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기술 과학문명과 미래종교(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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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과학문명과 미래종교(5-2)
장병일은 위와 같이 그가 파악하고 있는 대로 현대의 실상을 보고 판단한 근거위에서, 인간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고, 인간이 타고난 본원적인 본성에 의해 기술문명을 극복해야 하고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장병일은 종교가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의 사회적인 역할에 대하여 더 무게를 두어 설명을 하고 있고 계속해서 기술문명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기독교적인 종교 사상으로 설명하고 해결하려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고 보면 현재의 기술문명이란 언젠가는 시들어 버릴 것이고, 또 다른 기술문명을 꽃 피우리라는 것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것도 또 언젠가는 가을철의 낙엽처럼 떨어지리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인간은 기술문명에서 영원한 만족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아니. 기술이란 원래 영원한 것도 아니거니와 또한 자체가 완전한 것도 아니다. 아무리 전자 두뇌기가 초인적인 기능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계이지 인격이나 정신을 창조하지 못한다. -중략- 말하자면 기술문명 그것 자체는 무능하고 비인격적이라는 것이다. -중략- 저들은 어디까지나 그 사회에 있어서 확실한 개성을 지니고 살아가기를 희구하고 있다. 인간인 이상, 그리고 기술문명도 인간의 두뇌에서 만들어진 이상 단순히 기술에 얽매여 거기에 의존한 존재이기를 거부하는 것이 절대 다수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 나름대로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창의적인 관계를 가지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기계에 예속된 인격이거나 존재로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계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존재이기를 희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주체성을 찾아 본연의 질서를 선포하는 역할이 곧 종교에 주어져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기술문명이 비종교적이라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종교는 결코 기술을 이단시하거나 정죄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오히려 그것은 창조질서의 신비에로 보다 더 가까이 파고 들어간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기술문명의 지상주의라든지 기술만이라는 일방성을 부정할 따름이다. 종교는 기술을 구세주로 보지 않는다. -중략- 기술의 극치는 종교가 설명하려는 진리를 보강하고 그 진리의 발견수단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중략- 그러므로 기술은 창조주의 부정이라든지 신(神)의 부재(不在)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감추어졌던 진리의 깊이를 알려준다고 보아야 한다. 이제는 기술문명이 이만하니 신이 필요 없으며 종교는 더욱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기술은 인류의 우상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만약 기술이 인류의 우상이 되어버린다면, 기술은 다시 종교로 등장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기술이 또 종교의 구실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인간은 기술에 의지하고, 이 기술에서 모든 것을 기대하며, 또 이 기술문명이 자기네들의 모든 고민과 문제점을 해결해 주리라고 믿고 있는 한 그것은 완전한 E 하나의 종교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제 우리는 기술문명을 넘어서 또 가야할 길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기술문명을 넘어 선다는 것은 그것을 극복한다는 것이요, 극복한다는 것은 기술문명의 본래적인 의미를 올바르게 찾아 간다는 뜻이다. 바로 여기에 현대문명의 몰락을 방지하는 길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러함으로써만 인류의 소망이 살아 나오리라고 생각된다. 기술에는 피안(彼岸)이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기술 다음에 다른 세계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기술은 중간 미디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 자체가 역사의 피안을 완전히 자체 속에 흡수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기술의 극치가 인간 구원의 묘안을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피안을 잠정적으로 가로막는 순간적 기교에 지날 것 없다. 엄연히 역사의 피안은 있는 것이다. 기술의 역사의 지반을 디디고 있는 한, 또 결국에는 역사의 밑바닥으로 돌아 갈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흙에서 온 것은 흙으로, 신으로부터 온 것은 신에게로 돌아가듯이, 기술의 종말도 그러할 것이 분명하다. 라고, 철저한 기독교의 종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논리로 단언하고 있다. / “技術文明과 宗敎;” PP.16-18.
위와 같이 철저한 기독교의 종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시각으로 기술문명을 이해하는 한, 그 진단이나 해결방안이, 진정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기술문명에 적응하여 살아가기도 벅찬 인간들을 위한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는 답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주체적 사고와 가치를 가진 주체적 인간을 말하면서 신과 인간의 종속적 관계를 전제한다면, 정말 신의 피조물이 아닌 인간다운 인간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데에 함정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라 믿는 한, 인간은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종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기술문명의 장단점에 대한 수용과 그 극복에 대한 진단과 해결방안은, 일반적이 아니라 매우 폐쇄적(閉鎖的)이고 독단적(獨斷的)인 기독교적인 시각(視覺)으로 일반적인 보편성이 결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를 전후하면서 인류사회는 종교학분야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전 분야에서 무신론(無神論)의 이론과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현대철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인간다운 인간 즉 자유인(自由人)으로서의 주체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신의 속박(束縛)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하고 인간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해치는 신을 죽여야 한다. 고 Sartre는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Sartre가 거듭해서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신이 없어야 자유로워지고, 자유로이 행한 행동이 진정한 인간의 행동이며 이렇게 행해진 행동에만 책임이 따른다. 일반적으론 시인되고 있듯이 자유에 따르지 않은 행동, 즉 강요된 행위에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신을 없애고 자유가 된 인간은, 바로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신의 죽음>=<인간의 자유>=<행위주체인 인간의 책임>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 강성위의 ‘현대철학에 있어서의 신의 문제 -자유라는 이름으로 신을 부정하는 Sartre.’에서.
강성위는 실존주의 철학, 특히 Sartre의 종교 또는 신에 대한 사상에 대하여 일면 수용하면서도 기독교적인 신의 역할에 대하여 기독교적인 창조론의 논리 비약을 지지하고 있다.
‘ 여기에서 <인간에게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말, 즉 인간이 <못할 짓이 없게 된다.>는 말은 윤리적으로도 큰 뜻을 지니게 된다. 신이 죽으면 인간은 자유로이 되지만, 끈 떨어진 연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못할 짓이 없어지게 되어, 도덕적으로 규제할 수 없게 된다. 오늘날의 도덕적인 방황도 사실은 이런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Kant는 <요청적인 종교>, 즉 건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하느님이 요청된다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 실존주의가 주장하는 인간의 자유의 한계가 드러난다. 이런 맥락에서 Voltaire도 <만약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신을 발명해 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Sartre는 이와 반대로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신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Sartre의 주장은 전통적인 철학에 대한 도전이요, 전통적인 신에 관한 생각을 뒤엎은 것이다.
‘Voltaire의 위와 같은 주장은 Kant의 생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Sartre는 <신을 없애버려야 할> 대상, 즉 <죽여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이 자유인이기 위해 신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Sartre의 사상은 무신론이 아니라, <살신론>이라 할 수 있다. 신을 죽인 인간은 자유로워지겠지만, 두려울 것이 있겠는가? 오늘날의 윤리적인 혼돈은 바로 이러한 신을 죽인 자유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Sartre의 실존철학의 기본개념은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의 자유이고, 기본적인 문제는 남들의 명령에 의해 인간이 소외되는 문제와, 스스로가 명령을 내림으로써 인간이 자기를 해방시키는 방법을 묻는 것 등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을, 인간을 속박하고, 인간에게 명령을 내려, 인간의 자유를 빼앗는 자로만 이해하고 있는 Sartre의 신에 대한 생각에 동의할 수가 없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Sartre가 배웠었고,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 그리스도교의 신이야말로 인간을 <해방시킨> 구세주이며, 실제로 그 어떤 위대한 인간보다 더 많은 자유를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주었고, 종교적인 죄악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속박에서 해방시켜준 분이다. Sartre가 주장하는 인간의 자유도 옳고 필요한 것이나, 이것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Sartre가 주장하는 그런 자유가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인지? 오히려 이런 자유는 인간을 동물적인 상태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이나 아닐는지 하는 염려가 앞선다.’ / 강성위의 ‘현대철학에 있어서의 신의 문제’에서. 라고 했다.
사르트르가 그리스도교의 신을, 인간을 속박하고, 인간에게 명령을 내려, 인간의 자유를 빼앗는 자로만 이해하고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 기독교적인 구세주의 신개념에 대한 회의를 지적하면서도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신을 떠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추구는 인정을 하고 있다. 장병일은 발전하고 있는 현대과학의 의미와 미래에 대하여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판단하여 미래에 다가올 새로운 세상에서의 종교의 역할과 기능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략- 아무리 과학 기술자체가 경이적이요 편리하고 신기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류복지와 생존에 마이너스를 초래하거나 인간의 가치관을 파괴하고 또 유해하다고 단정될 경우에는 파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후략-’ / “技術文明과 宗敎;” P.115.
라고 하여 과학 기술이 인간의 삶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나 기계를 만들어 내어 편리성과 유익함을 주겠지만, 인간이 추구하고 있는 참된 삶이나 종교적인 믿음에 따르는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과학이 안고 있는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종교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전략- 아무리 과학이 뻗어나가도, 그것은 한계와 유한성을 갖고 있다. 모든 것을 분자와 전자의 핵에까지 분석해버린다면 그것으로 과학의 과제는 끝나 버릴지도 모른다. 그 다음은 그것을 그 원리 하에서 재조정하고 구성하고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아도 과학이 찾아 헤매어도 영원히 찾지 못할 것들도 수두룩이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략- 결국 인간은 종교적인 테마에 직면하여 궁극적인 문제해결을 시도하고 기도하게 될 것도 뻔하다. 아무리 기술문명이 절정에 다다랐다 하여도 사회정의와 인간의 자유의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기술문명으로 인하여 사회정의와 인간의 자유의문제가 더 복잡해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기계문명으로 인한 인간 소외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사회정의의 개념에도 일대 차질을 가져왔다고 보여진다. 무엇보다도 공간 소유권과 침해문제라든지 인공심장과 다른 인간의 심잔 이식 수술의 윤리문제, 그리고 기계에 의한 인간의 심리와 마음의 비밀한 내막을 탐지해 낸다는 등, 이 모든 것이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느냐의 문제가 있게 된다.
요컨대 사회정의의 판단기준과 그 원리 원칙은 기계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계문명을 초월해 있는 종교적인 내실(內室)과 개념에서 오지 않을 수 없다. 가령 핵전쟁의 정당성 여부는 기계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사고에서 판가름 된다. 이때 판단 규준은 종교적인 또는 휴머니즘적인 개념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술문명을 조절하는 것은 기술문명을 초월한 세계에서 이른바 그 이상의 세계상에서 온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궁극적인 테마를 제시하고 규제하는 종교에서 온다는 말이다. 종교는 인간과 신의 대화체이다. 여기에서는 인간의 영원과 불멸의 궁극적인 가치를 취급한다.’ / “技術文明과 宗敎;” PP.118-119. 라고 제시하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종교는 인간과 신의 대화체이다.’ 라는 잘못된 종교의 정의와 판단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대안(代案)도 그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 현대종교라는 것은 인간과 신과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삶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며, 인간이 삶을 위한 치열(熾烈)함 속에서 얼마나 삶의 터전에 참여하는가가 종교(宗敎)의 기능(機能)이고 역할(役割)이라는 견해(見解)를 무시(無視)한 것이다. 이는 아마도 필자가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교의를 바탕으로 문제를 보고 해석하고 해결하려는 매우 편향적(偏向的)인 주장(主張)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어떤 면에서는, 기독교만이 종교다운 종교이고 수많은 종교 중에 기독교가 대표할 수 있다는 매우 왜곡(歪曲)된 시각(視覺)을 가짐으로서 독선적(獨善的)이며 편파적(偏頗的)인 판단(判斷)이며 평가(評價)라 할 수 있다. 현대는 기술문명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가치와 참된 삶의 의미를 새로이 제시되었고, 기술문명의 주체로서의 인간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고귀한 인간성을 발견하는 주체적(主體的)인 인간(人間)의 사상(思想)과 윤리(倫理)와 삶의 가치(價値)를 제시(提示)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인간에게 있는 순수이성(純粹理性)이고, 신으로부터 벗어난 ‘인간의 참다운 자유(自由)’라 할 수 있다.
1960년대에 J. G. 드 뷰스(J. G. de Beus)는 그의 저서 "西洋의 未來(The future of the west)”에서 서구문명은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하여 답하는 형식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서구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예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서구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기존(旣存)에 서구(西歐)의 흥망(興亡)에 관한 저서를 발간한 대표적인 두 인물, 시펜글러(또는 슈펭글러)의 문명관과 토인비의 문명관의 특징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각각에 대한 문명관(文明觀)을 매우 구체적(具體的)으로 심도(深度)있게 비평을 하고 있다. 시펜글러(Spengler)는 “西洋의 沒落(西歐의 沒落;The Decline of the west)/ Der Untergang des Abendlandes”을 1918-22년에, 제1권은 “형태와 현실”, 제2권은 “세계사적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나누어 발표하여 슈펭글러의 거시적(巨視的)인 시야(視野)를 가진 세계문화론은 아카데미즘의 세계에 아무런 전문(專門) 영역(領域)도 갖지 않은, 말하자면 아마추어 학자의 독창(獨創)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서유럽과 그 문화에 대한 불안(不安)과 절망(絶望)에 빠져 들어갔던 패전국(敗戰國) 독일(獨逸)을 비롯하여 각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상한 반향(反響)을 일으켜 20세기의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지고 있다.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歷史의 硏究(A Study of History)”를 약 30년(1934-61)에 가까운 시간에 걸쳐 12권의 방대한 책으로 발표했다.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는 문명(文明)의 순환적(循環的) 발전(發展)과 쇠퇴(衰退)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한 것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西洋의 沒落”과 “역사의 연구”는 서구문명을 깊이 다룬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으나 필자마다 역사를 보는 시각의 차이로 문명사관(文明史觀)은 현격(懸隔)한 차이(差異)를 보여주고 있다.
드 뷰스는 "西洋의 未來”의 서언(序言)인 ‘서구문명은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는가?’ 란 물음에 답하기 위하여 개략적(槪略的)으로 다음과 같이 서구문명의 현상(現狀)과 대처(對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서구문명이 늙어지고, 그 상처가 더 깊어지고, 역사의 지평선이 더 넓어짐에 따라, 그것이 역사적 위치를 확정하고 평가하는 동시에 가능하면 그 미래에 관해서도 어떠한 전망을 얻어 보려는 욕망이 점점 커졌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은 2, 30년 전까지는 철학자들이나 역사가들의 학문적인 소일거리 정도의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일반 사람들은 우리의 서구문명이 계속하여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며, 항상 발전하고 향상할 것이며, 끊임없는 번영과 인간정신의 더욱 더 고차적(高次的)인 발전을 초래할 것이라는 생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나 되는 사람들이 서구문명의 원리에 정반대(正反對)되는 사상체계에 감염(感染)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나머지 세계에서도 그 가치의 경중(輕重)이 내외로 문제가 되어 있고, 그 존속(存續)여부조차 회의(懷疑)의 대상이 되어 있다. 우리의 세계가 지금으로부터 2, 3백년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이미 유쾌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금으로부터 2, 3십년 후, 즉 우리의 아들들의 세대, 또는 아마 우리 자신의 세대의 세계가 어떠한 모양으로 변할 것인가를 하나의 우울한 현실문제로 되어 있다. H. G. 웰스(H. G. Wells)는 서구세계의 모든 도시들이 폐허로 화해버린 1960년대의 암울(暗鬱)한 모습을 그렸고, 조오지 오우웰(George Orwell)은 1984년의 완전한 전체주의적인 사회에 관한 일종의 강압관념(强壓觀念)을 조성하였다. -중략-
‘서구문명은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는가?’ 라는 문제가 종전에는 학문적인 사고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생사에 관한 문제가 되었다. 1차 대전 전에는 천재의 눈에만 보이고 또한 단순한 이론적인 흥미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추악하고 긴급한 문제로 되어 버렸다. -중략(세계 여러 나라 또는 도시의 변화를 가상하여 제시하며 대재앙을 예고하고 있는 내용)- 우리들의 자손들은 장차 살만한 가치가 있는 세계에서 살 수가 있을 것인가? 또는 그들은 먼 곳에 있는 독재가가 운전하는 전능(全能) 편재(遍在)의 국가기구의 촉수(觸手)에 의하여 조종되는 인간 기계로 변해버리지나 않을까? 간단히 말하면, 결국 우리의 문명은 전력을 다하여 더욱 더 발전하고 향상할 수가 있을 것인가? 또는 우리의 문명은 급속도로 죽음에 접근할 운명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난문(難問)들이 우리의 시대가 그 해답을 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이다. 이 저서는 결국 이러한 문제해결에 기여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試圖)인 것이다.’/ 드 뷰스는 "西洋의 未來” 의 (PP.11-13)라고 하여, 앞으로 예측(豫測)되는 인류문명(人類文明)의 해체(解體)와 붕괴(崩壞)의 문제제기와 대안의 준비를 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드 뷰스는 "西洋의 未來”에서 ‘시펜글러가 말하고 있는 문화의 최종단계의 특징’이라는 제목 아래 일곱 가지의 특징을 설명을 하는 중에 일곱 번째에서 ‘제 2의 종교’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각 문명의 최종단계를 특정지우는 또 하나의 현상은 시펜글러가 말하는 제 2의 종교이다. 이는 약간 형태를 달리한 춘계(春季)단계의 종교적 감정으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이 복귀운동을 이해하려면 이때까지 이루어진 문명인의 정신생활의 발전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문명의 춘계단계에 있어서 종교적 감정은 그 원시적인 힘을 전적으로 단순하게 발휘한다. 교회가 고루(固陋)해지고 신앙의 원의(原意)로부터 떨어져나가게 되자 그것을 원상(原狀)대로 복귀시키려는 개혁운동이 전개된다. 이 운동은 경건의 염(念)의 광신적인 부활을 의미하는 청교주의(淸敎主義)의 시기를 초래하는 바, 그것은 정치를 통하여 그 종교를 타자(他者)에게 강요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피타고라스(Pythagoras), 마호멧(Mohammed), 크롬웰(Cromwell, Thomas) 등이 그 예이다. 청교주의는 문명(文明) 말기(末期)에 나타나는 합리주의의 싹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미 싹트고 있다. 공자와 석가, 소크라테스와 루소가 그 예다. 이에 뒤이어서는 물질주의가 등장한다. 시펜글러는 이러한 발전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문화는 종교적 창조성과 동의어(同義語)라고 하여도 무방하다. 모든 위대한 문화는 도시 이전의 농촌으로부터 발생하는 거대한 명제(命題)로부터 출발하여 예술과 지성이 지배하는 도시를 경과한 후, 세계도시의 유물주의(唯物主義)로서 그 막을 닫는다.
이러한 극단적인 합리주의(合理主義), 지성주의(知性主義)에 대한 반동으로서 신비로운 분위기, 비이성적인 것, 초자연적인 것, 반발적인 것, 그리고 때로는 매우 우열(愚劣)한 것등의 매력을 향유하려는 분위기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중략-이것들은 완전한 발전단계에 이른 모든 문명에 있어 문명의 말기 단계의 최종적인 정치제도인 황제주의(皇帝主義)에 필요한 대응물(對應物)로서 나타나는 ‘제 2의 종교’의 필요성을 말해주는 현상이며 그 출현의 전주곡이다.(PP.58-60)고 했다. 그러나 시펜글러는 ‘정치에 있어 중요한 것은, 도덕도 정의도 아니며 오직 힘’이라고 하면서 시펜글러 사상에서 일관하여 나타나는 경향으로 그는 ‘ 역사의 진행에 대한 정신력 그리고 특히 종교의 힘의 영향을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있다고 했다. ’종교는 한 번도 생활양식을 변화시킨 적이 없다고 강변했다고 한다.(P.73의 내용 요약)
슈펭글러(Oswald Spengler)는 독일의 철학자로 사회이론에 크게 이바지한 영향력 있는 연구서 〈서구의 몰락 Der Untergang des Abendlandes〉(2권, 1918~22)으로 유명하다. 할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1904) 뒤 1911년까지 교사로 일했다. 같은 해 뮌헨으로 옮겨 얼마 되지 않는 유산으로 살아가면서 〈서구의 몰락〉을 쓰기 시작했다. 제1권은 1918년에 나왔는데, 이 책은 나오자마자 대중에게 즉각 호응을 얻었다. 제2권은 1922년에 나왔고 이듬해 제1권의 개정판이 나왔다. 1919년 이후로 슈펭글러는 자기 명성을 이용하여 정치평론가로 출세하려 애썼으나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서구의 몰락〉은 역사철학 연구서이다. 대부분의 문명은 반드시 일련의 주기를 거치기 때문에 역사가는 과거를 재구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직 진행되지 않은 우리 서양역사의 정신적 형식·수명·리듬·의미·결과 등을 예측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또 훗날 문화는 대개 지나간 문화의 '재현'이라고 주장한 아널드 토인비와 달리 한 문화의 정신은 결코 다른 문화로 이전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양은 이미 '문화'(그의 용어법으로는 '문명'이 더 적절함)의 창조 단계를 지나 반성과 물질적 안락의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미래는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의 시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전문 학자들은 그의 작품을 별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슈펭글러의 비정통적 방법에 분개했고 사실에 대한 오류를 경멸했다. 그 밖의 작품 중에는 〈인간과 기술 Der Mensch und die Technik〉(1931)이 눈에 띈다. H. 스튜어트 휴즈는 그의 작품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글(1952)을 썼으며, R. G. 콜링우드는 〈고대 Antiquity〉(1927)에서 그의 역사주기론에 관해 이야기했다.
註 00; 오스발트 A. G. 슈펭글러/시펜글러(Oswald G Spengler;1880-1936)독일 북부 하르츠 지방의 블랑켄부르크에서 우편 관리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심장이 약한 채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민감하고 불안하게 보냈다. 1819년에 집안이 할레로 이주하면서 라티나 중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이 시절에 훗날 그의 저서에 큰 영향을 미친 니체와 괴테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할레, 베를린, 뮌헨 대학에서 수학과 자연과학을 전공했고 뛰어난 직관력으로 철학, 역사, 예술 등의 분야에도 힘을 쏟는 한편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 등에소 관심을 두었다. 함부르크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1911년에 교직을 떠나 뮌헨으로 갔다.
뮌헨에서 보낸 첫 해에 제2차 모로코 사건을 접하면서 독일과 프랑스가 충돌할 것을 직감하고 『서구의 몰락』을 구상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문화란 발생, 성장, 노쇠, 사멸의 좌정을 밟는 유기체와 같아서 이미 고도성장을 이룬 서구 문화는 필연적으로 사멸의 과정을 밟는 유기체와 같아서 이미 고도성장을 이룬 서구 문화는 필연적으로 사멸, 몰락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에 따르면 근대 서구의 합리주의는 곧 몰락의 징표인 셈이다. 당시 학자들은 슈펭글러가 직관과 운명에 기댄다면서 비판했지만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불안해하던 사람들ㅇ은 이 책을 극찬했다. 덕분에 그는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고 『인간과 기술』, 『니체와 그의 세기』, 『정치론집』 등에서도 계속 문명 비판을 이어갔다.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독일 제국은 10년 내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것'이라고 예언했던 슈펭글러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고독하게 살다가 1936년 5월 10일에 뮌헨에서 심장마비고 죽었다. 그날은 그의 쉰여섯 번 째 생일을 3주 앞둔 날이자 히틀러 치하의 독일이 몰락하기 정확히 9년 전이기도 했다.
註 00; 西洋의 沒落(獨語 原題目; Der Untergang des Abendlandes)(1918-22)/영어;The Decline of the West/“西歐의 沒落”- 슈펭글러가 지은 책으로 “세계사의 형태학 소묘”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서구의 몰락(/西洋의 沒落〉(2권, 1918~22)- 철학, 역사, 문학, 예술,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과 시대 및 역사를 직관하는 힘이 돋보이는 역사 철학서이자 문명비판서로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 당시, 시대의 징후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서구 문명의 몰락을 예견했던 독일 철학자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역작이다. 저자는 “문명이란 한 문화의 불가피한 종결이며 운명”이라고 선언하면서,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당대 서구의 상황이 발전의 정점에 이르렀다가 곧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던 옛 그리스, 로마문화가 보여준 양상과 유사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서구문화의 ‘종결’을 예언했다.
제1권은 “형태와 현실”, 제2권은 “세계사적 전망”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제1권―세계사의 무대에 그 때까지 등장했던 8종류의 고도문화(高度文化)를 들고 있다. 즉 이집트 문화·인도 문화·중국 문화·고대 문화(그리스·로마 문화)·이슬람 문화·멕시코 문화·유럽 문화이다. 슈펭글러는 각 문화가 고유한 운명에 따라서 발생·성장·성숙·몰락이라는 주기를 경과하면서 세계사를 구성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문화는 다른 문화의 발전 내지 귀결이 아니라 각기 '단지 1회에 한하는' 것이며, 다른 것과의 비교를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서 자기 자신 속에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문화는 창조 모체인 영혼의 자기표현이며 영혼이 그 창조력을 고갈시켰을 때 쇠퇴한다. '근대유럽'도 이 숙명을 면하지 못하며 이 문화도 문명화·대중화·도시화·기계화·외연화(外延化)라는 상황 속에서 몰락에 직면하고 있다. 제2권―세계사상의 각 문화가 걸어온 정치 발전의 제 단계의 구극적인 의미를 그 생성의 상(相)으로 파악하려고 시도하였다. 슈펭글러의 거시적인 시야를 가진 세계문화론은 아카데미즘의 세계에 아무런 전문 영역도 갖지 않은, 말하자면 아마추어 학자의 독창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서유럽과 그 문화에 대한 불안과 절망에 빠져들어갔던 패전국 독일을 비롯하여 각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상한 반향을 일으켜 20세기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양의 몰락》이 일종의 유행어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문화유형론(文化類型論) 또는 문화형태학(文化形態學)이라는 슈펭글러의 구상은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에 계승되어 갔다.
드 뷰스는 "西洋의 未來”에서 시펜글러의 “西洋의 沒落”을 바탕으로 제 3장에서 시펜글러의 문명사관을 분석 설명했듯이 아놀드 토인비의 문명관을 제 5장에서 분석 설명하고 있다. 드 뷰스는 현상에 나타난 문제를 다룸에 있어 시펜글러와 토인비가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가를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문제를 취급함에 있어 시펜글러가 바로 전형적인 독일인이었다면, 토인비는 토인비대로 이에 못지않게 영국식으로 문제에 접근하였다. 시펜글러는 의식적으로나 또는 무의식적으로나 모든 문명이 한 유기체와 같이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발전함에 있어 반드시 추종하고 적응해야 하였던 어떤 확고한 모형을 설정하려고 노력하였다. 토인비는 이와 반대로 이미 그 성능을 잘 알고 있는 영국의 경험주의(經驗主義)의 길을 따라 아무런 선입관념 없이 적어도 그것을 안 가지겠다는 입장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러한 국민성에 유래하는 차이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마는 이 외에 또 하나의 차이점이 있다. 즉 시펜글러는 무엇보다도 군국주의자(軍國主義者)요, 토인비는 기독교도(基督敎徒)라는 점이다.’(P.83)
라고 지적하면서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문명의 발전에 있어서 혹종(或種)의 유사성(類似性)은 인정하고 있으나 문명의 발전의 맥락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은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토인비의 대작(大作)이며 역작(力作)인 “역사의 연구/ A Study of History”에서 문화의 발전과정에서 일어나는 문화의 율동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그 주요 형태는 ‘도전(挑戰)과 응전(應戰)(Challenge and response)’이다. 문명사회는 그 발전과정에서 거듭 그 복지와 때로는 그 생존조차도 위협하는 도전에 당면한다. 이 도전에 대한 응전이 그 사회의 미래를 결정한다. 만일 그 응전이 이 도전을 대함에 족한 것이면 그 사회의 생명은 그 성공으로부터 생겨나는 내외의 힘으로 더욱 앙양(昻揚)되어 발전을 계속한다. 만일 도전을 성공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 사회는 고유의 가치를 상실하거나 외면적인 위엄을 떨어뜨리게 되가나 또는 물질적인 행복을 잃어버리게 되며 그 정도가 심하면 그 특수 사회의 종말이 닥쳐오는 수도 있다. 이 반복되는 도전과 응전은 사회의 생명 내에서 일어나는 하상운동(下上運動),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하강(下降)→ 상승(上昇)운동이며, 그것은 문명의 성장기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해체기에도 되풀이 되는 것이다. 해체기의 것을 토인비는 ‘패주(敗走)와 재거(再擧)/Rout and Rally’ 또는 ‘재거(再擧)와 응전(應戰)/ Rally and response’의 과정이라고 특징지우고 있다. 본질적으로는 이것은‘ 도전과 응전’의 율동과는 별로 다른 점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주요한 차이점은 문명의 발생과 성장기의 응전은 도전보다 더 거대하고 따라서 매번 문명을 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지만 쇠퇴기의 ‘재거’는 ‘패주’만 훨씬 못하다.
다시 말하면 문명의 성장이나 해체는 결코 계속적인 흥기(興起)나 몰락(沒落)이 아니라 오히려 이차적인 상향 및 하향운동이 교대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문명의 성장이나 해체기에 각각 해당되는 기본적인 상승선(上昇線)과 하강선(下降線)을 그리는 것이다. 토인비가 때로 사회의 생명과정에서 지적해내는 제 3의 율동은 ‘퇴각과 복귀/Retreat and return’(퇴각을 隱退, 引退라 해석하기도 함)다. 이것 역시 자연의 일반적인 율동이며 창조성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개인, 사회, 국가 또는 문명은 때로 그 주위의 세계로부터 퇴각하여 내면적인 정화(淨化)과정 또는 발전과정을 밟는데, 그것은 오직 더 풍부한, 더 강한 형태로 자기와 유사한 환경에 돌아오기 위함이다. -중략- 지상의 모든 생명에 존재하는 바와 같이 모든 문명에도 존재한다고 토인비가 지적하는 이러한 율동은 토인비의 걸작의 주제를 구성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율동, 즉 문명의 출현, 발전 그리고 소멸이란 순환운동(循環運動) 내부에서 일어나는 제 2차적인 율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이 순환운동 즉 주요 율동을 문명의 탄생, 성장, 붕괴 그리고 해체라는 네 부분으로 구분하였다.’(PP.85-87의 요약.)
고 설명하고 있는 드 뷰스는, 토인비가 주장하고 있는 순환운동 즉 문명의 탄생, 성장, 붕괴 그리고 해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 설명하고 있다.
‘토인비에 의하면 문명의 탄생은 종전에 많은 역사가들이 생각하듯이 어떤 특수한 종족의 우월성이나 또는 환경의 각별한 호조건 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혹한 환경이야말로 문명 탄생이 원동력이다. 이러한 환경은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서 그 사회는 생존을 위하여 또는 복지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 도전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중략- 여기서 강조해 두어야 할 것은, 도전을 받은 사회가 그것에 성공적으로 응하려면 혹종(或種)의 독창력과 천부(天賦)의 재능이 있어야겠지만, 토인비는 결코 어떤 특수한 종족이나 국민의 고유한 우월성이나 천재를 문명 탄생의 원동력이라고 하는 인종설人種說)을 택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의 세계에 있어 하나의 새로운 육체가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문명의 탄생은 오히려 환경의 도전과 해당 사회의 자질(資質)이 결합한 결과다.(PP.87-88의 요약.)라고 보았다고 했으며,
문명의 성장은 토인비의 견해로서는 문명의 탄생에 뒤이어 이루어지는 단순한 자동적인 생물학적 과정이 아니다. 이것을 증명해주는 것으로 몇몇 문명이 바로 이러한 과정 중에서 정체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도전이 너무나 가혹하기 때문에 응전에 성공한 경우라 하더라도 더 성장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생산적인 힘이 남지 않는 수도 있다. -중략- 영토나 인민에 대한 통제력의 확대(정치적 내지 군사적 팽창)나 또는 물질적인 환경에 대한 통제력의 발전(기술의 개량)이 문명 성장에 따르는 현상도 아니거니와 그 표지가 될 수도 없다. 오히려 사태는 이와 정반대이다. -중략- 그러므로 토인비에 의하면 성장하는 문명의 적극적인 특징은 승화과정(昇華過程/The process of etherialization; 어떤 분야의 도전에서든지 그 내용이 주로 도덕적 정신적인 차원의 도전으로 승화되는 상태를 의미함)이다. 언어, 의복, 기술, 과학, 등 모든 분야에 있어 눈에 띄는 것은 끊임없이 증대해가는 단순화(單純化)다. 그 결과 순전히 물질적인 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요구되는 정력은 감소되고, 이와 정비례로 정신활동에 이용할 수 있는 정력은 증가된다. 이에 따라 도전과 응전의 장소도 이동된다. 이제 물질적인 환경으로부터 오는 도전은 감소되고 사회 내부에 있어서의 정신적 내지 사회적 갈등으로부터 생기는 도전이 더 커진다. 이리하여 성장의 과정은 자기천명(自己闡明/ Self-articulation) 또는 자기결단(自己決斷/ Self-determination)의 과정이 된다. 이 과정에서 ‘인퇴(引退)와 복귀(復歸)’운동이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토인비는 문명사회나 또는 그 사회의 ‘창조적(創造的) 소수자(小數者)/ Creative minorities’의 일시적인 인퇴의 예를 수없이 들고 있으며 -중략-사회를 생명을 가진 유기체로 보고 개인을 단순히 그 부분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나, 또는 사회는 단순히 개인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를 다 부정하고 있지마는, 각 사회의 활동력의 원천이 개인이나 또는 창조적 소수자를 구성하는 약간의 소수집단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개인이나 가 수동적이고 비창조적인 와의 관계에 있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자기들의 견해를 전파시키고 그럼으로써 그것이 효력을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중은 정신적으로나 또는 영적(靈的)으로 창조적 소수자와 동일한 경험을 통하여 생활할 수 없는 것이니까 성취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대중들이 지도자들의 견해와 태도를 받아들이고 이에 따라 그것을 모방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토인비가 ‘흉내/ 모방; mimesis.’라고 부르는 현상이다.(PP.89-92의 요약.)라고 세밀히 설명하고 있다.
문명의 붕괴는 즉 사회가 무너지는 원인이 되는 힘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때로 외부로부터의 정치적 또는 군사적 힘으로 패배당하는 사실은 그 사회가 내부적으로 몰락하고 있었다는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 만일 이와 유사한 위험이 그 사회의 성장기에 닥쳐온다면 그것은 철저히 격퇴될 뿐 아니라 오히려 때로는 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비약하는 디딤돌과도 같은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중략- 문명의 붕괴를 구성하는 요소는 다름이 아니라 특수한 도전에 대한 응전의 실패다. 이러한 응전 실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여태껏 자발적이었던 대중의 ‘흉내’가 기계적인 모방이나 강제적인 훈련으로 변화한다. 낡은 제도가 새로운 목표에 적응하지 못한다. 어떤 개인, 제도, 기술 등의 자기도취나 우상화(偶像化)가 창조력의 상실을 가져온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경우에 있어 (문명) 붕괴의 핵심은 동일한 것이다. 즉 창조적 소수자는 새로운 사태의 도전에 응할 만한 충분한 창조적 힘을 육성할 수가 없는 것이며, 그 결과 그들(소수자)은 대중에 대한 호소력이나 매력을 상실하고 오직 힘으로나 또는 기계적인 따라서 공허한 모방으로서 그 지배력의 발휘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창조적 소수자는 지배적 또는 압제적 소수자로 변하고 그 결과 대중은 그 전부가 아니라 하더라도 자기들의 충성심을 철회하고 모방을 중지한다. 대중들은 스스로를 사회와 문명의 권외(圈外)에 있는 것같이 느끼고 그것에 대하여 무관심 내지는 적대적(敵對的)인 태도를 취한다. 이리하여 그들은 토인비가 부른 바와 같이 내적(內的) 프롤레타리아(Inner proletariat)가 된다. 이리하여 정치적 분열이 일어나고 이 사회의 통일성이 상실되며, 그럼으로써 문명의 해체가 시작된다.’(PP.93-95의 요약.)고 했다.
/ 기술 과학문명과 미래종교(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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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일은 위와 같이 그가 파악하고 있는 대로 현대의 실상을 보고 판단한 근거위에서, 인간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고, 인간이 타고난 본원적인 본성에 의해 기술문명을 극복해야 하고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장병일은 종교가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의 사회적인 역할에 대하여 더 무게를 두어 설명을 하고 있고 계속해서 기술문명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기독교적인 종교 사상으로 설명하고 해결하려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고 보면 현재의 기술문명이란 언젠가는 시들어 버릴 것이고, 또 다른 기술문명을 꽃 피우리라는 것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것도 또 언젠가는 가을철의 낙엽처럼 떨어지리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인간은 기술문명에서 영원한 만족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아니. 기술이란 원래 영원한 것도 아니거니와 또한 자체가 완전한 것도 아니다. 아무리 전자 두뇌기가 초인적인 기능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계이지 인격이나 정신을 창조하지 못한다. -중략- 말하자면 기술문명 그것 자체는 무능하고 비인격적이라는 것이다. -중략- 저들은 어디까지나 그 사회에 있어서 확실한 개성을 지니고 살아가기를 희구하고 있다. 인간인 이상, 그리고 기술문명도 인간의 두뇌에서 만들어진 이상 단순히 기술에 얽매여 거기에 의존한 존재이기를 거부하는 것이 절대 다수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 나름대로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창의적인 관계를 가지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기계에 예속된 인격이거나 존재로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계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존재이기를 희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주체성을 찾아 본연의 질서를 선포하는 역할이 곧 종교에 주어져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기술문명이 비종교적이라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종교는 결코 기술을 이단시하거나 정죄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오히려 그것은 창조질서의 신비에로 보다 더 가까이 파고 들어간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기술문명의 지상주의라든지 기술만이라는 일방성을 부정할 따름이다. 종교는 기술을 구세주로 보지 않는다. -중략- 기술의 극치는 종교가 설명하려는 진리를 보강하고 그 진리의 발견수단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중략- 그러므로 기술은 창조주의 부정이라든지 신(神)의 부재(不在)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감추어졌던 진리의 깊이를 알려준다고 보아야 한다. 이제는 기술문명이 이만하니 신이 필요 없으며 종교는 더욱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기술은 인류의 우상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만약 기술이 인류의 우상이 되어버린다면, 기술은 다시 종교로 등장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기술이 또 종교의 구실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인간은 기술에 의지하고, 이 기술에서 모든 것을 기대하며, 또 이 기술문명이 자기네들의 모든 고민과 문제점을 해결해 주리라고 믿고 있는 한 그것은 완전한 E 하나의 종교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제 우리는 기술문명을 넘어서 또 가야할 길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기술문명을 넘어 선다는 것은 그것을 극복한다는 것이요, 극복한다는 것은 기술문명의 본래적인 의미를 올바르게 찾아 간다는 뜻이다. 바로 여기에 현대문명의 몰락을 방지하는 길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러함으로써만 인류의 소망이 살아 나오리라고 생각된다. 기술에는 피안(彼岸)이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기술 다음에 다른 세계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기술은 중간 미디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 자체가 역사의 피안을 완전히 자체 속에 흡수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기술의 극치가 인간 구원의 묘안을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피안을 잠정적으로 가로막는 순간적 기교에 지날 것 없다. 엄연히 역사의 피안은 있는 것이다. 기술의 역사의 지반을 디디고 있는 한, 또 결국에는 역사의 밑바닥으로 돌아 갈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흙에서 온 것은 흙으로, 신으로부터 온 것은 신에게로 돌아가듯이, 기술의 종말도 그러할 것이 분명하다. 라고, 철저한 기독교의 종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논리로 단언하고 있다. / “技術文明과 宗敎;” PP.16-18.
위와 같이 철저한 기독교의 종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시각으로 기술문명을 이해하는 한, 그 진단이나 해결방안이, 진정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기술문명에 적응하여 살아가기도 벅찬 인간들을 위한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는 답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주체적 사고와 가치를 가진 주체적 인간을 말하면서 신과 인간의 종속적 관계를 전제한다면, 정말 신의 피조물이 아닌 인간다운 인간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데에 함정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라 믿는 한, 인간은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종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기술문명의 장단점에 대한 수용과 그 극복에 대한 진단과 해결방안은, 일반적이 아니라 매우 폐쇄적(閉鎖的)이고 독단적(獨斷的)인 기독교적인 시각(視覺)으로 일반적인 보편성이 결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를 전후하면서 인류사회는 종교학분야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전 분야에서 무신론(無神論)의 이론과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현대철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인간다운 인간 즉 자유인(自由人)으로서의 주체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신의 속박(束縛)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하고 인간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해치는 신을 죽여야 한다. 고 Sartre는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Sartre가 거듭해서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신이 없어야 자유로워지고, 자유로이 행한 행동이 진정한 인간의 행동이며 이렇게 행해진 행동에만 책임이 따른다. 일반적으론 시인되고 있듯이 자유에 따르지 않은 행동, 즉 강요된 행위에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신을 없애고 자유가 된 인간은, 바로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신의 죽음>=<인간의 자유>=<행위주체인 인간의 책임>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 강성위의 ‘현대철학에 있어서의 신의 문제 -자유라는 이름으로 신을 부정하는 Sartre.’에서.
강성위는 실존주의 철학, 특히 Sartre의 종교 또는 신에 대한 사상에 대하여 일면 수용하면서도 기독교적인 신의 역할에 대하여 기독교적인 창조론의 논리 비약을 지지하고 있다.
‘ 여기에서 <인간에게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말, 즉 인간이 <못할 짓이 없게 된다.>는 말은 윤리적으로도 큰 뜻을 지니게 된다. 신이 죽으면 인간은 자유로이 되지만, 끈 떨어진 연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못할 짓이 없어지게 되어, 도덕적으로 규제할 수 없게 된다. 오늘날의 도덕적인 방황도 사실은 이런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Kant는 <요청적인 종교>, 즉 건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하느님이 요청된다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 실존주의가 주장하는 인간의 자유의 한계가 드러난다. 이런 맥락에서 Voltaire도 <만약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신을 발명해 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Sartre는 이와 반대로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신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Sartre의 주장은 전통적인 철학에 대한 도전이요, 전통적인 신에 관한 생각을 뒤엎은 것이다.
‘Voltaire의 위와 같은 주장은 Kant의 생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Sartre는 <신을 없애버려야 할> 대상, 즉 <죽여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이 자유인이기 위해 신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Sartre의 사상은 무신론이 아니라, <살신론>이라 할 수 있다. 신을 죽인 인간은 자유로워지겠지만, 두려울 것이 있겠는가? 오늘날의 윤리적인 혼돈은 바로 이러한 신을 죽인 자유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Sartre의 실존철학의 기본개념은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의 자유이고, 기본적인 문제는 남들의 명령에 의해 인간이 소외되는 문제와, 스스로가 명령을 내림으로써 인간이 자기를 해방시키는 방법을 묻는 것 등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을, 인간을 속박하고, 인간에게 명령을 내려, 인간의 자유를 빼앗는 자로만 이해하고 있는 Sartre의 신에 대한 생각에 동의할 수가 없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Sartre가 배웠었고,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 그리스도교의 신이야말로 인간을 <해방시킨> 구세주이며, 실제로 그 어떤 위대한 인간보다 더 많은 자유를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주었고, 종교적인 죄악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속박에서 해방시켜준 분이다. Sartre가 주장하는 인간의 자유도 옳고 필요한 것이나, 이것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Sartre가 주장하는 그런 자유가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인지? 오히려 이런 자유는 인간을 동물적인 상태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이나 아닐는지 하는 염려가 앞선다.’ / 강성위의 ‘현대철학에 있어서의 신의 문제’에서. 라고 했다.
사르트르가 그리스도교의 신을, 인간을 속박하고, 인간에게 명령을 내려, 인간의 자유를 빼앗는 자로만 이해하고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 기독교적인 구세주의 신개념에 대한 회의를 지적하면서도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신을 떠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추구는 인정을 하고 있다. 장병일은 발전하고 있는 현대과학의 의미와 미래에 대하여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판단하여 미래에 다가올 새로운 세상에서의 종교의 역할과 기능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략- 아무리 과학 기술자체가 경이적이요 편리하고 신기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류복지와 생존에 마이너스를 초래하거나 인간의 가치관을 파괴하고 또 유해하다고 단정될 경우에는 파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후략-’ / “技術文明과 宗敎;” P.115.
라고 하여 과학 기술이 인간의 삶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나 기계를 만들어 내어 편리성과 유익함을 주겠지만, 인간이 추구하고 있는 참된 삶이나 종교적인 믿음에 따르는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과학이 안고 있는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종교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전략- 아무리 과학이 뻗어나가도, 그것은 한계와 유한성을 갖고 있다. 모든 것을 분자와 전자의 핵에까지 분석해버린다면 그것으로 과학의 과제는 끝나 버릴지도 모른다. 그 다음은 그것을 그 원리 하에서 재조정하고 구성하고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아도 과학이 찾아 헤매어도 영원히 찾지 못할 것들도 수두룩이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략- 결국 인간은 종교적인 테마에 직면하여 궁극적인 문제해결을 시도하고 기도하게 될 것도 뻔하다. 아무리 기술문명이 절정에 다다랐다 하여도 사회정의와 인간의 자유의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기술문명으로 인하여 사회정의와 인간의 자유의문제가 더 복잡해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기계문명으로 인한 인간 소외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사회정의의 개념에도 일대 차질을 가져왔다고 보여진다. 무엇보다도 공간 소유권과 침해문제라든지 인공심장과 다른 인간의 심잔 이식 수술의 윤리문제, 그리고 기계에 의한 인간의 심리와 마음의 비밀한 내막을 탐지해 낸다는 등, 이 모든 것이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느냐의 문제가 있게 된다.
요컨대 사회정의의 판단기준과 그 원리 원칙은 기계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계문명을 초월해 있는 종교적인 내실(內室)과 개념에서 오지 않을 수 없다. 가령 핵전쟁의 정당성 여부는 기계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사고에서 판가름 된다. 이때 판단 규준은 종교적인 또는 휴머니즘적인 개념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술문명을 조절하는 것은 기술문명을 초월한 세계에서 이른바 그 이상의 세계상에서 온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궁극적인 테마를 제시하고 규제하는 종교에서 온다는 말이다. 종교는 인간과 신의 대화체이다. 여기에서는 인간의 영원과 불멸의 궁극적인 가치를 취급한다.’ / “技術文明과 宗敎;” PP.118-119. 라고 제시하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종교는 인간과 신의 대화체이다.’ 라는 잘못된 종교의 정의와 판단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대안(代案)도 그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 현대종교라는 것은 인간과 신과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삶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며, 인간이 삶을 위한 치열(熾烈)함 속에서 얼마나 삶의 터전에 참여하는가가 종교(宗敎)의 기능(機能)이고 역할(役割)이라는 견해(見解)를 무시(無視)한 것이다. 이는 아마도 필자가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교의를 바탕으로 문제를 보고 해석하고 해결하려는 매우 편향적(偏向的)인 주장(主張)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어떤 면에서는, 기독교만이 종교다운 종교이고 수많은 종교 중에 기독교가 대표할 수 있다는 매우 왜곡(歪曲)된 시각(視覺)을 가짐으로서 독선적(獨善的)이며 편파적(偏頗的)인 판단(判斷)이며 평가(評價)라 할 수 있다. 현대는 기술문명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가치와 참된 삶의 의미를 새로이 제시되었고, 기술문명의 주체로서의 인간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고귀한 인간성을 발견하는 주체적(主體的)인 인간(人間)의 사상(思想)과 윤리(倫理)와 삶의 가치(價値)를 제시(提示)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인간에게 있는 순수이성(純粹理性)이고, 신으로부터 벗어난 ‘인간의 참다운 자유(自由)’라 할 수 있다.
1960년대에 J. G. 드 뷰스(J. G. de Beus)는 그의 저서 "西洋의 未來(The future of the west)”에서 서구문명은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하여 답하는 형식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서구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예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서구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기존(旣存)에 서구(西歐)의 흥망(興亡)에 관한 저서를 발간한 대표적인 두 인물, 시펜글러(또는 슈펭글러)의 문명관과 토인비의 문명관의 특징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각각에 대한 문명관(文明觀)을 매우 구체적(具體的)으로 심도(深度)있게 비평을 하고 있다. 시펜글러(Spengler)는 “西洋의 沒落(西歐의 沒落;The Decline of the west)/ Der Untergang des Abendlandes”을 1918-22년에, 제1권은 “형태와 현실”, 제2권은 “세계사적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나누어 발표하여 슈펭글러의 거시적(巨視的)인 시야(視野)를 가진 세계문화론은 아카데미즘의 세계에 아무런 전문(專門) 영역(領域)도 갖지 않은, 말하자면 아마추어 학자의 독창(獨創)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서유럽과 그 문화에 대한 불안(不安)과 절망(絶望)에 빠져 들어갔던 패전국(敗戰國) 독일(獨逸)을 비롯하여 각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상한 반향(反響)을 일으켜 20세기의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지고 있다.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歷史의 硏究(A Study of History)”를 약 30년(1934-61)에 가까운 시간에 걸쳐 12권의 방대한 책으로 발표했다.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는 문명(文明)의 순환적(循環的) 발전(發展)과 쇠퇴(衰退)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한 것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西洋의 沒落”과 “역사의 연구”는 서구문명을 깊이 다룬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으나 필자마다 역사를 보는 시각의 차이로 문명사관(文明史觀)은 현격(懸隔)한 차이(差異)를 보여주고 있다.
드 뷰스는 "西洋의 未來”의 서언(序言)인 ‘서구문명은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는가?’ 란 물음에 답하기 위하여 개략적(槪略的)으로 다음과 같이 서구문명의 현상(現狀)과 대처(對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서구문명이 늙어지고, 그 상처가 더 깊어지고, 역사의 지평선이 더 넓어짐에 따라, 그것이 역사적 위치를 확정하고 평가하는 동시에 가능하면 그 미래에 관해서도 어떠한 전망을 얻어 보려는 욕망이 점점 커졌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은 2, 30년 전까지는 철학자들이나 역사가들의 학문적인 소일거리 정도의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일반 사람들은 우리의 서구문명이 계속하여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며, 항상 발전하고 향상할 것이며, 끊임없는 번영과 인간정신의 더욱 더 고차적(高次的)인 발전을 초래할 것이라는 생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나 되는 사람들이 서구문명의 원리에 정반대(正反對)되는 사상체계에 감염(感染)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나머지 세계에서도 그 가치의 경중(輕重)이 내외로 문제가 되어 있고, 그 존속(存續)여부조차 회의(懷疑)의 대상이 되어 있다. 우리의 세계가 지금으로부터 2, 3백년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이미 유쾌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금으로부터 2, 3십년 후, 즉 우리의 아들들의 세대, 또는 아마 우리 자신의 세대의 세계가 어떠한 모양으로 변할 것인가를 하나의 우울한 현실문제로 되어 있다. H. G. 웰스(H. G. Wells)는 서구세계의 모든 도시들이 폐허로 화해버린 1960년대의 암울(暗鬱)한 모습을 그렸고, 조오지 오우웰(George Orwell)은 1984년의 완전한 전체주의적인 사회에 관한 일종의 강압관념(强壓觀念)을 조성하였다. -중략-
‘서구문명은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는가?’ 라는 문제가 종전에는 학문적인 사고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생사에 관한 문제가 되었다. 1차 대전 전에는 천재의 눈에만 보이고 또한 단순한 이론적인 흥미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추악하고 긴급한 문제로 되어 버렸다. -중략(세계 여러 나라 또는 도시의 변화를 가상하여 제시하며 대재앙을 예고하고 있는 내용)- 우리들의 자손들은 장차 살만한 가치가 있는 세계에서 살 수가 있을 것인가? 또는 그들은 먼 곳에 있는 독재가가 운전하는 전능(全能) 편재(遍在)의 국가기구의 촉수(觸手)에 의하여 조종되는 인간 기계로 변해버리지나 않을까? 간단히 말하면, 결국 우리의 문명은 전력을 다하여 더욱 더 발전하고 향상할 수가 있을 것인가? 또는 우리의 문명은 급속도로 죽음에 접근할 운명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난문(難問)들이 우리의 시대가 그 해답을 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이다. 이 저서는 결국 이러한 문제해결에 기여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試圖)인 것이다.’/ 드 뷰스는 "西洋의 未來” 의 (PP.11-13)라고 하여, 앞으로 예측(豫測)되는 인류문명(人類文明)의 해체(解體)와 붕괴(崩壞)의 문제제기와 대안의 준비를 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드 뷰스는 "西洋의 未來”에서 ‘시펜글러가 말하고 있는 문화의 최종단계의 특징’이라는 제목 아래 일곱 가지의 특징을 설명을 하는 중에 일곱 번째에서 ‘제 2의 종교’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각 문명의 최종단계를 특정지우는 또 하나의 현상은 시펜글러가 말하는 제 2의 종교이다. 이는 약간 형태를 달리한 춘계(春季)단계의 종교적 감정으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이 복귀운동을 이해하려면 이때까지 이루어진 문명인의 정신생활의 발전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문명의 춘계단계에 있어서 종교적 감정은 그 원시적인 힘을 전적으로 단순하게 발휘한다. 교회가 고루(固陋)해지고 신앙의 원의(原意)로부터 떨어져나가게 되자 그것을 원상(原狀)대로 복귀시키려는 개혁운동이 전개된다. 이 운동은 경건의 염(念)의 광신적인 부활을 의미하는 청교주의(淸敎主義)의 시기를 초래하는 바, 그것은 정치를 통하여 그 종교를 타자(他者)에게 강요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피타고라스(Pythagoras), 마호멧(Mohammed), 크롬웰(Cromwell, Thomas) 등이 그 예이다. 청교주의는 문명(文明) 말기(末期)에 나타나는 합리주의의 싹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미 싹트고 있다. 공자와 석가, 소크라테스와 루소가 그 예다. 이에 뒤이어서는 물질주의가 등장한다. 시펜글러는 이러한 발전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문화는 종교적 창조성과 동의어(同義語)라고 하여도 무방하다. 모든 위대한 문화는 도시 이전의 농촌으로부터 발생하는 거대한 명제(命題)로부터 출발하여 예술과 지성이 지배하는 도시를 경과한 후, 세계도시의 유물주의(唯物主義)로서 그 막을 닫는다.
이러한 극단적인 합리주의(合理主義), 지성주의(知性主義)에 대한 반동으로서 신비로운 분위기, 비이성적인 것, 초자연적인 것, 반발적인 것, 그리고 때로는 매우 우열(愚劣)한 것등의 매력을 향유하려는 분위기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중략-이것들은 완전한 발전단계에 이른 모든 문명에 있어 문명의 말기 단계의 최종적인 정치제도인 황제주의(皇帝主義)에 필요한 대응물(對應物)로서 나타나는 ‘제 2의 종교’의 필요성을 말해주는 현상이며 그 출현의 전주곡이다.(PP.58-60)고 했다. 그러나 시펜글러는 ‘정치에 있어 중요한 것은, 도덕도 정의도 아니며 오직 힘’이라고 하면서 시펜글러 사상에서 일관하여 나타나는 경향으로 그는 ‘ 역사의 진행에 대한 정신력 그리고 특히 종교의 힘의 영향을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있다고 했다. ’종교는 한 번도 생활양식을 변화시킨 적이 없다고 강변했다고 한다.(P.73의 내용 요약)
슈펭글러(Oswald Spengler)는 독일의 철학자로 사회이론에 크게 이바지한 영향력 있는 연구서 〈서구의 몰락 Der Untergang des Abendlandes〉(2권, 1918~22)으로 유명하다. 할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1904) 뒤 1911년까지 교사로 일했다. 같은 해 뮌헨으로 옮겨 얼마 되지 않는 유산으로 살아가면서 〈서구의 몰락〉을 쓰기 시작했다. 제1권은 1918년에 나왔는데, 이 책은 나오자마자 대중에게 즉각 호응을 얻었다. 제2권은 1922년에 나왔고 이듬해 제1권의 개정판이 나왔다. 1919년 이후로 슈펭글러는 자기 명성을 이용하여 정치평론가로 출세하려 애썼으나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서구의 몰락〉은 역사철학 연구서이다. 대부분의 문명은 반드시 일련의 주기를 거치기 때문에 역사가는 과거를 재구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직 진행되지 않은 우리 서양역사의 정신적 형식·수명·리듬·의미·결과 등을 예측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또 훗날 문화는 대개 지나간 문화의 '재현'이라고 주장한 아널드 토인비와 달리 한 문화의 정신은 결코 다른 문화로 이전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양은 이미 '문화'(그의 용어법으로는 '문명'이 더 적절함)의 창조 단계를 지나 반성과 물질적 안락의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미래는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의 시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전문 학자들은 그의 작품을 별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슈펭글러의 비정통적 방법에 분개했고 사실에 대한 오류를 경멸했다. 그 밖의 작품 중에는 〈인간과 기술 Der Mensch und die Technik〉(1931)이 눈에 띈다. H. 스튜어트 휴즈는 그의 작품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글(1952)을 썼으며, R. G. 콜링우드는 〈고대 Antiquity〉(1927)에서 그의 역사주기론에 관해 이야기했다.
註 00; 오스발트 A. G. 슈펭글러/시펜글러(Oswald G Spengler;1880-1936)독일 북부 하르츠 지방의 블랑켄부르크에서 우편 관리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심장이 약한 채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민감하고 불안하게 보냈다. 1819년에 집안이 할레로 이주하면서 라티나 중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이 시절에 훗날 그의 저서에 큰 영향을 미친 니체와 괴테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할레, 베를린, 뮌헨 대학에서 수학과 자연과학을 전공했고 뛰어난 직관력으로 철학, 역사, 예술 등의 분야에도 힘을 쏟는 한편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 등에소 관심을 두었다. 함부르크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1911년에 교직을 떠나 뮌헨으로 갔다.
뮌헨에서 보낸 첫 해에 제2차 모로코 사건을 접하면서 독일과 프랑스가 충돌할 것을 직감하고 『서구의 몰락』을 구상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문화란 발생, 성장, 노쇠, 사멸의 좌정을 밟는 유기체와 같아서 이미 고도성장을 이룬 서구 문화는 필연적으로 사멸의 과정을 밟는 유기체와 같아서 이미 고도성장을 이룬 서구 문화는 필연적으로 사멸, 몰락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에 따르면 근대 서구의 합리주의는 곧 몰락의 징표인 셈이다. 당시 학자들은 슈펭글러가 직관과 운명에 기댄다면서 비판했지만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불안해하던 사람들ㅇ은 이 책을 극찬했다. 덕분에 그는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고 『인간과 기술』, 『니체와 그의 세기』, 『정치론집』 등에서도 계속 문명 비판을 이어갔다.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독일 제국은 10년 내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것'이라고 예언했던 슈펭글러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고독하게 살다가 1936년 5월 10일에 뮌헨에서 심장마비고 죽었다. 그날은 그의 쉰여섯 번 째 생일을 3주 앞둔 날이자 히틀러 치하의 독일이 몰락하기 정확히 9년 전이기도 했다.
註 00; 西洋의 沒落(獨語 原題目; Der Untergang des Abendlandes)(1918-22)/영어;The Decline of the West/“西歐의 沒落”- 슈펭글러가 지은 책으로 “세계사의 형태학 소묘”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서구의 몰락(/西洋의 沒落〉(2권, 1918~22)- 철학, 역사, 문학, 예술,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과 시대 및 역사를 직관하는 힘이 돋보이는 역사 철학서이자 문명비판서로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 당시, 시대의 징후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서구 문명의 몰락을 예견했던 독일 철학자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역작이다. 저자는 “문명이란 한 문화의 불가피한 종결이며 운명”이라고 선언하면서,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당대 서구의 상황이 발전의 정점에 이르렀다가 곧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던 옛 그리스, 로마문화가 보여준 양상과 유사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서구문화의 ‘종결’을 예언했다.
제1권은 “형태와 현실”, 제2권은 “세계사적 전망”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제1권―세계사의 무대에 그 때까지 등장했던 8종류의 고도문화(高度文化)를 들고 있다. 즉 이집트 문화·인도 문화·중국 문화·고대 문화(그리스·로마 문화)·이슬람 문화·멕시코 문화·유럽 문화이다. 슈펭글러는 각 문화가 고유한 운명에 따라서 발생·성장·성숙·몰락이라는 주기를 경과하면서 세계사를 구성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문화는 다른 문화의 발전 내지 귀결이 아니라 각기 '단지 1회에 한하는' 것이며, 다른 것과의 비교를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서 자기 자신 속에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문화는 창조 모체인 영혼의 자기표현이며 영혼이 그 창조력을 고갈시켰을 때 쇠퇴한다. '근대유럽'도 이 숙명을 면하지 못하며 이 문화도 문명화·대중화·도시화·기계화·외연화(外延化)라는 상황 속에서 몰락에 직면하고 있다. 제2권―세계사상의 각 문화가 걸어온 정치 발전의 제 단계의 구극적인 의미를 그 생성의 상(相)으로 파악하려고 시도하였다. 슈펭글러의 거시적인 시야를 가진 세계문화론은 아카데미즘의 세계에 아무런 전문 영역도 갖지 않은, 말하자면 아마추어 학자의 독창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서유럽과 그 문화에 대한 불안과 절망에 빠져들어갔던 패전국 독일을 비롯하여 각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상한 반향을 일으켜 20세기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양의 몰락》이 일종의 유행어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문화유형론(文化類型論) 또는 문화형태학(文化形態學)이라는 슈펭글러의 구상은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에 계승되어 갔다.
드 뷰스는 "西洋의 未來”에서 시펜글러의 “西洋의 沒落”을 바탕으로 제 3장에서 시펜글러의 문명사관을 분석 설명했듯이 아놀드 토인비의 문명관을 제 5장에서 분석 설명하고 있다. 드 뷰스는 현상에 나타난 문제를 다룸에 있어 시펜글러와 토인비가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가를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문제를 취급함에 있어 시펜글러가 바로 전형적인 독일인이었다면, 토인비는 토인비대로 이에 못지않게 영국식으로 문제에 접근하였다. 시펜글러는 의식적으로나 또는 무의식적으로나 모든 문명이 한 유기체와 같이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발전함에 있어 반드시 추종하고 적응해야 하였던 어떤 확고한 모형을 설정하려고 노력하였다. 토인비는 이와 반대로 이미 그 성능을 잘 알고 있는 영국의 경험주의(經驗主義)의 길을 따라 아무런 선입관념 없이 적어도 그것을 안 가지겠다는 입장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러한 국민성에 유래하는 차이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마는 이 외에 또 하나의 차이점이 있다. 즉 시펜글러는 무엇보다도 군국주의자(軍國主義者)요, 토인비는 기독교도(基督敎徒)라는 점이다.’(P.83)
라고 지적하면서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문명의 발전에 있어서 혹종(或種)의 유사성(類似性)은 인정하고 있으나 문명의 발전의 맥락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은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토인비의 대작(大作)이며 역작(力作)인 “역사의 연구/ A Study of History”에서 문화의 발전과정에서 일어나는 문화의 율동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그 주요 형태는 ‘도전(挑戰)과 응전(應戰)(Challenge and response)’이다. 문명사회는 그 발전과정에서 거듭 그 복지와 때로는 그 생존조차도 위협하는 도전에 당면한다. 이 도전에 대한 응전이 그 사회의 미래를 결정한다. 만일 그 응전이 이 도전을 대함에 족한 것이면 그 사회의 생명은 그 성공으로부터 생겨나는 내외의 힘으로 더욱 앙양(昻揚)되어 발전을 계속한다. 만일 도전을 성공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 사회는 고유의 가치를 상실하거나 외면적인 위엄을 떨어뜨리게 되가나 또는 물질적인 행복을 잃어버리게 되며 그 정도가 심하면 그 특수 사회의 종말이 닥쳐오는 수도 있다. 이 반복되는 도전과 응전은 사회의 생명 내에서 일어나는 하상운동(下上運動),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하강(下降)→ 상승(上昇)운동이며, 그것은 문명의 성장기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해체기에도 되풀이 되는 것이다. 해체기의 것을 토인비는 ‘패주(敗走)와 재거(再擧)/Rout and Rally’ 또는 ‘재거(再擧)와 응전(應戰)/ Rally and response’의 과정이라고 특징지우고 있다. 본질적으로는 이것은‘ 도전과 응전’의 율동과는 별로 다른 점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주요한 차이점은 문명의 발생과 성장기의 응전은 도전보다 더 거대하고 따라서 매번 문명을 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지만 쇠퇴기의 ‘재거’는 ‘패주’만 훨씬 못하다.
다시 말하면 문명의 성장이나 해체는 결코 계속적인 흥기(興起)나 몰락(沒落)이 아니라 오히려 이차적인 상향 및 하향운동이 교대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문명의 성장이나 해체기에 각각 해당되는 기본적인 상승선(上昇線)과 하강선(下降線)을 그리는 것이다. 토인비가 때로 사회의 생명과정에서 지적해내는 제 3의 율동은 ‘퇴각과 복귀/Retreat and return’(퇴각을 隱退, 引退라 해석하기도 함)다. 이것 역시 자연의 일반적인 율동이며 창조성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개인, 사회, 국가 또는 문명은 때로 그 주위의 세계로부터 퇴각하여 내면적인 정화(淨化)과정 또는 발전과정을 밟는데, 그것은 오직 더 풍부한, 더 강한 형태로 자기와 유사한 환경에 돌아오기 위함이다. -중략- 지상의 모든 생명에 존재하는 바와 같이 모든 문명에도 존재한다고 토인비가 지적하는 이러한 율동은 토인비의 걸작의 주제를 구성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율동, 즉 문명의 출현, 발전 그리고 소멸이란 순환운동(循環運動) 내부에서 일어나는 제 2차적인 율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이 순환운동 즉 주요 율동을 문명의 탄생, 성장, 붕괴 그리고 해체라는 네 부분으로 구분하였다.’(PP.85-87의 요약.)
고 설명하고 있는 드 뷰스는, 토인비가 주장하고 있는 순환운동 즉 문명의 탄생, 성장, 붕괴 그리고 해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 설명하고 있다.
‘토인비에 의하면 문명의 탄생은 종전에 많은 역사가들이 생각하듯이 어떤 특수한 종족의 우월성이나 또는 환경의 각별한 호조건 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혹한 환경이야말로 문명 탄생이 원동력이다. 이러한 환경은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서 그 사회는 생존을 위하여 또는 복지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 도전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중략- 여기서 강조해 두어야 할 것은, 도전을 받은 사회가 그것에 성공적으로 응하려면 혹종(或種)의 독창력과 천부(天賦)의 재능이 있어야겠지만, 토인비는 결코 어떤 특수한 종족이나 국민의 고유한 우월성이나 천재를 문명 탄생의 원동력이라고 하는 인종설人種說)을 택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의 세계에 있어 하나의 새로운 육체가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문명의 탄생은 오히려 환경의 도전과 해당 사회의 자질(資質)이 결합한 결과다.(PP.87-88의 요약.)라고 보았다고 했으며,
문명의 성장은 토인비의 견해로서는 문명의 탄생에 뒤이어 이루어지는 단순한 자동적인 생물학적 과정이 아니다. 이것을 증명해주는 것으로 몇몇 문명이 바로 이러한 과정 중에서 정체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도전이 너무나 가혹하기 때문에 응전에 성공한 경우라 하더라도 더 성장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생산적인 힘이 남지 않는 수도 있다. -중략- 영토나 인민에 대한 통제력의 확대(정치적 내지 군사적 팽창)나 또는 물질적인 환경에 대한 통제력의 발전(기술의 개량)이 문명 성장에 따르는 현상도 아니거니와 그 표지가 될 수도 없다. 오히려 사태는 이와 정반대이다. -중략- 그러므로 토인비에 의하면 성장하는 문명의 적극적인 특징은 승화과정(昇華過程/The process of etherialization; 어떤 분야의 도전에서든지 그 내용이 주로 도덕적 정신적인 차원의 도전으로 승화되는 상태를 의미함)이다. 언어, 의복, 기술, 과학, 등 모든 분야에 있어 눈에 띄는 것은 끊임없이 증대해가는 단순화(單純化)다. 그 결과 순전히 물질적인 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요구되는 정력은 감소되고, 이와 정비례로 정신활동에 이용할 수 있는 정력은 증가된다. 이에 따라 도전과 응전의 장소도 이동된다. 이제 물질적인 환경으로부터 오는 도전은 감소되고 사회 내부에 있어서의 정신적 내지 사회적 갈등으로부터 생기는 도전이 더 커진다. 이리하여 성장의 과정은 자기천명(自己闡明/ Self-articulation) 또는 자기결단(自己決斷/ Self-determination)의 과정이 된다. 이 과정에서 ‘인퇴(引退)와 복귀(復歸)’운동이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토인비는 문명사회나 또는 그 사회의 ‘창조적(創造的) 소수자(小數者)/ Creative minorities’의 일시적인 인퇴의 예를 수없이 들고 있으며 -중략-사회를 생명을 가진 유기체로 보고 개인을 단순히 그 부분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나, 또는 사회는 단순히 개인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를 다 부정하고 있지마는, 각 사회의 활동력의 원천이 개인이나 또는 창조적 소수자를 구성하는 약간의 소수집단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개인이나 가 수동적이고 비창조적인 와의 관계에 있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자기들의 견해를 전파시키고 그럼으로써 그것이 효력을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중은 정신적으로나 또는 영적(靈的)으로 창조적 소수자와 동일한 경험을 통하여 생활할 수 없는 것이니까 성취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대중들이 지도자들의 견해와 태도를 받아들이고 이에 따라 그것을 모방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토인비가 ‘흉내/ 모방; mimesis.’라고 부르는 현상이다.(PP.89-92의 요약.)라고 세밀히 설명하고 있다.
문명의 붕괴는 즉 사회가 무너지는 원인이 되는 힘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때로 외부로부터의 정치적 또는 군사적 힘으로 패배당하는 사실은 그 사회가 내부적으로 몰락하고 있었다는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 만일 이와 유사한 위험이 그 사회의 성장기에 닥쳐온다면 그것은 철저히 격퇴될 뿐 아니라 오히려 때로는 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비약하는 디딤돌과도 같은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중략- 문명의 붕괴를 구성하는 요소는 다름이 아니라 특수한 도전에 대한 응전의 실패다. 이러한 응전 실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여태껏 자발적이었던 대중의 ‘흉내’가 기계적인 모방이나 강제적인 훈련으로 변화한다. 낡은 제도가 새로운 목표에 적응하지 못한다. 어떤 개인, 제도, 기술 등의 자기도취나 우상화(偶像化)가 창조력의 상실을 가져온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경우에 있어 (문명) 붕괴의 핵심은 동일한 것이다. 즉 창조적 소수자는 새로운 사태의 도전에 응할 만한 충분한 창조적 힘을 육성할 수가 없는 것이며, 그 결과 그들(소수자)은 대중에 대한 호소력이나 매력을 상실하고 오직 힘으로나 또는 기계적인 따라서 공허한 모방으로서 그 지배력의 발휘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창조적 소수자는 지배적 또는 압제적 소수자로 변하고 그 결과 대중은 그 전부가 아니라 하더라도 자기들의 충성심을 철회하고 모방을 중지한다. 대중들은 스스로를 사회와 문명의 권외(圈外)에 있는 것같이 느끼고 그것에 대하여 무관심 내지는 적대적(敵對的)인 태도를 취한다. 이리하여 그들은 토인비가 부른 바와 같이 내적(內的) 프롤레타리아(Inner proletariat)가 된다. 이리하여 정치적 분열이 일어나고 이 사회의 통일성이 상실되며, 그럼으로써 문명의 해체가 시작된다.’(PP.93-95의 요약.)고 했다.
/ 기술 과학문명과 미래종교(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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