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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東學之人生觀의 比較分析 硏究(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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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댓글 0건 조회 2,382회 작성일 17-02-2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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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學之人生觀의 比較分析 硏究(11-10)

1968년도판 -전략-3.人間 其者의 學 P.254.
1972년도판 -전략-二. 人間 其 者의 學P.111.
1968년도판 -전략-宗敎는 그 이름과 마찬기로 原則的 宗敎는 여러 敎化가운데 종대가 되는 큰 가르침이라 할수 있다. 다른 여러 種類의 가르침은 그 종대되는 가르침에 依據하는 枝葉的인 敎育이라는 뜻이 包含되었다고 解釋할수 있다. P.255.
1972년도판 -전략-종교는 그 이름과 같이 「가장 마루되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卽 宗敎는 여러 敎化가운데 종대가 되는 큰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여러 종류의 가르침은 그 종대되는 가르침에 의거하여 枝葉的인 교육이라는 뜻을 包含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P.112.
註 00 ; 종대 - 종대는 파나 마늘 따위에서, 한가운데서 자라 올라오는 줄기를 말한다. 이 글에서는 중심적인 것 또는 핵심적인 것을 의미한다.
1968년도판 -전략-가령 物理化學 같은 것은 物理의 現象과 本質을 硏究하는 學인 故로 그는 客觀世界의 人間的 對象을 硏究하는 學이며, 農學 法學과 같은 것은 人間과 關係를 가진 學이라 할지라도 直接 人間 其者의 學은 아니다. 人間 其者의 學은 살아 있는 自我를 直接으로 硏究하는 學인 故로 人間學은 自我의 學이다. P.255.
1972년도판 -전략-가령 物理 化學 같은것은 物理의 본질과 현상을 연구하는 學인 고로 그는 純然한 객관적 비인간적 대상을 연구하는 學이며, 農學 法學과 같은것은 人間과 관계를 가진 學이라 할지라도 직접 인간 그 자의 學은 아니다. 人間 그 자의 學은 살아 있는 自我를 직접으로 연구하는 學인 고로 인간학은 自我의 學이다. PP. 112-113.
1968년도판 -전략-그러므로 直覺과 直觀의 敎育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요 그리하여 直觀의 敎育은 他人의 訓敎에 依하여 되는 것이 아니요 直接自己의 實踐自覺에 原因한 것인 故로 自己로서 自己를 敎育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自己로서 自己를 敎育한다는 것은 말부터가 알아 듣기 어려운 것이니 만큼 要領을 捕捉하기가 困難하다. P.256.
1972년도판 -전략-그러므로 그것은 直覺과 直觀의 교육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요 직접 자기의 실천 자각에 의한 것이므로 자기로써 자기를 교육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자기로서 자기를 교육한다는 것은 그 말 부터가 알아 듣기 어려운 것이니 만치 요령을 잡기가 곤난하다. P.114.
1968년도판 -전략-人間 自己를 超越者에서 찾아 가지고 大戰 或은 眞我로 認定하는 大無的見解를 가지는 곳에 人間은 처음으로 人間 自我의 端緖를 잡게 된다. P.256./大戰과 大無的見解은 大我와 大乘的見解의 잘못임.-오암.
1972년도판 -전략-인간 자기를 超越者에서 찾아가지고 그를 大我 혹은 眞我로 인정하는 大乘的 見解를 가지는 곳에 인간은 처음으로 인간 自我의 端緖를 잡게 된다. P.114.
1968년도판 -전략-水雲先生은 「무궁한 이 理致를 무궁히 살펴내면 無窮한 이 울속에 무궁한 「네」아닌가」하였다. P.256./ 「興比歌」末尾의 法說과는 다르다. 원문을 참조할 것.-오암.
1972년도판 -전략-수운 선생은 曰, 「무궁한 그 이치를 무궁히 살펴내면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아닌가」라고 하셨다. PP. 114-115.
註 00 ; 「興比歌」末尾의 法說 原文
그말저말 다하자니 말도많고 글도많아
약간(若干)약간 기록(記錄)하니 여차(如此)여차 우여차(又如此)라
이글보고 저글보고 무궁(無窮)한 그이치(理致)를
불연기연(不然其然) 살펴내어 부야흥야(賦也興也) 비(比)해보면
글도역시(亦是) 궁(無窮)하고 말도역시 무궁이라
무궁히 살펴내어 무궁히 알았으면
무궁한 이울속에 무궁한 내아닌가⑦
1968년도판 -전략-水雲先生은 學은 東學이라 하고 道는 天道라한 後「曰吾道今不聞古不聞之事 今不比古不比之法也 」이라 하여 後天開闢의 唯一의 人間學으로 自處하였다. P.256. / 원문 인용에 착오가 있다.「論學文」의 原文을 참조하기 바람 -오암.
1972년도판 -전략-수운선생은 學은 東學이라 하고 道는 天道라 한 후「吾道는 今不聞古不聞之事 今不比古不比之法」이라 하여 後天開闢의 唯一의 人間學으로 自處하였다. P.115.
註 00 ; 「論學文」의 原文
曰同道言之則 名其西學也 曰不然 吾亦生於東 受於東 道雖天道 學則東學 況地分東西 西何謂東 東何謂西 孔子生於魯 風於鄒 鄒魯之風 傳遺於斯世 吾道受於斯布於斯 豈可謂以西名之者乎 ⑩
曰毁道者何也 曰猶或可也 曰何以可也 曰吾道今不聞古不聞之事 今不比古不比之法也 修者如虛而有實 聞者如實而有虛也 ⑯
1968년도판 -전략-第三章 性과 個性/ 個性과 個性의 誤謬./1963년도 판은 脫字가 없음./ ‘個體와 個性’이 올바른 제목인 것 같다.
1. 持續存在와 依存存在 P257.
1972년도판 -전략-第三章 個體와 個性/個性이 個體로 됨.
一. 持續存在와 依存存在 P.117.
1968년도판 -전략-이 境遇에 前階級의 持續的 存在이던 것이 이 階級에서는 依存的 存在者가 된다. P.257.
1972년도판 -전략-이런 경우에 前段階에 지속적 존재자이든 것이 이 계단에서는 의존적 존재자가 된다. P.118.
1968년도판 -전략-前述한 不然其然章에 쓰여 있는「而千古之萬物兮 所見而論之則其然이 似然하여 所自而度之則其遠甚遠하고 其理極深이라.」한「所自」의 問題에 있다. -중략- 卽 究極原理인 超越者에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付之於造物者則其然又其然」이라 하였다. P.257./ 其理極深이라. 는 글은 不然其然章에 없다.-오암.
1972년도판 -전략-前述한 不然其然章에 써 있는「而千古之萬物兮이 各有成 各有形이로다. 所見而論之則 其然而似然이로되 所自而度之則 其遠甚遠하니 是亦 杳然之事요 難測之言이로다.」한「所自」의 문제가 있다. -중략- 즉 究極原理인 超越者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付之於造物者 則 其然 其然 又 其然之理哉」라 하였다. P.118.
註 00 ; 「不然其然」의 原文. 비교바람.
歌曰 而千古之萬物兮 各有成各有形 所見以論之則 其然而似然 所自以度之則 其遠而甚遠 是亦杳然之事 難測之言 我思我則 父母在玆 後思後則 子孫存彼 來世而比之則 理無異於我思我 去世而尋之則惑難分於人爲人 ①
是故 難必者不然 易斷者其然 比之於究其遠則 不然不然 又不然之事 付之於造物者則其然其然 又其然之理哉 ⑥
1968년도판 -전략-持續的 存在(本體)와 依存的 存在(生滅)를 二大別로 보면 神과 宇宙로 나누어 볼수 있고 宇宙現象을 順次와 階段으로 나누어 보면 無數의 持續과 依存의 階段을 갈라 놓게 된다. 例를 들면 宇宙全體를 持續者 萬有는 生滅者이며 萬有中에도 一例를 들면 人間全體는 持續者요 個體는 生滅者이다. 그리하여 持續者의 持續者는 神 卽 超越者이다. PP.257-258.
1972년도판 -전략-지속적 존재(本體)와 의존적 존재(生滅)를 二大別로 갈라 보면 여기서 우수한 지속과 의존의 계단이 생긴다. 例를 들면 우주 전체는 지속자이고 萬有는 生滅者이며 萬有 중에도 인간 전체는 지속자이고 개체는 생멸자이다. 그리기 때문에 지속자의 지속자는 神, 卽 超越者이다. P.119.
1968년도판 -전략-왜 그러냐하면 그는 唯一無二의 屬性인 까닭이다. 神의 屬性은 時空을 超越한 까닭이다. P.258.
1972년도판 -전략-왜 그러냐 하면 그것은 유일무이한 神의屬性인 까닭이며 神의 속성은 時空을 초월한 까닭이다. P.120.
1968년도판 -전략-2. 個性 P.258.
1972년도판 -전략-二. 個性 P.120.
1968년도판 -전략-自我란 무엇인가? 데칼트와 파스칼의 名句를 빌어보자.「나는 生覺한다 그러므로 내가 있다.」(데칼트) 「사람은 한 개의 갈대다. 그러나 生覺하는 갈대다.」(파스칼) P.258.
1972년도판 -전략-自我란 무엇인가? 데카르트와 파스칼의 名句를 빌어보자.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데카르트)
「사람은 한개의 갈대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파스칼) P.120.
註 00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틴어인 Cogito, ergo sum」은 데카르트(R. Descartes, 1596 - 1650)가 방법적 회의 끝에 도달한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라틴어 명제이다. 데카르트는 애초에 《방법서설》에서 이 명제를 프랑스어로 썼지만( "Je pense, donc je suis"), 라틴어로 된 명제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후일 《철학 원리》에서 “우리가 의심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의심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라틴어 명제를 제시하였다. “라틴어: dubito, ergo cogito, ergo sum 두비토, 에르고 코기토, 에르고 숨/ 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생각하는 나"라는 개념에서 코기토를 사용한 바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의주의를 배격하기 위해 확고한 진리의 바탕이 되는 개념으로서 코기토를 사용하였다. 데카르트는 중세 초의 이러한 주장을 근세의 자연 철학을 위해 다시 살려낸 것이다.
데카르트는 여타의 지식이 상상에 의한 허구이거나 거짓 또는 오해라고 할지라도 한 존재가 그것을 의심하는 행위는 최소한 그 존재가 실재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식(이 경우엔 자각)이 있으려면 생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숨은 인식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으며 서양 철학의 근간에 영향을 준 명제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과학자이고 ·철학자로 알려졌다. 저서로는 《방법서설》·《성찰》·《철학의 원리》·《정념론》이 있다./위키 백과사전과 관련 자료에서 정리.
註 00 ; 「사람은 한개의 갈대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는 말은 파스칼의 생각의 모음집(暝想錄이라고도 함)인「팡세( Pensees)」에 실려 있는 말이다. 팡세(Pensees)란 프랑스어로 ‘생각’이나 ‘사상’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17세기 중엽의 프랑스의 물리학자이며 수학자이고 문학적 영감이 번득이는 예술가로 알려진 파스칼(Blaise Pascal, 1623 - 1662)은 "인간은 한 포기 연약한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자연 중 가장 약한 존재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roseau pensant)이다. 인간을 쓰러뜨리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 가닥의 증기, 한 방울의 물만으로도 충분히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쓰러뜨린다 해도 인간은 자기를 죽이는 자보다 고귀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가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우주가 자기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우주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존엄한 것은 그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을 통해 스스로를 높여야 한다.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이나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러므로 인간은 생각을 잘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이것이 바로 도덕의 근본이다. 인간은 끝없이 넓은 우주 가운데 홀로 서있는 하나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바람이 조그만 불어도 흔들리고 꺾이는 존재이다. 물 한 방울로도 충분히 죽일 수 있는 한없이 약한 존재가 인간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냥 갈대가 아니다. 생각하는 갈대이다. 공간으로 치면 우주는 인간을 하나의 점으로 감싸지만 인간은 생각의 힘으로 우주를 감싼다. 인간은 생각을 통해 우주를 끌어안을 수 있는 위대한 존재가 인간이다. 생각을 통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자유스러운 존재이다. 라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했다.
파스칼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존엄성은 공간이 아니라 사고에서 비롯되고. 인간이 아무리 넓은 영토를 가진다하더라도 자기 것 이상은 소유할 수 없다. 하지만 사고의 영역은 끝이 없고, 끝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은 한없이 높아질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공간이 아니라 사고에서 나온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늘 올바르게 생각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이란 한없이 위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없이 비천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올바르게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는 깨어있는 자세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은 결국 생각하지 않으면 인간도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팡세』(Pensées, "생각"이라는 뜻)는 블레즈 파스칼이 쓴 책이다. 파스칼이 죽은 뒤인 1670년, 그의 유족과 친척들이, 파스칼의 글 묶음을 모아 『종교 및 기타 주제에 대한 파스칼 씨의 팡세(생각)』라는 제목으로 펴낸 것이, 팡세라는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각종 백과사전과 관련 자료 종합.
1968년도판 -전략-이 뿐 아니라 古今 哲人들이 다 같이 이 念의 絶對重要性을 是認하였다. 「一念佛」「念地獄」「剋念作聖」「一念之善萬善神護之」「一念之惡萬惡是從之」等 文句는 可히 百千을 들 수 있다. 水雲先生의 名句中에는 「永世不忘萬事知」「念念不忘卽至於至聖」「一念在玆萬事如意」等이 있다. P.258.
1972년도판 -전략-이 뿐 아니라 古今 哲人이 다 같이 이 「念」의 절대 중요성을 시인하였다. 「一念成佛」「一念地獄」「剋念作聖」「一念之善萬善神護之 一念之惡萬惡鬼從之」等等 文句는 可히 百千을 들 수 있다. 수운선생의 名句 중에는 「永世不忘 萬事知」「念念不忘卽至於至聖」「一念在玆 萬事如意」라는 말씀이 있다. PP.120-121.
註 00 ; 一念成佛 - 華嚴經을 근거로 하여 중국의 화엄종이 형성되었다. 화엄종의 경서인 華嚴經안에 法界緣起가 있다. 法界緣起란 불교의 계파 중 화엄종에서 현상세계 그대로가 진실의 세계, 즉 진여(眞如)라고 보는 철학적 견해를 의미한다.
『華嚴經』에 일관되어 있는 유심설(唯心說)에 근거해 성립된 법계연기는, 모든 사물과 사상(事象)이 자유자재로 서로 의지하는 바가 되어 한없이 교류하고 융합해 생겨나고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법계무진연기'(法界無盡緣起)·'중중무진연기'(重重無盡緣起)라고도 한다. 『華嚴經』에 나오는 유명한 유심 게송은 "삼계는 허망으로서 다만 이 일심(一心)이 만들어낸 것이며, 12연분(十二緣分)은 모두 마음에 의한다"고 설한다. 법계연기설은 이로부터 전개된다. 즉 그러한 유심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에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도 한 순간과 구별되지 않으며, 오랜 시간의 세계가 한 순간에 담겨 있다. 따라서 "처음 마음을 일으킬 때 곧바로 정각을 성취한다."고 하여 '일념성불'(一念成佛)을 주장한다. 이렇게 무시간적 입장에서 관찰하므로 세계의 존재방식인 연기는 서로 동화하고 드나들며(相卽相入),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重重無盡)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 이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걸림이 없다. 이것을 사사무애라 하는데, 법계란 이 사사무애의 세계를 가리키며 이런 세계의 존재방식이 법계연기이다. 즉 세계의 모든 것이 마음이라는 법계를 바탕으로 해 저마다 개체로서 존재하면서 서로를 내포해 통하고, 하나와 일체가 중중무진으로 일치해가는 동시에 전개함을 말한다. 그리하여 법계연기는 "하나가 곧 일체이고 일체가 곧 하나"(一卽多多卽一)라는 등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근저에는 모든 것이 아무런 실체성이나 고정성도 지니지 않는다는 무성의 사상이 있다./과련 자료 종합
註 00 ; 一念地獄 -『法苑珠林』에서 一念之差로 인하여 一念之惡能開五不善門/일념의 사악함이 다섯 가지 不善의 문을 열어주고 一念之善能除累劫之殃/일념의 착함이 누대에 걸친 재앙을 없애준다./一念天堂,一念地獄(One thought Heaven, One thought Hell)
『法苑珠林』은 총 100권 100편으로 구성된 불교의 백과전서다.『法苑珠林』은 불학 측면에서 최초의 불교 백과전서라는 점, 중국과 인도의 세계관이 잘 융합했다는 점 등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문학 측면에서도 풍부한 서사와 상상력으로 인해 중국 서사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방대한 분량 가운데에서 『法苑珠林』이 중국 불교사와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자료이다.
불교 유서 편찬의 새 장을 열었다 불교학사에서 『法苑珠林』은 최초이자 최대의 불교 백과전서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法苑珠林』은 위진남북조 시대를 거쳐 당대에 접어들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한 중국 유서(類書) 편찬의 시대적 분위기와 맥이 닿아 있다. 중국의 고유 유서의 분류 방식인 ‘하늘(天) → 땅(地) → 사람(人) → 사건(事) → 사물(物)’이라는 주제별 분류 방식의 영향을 받고, 여기에 불교의 경(經)·율(律)이 가지는 본래의 체제를 곁들여 세부 항목을 나눴다. 또한 인도 불학의 이론을 기초 삼아, 중국과 인도의 문화적 특징을 융합하여, 불경과 함께 중국의 속서(俗書)들을 널리 인용하여 편찬한 결과물로서, 규모가 방대할 뿐 아니라, 내용과 논리가 세밀하고, 전거가 풍부하게 갖추어져 있어, 가히 불교 유서 편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法苑珠林』에 담겨 있는 중(中)·인(印) 문화 융합의 가치를 언급해야 할 것이다. 불교는 인도 문명의 산물로서, 거기서 제시된 우주관·인생관 등의 철학적 이론은 필연적으로 중국 본래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고, 이러한 상황에서 불교의 교리를 설파할 때, 그것은 중국 본래의 문화적 관념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法苑珠林』은 불전을 광범위하게 인용하는 것 외에도, 불교 외의 중국 전적들을 널리 수록하여, 그것으로 불법에서 설파하는 것이 거짓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외전(外典)의 인용은 중국 고대 성현들의 권위를 빌려 불법의 입지를 다지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 다른 측면에서는 중국의 지괴(志怪) 이야기를 널리 채록하여 중국 지괴를 역사 기록의 한 부분으로 설정하고 있다. 도세는 중국 고유의 이야기들을 널리 인용하여 그것을 불법 신봉의 도구로 삼고 있다. 즉 이런 방식을 통하여 중국의 문인과 민중들이 불법의 내용을 더욱 신봉하게 만들고, 나아가 인도 문화와 중국 전통 문화 간의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을 했던 것이다.
중국 문학사에서 『法苑珠林』은 그 안에 담겨 있는 풍부한 서사와 상상력으로 인해 중국 서사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法苑珠林』 정문 속에 인용되어 있는 불경 고사들은 많은 부분이 인도 민간 고사에서 기원한 것들이다. 인도는 예부터 세계 민간 고사의 보고로 일컬어져 왔는데, 이는 인도의 민간 고사가 수량이 방대할 뿐 아니라 종류와 내용 면에서도 풍부함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인도 불교는 난해한 육도윤회(六道輪回)나 인과응보 등의 사상에 대해, 이를 민간 고사와 같은, 거칠고 소박하긴 하지만 형상성이 풍부한 감성적 방식으로 민간에 전파하여, 민간 문학 예술의 한 장르로 편입시켰다. 승려나 불교도들이 편찬한 이런 고사집들은 민중 불교의 확산과 숭불(崇佛)의 실천에 일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소설의 형식을 빌려 생동적이고 분명하게, 간결한 문체로 쓰였다. 불전 속에 수록된 이런 이야기들의 내용과 표현 기법은 중국 서사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法苑珠林』의 정문뿐 아니라 『法苑珠林』100편 가운데 총 73편의 말미에 수록되어 있는 ‘감응연(感應緣)’ 항목 안에는 중국의 많은 감응 고사들이 증험(證驗)의 실례로 수록되어 있다. 감응연 수록 이야기는 육조 시기부터 당대 초기까지 불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명상류 지괴소설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명상류 지괴 이야기들은 그 서사 방식과 이야기 구조 등에서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 문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이전까지의 중국 본래의 소설과는 많은 점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불교 유입 이후 그것이 중국 서사문학에 가져다준 거대한 변화를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 지은이 도세(道世)에 대한 소개.
도세(道世)는 당 고종 때의 승려로 속성(俗姓)은 한씨(韓氏)이며, 자는 현운(玄惲)이다. 12세에 청룡사(靑龍寺)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청룡사와 자은사(慈恩寺) 등에서 불법(佛法)을 닦았으며, 후에 서명사(西明寺)의 최고 영수(領袖)가 되었다. 태종(太宗) 정관(貞觀) 말엽부터 고종(高宗) 현경(顯慶) 연간까지 현장(玄奘) 법사가 자은사에서 서역 불경의 번역 사업을 진행할 때 황제에 의해 발탁되어 역경(譯經)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후에 서명사로 초빙되어 중국 율종(律宗)의 시조인 도선율사(道宣律師)와 함께 기거했다. 출가한 이래 율종을 받들어 불법 가운데에서도 율의(律儀)에 특히 통달하여 도선과 함께 당시 최고의 불교 거장으로 꼽힌다. 도선율사와 불교의 포교에 힘쓰는 한편 저술에도 주력했다. 도세의 저술 편찬 업적은 전적(典籍)의 종류에 따라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초소(鈔疏)와 주경(注經) 같은 경전 해설류의 전적들로, 『사분율토요(四分律討要)』 5권과 ≪사분율니초(四分律尼鈔)』 5권, 그리고 『금강경집주(金剛經集注)』 3권 등 총 10부(部) 153권의 전적을 정리했고, 두 번째는 율종 관련 전적으로 『수계의식(受戒儀式)』과 『예불의식(禮佛儀式)』 등의 저작을 남겼으며, 끝으로 다양한 불교 관련 지식들을 백과전서 형태로 모아놓은 철집류(綴輯類)로서 『법원주림≫과 『제경요집(諸經要集)』 등을 편찬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공력을 들였고, 또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역시 세 번째 부류의 전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입적(入寂)한 연도는 알 수 없으나, 입적 후 당시 사람들이 그를 호법보살(護法菩薩)로 칭송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관련 자료들에서 종합 정리.
註 00 ; 剋念作聖 - 千字文 26장에 景行維賢 剋念作聖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큰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 되니, 자잘한 생각을 이겨 나간다면 聖人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詩經』에 이르기를 “높은 산을 우러러보고 마땅한 도리를 행한다(高山仰止 景行行止)” 하였고, 『書經』에 이르기를 “聖人도 잘못된 마음을 가지면 狂人이 되고, 광인이라도 생각을 잘 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維聖 罔念作狂 維狂 克念作聖)”고 하였다. 큰 길로 가라는 말은 바른 길을 가라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비판을 의식하며 몸조심, 마음 조심 하라고 조언이다./관련 자료에서 종합
.
註 00 ; 一念之善萬善神護之 一念之惡萬惡鬼從之-出處 不明/오직 착한 마음을 가지면 수많은 좋은 일들을 신이 불러주고 지켜주며, 오직 사악한 마음을 가지면 수많은 나쁜 재앙을 불러오고 악귀가 쫒아 다닌다.
註 00 ;「永世不忘 萬事知」- 弟子呪文 中, 本呪文 : 侍 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註 00 ;「念念不忘卽至於至聖」- 論學文 中, 知者 知其道而受其知也故 明明其德 念念不忘則 至化至氣 至於至聖 ⑬
註 00 ;「一念在玆萬事如意」- 歎道儒心急 中, 固我心柱 乃知道味 一念在玆 萬事如意
1968년도판 -전략-파스칼의 말과 같이 나는 갈대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 그를 破壞 함에는 巨大한 힘을 빌릴 必要가 없다. 한방울의 물, 一點의 불로도 넉넉히 그 生命을 奪取할수 있다. 人間의 肉體는 그렇게 弱한 것이다. 그러나 人間의 思想은 어떠한가? 天上天下를 그 속에 넣고도 남지 않는가? 自我中에서 念을 除去한다면 自我는 一個의 土塊가 되고 만다. P.259.
1972년도판 -전략-파스칼이 말했듯이 「인간은 자연 중에서 가장 연약한 하나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는 생각하는 갈대다. 나를 없애기 위해서 이 우주가 온통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가닥의 수증기나 한방울의 불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비록 우주가 그를 삼켜버린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여전히 자기를 죽이는 자보다 고귀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과 이 우주가 힘에 있어서 자기를 능가함을 알고 있지만, 그러기에 우리의 존엄성은 사고(念)에 있는 것이다.」인간의 육체는 그렇게 약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상은 어떠한가? 天上天下를 그 속에 넣고도 남지 않는가? 자아 가운데서 「念」을 제거한다면 自我는 한줌의 흙이 되고 만다. P.121.
1968년도판 -전략-이것을 古今에 佛心이라 하며 道心이라 하며 天心이라 하며 天命之謂性이라한것 또는 佛敎에서 말하는 未邦識 阿賴 邦識과 같은 것을 이름이다. 卽 念이라는 것은 어떤 存在가 肉體的 五官의 感覺과 合하여 일어나는 現象에 지나지 않는다. 念의 背後 卽 自我의 探究 卽 本質 中에는 五官을 經由치 않는 本來的 存在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佛心天心等인데 水雲先生은 이를 「內有神靈」이라 命名하였다. 內有神靈은 肉體와 念 을 超越한 存在로 그는 神으로 直接投射된 神의 理念이다. 自我의 本質은 內有神靈으로서 거기에서 外有氣化가 일어나고 內有神靈의 靈 波와 生理의 氣化로서 念의 作用이 일어나는 것이다. P.259./ 水雲의 內有神靈의 의미와 外有氣化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중요한 내용이라 고딕체로 표시함. 內有神靈의 의미와 外有氣化의 상관관계를 설명한도해가 P.260.에 있으니 필독할 것. 1972년도 판은 PP.123-124. -오암.
1972년도판 -전략-이것을 古今에 佛心이라 하며 道心이라 하며 天心이라 하며 天命之謂性이라 하며 佛敎에서 말하는 未邦識 阿賴 耶識과 같은 것을 이름이다. 즉 念이라는 것은 어떤 존재가 육체적 五官의 감각과 합하여 일어나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念의 背後 卽 自我의 探究 卽 本質 中에는 五官을 經由치 않는 本來的 存在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佛心天心等인데 水雲先生은 이를 「內有神靈」이라 命名하였다. 內有神靈은 肉體와 念 을 超越한 存在로 그는 神으로 直接投射된 神의 理念이다. 自我의 本質은 內有神靈으로서 거기에서 外有氣化가 일어나고 內有神靈의 靈波와 生理의 氣化로서 念의 作用이 일어나는 것이다. P.122.
註 00 ; 未耶識 - 사물의 근원과 본질에 대하여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마음. 輪回의 근본 원인은 無明(我寲)이며, 唯識思想은 무명의 근거를 我執에서 찾고서 심층적인 我寲의 근원으로서 未耶識을 발견하였고 世親(Vasubandhu 316-396 /AD 4세기에 활동한 인도의 불교철학자·논리학자/天親이라고 한다)은 이것을 제 7識으로 확정하였다. 번뇌로 일어나는 衆生의 利己心과 自然破壞의 근원이 未耶識이며 我執과 法執의 근본원인이 未耶識이다./唯心佛敎의 八識說에서 일부 발췌.
註 00 ; 阿賴耶識 -해심밀경에 나오는 말로, '아다나(阿陀那 : adana)'란 번역하면 '집지(執持)'인데, 아뢰야의 다른 이름이다. 집지란 가진다는 말인데 선업이나 악업의 세력 등 모든 종자를 온전히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이 아다나식은 유정의 몸에 언제든지 따라다니는데, 이것이 없어지면 종자의 근본이 없어지므로 모든 識의 뿌리가 다 빠져버린다. '아뢰야(阿賴耶 : alaya)'는 '무몰(蕪沒)'이라고 번역하는데 이것은 없어지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 아뢰야식이 유정의 몸 가운데서 모든 것을 섭수하고 창고처럼 저장하여 편하든지 고생하든지 간에 늘 이것이 근본이 되어 활동이 야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성을 바로 깨치려면 아뢰야식을 두드려 부수지 않고는 절대로 대자유한 대열반을 증득할 수 없다. 일체의 종자를 또한 심(心: citta)이라고 하는데 이 식으로 말미암아 색성향미촉 등이 쌓이고 생장하기 때문다. 이와 같이 아다나식이 곧 아뢰야식이고, 아뢰야식이 곧 종자식이며, 종자식이 곧 심이다. 심의식(心意識)의 근본이다./관련 자료 아뢰야식설(阿賴耶識說)에서 발췌.
■唯識佛敎의八識說
八識說은 유식설(唯識說)에서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곧 一識은 眼識, 二識은 耳識, 三識은 鼻識, 四識은 舌識, 五識은 身識(意) 六識은 마음 七識은 정신 八識은 성품이다. 八識說 이외에도 六識說, 九識說도 있다. 육식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로서 범부는 이 육식만 발하여 쓰는 것이요 칠식은 빈자리를 관하면서 청정한 자리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심경이며 팔식은 청정한 진공자리에 들어있는 것이요 白淨識은 從心所欲不踰矩하는 경지로 진공과 묘유를 겸해 있는 것이며 이 백정식에 들어가면 육 칠 팔식을 잘 이용하게 된다. 認識 主管의 十二處는 六外入處에 色 聲 香 味 觸 法이 있고 六內入處에 眼 耳 鼻 舌 身 意가 있다. 마음이 분별이 나면 識이라 한다.
1968년도판 -전략-第三章 人間과 그 屬性/第三章은 第四章의 잘못. 1963년도 판도 同一.
1. 苦의 原理. P.261.
1972년도판 -전략-第四章 人間과 그 屬性
一. 苦의 原理. P.127.
1968년도판 -전략-人間의 原性中에는 苦의 原理가 가장 큰 基礎다. 그러므로 苦의 原理를 解決하면 人間은 그의 目的인 極樂天堂 天上天國大法悅의 境涯에 達한다. 苦란 무엇인가? 精神的 煩惱 肉體的 苦痛 生活的 不滿足 自然的 矛盾 社會的 不合理等의 總原理를 이름이다. 그러므로 어떤 宗敎의 원리든지 苦의 原理로 基礎를 하지 않은 것은 없다. 宗敎의 그 目的은 幸福에 達하고저 하는 理念일 것은 勿論이다. 그러나 基礎와 그 手段은 苦의 解脫로부터 始作되며 그리하여 苦의 解脫이 끝나는 곳에 宗敎의 目的은 達하는 것이다. P.261.
1972년도판 -전략-人間의 原性中에는 苦의 원리가 가장 큰 기초다. 그러므로 苦의 원리를 해결하면 인간은 그의 목적인 極樂, 天堂, 地上天國의 大法悅의 境涯에 달하게 된다. 苦란 무엇인가? 정신적 번뇌, 육체적 고통, 생활의 불만족, 자연적 모순, 사회적 불합리 등등의 총원리를 이름이다. 그러므로 어떤 종교의 원리든지 苦의 원리로 기초를 하지 않은 것은 없다. 종교의 그 목적은 행복에 달하고저 하는 理念일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기초와 그 수단은 苦의 해탈로부터 시작되며 그리하여 苦의 해탈이 이루어지는 곳에 종교의 목적은 달하게 되는 것이다. PP.127-128.
1968년도판 -전략-이 境遇에는 分裂은 單純한 分裂 文字그대로의 分裂만 하자면 分離와 같은 分裂이 아니고 矛盾 對立에 左右間的 分裂이 아니어서는 안된다. 分裂에 依하여 分裂의 各部分이 相互로 否定하는 矛盾 對立의 關係에 立한 意識인 것이다. 이러한 意識은 必然的으로 苦惱에 까지 이르는 것이다. 卽 分裂은 반드시 矛盾鬪爭을 惹起하고 鬪爭으로부터 必然으로 苦惱가 생기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分裂의 苦惱를 包藏한 意識이 宗敎的 意識이 된다. PP.261-262.
1972년도판 -전략-이 경우에는 분열은 문자 그대로 단순한 분리와 같은 분열이 아니고 모순 대립에 左右間的 분열이 아니면 안된다. 분열에 의하여 분열의 각 부분이 상호 부정하는 모순대립의 관계에 서 있는 意識인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필연적으로 고뇌에 까지 이르는 것이다. 즉 분열은 必然的으로 모순투쟁을 惹起하고 투쟁으로부터 필연적으로 고뇌가 생기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분열의 고뇌를 包藏한 의식이 종교적 의식이 된다. P.128.
1968년도판 -전략-佛敎徒들의 無明의 解釋은 實로 複雜하고 深遠한 哲理를 가졌다. 그러나 그는 理와 學을 硏究하는 意味에서 하는 것이오 그저 直覺으로 본다면「個體 卽 無明」이라 하는 것이 簡明하고 亦是 深遠한 理가 있다고 본다. 基督敎의 原罪說은 아담이라는 原人을 人類의 始祖라 하여 놓고 그의 犯罪原因이 後世 우리 子孫에게 先天的으로 遺傳되었다는 것이다. 實로 妙味가 있는 神話다. 神이 創造한 原祖 아담이 罪를 지었다는 것은 神의 無能을 表示하는 말과 같은 바 亦是「個性 卽 原罪」라 하는 意味로 解釋하는 것이 正大한 眞理라 볼수 있다. P.262.
1972년도판 -전략-불교도들의 無明의 釋尊은 實로 복잡하고 深遠한 天理를 가졌다. 그러나 그는 理와 學을 硏究하는 의미에서 그런 것이며 그저 直覺으로 본다면「個體 卽 無明」이라 하는 것이 簡明하고 深遠한 理가 있다고 본다. 기독교의 原罪說은 아담과 이브라는 原人을 인류의 시조라 하여 놓고 그의 범죄원인이 후세 우리 자손에게 선천적으로 유전되었다는 것이다. 실로 묘미가 있는 신화다. 神이 창조한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었다는 것은 神의 무능을 표시하는 말과 같은 바 역시「個性 卽 原罪」라 하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正大한 진리라 볼수 있다. P.130.
1968년도판 -전략-勿論 個性에는 利己本能과 反對되는 利己도 있는 것이다. 사람은 個體이면서 社會全體이므로 利己利他의 兩本能을 가진 것이다 그런데 利己本能은 個性의 便에 屬하고 利他本能은 社會의 便에 屬한 것이므로 利己本能은 本能 그대로 뿐 아니라 意識的 知識的으로 發達하나 그러나 그는 特殊的 敎化的 必然的으로 된다. 할 수 있다. 이 點에서 利己本能은 利他本能보다 露骨的 分裂意識을 낳게 한다. P.263.
1972년도판 -전략-물론 개성에는 利己本能과 反對되는 利他本能도 있는 것이다. 사람은 개체이면서 사회전체이므로 利己, 利他의 兩本能을 갖고 있다. 그런데 利己本能은 개성의 편에 속하고 利他本能은 社會의 편에 속한것이므로 利己本能은 본능 그대로 뿐 아니라 意識的 知識的으로 발달된다. 그리하여 그 소위 발달은 보편적 직관으로 되어지는 경향이 많다. 利他本能도 知識的으로 발달하나 그러나 그는 特殊的 敎化的 필연적성에 의해 되어 진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利己本能은 利他本能보다 노골적인 분열의식을 낳게 한다. P.131.
1968년도판 -전략-그러므로 苦는 人間 其者에 붙어다니는 一種의 惡魔이다.「兒生初器君知否落人間萬種」이라한 詩句는 詩人의 厭世的 氣分에서 나온 直唱이라 할지라도 一部分 哲學的 眞理가 들어있다. 「一落人間萬種能」, 萬種能은 分裂意識에서 나오게 된다. 分裂 卽 矛盾의 原理는 生死에서부터 始作된다. 生死는 個性이 있는 날부터 始作된 것이다. 生死는 矛盾의 始祖이며 分裂意識의 露骨이다. 生死로부터 宗敎意識이 生起 는 것이 當然 또 當然한 原理이다. P.263.
1972년도판 -전략-그러므로 苦는 인간 그 자와 붙어다니는 일종의 악마이다.「兒生初器君知否 落人間萬種愁」라고 한 詩句는 詩人의 염세적 기분에서 나온 直唱이라 할지라도 一部分 철학적 진리가 들어 있다. 「一落人間萬種愁」, 萬種愁는 분열의식에서 나오게 된다. 분열 즉 모순의 원리는 生死에서 시작된다. 生死는 개성이 있는 날 부터 시작된 것이다. 생사는 모순의 始祖이며 분열의식의 露骨이다. 生死로 부터 종교의식이 생기는 것이 當然 又 當然한 원리이다. PP.131-132.
註 00 ; 兒生初器君知否 落人間萬種愁/ 원시와 조금 다른 잘못된 引用句이다.
위의 詩句는, 조선조 후기에 생존했던 정지윤(鄭芝潤;1808년/순조 8년-1858년/철종 9년)의 『하원시초(夏園詩抄)』에 들어있는 失題 또는 無題의 詩句이다. 原詩는 다음과 같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疎狂見矣謹嚴休(소광견의근엄휴) 소박하고 소탈하게 보일뿐 근엄함을 삼가하였으니
只合藏名死酒樓(지합장명사주루) 다만 보잘 것 없는 이름은 감추고 술집에서 죽으리라.
兒生便哭君知否(아생편곡군지부) 아기가 태어나서 곧 우는 까닭을 그대들은 알 리가 없지만
一落人間萬種愁(일낙인간만종수) 一落西山같은 인생은 수많은 근심에 묻혀 살아가는구나.
■ 鄭芝潤 - 조선 말기 때의 시인으로. 자는 경안(景顔), 호는 하원(夏園), 별명은 정수동(鄭壽銅).이다. 태어날 때 손바닥에 「수(壽)」라는 글자가 문신(紋身)되어 있었고, 이름 지윤의 「芝」자는 漢書에 「芝生銅池」에서, 壽銅의「銅」자를 따서 수동(壽銅)이란 별명을 사용했다. 한다. 그는 생업을 돌보지 않고 세상을 유람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가난을 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회의 여러 모순에 불만을 느껴서 평생을 미친 사람처럼 행세했으나 그의 행동과 말에는 언제나 날카로운 풍자가 깃들었다. 두뇌가 명석하여 아무리 뜻이 깊고 어려운 문장이라도 한번 훑어보면 그 요지를 깨달았으며, 겸손하였고, 규율적인 생활을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평생 포의시객(布衣詩客)으로 만족했다. 김흥근(金興根)·김정희(金正喜)·조두순(趙斗淳) 등 명사들과 교분이 두터웠으나 그들의 도움을 거절하고 자유롭게 살았다.
위항시인(委巷詩人)으로서 대표적인 인물이면서 재밌는 일화들을 남겼다. 이러한 일화가 널리 유포되어 ‘기발한 익살꾼 정수동’으로 유명하였지만 50세에 과음으로 인하여 죽었다.시의 내용은 권력에 대한 저항 정신이 표출되었다. 또 시어에는 날카로운 풍자와 야유가 나타났으며 그는 시를 짓는 것은 구속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생각했다. 번거로운 문장이나 허황한 형식을 배격하고, 간결한 가운데에 높은 격조를 담은 시를 썼다.
“성령이 한번 붙으면 붓끝을 다할 따름이지, 시체나 신풍을 쫓거나 교묘하고 섬세한 것을 다투지 않는다.”는 성령론(性靈論)을 구현한 시인이다.
최성환(崔瑆煥)은 정수동의 시를 일컬어 고법(古法)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고법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평하였다. 그의 시는 기발하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아 한시에 있어서 일가를 이루었다. 저서로 『夏園詩抄』가 있다. / 관련 자료들에서 종합 정리.
------------------------------------東學之人生觀의 比較分析 硏究(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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