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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東學之人生觀 註解書(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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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댓글 0건 조회 2,162회 작성일 17-06-1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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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學之人生觀 註解書(14-13)


正菴. 그 때에는 무서운 것이 없어지고 말지. 무서운 것은 단 하나 뿐 즉 큰 무서움 하나 만 남게 되겠지.
夜雷. 그러면 평상시에 무섭던 것은 어데로 갔겠나?
正菴. 글쎄 말이야 그것이 역시 妙한 일인데 동시에 의문이야.
夜雷. 그것을 心理學에서 專制心理라고 하는 것이야. 心理學上의 述語라는 것도 그 역시 과학이니 만치 형식상의 名詞일세. 그러나 그 名詞 그대로 쓸 수 밖에 할 수 없지. 어쨌든 專制心理 그것이 다른 心理를 專制的으로 복종 시켰다는 의미야. 밖어 말하면 큰 무서움이 작은 무서움을 잡아 먹었다는 말과 같은 것이네.
註 00 ; 專制心理와 牽制心理 - 專制는 정치학에서 국가의 권력을 한 개인이 장악하고 그의 힘에 의하여 모든 일을 처리함.(專制國家)이고. 다른 의미로는 다른 사람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제 생각대로만 일을 결정하는 일방적인 강제성을 의미한다. 專制心理는 현대 심리학에서는 사용되지 않은 용어이지만 야뢰는 아마도 타인에게 抑壓的으로 강제하려는 심리를 표현하려고 한 듯하다. 문장의 내용상으로 推論해 보면 專制心理가 아니고 强壓的인 心理, 强制的인 心理 또는 牽制心理인 것 같다. 牽制란 일정한 작용을 가함으로써 상대편이 지나치게 세력을 펴거나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게 억누르는 것이고 심리란 마음의 작용과 의식의 상태이므로 牽制心理란 타인의 자유의사와 행동을 일방적으로 억압하려는 심리를 의미한다./각종 어학사전에서 재정리함.
註 00 ; 述語와 術語 -述語는 문장에서 주어의 상태, 성질, 동작 따위를 풀이하는 敍述語를 말하는 것이고, 術語는 학술 연구 분야에서 특별히 한정된 뜻으로 사용하는 전문적인 용어이다. 그러므로 術語가 바른 표기이다. 述語는 문장의 내용상 잘못된 표기가 된다. /각종 어학사전에서 재정리함.
正菴. ---
夜雷. 이제 다시 크게 기쁜 일로서 그 例를 들어 보자. 무엇을 들어 볼까? 옳지, 君이 평생 사랑하든 愛人을 수년만에 千里 타향에서 만났다고 하자. 그런 때도 君이 평소에 가졌든 적은 기쁨이 대두하겠는가(들어나겠는가 또는 나타나겠는가?-오암) 생각해 보자.
正菴. 그도 마찬가지로 專制心理의 발동으로 큰 喜悅이 적은 喜悅을 잡아먹겠지, 그러나 그것이 一心은 一心이 아닌가?
夜雷. 그렇지 一心이지 다른 적은 마음은 다 복종하였다고 해도 말이 되고 도망쳤다고 보아도 말이 되네. 그런데 그 경우의 喜悅로 말하면 그 이상의 행동과 같은 喜悅은 없다고 보네.
正菴. 평생에 그런 마음만 갖고 있으면 인생이 極樂이라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은가?
夜雷. 그러나 그것을 한평생 가질 수 있는 일인가 생각해 보란 말이야. 설사 그 愛人과 평생 동거한다 할지라도 그 喜悅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라.
正菴. 될수 없는 일이지. 合卽必分 興盡悲來가 본래 세상의 원칙이 아닌가?
夜雷. 그것은 그렇고 위에 말한 一心이라는 것을 정신통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은가?
正菴. 정신통일 상태를 글자 그대로만 본다면 이상에 문답한 一心이라는 것도 정신통일은 정신통일이지. 秦始皇과 같이 힘으로 天下를 통일하거나 堯舜과 같이 德으로 天下를 통일하거나 통일이라는 목적은 같은 것이겠지.
夜雷. 그러나 秦始皇과 같이 以力服人(권력이나 힘으로써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오암)의 통일은 통일이라고 할지라도 다시 분열을 의미하는 통일인고로 寸刻의 안심을 가질 수 없는 통일이오 堯舜과 같이 以德服人의 통일은 평생의 安心 立命的 平和를 가진 통일이 아닌가?
正菴. 그러면 安心 立命的 統一이 우리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정신통일이란 말인가?
夜雷. 그렇다.
正菴. 위에서 말한 例와 같이 專制心理上의 발동이니만치 정신통일은 정신통일이 아닌가?
夜雷. 정신통일은 정신통일이라 할 수 있으되 그것은 밖으로 부터 專制로 心理를 통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外的 변동에 의하여 즉시 혹은 서서히 그의 반대 결과를 생기게 하는 통일인고로 그것은 잃게 되는 것이고 본래의 정신통일은 한번만 法悅을 얻어 놓는다면 그야말로 長久極樂이 되는 것이지.
正菴. 外的 자극이 없이 통일된 정신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은 정신의 純粹持續이란 말과 같은 것이 아닌가?
夜雷. 그렇지. 정신통일은 정신의 純粹持續이라 하여도 과언은 되지 않겠지.
正菴. 專制心理가 對象과 合一될 때에 큰 공포라든가 큰 희열이 생기는 것과 같이 靈的 精神도 純粹持續에서 어떤 快想(상쾌하거나 유쾌한 생각-오암)이 생기는 것을 法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夜雷.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 상태는 말로 할 수 없단 말이야.PP.255-261.
註 00 ; 純粹持續 - 純粹持續이란, 베르그송(Bergson, H. L.) 철학의 근본 개념으로서, 의식에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수없이 다양한 질(質)의 존재가 끊임없이 서로 삼투(滲透)하며 지속되는 유동적(流動的) 과정을 말한다. 보통의 시간과는 달리 인간의 직관에 의해서만 포착되며, 이 세계야말로 진정한 실재의 세계라고 한다. 類義語에는 내면적 지속(內面的持續), 내적 지속(內的持續)이 있다. /철학과 어학사전에서
七 法悅; P.261.
正菴. 정신통일의 울타리 만은 알아들었다. 그리고 물질적 專制心理의 喜悅과 정신의 純粹持續의 法悅에 대한 구별만은 확실히 알았는데 이제 한가지 알고 싶은 것은 法悅의 본질만은 말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法悅이 外的으로 나타나는 人格的 태도만은 말할 수 있지 않은가?
夜雷. 그렇지, 그것은 얼마든지 예를 들 수 있지.
正菴. 그 예만은 나도 대강은 짐작할 수 있네. 孔子의 樂山 樂水 樂友 樂食 등이나, 석가의 大觀喜, 수운선생의 喜喜樂樂 등이 그것이 모두 法悅의 표현이 아닌가?
註 00 ; 孔子의 樂山 樂水 樂友 樂食 - 『論語』 雍也編에 孔子가 仁者樂山 智者樂水(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 라 했다 한다. 여기에서 연유하여 공자의 심정을 요산요수, 요우요식/낙우 낙식이라 표현 한 것 같다.
註 00 ; 석가의 大觀喜 - 석가의 커다란 깨달음(覺道)에 대한 큰 기쁨.
註 00 ; 수운선생의 喜喜樂樂 - 수운선생의 喜喜樂樂은 법설의 용어로 사용된 적이 없다. 수운이 득도와 포덕의 기쁨의 심정적 상태를 야뢰가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敎訓歌에서 喜喜樂樂과 유사한 의미를 가진 喜喜樂談(마음이 매우 기쁘고 즐거워서 하는 이야기-오암)이란 용어를 다음과 같이 사용하였다.
이말씀 들은후에 심독희(心獨喜) 자부(自負)로다
그제야 이날부터 부처(夫妻)가 마주앉아
이말저말 다한후에 희희낙담(喜喜樂談) 그뿐일세 /敎訓歌
夜雷. 잘 알았네. 그런데 法悅이 喜樂이라는 것은 이상에 말한 것과 같이 정신의 純粹持續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기 물질적 희열과 같이 어떤 일정한 대상에 항하여 일어나는 일시적 희열이 아니다. 法悅은 그 자체가 喜悅인고로 대상의 관계는 없다. 대상은 다만 法悅의 全的喜悅을 誘出(주의나 흥미를 일으켜 꾀어 나오게 함. 유사어는 誘引-오암)케 하는 媒介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法悅의 外的 상태는 어떤 대상에서든지 나타난다. 綠水靑山 天風海濤 鶯歌蝶舞와 같은 좋은 환경에도 나타나고 虎狼蛇蝎과 같은 對象에도 나타난다. 莊子의 이른바 道在尿中이란 말과 같이 法悅은 道念의 充溢로 나오는 것이므로 餓鬼畜生의 地藏菩薩의 大慈悲的 法悅이 나타나는 것이다.
■ 鶯歌蝶舞(앵가첩무) - 꾀꼬리의 노래와 나비의 춤이라는 뜻으로, 지나치게 방탕하게 노는 꼴을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다.
■ 虎狼蛇蝎(호랑사갈) - 호랑이와 이리, 뱀과 전갈을 비유하여 욕심이 많고 잔인하며, 몹시 해롭거나 남을 해치는 사람을 가리킨다. 또는 매우 열악한 환경.
■ 莊子의 道在尿中 - 도가 오줌 속에도 있다. 道在屎溺(도가 소변에 익사하고 있다./도덕이 타락하고 있다. 道在屎尿(도가 소변 속에도 있다./ 도는 오줌과 같은 하찮은 것 속에도 내재되어 있다)에서 인용한 것 같다.
■ 餓鬼畜生 - 餓鬼와 畜生은 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惡鬼는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하는 나쁜 귀신, 또는 악독한 짓을 하는 사람을 욕하여 이르는 말이고, 畜生은 삼악도(三惡道) 또는 육도(六道)의 하나로,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 짐승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또는 사람답지 못한 사람을 짐승 같다는 뜻으로 욕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餓鬼畜生는 귀신이나 짐승 같이 성정이 비뚤어져 남을 해치는 사람들을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위의 용어 해설은 어학사전을 바탕으로 윗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풀이했다.-오암
正菴. 그러면 法悅에도 外的 狀態에서 喜怒哀樂이 있을까?
夜雷. 있다. 그것이 大法悅의 自由意志의 妙法이다. 그러나 法悅의 外的 狀態의 喜怒哀樂은 어떤 경우에든지 「敬愛」두 글자가 떠나지 않는다. 怒에도 敬愛가 있고, 哀에도 敬愛가 있고, 喜樂에도 에도 敬愛가 있다,
正菴. 그러한 모순이 同時에 發表(겉으로 들어 나는 것-오암) 또는 實行될 수 있을까?
夜雷. 그것 역시 反對一致의 眞理라 할 수 있다.
正菴. 구체적인 例를 들어 보게.
夜雷. 여기에는 해월 선생의 에 대한 해석이 가장 적당 簡明한 例이다. 三敬이란 敬天 敬人 敬物인데 敬이란 곧 「愛」字를 포함한 敬愛(공경하고 사랑함-오암)를 이름이다.
正菴. 가만 있자, 위선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인가 하면 敬愛라는 「敬」字와 보통 우리들이 恒用(자주 사용하는-오암)하는「愛」字에 구별이 있는가?
夜雷. 물론 있다. 우리들이 恒用하는「敬」字나「愛」字는 相對的 敬이나 愛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敬이나 愛는 絶對的 의미의 敬愛이다. 相對的 인것에는 차별이 있으나 絶對的인 것에는 차별이 없다. 왜 그러냐 하면 絶對的 敬과 愛에는 宇宙萬有의 普通自在한 本質的 神性을 對象으로 한 까닭이다.
正菴. 잘 알았다. 이제는 三敬說을 설명해 보게.
夜雷. 첫째 敬物이다. 敬物은 물체의 형상 보다 물체의 본질인 神性的 존재를 敬愛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하여 물체의 형상을 利用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草木禽獸와 같은 것을 利用하면서도 그것을 敬愛한다.
正菴. 그렇다고 하여 草木禽獸를 殺生하는 것이 法悅의 範圍에 들까?
夜雷. 그러한 경우에는 大法悅은 大慈悲的 形態로 나타난다.
正菴. 草木禽獸의 경우에는 人間의 生活的 存在原理로 그를 利用하지 않을 수 없는 天賦의 權限이라고 是認한다고 치더라도 人間이 人間을 殺生하는 것은 물론 죄악이 아닐까?
夜雷.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살생은 물론 죄악이다. 그러나 殺人者死라는 法律的 報復의 경우는 한사람을 희생하여 萬人의 惡行을 警戒하는 의미에서 현대 사회제도의 범위 안에서는 勢不得已(그렇게 하지 아니할 수 없다. 事勢不得已의 준말로 이해하면 된다. -오암)한 것이다. 大 禹도 울면서 罪人을 죽였고 諸葛도 泣斬馬謖이라는 史記가 傳해 온다. 이런 경우의 法悅은 義憤으로 나타난다. 社會제도의 불완전을 대상으로 한 義憤이라던지 個人의 죄악을 대상으로 한 義憤이라던지 어쨌든 法悅은 義憤的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註 00 ; 大 禹도 울면서 罪人을 죽였고 -大 禹는 大禹의 잘못. 이 이야기의 출전은 미상이나, 이와 비슷하지만 다른 내용이, 『삼국지 · 촉서(蜀書) 〈마량전(馬良傳)〉』에 나오는데, 마속이 옥중에서 제갈량에게 올린 서신은 『양양기(襄陽記)』를 인용한 주(注)에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鯤은 堯임금의 신하로 치수에 실패하여 사형을 당한 사람이고, 우는 곤의 아들로 치수에 성공한 사람이다. 요임금과 舜임금 때 20년 동안이나 홍수가 지속되었다. 요임금은 곤을 시켜 홍수를 다스리게 했다. 곤은 9년 동안이나 열심히 일했지만 물길을 다스리는 데 실패했다. 요임금은 그 책임을 물어 곤을 처형했다.’ / 다움백과에서 발췌.
이 내용으로 보아 야뢰는 堯임금이 치수를 실패한 우왕의 아바지인 鯤을 사형을 한 내용을 大禹의 이야기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史記』夏本記와 마속이 옥중에서 제갈량에게 보낸 「속임종여량서(謖臨終與亮書)」와 『양양기(襄陽記)』를 인용한 주(注)에도 이 이야기가 인용된 것으로 보아, 음참마속이 곤의 죽음과 같은 비중을 가진 사건이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大禹의 이야기가 아니라 堯 임금의 이야기인 것이다. 아래의 註 00 ; 『史記』夏本記와 읍참마속을 참조할 것.
또 山海經本의 禹王說話는 다음과 같다.
대홍수가 일어났는데. 곤(鯤)이 천제의 식양(息壤/전설에 나오는, 스스로 자라나 영원히 줄어들지 않는다는 흙-오암)을 훔쳐서 홍수를 막았다. 후에 鯤이 식양을 훔친 사실을 천제가 알고 천제가 축융을 시켜 우교(羽郊)에서 鯤을 살해하였다. 죽은 鯤의 배에서 禹가 탄생하였다. 천제는 우에게 홍수를 막을 것을 명하니 우는 포토를 하여 九疇가 정돈되었다. 한다.
다음 백과에, 禹王이 전설상의 인물이 된 사연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홍수를 다스려 나라를 구했다고 한다. 그의 탄생에 관한 많은 전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순 임금이 곤에게 홍수를 다스리게 하자, 곤은 둑을 쌓기 위해 하늘나라에서 식양이라는 요술 흙을 한 줌 훔쳤는데 이에 노한 상제가 그를 처형했다.
3년 후에 그동안 썩지 않았던 그의 몸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禹라는 것이다. 우는 용의 도움으로 몇 년간 열심히 일한 끝에 바다로 물길을 내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공으로 순에게 왕위를 물려받아 국호를 夏'라 정하고, 중국 전역을 9주로 나눠 공부를 정했다
중국역대인명사전에는 禹는 중국 전설상의 夏王朝의 시조로. 성은 사(姒)씨고, 이름은 문명(文命)이다. 『史記』夏本記에 따르면, 전욱(顓頊)의 손자이며, 곤(鯀)의 아들이다. 堯임금의 치세에 대홍수가 발생하여 섭정인 舜이 그에게 治水를 명령했다. 13년 동안 勞心焦思한 끝에 치수 사업에 성공해 천하를 9주(州)로 나누고 공부(貢賦)를 정했다. 순이 죽자 인망(人望)을 모은 그가 제위를 계승했는데, 나라이름을 夏로 고치고 安邑에 도읍했다. 治世 10년 만에 회계(會稽)에서 죽자 제후(諸侯)의 추대로 아들 계(啓)가 천자가 되었는데, 이때부터 천자 자리를 세습화하여 하왕조가 시작되었다. 지금의 소흥(紹興)에 무덤이 있다. 그의 전설은 漢民族의 홍수 전설과 관련이 있으며, 神話學과 고대사학사상 중요한 자료가 된다./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에서
註 00 ; 泣斬馬謖(읍참마속) - AD223년, 촉주(蜀主) 유비는 221년부터 시작된 동오(東吳)와의 싸움인 이릉(夷陵) 전투에 출전하였다가 대패하고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면서 제갈량(諸葛亮)과 이엄(李嚴)에게 아들 유선(劉禪)을 부탁했다. 유선이 유비의 뒤를 이었고, 역사에서는 유선을 후주(後主)라고 부른다. 건흥 6년(228) 봄, 제갈량은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위나라를 공격했다. 출정에 앞서 그는 후주 유선에게 글을 올렸는데, 이것이 바로 〈출사표(出師表)〉이다.(이 〈출사표〉는 제갈량의 우국충정이 넘치는 글로서, 이를 읽고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읽고 울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라는 이밀(李密)의 〈진정표(陳情表)〉, 읽고 울지 않으면 우애를 모르는 자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한유(韓愈)의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과 더불어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명문이다.) 제갈량은 〈출사표〉를 올린 후에 위(魏)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한중(漢中)을 나와 장안을 향해 진군했다. 한중에서 기산(祁山)을 향해 우회하면서 천수(天水), 안정(安定), 남안(南安) 등 3개 군을 접수하고 기산에 이른 다음 장안으로 진군하는 전략이었다. 이때 위연은 자오곡(子午谷)을 질러 바로 장안으로 기습하자는 의견을 냈는데, 제갈량은 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력을 다 기울인 이 전투에서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할 경우 국기(國基)가 흔들릴 정도의 타격을 입기 때문이었다. 위나라는 하후무(夏侯楙)를 총사령관으로 하여 대적했으나, 남안, 천수, 안정의 농서 지방 3군을 빼앗기고 강유가 촉한에 투항하자, 위 명제(明帝) 조예는 사마의(司馬懿)를 복직시키고 장합(張郃)을 가정(街亭)으로 향하게 하였다. 제갈량은 전력상의 요충지인 가정을 지킬 장수로 마속을 보내면서 가정의 길목을 지켜 적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마속은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적을 끌어들여 역습을 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산등성이에서 장합의 군대에게 포위당해 힘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참패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제갈량은 할 수 없이 군대를 이끌고 한중으로 퇴각해야만 했다. 마속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옥중에서 제갈량에게 〈속임종여량서(謖臨終與亮書)〉라는 글을 올렸다.
「승상께서는 저를 자식처럼 대해 주셨고, 저는 승상을 아버지처럼 대하였습니다. 곤(鯀)을 죽이고 우(禹)를 흥하게 한 뜻을 깊이 생각하시어 평생의 사귐이 이 때문에 무너지지 않도록 하시면 저는 비록 죽지만 황천에서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襄陽記曰, 謖臨終與亮書曰, 明公視謖猶子, 謖視明公猶父. 願深惟殛鯀興禹之義, 使平生之交不虧於此, 謖雖死無恨於黃壤也.)」
제갈량은 패전의 책임을 물어 마속에게 참수형을 내렸다. 다시 구하기 어려운 장수이므로 살리자고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법을 엄정히 지켜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었다. 이를 ‘읍참마속’이라 한다. 이 이야기는 《삼국지 · 촉서(蜀書) 〈마량전(馬良傳)〉》에 나오는데, 마속이 옥중에서 제갈량에게 올린 서신은 《양양기(襄陽記)》를 인용한 주(注)에 실려 있다.
곤은 요(堯)임금의 신하로 치수에 실패하여 사형을 당한 사람이고, 우는 곤의 아들로 치수에 성공한 사람이다. 요임금과 순(舜)임금 때 20년 동안이나 홍수가 지속되었다. 요임금은 곤을 시켜 홍수를 다스리게 했다. 곤은 9년 동안이나 열심히 일했지만 물길을 다스리는 데 실패했다. 요임금은 그 책임을 물어 곤을 처형했다. 요임금의 양위로 제위에 오른 순임금은 곤의 아들 우에게 치수를 맡겼다. 우는 아버지의 실패를 거울삼아, 물길을 막는 방법이 아닌 물길을 내서 물이 빠지게 하는 방법을 써서 작은 시내는 큰 강으로 흘러들게 하고, 강물은 바다로 빠지게 만들었다. 이렇게 13년의 노력 끝에 우는 마침내 홍수를 다스리게 되었고, 후에 순임금의 양위를 받아 제위에 오르고,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나라를 세웠다. /고사성어대사전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正菴. 그런 경우에도 法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가?
夜雷. 春夏秋冬의 盛衰現象이 天道의 自由自在한 生滅的 假相임과 같이 로 나타나는 喜怒哀樂은 우리가 日常 當하는 喜怒哀樂이 아니며 그러한 것은 一時的 方便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法悅의 본질은 變하지 않는다. 事來心卽動 事去心卽空 動卽空 空卽動, 心의 본체는 영구히 純粹持續이 된다. 그것이 法悅의 外的 狀態다.PP.261-265.
註 00 ; 事來心卽動 事去心卽空 動卽空 空卽動 - 事來心卽動 事去心卽空은 事來而心始現 事去而心隨空을 잘못 인용했거나, 설명하는데 필요에 따라 야뢰가 恣意的으로 援用하여 새로운 문장을 만든 것 같다. 그러므로 動卽空 空卽動도 윗 문장의 의미를 壓縮한 새로운 용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오암/ 아래의 문장을 참조.
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雁度寒潭 雁去而潭不留影 故 君子 事來而心始現 事去而心隨空 談山林之樂者 未必眞得山林之趣 厭名利之談者 未必盡忘名利之情 /『菜根談』 自然篇에서 발췌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바람이 소슬하게 대나무 숲에 불어오니 바람이 지나가면 대나무의 울음소리가 머물지 않고/소리를 남기지 않고 지나가는구나. 기러기 떼가 차가운 연못을 지나 날아가니 기러기 떼는 가고 난 다음에 연못이 그림자가 머무르지 않으니/ 그림자를 남지 않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에 나타나고, 일이 끝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텅 비나니라. 山林 속에 숨어 사는(학식과 도덕은 높으나 벼슬은 하지 않고 속세를 피해 숨어사는 선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오암) 삶이 즐겁다고 하지 말라. 그 말이 아직도 산림의 참맛을 못 깨달은 표적이니라. 명리(名利/세상에서 얻은 명성과 이득-오암)의 이야기를 듣기 싫다 하지 말라. 그 마음이 아직도 명리에 미련을 못 다 잊은/미련을 버리지 못한 까닭이다.
八 樂天과 厭世; P.266.
正菴. 世上에는 사람의 個性에 따라 厭世家도 있고 樂天家도 있으나 인간을 受動的 地位에서 보면 厭世家도 오히려 정직한 감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지 않는가?
夜雷. 그 理由는?
正菴. 이유는 무엇이고 따질 것이 없지 않는가? 一落人間萬種愁라는 말이 꼭 옳은 것이다. 사실 그대로 厭世的 材料밖에 없지 않는가? 生老病死가 그러하고 愛別憎惡가 그러하고 不滿足 不得已가 다 그러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自古로 詩人치고 厭世的 氣分을 가지지 않는 사가 다람이 없고, 종교가치고 厭世的 性質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위선 釋尊같은 이가 극단적인 厭世家가 아니었는가? 人生의 受動이 되는 모든 환경이, 모든 對象이, 모든 刺戟이, 모든 當爲가 厭世材料 아닌 것이 무엇 있는가? 어디 시험삼아 물어 보라. 내가 대답할 터이니.
夜雷. 일일이 조건을 붙여놓고 그 결과를 따진다면 樂天家의 편이 대답이 막힐 것일세. 爲先 「無常」이라는 두 글자만 가지고도 무엇이든지 대항할 수 있으니까 現象界로만 본다면.
註 00 ; 一落人間萬種愁 - 정수동(鄭壽銅/鄭芝潤/1808-1858)의 詩인「一落人間萬種愁/失題, 無題라는 기록도 있다」에서 인용한 듯.
疎狂見矣謹嚴休 只合藏名死酒褸
兒生便哭君知不 一落人間萬種愁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세상이 미쳤는데 근엄(체통과 점잖음-오암)하게 살아 무엇 하겠는가? 이름 없이 세상을 떠돌다가 술이나 퍼마시다 이름 없는 주막에서 죽기 십상이지
피 덩어리의 아이가 태어날 때 갑자기 울어대는 까닭을 그대는 아는가? 한번 인간으로 태어나면 끝없는/수많은 근심 걱정에 빠져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소리를 크게 내어 우는 것이라네.
■ 疎狂 -언행이 매우 거칠어서 일상적인 예절에 벗어남 또는 정상이 아니만큼 매우 소탈함./ 便哭 - 제멋대로 갑자기 울어 댐.
■ 지은이는 조선 헌종 때 해학(諧謔)과 풍자(諷刺)로 이름을 날린 하원(夏園) 정수동(鄭壽銅/鄭芝潤)의 詩로 알려진다. 정수동은 평양의 才士 鳳伊 金先達(본명 金仁鴻, 자호 浪士), 경주의 괴걸(怪傑) 정만서와 함께 해학과 풍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마지막 구절(兒生便哭君知不 一落人間萬種愁)은 陽.明學의 창시자인 王陽明의 詩句라는 얘기도 있다. / 鄭壽銅의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正菴. 그러니까 厭世家의 태도가 正直한 自然의 發露란 말이야. 樂天家라는 것은 厭世의 反動으로 나온 假相的 發露이며 울다 못해 웃는 격인 苦笑的(뜻밖의 일을 당하여 어이가 없거나 마지못해 짓는 웃음-오암) 감정에서 나온 反撥的 狂態(미친 짓-오암)가 아닌가?
夜雷. 樂天家의 實例를 하나 들어 볼까? 君이 너무 厭世的 감정으로 날뛰니 내가 우수운 이야기를 하나 하지.
註 00 ; 假想과 假相 - 假想은 사실이 아니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사실이거나 실제로 있는 것처럼 가정하여 상상하는 것이고, 假相은 불교적인 용어로 겉으로 나타나 있는 헛되고 덧없는 현실 세계를 의미한다./어학사전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正菴. 무엇인가?
夜雷.「이소프 寓話」를 잘 알지? 자연계는 다 樂天家이다. 星辰의 光이라든가 草木의 色彩라든가 花笑鳥啼라든가 水流雲施가 다 그들의 本能的 樂天상태라 그들은 그 자체가 完全이오 만족이다. 금방 죽어도 만족하다는 安樂狀態이다. 그러므로 다른 動物도 樂天家의 성질을 가지지 않는 것은 없으나 그 중에도 제일 樂天家的 성질과 태도를 가진놈은 「개구리」라 할 수 있지. 이소프는 그것을 보고 寓話를 지었다.
한 곳에 개구리 몇천마리가 모여 사는 연못이 있었다. 하루는 할아버지 되는 개구리가 아들 손자 증손자 등 모든 가족을 데리고 연못 위에 총 출동하여「개굴 개굴」노래를 부르면서 樂天家의 본색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너무도 즐거운 할아버지 개구리가 子孫 개구리들에게 물어 보았다.「이놈들 대답해 보라. 저 하늘과 땅이 누구를 위해 생겼는고?」모든 子孫 개구리는 一齊히 대답한다.「우리를 위해 생겼읍니다」「모든萬物은?」「그것도 우리를 위해 생겼읍니다」할아버지 개구리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서「옳지 잘 알았다. 天地 間에는 極大로부터 極小에까지 하나도 우리를 위해 생기지 않은 것은 없느니라」하고 나서 개굴개굴하면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데 뱀 한 마리가 이 광경을 보다가 개구리 한 마리를 물어 가지고 달아났다. 개구리들은 一齊히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놀랬다. 그들은 거기서 큰 의신이 일어났다. 天地萬物이 다 우리를 위해 생겼는데 저놈의 뱀은 누구를 위해 생겼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질문을 받은 할아버지 개구리는 대답이 궁해졌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기운이 나서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놈들 들어 보아라 그 놈도 우리를 위해 생겨났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우리들 종족이 자꾸 불어나기만 하는데 연못은 限定이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食口가 減해져야 살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한울님이 저런 놈도 우리를 위해 나게 하지 않았느냐 개굴 개굴」개구리뿐 아니라 自然界는 무엇이든지 樂天家의 本色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이소프는 그것을 대표하여 개구리의 寓話를 생각해 낸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天地의 根本이 樂天이지 어디 厭世로 볼 수 있겠는가?
註 00 ; 花笑鳥啼은 花笑檻前聲未聽 鳥啼林下淚難看에서 온 것. /꽃이 난간 앞에서 웃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고 /새가 수풀 아래서 우는데 눈물은 보기 어렵구나' /이 시는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세 살 때 그의 외조부 앞에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인후(金麟厚)의 『백련초해(百聯抄解)』의 첫 구절에 실려 있다.
■ 細雨池中看 微風木末知 花笑聲未聽 鳥啼淚難看 /가랑비는 연못 가운데서 볼 수가 있고 산들바람은 나무 끝에서 알 수 있다네. 꽃은 웃으나 그 소리는 들리지 않고, 새는 울어도 눈물을 보기 어렵다./ 고려시대 시인 李奎報가 여섯 살 때 쓴 漢詩로 알려져 있다. /『推句集』의 30번째 詩
註 00 ; 水流雲施 - 水流는 물이 흘러간다. 이고, 雲施는 아마도 雲行雨施(구름이 움직여 비를 오게 한다)에서 온 것 같다. 水流雲施는 물은 흐르고,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린다. 이다. /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註 00 ; 이소프의 개구리의 寓話 - 出典 未詳이다. 개구리의 寓話에는, 산 개구리 우화, 부부 개구리 이야기와 井底之蛙의 개구리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이솝 寓話와 관련 자료들에서 확인함.
正菴. 그렇게 보면 天地의 根本이 樂天인듯 보이지. 그러나 사람이야 어디 그런가? 개구리와 같이 자기를 잡아먹는 뱀까지도 자기들을 위해서 생겨났다는 비유와 知識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가?
夜雷. 그러기에 人間識字憂患始란 말이야. 天地의 根本은 樂天인데 사람은 자기의 知識 때문에 厭世家가 되었단 말이야.
註 00 ; 人間識字憂患始 - 人生識字憂患始의 잘못.
'아는 것이 병'이란 속담대로 지식이 해가 될까? 이것은 정확하지 못하거나 분명하지 않은 지식은 오히려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 실제로 몰라도 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모르는 편이 나을 때가 간혹 있겠지만 도리를 알고 있는 까닭으로 도리어 불리하게 되었을 때 한탄하는 것이 識字憂患이다.
이 成語는 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北宋)의 대표적 시인 東坡 蘇軾(소식)이 「石蒼舒醉墨堂」이란 시의 첫 구절에 바로 시작한다. '인생은 글자를 알면서 근심 걱정이 시작되니, 성명이나 대강 적을 수 있으면 그만인 것을(人生識字憂患始 姓名麤記可以休.' 麤는 거칠 추.
「三國志演義」에서 설명하는 내용은 이렇다. 劉備가 諸葛亮을 三顧草廬로 맞이하기 전에 있었던 軍師가 徐庶였다. 그는 曹操가 탐내는 인물이었는데 휘하에 끌어들이려고 계략을 썼다. 그가 효자라는 사실을 알고 어머니 衛부인이 위독하다는 가짜편지를 보냈다. 영문을 모른 위부인은 아들이 돌아오자 자기 필체를 위조한 계락인 것을 알고 통탄했다. 나중에 서서가 조조 진영으로 간 것을 알고 효심과 거짓편지 때문이라며 '여자가 글씨를 안다는 것이 걱정을 낳게 하는 근본 원인(女子識字愚患)'이라 했다. 위부인의 말을 인용해 후세 사람들은 여자가 글을 배우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지만, 실제는 원본에 없는 내용이 번역소설에 재미로 삽입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 蘇軾의「石蒼舒醉墨堂」과 故事成語 辭典에서 정리.
■ 「石蒼舒醉墨堂」의 全文 - 蘇軾/「石蒼舒醉墨堂」의 全文풀이에서
人生識字憂患始(인생식자우환시) : 인생은 글자를 알면서 우환이 시작되니
姓名麤記可以休(성명추기가이휴) : 성명이나 대강 적을 수 있으면 그만둠이 좋도다
何用草書誇神速(하용초서과신속) : 어찌하여 초서를 배워서 빠른 것을 자랑하여
開卷惝怳令人愁(개권창황령인수) : 책을 펴면 당혹하게 사람을 근심하게 만드는가
我嘗好之每自笑(아상호지매자소) : 나도 일찍이 놓아는 하나 매변 스스로 웃노니
君有此病何能瘳(군유차병하능추) : 그대도 이 병이 있으니 어찌 고치겠는가
自言其中有至樂(자언기중유지낙) : 이 속에 지극한 즐거움 있다고 스스로 말하여
適意不異逍遙遊(적의부리소요유) : 마음대로 되는 것이 소요의 세계와 같다고 하는구나
近者作堂名醉墨(근자작당명취묵) : 요즈음 지은 집을 취묵당이라 이름지었으니
如飮美酒消百憂(여음미주소백우) : 좋은 술 마신 것처럼 온갖 근심 사라진다는 뜻과 같으리라
乃知柳子語不妄(내지류자어부망) : 유자의 말이 허탄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노라
病嗜土炭如珍羞(병기토탄여진수) : 병들면 흙이나 숯이 산해진미보다 좋다는 것을
君於此藝亦云至(군어차예역운지) : 그대는 이 예술에 지극하다 말할 수 있나니
堆牆敗筆如山邱(퇴장패필여산구) : 버린 붓 담장에 쌓은 것이 산처럼 많도다
興來一揮百紙盡(흥내일휘백지진) : 흥이 일어나 한번 흰 종이에 휘두르면
駿馬倏忽踏九州(준마숙홀답구주) : 준마가 잠깐 사이에 천하를 밟고 지나간 것 같도다
我書意造本無法(아서의조본무법) : 나의 글씨 법도 없이 쓴 글이라
點畫信手煩推假(점화신수번추가) : 마음대로 쓴 점과 획을 번거롭게 추천하고
隻字片紙皆藏收(척자편지개장수) : 글씨 하나 종이 한 조각 모두를 거두어 두는가
不減鍾張君自足(부감종장군자족) : 종요와 장지에 못하지 않은 그대는 스스로 충분하지만
下方羅趙我亦優(하방나조아역우) : 나도 이제야 아래로 나휘와 조습보다는 나으리라
不須臨池更苦學(부수림지경고학) : 못가에 나가 애써 배울 필요는 없도다
完取絹素充衾裯(완취견소충금주) : 비단 전부 가져다가 이불이나 만들어 채우리라.
正菴. 그러면 知識이 없이는 살 수 없을까?
夜雷. 原始人의 德治生活 시대에는 知識이 없이 살았다는 증거가 있지만은 지금 사람으로 말하면 先祖들의 業因으로 知識을 없애지 못하는 운명을 짊어지고 났다고 할 수 있고 더구나 지식이 없으면 생존경쟁에 견뎌낼 수 없는 것일세.
正菴. 그러면 지식은 순전히 생존경쟁 때문에 생겼을까?
夜雷. 지식이 순전히 생존경쟁을 위해 생긴 것은 아니고 공평히 말하자면 人類의 생존을 위해 생긴 것이겠지.
正菴. 지식이 없는 자연계로 보면 위로 日月星辰의 大宇宙로부터 아래로 微菌(미세한 또는 매우 작은 세균-오암) 세포 분자 등의 小宇宙까지 질서정연 一糸紛亂한 規律아래서 생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에게서 간혹 충돌이나 모순행위와 같은 것이 있어 보이기는 하나 君이 愼言(삼가해서 함부로 말하지 않음/또는 조심스럽게 말함.-오암)하는 反對一致의 眞理에 비추어 보면 모든 것이 全宇宙 全的 存在의 必要로 因한 調和상테에서라고 是認되는데 인간에 있어서는 그와 정반대로 惡鬪爭(악조건 속에서의 생존경쟁 또는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악한 투쟁-오암)의 利己行爲가 전혀 神의 意志에 違反된다. 그래서 인간 사회에서는 國家 조직이 있게 되고 國家 權力으로써 惡鬪爭을 막는 法律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法律이 나면서 인간의 德治的 觀念은 점점 退化되었다. 德治觀念이 退化할수록 法的 行爲는 일층 가혹하게 되고 인간은 점점 厭世觀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필경 自繩自縛의 行爲 때문에 神意와 背馳되는데서 生存을 위해 생긴 知識이 경쟁이라는 을 생기게 하였다는 말이 아닌가?
夜雷. 그렇지 요약해서 말하면 利己行爲는 진보되고 利他行爲는 退化히였다. 이 행위가 우주의 근본적 樂天生活에 配馳(背馳/두 사물이 서로 반대가 되어 어긋남의 잘못-오암)될 것이다.PP.265-271.
註 00 ; 一糸紛亂 - 한국식 표기로는 一絲不亂이므로 一糸紛亂는 잘못. 중국이나 일본식 표기로는 一糸不乱이다. 一糸는 한 가닥의 실로. 매우 작은 수의 비유하거나 진짜 조금도의 뜻을 가진 단어이다. /각종 어학사전에서 종합 재정리함.
註 00 ; 邪知私慾 - 야뢰가 만든 新造語. 邪知는 일본어식 표기로 邪智라고도 표기한다. 邪知는 간사/사악한 지식. 남을 해치는 지식을 말하고, 邪智는 간사한 지혜로, 남을 속이려는 지혜를 말한다. 私慾은 사사(私事)로운 慾心이므로 邪知私慾는 남을 속이려는 간사한 지식으로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려는 것 이라는 뜻이다./각종 어학사전에서 종합 재정리함.
九 利己와 利他; P.271.
正菴. 利己와 利他는 모순 행위가 아닌가?
夜雷. 부분적으로 보면 모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全體를 主體로 보면 五行의 相克과 같이 相克이면서 相生이 되는 것이다.
正菴. 그러면 利己와 利他를 잘 調和하는데서 道德律이 成立될 것인데 여기서 인간의 도덕적 敎化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 아닌가?
夜雷. 그렇지.
正菴. 利己가 害他를 초래하는 利己여서는 안되고 동시에 利他가 害己的 利他라고 해도 그것은 보편타당성을 잃은 行爲가 아닌가? 利己이면서 利他, 利他이면서 利己, 이것을 이라고 말하는건지 그것을 구체적으로 例를 들어 말해 보게.
夜雷. 例를 들면 여기 機關車가 있다고 하자. 機關車는 그 全體로서만 存在의 價値와 目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各 部分은 部分 그 자체만으로 하등의 가치나 목적을 가지지 못하였고 全體를 補助한다는 의미에서만 價値와 目的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水火는 부분적으로 볼 때에는 相克이지만 全體的으로 볼 때에는 相生이 된다. 相克이 아니면 相生이 되지 못하고 相生하기 위하여 相克이 필요하게 된다. 究竟 全體的 의미에서 相生은 目的이 되고 相克은 方便이 된다. 그리하여 기관차는 기관차의 目的을 달성하게 된다. 萬殊一理라 天下의 理가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다.
註 00 ; 萬殊一理와 一理萬殊 - 萬殊一理는 우주의 천태만상이 결국은 한 이치로 돌아감을 말하는 것으로, 만물은 하나의 이치에 따라 움직인다는 말이며, 一理萬殊는 하나의 이치에서 나와 천개 만개로 나눠지는 것(천태만상을 이룸)을 의미함./一理分殊 참조,
海月神師 法說 「天地人․ 鬼神․ 陰陽」 중에
‘動者氣也 欲動者心也 能屈能伸 能變能化者鬼神也 鬼神者天地之陰陽也 理氣之變動也 寒熱之精氣也 分則一理萬殊 合則一氣而已 究其本則鬼神也性心也造化也 都是一氣之所使也’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움직이는 것은 기운이라 하고, 움직이고자 하는 것은 마음이라 한다, 마음대로 구부리고 펴고 변하고 화하는 것(屈伸動靜-오암)은 귀신이라 한다. 귀신이란 것은 천지의 음과 양을 말하는 것이요. 이렇게 다르게 되는 것은 이치와 기운이 움직여 변화하는 것이요 차갑고 더움의 정기니, 나누어 보면 한 이치가 만 가지로 다르게 나타나고 합하여 보면 한 기운일 뿐이다. 그 근본을 연구하면 귀신, 성심, 조화가 도무지 한 기운의 변화하여 나타난 것이다./ 海月神師 法說과 어학사전들을 바탕으로 재정리함.
------------------------------------------------東學之人生觀 註解書 14-1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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