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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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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댓글 0건 조회 124회 작성일 19-03-2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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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5)
장자는 “천지가 만물을 양육할 때, 어떤 사물이라도 평등하게 대한다. 높은 곳에 있다고 해서 존귀하다고 할 수 없고, 낮은 곳에 있다고 해서 비천하다고 할 수 없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하늘은 존귀한 ‘천자(天子)’와 비천한 ‘나’를 모두 평등하게 세상에 내보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장자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사물은 서로 얽히고 뭉쳐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는 만물 일체론(萬物一體論)의 입장에 기초하고 있다.
장자에 따르면,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어느 편이 다른 편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사물에 대한 귀천, 고하, 시비, 선악 등의 구별은 자기중심적인 편견에 불과하고, 그 원인은 사물의 관점에서 파악했기 때문이다. 도의 관점에서 만물을 파악하면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가는 자연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시비의 분별을 버리고 자연의 전체적 질서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자는 인간의 마음 모습을 두 가지로 분류하였다, 하나는 본래 소박했던 ‘상심(常心)’이고, 다른 하나는 상심이 훼손된 ‘성심(成心)’이다. 여기서 성심은 본연지심을 가로막는 자기중심적 사고이며 편견이 개입된 관념이다. 인간이 성심에 얽매이게 되면 자아(自我)와 비아(非我)가, 주관과 객관이 분열되고 이로써 긴장과 대립이 생긴다. 이러한 성심에서 벗어나 참다운 인간의 자유를 드러내는 참 모습이 바로 무위자연이다. 특히 장자가 말하는 물아(物我)를 하나로 여기고 생사를 한가지로 보며 현실적인 이해 관념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생 태도와 사상은 정신적인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고도의 정신 경지를 제공하였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공맹의 도는 인도를 충심으로 논의하고 실천을 권장하였지만 노장철학은 인도의 근원인 천도 또는 천리 천명에 순응하는 것이 무위자연이라 하였다./ 관련 자료들에서 일부 발췌하여 재정리함.
註 00 ; 養生 : 불로장생을 위해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병에 걸리지 않게 노력하는 것을 가리킨다.
註 00 ; 神仙思想 : 중국 전국 시대 말에 등장한 것으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육체를 지닌 채 불로장생(不老長生)할 수 있다고 믿는 사상이다.
19세기말의 서양철학의 대표적인 인물인 니체는, 노장철학의 핵심 사상이었던 천도 또는 천리 천명에 순응하는 삶과 같은 궤를 취했다. 그는 인간의 삶이 운명적이거나 순명적(順命的)이므로 그에 따라 살아야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유인의 삶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니체의 사상은 오늘에 이르러서까지 높은 평가를 받고 널리 수용되고 있다.
라틴어로 아모르 화티(amor fati)는, 니체가 철학 용어로 사용해서 유명해진 문구로 "운명을 사랑해라"는 의미로 "운명애(運命愛)"라고도 해석하기도 한다. 즉 amor fati의 구체적인 의미는, 자신의 운명을 거역하지 말고 받아들이고(順命/天命을 順從함), 그러한 그 운명마저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일단 니체는 우리의 운명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하였다. 다만 그것을 절대적인 존재(창조주 또는 최고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해가 지면 달이 뜨는 것과 같이 노장철학의 중심인 무위자연의 자연스러운 현상 중의 하나이여서 인간마다의 선택 여부에 따라 받아들이고 거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 어구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바라보는 태도를 나타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고통(suffering)과 죽음(loss)도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현상(fact)의 하나일 뿐이므로 기쁘게(as good), 아니면 적어도 피할 수 없는 일(at the very least, necessary)로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자세가 변화나 발전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니체가 설파한 영겁회귀(eternal recurrence)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만족스럽게 여기고 그 자체를 수용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똑 같은 삶을 반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는 상황에 따라 의지가 약해지고, 마음이 문어질 수 있다는 인간다움을 인정하였으며, 동시에 그러한 상황이나 어려움 속에서 모든 것을 극복하고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인간다움도 함께 인정하였다. 니체는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적인 에서 ‘조금 더 너무나 인간적인’ 단계로 가려면 3단계를 거친다고 하였다. 낙타와 사자, 그리고 아이의 단계이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걸어야 만하는 낙타. 거기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고,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는 자율성을 지닌 사자. 그리고 마지막인 아이의 단계는, 아이처럼 공격과 방어를 제대로 할 수는 없지만, 온몸으로 껴안아야 되는 무게감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면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세상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온전한 자유를 지닌 아이처럼. 니체는 앞의 두 개의 단계들을 거치면서 발전해 온 아이(赤子之心과 같은 경지에 이른 사람)의 단계가 가장 완전하다고 하였다./관련 자료들에서 부분 발췌하여 재정리함.
註 00 ; 順命 - 천명에 순종하며 살아간 다는 뜻으로, 즉 천명에 따라 주어진 운명대로 살다가 주어진 대로 죽는 것이 곧 순명이다.
니체가 설명한 아모르 화티와 다른 의미를 가진 아모르 데이(amor dei)가 있다. 이 어구의 의미는. amor는 사랑. 또는 사랑하다. 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며, dei는 하느님 또는 신이라는 Deus(하느님)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amor dei는 하느님(신)을 사랑하라. 는 의미를 가졌다. 니체가 설명한 아모르 화티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어구이다. 아모르 화티가 인간의 순명적인 삶을 말하고 있다면. 아모르 데이는 인간의 삶이 신에게 종속된 피조물의 삶이란 것이다. 이것을 동학과 천도교의 교의에 따라 설명한다면, amor dei는 서양의 神政이라는 先天時代의 삶의 가치이고 방향이라 할 수 있고, 19세기말에 이르러 니체(1844–1900)가 神의 不在(1883-1885)를 선언하고 초인을 수용한 이후, 後天時代의 삶의 가치와 방향이 amor fati라 할 수 있다.
註 00 ; 神政과 王政 -神의 代辯者인 祭司長이 절대적인 권력으로써 지배권을 행사하는 정치가 神政政治(類義語)이고, 君主가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 체제. 또는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 또는 세습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를 君主政治(類義語)라 한다.
4. 천도교의 정체성.
眞理라는 것은 永遠不變한 것이 아니라 可變的인 것. 인간성 상실의 시대인 19세기의 격동적인 흐름 속에서, 수운은 선천시대의 종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다시 개벽으로 후천시대의 도래를 예견하고 준비하여 새인간이 살아 갈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드리라고 했다. 선천의 시대의 진리가 변전(變轉)하여 후천시대의 새로운 진리로 변한 것이다. 진리라는 것 확대하면 모든 가치는 노도(怒濤)와 같이 흐르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변동이 있을 때마다 생성되는 시대정신에 따라 변전한다. 천도교의 교의상의 진리는 천도교의 역사인식에 변화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해 왔으나 지금은 정체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시대의 시대정신과 현대라는 특수한 역사 현실에 대한 역사의식과 인식의 부족에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변적인 진리를 믿는 다는 것은 수운이 거부한 선천시대를 자신도 모르고 애써 지키려는 그 시대의 마지막 인간인 것이다. 수운이 우리들에게 바란 다시 개벽의 중심적인 변혁의 안내자가 되는 신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인간이 되기 위해선 선천의 진리에 매달려 있는「어제의 나」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미래의 나」로 대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이나 역사나 개인의 삶이 변전을 하거나 안하거나가는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보다는 역사는 영속(永續)되는 것이므로 이것을 역사의 지속성(持續性)이라 하며 변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1981년에 간행된 “天道敎百年史 上卷” P.355.에는,「東學」을 「天道敎」로 大告天下한 시기에 대하여,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가 이 상헌(李祥憲)이란 假名으로, 일본에 망명 중이던 光武 9(1905)年 12月 1日(金曜日)字의 帝國新聞 第八卷 第274號 첫머리에 게재된 것을 시작으로, 연속해서 15회를 반복 게재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신문에 게재한 광고의 내용은, 교당 건립 공고문이었기 때문에 천도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다른 기록의 자료를 다음과 같이 게재하였다.
‘大告天道敎出顯 / 현대어 에선 出現
道則(雖)天道 學則東學이니 卽 古之東學이 今之天道敎라.
宗旨는 人乃天이요,
綱領은 性身雙全 敎政一致요,
目的은 輔國安民 布德天下 廣濟蒼生 地上天國建設이요,
倫理는 事人如天이요,
修行道德은 誠敬信이다.’ 라고 상세히 기록하였다.
註 00 ; 위의 내용은, 1979년 7월 17일에 간행된 趙基周著 『東學의 源流』에서. / 1905년 12월 1일자 게재신문인 일본신문의 이름과 몇 면, 몇 단 크기의 광고인지 밝혀져 있지 않다.>에만 있는 것으로 PP.230-232. 참조하시면 그때 정황을 자세히 알 수 있다. / 筆者의 拙著 “東學思想 展開의 題 問題” 중 ‘인내천의 참 뜻과 유래의 관한 연구’에서.
註 00 ; 1946년에 北韓에서 간행된 夜雷 李 敦化의 “黨志” 第 1 章 敎會와 黨의 關係에서 ‘敎와 黨은 一體兩面이며 二位一體이었다. 敎는 光源과 같다하면 黨은 光線과 같다’ (中略) ‘그러므로 天道敎를 敎理的術語로 論할때는 曰 靈肉一致 曰 物心雙全 曰 性身雙修 曰 敎政合致等等의 全一敎體로 表現하는 것이다.’라고 선언한 다음, 宗旨는 人乃天. 綱領은 物心一元, 性身雙全 敎政一致. 目的은 輔國安民 布德天下 地上天國建設이라고 밝히고 있다.
註 00 ; 천도교의 신관을 당지(黨志; 1946년)에서는 汎神觀的一神觀(天主와 至氣의 本體는 同時에 萬象을 超越하야 恒久自存自律이다 라는 論理的 根據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이라 하고 있다.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 천하한 후 교단은 처음으로, 종령(宗令)으로 여러 가지 교단의 나아가야 할 방향과 입장을 밝히고 있다. 宗令 第 一號에서는 천도교는 세계사적으로 어떤 종교이며 천도교의 기본 정신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敎門正宗으로 信仰함으로서 세계인류에게 공인받은 종교로 ‘吾敎의 性靈을 修煉하기는 人理上의 品行을 端正케하는 本來目的이라. 故로 個人의品行端正은 吾敎의 影響發表로 認함이오. 敎人은 人族社會上의 正當한 規則을 遵守하야 宗旨面目을 無汗하며 自身上 罪戾를 勿招할지오, 肉身은 性靈의 宅이라 肉身을 養하기는 性靈棲息에 關한 初頭門庭이니 各히 農工商의 業務를 勉從하여 敎門樂地에 安居할지어다. 惟我敎人이여.’ 라고 敎化하며 敎義와 目的에 맞게 篤實한 신앙을 할 것을 勸諭하고 있다.
宗令 第 一號에서 宗令 第 二號에 교단이 명시한 신앙을 토대로 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교인들을 이끌어 나갈 原職 及 住職에 대한 자격 여부와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原職 及 住職의 임무를 통하여 교단이 나아갈 바를 밝혀주고 있다.
천도교를 신앙하고 있는 교인들에게 信仰人들이 指向해야할 信仰의 意味와 窮極的인 目的에 대하여 布德 四十七(1906)年 二月 二十二日에 공표한 宗令 第 十號와 宗令 第 十一號에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宗令 第 一號
惟我敎人은 澄心聽語어다. 吾敎의 布德한 布德 四十七年에 益益闡明하기는 天理人事에 符合한 所以로 人界上 公認을 得한 敎門正宗으로 信仰함이오, 汝 ㅣ 四方에 遊歷한 多年에 敎의 原素를 基因하야 全體面目의 一大標幟로 世界宗敎制度를 燦備하기는 余의 本來旨義에 在함이오, 吾敎의 性靈을 修煉하기는 人理上의 品行을 端正케하는 本來目的이라. 故로 個人의品行端正은 吾敎의 影響發表로 認함이오. 敎人은 人族社會上의 正當한 規則을 遵守하야 宗旨面目을 無汗하며 自身上 罪戾를 勿招할지오, 肉身은 性靈의 宅이라. 肉身을 養하기는 性靈棲息에 關한 初頭門庭이니 各히 農工商의 業務를 勉從하여 敎門樂地에 安居할지어다.
惟我敎人이여.
右籍 六任員 轉勅
布德 四十七(1906)年 二月 一日
大道主 (章)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우리 교인들은 모두 마음을 깨끗하고 맑게 하고 종령이 말하는 참뜻을 잘 이해하십시오. 우리가 신앙하는 천도교가 포덕한지 무려 사십칠 년에 이르러 천명한 바가 날로 더욱 더 늘어난 것은, 천리와 인사에 부합한 까닭으로 인류의 공인을 얻어 교문으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은 종교를 신앙하기 때문이다. 그대들이(모든 도인들이 또는 국민들이) 온 세상의 여러 곳을 두루 다녀본 여러 해 동안에, 나는 종교의 근원적인 생성과 소멸의 요소가 근본적인 요인이 되어 전체의 참모습의 아주 큰 표치로 세계종교의 제도를 빛나게 하는 준비는 나의 원래의 취지와 의미(어떤 일을 이루려는 적극적인 마음)를 부여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천도교에서 성령을 수련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서의 품행을 단정하게 하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다. 그런 까닭에 개개인의 품행단정(방정)은 천도교의 영향력을 세상에 널리 드러내어 알려 인정을 받고자 함이요 교인들은 전 인류사회에 정당한 규칙을 준수하여 우리 교의 종지의 면목을 세우기 위해서는 구슬땀을 흘려야 하고 자신이 죄를 지어 몹시 사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불러오지 말아야 한다.(절대로 죄를 짓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육신은 성령의 집이다. 육신을 양육(병이 들지 않도록 몸을 잘 단련시키는 일)하는 것은 성령이 잘 살아있도록 하는 일의 첫걸음이니 개개인은 농공상 등의 각자의 생업을 의무로 받아들여 힘써 노력하여 교단의 지상천국을 만들어 편안하게 살도록 힘써 노력하라.
아래의 적은 여섯 명의 직원이 종령으로 알린다.
포덕 四十七(1906)년 二월 一일
대도주 (인장/날인함)
註 00 ; 惟 - 발어사(發語辭)로 의미없음.
註 00 ; 천명(闡明) - 의지나 각오 따위를 드러내어 밝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한 것과 그 내용을 의미한다.
註 00 ; 부합(符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註 00 ; 종지(宗旨) - 天道의 바르고 가장 근원적인 기준이 되는 표준. 또는 정통성의 계승을 의미한다.
註 00 ; 면목(面目) - 인간이 인간됨을 드러나게 하는 본래의 참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래 면목이란 사람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면목이란 누구나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과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면목을 지킨다.’ ‘면목이 선다.’는 말은 자신의 본모습을 잃지 않고 지킨다, 불성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말이다. 반면에 ‘면목이 없다’는 말은 자신의 본래 모습이나 불성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바뀐 뜻으로는 낯, 체면, 남에게 드러낼 얼굴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註 00 ; 표치(標幟) - 다른 사물과 구별하기 위한 표시나 특징./ 유의어는 표지(標識)
註 00 ; 원소(原素) - 근원적인 요소. 원소 생활론(原素生活論)의 略語로 볼 수 있다.
■ 원소 생활론(原素生活論) - 철학에서 논하는 범심론(汎心論)의 한 형태로서 모든 물질은 생명이나 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자연관으로, 그리스의 탈레스, 독일의 헤겔 등이 주장하였다. 유의어(類義語)로는 물활론(物活論)이라 한다. 물활론이란 모든 물질이 생명, 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자연관을 말한다. 또 다른 유의어로는 만물 유생론(萬物有生論)으로 범심론의 하나로, 모든 물질은 생명, 영혼, 마음이 있다고 믿는 자연관을 말한다./관련 자료들에서 종합 재정리.
註 00 ; 지의(旨義) - 취지와 의미를 뜻하나 여기서는 종지와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
註 00 ; 無汗 - 無汗不成의 준말. 무한불성(無汗不成)이란 땀을 흘리지 않으면(힘이 드는 노력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뜻.
註 00 ; 죄려(罪戾) - 죄를 지어 몹시 사리에 어그러짐
註 00 ; 초두문정(初頭門庭) - 문 안의 뜰로 들어가는 초입(初入/동네로 들어가는 어귀). 初頭는 어떤 일이 시작되는‘ 첫머리’ 라는 뜻도 있다.
註 00 ; 宗令 - 동학이 대고천하로 천도교가 된 후 종교로서 조직기구와 제도로 제 모습을 갖춘 다음, 교단의 핵심인 중앙총부가 교구나 전교실 또는 일부 교인에게 보낸 공식적인 공문을 ‘종령(宗令)’이라 한다. 여기에서 宗은 종교 교단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동학시대에는 1830년대 초부터 警告文, 布諭文, 또는 沙鉢通文과 같은 通文과 通諭/喩文 등으로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해월신사께서 교인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방법으로 ‘布諭文九條’ 와 ‘通喩文 十條’ 그리고 警告文을 公表한 적이 있다.
宗令 第 二號
敎는 人으로 하여금 天理에 本然한 性情을 鍊하며 人界에 妥當한 學問을 修하야 百般應用에 圓滿한 成績을 自圖케하는 正的이니 眞理의 恢包한 誠敬信法 四科에 精通한 人은 玄機司에 適宜할지오. 現時 入敎라도 天然한 性靈을 具하며 兼하야 人界上文明에 關한 外交 及 內地情形에 嫺熟한 人은 原職 及 住職에 適宜할지오. 布德淵源이 久遠하야 管內敎人이 甚繁한 人이라도 性靈과 肉身關係에 通鍊한 果驗이 無한 人은 淵源에 關한 正脈뿐 自承할지오.
敎領과 敎人이 敎憲 及 自身行動에 不規則이 有한 時에는 該資格을 消滅할지니 上節各款이 天道敎大憲에 昭載하였으나 大憲公宣한 先刻에 在하야는 趨向이 未定한 故로 凝聽할지어다. 敎人이어.
右籍 六任員 轉勅
布德 四十七(1906)年 二月 一日
大道主 (章) / 李東初;『天道敎會宗令存案』 PP.13-14.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우리 천도교는 사람으로 하여금 천리의 본연한 성정을 수련(단련)하는 것이며 인류에게 온당한 학문을 연수하여 다방면에 응용함에 원만한 성적을 자신이 세운 기획대로 이루게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니 진리의 넓게 포함한 誠 敬 信 法의 네 가지 과목에 정통한 사람은 현기사에 적합한 사람이고, 지금 당장 입교하드라도 하늘로부터 타고난(무리가 없는) 정신을 갖추었으며 겸하여 인류문명에 관한 외교와 국내 사정에 매우 익숙한(밝은) 사람은 원, 주직에 적합한 사람이고, 포덕연원이 매우 오래되어 관내의 교인들에게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도 성령과 몸가짐이 단련(수도 수련을)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연원으로서는 올바른 계통의 하나의 줄기일 뿐이므로 스스로 천도를 이어받아야한다.
교령과 교인이 교헌과 자신의 언행에 있어 규칙에 벗어나는 일이 발생할 때에는 해당 자격을 박탈할 것이니 위의 각가지 법규를 천도교 대헌에 소상하게 실었으나 대헌을 공표하기 이전에 있어서는 규칙내용이 미비한 까닭에 위의 종령의 내용들을 새겨듣고 잊지 말고 마음에 담아두시오 교인들이여
아래의 적은 여섯 명의 직원이 종령으로 알린다.
포덕 四十七(1906)년 二월 一일
대도주 (印章/날인함) / 李東初;『天道敎會宗令存案』 PP.13-14.
註 00 ; 성정(性情) - 마음의 본체인 성질과 심성
註 00 ; 성령(性靈) - 사람의 육체 속에 깃들여 있어 정신 작용을 다스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영묘(靈妙)한 성정(性情)을 의미한다. 종교에서는 한울님(하느님)의 영을 뜻하며 신자(信者)들이 영적 생활을 하도록 근본적인 힘이 되는 본체이다. 유의어로는 혼백(魂魄)으로
사람의 몸 안에 있으면서 그것을 거느리고 목숨을 붙어 있게 하며, 죽어도 영원히 남아 있다는 비물질적이고 초자연적인 존재이다.
註 00 ; 자승(自承) -천도자승의 준말이다. 천도란, 도가를 포함한 선진시대 제자백가에서 ' 만물의 본체이자 사물이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운행법칙으로 인식되었다. 그 위상은 제후나 '천자'보다도 상위에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도가의 시조 노자가 상정한 하느님 즉 "天帝"보다도 기원이 오랜 개념이다. 때문에 고대 중국의 우주관에서 '천도'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언제나 숭배하거나[崇] 받들거나[承] 섬기거나[事] 받거나[受] 하는 신성하고 전능한 우주의 주재자로 등장하며 누구에게 주어지는[授] 증여물이나 도구로 제시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註 00 ; 修煉 의 煉과 鍊을 同語로 사용했다. 宗令 第 二號의 마지막 문장이 ‘敎人이어’ 로 끝났다. 원문과 대조할 수가 없어 확인할 수는 없지만, ‘敎人이여’ 의 誤謬라고 생각된다.
註 00 ; 심번(甚繁) - 매우 번성하다는 뜻으로 심성(甚盛)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널리 알려지다. 명성이 매우 높다. 뜻으로 사용된다.
註 00 ; 성정론(性情論) - 성리학에서의 인간의 성과 정에 관한 이론으로, 성과 정이란 용어는 일찍이 선유(先儒)의 경전(經典)에 나오지만 그것의 개념 규정과 상호 관계에 대한 철학적인 논설은 송대에 와서 활발했다. 성정에 관한 학설은 맹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맹자는 성선(性善)을 말했고, 정을 선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맹자는 성과 정을 연속적으로 토론하지는 않았으나 두 가지가 서로 대립적인 것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한대(漢代)에 이르러 비로소 성과 정은 합론(合論)되었고, 한유(漢儒)들이 인성 문제를 토론할 때 주요한 관념으로 나타났다. 한유들은 음양가(陰陽家)의 영향을 받아 성과 정을 이원화하였고 성선·정악의 학설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송유(宋儒)들이 성정을 아울러 일컬은 것은 한유들과 같았으나 송유들은 맹자를 종지로 삼았기 때문에 성정불상리(性情不相離)를 말했고, 장재(張載)같은 사람은 심통성정(心統性情)의 이론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송대의 정호(程顥)는 성에서 형(形)이 있는 것은 심(心)이고, 성에서 동(動)하는 것은 정이라 파악하고 성이 있는 곳에는 바로 정이 있으니, 성이 없다면 어떻게 정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장재는 심통성정을 말하면서 또 “성이 발(發)하면 정으로 나타나고, 정이 발하면 색(色)으로 나타나니 그것은 유(類)로써 응한 것이다”라 하였다. 주희는 “심은 성과 정을 통섭한 것으로 심은 신명(神明)의 집으로서 한 몸의 주재(主宰)이며, 성은 이것이 허다한 도리(道理)를 천(天)에서 얻어 심에 구재(具在)한 것으로 그것이 지식과 염려(念慮)에서 발하는 것은 모두 정이다”라 하였다.
그런데 정이(程頤)는 성과 정의 관계를 이(理)와 기(氣)의 관계에 대비, 인(仁)·의(義)·예(禮)·지(智)는 이로서 성의 덕(德)이요, 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는 성의 동(動)으로서 정이며 기가 된다”고 하였다.
주희도 성·정을 이와 기의 관계로 보아 “무릇 사람이 능동적으로 말하고 움직이며 생각하고 영위함은 모두 기이나 이도 그것에 있다”라고 하였다. 주희는 ‘이체기용(理體氣用)’ 사상에다 성과 정의 관계를 대비, ‘성체정용(性體情用)’으로 말했고, 이것에 대한 논술은 그의 중화 사상(中和思想)에 잘 나타나 있다.
맹자에 의하면 성의 내용은 인·의·예·지의 네 가지 덕이고, 정의 덕목(德目)은 측은·수오·사양·시비의 사단(四端)이니, 사단은 그의 네 가지 덕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예기≫ 예운편(禮運篇)에서는 인정(人情)을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으로 파악하고 이 일곱 가지 정은 배우지 않아도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문제는 다 같은 정인데 사단과 칠정이라는 두 가지 구분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것을 변론한 것이 이른바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辨)’이다. 이 사단칠정논변은 주희가 “사단은 이(理)의 발(發)이고, 칠정은 기(氣)의 발이다”라고 한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이것이 조선조에 들어와서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사단칠정논변을 거치면서 많은 쟁점을 불러일으켰다.
이이는 性은 理요, 心은 氣요, 情은 이 마음[心]이 움직인 것이라고 하면서, “천리(天理)가 인간에게 부여된 것을 성이라 이르고, 성과 정이 합해 한 몸의 주재가 된 것을 심이라 이르고, 심이 사물에 응해 밖으로 발한 것을 정이라 이르나니, 성은 심의 체(體)이며, 정은 심의 용(用)이며, 심은 기의 미발이발(未發已發)의 총명(摠名)이므로 심이 성과 정을 통섭한다고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성의 세목(細目)에는 인·의·예·지·신의 다섯이 있고, 정의 세목에는 희·노·애·구·애·오·욕의 일곱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이어 인간의 심체(心體)도 하나의 태극이니 성은 이의 체이고, 정은 기의 용이 된다고 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문헌 ;『周易』『禮記』『性理大全』『退溪集』『栗谷集』
宗令 第 十號
敎는 內로 德性을 涵養하며 外로 品行을 端正하야 天理人事에 正當한 軌道를 踐行하는 大旨義라. 聖主文을 硏究하며 左陳諸款을 參照하야 個人性行이 各히 刷新한 效驗을 奏할지어다.惟我敎人이어.
一. 誠心으로 道 를 修함.
一. 人을 敬愛함이 事天함과 如함.
一. 國家의 法律과 人道의 規則을 信守함.
一. 敎外人 을 强迫하야 敎門에 入치 勿함.
布德 四十七年 二月 二十二日
大道主 (章)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천도교(종교)는 안으로 덕성을 함양하며 밖으로는 품행을 단정히 하여 천리와 인사에 정단한 궤도 실천하는 큰 뜻(偉大한 宗旨)을 가졌다 할 수 있다. 성주문을 연구하며 아래와 같은 제 규정을 참조하여 개인의 품성과 언행이 모두 쇄신한 효과(효력)를 알릴 것이다.
一. 성심으로 수도할 것.
一. 사람을 공경하고 사랑함을 한울을 모시는 것과 같이 할 것.
一. 국가의 법률과 인도의 규칙을 충실히 지킬 것.
一. 비교인을 억지로 강요하여 교문에 입교하도록 하지 말 것.
포덕 四十七년 二월 二十二일
대도주 (날인함)
註 00 ; 궤도(軌道) - 행성이나 혜성, 인공위성 따위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다른 천체의 주위를 돌면서 그리는 일정한 곡선의 길을 의미하나 흔히는 일이 진행되는 정상적인 방향과 단계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다.
註 00 ; 쇄신(刷新) - 낡고 묵은 것이나 폐단을 없애고 새롭게 함. 혁신(革新)함.
註 00 ; 신수(信守) - 법이나 규율 또는 도문규칙을 충실히 준수하다. 또는 성실하게 지키다. 조심하면서 지킨다. 는 신수(愼守)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註 00 ; 강박(强迫) - 강압적으로 자신의견이나 주장에 따르도록 겁을 줌, 겁박(劫迫)과 같은 의미로 ‘상대를 자신의 뜻에 따르도록 강요’ 하거나 ‘자신의 뜻에 억지로 따르게 하는 것’을 말함.
宗令 第 十一號
-前略- 天道敎說畧
宗旨
吾敎는 天의 原素로 以하야 人이 活族界에 重要位置를 占有한 理想과 人이 天의 直接關係에 基因하야 靈과 身이 活族界에 特質이 有한 情迹을 撮合하야 宏通한 大門路를 開한 者 l 니 旨義는 天人兩方의 融合的이오 效果는 人의 感覺力이 霧障中에 透發하야 天光咫尺에 勇至함이라.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前略- 천도교를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설명함.
종지.
천도교는 한울의 근원적인 요소로서 이루어진 종교로서 사람이 생물계에서 중요한 위치(최령자로서의 존재)를 차지한 이상과 사람이 한울과 직접적인 관계(인내천의 관계)에 기인하여 성령과 육신이 생명계에서 가장 독특한 성질을 가진 정적을 모아 넓게 열린 큰 길을 여는 사람이다. 커다란 뜻이란 한울과 사람 양방이 융합적인 만남이요 그 효과는 사람의 감각력이 운무와 같은 가로 막힘 속에서도 한울의 밝은 빛(天道/한울님의 생생의 질서)이 가까운 곳까지 과감하게 비치게 하는 것이다.
註 00 ; 정적(情迹) - 감정으로 느낄 수 있는 흔적. 또는 사정의 흔적.
註 00 ; 융합(融合/concrescence) - 둘 이상의 사물을 서로 섞거나 조화시켜 하나로 합함. 심리학에서는 둘 이상의 요소가 합쳐져 하나의 통일된 감각을 일으키는 일. 정신 분석에서는 생(生)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충동을 이른다. 과학 분야에서는 함께 성장하는 것. 본래 분리되어 있던 부분의 결합을 의미하며, 발생학에서는 세포의 흐름이나 퇴적(堆積)을 가리킨다. 유의어는 막힘이 없이 여러 사물에 두루 통함을 의미하는 통섭(統攝)이 있다.
範圍
吾敎는 天의 代言이라. 天은 人界萬區를 周包한 者 l 오. 周包를 內面에 在한 十七億人은 吾의 等族이니 吾族을 唱引하야 竝히 靈界에 前至하기는 吾敎에 本分이라 故로 世界全球는 吾敎 範圍內에 在함이라.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범위
우리 천도교는 한울님의 말씀을 대신해서 전하는 종교이다. 인류와 만방을 모두 포함한 것이요 주포를 내면에 담고 있는 十七억의 전 인류는 우리와 같은 지위를 가진 동족이니 인류를 끌어드려(불러드려) 다 같이 신령계에 먼저 이르도록 하는 것은 천도교의 본분이다. 고로 전 세계는 천도교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註 00 ; 주포(周包) - 두루 두루 감싸 안는 것.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것.
例文 - 宇宙之內 蒼茫之外, 果有一大精靈, 貫流周包而推運之者耶? 造翁之生人也, 欲其養善滅惡, 以率萬物者耶?  質之外, 果有精靈, 能扶善滅惡, 通性完功, 則身固有死, 而靈可以朝天入神鄕耶? 人之於生也, 只可安分樂道, 忍辛耐苦, 而無怨則足耶? 存性養志, 行善而不怠, 使得俯仰無愧, 則雖死而無餘亦足耶?
우주의 안으로 아득히 넓은 그 언저리에 과연 한 큰 정령(精靈)이 있어 일체를 꿰뚫어 흐르고 두루 감싸 안으며 이 세상을 밀어 운행하게 하고 있는가? 조물주가 사람을 낳게 한 것은 선을 기르고 악을 멸하여 이로서 만물을 통솔하게 하고자 했던 것인가? 신체의 바탕 외에 과연 정령이 있어 능히 선을 북돋우고 악을 멸하며, 본바탕에 통하여 맡은 일을 온전히 함으로서 곧 신체는 물론 죽음이 있더라도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서 신의 고향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단지 본분을 지키고 도리를 즐기며 괴로움을 참고 견디어 원망함이 없으면 곧 족한 것인가? 본바탕을 지니고 뜻을 기르며 선을 행함에 태만하지 않고,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아 부끄러움이 없으면 비록 죽어서 남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역시 만족한 것인가? / 규원사화 - 만설漫說 3 중에서 해석은 신명 천부궁
■ 규원사화(揆園史話) -1675년에 북애자(北崖子)가 저술하였다는 역사서 형식의 사화(史話) / 목록: 서(序), 조판기(肇判記), 태시기(太始紀), 단군기(檀君紀), 만설(漫說), 단군관련기사, 교감기(校勘記), 교감표(校勘表)
目的
吾敎는 靈과 身을 雙方持護한 者 l 라. 靈은 身에 宅하야 覺慧를 供하며 身은 靈을 具하야 能力을 試하나니 靈과 身이 一을 遺하면 是는 境空이라 靈은 世界新空氣를 吸取하며 身은 社會大事業을 發達하야 萬方人族이 共히 大岸에 趨登할 目的이니라.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목적
천도교는 성령과 육신을 서로 온전하게 보전하고 통솔하게 하는 종교이다. 성령은 육신의 집에 머물러서 사람들에게 각혜를 제공하며 육신은 성령을 두루 갖추어 능력을 보여준다. 성령과 육신 중에 그 어느 하나가 빠지면 이것은 심경을 비우게 되는데. 지금의 성령은 세계의 새로운 정신을 받아드려야 하며 육신은 사회의 대사업(지상천국 건설)을 발달시켜 세계만방의 인류들에게 다 같이 대안(目的地,地上天國)에 오(이)르도록 재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註 00 ; 각혜(覺慧) -불교 용어로서 날카롭고 교묘한 깨달음의 지혜(知慧)를 말한다. 또는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맑게 하여야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는 뜻이다.
註 00 ; 경공(境空) = 념정경공(念淨境空)의 준말로 생각을 깨끗이 하고 주변을 말끔히 한다는 의미이다. 念淨은 생각이 깨끗함. 생각이 맑음. 境空은 심경을 비움을 뜻한다.
■ 人心에 有個眞景하여 非絲非竹이라도 而自恬愉하고 不烟不茗이라도 而自淸芬하니 須念淨境空하고 慮忘形釋이라야 纔得以游衍其中이니라. / 菜根譚 후집(後集)/念淨境空에서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사람의 마음에는 참된 경지가 있어 거문고나 피리가 아니어도 절로 고요하고 즐거워지며 향을 피우거나 차를 달이지 않더라도 스스로 맑은 향이 일어난다. 모름지기 생각을 맑게 하고 마음을 비우며 모든 번뇌를 잊고 육체의 얽매임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纔) 사람의 마음이 참된 경지에 다다르게 되면, 그 속(일상생활)에서 자유자재로 행동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
註 00 ; 채근담(菜根譚) - 중국 명나라 말엽에 전체가 2권으로 된 홍자성(洪自誠)의 어록집(語錄集)으로 전집은 222항목, 후집(後集) 134항목으로 이루어졌다. 모두 단문으로 주로 대구(對句)로 이루어진 간결한 문장으로 사상적으로는 유교가 중심이나 도교와 불교의 내용이 많으나. 저자 자신의 청렴한 생활을 통한 인격수련과 온갖 고난의 체험에서 얻은 지언(至言)이다.
註 00 ; 발달(發達) - 규모나 수준이 점차로 커지거나 나아지다 또는 신체나 지능 따위가 성장하여 제 모양을 갖추거나 성숙함.
註 00 ; 대안(大岸) - 大彼岸의 준말. 피안(彼岸)은 불교 용어로서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피안은 산스크리트 어 ‘pāramitā’의 번역어로,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 또는 그런 경지 또는 생사해(生死海)를 초월하여 열반안(涅槃岸)에 도달하는 정토(淨土)를 이른다. / 類義語는 바라밀다(波羅蜜多).
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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