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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後經의 資料分析 比較硏究(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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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댓글 0건 조회 190회 작성일 16-10-21 23:05

본문

後經의 資料分析 比較硏究(10-6)

後經一下篇/印刷本과 後經一/謄寫本의 原文 比較 參照
下篇 /後經
聖師曰明中生暗暗中生明、
聖師曰暗中生明明中生暗
/ 後經
一章/ 後經 / 註 - 각 章에는 聖師曰과「正義」란 표시 없이 설명하고 있다.
道過三天心自昏風動細波空作喧白雲以上白雲下上以也聽下以論、
二章
聽不聽聽天心處知不知知我心邊浮花埋天脫萬劫虛舟駕波載百年、
三章
遍踏法界故家歸五色花葉簷外飛淸虛月色澹泊味空使主翁自足肥、
四章
上帝默默天久虛風動空竹初心生道必一貫也無二對物精神各有情
五章
無量大天寸心低風雲忽然萬里蹄枕上覺魂登中宵月下俱瞰也東西、
六章
人如日月非分時(人非日月非分時)斷然不作百年悲男兒留心天不休其壽必作百年知
등사본에서 人如日月非分時를 人非日月非分時로 잘못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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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篇/ 謄寫
明中生暗 暗中生明、暗中生明 明中生暗
一章/ 謄寫 / 詩句를 나누어 記述하고 있다.
道過三天心自昏、風動細波空作喧、白雲以上白雲下 上以也聽下以論、
二章
聽不聽聽天心處、知不知知我心邊、浮花埋天脫萬劫、虛舟駕波載百年、
三章
遍踏法界故家歸、五色花葉簷外飛、淸虛月色澹泊味、空使主翁自足肥、
四章
上帝默默天久虛、風動空竹初心生、道必一貫也無二、對物精神各有情
五章
無量大天寸心低、風雲忽然萬里蹄、枕上覺魂登中宵、月下俱瞰也東西、
六章
人非日月非分時、斷然不作百年悲、男兒留心天不休、其壽必作百年知
下篇/ 創建史本은 上中下를 합침. 위의 例示文 참조.
下篇/ 三部本은 上中下의 편 구분도 하지 않았고, 장 구분이 없다. 위의 예시문 참조.
下篇/ 經典本은 上中下의 편 구분도 하지 않았고, 장 구분이 없다. 위의 예시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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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經 二
上篇
註00; 後經 一과 같은 구성으로 각 편 각 행마다 聖師曰로 시작되고,「正義」라고 구분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後經二/印刷本은 문단의 구분이 되었고 後經二/謄寫本은 文段의 구분이 없이 이어져 謄寫되었다. 그리고 後經二/謄寫本은 直譯을 돕는 토(懸吐) 또는 조사들이 덧붙여 있다. 後經 二/創建本은 直譯을 더 많이 하고 있다. 後經 二/三部本은 後經 二/謄寫本 原文으로 돌아갔으나 띄어쓰기와 조사를 달리 하였다. 後經 二/經典本은 後經 二/三部本과 거의 같으나 조사 중에 일부가 修訂되었고 文章의 오른 쪽 옆에 讀音이 달렸다. 後經二/謄寫本 上篇, 中篇, 下篇으로 原文과 같이 分段하고 있지만 後經 二/創建本이후에는 上篇, 中篇, 下篇의 區分 없이 이어져 있다.
舊派의 관련 자료인 『天道敎書』에서는 後經一과 二 중 無體法說 다음에 구분 없이 後經二가 이어져 있고, 그 다음에 後經一의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현재의 『천도교 경전』에서도 無體法經 다음에 後經一과 二가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編纂過程과 內容을 미루어 볼 때 구파에서 중요시했던 의암의 법설은
第 二章 天道太元說 / 筆耕本 P. 1. / 현재의 경전에서는 天道太元經이라 함.
第 三章 大宗正義說 / 筆耕本 P. 2. / 현재의 경전에서는 大宗正義이라 함.
第 四章 無體法說 / 筆耕本 P. 4. / 현재의 경전에서는 無體法經이라 함.
第 五章 性靈出世說이었던 것으로 推定되고, 後經一과 二가 無體法說 다음에 구분 없이 이어서 수록한 것을 미루어 보면, 그 내용의 核心(敎義)이 無體法說과 類似하다고 判斷한 것으로 類推된다. 그러지 않고서는 單行本으로 刊行되었던 敎書를 제목을 따로 붙이지도 않고 任意로 無體法說과 구분하지 않고 이어서 편찬했다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그리고 收錄된 原文을 미루어 보면, 原文인 단행본인 後經一과 二를 底本으로 사용하지 않고 新派가 1933年에 刊行한 『天道敎 創建史』의 體裁와 直譯을 活用한 것으로 推定된다. 그리고 특이하게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있다. 이를 미루어 보아 『天道敎書』는 1933年이후에 간행된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하고 있다. 필자가 한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사전편찬실 김성근이 쓴 ‘『天道敎書 抄錄本』의 解說. / 천도교서(필사본) 동학 교주 年代記를 담은 교리강습 교재’ 를 바탕으로 추정하여 1925년의 신, 구파 葛藤을 起點으로 하여 구파계통의 강습교재로 판단하였으나 천도교서(필사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본 결과 1925년 전후의 간행은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점을 확실히 하여 위와 같은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後經二/筆寫本의 直譯에 있어 表記法이 古文套로 되어 있어 後經 二/創建本과 比較하여 表記法으로만 基準을 삼는다면, 後經 二/創建本보다 앞 선 時期에 刊行되었을 것이라고 錯覺할 수 있게 보이고 있다. / 後經二/筆耕本의 後經 二는 『天道敎書 筆耕本』第 三編 PP.13- 15.에 收錄되어 있다. 後經二/叢書本의 後經 二는 東學 天道敎略史 附 叢書/叢書本의 第 三編 義菴聖師法訓의 「無體法經」 末尾에 後經 (二)라고 분류하여 漢主國從體로 이어져 띄어쓰기를 하여 收錄되어 있다. 그리고 下篇인 「十三觀法」 全文이 省略되어 있다. PP. 249-25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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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經 二/印刷本/聖師曰性本無始心本無二萬法具體放天無量放地無邊收之亦不得基也
後經 二/謄寫本/性本無始오心本無二로되萬法具軆하야放天無量하며放地無邊이오收之ㅣ亦不得基也니라
後經 二/創建本/性은本是始 l 無하고 心은本是二 l 無하니 萬法이 軆가 具하야 天에放하여도 量이 無하며 地에放하여도 邊無하고 收하여도 또한基를 不得하나니라.
後經 二/三部本/性本無始하고 心本無二하니 萬法이 具軆하여 放天無量하며 放地無邊하며 收亦不得基也니라
後經 二/經典本/性本無始하고 心本無二하니 萬法이 具軆하여 放天無量하고 放地無邊하여 收之라도 亦不得基也니라
註00; 後經 二/謄寫本 이후는 聖師曰이 생략되고 있고, 後經 二/三部本의 末尾에 收之亦不得基也를 收亦不得基也 라 하여 之 字의 脫字가 생겼다.
後經二/筆寫本/性은本是 l 始 l 無하고心은本是 l 二 l 無하니萬法이軆 l 具하야天에放하여도量이無하며地에放하여도邊이無하고收하여도또한基를不得하나니라.
後經二/筆耕本/性은本是 l 始 l 無하고心은本是 l 二 l 無하니萬法이軆 l 具하야天에放하여도量이無하며地에放하여도邊이無하고收하여도또한基를不得하나니라.
後經二/抄稿本/性本無始心本無二萬法俱體放天無量放地無邊收亦不得基也
後經二/叢書本/性은本是始가 無하고 心은 本是二가 無하니 萬法이 軆를 具하여 天에 放하여도 量이 無하며 地에 放하여도 邊이 無하고 收하여도 또한 基를 不得이니라.
註 ; 後經二/筆寫本은 原文인 단행본인 後經一과 二를 底本으로 사용하지 않고 新派가 1920年에 출판한 天道敎書 謄寫本의 體裁와 直譯을 活用한 것으로 추정된다. 後經二/筆耕本은 後經二/筆寫本의 直譯과 同一하다. 後經二/抄稿本의 萬法俱體放天無量放地無邊收亦不得基也는 萬法具體放天無量放地無邊收之亦不得基也의 誤記. 後經二/叢書本은 全 文章을 後經二/筆寫本과 後經二/筆耕本을 거의 그대로 記述하되 띄어쓰기를 하고 있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성품은 본래 시원(始原)이 없고 마음은 본래 둘이 아니니, 만법이 체를 갖추어 놓아 살펴보아도 한울은 높고 광대해서 한량(限量)이 없고 땅은 넓어서 끝이 없어(無邊) 모든 것을 거두어드리려 하여도 거둬드릴 만한 터전을 얻지 못할 것이다.
※ 시원(始原) - 사물이나 현상 따위가 비롯되는 처음을 말한다.
※ 만법(萬法) - 우주간의 모든 존재(存在)와 법도/사상(事象).
※ 체(體/ t'i) - 중국 철학에서는 '본체'를 가리키며 '용'(用)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일부 철학가들은 무(無)· 이(理)·심(心)· 성(性) 등을 '체'로 여긴다. 예를 들어 왕필(王弼)의 〈노자주 老子注〉에서는 "비록 '무'를 '용'으로 여기는 것도 가치가 있으나, '무'를 버리고서는 '체'라고 여길 수가 없다", 〈주희문집 朱熹文集〉의 답하숙경서에서는 "'체'·'용'은 그 근원이 같은데 '이'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곧 '이'는 '체'이고 '상'(象)은 '용'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상'이 있으니 이것은 근원이 같은 것이다", 〈주자어류 朱子語類〉 권5에서는 "'성'(性)은 '체'이고 '정'(情)은 '용'이다"라고 했다.
한편 다른 철학자들은 유(有)· 기(氣)· 물(物)· 소(所) 등을 체라고 여긴다. 예를 들어 왕부지의 〈상서인의 尙書引義〉 권5에서는 "대저 '능'(能)· '소'(所)가 '용' ·'체'와 그 명칭이 다른 것은 부처가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며 사실상 그가 처음으로 지어낸 것은 아니다. 이른바 '능'이란 즉 '용'이요, '소'란 즉 '체'이다" 라고 했다. 출처/백과사전 편찬위원회
後經 二/印刷本/或問曰性本無始而有性有心何也
後經 二/謄寫本/或이問曰性本無始而有性有心은何也이닛고
後經 二/創建本/或이問曰 性이 本是無 l 性이 有하고 心 l 有함은 어찜이닛고
後經 二/三部本/或이問曰 性本無始이니 有性有心은 何也이까
後經 二/經典本/或이問曰 「性本無始이니 有性有心은 何也이니까」됨.
註 ; 後經 二/三部本에서 다시 謄寫本을 따르고 分節과 助詞를 조금 달리하고 있고, 後經 二/經典本은 後經 二/三部本을 따랐으나 질문내용에 대한 引用符號「 」를 사용하였다.
後經二/筆寫本/或이問하여曰性本是 l 始 l 無하거늘性이有하고心이有함은엇짐이닛고
後經二/筆耕本/或이問하여曰性이本是 l 始 l 無하거늘性이有하고心이有함은엇짐이닛고
後經二/抄稿本/或問曰性本無始有性有心何也
後經二/叢書本/或而問曰 「性이 本無 始가 有하고 心이 有함은 何也이니까.」
註 ; 後經二/筆耕本이 後經二/筆寫本을 저본으로 하고 있어 同一하리라 추측하고 있지만 사실은 相當部分를 修訂補完하여 좀 더 具體的인 資料로 만들고 있다. 以下 同一. 後經二/抄稿本/或問曰性本無始有性有心何也는 性本無始 다음에 而 가 漏落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어떤 사람이 물어보기를 「성품은 본래 시원(始原)이 없다고 하는데 성품이 있고 마음이 있는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後經 二/印刷本/聖師曰性者名也名爲有物後始得者始者太初有物之時也.
後經 二/謄寫本/聖師ㅣ曰性者ㅣ名也니 名爲有物後始得者오始者는太初有物之時也니라
後經 二/創建本/曰性은 名也 名은物이有한後에 始得한者요 始는太初有物.의時를 謂함이니라
後經 二/三部本/曰性은 名也요 名은 有物而後에 始得한 者也니 始謂太初有物之時也니라
後經 二/經典本/曰「性者는 名也니 名爲有物後에 始得者也요 始者는 太初有物之時也니라
註 ; 後經/謄寫本에서는 주격조사 l 가 사용되었다. 後經 二/三部本은 後經 二/創建本을 따라 했고 後經 二/經典本은 後經 二/印刷本를 따라 助詞를 더했다.
後經 二/筆寫本/曰性은名이니名은物이有한後에始得한者오始는太初有物의時를謂함이니라
後經 二/筆耕本/曰性은名이니名은物이有한後에始得한者오始은太初有物의時를謂함이니라
後經 二/抄稿本/曰性名也名有物而後始得者始者也始謂太初有物之時也.
後經 二/叢書本/曰 「性은 名也니 名은 物이 有한 後에 始得한 者오 始는 太初有物의 時를 謂함이니라」
註 ; 後經二/抄稿本/曰性名也名有物而後始得者始者也始謂太初有物之時也.는 曰性者名也名爲有物後始得者始者太初有物之時也.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성사께서 대답하여 말하시기를 「성품이란 것은 이름일 따름이니, 이름은 만물이 있게 된 후에 처음으로 붙여진 것이요, 처음이란 것은 태초에 만물이 생겼을 때를 말한다.
後經 二/印刷本/能言性能言始是靈感想識靈感所發是有體性心是性是心不免有死生
後經 二/謄寫本/能言性能始는是靈感想識이니靈感所發이是有軆性心이니是性是心이不免有死生이니라
後經 二/創建本/能히性을言하며 始를言함은 是 l 靈感想識이라 靈感所發이 이론有軆性이니 是性과是心은 死生이有함을不免하되
後經 二/三部本/能言性言始는 是靈感想識이요 靈感所發은 曰有體性이니 是性是心은 不免死生이로대
後經 二/經典本/能言性 能言始는 是靈感想識이요 靈感所發은 是有體性이라 心是性是心은 不免有死生이나
註 ; 謄寫本에서 能言性能言始를 能言性能始로 하여 能言始의 ‘言’ 字가 漏落됨. 三部本에서는 能言性能言始를 能言性言始로 하여 能言始의 ‘能’ 字가 漏落됨.
後經 二/筆寫本/能히性을言하매始를言함은是 l 靈感想識이라靈感所發이이론有軆性이니是性과是心은死生이有함을不免하되
後經 二/筆耕本/能히性을言하며始을言함은是 l 靈感想識이라靈感所發이이론有軆性이니是性과是心은死生이有함을不免하되
後經 二/抄稿本/能言性能始是靈感想識靈感所發曰有體性是性是心不免死生
後經 二/叢書本/能히 性을 言하며 始를 言함은 是 l 靈感想識이라 靈感所發이曰 有軆性心이니 是性과 是心은 死生가 有함을 不免하되
註 ; 後經二/抄稿本/能言性能始是靈感想識靈感所發曰有體性是性是心不免死生은 能言性能言始是靈感想識靈感所發是有體性心是性是心不免有死生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성품에 대하여 말할 수 있고 처음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영감(靈感/靈鑑)으로 생각한 것이요, 영감이 나타나는 것을 유체성이라 한다, 이 성품과 마음은 죽고 사는 것을 면치 못하나(生滅에 이치에 따라 존재하고)
※ 영감(靈感/inspiration) -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번득이는 착상이나 자극. 또는 신불(神佛)의 영묘한 보살핌이나 신령스럽고 기묘한 감식(鑑識)을 의미하는 영감(靈鑑)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다른 의미로는 신의 계시를 받은 듯한 느낌을 의미하기도 한다.
※ 영감오도(靈感悟道) - 영감으로 도리(道理)나 철리(哲理)를 깨닫다.
※ 수신오도(修身悟道) - 수신(修身)이나 수행(修行)으로 도리(道理)나 철리(哲理)를 깨닫다.
※ 유체성(有體性/ tangibility) - 체성(體性)이란 사람이 본디 가지고 태어난 성질이나 사물이나 현상의 고유한 특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본디 가지고 태어난 성질이나 사물이나 현상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될 때는 유체성이고, 없다고 생각될 때는 무체성이라 한다.
※ 無體性(impalpable)과 有體性 - 本性의 原理 原素가 작용을 시작하기 전, 비고 고요한 상태를 無始性이라 했고, 본성의 원리원소가 작용을 시작하여 기운과 靈과 神이 活活 潑潑하게 작용하고 있는 상태를 有始性이라고 했다. 그러나 무시성과 유시성은 형체가 없어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
유시성의 작용으로 물질이 이루어지고 생명체가 이루어지면 그 물질과 생명체는 형체로 나타난 것이므로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물체들은 모두 다 유시성의 기운 작용으로 인해서 되어진 것이므로 그 物體 속에는 기운이 그대로 들어가 작용하고 있으며, 그 기운 작용을 나오게 한 원리 원소가 그대로 들어가 작용하고 있으며, 그 기운 작용을 나오게 한 원리 원소가 그대로 통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原理는 하나의 같은 원리요, 그 原素도 하나의 같은 원소요, 그 性稟도 하나의 같은 性稟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물체를 이루기 전이라 형체가 없는 것과 물체를 이룬 뒤이므로 형체가 있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형체로 나타나기 전, 무시성과 유시성을 無體性이라 하고, 물체를 이룬 뒤에 물체에 통해 있는 性을 有體性이라고 한다.
무체성과 유체성의 근본은 다 같이 하나의 같은 性이지만 유체성은 그 물체의 조직이 생겨진데 따라서 각각 다른 표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체성에도 무체성의 모든 원리 원소가 다 내포되어 있지만 유체성에는 주로 그 물건을 이룬 기운에 관한 원리 원소와 그 물체에 관한 원리만이 작용하고 있다. 기운은 같은 기운이지만 물체를 이루기 전에는 소극적 표현을 했고 물체를 이룬 뒤에 그 물체에 의해서 적극작인 표현을 하는 것이다. 적극적 표현은 그 물체의 조직이 생겨진데 따라서 각각 다른 표현을 나타낸다. 이 우주 안에 꽉차 있는 기운은 하나의 같은 기운이다. 물질을 이룬 뒤에 우주안에 꽉 차 있는 기운은 그대로 있으면서 기운의 一部가 그 물체 속으로 들어가 표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때 물체밖에 있는 기운을 "外有氣化"라 하고 물체 안에 통해서 표현을 나타내고 있는 기운을 " 內有神靈"이라고 한다. 내유 신령의 기운은 그 물체의 조직이 생겨진데 따라서 표현을 나타낸다./이진원의 카페에서
천도교의 교리 연구가 중의 일부는, 사람이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성품을 유체성이라 하고, 한울님의 성품은 처음도 끝도 없는 영원한 것을 무체성이라 말하기도 한다.
後經 二/印刷本/無始之性是無軆性不有生死眞眞如如也
後經 二/謄寫本/無始之性은是無躰性이니不有生死하야眞眞如如也니라
後經 二/創建本/無始의性은 이론無躰性이니 生死를超越하야 眞眞如如하나니라
後經 二/三部本/無始의性은 曰無躰性이라 生死超越而眞眞如如也니라
後經 二/經典本//無始之性은 是無軆性이니 不有生死하여 眞眞如如也니라.」
註 ; 謄寫本에서 是無躰性의 躰는 體의 俗字이다. 三部本은 創建本을 따라 不有生死을 生死超越而/生死를超越하야로 意譯을 하고 있다.
後經 二/筆寫本/無始의性은이론無軆性이니生死를超越하야眞眞如如하나니라
後經 二/筆耕本/無始의性은이론無軆性이니生死를超越하야眞眞如如하나니라
後經 二/抄稿本/無始性曰無軆性不有生死超越而眞眞如如也
後經 二/叢書本/無始의 性은 曰無軆의 性이니 生死를 超越하여 眞眞如如也니라」
註 ; 後經二/抄稿本/無始性曰無軆性不有生死超越而眞眞如如也는 無始之性是無軆性不有生死眞眞如如也 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시종(始終)이 없는 성품은 바로 무체성이니 나고 죽는 것을 초월하여(생멸의 이치를 깨달아서 생사에 연연(戀戀)하지 말고 무심한 마음으로) 진진여여하게 해야 할 것이다.」
※ 戀戀不忘 - 그리움이 애틋하여 잊지 못함.
※ 無心 - 아무런 생각이나 감정이 없음 또는 관심이 전혀 없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세속적인 욕망이나 가치 판단에서 벗어난 마음 상태를 무심이라 한다./ 類義語는 無關心.
※ 眞眞如如 - 유체성과 무체성의 근원적인 이치가 매우 참되고 같은 이치이니 수도하는 자는 무심하게 수신하고 살아가야 한다.
後經 二/印刷本/問曰眞性已在有始之前有始後之人豈能知有性乎
後經 二/謄寫本/問曰眞性이已在有始之前이니有始後之人이豈能知有性乎잇가
後經 二/創建本/問曰眞性이 有始之前에在하얏거니 有始後의人이 어찌能히有性을 知하리잇가
後經 二/三部本/曰眞性이已在有始之前이니有始後之人이豈能知有性乎잇가
後經 二/經典本/曰眞性이已在有始之前이니有始後之人이豈能知有性乎잇가
註 ; 三部本과 經典本에서 問曰眞性을 曰眞性으로 하여 問 字가 漏落됨.
後經 二/筆寫本/問曰眞性이有始之前에在하얏거니有始後의人이엇지能히有性을知하리잇가
後經 二/筆耕本/問曰眞性이有始之前에在하얏거니有始後의人이엇지能히有性을知하리잇가
後經 二/抄稿本/曰眞性在於有始前有始後人豈能知有性乎
後經 二/叢書本/問曰 「眞性이 有始의 前에 已在어니 有始後의 人이 어찌 能히 有性을 知하나잇까.」
註 ; 後經二/抄稿本/曰眞性在於有始前有始後人豈能知有性乎 는 問曰眞性已在有始之前有始後之人豈能知有性乎 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道門의 제자들이 묻기를 「진성이 이미 처음이 있기 전에 있었으니, 처음이 있은 뒤의 사람이 어떻게 능히 성품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까.」
※ 眞性 - 사물이나 현상의 본래 성질. / 類義語 성(性), 성진(性眞)
※ 無始有生 - 老子가 말한 有生於無의 무란 바로 대도(大道)의 비개념성(非槪念性)과 보편성(普遍性), 그리고 무한성(無限性)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상도(常道)의 본질(本質)적 의미를 말함이다. 즉, 무란 “무엇 무엇이 없다(沒有)” 라는 단순한 논리의 표현이 아니고, 곧 대유(大有)를 말하는 것으로써 이는 헤아려 설명할 수 없으며(不可計算), 오직 무한(無限)한 힘으로 만물을 생성(生成)하고 만 가지 성질(萬性)을 발(發)하는 우주의 본체(本體)로써 구체적인 유(有)에 상대적으로 붙여진 노자의 핵심사상중 하나이다.
“無 名 天地之始(무 명 천지지시)”
노자는 무(無)로써 천지의 시작을 말하고 있는데 이 무(無)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하나는 혼돈미분(混沌未分)적인 우주탄생 이전의 무시무종(無始無終)적 상태를 말하고 있고, 또 다른 하나는 끝없이 우주를 탄생, 팽창시키고 만물을 생성해 가는 “무한한 생명력” 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는 대도의 본체로써 그것의 가장 중요한 특징과 성질은 바로 무한가생(無限可生), 즉 무한하게 만물(萬物)과 만상(萬象)을 생성하는데 있는데, 여기서 “생(生)” 이란 곧 “유(有)”를 의미하는 것으로써(無生出有), 천지만물의 경지에서 바라볼 때 이것이 곧 “만물지모(萬物之母)”가 되는 연유인 것이다. 유학에서 말하고 있는 天地無始終, 人生有生死의 의미를 잘 이해해 보면 알 수 있다.
※ 有始無滅 - 만물(萬物)과 만상(萬象)이 생성되기 이전인 시원(始原)에서 볼 때 생멸(生滅)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다. 무생무멸(無生無滅)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시(始)와 멸(滅)이 없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後經 二/印刷本/聖師曰以無觀無無亦有之以無觀有有亦無之定其無有始有無始有生有有始無滅眞眞如如無漏無增
後經 二/謄寫本/聖師ㅣ曰以無觀無면無亦有之오以無觀有면有亦無之니定其無有라야始有有始有生이오有有始無滅이니眞眞如如하야無漏無增이니라
後經 二/創建本/曰無로써無를觀하면 無 l 또한有하고 無로써有를觀하면 有 l 또한無할것이니其無와其有를定하야 비로서無始有生이有하고 有始無滅이有하나니 眞眞如如하야 無漏無增하나니라.
後經 二/三部本/曰 以無觀無則 無亦有之하고 以無觀有則有亦無之니 定其有無라야 無始而有生이요 有始而無滅이리니 眞眞如如하여 無漏無增이니라
後經 二/經典本/曰 「以無觀無則 無亦有之요 以無觀有則 有亦無之니 定其無有라하여 始有 無始有生이요 有有始無滅이니 眞眞如如하여 無漏無增이니라
註 ; 後經/謄寫本에서는 주격조사 l가 사용되었다. 또 始有無始有生을 始有有始有生으로 誤字가 생겼다. 謄寫本 이후 直譯하는 과정에서 원문과 다른 표현을 하고 있다. 語順도 바뀌고 있다. 例 ; 定其無有를 定其有無으로. 始有無始有生有有始無滅을 無始而有生이요 有始而無滅으로.
後經 二/筆寫本/曰無로써無를觀하면無 l 또한有하고無로써有를觀하면有 l 또한無할것이니其 l 無와其有를定하여야비로소有始有生이有하고有始無滅이有하나니眞眞如如하야無漏無增하나니라.
後經 二/筆耕本/曰無로써無를觀하면無 l 또한有하고無로써有를觀하면有 l 또한無할것이니其 l 無와其有를定하여야비로소有始有生이有하고有始無滅이有하나니眞眞如如하야無漏無增하나니라.
後經 二/抄稿本/曰以無觀無則無亦有之以無觀有則有亦無之定其有無無始而有生有始而無滅眞眞如如無漏無增
後經 二/叢書本/曰 「無로써 無를 觀하면 無또한 有하고 無로써 有를 觀하면 有또한 無하리니 其無와 其有를 定하여야 비로서 有始有生이 有하고 有始無滅이 有하나니 眞眞如如하여 無漏無增이니라.
註 ; 後經二/筆寫本의 有始有生이有하고는 無始有生有의 誤記. 後經二/抄稿本/曰以無觀無則無亦有之以無觀有則有亦無之定其有無無始而有生有始而無滅眞眞如如無漏無增은 曰以無觀無無亦有之以無觀有有亦無之定其無有始有無始有生有有始無滅眞眞如如無漏無增 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성사께서 대답하시기를 「없는 것으로서 없는 것을 보면 없는 것도 또한 있고, 없는 것으로서 있는 것을 보면 있는 것도 또한 없으니, 그 없고 있는 것을 정하여 비로소 무시유생이 있고 유시무멸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진진하고 여여하게 하여 새는 것도 없고 더함도 없는 것이니라.
※ 無漏無增 - 더해질 것도 없고 덜어질 것도 없음 또는 새는 것도 없고 더할 것도 없는 것. 오문환은 ‘동학의 생명평화 사상’ 중 4. 생명의 활동: 활발(活潑) 에서 ‘생명의 중심은 조용하지만 생명의 활동은 활발하다. 생명의 중심은 천주이며, 천지부모이며, 성품이다. 생명의 중심은 고요, 적정, 물들지 않음, 흔들리지 않음, 불생불멸, 무루무증(無漏無增) 등으로 표현된다. 반면 생명의 활동은 활활발발, 운동, 물들음, 흔들림, 생멸, 인연, 인과법 등으로 표현된다.
모든 생명은 천지조화에 합일되어 있는 것은 생명의 두 번째 실상이다. 조화의 활동성으로서의 생명에 대하여 수운은 지기 또는 혼원일기의 개념으로 주로 설명하였고, 해월은 생명의 끊임없는 창조성과 동포성에 주목하였다. 의암은 생명활동을 주로 성품을 간직한 마음의 위하고 위하는 덕성과 자유로움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개념들은 공통적으로 생명은 본래 아무런 제약없이 우주기운과 하나로 관통되어 연결되어 있으며 완전히 자유롭다고 하는 점을 모두 설명해주고 있다.
어떤 것이 생명의 실상이 아닌지를 알게 되면 생명의 실상이 보다 분명해진다. 본래 자유로운 생명의 활동성과 동포성을 가로막거나 분열시키는 것은 반생명이라 할 수 있다. 김지하 시인은 ‘수운사상 묵상’이라는 글에서 생명으로부터 벗어나 옮김에(移) 대하여 자세하게 풀이하고 있다. 생명의 실상으로부터 옮김은 천주로부터 옮김이며 천지조화와의 소통을 막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이는 인간에 의한 생명 파괴와 맞서 있다.” 김지하, 『동학 이야기』, 솔, 1994, 9면./ 오암 註 ; 9면에는 없고 PP. 24-34안에서 설명되고 있다.
/ 다음의 단어들의 의미를 잘 이해해 보면 무루무증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무거무래(無去無來) - 돌아가는 것도 없고 돌아오는 것도 없음,
무루무증(無漏無增) - 더할 것도 없고, 덜어낼 것도 없는, 또는 새는 것도 더할 것도 없음,
무상무하(無上無下) - 위도 없고 아래도 없음,
무선무악(無善無惡) - 착하고 진실함도 없고 사악하고 거짓됨도 없음,
무시무종(無始無終) - 始原도 없고 終末도 없음,
불생불멸(不生不滅) - 태어남도 없고 죽고 사라지는 것도 없음,
청정무구(淸淨無垢) - 맑고 깨끗하여 더럽거나 속된 데가 없음.
後經 二/印刷本/無漏無增性心之始故知本性之無緣有生
後經 二/謄寫本/無漏無增은性心之始라故로知本性之無緣有生이니라
後經 二/創建本/無漏無增은 性心의始라 故로 本性의無緣有生임을 知하나니라
後經 二/三部本/無漏無增은 性心之始也니 故로 能知無緣有生이니라
後經 二/經典本/無漏無增은 性心之始也라 故로 知本性之 無緣有生이니라」
註 ; 後經 二/創建本은 謄寫本을 따라 더 細密한 直譯을 함. 이후 거의 동일함
後經 二/筆寫本/無漏無增은性心의始라故로本性의無緣有生임을知하나니라
後經 二/筆耕本/無漏無增은性心의始라故로本性의無緣有生임을知하나니라
後經 二/抄稿本/無漏無增性心之始也故能知無緣有生
後經 二/叢書本/無漏無增은 性心의 始라 故로 本性의 無緣有生임을 能히 知하나니라」
註 ; 後經二/抄稿本/無漏無增性心之始也故能知無緣有生 는 無漏無增性心之始故知本性之無緣有生 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새는 것도 없고 더함도 없는 것은 성품과 마음의 시원(始原)이므로 本性의 因緣 없이 태어남이 있음을 알 것이다.」
後經 二/印刷本/問曰以何方法脫其大障見其眞性
後經 二/謄寫本/問曰以何方法으로脫其大障하야見其眞性이닛고
後經 二/創建本/問曰무슨方法으로써 其大障을脫하야 其眞性을 見하나잇고
後經 二/三部本/曰 「如何方法으로 脫其大障而見其眞性乎이까.」
後經 二/經典本/曰 如何方法으로 脫其大障而見其眞性乎이까.
註 ; 直譯하는 과정에서 添削이 되고 있다.
後經 二/筆寫本/問曰무슨方法으로써其大障을脫하야其 l 眞性을見하나니잇고
後經 二/筆耕本/問曰무슨方法으로써其大障을脫하야其 l 眞性을見하나니잇고
後經 二/抄稿本/曰如何方法脫其大障而見其眞性乎
後經 二/叢書本/問曰「如何한 方法으로써 其大障을 脫하여 其眞性을 見하리잇까」
註 ; 後經二/抄稿本/曰如何方法脫其大障而見其眞性乎 는 問曰以何方法脫其大障見其眞性 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道門의 제자들이 묻기를 「어떠한 방법으로 그 커다란 장애를 벗어나서 그 진성을 볼 수 있습니까.」
※ 장애(障碍/障礙) - 어떤 일의 성립, 진행에 거치적거려 방해하거나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게 함. 여기에서는 性과 心의 근원적인 존재유무의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생각들을 의미한다.
後經 二/印刷本/聖師曰日月則明黑雲蔽之如甁內燈光
後經 二/謄寫本/聖師ㅣ曰日月則明이어늘黑雲이蔽之如甁內燈光이니라
後經 二/創建本/曰日月인즉明한것이어늘 黑雲이蔽하야 甁內의燈光과如하나니라.
後經 二/三部本/曰 日月雖明이나 黑雲이蔽之하여 如甁內燈光이니라
後經 二/經典本/曰 「日月則雖明이나 黑雲이蔽之하면 如甁內燈光이니라
註 ; 註 ; 直譯하는 과정에서 添削이 되고 있다.
後經 二/筆寫本/曰日月인즉明한것이어늘黑雲이蔽하야甁內의燈光과如하나니라.
後經 二/筆耕本/曰日月인즉明한것이어늘黑雲이蔽하야甁內의燈光과如하나니라.
後經 二/抄稿本/曰日月雖明黑雲蔽之如甁內燈光
後經 二/叢書本/曰「日月인즉 明한것이어늘 黑雲이 蔽하여 甁內의 燈光과 如하니라.
註 ; 後經二/抄稿本/曰日月雖明黑雲蔽之如甁內燈光 는 曰日月則明黑雲蔽之如甁內燈光 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성사께서 대답하시기를 「해와 달은 비록 밝으나 검은 구름이 가리면 병 속의 등불과 같이 그 밝음의 참 모습을 정확히 볼 수가 없다.
後經 二/印刷本/性之淸淨萬障圍之如泥中沒玉無他妙法只以心爲師剛而不奪定而不動柔而不弱惺而不昧默而不沉閒而不息動而不亂擾而不拔靜而不寂有視不顧有能不用
後經 二/謄寫本/性之淸淨을萬障이圍之하야如泥中沒玉하니無他妙法이오只以心爲師하야剛而不奪하며定而不動하며柔而不弱하며惺而不昧하며默而不沈하며閒而不息하며動而不亂하며擾而不拔하며靜而不寂이면有視不顧하며有能不用이니라
後經 二/創建本/性의淸淨을 萬障이圍하야 泥中에玉이沒함과如하니 他의妙法이無하고 다만心으로써 師를삼아 剛而不奪하며 定而不動하며 柔而不弱하며 惺而不昧하며 默而不沈하며 閑而不息하며 動而不亂하며 擾而不拔하며 靜而不寂하며 視而不顧하며 有能不用이니라
後經 二/三部本/性之淸淨을 萬障이圍繞하야 恰如泥中沒玉이라. 無他妙法이요 只以心爲師하여 剛而不奪하며 定而不動하며 柔而不弱하며 惺而不昧하며 默而不沉하며 閑而不息하며 動而不亂하며 擾而不拔하며 靜而不寂하며 視而不顧하며 有能不用이니라
後經 二/經典本/性之淸淨을 萬障이圍之하여 如泥中沒玉하니. 無他妙法이요 但 以心爲師하여 剛而不奪하며 定而不動하며 柔而不弱하며 惺而不昧하며 默而不沈하며 閒而不息하며 動而不亂하며 擾而不拔하며 靜而不寂하며 視而不顧하며 有能不用이니라」
註 ; 後經 二/印刷本에서 默而不沉의 沉은 沈의 俗字이다. 後經 二/創建本/은 謄寫本을 따르고 있으나 약간의 직역을 다르게 하고 있으며, 三部本과 經典本은後經 二/印刷本 原文을 따르고 있으나 직역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고 通字나 俗字인 경우에는 서로 사용이 달랐다.
後經 二/筆寫本/性의淸淨을萬障이圍하야泥中에玉이沒함과如하니他의妙法이無하고只히心으로써師를삼아剛而不奪하며定而不動하며柔而不弱하며惺而不昧하며默而不沉하며閑而不息하며動而不亂하며擾而不拔하며靜而不寂하며視而不顧하며有能不用이니라
後經 二/筆耕本/性의淸淨을萬障이圍하야泥中에玉이沒함과如하니他의妙法이無하고只히心으로써師를삼아剛而不奪하며定而不動하며柔而不弱하며惺而不昧하며默而不沉하며閒而不息하며動而不亂하며擾而不拔하며靜而不寂하며視而不顧하며有能不用이니라
後經 二/抄稿本/性之淸淨萬障圍繞恰如泥中沒玉他無妙法但以心爲師剛而不奪定而不動柔而不弱惺而不昧默而不沉閑而不息動而不亂撓而不拔靜而不寂有視不顧有能不用
後經 二/叢書本/性의 淸淨을 萬障이 圍하여 泥中에 玉을 沒함과 如하니, 他의 妙法이 無하고 다만 心으로써 師를 삼아 剛而不奪하며 定而不動하며 柔而不弱하며 惺而不昧하며 默而不沈하며 閑而不息하며 動而不亂하며 擾而不拔하며 靜而不寂하며 視而不顧하며 有能不用이니라」
註 ; 後經二/抄稿本/性之淸淨萬障圍繞恰如泥中沒玉他無妙法但以心爲師剛而不奪定而不動柔而不弱惺而不昧默而不沉閑而不息動而不亂撓而不拔靜而不寂有視不顧有能不用 는 性之淸淨萬障圍之如泥中沒玉無他妙法只以心爲師剛而不奪定而不動柔而不弱惺而不昧默而不沉閒而不息動而不亂擾而不拔靜而不寂有視不顧有能不用 의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성품의 맑고 깨끗한 것을 수많은 장애물들이 둘러 가로막아서 진흙 속에 묻힌 구슬과 같아 제 모습을 볼 수 없다, 본래의 제 모습을 볼 수 있는 다른 묘법이 없고 다만 그대들이 각자가 제 마음을 스승으로 삼아 굳세게 하여 본연의 나의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며, 마음을 단단히 다잡아서 움직이지 아니하게 하며, 부드러우나 마음이 어리고 약하지 않게 하며, 천리를 깨달아서 세속적 욕망에 마음이 홀리어 사로잡히지 못하게 하며, 묵상을 하지만 깊이 빠지지 않게 하며, 한가하게 쉬나 오래 쉬지 않게 하며, 움직이나 어지럽게 움직이지 않게 하며, 흔들어도 의지를 굳게 하여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며, 마음이 고요하여 멈춘 듯 하나 고요하고 쓸쓸함(空寂)에 빠지지 않게 하며, 보이지만 세사(世事)에 상관하지 말고 마음을 두지 않게 하며, 능력이 있지만 함부로 아무데나 쓰지 않게 하라. 그러면 커다란 장애를 벗어나 본연의 성과 마음을 만날 수 있다.」
※ 묘법(妙法) - 더 할 수 없는 교묘한 해결방법 또는 헤아릴 수 없이 깊고 미묘(深遠微妙)한 도리. 이법(理法) 특별한 진리. 바른 이법,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하고 뛰어난 가르침.
後經 二/印刷本/問曰視而不顧有能不用何以爲用天用人乎
後經 二/謄寫本/問曰視而不顧하며有能不用이면何以爲用天用人乎이닛가
後經 二/創建本/問曰有視不顧하며有能不用이라하면 어찌써天을用하며 人을用하나니잇고
後經 二/三部本/曰 有視不顧而有能不用則何以爲用天用人乎이까
後經 二/經典本/曰有視不顧而 有能不用則何以用天用人乎이까」
註 ; 後經 二/三部本은 印刷本을 따르고 있으나 일부 添削되어 있다. 아래 문장도 동일함. 後經 二/經典本은 後經 二/三部本을 따르고 있으나 첨삭이 있다.
後經 二/筆寫本/問曰有視不顧하며不能不用이라하면엇지써天을用하며人을用하나니잇고
後經 二/筆耕本/問曰有視不顧하며不能不用이라하면엇지써天을用하며人을用하나니잇고
後經 二/抄稿本/曰有視不顧而有能不用則何以爲用天用人乎
後經 二/叢書本/問曰「有視不顧하며 有能不用하면 어찌서 天을 用하며 人을 用하나잇까」
註 ; 後經二/筆寫本, 後經 二/筆耕本, 後經 二/抄稿本의 不能不用은 有能不用 의 誤記. 後經 二/抄稿本/曰有視不顧而有能不用則何以爲用天用人乎 는 問曰視而不顧有能不用何以爲用天用人乎 의 誤記.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道門의 第子들이 계속해서 묻기를 「보이는 것이 있으나 그 보이는 것을 고려하거나 상관하지 말아야 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나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한울을 활용하고 사람을 부릴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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