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東學之人生觀의 比較分析 硏究(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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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學之人生觀의 比較分析 硏究(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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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덕 158(2017)년 2월 25일.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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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도판 -전략-2. 死의 原理 P.263.
1972년도판 -전략-二. 死의 原理 P.132.
1968년도판 -전략-古人은 生死亦大矣라 하였다. 死는 人間의 常事임과 同時에 人間의 大事이다. 누구나 한번은 다 죽는 다는것으로 보면 通常 尋常 元常의 常事로 볼수 있으나 地球를 주어도 바꾸지 않겠다는 個性生命이 死의 境涯에서 破滅된다는 點으로 보면 死는 大宇宙의 大悲壯이다. PP.263-264.
1972년도판 -전략-古人은 生死亦大事矣라 하였다. 死는 人間의 常事임과 동시에 인간의 大事이다. 누구나 한번은 다 죽는 것으로 보면 通常 尋常 元常의 常事로 볼수 있으나 地球를 주어도 바꾸지 않겠다는 個性 生命이 死의 境涯에서 파멸된다는 점으로 보면 死는 대우주의 大悲壯이다. PP.132-133.
註 00 ; 生死亦大事矣 - 內篇/ 莊子語錄 中에 있는 語句이다.
生死亦大矣 而不得與之變 雖天地覆墜 亦將不與之遺.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살고 죽는 것 역시 매우 중대한 것이지만, 살고 죽는다는 것일 뿐, 그런 변화와 함께 변하는 것은 없다. 하늘과 땅이 다 뒤집어 지고 꺼진다 해도 모든 것이 다 함께 떨어져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 眞人 - 道敎와 佛敎에서 말하는 眞人이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말한다.
古之眞人 知者不得說 美人不得濫 盜人不得劫 伏戲黃帝不得友 死生亦大矣 而無變乎己 況爵祿乎라고 설명했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아주 먼 옛날에 살고 있었던 어느 진인을, 지식을 많이 갖춘 사람도 그 진인을 설득하지 못 하였고, 아름다운 여인도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지 못했다. 어느 날 무서운 도둑도 그를 위협하여 아무것도 빼앗아 가지 못하였고, 그 유명한 복희씨도 황제도 그를 친구로 삼지 못했다. 죽음과 삶이 매우 중대한 일이지만, 그를 변화시키지 못하였다. 하물며 그에게 官爵과 福祿을 주어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절대로 마음이 움직이거나 변하지 않는다.
1968년도판 -전략-死는 도리어 究極의 法悅을 느낄 큰 機會다. 그러므로 死도 無餘涅槃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無意識的으로 當하는 것은 死의 刹那에 至할 때까지 苦의 業因을 쌓게되는 不幸이 있으므로 사람은 生前에 八正道를 覺에 이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有餘涅槃이다. P.264./ 이 문장은 添削與否를 대조하기보다는 불교에 대한 이해를 위한 용어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하여 拔萃하였음.
1972년도판 -전략-死는 도리어 究極의 法悅을 느낄 큰 機會다. 그러므로 死도 無餘涅槃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당하는 것은 死의 刹那에 이를 때까지 苦의 業因을 쌓게 되는 不幸이 있으므로 사람은 생전에 八正道를 通하여 覺에 이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有餘涅槃이다. P.134.
註 00 ; 法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으로 듣고 진리를 깨달아 마음속에 일어나는 기쁨이나 환희를 의미한다./유의어는 법열감(法悅感), 법희(法喜).
註 00 ; 涅槃 -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를 의미한다.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유의어는 감로성(甘露城), 대적정(大寂定), 멸도(滅度).
註 00 ; 無餘涅槃과 有餘涅槃 - 불교 용어들로서 無餘涅槃은 모든 번뇌가 끊기고 육신까지 사라진 후 얻어지는 평온의 경지 곧 죽은 후에 들어간다는 열반을 의미하고, 有餘涅槃은 자기의 수행으로 이승의 번뇌는 끊었으나, 아직도 과거의 업보로 받은 신체가 멸하지 못한 열반을 말한다. 열반에 드신다는 것은 오불동도(五佛同道)의 의식(儀式)이다 .조금 다른 해석으로는 열반에는 무여(無餘)와 유여(有餘)의 두 가지가 있다.
유여란 소승의 교로 미혹 번뇌는 끊었으나,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보살행으로 많은 사람을 가르쳐 인도할만한 힘을 갖추지 못한 깨달음을 유여열반이라 한다. 무여란 대승의 교로 자기가 깨닫는 동시에 다른 사람까지도 가르쳐 인도하는 힘이 갖추어진 각행원만(覺行圓滿)을 말한다. 그러니까 유여열반에서 점진적으로 무여열반으로 들어가서 세상을 위해 노력하다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마치 나무가 다 타서 불이 꺼지듯, 아무런 고통도 아무런 고민도 없이 자연스럽게 「큰 하나」에 되돌아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각종 백과사전과 관련 자료들에서 종합정리.
註 00 ; 五佛同道의 儀式 -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오직 보살만을 교화하시기 때문에,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지혜로써 본 실상을 가르쳐서, 그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부처님이 되는 오직 하나의 길(一佛乘)만을 가르치니 달리 제2나 제3의 길은 없느니라.`라고 하시고 또한 `모든 시방세계의 부처님들(諸佛)과 과거에 출현하셨던 여러 부처님들(過去佛)과 미래에 출현하실 많은 부처님들(未來佛)과 현재에도 이 우주의 한량없는 백천만억의 불국토(佛國土)에 계시는 여러 부처님 세존들(現在佛)과 나(釋迦牟尼佛)는 모두 여러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가지가지의 탐욕과 집착을 알기 때문에, 중생의 성품에 따라서 가지가지 과거의 사연과 비유와 이론적인 이야기와 교묘한 방편력을 가지고 그들을 위하여 가르침을 설하느니라.`라고 하시고 `이러한 것은 모두 최고의 지혜인 일체종지를 얻게 하기 위한 가르침, 즉 불승(佛乘)으로 이 우주(시방세계) 가운데는 진리가 둘이 있을 수 없을진대, 하물며 어찌 세 가지의 가르침이 있겠는가.`라고 밝히셨다.
이처럼 방편에 의한 가르침은 석가모니부처님만의 교화 방법이 아니라 모든 부처님의 교화방법이요 작법(作法)이다. 과거세(過去世)에 나오셨던 부처님이나, 현재 시방국토에 나타나 계신 부처님이나 미래에 나오실 부처님이나, 부처님으로서의 의식(儀式, 교화방법)은 다 같다. 이것을 "오불동도(五佛同道)의 의식(儀式)"이라고 하는데 오불(五佛)이란, 총제불(總諸佛), 과거불(過去佛), 현재불(現在佛), 미래불(未來佛), 및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말하는 것이다./ 각종 백과사전과 관련 자료들에서 종합정리.
註 00 ; 八正道(영). The Noble Eightfold Path. (산). Aṣṭāṅgikamarga/ Atthangika-magga/(팔리어) Ariyo atthangiko magga) - 인도 베나레스(또는 바라나시) 근처의 녹야원에서 석가모니가 최초의 설법에서 가르친 교리로 사성제의 4번째 진리에 해당하며, 사성제와 함께 불교의 가르침 전체를 총괄한다.
유물론자들의 감각적 쾌락과 고행주의자들의 고행이라는 양 극단을 떠난 길을 제시하므로 중도라고도 한다. 이 팔정도의 고귀한 길을 따르는 사람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부분인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져 궁극적으로는 열반, 즉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불교의 몇몇 교설에서는 팔정도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열반의 체험을 의미한다고까지 말한다.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수행의 올바른 여덟 가지 길인 팔정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정견(正見):올바른 이해로서, 존재의 본질에 대하여 사성제로 설해지는 불교적 진리관을 확신하는 것이다. ② 정사유(正思惟):정견에 따라 철저히 실천하겠다는 각오이다. ③ 정어(正語):거짓말, 중상하는 말, 모욕하는 말 따위를 삼가하는 것이다. ④ 정업(正業),:생명을 해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부정한 성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⑤ 정명(正命):불교의 가르침에 부응하지 않는 직업은 택하지 않는 것이다. ⑥ 정정진(正精進):나쁜 마음가짐을 피하고 바른 마음가짐을 계발하는 것, ⑦ 정념(正念):신체와 감정과 사고의 움직임에 대하여 깨어 있는 것이다. ⑧ 정정(正定):바르게 집중하여 명상하는 것 등등으로 팔성도(八聖道)라고도 한다. /유의어는 八聖道分, 八正法, 八聖道, 八賢聖道, 八正聖路.
1968년도판 -전략-여기에서 最後로 山上訓을 내리웠다.「나는 죽지 않는다. 生命은 짧으나 法身은 永生하는 것이다. 너희는 나를 죽을 줄 믿는가? 너희는 아직도 내 말을 믿지 읺느냐? 내가 언제 사람을 죽는다 가르치더냐? 眞實로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의 이 길은 天命이다. 너희가 取하는 行爲는 天命을 어긴 것이다. 나는 죽지 않는다. 한울님은 無極大道德」을 펴기 爲하여 無爲而化를 行하신다. 나는 都示 믿지 말고 한울님만 믿었어라. 네 몸에 모셨으니 捨根取遠하지 말고 너희는 歸家하여 나의 말을 믿으라. 이 말은 들은 모든 徒弟들은 다 先生의 奇蹟을 直接體驗한 이들이니 만큼 先生의 「나는 죽지 않는다.」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八拜 九拜의 祝禮를 들인 後 告天하고 解散하였다. 이것이 先生의 最後 山上訓으로서 不死의 眞理를 端的으로 道破한 것이다. PP.266-267.
1972년도판 -전략-여기서 최후의 山上訓을 내리셨다.「나는 죽지 않는다. 생명은 짧으나 法身은 永生하는 것이다. 내가 언제 사람을 죽는다고 가르치든가? 진실로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의 이 길은 천명이다. 너희가 취하는 행위는 천명을 어긴 것이다. 나는 죽지 않는다. 한울님은 無極大道德」大德을 펴기 위하여 無爲而化를 행하신다. 나는 都示 믿지 말고 한울님만 믿었어라. 네 몸에 모셨으니 捨根取遠하지 말고 너희는 귀가하여 나의 말을 믿으라.」 이 말은 들은 모든 徒弟들은 다 선生의 기적을 직접 체험한 이들이니 만큼 先生의 「나는 죽지 않는다.」는 말씀을 믿고 八拜九拜의 祝禮를 드린 후 告天하고 해산하였다. 이것이 선생의 최後 山上訓으로서 不死의 眞理를 端的으로 直破한 것이다. PP.138-139.
註 00 ; 위의 水雲의 逸話는, 敎史로서의 公式 記錄인 『天道敎創建史』에도 없고, 개인 기록인 오지영의 『東學史』와 창도 140년이 지난 2000년대 초에 간행된 표영삼의 『東學 Ⅰ』에도 없는 일화이다. 『東學 Ⅰ』은 간행 당시까지 발굴된 각종 자료들을 모두 활용하여 기술된 교리 교사의 기록인데 여기에서도 기록된 바가 없다. 그리고 水雲先生을 逮捕移送한 宣傳官 鄭龜龍/P.266.은 교단기록에서 사용된 이름이고, 官邊記錄에는 鄭雲龜로 되어 있다.
1968년도판 -전략-「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 吾順受天命汝高飛遠走」라 하였다. 「燈明水上無嫌隙」은「吾心卽汝心」이라는 뜻이다. 吾心卽汝心은 先生의 天師問答의 奇蹟中에서 받은 文句이라 그文句를 象徵的으로 풀어 놓은 것이 곧 이 文句이다. 다음 「柱似枯形力有餘」는 肉身은 죽어도 法身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PP.267-268.
1972년도판 -전략-「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吾順受天命 高飛遠走」라 하였다. 燈明水上無嫌隙은 吾心卽汝心이라는 뜻이다. 吾心卽汝心은 선생의 天師問答의 기적중에서 天主神 에게서 받은 文句인데 그 文句를 象徵的 으로 풀어 놓은 것이 곧 이 文句이다. 다음 柱似枯形力有餘는 육신은 죽어도 法身은 죽지 않는다는 비유이다. P. 140.
註 00 ;「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 吾順受天命汝高飛遠走」- 現行 사용하고 있는 『天道敎經典』에는 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만 「詠宵」 시문중 제일 마지막으로 별도로 게재되어 있고. 吾順受天命汝高飛遠走는 『天道敎創建史』第一編 P. 54에 「吾는 順受天命하니 汝는 高飛遠走하라. 」로 수록되어 있다. / 燈明水上無嫌隙이 天道敎創建史』第一編 P. 54에는 灯明水上無嫌隙으로 되어 있다. 灯(정)은 燈(등잔 등)의 俗字이다.
註 00 ; 法身(Dharma-body) - 동학과 천도교의 중요 용어나 사상을 설명할 때, 儒彿仙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설명하는 경우, 유불선의 핵심용어들이 매우 難解하기 때문에 천도교의 중요 용어나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여 수용하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사용하는 경우 수운심법을 바탕으로 한 의미를 한정하여 사용해야 할 것이다. 가장 좋은 해결방안은 유불선의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法身은 불교의 핵심 용어로서 색신(色身)과 대비되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신체를 말한다. 범어로는 dharma-kāya이다. 석존 입멸 후 눈앞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석가모니 부처의 존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불신관의 해석의 차이로 논쟁이 벌어지면서 불신관에 변화가 생겨났다. 특히 인간으로서의 부처에 초점을 맞추는 설일체유부(Sarvāstivādin)와 부처를 이상화·신앙화하는 대중부(Mahāsaṇghika) 불신관의 차이는 불교교단 분열과도 상관관계가 있다. 그러나 유부와 대중부 모두 정법(正法), 십력(十力) 등 정신적인 무루(無漏: 번뇌가 없음)의 능력을 법신으로 본다.
한편, 용수(Nagarjuna)의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도 부파불교의 불신관을 흡수하여 법신관과 생신관을 전개한다. 삼신[법신(法身)·보신(報身)·응신(應身)]을 본격적으로 논하는 『금광명경(金光明經)』에 따르면 법신은 진여와 진여의 지혜를 합한 개념이다. 이로써 본질과 작용을 합하여 법신으로 명명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법신을 벗어나서는 나머지 부처의 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여 법신을 세 가지 불신 가운데 근원적인 불신으로 이해한다. 법신은 중국불교에서 여래장 사상의 전개에 따라 불성, 여래장, 중생, 천진불 등으로 확대 해석되면서 변화를 거듭한다. 한국의 경우, 혜원이 법신의 유색·무색 논쟁에 대해 유색으로 정의하는데, 원효는 『열반종요』에서 화쟁 논리로써 이와 같은 논쟁을 여래비밀장이라는 더 높은 차원으로 수렴한다. 그리고 법신에 ‘중생의 본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중생의 차원으로 내려놓는다. 한편, 의상은 ‘변함없는 나의 몸’을 법신과 동일시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자체불이다. 이런 점에서 원효와 의상은 세속으로 한 차원 내려온 법신을 중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68년도판 -전략-實로「仰之愈高府之彌深」의 感이었다. P.268./원전과 다른 문장을 인용
1972년도판 -전략-실로「仰之愈高 俯之彌深」의 感이었다. P.141.
註 00 ; 仰之愈高 俯之彌深 - 왕종악(王宗岳) 『太極拳論』의 두 번째 문장이다.
1. 太極者,无極而生,动静之机,阴阳之母也。动之则分,静之则合。无过不及,随曲就伸。
2. 虚领顶劲,气沉丹田,不偏不倚,忽隐忽现。左重则左虚,右重则右杳。仰之则彌高,俯之则愈深。进之则愈长,退之则愈促。一羽不能加,蝇虫不能落。人不知我,我独知人。英雄所向无敌,盖皆由此而及也!
목을 느슨히 하고 정수리를 위로 뻗은 다음, 氣를 丹田에 가라앉히며,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지 않고, 홀연히 숨었다가 홀연히 나타나도록 한다(정신과 기세를 숨겨서 조용히 있다가 홀연히 움직여야 상대가 미리 눈치를 채지 못한다). 왼쪽이 무거우면 왼쪽을 비우고, 오른쪽이 무거우면 오른쪽을 비우도록 한다(상대가 힘을 쓰는 쪽을 비워서 힘을 흘려보낸다). 우러러보면 하늘처럼 더욱 높아 보이고 굽어보면 연못 또는 바다 속처럼 더욱 깊어 보인다. 나아가면 더욱 멀어 보이고 물러나면 더욱 빨라진다. 깃털 하나도 붙일 수 없고 파리도 내려앉을 수 없다. 남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만 홀로 남을 안다(상대가 힘을 쓰려는 기척을 미리 안다 - 동경). 영웅이 가는 곳에 당할 사람이 없는 것은, 모두 다 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송정의 태극권 이야기」에서 발췌하여 수정함.
1968년도판 -전략-3. 犧牲死 P.268.
1972년도판 -전략-三. 犧牲死 P.142.
1968년도판 -전략- 精神的으로 憂愁 思慮等이 煩惱 肉體的으로는 過分 陰逸 享樂 過勞 社會의 缺陷 遺傳的 病的原因 傳染性의 銳敏等의 二原因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른 動物에 比한다면 天然의 自然死를 어기고 거의 變死의 動物이라 할수 있다. 앞날 社會는 이 點에 置重하여 天理의 法則에 어기지 않는 社會改良이 있어야 한다. P.269.
1972년도판 -전략- 정신적으로는 憂愁 思慮 등의 번뇌 육체적으로는 過分 陰佚 享樂 過勞 社會組織의 결함 유전적 병적 원인인 전염성의 예민 등등의 두 원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른 동물에 비한다면 天卽의 自然死를 어기는, 거의 變死의 동물이라 할 수 있다. 앞날의 사회는 이 점에 유의하여 天理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은 사회 개량이 있어야 한다. PP.143-144.
1968년도판 -전략-사람 사는 社會에서는 病은 사람의 固有物과 같이 生覺하는 原罪的 習慣이 굳어져 이제는 生 老 病 死를 一律로 해서 病df 生老死 自然法으로 까지 알게 되었다. 이것도 사람의 큰 罪惡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稱病不朝라 하여 病을 핑계의 차례로 아는 亡種도 생기게 되었다. P.269.
1972년도판 -전략-사람 사회에서는 病은 사람의 고유물과 같이 생각하는 原罪的 습관이 굳어져 이제는 生 老 病 死를 一律로 해서 生 老 病 死를 自然法으로 까지 알게 되었다. 이것도 사람의 큰 죄악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稱病不朝하여 병을 핑계의 차례로 아는 亡種도 생기게 되었다. P.143.
註 00 ; 稱病不朝 - 『史記』 중 越世家에 나오는 이야기로, 范蠡遂去, 自齊遺大夫種書曰, 蜚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 越王爲人長頸鳥喙, 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子何不去. 種見書, 稱病不朝. 人或讒種且作亂, 越王乃賜種劍曰, 子敎寡人伐吳七術, 寡人用其三而敗吳. 其四在子, 子爲我從先王試之. 種遂自殺.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제나라에 간 범려는 자신과 절친했던 월나라의 대부로 있는 문종(文種)에게 편지를 썼다. “하늘에 나는 새가 없어지면 좋은 활도 창고에 넣어 두게 되고,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어버리며, 敵國이 망하면 謀士가 죽는 법이오. 게다가 越王 句踐(Kouchien/BC 497~464)의 얼굴은 긴 목에 까마귀 부리같이 뾰족하게 생겼는데 이런 인물은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다고 한다. 그대는 어째서 떠나지 않는 것이오?” 문종은 편지를 본 후 병을 칭하고 조회에 나가지 않았다./고어성어사전과 관련 자료를 종합.
1968년도판 -전략-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죽음은 사람의 原罪를 代表해서 죽었다는 것과 같이 水雲의 죽엄도 萬代의 惡을 代表하여 죽었다. 解釋해도 無妨하며 그리하여 한울님의 天命으로 定해지는 犧牲死의 定義도 나타났다.(未完) P.270.
1972년도판 -전략-이런 뜻에서 예수의 죽음은 사람의 原罪를 대표하여 죽었다는 것과 같이 수운의 죽음도 萬代의 惡을 대표하여 죽었다고 해석하여도 무방하며 그리하여 한울님의 天命으로 定해지는 犧牲死의 定義도 나타났다. P.146.
이상으로서 1968년에 重刊된「新人哲學」後尾에 附錄/ PP. 215-270.으로 수록된 附錄本 『東學之人生觀』은 (未完) P.270.의 상태로 끝이 났으므로, 더 이상의 비교분석은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아래에 소개되는 1972년도 판에 수록된 내용은 原典 그대로일까? 원본이 필자에게는 없으므로 원본에 대한 평가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상에서 살펴본 비교분석 연구에서 느껴지고 추측되는 것은, 원문에 많은 첨삭과 가필을 했을 뿐만 아니라 重刊者의 私見도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疑懼心과 불편한 마을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附錄으로 수록된 『敎政雙全』도 원문이 없어 살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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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目次는, 1968년에 重刊된「新人哲學」 後尾에 附錄으로/ PP. 215-270. 수록된 附錄本에는, 이 目次와 內容이 揭載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새로 추가된 자료이다. 1972년도 판에 수록된 내용의 전체 목차이다.
第四章 人間과 그 屬性; 127.
四 死와 來世; 146.
五 運命觀
第 三 編 人生問題(福念編); 163.
第一章 念의 造化; 165.
一 念; 165.
二 善과 惡; 168.
三 念과 苦樂 및 禍福; 171.
四 念과 業因; 181.
第二章 人間五福; 183.
一 濟人疾病; 184.
二 長生不死; 190.
三 萬事如意; 198.
四 道成德立; 206.
五 布德廣濟; 214.
第三章 同歸一體; 219.
一 社會와 個體; 219.
二 社會와 精神; 221.
三 同歸一體의 社會; 224.
第 四 編 人生問題(夜雷 對 正菴 問答編); 229.
一 進化와 創造; 231
二 無神論; 235.
三 旣成宗敎; 238.
四 福善禍淫; 240.
五 攸好德; 246.
六 精神統一; 255.
七 法悅; 261.
八 樂天과 厭世; 266.
九 利己와 利他; 271.
十 無窮我; 275
附錄 敎政雙全; PP.289-333.
6. 나가는 말.
1963년에 『新人哲學』의 附錄으로 重刊한 『東學之人生觀』重刊辭에서 원전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어 1972년도 판은 많은 왜곡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이 論文에서 先生의 思想이 적지 아니 變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은 문제를 다루면서도 『新人哲學』과 『東學之人生觀』의 論理나 意味가 全然 달라진 곳이 許多했다. 어느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고 判斷하는 것은 우리의 所任이 아니다. 『新人哲學』에서 보여 준 態度가 進取的이요 科學的이었다면, 『東學之人生觀』의 그것은 靜觀的이요 冥想的이었다.
아래의 글은 1963년도 판의 중간사의 후반에서 기술되었던 내용으로 1968년도 판에서는 전문이 삭제되었다.
한 個人의 靑年期와 老年期에 있어서의 思想的變化의 크기에 興味도 있었지만 周圍의 勸誘와 先生自身의 思想的 健全性을 위해서 『東學之人生觀』의 一部 章節을 省略했음을 밝혀둔다.
한편 이 論文은 이번 처음으로 活字化되어 公刊되는 것이다.
또한 『新人哲學』과 『東學之人生觀』을 復刊함에 있어서 맞춤법이나 난삽한 文章의 若干을 다둠 었을 뿐 原文 그대로 조금도 添削이 없다.’
끝으로 우리의 이러한 努力이 韓國思想의 確立에 적은 礎石이라도 된다면 그 以上의 多幸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돈화는 『新人哲學』 『人乃天要義』 『水雲心法講義』 『東學之人生觀』등의 교의 해설서로는 최고의 大作을 저술하여 간행함으로써 오늘의 천도교 교단의 현재와 미래의 指標를 만들어 냈다. 이돈화는 1972년도 판 三. 人乃天의 神觀 末尾의 글 중에서 人乃天의 神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이 神은 萬有內에 들어 있으면서 萬有의 밖에 唯一無二의 體로 엄존하고 極小極微裡에 있으면서 極大極廣 그대로 包容된 靈妙 불가사의한 존재인 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즉 神은 汎神이면서 一神이며 宇宙神이면서 人乃天神이 되는 所以의 妙法을 大覺하는 것이 人乃天의 神觀이다.’ P.64. 라고 천도교의 신관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또 1972년도 판 PP.124-125.에서 神과 自我의 關係, 神의 超越者的 全知全能과 人乃天의 宇宙觀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自我 個體의 구성원리가 다 神 一元으로부터 一降하면 自我가 되고 自我 一元으로부터 上昇하면 神이 된다. 神과 自我는 究竟 一致하게 된다. 神의 편으로 보면 自我는 神의 依存的 存在요, 自我의 편으로 보면 神은 같은 원리(全的原理-1968년도 판) 自我 가운데 들어 있다. 이것이 人乃天의 自我觀, 個性觀이다.
神이 어찌하여 우주의 無量數의 개성으로 표현되었는가? 이것은 전지전능의 본능이 있는 까닭이다. 神은 전지전능한 본능을 표현키 위하여 우주를 창조하였으며 우주의 완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無量數의 개성으로 化한 것이다. 神이 만물의 개성 중에 들어 있다하여 神 자체는 초월자적 존재의 의미에서 空으로 존재한 것이냐 하면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 神은 어디까지든지 유일한 實在이며 本體로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個體 가운데 있는 神 전체와 神 본래의 초월자로서의 전체는 어떤 理由를 가지고 있는가? 이 절대 모순을 어떻게 해결 하는가? 이것이 一卽多 多卽一의 神의 原理이며 反對一致의 神의 眞理이다. 이는 神의 萬能에서 만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에 진리를 오해하고 人乃天의 우주관을 잊으면 그는 큰 邪念에 떨어지고 만다. 자포자기에 멸망에 빠지는 위험에 당면할 것이다. 神은 어디까지든지 超越者이며 唯一이며 統合的 人格者이다. 동시에 神은 萬有個體의 理性이며 自我의 內有神靈이다. 이 妙諦가 곧 人乃天이다.’ 라 하였다. 또 이돈화는 1972년도 판 三. 靈魂人의 世界 中에서
‘要컨대 靈界에 靈魂人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사람의 個體영혼 존재의 증거를 먼저 인정치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개체영혼설도 一神觀에서는 당연히 시인할 것이다. 汎神觀的 입장에서는 모순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汎神觀에서도 一神觀的 汎神觀으로 보면 神은 唯一의 全體로서 그 唯一全體가 어떤 적은 곳에도 그 전체 그대로가 個體的 形相으로 들어있다는 反對一致의 진리로 보면 現象界의 立場에서 개체영혼을 시인할 수 있고 그리하여 개체영혼은 영혼인으로서의 輪回轉生作用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有神論은 靈界를 인정치 않으면 成立되지 못하고, 靈界를 인정하면 靈界的 認識의 존재를 인정하여야 하고 靈界的 認識을 인정한다면 靈界의 個性的 存在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P.100./라 하였고 또 이돈화는 1972년도 판 二. 人間 其 者의 學 中에서 아래와 같이 力說하고 있다.
‘大我의 境涯 ! 이것은 神도 아니요 사람도 아니다. 神과 사람이 결합된 人乃天의 大境涯이다. 이것이 人間學의 究極이다. 再生復活로 인한 개벽적 새 우주신이다. 개벽적 새 우주신이란 것은 사람으로서 神을 直覺한 神 즉 인간으로서 神에 化한 神인데 이를 神의 편으로 보면 사람이 神에 歸依合一된 것이오 사람의 편으로 보면 神이 人間의 裡에 歸依된 것이다. 이것은 自力도 아니오 他力도 아닌 圓滿一致의 힘이며, 이것은 靈界도 아니오 物界도 아닌 地上神仙이며, 이것은 유심론도 아니요 유물론도 아닌 至氣一元論이다. 이러한 學을 人間其者의 學이라 칭한다. 수운선생은 學은 東學이라 하고 道는 天道라 한 後「吾道는 今不聞古不聞之事요 今不比古不比之法也」이라 하여 後天開闢의 유일한 人間學으로 자처한 것이다.’ P.256. / 원문 인용에 착오가 있다. P.115./라고 했다.
필자는 이돈화의 대표적인 교리 이론서들을 탐독하면서, ‘神의 편으로 보면 自我는 神의 依存的 存在요, 自我의 편으로 보면 神은 같은 원리(全的原理-1968년도 판) 自我 가운데 들어 있다. 이것이 人乃天의 自我觀, 個性觀이다.’ 라든가 ‘神은 어디까지든지 유일한 實在이며 本體로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절대 모순을 어떻게 해결 하는가? 이것이 一卽多 多卽一의 神의 原理이며 反對一致의 神의 眞理이다. 이는 神의 萬能에서 만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에 진리를 오해하고 人乃天의 우주관을 잊으면 그는 큰 邪念에 떨어지고 만다. 자포자기에 멸망에 빠지는 위험에 당면할 것이다. 神은 어디까지든지 超越者이며 唯一이며 統合的 人格者이다. 동시에 神은 萬有個體의 理性이며 自我의 內有神靈이다. 이 妙諦가 곧 人乃天이다.’이라는 설명에 납득할 수가 없었다. ‘人乃天의 우주관을 잊으면 그는 큰 邪念에 떨어지고 만다.’고 하였는데 유일신의 창조설과 무엇이 다르기에 잊으면 안 된다고 하는가.
‘이것이 一卽多 多卽一의 神의 原理이며 反對一致의 神의 眞理이다. 이는 神의 萬能에서 만 나타나는 것이다.’라 하였는데 反對一致의 神이란 어떤 신인가. 유일신인가 再生復活로 인한 개벽적 새 우주신인가? 또 개벽적 새 우주신은 또 무엇인가? 또 이 말은 무슨 말인가? ‘이것은 自力도 아니오 他力도 아닌 圓滿一致의 힘이며, 이것은 靈界도 아니오 物界도 아닌 地上神仙이며, 이것은 유심론도 아니요 유물론도 아닌 至氣一元論이다.’ 유물론과 至氣一元論이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가? 설명이 매우 부족하다. 허공에 맴도는 메아리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돈화는 ‘神은 어디까지든지 超越者이며 唯一이며 統合的 人格者이다. 동시에 神은 萬有個體의 理性이며 自我의 內有神靈이다. 이 妙諦가 곧 人乃天이다.’ 라 하였는데 人乃天은 또 다른 유일신이라는 의미일까“ 그래서 천도교의 신관을 一神論的 汎神觀이라 하였는가? 종교학의 일반론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용어이다. 一神論的 汎神觀을 올바로 이해시키려면 수운심법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애매모호한 용어를 써서 설명하는 것은 궁극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기존용어나 신조어의 의미를 새롭게 해설해야 할 것이다.
‘人乃天의 神觀, 一神觀的 汎神觀’과 ‘至氣一元論’이란 核心用語들에 대한 이돈화의 설명에 수긍할 수가 없었다. 이돈화가 활동했던 시대적 특수성과 천도교의 입장을 고려하고, 이돈화가 추구했던 천도교 교의의 논리화와 철학화를 바탕으로 지상천국건설에로의 사회화를 추구했다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다소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돈화가 『동학지인생관』에서 반성하고 추구하려했던 천도교의 미래지향적인 의도를 감안한다면, 이돈화가 천도교 신앙의 사회화에서 旣成宗敎와 類似한 宗敎的 信仰으로 回歸하려는 것에 대하여 필자는 납득하여 수용할 수가 없었다. ‘人乃天의 神觀, 一神觀的 汎神觀’과 ‘至氣一元論’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인 기성 종교학에서는 설명될 수 없는 천도교 교의에서만 설명되는 특수한 용어들이라 할 수 있다. 필자도 필자가 쓴 연구 논문들에서는 ‘人乃天의 神觀, 一神觀的 汎神觀’과 ‘至氣一元論’에 대하여 필자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설명은 하고 있지만, 이돈화나 필자가 설명하는 것들이, 水雲大神師께서 직접 體得하고 覺得한 水雲心法에 近接한 설명이라고는 壯談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필자가 아는 범위내서 아래의 글들을 발표한 바가 있다.
註 00 ; ‘人乃天의 神觀, 一神觀的 汎神觀’과 ‘至氣一元論’에 대한 참조 연구논문 들.
天道敎의 神觀定立에 對하여 / 부제; 천도교에는 신이 있는가?/ 포덕 152(2011)년 5월 7일.발표.
崔水雲의 神觀은 汎在神觀이 아니다. / 포덕 152(2011)년 7월 29일.발표.
天道敎는 어떤 宗敎인가? / 포덕 155(2014)년 2월 19일. 발표.
정혜정는「이돈화의 인내천주의와 서구근대철학의 수용」에서 이돈화가 저술한 『새말』에 기술한 천도교의 종교적 목적을 바탕으로 천도교 신앙의 정신과 신앙자세 그리고 가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돈화는 ’천도교의 정신이란 원래가 전통으로부터 유래하는 종교도덕과 현대의 사상을 기초로 하여 포용할 것은 포용하고 배제할 것은 배제하면서 후천 오만년의 대도대덕을 창건하자는 운동‘임을 선언했다. 동학은 끊임없이 전통과 현대사상을 포용하고 배제하면서 커가는 운동이다. 이돈화가 근대철학을 수용함에 있어서 중시한 작업은 전통의 성찰과 확고한 주체의 뿌리 세우기였다. 그는 조선의 전통을 성찰하여 비판을 가하는데 사상통제, 안빈낙도의 퇴굴(退屈)주의, 유가의 노예적 도덕이 그의 비판 대상이었다. /P.149.라고 평가했다.
김용환은「동학의 공공행복 전망과 실제」에서
‘오늘날 세계는 여러 가지 새로운 가치도전(價値挑戰)을 받고 있다. 새로운 가치도전에 대한 응답의 한 양상으로 파니카(R. Panikkar)의 “우주 신인론”(宇宙神人論) 전망을 들 수 있다. 동학은 시천주(侍天主)의 신앙을 제시한다. 우리는 동학의 시천주 신앙에서 역동적 조화의 우주신인의 전망을 발견할 수 있다. 동학은 타자와 더불어 행복한 ‘공공행복’을 위하여 “수심정기”(守心正氣)의 실천 가치와 “음양상균”(陰陽相均)의 덕목가치를 제시한다. 동학은 후천개벽의 공공시대 도래의 열망을 통하여, “세계시민주의(global citizenship)"와 상통하는 실천양식으로서 민족정체성과 세계시민성을 함께 살리는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동학의 ‘다시 개벽’을 통해, 우리는 공공행복 가치의 실천화용(實踐和用)으로서 생명상생(生命相生)의 실천양식을 모색할 수 있다. 그리고 동학의 공공행복 가치의 실천화용(實踐和用)을 위한 상호공경(相互恭敬)의 실천양식을 통해 공공행복 가치를 구현하는 과정을 고찰한다. 동학의 공공행복 가치구현을 위한 실천양식은 이념으로부터의 인간해방과 자유의 생명가치 실현을 목표로 삼는다. 자본주의 이념과 사회주의의 이념에서 벗어나 생명실상을 우주신인 공공전망으로 직관하고, 동학의 “내유신령”(內有神靈)과 “외유기화”(外有氣化) 상통으로 생명의 역동성을 발휘 할 때, 생명의 치유가 가능해진다. 동학은 지기(至氣)· 기화(氣化) 상통(相通)으로 수심정기의 실천 원리와 음양상균의 덕목원리를 제시함으로써 우주신인의 공공전망을 확인하게 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PP .119-136. 중에서. /「동학의 공공행복 전망과 실제」『윤리교육연구』 卷.32號.
창도 160년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중앙교단의 집행부에서부터 재가교인에 이르기 까지 위의 연구자들이 말하고 있는 천도교의 신앙과 다가올 미래세계의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무슨 준비를 하고 있을까? 를 다 같이 생각해보는 것도 후천개벽을 위하여 출발하려는 개벽군의 마음을 다짐해보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실어본다. 또 막연한 것이지만, 지금 천도교의 교리와 교사연구를 위하여 면학을 하고 있는 후학이 있다면, 梁漢黙이나 李敦化를 뛰어 넘어 교단의 미래를 이끌어 갈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 참고문헌 자료/追加分
中央總部 編纂「東經演義」1907.
金敏洙, 「注解 訓民正音」通文館. 1957.
李敦化,『東學之人生觀』1963년도 판 국판형.
李敦化,『東學之人生觀』1968년도 판 4X6판형.
洪自誠, 菜根譚. 趙芝薰 譯. 玄岩社. 1970./菜根譚 前後集 合本./自然編 12.
李敦化,『東學之人生觀』1972년도 판 4X6판형. 洋裝本.
尹老彬,『新生哲學』초판은 第一文化社에서 1974에 가행되었고, 증보판은 2003년에 학민사에서 출간되었다.
金京昌 「註釋 典籍東學文化財」正民社. 1983.
고태우, 「북한의 종교정책/개정판」민족문화사. 1989.
김지하, 『생명』 도서출판 솔. 1992.
東學革命百周年紀念事業會, 『東學革命百周年紀念論叢 (上) (下)』태광문화사. 1994.
金眞赫. 새로운 문명과 동학사상. 명선미디어. 2000.
김상일,『수운과 화이트헤드』지식산업사. 2001.
李世權, 「東學經典」글나무. 2002.
김용옥, 「도올 삼득 東經大全 (1)」 통나무. 2004.
유근호. 조선조 대외사상의 흐름; 성신여대 출판부. 2004.
金用天,『東學思想 展開의 諸問題』「人乃天의 참뜻과 유래에 관한 연구/PP. 71-138」2004.7.20.
金用天,「天道敎 神觀定立에 對하여」 포덕 152(2011).5.7.
金用天,「崔水雲의 神觀은 汎神論이 아니다.」 포덕 152(2011).7.29.
金用天,「天道敎는 어떤 宗敎인가? 」 포덕 155(2014).2.19.
----------------------------『東學之人生觀』의 比較分析 硏究(11-11.大尾)
천도교 홈에 게재된, 본인의 모든 글과 동학, 천도교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은, 모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카페(http://cafe.daum.net/oamdonghak)의 김 용천 자료실과 교리, 교사 연구 논문과 학술논문 자료실에 게재되어 있사오니, 자주 방문하시어 많이 읽어주시고, 교단발전에 널리 활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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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덕 158(2017)년 2월 25일.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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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도판 -전략-2. 死의 原理 P.263.
1972년도판 -전략-二. 死의 原理 P.132.
1968년도판 -전략-古人은 生死亦大矣라 하였다. 死는 人間의 常事임과 同時에 人間의 大事이다. 누구나 한번은 다 죽는 다는것으로 보면 通常 尋常 元常의 常事로 볼수 있으나 地球를 주어도 바꾸지 않겠다는 個性生命이 死의 境涯에서 破滅된다는 點으로 보면 死는 大宇宙의 大悲壯이다. PP.263-264.
1972년도판 -전략-古人은 生死亦大事矣라 하였다. 死는 人間의 常事임과 동시에 인간의 大事이다. 누구나 한번은 다 죽는 것으로 보면 通常 尋常 元常의 常事로 볼수 있으나 地球를 주어도 바꾸지 않겠다는 個性 生命이 死의 境涯에서 파멸된다는 점으로 보면 死는 대우주의 大悲壯이다. PP.132-133.
註 00 ; 生死亦大事矣 - 內篇/ 莊子語錄 中에 있는 語句이다.
生死亦大矣 而不得與之變 雖天地覆墜 亦將不與之遺.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살고 죽는 것 역시 매우 중대한 것이지만, 살고 죽는다는 것일 뿐, 그런 변화와 함께 변하는 것은 없다. 하늘과 땅이 다 뒤집어 지고 꺼진다 해도 모든 것이 다 함께 떨어져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 眞人 - 道敎와 佛敎에서 말하는 眞人이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말한다.
古之眞人 知者不得說 美人不得濫 盜人不得劫 伏戲黃帝不得友 死生亦大矣 而無變乎己 況爵祿乎라고 설명했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아주 먼 옛날에 살고 있었던 어느 진인을, 지식을 많이 갖춘 사람도 그 진인을 설득하지 못 하였고, 아름다운 여인도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지 못했다. 어느 날 무서운 도둑도 그를 위협하여 아무것도 빼앗아 가지 못하였고, 그 유명한 복희씨도 황제도 그를 친구로 삼지 못했다. 죽음과 삶이 매우 중대한 일이지만, 그를 변화시키지 못하였다. 하물며 그에게 官爵과 福祿을 주어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절대로 마음이 움직이거나 변하지 않는다.
1968년도판 -전략-死는 도리어 究極의 法悅을 느낄 큰 機會다. 그러므로 死도 無餘涅槃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無意識的으로 當하는 것은 死의 刹那에 至할 때까지 苦의 業因을 쌓게되는 不幸이 있으므로 사람은 生前에 八正道를 覺에 이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有餘涅槃이다. P.264./ 이 문장은 添削與否를 대조하기보다는 불교에 대한 이해를 위한 용어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하여 拔萃하였음.
1972년도판 -전략-死는 도리어 究極의 法悅을 느낄 큰 機會다. 그러므로 死도 無餘涅槃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당하는 것은 死의 刹那에 이를 때까지 苦의 業因을 쌓게 되는 不幸이 있으므로 사람은 생전에 八正道를 通하여 覺에 이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有餘涅槃이다. P.134.
註 00 ; 法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으로 듣고 진리를 깨달아 마음속에 일어나는 기쁨이나 환희를 의미한다./유의어는 법열감(法悅感), 법희(法喜).
註 00 ; 涅槃 -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를 의미한다.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유의어는 감로성(甘露城), 대적정(大寂定), 멸도(滅度).
註 00 ; 無餘涅槃과 有餘涅槃 - 불교 용어들로서 無餘涅槃은 모든 번뇌가 끊기고 육신까지 사라진 후 얻어지는 평온의 경지 곧 죽은 후에 들어간다는 열반을 의미하고, 有餘涅槃은 자기의 수행으로 이승의 번뇌는 끊었으나, 아직도 과거의 업보로 받은 신체가 멸하지 못한 열반을 말한다. 열반에 드신다는 것은 오불동도(五佛同道)의 의식(儀式)이다 .조금 다른 해석으로는 열반에는 무여(無餘)와 유여(有餘)의 두 가지가 있다.
유여란 소승의 교로 미혹 번뇌는 끊었으나,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보살행으로 많은 사람을 가르쳐 인도할만한 힘을 갖추지 못한 깨달음을 유여열반이라 한다. 무여란 대승의 교로 자기가 깨닫는 동시에 다른 사람까지도 가르쳐 인도하는 힘이 갖추어진 각행원만(覺行圓滿)을 말한다. 그러니까 유여열반에서 점진적으로 무여열반으로 들어가서 세상을 위해 노력하다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마치 나무가 다 타서 불이 꺼지듯, 아무런 고통도 아무런 고민도 없이 자연스럽게 「큰 하나」에 되돌아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각종 백과사전과 관련 자료들에서 종합정리.
註 00 ; 五佛同道의 儀式 -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오직 보살만을 교화하시기 때문에,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지혜로써 본 실상을 가르쳐서, 그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부처님이 되는 오직 하나의 길(一佛乘)만을 가르치니 달리 제2나 제3의 길은 없느니라.`라고 하시고 또한 `모든 시방세계의 부처님들(諸佛)과 과거에 출현하셨던 여러 부처님들(過去佛)과 미래에 출현하실 많은 부처님들(未來佛)과 현재에도 이 우주의 한량없는 백천만억의 불국토(佛國土)에 계시는 여러 부처님 세존들(現在佛)과 나(釋迦牟尼佛)는 모두 여러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가지가지의 탐욕과 집착을 알기 때문에, 중생의 성품에 따라서 가지가지 과거의 사연과 비유와 이론적인 이야기와 교묘한 방편력을 가지고 그들을 위하여 가르침을 설하느니라.`라고 하시고 `이러한 것은 모두 최고의 지혜인 일체종지를 얻게 하기 위한 가르침, 즉 불승(佛乘)으로 이 우주(시방세계) 가운데는 진리가 둘이 있을 수 없을진대, 하물며 어찌 세 가지의 가르침이 있겠는가.`라고 밝히셨다.
이처럼 방편에 의한 가르침은 석가모니부처님만의 교화 방법이 아니라 모든 부처님의 교화방법이요 작법(作法)이다. 과거세(過去世)에 나오셨던 부처님이나, 현재 시방국토에 나타나 계신 부처님이나 미래에 나오실 부처님이나, 부처님으로서의 의식(儀式, 교화방법)은 다 같다. 이것을 "오불동도(五佛同道)의 의식(儀式)"이라고 하는데 오불(五佛)이란, 총제불(總諸佛), 과거불(過去佛), 현재불(現在佛), 미래불(未來佛), 및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말하는 것이다./ 각종 백과사전과 관련 자료들에서 종합정리.
註 00 ; 八正道(영). The Noble Eightfold Path. (산). Aṣṭāṅgikamarga/ Atthangika-magga/(팔리어) Ariyo atthangiko magga) - 인도 베나레스(또는 바라나시) 근처의 녹야원에서 석가모니가 최초의 설법에서 가르친 교리로 사성제의 4번째 진리에 해당하며, 사성제와 함께 불교의 가르침 전체를 총괄한다.
유물론자들의 감각적 쾌락과 고행주의자들의 고행이라는 양 극단을 떠난 길을 제시하므로 중도라고도 한다. 이 팔정도의 고귀한 길을 따르는 사람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부분인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져 궁극적으로는 열반, 즉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불교의 몇몇 교설에서는 팔정도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열반의 체험을 의미한다고까지 말한다.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수행의 올바른 여덟 가지 길인 팔정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정견(正見):올바른 이해로서, 존재의 본질에 대하여 사성제로 설해지는 불교적 진리관을 확신하는 것이다. ② 정사유(正思惟):정견에 따라 철저히 실천하겠다는 각오이다. ③ 정어(正語):거짓말, 중상하는 말, 모욕하는 말 따위를 삼가하는 것이다. ④ 정업(正業),:생명을 해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부정한 성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⑤ 정명(正命):불교의 가르침에 부응하지 않는 직업은 택하지 않는 것이다. ⑥ 정정진(正精進):나쁜 마음가짐을 피하고 바른 마음가짐을 계발하는 것, ⑦ 정념(正念):신체와 감정과 사고의 움직임에 대하여 깨어 있는 것이다. ⑧ 정정(正定):바르게 집중하여 명상하는 것 등등으로 팔성도(八聖道)라고도 한다. /유의어는 八聖道分, 八正法, 八聖道, 八賢聖道, 八正聖路.
1968년도판 -전략-여기에서 最後로 山上訓을 내리웠다.「나는 죽지 않는다. 生命은 짧으나 法身은 永生하는 것이다. 너희는 나를 죽을 줄 믿는가? 너희는 아직도 내 말을 믿지 읺느냐? 내가 언제 사람을 죽는다 가르치더냐? 眞實로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의 이 길은 天命이다. 너희가 取하는 行爲는 天命을 어긴 것이다. 나는 죽지 않는다. 한울님은 無極大道德」을 펴기 爲하여 無爲而化를 行하신다. 나는 都示 믿지 말고 한울님만 믿었어라. 네 몸에 모셨으니 捨根取遠하지 말고 너희는 歸家하여 나의 말을 믿으라. 이 말은 들은 모든 徒弟들은 다 先生의 奇蹟을 直接體驗한 이들이니 만큼 先生의 「나는 죽지 않는다.」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八拜 九拜의 祝禮를 들인 後 告天하고 解散하였다. 이것이 先生의 最後 山上訓으로서 不死의 眞理를 端的으로 道破한 것이다. PP.266-267.
1972년도판 -전략-여기서 최후의 山上訓을 내리셨다.「나는 죽지 않는다. 생명은 짧으나 法身은 永生하는 것이다. 내가 언제 사람을 죽는다고 가르치든가? 진실로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의 이 길은 천명이다. 너희가 취하는 행위는 천명을 어긴 것이다. 나는 죽지 않는다. 한울님은 無極大道德」大德을 펴기 위하여 無爲而化를 행하신다. 나는 都示 믿지 말고 한울님만 믿었어라. 네 몸에 모셨으니 捨根取遠하지 말고 너희는 귀가하여 나의 말을 믿으라.」 이 말은 들은 모든 徒弟들은 다 선生의 기적을 직접 체험한 이들이니 만큼 先生의 「나는 죽지 않는다.」는 말씀을 믿고 八拜九拜의 祝禮를 드린 후 告天하고 해산하였다. 이것이 선생의 최後 山上訓으로서 不死의 眞理를 端的으로 直破한 것이다. PP.138-139.
註 00 ; 위의 水雲의 逸話는, 敎史로서의 公式 記錄인 『天道敎創建史』에도 없고, 개인 기록인 오지영의 『東學史』와 창도 140년이 지난 2000년대 초에 간행된 표영삼의 『東學 Ⅰ』에도 없는 일화이다. 『東學 Ⅰ』은 간행 당시까지 발굴된 각종 자료들을 모두 활용하여 기술된 교리 교사의 기록인데 여기에서도 기록된 바가 없다. 그리고 水雲先生을 逮捕移送한 宣傳官 鄭龜龍/P.266.은 교단기록에서 사용된 이름이고, 官邊記錄에는 鄭雲龜로 되어 있다.
1968년도판 -전략-「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 吾順受天命汝高飛遠走」라 하였다. 「燈明水上無嫌隙」은「吾心卽汝心」이라는 뜻이다. 吾心卽汝心은 先生의 天師問答의 奇蹟中에서 받은 文句이라 그文句를 象徵的으로 풀어 놓은 것이 곧 이 文句이다. 다음 「柱似枯形力有餘」는 肉身은 죽어도 法身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PP.267-268.
1972년도판 -전략-「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吾順受天命 高飛遠走」라 하였다. 燈明水上無嫌隙은 吾心卽汝心이라는 뜻이다. 吾心卽汝心은 선생의 天師問答의 기적중에서 天主神 에게서 받은 文句인데 그 文句를 象徵的 으로 풀어 놓은 것이 곧 이 文句이다. 다음 柱似枯形力有餘는 육신은 죽어도 法身은 죽지 않는다는 비유이다. P. 140.
註 00 ;「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 吾順受天命汝高飛遠走」- 現行 사용하고 있는 『天道敎經典』에는 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만 「詠宵」 시문중 제일 마지막으로 별도로 게재되어 있고. 吾順受天命汝高飛遠走는 『天道敎創建史』第一編 P. 54에 「吾는 順受天命하니 汝는 高飛遠走하라. 」로 수록되어 있다. / 燈明水上無嫌隙이 天道敎創建史』第一編 P. 54에는 灯明水上無嫌隙으로 되어 있다. 灯(정)은 燈(등잔 등)의 俗字이다.
註 00 ; 法身(Dharma-body) - 동학과 천도교의 중요 용어나 사상을 설명할 때, 儒彿仙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설명하는 경우, 유불선의 핵심용어들이 매우 難解하기 때문에 천도교의 중요 용어나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여 수용하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사용하는 경우 수운심법을 바탕으로 한 의미를 한정하여 사용해야 할 것이다. 가장 좋은 해결방안은 유불선의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法身은 불교의 핵심 용어로서 색신(色身)과 대비되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신체를 말한다. 범어로는 dharma-kāya이다. 석존 입멸 후 눈앞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석가모니 부처의 존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불신관의 해석의 차이로 논쟁이 벌어지면서 불신관에 변화가 생겨났다. 특히 인간으로서의 부처에 초점을 맞추는 설일체유부(Sarvāstivādin)와 부처를 이상화·신앙화하는 대중부(Mahāsaṇghika) 불신관의 차이는 불교교단 분열과도 상관관계가 있다. 그러나 유부와 대중부 모두 정법(正法), 십력(十力) 등 정신적인 무루(無漏: 번뇌가 없음)의 능력을 법신으로 본다.
한편, 용수(Nagarjuna)의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도 부파불교의 불신관을 흡수하여 법신관과 생신관을 전개한다. 삼신[법신(法身)·보신(報身)·응신(應身)]을 본격적으로 논하는 『금광명경(金光明經)』에 따르면 법신은 진여와 진여의 지혜를 합한 개념이다. 이로써 본질과 작용을 합하여 법신으로 명명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법신을 벗어나서는 나머지 부처의 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여 법신을 세 가지 불신 가운데 근원적인 불신으로 이해한다. 법신은 중국불교에서 여래장 사상의 전개에 따라 불성, 여래장, 중생, 천진불 등으로 확대 해석되면서 변화를 거듭한다. 한국의 경우, 혜원이 법신의 유색·무색 논쟁에 대해 유색으로 정의하는데, 원효는 『열반종요』에서 화쟁 논리로써 이와 같은 논쟁을 여래비밀장이라는 더 높은 차원으로 수렴한다. 그리고 법신에 ‘중생의 본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중생의 차원으로 내려놓는다. 한편, 의상은 ‘변함없는 나의 몸’을 법신과 동일시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자체불이다. 이런 점에서 원효와 의상은 세속으로 한 차원 내려온 법신을 중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68년도판 -전략-實로「仰之愈高府之彌深」의 感이었다. P.268./원전과 다른 문장을 인용
1972년도판 -전략-실로「仰之愈高 俯之彌深」의 感이었다. P.141.
註 00 ; 仰之愈高 俯之彌深 - 왕종악(王宗岳) 『太極拳論』의 두 번째 문장이다.
1. 太極者,无極而生,动静之机,阴阳之母也。动之则分,静之则合。无过不及,随曲就伸。
2. 虚领顶劲,气沉丹田,不偏不倚,忽隐忽现。左重则左虚,右重则右杳。仰之则彌高,俯之则愈深。进之则愈长,退之则愈促。一羽不能加,蝇虫不能落。人不知我,我独知人。英雄所向无敌,盖皆由此而及也!
목을 느슨히 하고 정수리를 위로 뻗은 다음, 氣를 丹田에 가라앉히며,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지 않고, 홀연히 숨었다가 홀연히 나타나도록 한다(정신과 기세를 숨겨서 조용히 있다가 홀연히 움직여야 상대가 미리 눈치를 채지 못한다). 왼쪽이 무거우면 왼쪽을 비우고, 오른쪽이 무거우면 오른쪽을 비우도록 한다(상대가 힘을 쓰는 쪽을 비워서 힘을 흘려보낸다). 우러러보면 하늘처럼 더욱 높아 보이고 굽어보면 연못 또는 바다 속처럼 더욱 깊어 보인다. 나아가면 더욱 멀어 보이고 물러나면 더욱 빨라진다. 깃털 하나도 붙일 수 없고 파리도 내려앉을 수 없다. 남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만 홀로 남을 안다(상대가 힘을 쓰려는 기척을 미리 안다 - 동경). 영웅이 가는 곳에 당할 사람이 없는 것은, 모두 다 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송정의 태극권 이야기」에서 발췌하여 수정함.
1968년도판 -전략-3. 犧牲死 P.268.
1972년도판 -전략-三. 犧牲死 P.142.
1968년도판 -전략- 精神的으로 憂愁 思慮等이 煩惱 肉體的으로는 過分 陰逸 享樂 過勞 社會의 缺陷 遺傳的 病的原因 傳染性의 銳敏等의 二原因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른 動物에 比한다면 天然의 自然死를 어기고 거의 變死의 動物이라 할수 있다. 앞날 社會는 이 點에 置重하여 天理의 法則에 어기지 않는 社會改良이 있어야 한다. P.269.
1972년도판 -전략- 정신적으로는 憂愁 思慮 등의 번뇌 육체적으로는 過分 陰佚 享樂 過勞 社會組織의 결함 유전적 병적 원인인 전염성의 예민 등등의 두 원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른 동물에 비한다면 天卽의 自然死를 어기는, 거의 變死의 동물이라 할 수 있다. 앞날의 사회는 이 점에 유의하여 天理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은 사회 개량이 있어야 한다. PP.143-144.
1968년도판 -전략-사람 사는 社會에서는 病은 사람의 固有物과 같이 生覺하는 原罪的 習慣이 굳어져 이제는 生 老 病 死를 一律로 해서 病df 生老死 自然法으로 까지 알게 되었다. 이것도 사람의 큰 罪惡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稱病不朝라 하여 病을 핑계의 차례로 아는 亡種도 생기게 되었다. P.269.
1972년도판 -전략-사람 사회에서는 病은 사람의 고유물과 같이 생각하는 原罪的 습관이 굳어져 이제는 生 老 病 死를 一律로 해서 生 老 病 死를 自然法으로 까지 알게 되었다. 이것도 사람의 큰 죄악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稱病不朝하여 병을 핑계의 차례로 아는 亡種도 생기게 되었다. P.143.
註 00 ; 稱病不朝 - 『史記』 중 越世家에 나오는 이야기로, 范蠡遂去, 自齊遺大夫種書曰, 蜚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 越王爲人長頸鳥喙, 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子何不去. 種見書, 稱病不朝. 人或讒種且作亂, 越王乃賜種劍曰, 子敎寡人伐吳七術, 寡人用其三而敗吳. 其四在子, 子爲我從先王試之. 種遂自殺.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제나라에 간 범려는 자신과 절친했던 월나라의 대부로 있는 문종(文種)에게 편지를 썼다. “하늘에 나는 새가 없어지면 좋은 활도 창고에 넣어 두게 되고,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어버리며, 敵國이 망하면 謀士가 죽는 법이오. 게다가 越王 句踐(Kouchien/BC 497~464)의 얼굴은 긴 목에 까마귀 부리같이 뾰족하게 생겼는데 이런 인물은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다고 한다. 그대는 어째서 떠나지 않는 것이오?” 문종은 편지를 본 후 병을 칭하고 조회에 나가지 않았다./고어성어사전과 관련 자료를 종합.
1968년도판 -전략-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죽음은 사람의 原罪를 代表해서 죽었다는 것과 같이 水雲의 죽엄도 萬代의 惡을 代表하여 죽었다. 解釋해도 無妨하며 그리하여 한울님의 天命으로 定해지는 犧牲死의 定義도 나타났다.(未完) P.270.
1972년도판 -전략-이런 뜻에서 예수의 죽음은 사람의 原罪를 대표하여 죽었다는 것과 같이 수운의 죽음도 萬代의 惡을 대표하여 죽었다고 해석하여도 무방하며 그리하여 한울님의 天命으로 定해지는 犧牲死의 定義도 나타났다. P.146.
이상으로서 1968년에 重刊된「新人哲學」後尾에 附錄/ PP. 215-270.으로 수록된 附錄本 『東學之人生觀』은 (未完) P.270.의 상태로 끝이 났으므로, 더 이상의 비교분석은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아래에 소개되는 1972년도 판에 수록된 내용은 原典 그대로일까? 원본이 필자에게는 없으므로 원본에 대한 평가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상에서 살펴본 비교분석 연구에서 느껴지고 추측되는 것은, 원문에 많은 첨삭과 가필을 했을 뿐만 아니라 重刊者의 私見도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疑懼心과 불편한 마을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附錄으로 수록된 『敎政雙全』도 원문이 없어 살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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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目次는, 1968년에 重刊된「新人哲學」 後尾에 附錄으로/ PP. 215-270. 수록된 附錄本에는, 이 目次와 內容이 揭載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새로 추가된 자료이다. 1972년도 판에 수록된 내용의 전체 목차이다.
第四章 人間과 그 屬性; 127.
四 死와 來世; 146.
五 運命觀
第 三 編 人生問題(福念編); 163.
第一章 念의 造化; 165.
一 念; 165.
二 善과 惡; 168.
三 念과 苦樂 및 禍福; 171.
四 念과 業因; 181.
第二章 人間五福; 183.
一 濟人疾病; 184.
二 長生不死; 190.
三 萬事如意; 198.
四 道成德立; 206.
五 布德廣濟; 214.
第三章 同歸一體; 219.
一 社會와 個體; 219.
二 社會와 精神; 221.
三 同歸一體의 社會; 224.
第 四 編 人生問題(夜雷 對 正菴 問答編); 229.
一 進化와 創造; 231
二 無神論; 235.
三 旣成宗敎; 238.
四 福善禍淫; 240.
五 攸好德; 246.
六 精神統一; 255.
七 法悅; 261.
八 樂天과 厭世; 266.
九 利己와 利他; 271.
十 無窮我; 275
附錄 敎政雙全; PP.289-333.
6. 나가는 말.
1963년에 『新人哲學』의 附錄으로 重刊한 『東學之人生觀』重刊辭에서 원전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어 1972년도 판은 많은 왜곡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이 論文에서 先生의 思想이 적지 아니 變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은 문제를 다루면서도 『新人哲學』과 『東學之人生觀』의 論理나 意味가 全然 달라진 곳이 許多했다. 어느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고 判斷하는 것은 우리의 所任이 아니다. 『新人哲學』에서 보여 준 態度가 進取的이요 科學的이었다면, 『東學之人生觀』의 그것은 靜觀的이요 冥想的이었다.
아래의 글은 1963년도 판의 중간사의 후반에서 기술되었던 내용으로 1968년도 판에서는 전문이 삭제되었다.
한 個人의 靑年期와 老年期에 있어서의 思想的變化의 크기에 興味도 있었지만 周圍의 勸誘와 先生自身의 思想的 健全性을 위해서 『東學之人生觀』의 一部 章節을 省略했음을 밝혀둔다.
한편 이 論文은 이번 처음으로 活字化되어 公刊되는 것이다.
또한 『新人哲學』과 『東學之人生觀』을 復刊함에 있어서 맞춤법이나 난삽한 文章의 若干을 다둠 었을 뿐 原文 그대로 조금도 添削이 없다.’
끝으로 우리의 이러한 努力이 韓國思想의 確立에 적은 礎石이라도 된다면 그 以上의 多幸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돈화는 『新人哲學』 『人乃天要義』 『水雲心法講義』 『東學之人生觀』등의 교의 해설서로는 최고의 大作을 저술하여 간행함으로써 오늘의 천도교 교단의 현재와 미래의 指標를 만들어 냈다. 이돈화는 1972년도 판 三. 人乃天의 神觀 末尾의 글 중에서 人乃天의 神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이 神은 萬有內에 들어 있으면서 萬有의 밖에 唯一無二의 體로 엄존하고 極小極微裡에 있으면서 極大極廣 그대로 包容된 靈妙 불가사의한 존재인 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즉 神은 汎神이면서 一神이며 宇宙神이면서 人乃天神이 되는 所以의 妙法을 大覺하는 것이 人乃天의 神觀이다.’ P.64. 라고 천도교의 신관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또 1972년도 판 PP.124-125.에서 神과 自我의 關係, 神의 超越者的 全知全能과 人乃天의 宇宙觀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自我 個體의 구성원리가 다 神 一元으로부터 一降하면 自我가 되고 自我 一元으로부터 上昇하면 神이 된다. 神과 自我는 究竟 一致하게 된다. 神의 편으로 보면 自我는 神의 依存的 存在요, 自我의 편으로 보면 神은 같은 원리(全的原理-1968년도 판) 自我 가운데 들어 있다. 이것이 人乃天의 自我觀, 個性觀이다.
神이 어찌하여 우주의 無量數의 개성으로 표현되었는가? 이것은 전지전능의 본능이 있는 까닭이다. 神은 전지전능한 본능을 표현키 위하여 우주를 창조하였으며 우주의 완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無量數의 개성으로 化한 것이다. 神이 만물의 개성 중에 들어 있다하여 神 자체는 초월자적 존재의 의미에서 空으로 존재한 것이냐 하면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 神은 어디까지든지 유일한 實在이며 本體로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個體 가운데 있는 神 전체와 神 본래의 초월자로서의 전체는 어떤 理由를 가지고 있는가? 이 절대 모순을 어떻게 해결 하는가? 이것이 一卽多 多卽一의 神의 原理이며 反對一致의 神의 眞理이다. 이는 神의 萬能에서 만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에 진리를 오해하고 人乃天의 우주관을 잊으면 그는 큰 邪念에 떨어지고 만다. 자포자기에 멸망에 빠지는 위험에 당면할 것이다. 神은 어디까지든지 超越者이며 唯一이며 統合的 人格者이다. 동시에 神은 萬有個體의 理性이며 自我의 內有神靈이다. 이 妙諦가 곧 人乃天이다.’ 라 하였다. 또 이돈화는 1972년도 판 三. 靈魂人의 世界 中에서
‘要컨대 靈界에 靈魂人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사람의 個體영혼 존재의 증거를 먼저 인정치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개체영혼설도 一神觀에서는 당연히 시인할 것이다. 汎神觀的 입장에서는 모순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汎神觀에서도 一神觀的 汎神觀으로 보면 神은 唯一의 全體로서 그 唯一全體가 어떤 적은 곳에도 그 전체 그대로가 個體的 形相으로 들어있다는 反對一致의 진리로 보면 現象界의 立場에서 개체영혼을 시인할 수 있고 그리하여 개체영혼은 영혼인으로서의 輪回轉生作用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有神論은 靈界를 인정치 않으면 成立되지 못하고, 靈界를 인정하면 靈界的 認識의 존재를 인정하여야 하고 靈界的 認識을 인정한다면 靈界의 個性的 存在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P.100./라 하였고 또 이돈화는 1972년도 판 二. 人間 其 者의 學 中에서 아래와 같이 力說하고 있다.
‘大我의 境涯 ! 이것은 神도 아니요 사람도 아니다. 神과 사람이 결합된 人乃天의 大境涯이다. 이것이 人間學의 究極이다. 再生復活로 인한 개벽적 새 우주신이다. 개벽적 새 우주신이란 것은 사람으로서 神을 直覺한 神 즉 인간으로서 神에 化한 神인데 이를 神의 편으로 보면 사람이 神에 歸依合一된 것이오 사람의 편으로 보면 神이 人間의 裡에 歸依된 것이다. 이것은 自力도 아니오 他力도 아닌 圓滿一致의 힘이며, 이것은 靈界도 아니오 物界도 아닌 地上神仙이며, 이것은 유심론도 아니요 유물론도 아닌 至氣一元論이다. 이러한 學을 人間其者의 學이라 칭한다. 수운선생은 學은 東學이라 하고 道는 天道라 한 後「吾道는 今不聞古不聞之事요 今不比古不比之法也」이라 하여 後天開闢의 유일한 人間學으로 자처한 것이다.’ P.256. / 원문 인용에 착오가 있다. P.115./라고 했다.
필자는 이돈화의 대표적인 교리 이론서들을 탐독하면서, ‘神의 편으로 보면 自我는 神의 依存的 存在요, 自我의 편으로 보면 神은 같은 원리(全的原理-1968년도 판) 自我 가운데 들어 있다. 이것이 人乃天의 自我觀, 個性觀이다.’ 라든가 ‘神은 어디까지든지 유일한 實在이며 本體로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절대 모순을 어떻게 해결 하는가? 이것이 一卽多 多卽一의 神의 原理이며 反對一致의 神의 眞理이다. 이는 神의 萬能에서 만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에 진리를 오해하고 人乃天의 우주관을 잊으면 그는 큰 邪念에 떨어지고 만다. 자포자기에 멸망에 빠지는 위험에 당면할 것이다. 神은 어디까지든지 超越者이며 唯一이며 統合的 人格者이다. 동시에 神은 萬有個體의 理性이며 自我의 內有神靈이다. 이 妙諦가 곧 人乃天이다.’이라는 설명에 납득할 수가 없었다. ‘人乃天의 우주관을 잊으면 그는 큰 邪念에 떨어지고 만다.’고 하였는데 유일신의 창조설과 무엇이 다르기에 잊으면 안 된다고 하는가.
‘이것이 一卽多 多卽一의 神의 原理이며 反對一致의 神의 眞理이다. 이는 神의 萬能에서 만 나타나는 것이다.’라 하였는데 反對一致의 神이란 어떤 신인가. 유일신인가 再生復活로 인한 개벽적 새 우주신인가? 또 개벽적 새 우주신은 또 무엇인가? 또 이 말은 무슨 말인가? ‘이것은 自力도 아니오 他力도 아닌 圓滿一致의 힘이며, 이것은 靈界도 아니오 物界도 아닌 地上神仙이며, 이것은 유심론도 아니요 유물론도 아닌 至氣一元論이다.’ 유물론과 至氣一元論이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가? 설명이 매우 부족하다. 허공에 맴도는 메아리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돈화는 ‘神은 어디까지든지 超越者이며 唯一이며 統合的 人格者이다. 동시에 神은 萬有個體의 理性이며 自我의 內有神靈이다. 이 妙諦가 곧 人乃天이다.’ 라 하였는데 人乃天은 또 다른 유일신이라는 의미일까“ 그래서 천도교의 신관을 一神論的 汎神觀이라 하였는가? 종교학의 일반론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용어이다. 一神論的 汎神觀을 올바로 이해시키려면 수운심법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애매모호한 용어를 써서 설명하는 것은 궁극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기존용어나 신조어의 의미를 새롭게 해설해야 할 것이다.
‘人乃天의 神觀, 一神觀的 汎神觀’과 ‘至氣一元論’이란 核心用語들에 대한 이돈화의 설명에 수긍할 수가 없었다. 이돈화가 활동했던 시대적 특수성과 천도교의 입장을 고려하고, 이돈화가 추구했던 천도교 교의의 논리화와 철학화를 바탕으로 지상천국건설에로의 사회화를 추구했다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다소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돈화가 『동학지인생관』에서 반성하고 추구하려했던 천도교의 미래지향적인 의도를 감안한다면, 이돈화가 천도교 신앙의 사회화에서 旣成宗敎와 類似한 宗敎的 信仰으로 回歸하려는 것에 대하여 필자는 납득하여 수용할 수가 없었다. ‘人乃天의 神觀, 一神觀的 汎神觀’과 ‘至氣一元論’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인 기성 종교학에서는 설명될 수 없는 천도교 교의에서만 설명되는 특수한 용어들이라 할 수 있다. 필자도 필자가 쓴 연구 논문들에서는 ‘人乃天의 神觀, 一神觀的 汎神觀’과 ‘至氣一元論’에 대하여 필자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설명은 하고 있지만, 이돈화나 필자가 설명하는 것들이, 水雲大神師께서 직접 體得하고 覺得한 水雲心法에 近接한 설명이라고는 壯談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필자가 아는 범위내서 아래의 글들을 발표한 바가 있다.
註 00 ; ‘人乃天의 神觀, 一神觀的 汎神觀’과 ‘至氣一元論’에 대한 참조 연구논문 들.
天道敎의 神觀定立에 對하여 / 부제; 천도교에는 신이 있는가?/ 포덕 152(2011)년 5월 7일.발표.
崔水雲의 神觀은 汎在神觀이 아니다. / 포덕 152(2011)년 7월 29일.발표.
天道敎는 어떤 宗敎인가? / 포덕 155(2014)년 2월 19일. 발표.
정혜정는「이돈화의 인내천주의와 서구근대철학의 수용」에서 이돈화가 저술한 『새말』에 기술한 천도교의 종교적 목적을 바탕으로 천도교 신앙의 정신과 신앙자세 그리고 가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돈화는 ’천도교의 정신이란 원래가 전통으로부터 유래하는 종교도덕과 현대의 사상을 기초로 하여 포용할 것은 포용하고 배제할 것은 배제하면서 후천 오만년의 대도대덕을 창건하자는 운동‘임을 선언했다. 동학은 끊임없이 전통과 현대사상을 포용하고 배제하면서 커가는 운동이다. 이돈화가 근대철학을 수용함에 있어서 중시한 작업은 전통의 성찰과 확고한 주체의 뿌리 세우기였다. 그는 조선의 전통을 성찰하여 비판을 가하는데 사상통제, 안빈낙도의 퇴굴(退屈)주의, 유가의 노예적 도덕이 그의 비판 대상이었다. /P.149.라고 평가했다.
김용환은「동학의 공공행복 전망과 실제」에서
‘오늘날 세계는 여러 가지 새로운 가치도전(價値挑戰)을 받고 있다. 새로운 가치도전에 대한 응답의 한 양상으로 파니카(R. Panikkar)의 “우주 신인론”(宇宙神人論) 전망을 들 수 있다. 동학은 시천주(侍天主)의 신앙을 제시한다. 우리는 동학의 시천주 신앙에서 역동적 조화의 우주신인의 전망을 발견할 수 있다. 동학은 타자와 더불어 행복한 ‘공공행복’을 위하여 “수심정기”(守心正氣)의 실천 가치와 “음양상균”(陰陽相均)의 덕목가치를 제시한다. 동학은 후천개벽의 공공시대 도래의 열망을 통하여, “세계시민주의(global citizenship)"와 상통하는 실천양식으로서 민족정체성과 세계시민성을 함께 살리는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동학의 ‘다시 개벽’을 통해, 우리는 공공행복 가치의 실천화용(實踐和用)으로서 생명상생(生命相生)의 실천양식을 모색할 수 있다. 그리고 동학의 공공행복 가치의 실천화용(實踐和用)을 위한 상호공경(相互恭敬)의 실천양식을 통해 공공행복 가치를 구현하는 과정을 고찰한다. 동학의 공공행복 가치구현을 위한 실천양식은 이념으로부터의 인간해방과 자유의 생명가치 실현을 목표로 삼는다. 자본주의 이념과 사회주의의 이념에서 벗어나 생명실상을 우주신인 공공전망으로 직관하고, 동학의 “내유신령”(內有神靈)과 “외유기화”(外有氣化) 상통으로 생명의 역동성을 발휘 할 때, 생명의 치유가 가능해진다. 동학은 지기(至氣)· 기화(氣化) 상통(相通)으로 수심정기의 실천 원리와 음양상균의 덕목원리를 제시함으로써 우주신인의 공공전망을 확인하게 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PP .119-136. 중에서. /「동학의 공공행복 전망과 실제」『윤리교육연구』 卷.32號.
창도 160년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중앙교단의 집행부에서부터 재가교인에 이르기 까지 위의 연구자들이 말하고 있는 천도교의 신앙과 다가올 미래세계의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무슨 준비를 하고 있을까? 를 다 같이 생각해보는 것도 후천개벽을 위하여 출발하려는 개벽군의 마음을 다짐해보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실어본다. 또 막연한 것이지만, 지금 천도교의 교리와 교사연구를 위하여 면학을 하고 있는 후학이 있다면, 梁漢黙이나 李敦化를 뛰어 넘어 교단의 미래를 이끌어 갈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 참고문헌 자료/追加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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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用天,「天道敎는 어떤 宗敎인가? 」 포덕 155(2014).2.19.
----------------------------『東學之人生觀』의 比較分析 硏究(11-11.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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