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한일 강제 합병의 숨은 공로자 가톨릭교회(신성국 신부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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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강제 합병의 숨은 공로자 가톨릭교회-
민족과 역사 앞에 진정으로 용서를 구해야
신학교 1학년 시기에 배우는 한국교회사는 한국 교회의 순교사화 중심으로 박해시대의 역사가 전부이다. 정확히 천주교 창립년도인 1784년부터 병인박해(1866년∼1873년)까지의 한정된 역사가 신학교 한국교회사이다. 천주교 박해시대 이후, 즉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한 식민지 시기의 교회 역사는 전혀 다루질 않는다.
이러한 호교론적 교회사는 신학생들에게 국가권력에 의해 핍박당하고 순교 당했던 교회의 역사만이 중요하고, 고난받는 민족에 대해서는 무관심해도 된다는 이분법적이고 편향적인 역사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교회의 우월의식, 성속 이원론에 매몰된 차별의식은 민족을 천대시하거나 민족과 괴리된 교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교회사를 배운 신학생들이 성직자가 되었을 때 과연 민족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매우 우려스럽다. 그런 우려들이 현실화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들끓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 주교회의는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고 침묵하며(2015년 추계주교회의), 천주교회 재단에서 운영하는 가톨릭대학들도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줌은 민족과 함께 하지 않는 교회임을 자인하고 있다. 민족의 고난은 뒷전이고, 극악무도한 패륜 정권하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교회와 무관한 일로 여긴다면 교회가 세상에 왜 존재해야 하는지 심각한 물음을 갖게 할 것이다.
뮈텔 주교의 일기장에 나타난 민족 배반의 역사는 아직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불의하고 부정한 친일정권의 손을 놓지 못하고 공존상생하는 모습은 여전하다.
뮈텔 주교는 일제 강점기에 교회를 보호하고 번영시켰다고 자부했지만, 그 성장과 번영을 위해서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긴 대사제 가야파의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뮈텔주교가 쓴 8권의 일기는 결국 순교사를 뒤엎은 민족 반역사와 반순교사를 생생히 기록한 고백록이 되고 말았으니 역설적으로 하느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
당시 한국 주교와 성직자들에게 일본의 한국 지배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한국을 통치하러온 통감들과 총독들과 친분을 돈독하게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사목이었다.
조선의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뮈텔 주교는 한일 합방늑약(경술국치, 1910년) 3년 전부터 이미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뮈텔 주교 일기 1907년 6월 13일 「일본 육군성 장관 데라우치 장군을 위해 일본 총사령부에서 오후에 주관하는 모임의 초대장이 와 있었다. 후루야 씨에게 참석하지 못하는데 대한 양해를 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1907년 10월 15일 「저녁 9시, 나는 이토 공(이토오 히로부미)로부터 오는 금요일, 2시 반 일본의 황태자가 참석하게 될 모임의 초대장을 받았다」
1907년 10월 18일 「일본 황태자 내한, 2시 반(동경시간)에 총영사들의 접견이 있었다. 나는 검은 수단 위에 보라색 망토를 걸쳤다. 황태자(일본) 전하 앞에서 세 번 인사를 했다. 황태자가 손을 내밀었다. 무라타 장군이 나를 소개하고 나의 직함을 소개했다. 황태자는 장군을 통해 나를 만나서 반갑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영광이라고만 대답했다」
뮈텔 주교는 일본 황태자를 전송하기 위해 주일 미사 집전을 다른 신부에게 맡기는 충성심을 보여준다.
1907년 10월 20일 「일요일, 9시 반 미사를 드리기로 되어 있었으나 황태자들을 전송하러 역에 가기 위해 대신 드리게 했다. (나는 거기있는 사람들에게 초대도 통보도 받지 않았지만 스스로 왔다고 했다) 나는 오늘이 주일이고 더구나 미사 시간인데도, 또 한번 빠짐으로써 주목을 끌어 눈에 띄지 않은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주일 미사 집전까지 다른 신부에게 맡기면서 일본 황태자를 전송하러 역까지 나간 천주교 최고 지도자의 행위를 보면 천주교의 친일행위가 얼마나 적극적이고 자발적이었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경술국치(한일 강제 합병, 1910년)의 공로자는 가톨릭 신자인 반 비르브리트라는 인물로 밝혀졌다.
뮈텔 주교 일기 1910년 8월 26일 「반 비르브리트 씨 덕분에 한국이 병합되고 그 조약이 29일에 공포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경술국치의 공로자인 반 비르브리트(Biervliet)는 누구인가?
1909년 12월 3일자 뮈텔 일기에 그에 대한 소개가 있다. 「며칠 전에 부임한 신임 대리 부영사(프랑스 부영사) 알퐁소 반 비르브리트 씨도 방문했다. 그는 어제 우리를 방문 왔었다. 그는 벨기에의 유명한 가문에 속하고 또 자신은 아주 열심한 가톨릭이기도 하다」
경술국치는 5천년 한국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런 사건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한국을 병합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인물이 가톨릭 신자였다니 교회가 민족에게 저지른 엄청난 죄악은 어떤 변명으로도 감당하기 힘들다. 이런 사실들을 왜 지금까지 숨기고, 속죄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이번 추계주교회의에서 고백성사의 중요성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정작 교회는 민족에게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 왜 아직까지 참된 고백성사를 하지 못하는가?
친일 독재 정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하여 반응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 자체가 반성도, 참회도 없는 태도가 아닌가.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서 과거를 회개하고 정직하고 용기 있는 자세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운동에 앞장설 때, 민족과 역사 앞에 진정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다. 그리하여 민족과 함께 하는 교회로 진정성을 보여주는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한다.
일제의 강제 합병에 대하여 데라우치 총독이 취임사와 뮈텔 주교의 소감은 똑같았다.
뮈텔 주교 일기 1910년 8월 26일 「이와 같은 협상에서(경술국치) 전 황제와 현 황제(즉 고종과 순종)가 얼마나 무기력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속국이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은가?」
데라우치 총독 취임사 「조선인은 일본 통치에 복종하든지 죽든지 하나는 택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과거의 당사자들을 힐난하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을 파악하고 일제 강점기 동안 고통을 받거나 억울하게 희생당한 분들을 기억하며 참회의 마음으로 기고하는 것임을 밝혀둔다.
신성국 신부
edit@catholicpress.kr
기사등록 2015-10-21 09:46:15
민족과 역사 앞에 진정으로 용서를 구해야
신학교 1학년 시기에 배우는 한국교회사는 한국 교회의 순교사화 중심으로 박해시대의 역사가 전부이다. 정확히 천주교 창립년도인 1784년부터 병인박해(1866년∼1873년)까지의 한정된 역사가 신학교 한국교회사이다. 천주교 박해시대 이후, 즉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한 식민지 시기의 교회 역사는 전혀 다루질 않는다.
이러한 호교론적 교회사는 신학생들에게 국가권력에 의해 핍박당하고 순교 당했던 교회의 역사만이 중요하고, 고난받는 민족에 대해서는 무관심해도 된다는 이분법적이고 편향적인 역사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교회의 우월의식, 성속 이원론에 매몰된 차별의식은 민족을 천대시하거나 민족과 괴리된 교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교회사를 배운 신학생들이 성직자가 되었을 때 과연 민족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매우 우려스럽다. 그런 우려들이 현실화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들끓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 주교회의는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고 침묵하며(2015년 추계주교회의), 천주교회 재단에서 운영하는 가톨릭대학들도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줌은 민족과 함께 하지 않는 교회임을 자인하고 있다. 민족의 고난은 뒷전이고, 극악무도한 패륜 정권하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교회와 무관한 일로 여긴다면 교회가 세상에 왜 존재해야 하는지 심각한 물음을 갖게 할 것이다.
뮈텔 주교의 일기장에 나타난 민족 배반의 역사는 아직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불의하고 부정한 친일정권의 손을 놓지 못하고 공존상생하는 모습은 여전하다.
뮈텔 주교는 일제 강점기에 교회를 보호하고 번영시켰다고 자부했지만, 그 성장과 번영을 위해서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긴 대사제 가야파의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뮈텔주교가 쓴 8권의 일기는 결국 순교사를 뒤엎은 민족 반역사와 반순교사를 생생히 기록한 고백록이 되고 말았으니 역설적으로 하느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
당시 한국 주교와 성직자들에게 일본의 한국 지배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한국을 통치하러온 통감들과 총독들과 친분을 돈독하게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사목이었다.
조선의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뮈텔 주교는 한일 합방늑약(경술국치, 1910년) 3년 전부터 이미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뮈텔 주교 일기 1907년 6월 13일 「일본 육군성 장관 데라우치 장군을 위해 일본 총사령부에서 오후에 주관하는 모임의 초대장이 와 있었다. 후루야 씨에게 참석하지 못하는데 대한 양해를 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1907년 10월 15일 「저녁 9시, 나는 이토 공(이토오 히로부미)로부터 오는 금요일, 2시 반 일본의 황태자가 참석하게 될 모임의 초대장을 받았다」
1907년 10월 18일 「일본 황태자 내한, 2시 반(동경시간)에 총영사들의 접견이 있었다. 나는 검은 수단 위에 보라색 망토를 걸쳤다. 황태자(일본) 전하 앞에서 세 번 인사를 했다. 황태자가 손을 내밀었다. 무라타 장군이 나를 소개하고 나의 직함을 소개했다. 황태자는 장군을 통해 나를 만나서 반갑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영광이라고만 대답했다」
뮈텔 주교는 일본 황태자를 전송하기 위해 주일 미사 집전을 다른 신부에게 맡기는 충성심을 보여준다.
1907년 10월 20일 「일요일, 9시 반 미사를 드리기로 되어 있었으나 황태자들을 전송하러 역에 가기 위해 대신 드리게 했다. (나는 거기있는 사람들에게 초대도 통보도 받지 않았지만 스스로 왔다고 했다) 나는 오늘이 주일이고 더구나 미사 시간인데도, 또 한번 빠짐으로써 주목을 끌어 눈에 띄지 않은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주일 미사 집전까지 다른 신부에게 맡기면서 일본 황태자를 전송하러 역까지 나간 천주교 최고 지도자의 행위를 보면 천주교의 친일행위가 얼마나 적극적이고 자발적이었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경술국치(한일 강제 합병, 1910년)의 공로자는 가톨릭 신자인 반 비르브리트라는 인물로 밝혀졌다.
뮈텔 주교 일기 1910년 8월 26일 「반 비르브리트 씨 덕분에 한국이 병합되고 그 조약이 29일에 공포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경술국치의 공로자인 반 비르브리트(Biervliet)는 누구인가?
1909년 12월 3일자 뮈텔 일기에 그에 대한 소개가 있다. 「며칠 전에 부임한 신임 대리 부영사(프랑스 부영사) 알퐁소 반 비르브리트 씨도 방문했다. 그는 어제 우리를 방문 왔었다. 그는 벨기에의 유명한 가문에 속하고 또 자신은 아주 열심한 가톨릭이기도 하다」
경술국치는 5천년 한국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런 사건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한국을 병합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인물이 가톨릭 신자였다니 교회가 민족에게 저지른 엄청난 죄악은 어떤 변명으로도 감당하기 힘들다. 이런 사실들을 왜 지금까지 숨기고, 속죄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이번 추계주교회의에서 고백성사의 중요성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정작 교회는 민족에게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 왜 아직까지 참된 고백성사를 하지 못하는가?
친일 독재 정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하여 반응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 자체가 반성도, 참회도 없는 태도가 아닌가.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서 과거를 회개하고 정직하고 용기 있는 자세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운동에 앞장설 때, 민족과 역사 앞에 진정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다. 그리하여 민족과 함께 하는 교회로 진정성을 보여주는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한다.
일제의 강제 합병에 대하여 데라우치 총독이 취임사와 뮈텔 주교의 소감은 똑같았다.
뮈텔 주교 일기 1910년 8월 26일 「이와 같은 협상에서(경술국치) 전 황제와 현 황제(즉 고종과 순종)가 얼마나 무기력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속국이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은가?」
데라우치 총독 취임사 「조선인은 일본 통치에 복종하든지 죽든지 하나는 택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과거의 당사자들을 힐난하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을 파악하고 일제 강점기 동안 고통을 받거나 억울하게 희생당한 분들을 기억하며 참회의 마음으로 기고하는 것임을 밝혀둔다.
신성국 신부
edit@catholicpress.kr
기사등록 2015-10-21 09: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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