; 後經 二/印刷本의 說得千經萬說必不辨을 後經 二/創建本 以後는 千經萬書, 雖說千經萬讀, 必無分辨 등의 誤記를 하고 있다.
後經 二/筆寫本/爾ㅣ自性에自大와自心에有道를知치못하면비록千經萬書를說할지라도반다시分辨치못하나니라
後經 二/筆耕本/爾ㅣ自性에自大와自心에有道를知치못하면비록千經萬書를說할지라도반다시分辨치못하나니라
後經 二/抄稿本/爾不知自性自大自心有道則雖說千經萬讀必無分辨
後經 二/叢書本/爾ㅣ自性에 自大와 自心에 有道를 不知하면 비록 千經萬書를 說할지라도 반드시 分辨치 못할것이니라
註 ; 後經 二/抄稿本/爾不知自性自大自心有道則雖說千經萬讀必無分辨 은 爾不知自性自大自心有道說得千經萬說必不辨 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그대들 자신의 성품이 스스로 다듬어지며 자신의 마음에 도가 있음을 알지 못하면, 비록 천 가지 경전을 만 번을 읽어서 설득하더라도 반드시 천도의 이치를 분별하지 못할 것이다./수많은 경전을 아무리 많이 읽고 설득하려 한다 하더라도 마음에 반조(返照)하지 않으면 분변하지 못하고 헛되게 보내어 자신의 성심을 돌아볼 수가 없다.
※ 천경만독(千經萬讀) - 수많은 경전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 반조(返照) - 밖으로 향하여 달려가는 마음을 안으로 돌이켜 끌어들여 내 마음을 내가 바로 잡는 것이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자기가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다.
※ 분변(分辨) - 사물의 시비(是非)나 선악(善惡) 따위에 대해서 구별하여 앎. 사물의 시비나 호오(好惡)를 잘 가려서 자세히 밝히는 것.
後經 二/印刷本/道求自性法求自心
後經 二/謄寫本/道求自性이오法求自心이니라
後經 二/創建本/道를自性에서求하고 法을自心에서求하라
後經 二/三部本/道求自性하고 法求自心하라
後經 二/經典本/道求自性하고 法求自心하라
後經 二/筆寫本/道를自性에求하고法을自心에求하라
後經 二/筆耕本/道를自性에求하고法을自心에求하라
後經 二/抄稿本/道求自性法求自心
後經 二/叢書本//道를 自性에 求하고 法을 自心에 求하라.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도를 자신의 성품에서 구하고, 법을 자신의 마음에서 구하라.
後經 二/印刷本/性心所在非彼非此非上非下只在我我
後經 二/謄寫本/性心所在ㅣ非彼非此며非上非下라只在我我니라
後經 二/創建本/性心의在한바 l 彼도아니며 此도아니며 上도아니며 下도아니라 다만我 l 我에在하니라
後經 二/三部本/性心所在는 不彼不此며 不上不下라 但我在我니라
後經 二/經典本/性心所在는 非彼非此요 非上非下요 只我在我니라
註 ; 後經 二/三部本의 性心所在는不彼不此며不上不下라. 는 性心所在非彼非此非上非下 의 誤記이다. 또 但我在我는 只在我我의 誤記이다. 後經 二/經典本의 只我在我도 只在我我의 誤記이다.
後經 二/筆寫本/性心의在한바 l 彼도아니며此도아니며上도아니며下도아니라只히我我에在하니라
後經 二/筆耕本/性心의在한바 l 彼도아니며此도아니며上도아니며下도아니라只히我我에在하니라
後經 二/抄稿本/性心所在不彼不此不上不下但我在我
後經 二/叢書本/性心의 所在는 非彼非此며 非上非下오 다만 我에 在하니라
註 ; 後經二/抄稿本/性心所在不彼不此不上不下但我在我 는 性心所在非彼非此非上非下只在我我 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성품과 마음이 있는 곳은 저편에 있는 것도 아니요, 여기에 있는 것도 아니요, 위에 있는 것도 아니요, 아래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의 性心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다. 내 한울을 내 도로 하면 천도의 한량없는 것이 또한 내게 매었으니, 내가 높고 높음이 위도 없고 위도 없어 세한울의 위에 높이 있느니라.」
後經 二/印刷本/我天我道天道无量亦繫我也我尊我尊無上無下尊於三天之上焉
後經 二/謄寫本/我天我道은天道無量이라亦繫我也니我尊我尊하며無上無下하야尊於三天之上焉이니라
後經 二/創建本/我天我道면 天道無量이 또한 我에繫하엿나니 我尊我尊이 無上無上하야 三天의上에尊하나니라.
後經 二/三部本/我天我道하면 天道無量이 亦繫於我니 我尊我尊이 無上無下하여 尊於三天之上이니라.
後經 二/經典本/我天我道하면 天道無量이 亦繫我也니 我尊我尊이 無上無上하여 尊於三天之上이니라.
註 ; 後經 二/印刷本의 無上無下尊於三天之上焉 중 를. 後經 二/創建本과 後經 二/經典本에서는 無上無上 이라고 誤記하고 있다.
後經 二/筆寫本/我天我道면天道無量이또한我에繫하엿나니我尊我尊이면無上無下하야三天의上에尊하도다.
後經 二/筆耕本/我天我道면 天道無量이또한我에繫하엿나니我尊我尊이면無上無下하야三天의上에尊하도다.
後經 二/抄稿本/我天我道天道無量亦繫於我我尊我尊無上無下尊於三天之上
後經 二/叢書本/我天我道면 天道의 無量함이 또한 我에 繫하엿나니 我尊我尊이면 無上無下하여 三天의 上에 尊하니라.
註 ; 後經 二/抄稿本/我天我道天道無量亦繫於我我尊我尊無上無下尊於三天之上 은 我天我道天道无量亦繫我也我尊我尊無上無下尊於三天之上焉 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나의 한울을 나의 도로 삼는다면 천도의 한량없는 이치가 모두 나에게 연계(連繫)되어 있으니, 내가 매우 존엄(尊嚴)하여 위도 없고 아래도 없어 삼천(三天)의 위에 높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 연계(連繫/聯繫) - 어떤 일이나 사람과 관련하여 관계를 맺음. 또는 그러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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