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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警歌는 尙州 東學歌詞
천도교 홈에 게재된, 본인의 모든 글과 동학, 천도교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은, 모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카페(http://cafe.daum.net/oamdonghak)의 김 용천 자료실과 교리, 교사 연구 논문과 학술논문 자료실에 게재되어 있사오니, 자주 방문하시어 많이 읽어주시고, 교단발전에 널리 활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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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덕 159(2018)년 7월 18일.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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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항 ; 필자는 황토현 동학혁명기념관내의 자료 전시 경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명시된 時警歌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아서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의 운영관리자인 김 용천이 지금까지 공개된 자료들을 종합 재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게재함을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아래에 기술된 내용은,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이 간행한 자료와 상주 동학 문화재단이름으로 상주동학 박물관에 보관중인 자료들의 설명을 재정리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김 용천 심고
1979년에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이 간행한, 『가사문학대계-동학가사 Ⅰ.Ⅱ-』에 의하면, 작자와 저작연대가 미상인 동학 가사(東學歌辭)로 목판본이다. 1944년 경상북도 상주의 동학 본부에서 간행된 ≪용담유사 龍潭遺詞≫ 권38에 수록되어 있다. 작자는 김주희(金周熙)라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김주희가 죽은 뒤 간행된 이 작품의 판권란에는 ‘저작 겸 발행인 김주희’가 빠지고 등재 주무자(登梓主務者) 이름만 올라 있다.
이 작품은 <시경가>와 <수신가 修身歌> 2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편 모두 율조 4·4조를 주조로 한 4 음보격으로 되어 있다. 내용과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시경가>는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총 623행의 장편 가사인데, 그 내용은 선천회복(先天回復)의 시운이 돌았으니 모두 수도에 힘써 천시(天時)를 기다리라고 경계, 교훈한 것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먼저 목덕(木德)이 흥왕하는 좋은 운세가 돌아왔다고 읊은 다음, 아직 약자인 꿩이 강자인 매에게 쫓기는 불운한 때라고 하였다. 그러나 멀지 않아 천지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매의 운수가 다하고 꿩의 운수가 회복될 것이므로, 사람들은 모두 ‘하늘지식’과 ‘하늘조화’를 믿고 경천순천(敬天順天)해 수도에 힘쓰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태고순풍(太古淳風)의 요순 세계를 이루어 보자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표현상의 서민성(庶民性) 외에도 특히 약자인 자신들을 매에게 쫓기어 올 데 갈 데 없이 된 절박한 꿩의 신세에 비유해 묘사하고 있는 점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교세(敎勢)의 흐름을 여실하게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수신가>도 역시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총 199행으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조선 후기 가사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내용 역시 경천순천해 만사지인(萬事知人)이 되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시운이 어떻게 변하는지 깨닫도록 강조하고, 도각 선생(道覺先生)을 만나서 가르침을 받으라고 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동국참서 東國讖書≫의 여러 구절을 해명하고 있다. 곧, 이재송송(利在松松), 십승지지(十勝之地), 이재궁궁(利在弓弓) 등의 내용을 설명하고 하늘을 부모로 알고 섬기라고 하였다. 가사의 표현 수법이나 내용의 일부가 최제우가 지은 ≪용담유사≫를 본받은 것이 많다. 그런데 참서에서 흔히 말하는 구절들이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이해에 혼란을 많이 주고 있다고 해서, 이들을 가사로 풀이해 놓은 점은 이 가사의 특이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또, 이 가사의 내용과 발간 연대인 1944년은 시대적으로 서로 걸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러한 가사가 독자들에게 수용되고 있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상주 동학 문화재단이름으로 상주동학교당에는 현재까지 전적 135종, 책판 65종 793판이 전승되어 오고 있다. 이외에 이외 인쇄용구 30종 102점, 인장 6종 17점이 함께 전하고 있다. 전적(典籍)은 수장서적의 목록 1종, 경서 11종, 가사 87종, 기타 서적 17종, 고문서 19종인데, 동학경서(東學經書), 동학가사(東學歌辭), 고문서(古文書), 기타(其他) 전적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책판은 경서책판 7종 82판, 가사(한글본) 27종 355판, 가사(국한문혼용) 29종 354판, 기타 책판 2종 2판이 남아 있다. 복식에는 오색예복(五色禮服) 받침복, 오색예복 원삼(圓衫), 전복(典服), 학창의(鶴氅衣), 오색관(五色冠), 유건(儒巾), 오색망건(五色網巾), 휴대용 거랑주머니 등이 있으며, 기타 유물로는 교기(敎旗), 인장(印章), 민구(民具), 인쇄용구(印刷用具) 등이 있다.
(1) 전적(典籍)
① 동학경전
상주동학교당에는 그곳에서 저작한 경서와 가사를 수록한 목록 『동경대전총목록(東經大全總目錄)』이 전래되고 있다. 이것은 당시 동학교당에서 편찬한 서적의 현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 같은 내용이 수록된 목록인 『총목(總目)』도 전래된다. 이는 『동경대전총목록』의 전사본(轉寫本)으로, 내용은 앞의 『동경대전총목록』과 동일하다. 『총목』는 『동학가사』 권38 『시경가』까지 수록되었으나, 이 뒤는 추가로 기록하지 않았다. 전후 사정을 살펴볼 때, 이 목록은 『시경가』가 간행된 1951년 『동경대전총목록』이 추록된 후 이를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상주동학교당에서 발간한 경서는 동학의 교리가 수록된 10종의 총서이다. 여기에는 기존 수운 최제우가 동학을 창도하면서 만들어 전래한 것도 있고, 김주희의 동학교에서 새로 저작한 것도 있다. 전래되는 동학경서의 사본은 『동경대전(東經大全)』 2종, 『궁을경(弓乙經)』 2종과 『축식(祝式)』이 있다. 『동경대전』은 수운 최제우가 1860년(철종 11) 4월 5일 무극대도(無極大道)를 창도한 후부터 1864년(고종 1) 2월까지 집필한 것들을 모은 것이다. 내용은 <포덕문(布德文)>, <수덕문(修德文)>, <논학문(論學文)>, <불연기연(不然其然)> 4편과 <좌잠(座箴)>, <탄도유심급(歎道儒心急)>, <전후팔절(前後八節)> 등 여러 시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궁을경』은 수운의 말씀을 부연해서 체계적으로 파악한 것이고, 나머지 경서는 교리를 부연 확장시킨 것이다. 『축식』은 헌성편(獻誠篇), 혼례편(婚禮篇), 상례편(喪禮篇), 제례편(祭禮篇), 잡기편(雜記篇)으로 구성되었는데, 여러 의식에 사용하는 축문의 양식을 수록한 것이다.
부교주가 쓴 사본 『동경대전』과 하암(河庵)의 장서인이 있는 석판본 『동경대전』은 부교주 김낙세의 구장본으로 보인다. 1909년에 목활자로 간행된 『교정경(敎正經)』에는 “孔夫子誕降二千四百六十年己酉”란 간기가 있고, 판권지는 따로 없다. 이는 동학교당이 건립되기 이전의 서적이므로 경천교시대의 서적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경서류는 목판, 목활자, 석판, 연활자를 활용하여 간행하였다. 목활자본 5종은 『교정경』, 『도정경(道正經)』, 『도수경(道修經)』, 『성경(聖經)』, 『축식(祝式)』이다. 『교정경』은 1909년에 간행하였는데, 다른 목활자본과는 활자체가 다르다. 『도정경』과 『도수경』은 조판체제가 유사하고 1924년 인출본과도 상이하므로, 『도정경』과 『도수경』도 1924년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교정경』, 『도정경』, 『도수경』이 합편된 『성경』 1924년에 인출되었다. 이들 세 서적의 활자는 동일 활자가 사용되었으나 이전 간본의 활자와는 다르다. 『축식』은 또 다른 활자로 인출되었다. 『동경대전총목록』을 제외한 동학경서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상주동학교당의 東學經書
② 동학가사
동학교당에서는 동학의 사상과 종교적 교리를 쉽게 기억하고 편리하게 전파할 수 있도록, 동학 경전의 내용을 토대로 가사로 만들어 전파시켰다. 이 동학가사를 40종의 총서로 만들었는데, 가사는 원칙적으로 한글본과 국한문본이 함께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식자층을 위한 국한문본과 서민을 위한 한글본을 동시에 제작한 것으로 동학의 평등적 이상을 실현한 것으로 보인다.
동학가사는 ‘용담유사(龍潭遺事)’라는 동일한 이름 아해 권차(卷次)를 붙여 하나의 총서로 만든 것이다. 제1권에는 수운 최제우가 지은 용담가 ‧ 안심가 ‧ 교훈가 ‧ 몽중노소문답가 ‧ 도수사 ‧ 권학가 ‧ 도덕가 ‧ 흥비가의 한글가사 8편을 수록하였다. 저자는 김주희라 기록되어 있는데, 상주동학교당의 동학가사는 거의 모든 책의 판권지에는 김주희 개인의 창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김주희 개인의 창작뿐만 아니라 동학교당의 핵심 교인이 창작하고 전승한 가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 학가사는 경서의 간행이 대부분 마무리될 무렵인 1929년부터 1932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간행되었다. 당시는 일제 강점기여서 서적을 간행하기 위해서는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동학교당에서 이들 서적을 일시에 판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판각해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국한문분과 한글본으로 나누어 표로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 국한문본
국한문본은 대개 1929-1932년에 간행되었으나, 최후에 간행된 서적은 1951년에 간행된 제39권 『불역(不易)』이다. 전래되는 동학가사 가운데 제1 『龍潭遺事』, 제3 『昌德歌』, 제7 『內修道』, 제11 『心學歌』, 제38 『時警歌』, 제40 『東學本義』 국한문본의 목판본이 전래되지 않고 한글본만 전래된다. 국한문본의 동학가사는 아래와 같다.
㉡ 한글본
사본이건 목판본이건 한글본 동학가사가 전래되지 않는 것은 제4권 『허중유실가(虛中有實歌)』, 제39권 『불역(不易)』, 제40권 『동학본의(東學本義)』의 3종이다. 가사는 목판으로만 간행되었는데, 한글본 가사 가운데 가장 먼저 간행된 것은 1920년에 간행된 『경운가』와 1925년에 간행된 『창덕가』이다. 또 마지막 간본은 1951년에 간행된 제38권 『시경가』. 제34권 『궁을십승가』 경우 국한문본은 『궁을도덕가(弓乙道德歌)』라 하여 한글본과 국한문본의 제명이 다르다. 목록을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3) 기타 서적
동학경전과 동학가사를 제외한 서적은 양적으로는 많지 않지만 다양한 내용들의 서적이 전래되고 있다. 가사 8종, 고문서 12종, 서적 18종, 판목 2종이다. 이중 가사 8종은 동학가사에 포함되지 않고 별도로 존재한다.
『동학교서(東學敎書)』는 대개 동학의 경서와 가사를 합칭할 때 흔히 사용된 명칭이지만, 이 책은 단독서적이다. 제2권 『임하유서(林下遺書)』, 제18권 『상화대명가(相和大明歌)』와 제29권 『개명공산가(開明共産歌)』부터 제37권 『지시개명가(知時開明歌)』까지의 가사를 골고루 필사한 것으로, 경탄가, 도성가(道成歌), 지지가, 팔괘변역가(八卦變易歌), 원시가, 천리순수개명가(天理順數開明歌), 시세가(時勢歌), 텬디부부도덕가, 궁을가(弓乙歌)까지 모두 26수의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훈가사(訓家詞)』에는 『용담유사』 9편과 연원가가 수록되었고, 『지지가(知止歌)』에는 지지가와 궁을가가 수록되었다. 이외 부교주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은하구곡가』와 『남오삼월화젼가』가 있다.
고문서도 여러 점 수장되어 있는데, 『삼재감응도(三才感應圖)』, 『오방기치옹위차서(五方旗幟擁衛次序)』, 『당호(堂號)』, 『신호(信號)』, 『수교사임명장(修敎士任命狀)』, 『제문(祭文)』, 『판결(判決)』, 『사망진단서(死亡診斷書)』는 사본으로 제작되었고, 『하암선생문인록총칙(河庵先生文人錄總則)』은 연활자, 『동학취지서(東學趣旨書)』는 목판과 연활자의 2종 인본이 전래되고 있다. 『여권(旅券)』과 『해외여행허가서』는 부교주의 아들 김병탁(金秉鐸)이 1919년 군자금을 전달하기 위해 만주에 가기 위해 신청한 서류라고 한다.
『동학교법(東學敎法)』은 동학의 연원, 명칭, 목적, 종위(宗位), 의무, 교기, 교복 등이 규정되어 있는 책으로, 1922년에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연활자로 인쇄해온 것이다. 교주 직계의 족보 발췌본인 『경주김씨세계(慶州金氏世系)』와 『경주김덕룡세계(慶州金德龍世系)』도 있다. 교리를 밝힌 『취지(趣旨)』, 『기망(記忘)』, 『교기원본(敎旗源本)』, 『훈경(訓敬)』과 『경훈(敬訓)』이 있으며, 수운선생의 전기인 『대선생연원사(大先生沿革史)』도 있다. 이외는 교당의 기록류이다.
기타 서적 가운데 가장 방대한 서적은 『부교주일기(副敎主日記)』로 현재 17책이 전래되고 있다. 일기마다 다양하게 표기되어 있고 통일된 서명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동학일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기의 주체가 분명한 이상 불분명한 명칭보다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부교주의 일기는 1890년(고종 27)부터 1943년까지에 기록된 것으로 사실상 상주 동학교당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일기(日記;庚申六月日)』에는 국한문 혼용체의 『서정일록(西征日錄)』이 권말에 별편으로 부기되어 있는데, 동학교 설립문제로 경성을 다녀온 여행일지이다. 이를 통해 동학교당의 설립에 대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 부교주일기의 서명이나 권차에 일련번호가 없는 상태에서 25년분의 일기가 망실되었기 때문에, 전체 책수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김락세 부교주 일기 목록
한편 『동학교적(東學敎籍)』 2책은 교인의 명부이다. 여기에는 교인의 성명, 본관, 생년월일, 수교년월(受敎年月), 도호(道號), 종위(宗位), 주소, 천주(薦主) 등이 필사되어 있다. 이는 1943년 10월 조선총독부가 서적과 집기 등을 압수하고 핵심신도를 체포했을 때 압수되었던 서적이다. 광복 후 압수당한 물품들을 상주경찰서에서 회수하였으나, 원래 총 6책의 『동학교적』은 이때 4책이 분실되고 2책만 남았다. 실제로 경서나 가사의 판권지에 등재주무자로 기록된 사람 중 상당수가 『동학교적』에는 보이지 않는다. 편찬시기를 알 수 없어서, 1943년을 필사시기의 하한으로 생각할 수 있다.
동학교적
총서에 포함되지 않은 서적, 고문서와 가사는 대개 필사본이다. 다만 『동학교법』은 연활자로 간행되었고, 『동학취지서(東學趣旨書)』는 연활자와 목판으로 간행되어 2종의 간본이 전래되고 있다. 『동학취지서』는 단면인쇄물로서 『예장(禮張)』과 앞뒤에 판각된 판목 1판도 전래되고 있다. 이외에 『신장(信狀)』의 판목도 전래되어 2종 2판이 전래되고 있다. 『동학일기』를 포함한 기타 서적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서적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 인쇄술이다. 인쇄용구는 기록물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불가결한 요소로서 기록물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상주의 동학교당에서도 교인의 수가 증가하자 필사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원거리 지역의 교인에게 전파하기 위해서는 강론 외에 단면인쇄물, 경서와 가사의 인쇄물을 전달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에 경서와 가사를 인출하기 시작하였는데, 대개 목판인쇄를 활용하였다. 목판인쇄는 판각하는데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만, 일단 각판한 후는 필요에 따라 시기와 양을 조절하면서 장기간 인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동학교당에는 일제 강점기의 탄압과 광복 후 교단의 해체로 인쇄용구가 망실되기도 하였지만, 일부는 남아있다. 그 유물은 책판, 목활자, 판각 또는 활자 제작용구, 조판용구, 인출용구, 제책용구 등이다.
동학교당의 판목은 65종 793판이 전래되고 있다. 경서의 판목은 7종 82판, 한글가사의 판목은 27종 355판, 국한문가사의 판목은 29종 354판이다. 책판의 규격(마구리 포함)은 45~47(廣)×24.8~31(高)×1.5~3(幅)cm의 범위에 속해,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규격의 범위에 속하는 것이다. 『챵도가』, 『어부사』, 『년시가』, 『송구영신가』, 『운산시호가(運算時呼歌)』 등에 일부 뒤틀리거나, 판면의 중앙이 불룩 솟아오른 배불룩 현상이 있고, 부분적으로 균열된 책판도 있지만, 현존하는 책판은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목활자는 한자활자(대활자 7009자, 중활자 232자, 소활자)와 한글활자(대자, 중자, 소자)가 전래되고 있다.
판각 또는 활자제작 용구는 목판받침대, 조판재료함, 각판대, 목활자 재료제작대, 활자 작두, 조판용구는 粉板, 조판대, 조판틀, 조판소도구함이 남아있고, 인출용구로는 먹물단지, 먹물주걱, 먹솔, 인체(印髢), 궁굴대, 제책용구로는 題簽版, 版權版, 卍紋菱花版 2판, 뺀대돌 2개, 실꼬는 틀, 제책대, 제책용 망치 등 각종 인쇄용구가 전승되어 있다. 이외 문서의 효력을 발생시키기 위한 용도인 것으로 보이는 인장도 남아있다.
(5) 복식
복식(服飾)의 소장 현황을 살펴보면, 우선 미성년 일반 교인들이 헌성식(獻誠式) 때에 두루마기 위에 주로 걸쳐 입는 전복의 경우, 하늘색 무명 전복이 3점, 청색 갑사 전복이 1점, 청색 명주 전복이 4점 등 8점이, 성년 일반 교인들이 헌성식 때에 입는 학창의는 청색 명주로 만든 4점이 소장되어 있다. 오색예복 원삼과 받침예복은 각기 5점씩 소장되어 있는데 오색예복 원삼은 법의로서 제일 겉옷이며 오색으로 청의, 적의, 황의, 백의, 흑의가 있으며 받침복의 색과 상생을 고려하여 입는다. 소매도 5등분으로 되어 있는데 그 역시 상생 관계에 따르고 있다. 오색관은 오색예복과 함께 사용되는 삼층예관으로서 갑사로 만든 것인데 오색으로 청관, 적관, 황관, 백관, 흑관이 있으며 오색원삼의 색에 맞추어 쓴다. 전면에는 아자와 팔괘가 수놓아져 있으며, 후면에는 절후에 따른 상괘와 하괘가 수놓아져 있다. 전후 수(繡)의 색은 관(冠) 색과의 상생을 고려하여 수놓아져 있는데, 적관의 경우 전면의 수는 황색으로 후면의 수는 청색으로 수놓아져 있다. 그리고 오색광 아래 받쳐 쓰는 유건과 망건이 있는데 유건으로는 흑색 망사 유건 2점과 흑색 삼베 유건 2점이, 망건으로는 오색(五色)에 따라 청망건, 적망건, 황망건, 백망건, 흑망건 5점이 소장되어 있으며 망건은 상생의 원리에 의거하여 오색관의 색에 맞추어 쓰게 되어 있다. 그리고 신호(信號 )및 당호, 공문이나 편지, 통문(通文) 등을 수발하는데 사용되었던 휴대용 가방이라 할 수 있는 거랑주머니는 2점이 소장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기타 유물의 소장 현황을 살펴보면, 교기의 경우는 헌성식 때에 실외기(室外旗)로 사용되는 오룡기(五龍旗)는 청룡기, 황룡기, 적룡기, 백룡기, 흑룡기 등 5기가 소장되어 있는데 재질은 무명이고 기폭은 가로 88cm, 세로 121cm이고 오룡기의 바탕 색깔은 오행(五行) 상생(相生)의 원리에 입각하여, 청룡기의 바탕은 흑색, 황룡기의 바탕은 적색, 적룡기의 바탕은 청색, 백룡기의 바탕은 황색, 흑룡기의 바탕은 백색으로 되어 있다. 헌성식 때, 실내기(室內旗)로 쓰이는 오행기(五行旗)는 청기(靑旗), 황기(黃旗), 적기(赤旗), 백기(白旗), 흑기(黑旗) 등 5기가 현존하고 있는데, 청기와 적기에는 가운데 아자(亞字) 주위에 팔괘를 그렸고 황기, 백기, 흑기에는 아자 주위에 선천팔괘도(先天八卦圖)를 그렸다. 아자(亞字) 주(籌)의 색깔은 오행 상생의 원리에 따라 청기에는 흑색, 황기에는 적색, 적기에는 청색, 백기에는 황색, 흑기에는 백색으로 되어 있다. 재질은 무명이고 기폭은 가로 66.5cm, 가로 37cm이다. 효행기는 3점이 전하고 있는데 재질은 역시 무명이고 기폭은 가로 90.5cm, 세로 44cm이다. 상주 동학이 수운 최제우 선생으로부터 연원되고 그 도통(道統)이 승계되었음을 천명하는 깃발인 연원기(淵源旗)는 가로 66cm, 세로 36cm로서 재질은 무명이고 대기(大旗)는 가로 66cm, 세로 37cm이며 재질은 무명이고 색깔은 청색이다. 이상의 교기들은 보관상태가 양호하다. 동학교기(東學敎旗)는 바탕색은 녹색이고 역시 무명으로 되어 있으며 기폭은 가로 180cm, 세로 151cm이다. 동학교의 상징기로서 자주 사용했기 때문에 많이 낡아서 근자에 새로 개체하였다. 기두(旗頭)는 호형(虎形), 우형(牛形), 학형(鶴形), 용형(龍形), 봉형(鳳形), 황형(凰形), 연형(燕形) 등 7종으로 되어 있는데 호형, 우형, 학형, 황형은 五行에 따른 5종씩 20점, 용형은 6점, 봉형은 26점, 연형은 1점이 소장되어 있다.
인장(印章)의 경우는, 상주 동학교 내의 직인, 교주와 부교주의 장서인 및 절기 괘상을 표시하는 팔괘인(八卦印) 등이 있다. 직인으로는 상주 동학교의 공식 직인인 남접도주지장(南接道主之章)과 안동지부에서 주로 사용하던 동학지부지장(東學支部之章), 용담연원을 확인하는 용담연원지장(龍潭淵源之章), 상주 동학교주의 인장인 청림궁을신장(靑林弓乙信章), 상주 동학교에 입교하는 교인에게 주는 신장(信張)이나 예장(禮張)에 찍는 도덕군자시중도인(道德君子時中圖印) 등이, 장서인으로는 교주 김주희 선생의 삼풍장(三豊章), 부교주 김낙세 선생의 하암장(河庵章)이 전하고 있으며 팔괘인은 상괘와 하괘 사이에 아자(亞字) 주(籌)를 양면에 새겨놓은 것으로 6종 6개가 소장되어 있다.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과 상주 동학 문화재단이름으로 상주동학교당에 보간 중인 자료 설명을 재정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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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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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항 ; 필자는 황토현 동학혁명기념관내의 자료 전시 경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명시된 時警歌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아서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의 운영관리자인 김 용천이 지금까지 공개된 자료들을 종합 재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게재함을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아래에 기술된 내용은,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이 간행한 자료와 상주 동학 문화재단이름으로 상주동학 박물관에 보관중인 자료들의 설명을 재정리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김 용천 심고
1979년에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이 간행한, 『가사문학대계-동학가사 Ⅰ.Ⅱ-』에 의하면, 작자와 저작연대가 미상인 동학 가사(東學歌辭)로 목판본이다. 1944년 경상북도 상주의 동학 본부에서 간행된 ≪용담유사 龍潭遺詞≫ 권38에 수록되어 있다. 작자는 김주희(金周熙)라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김주희가 죽은 뒤 간행된 이 작품의 판권란에는 ‘저작 겸 발행인 김주희’가 빠지고 등재 주무자(登梓主務者) 이름만 올라 있다.
이 작품은 <시경가>와 <수신가 修身歌> 2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편 모두 율조 4·4조를 주조로 한 4 음보격으로 되어 있다. 내용과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시경가>는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총 623행의 장편 가사인데, 그 내용은 선천회복(先天回復)의 시운이 돌았으니 모두 수도에 힘써 천시(天時)를 기다리라고 경계, 교훈한 것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먼저 목덕(木德)이 흥왕하는 좋은 운세가 돌아왔다고 읊은 다음, 아직 약자인 꿩이 강자인 매에게 쫓기는 불운한 때라고 하였다. 그러나 멀지 않아 천지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매의 운수가 다하고 꿩의 운수가 회복될 것이므로, 사람들은 모두 ‘하늘지식’과 ‘하늘조화’를 믿고 경천순천(敬天順天)해 수도에 힘쓰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태고순풍(太古淳風)의 요순 세계를 이루어 보자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표현상의 서민성(庶民性) 외에도 특히 약자인 자신들을 매에게 쫓기어 올 데 갈 데 없이 된 절박한 꿩의 신세에 비유해 묘사하고 있는 점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교세(敎勢)의 흐름을 여실하게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수신가>도 역시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총 199행으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조선 후기 가사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내용 역시 경천순천해 만사지인(萬事知人)이 되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시운이 어떻게 변하는지 깨닫도록 강조하고, 도각 선생(道覺先生)을 만나서 가르침을 받으라고 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동국참서 東國讖書≫의 여러 구절을 해명하고 있다. 곧, 이재송송(利在松松), 십승지지(十勝之地), 이재궁궁(利在弓弓) 등의 내용을 설명하고 하늘을 부모로 알고 섬기라고 하였다. 가사의 표현 수법이나 내용의 일부가 최제우가 지은 ≪용담유사≫를 본받은 것이 많다. 그런데 참서에서 흔히 말하는 구절들이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이해에 혼란을 많이 주고 있다고 해서, 이들을 가사로 풀이해 놓은 점은 이 가사의 특이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또, 이 가사의 내용과 발간 연대인 1944년은 시대적으로 서로 걸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러한 가사가 독자들에게 수용되고 있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상주 동학 문화재단이름으로 상주동학교당에는 현재까지 전적 135종, 책판 65종 793판이 전승되어 오고 있다. 이외에 이외 인쇄용구 30종 102점, 인장 6종 17점이 함께 전하고 있다. 전적(典籍)은 수장서적의 목록 1종, 경서 11종, 가사 87종, 기타 서적 17종, 고문서 19종인데, 동학경서(東學經書), 동학가사(東學歌辭), 고문서(古文書), 기타(其他) 전적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책판은 경서책판 7종 82판, 가사(한글본) 27종 355판, 가사(국한문혼용) 29종 354판, 기타 책판 2종 2판이 남아 있다. 복식에는 오색예복(五色禮服) 받침복, 오색예복 원삼(圓衫), 전복(典服), 학창의(鶴氅衣), 오색관(五色冠), 유건(儒巾), 오색망건(五色網巾), 휴대용 거랑주머니 등이 있으며, 기타 유물로는 교기(敎旗), 인장(印章), 민구(民具), 인쇄용구(印刷用具) 등이 있다.
(1) 전적(典籍)
① 동학경전
상주동학교당에는 그곳에서 저작한 경서와 가사를 수록한 목록 『동경대전총목록(東經大全總目錄)』이 전래되고 있다. 이것은 당시 동학교당에서 편찬한 서적의 현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 같은 내용이 수록된 목록인 『총목(總目)』도 전래된다. 이는 『동경대전총목록』의 전사본(轉寫本)으로, 내용은 앞의 『동경대전총목록』과 동일하다. 『총목』는 『동학가사』 권38 『시경가』까지 수록되었으나, 이 뒤는 추가로 기록하지 않았다. 전후 사정을 살펴볼 때, 이 목록은 『시경가』가 간행된 1951년 『동경대전총목록』이 추록된 후 이를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상주동학교당에서 발간한 경서는 동학의 교리가 수록된 10종의 총서이다. 여기에는 기존 수운 최제우가 동학을 창도하면서 만들어 전래한 것도 있고, 김주희의 동학교에서 새로 저작한 것도 있다. 전래되는 동학경서의 사본은 『동경대전(東經大全)』 2종, 『궁을경(弓乙經)』 2종과 『축식(祝式)』이 있다. 『동경대전』은 수운 최제우가 1860년(철종 11) 4월 5일 무극대도(無極大道)를 창도한 후부터 1864년(고종 1) 2월까지 집필한 것들을 모은 것이다. 내용은 <포덕문(布德文)>, <수덕문(修德文)>, <논학문(論學文)>, <불연기연(不然其然)> 4편과 <좌잠(座箴)>, <탄도유심급(歎道儒心急)>, <전후팔절(前後八節)> 등 여러 시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궁을경』은 수운의 말씀을 부연해서 체계적으로 파악한 것이고, 나머지 경서는 교리를 부연 확장시킨 것이다. 『축식』은 헌성편(獻誠篇), 혼례편(婚禮篇), 상례편(喪禮篇), 제례편(祭禮篇), 잡기편(雜記篇)으로 구성되었는데, 여러 의식에 사용하는 축문의 양식을 수록한 것이다.
부교주가 쓴 사본 『동경대전』과 하암(河庵)의 장서인이 있는 석판본 『동경대전』은 부교주 김낙세의 구장본으로 보인다. 1909년에 목활자로 간행된 『교정경(敎正經)』에는 “孔夫子誕降二千四百六十年己酉”란 간기가 있고, 판권지는 따로 없다. 이는 동학교당이 건립되기 이전의 서적이므로 경천교시대의 서적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경서류는 목판, 목활자, 석판, 연활자를 활용하여 간행하였다. 목활자본 5종은 『교정경』, 『도정경(道正經)』, 『도수경(道修經)』, 『성경(聖經)』, 『축식(祝式)』이다. 『교정경』은 1909년에 간행하였는데, 다른 목활자본과는 활자체가 다르다. 『도정경』과 『도수경』은 조판체제가 유사하고 1924년 인출본과도 상이하므로, 『도정경』과 『도수경』도 1924년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교정경』, 『도정경』, 『도수경』이 합편된 『성경』 1924년에 인출되었다. 이들 세 서적의 활자는 동일 활자가 사용되었으나 이전 간본의 활자와는 다르다. 『축식』은 또 다른 활자로 인출되었다. 『동경대전총목록』을 제외한 동학경서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상주동학교당의 東學經書
② 동학가사
동학교당에서는 동학의 사상과 종교적 교리를 쉽게 기억하고 편리하게 전파할 수 있도록, 동학 경전의 내용을 토대로 가사로 만들어 전파시켰다. 이 동학가사를 40종의 총서로 만들었는데, 가사는 원칙적으로 한글본과 국한문본이 함께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식자층을 위한 국한문본과 서민을 위한 한글본을 동시에 제작한 것으로 동학의 평등적 이상을 실현한 것으로 보인다.
동학가사는 ‘용담유사(龍潭遺事)’라는 동일한 이름 아해 권차(卷次)를 붙여 하나의 총서로 만든 것이다. 제1권에는 수운 최제우가 지은 용담가 ‧ 안심가 ‧ 교훈가 ‧ 몽중노소문답가 ‧ 도수사 ‧ 권학가 ‧ 도덕가 ‧ 흥비가의 한글가사 8편을 수록하였다. 저자는 김주희라 기록되어 있는데, 상주동학교당의 동학가사는 거의 모든 책의 판권지에는 김주희 개인의 창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김주희 개인의 창작뿐만 아니라 동학교당의 핵심 교인이 창작하고 전승한 가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 학가사는 경서의 간행이 대부분 마무리될 무렵인 1929년부터 1932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간행되었다. 당시는 일제 강점기여서 서적을 간행하기 위해서는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동학교당에서 이들 서적을 일시에 판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판각해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국한문분과 한글본으로 나누어 표로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 국한문본
국한문본은 대개 1929-1932년에 간행되었으나, 최후에 간행된 서적은 1951년에 간행된 제39권 『불역(不易)』이다. 전래되는 동학가사 가운데 제1 『龍潭遺事』, 제3 『昌德歌』, 제7 『內修道』, 제11 『心學歌』, 제38 『時警歌』, 제40 『東學本義』 국한문본의 목판본이 전래되지 않고 한글본만 전래된다. 국한문본의 동학가사는 아래와 같다.
㉡ 한글본
사본이건 목판본이건 한글본 동학가사가 전래되지 않는 것은 제4권 『허중유실가(虛中有實歌)』, 제39권 『불역(不易)』, 제40권 『동학본의(東學本義)』의 3종이다. 가사는 목판으로만 간행되었는데, 한글본 가사 가운데 가장 먼저 간행된 것은 1920년에 간행된 『경운가』와 1925년에 간행된 『창덕가』이다. 또 마지막 간본은 1951년에 간행된 제38권 『시경가』. 제34권 『궁을십승가』 경우 국한문본은 『궁을도덕가(弓乙道德歌)』라 하여 한글본과 국한문본의 제명이 다르다. 목록을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3) 기타 서적
동학경전과 동학가사를 제외한 서적은 양적으로는 많지 않지만 다양한 내용들의 서적이 전래되고 있다. 가사 8종, 고문서 12종, 서적 18종, 판목 2종이다. 이중 가사 8종은 동학가사에 포함되지 않고 별도로 존재한다.
『동학교서(東學敎書)』는 대개 동학의 경서와 가사를 합칭할 때 흔히 사용된 명칭이지만, 이 책은 단독서적이다. 제2권 『임하유서(林下遺書)』, 제18권 『상화대명가(相和大明歌)』와 제29권 『개명공산가(開明共産歌)』부터 제37권 『지시개명가(知時開明歌)』까지의 가사를 골고루 필사한 것으로, 경탄가, 도성가(道成歌), 지지가, 팔괘변역가(八卦變易歌), 원시가, 천리순수개명가(天理順數開明歌), 시세가(時勢歌), 텬디부부도덕가, 궁을가(弓乙歌)까지 모두 26수의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훈가사(訓家詞)』에는 『용담유사』 9편과 연원가가 수록되었고, 『지지가(知止歌)』에는 지지가와 궁을가가 수록되었다. 이외 부교주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은하구곡가』와 『남오삼월화젼가』가 있다.
고문서도 여러 점 수장되어 있는데, 『삼재감응도(三才感應圖)』, 『오방기치옹위차서(五方旗幟擁衛次序)』, 『당호(堂號)』, 『신호(信號)』, 『수교사임명장(修敎士任命狀)』, 『제문(祭文)』, 『판결(判決)』, 『사망진단서(死亡診斷書)』는 사본으로 제작되었고, 『하암선생문인록총칙(河庵先生文人錄總則)』은 연활자, 『동학취지서(東學趣旨書)』는 목판과 연활자의 2종 인본이 전래되고 있다. 『여권(旅券)』과 『해외여행허가서』는 부교주의 아들 김병탁(金秉鐸)이 1919년 군자금을 전달하기 위해 만주에 가기 위해 신청한 서류라고 한다.
『동학교법(東學敎法)』은 동학의 연원, 명칭, 목적, 종위(宗位), 의무, 교기, 교복 등이 규정되어 있는 책으로, 1922년에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연활자로 인쇄해온 것이다. 교주 직계의 족보 발췌본인 『경주김씨세계(慶州金氏世系)』와 『경주김덕룡세계(慶州金德龍世系)』도 있다. 교리를 밝힌 『취지(趣旨)』, 『기망(記忘)』, 『교기원본(敎旗源本)』, 『훈경(訓敬)』과 『경훈(敬訓)』이 있으며, 수운선생의 전기인 『대선생연원사(大先生沿革史)』도 있다. 이외는 교당의 기록류이다.
기타 서적 가운데 가장 방대한 서적은 『부교주일기(副敎主日記)』로 현재 17책이 전래되고 있다. 일기마다 다양하게 표기되어 있고 통일된 서명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동학일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기의 주체가 분명한 이상 불분명한 명칭보다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부교주의 일기는 1890년(고종 27)부터 1943년까지에 기록된 것으로 사실상 상주 동학교당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일기(日記;庚申六月日)』에는 국한문 혼용체의 『서정일록(西征日錄)』이 권말에 별편으로 부기되어 있는데, 동학교 설립문제로 경성을 다녀온 여행일지이다. 이를 통해 동학교당의 설립에 대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 부교주일기의 서명이나 권차에 일련번호가 없는 상태에서 25년분의 일기가 망실되었기 때문에, 전체 책수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김락세 부교주 일기 목록
한편 『동학교적(東學敎籍)』 2책은 교인의 명부이다. 여기에는 교인의 성명, 본관, 생년월일, 수교년월(受敎年月), 도호(道號), 종위(宗位), 주소, 천주(薦主) 등이 필사되어 있다. 이는 1943년 10월 조선총독부가 서적과 집기 등을 압수하고 핵심신도를 체포했을 때 압수되었던 서적이다. 광복 후 압수당한 물품들을 상주경찰서에서 회수하였으나, 원래 총 6책의 『동학교적』은 이때 4책이 분실되고 2책만 남았다. 실제로 경서나 가사의 판권지에 등재주무자로 기록된 사람 중 상당수가 『동학교적』에는 보이지 않는다. 편찬시기를 알 수 없어서, 1943년을 필사시기의 하한으로 생각할 수 있다.
동학교적
총서에 포함되지 않은 서적, 고문서와 가사는 대개 필사본이다. 다만 『동학교법』은 연활자로 간행되었고, 『동학취지서(東學趣旨書)』는 연활자와 목판으로 간행되어 2종의 간본이 전래되고 있다. 『동학취지서』는 단면인쇄물로서 『예장(禮張)』과 앞뒤에 판각된 판목 1판도 전래되고 있다. 이외에 『신장(信狀)』의 판목도 전래되어 2종 2판이 전래되고 있다. 『동학일기』를 포함한 기타 서적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서적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 인쇄술이다. 인쇄용구는 기록물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불가결한 요소로서 기록물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상주의 동학교당에서도 교인의 수가 증가하자 필사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원거리 지역의 교인에게 전파하기 위해서는 강론 외에 단면인쇄물, 경서와 가사의 인쇄물을 전달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에 경서와 가사를 인출하기 시작하였는데, 대개 목판인쇄를 활용하였다. 목판인쇄는 판각하는데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만, 일단 각판한 후는 필요에 따라 시기와 양을 조절하면서 장기간 인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동학교당에는 일제 강점기의 탄압과 광복 후 교단의 해체로 인쇄용구가 망실되기도 하였지만, 일부는 남아있다. 그 유물은 책판, 목활자, 판각 또는 활자 제작용구, 조판용구, 인출용구, 제책용구 등이다.
동학교당의 판목은 65종 793판이 전래되고 있다. 경서의 판목은 7종 82판, 한글가사의 판목은 27종 355판, 국한문가사의 판목은 29종 354판이다. 책판의 규격(마구리 포함)은 45~47(廣)×24.8~31(高)×1.5~3(幅)cm의 범위에 속해,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규격의 범위에 속하는 것이다. 『챵도가』, 『어부사』, 『년시가』, 『송구영신가』, 『운산시호가(運算時呼歌)』 등에 일부 뒤틀리거나, 판면의 중앙이 불룩 솟아오른 배불룩 현상이 있고, 부분적으로 균열된 책판도 있지만, 현존하는 책판은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목활자는 한자활자(대활자 7009자, 중활자 232자, 소활자)와 한글활자(대자, 중자, 소자)가 전래되고 있다.
판각 또는 활자제작 용구는 목판받침대, 조판재료함, 각판대, 목활자 재료제작대, 활자 작두, 조판용구는 粉板, 조판대, 조판틀, 조판소도구함이 남아있고, 인출용구로는 먹물단지, 먹물주걱, 먹솔, 인체(印髢), 궁굴대, 제책용구로는 題簽版, 版權版, 卍紋菱花版 2판, 뺀대돌 2개, 실꼬는 틀, 제책대, 제책용 망치 등 각종 인쇄용구가 전승되어 있다. 이외 문서의 효력을 발생시키기 위한 용도인 것으로 보이는 인장도 남아있다.
(5) 복식
복식(服飾)의 소장 현황을 살펴보면, 우선 미성년 일반 교인들이 헌성식(獻誠式) 때에 두루마기 위에 주로 걸쳐 입는 전복의 경우, 하늘색 무명 전복이 3점, 청색 갑사 전복이 1점, 청색 명주 전복이 4점 등 8점이, 성년 일반 교인들이 헌성식 때에 입는 학창의는 청색 명주로 만든 4점이 소장되어 있다. 오색예복 원삼과 받침예복은 각기 5점씩 소장되어 있는데 오색예복 원삼은 법의로서 제일 겉옷이며 오색으로 청의, 적의, 황의, 백의, 흑의가 있으며 받침복의 색과 상생을 고려하여 입는다. 소매도 5등분으로 되어 있는데 그 역시 상생 관계에 따르고 있다. 오색관은 오색예복과 함께 사용되는 삼층예관으로서 갑사로 만든 것인데 오색으로 청관, 적관, 황관, 백관, 흑관이 있으며 오색원삼의 색에 맞추어 쓴다. 전면에는 아자와 팔괘가 수놓아져 있으며, 후면에는 절후에 따른 상괘와 하괘가 수놓아져 있다. 전후 수(繡)의 색은 관(冠) 색과의 상생을 고려하여 수놓아져 있는데, 적관의 경우 전면의 수는 황색으로 후면의 수는 청색으로 수놓아져 있다. 그리고 오색광 아래 받쳐 쓰는 유건과 망건이 있는데 유건으로는 흑색 망사 유건 2점과 흑색 삼베 유건 2점이, 망건으로는 오색(五色)에 따라 청망건, 적망건, 황망건, 백망건, 흑망건 5점이 소장되어 있으며 망건은 상생의 원리에 의거하여 오색관의 색에 맞추어 쓰게 되어 있다. 그리고 신호(信號 )및 당호, 공문이나 편지, 통문(通文) 등을 수발하는데 사용되었던 휴대용 가방이라 할 수 있는 거랑주머니는 2점이 소장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기타 유물의 소장 현황을 살펴보면, 교기의 경우는 헌성식 때에 실외기(室外旗)로 사용되는 오룡기(五龍旗)는 청룡기, 황룡기, 적룡기, 백룡기, 흑룡기 등 5기가 소장되어 있는데 재질은 무명이고 기폭은 가로 88cm, 세로 121cm이고 오룡기의 바탕 색깔은 오행(五行) 상생(相生)의 원리에 입각하여, 청룡기의 바탕은 흑색, 황룡기의 바탕은 적색, 적룡기의 바탕은 청색, 백룡기의 바탕은 황색, 흑룡기의 바탕은 백색으로 되어 있다. 헌성식 때, 실내기(室內旗)로 쓰이는 오행기(五行旗)는 청기(靑旗), 황기(黃旗), 적기(赤旗), 백기(白旗), 흑기(黑旗) 등 5기가 현존하고 있는데, 청기와 적기에는 가운데 아자(亞字) 주위에 팔괘를 그렸고 황기, 백기, 흑기에는 아자 주위에 선천팔괘도(先天八卦圖)를 그렸다. 아자(亞字) 주(籌)의 색깔은 오행 상생의 원리에 따라 청기에는 흑색, 황기에는 적색, 적기에는 청색, 백기에는 황색, 흑기에는 백색으로 되어 있다. 재질은 무명이고 기폭은 가로 66.5cm, 가로 37cm이다. 효행기는 3점이 전하고 있는데 재질은 역시 무명이고 기폭은 가로 90.5cm, 세로 44cm이다. 상주 동학이 수운 최제우 선생으로부터 연원되고 그 도통(道統)이 승계되었음을 천명하는 깃발인 연원기(淵源旗)는 가로 66cm, 세로 36cm로서 재질은 무명이고 대기(大旗)는 가로 66cm, 세로 37cm이며 재질은 무명이고 색깔은 청색이다. 이상의 교기들은 보관상태가 양호하다. 동학교기(東學敎旗)는 바탕색은 녹색이고 역시 무명으로 되어 있으며 기폭은 가로 180cm, 세로 151cm이다. 동학교의 상징기로서 자주 사용했기 때문에 많이 낡아서 근자에 새로 개체하였다. 기두(旗頭)는 호형(虎形), 우형(牛形), 학형(鶴形), 용형(龍形), 봉형(鳳形), 황형(凰形), 연형(燕形) 등 7종으로 되어 있는데 호형, 우형, 학형, 황형은 五行에 따른 5종씩 20점, 용형은 6점, 봉형은 26점, 연형은 1점이 소장되어 있다.
인장(印章)의 경우는, 상주 동학교 내의 직인, 교주와 부교주의 장서인 및 절기 괘상을 표시하는 팔괘인(八卦印) 등이 있다. 직인으로는 상주 동학교의 공식 직인인 남접도주지장(南接道主之章)과 안동지부에서 주로 사용하던 동학지부지장(東學支部之章), 용담연원을 확인하는 용담연원지장(龍潭淵源之章), 상주 동학교주의 인장인 청림궁을신장(靑林弓乙信章), 상주 동학교에 입교하는 교인에게 주는 신장(信張)이나 예장(禮張)에 찍는 도덕군자시중도인(道德君子時中圖印) 등이, 장서인으로는 교주 김주희 선생의 삼풍장(三豊章), 부교주 김낙세 선생의 하암장(河庵章)이 전하고 있으며 팔괘인은 상괘와 하괘 사이에 아자(亞字) 주(籌)를 양면에 새겨놓은 것으로 6종 6개가 소장되어 있다.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과 상주 동학 문화재단이름으로 상주동학교당에 보간 중인 자료 설명을 재정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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