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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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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댓글 0건 조회 153회 작성일 19-03-2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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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7)
천도교 신앙의 의미와 기본적인 절차는『天道敎儀節』에서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데, 『天道敎儀節』제2장 오관(五款) 제1절 주문(呪文)에서 주문은 道成立德을 이루는 祈禱文이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주문은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로서, 장생(長生)의 글이며 한울님의 덕을 천하에 펴는 법문이다. 항상 독송(讀誦)함으로써 천심을 회복하여 진리를 깨닫고 천덕사은을 염념불망하여 만사여의(萬事如意)에 이르고 이신환성(以身換性), 천인합덕(天人合德), 도성입덕(道成立德)을 이루는 기도문(祈禱文)이다. 현재는 강령주문(降靈呪文), 본주문(本呪文), 신사주문(神師呪文)이 사용되고 있다.
呪 文 (주문)
先生呪文
降靈呪文: 至氣今至四月來
本呪文 : 侍 天主令我長生無窮無窮萬事知
弟子呪文
初學呪文: 爲 天主顧我情永世不忘萬事宜
降靈呪文: 至氣今至願爲大 降
本呪文 : 侍 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道成德立의 사전상의 의미로는, 수양을 하여 도와 덕이 이루어짐. 또는 도를 완성하고 덕을 확립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쉽도록 풀이하면 하늘의 이치를 터득하고 하늘의 덕을 바르게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의 도(天道)란 우주만물을 지배하는 질서와 究極的인 이법 또는 천(天)의 위력· 신비성· 합법칙성 그리고 그 존재 방식을 가리킴을 말하고, 하늘의 덕(天德)이란, 만물을 만들고 기르는 대자연의 무한한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유학에서는 천도를 세 가지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그 첫째는『周易』繫辭傳에서, “음(陰)과 양(陽)을 하늘의 도(道)라 한다./一陰一陽之謂道/理氣解說-道有動靜 動靜者氣也 動之靜之者理也 라고 할 때의 천도이다. 즉, 음양의 두 본성이 갈아들면서 성장과 소멸을 하며 천도가 운행된다. 는 것이고, 둘째는 老子의『道德經』79에서 “천도는 편애함이 없으며 늘 착한 사람과 더불어 한다./天道無親 常與善人;천도는 공평무사하므로 항상 착한 사람을 돕는다.”하여 천도는 항상 선한 것을 지향한다고 했다. 그리고 셋째는『中庸』20章에서 “성실한 것은 천도요, 성실하게 하는 것은 인도이다./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老子 道德經-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라고 하여 人道의 본원으로서, 誠의 천도를 말하고 있다. 이로서 천도의 진정한 의미는 天地를 主宰하는 理致라는 뜻으로 이해하여 사용하고 있다. 라고 할 수 있다./관련 자료들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함.
수운은 후천개벽의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새사람에 대하여 포덕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故 人成君子 學成道德 道則天道 德則天德 明其道而修其德 故 乃成君子 至於至聖 豈不欽歎哉/布德文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그러므로 사람은 군자가 되고 학은 도덕을 이루었으니, 도는 천도요 덕은 천덕이라 한다. 그 도를 밝히고 그 덕을 닦음으로 군자가 되어 지극한 성인에까지 이르렀으니 어찌 부러워 감탄하지 않으리오.
교단에서는 新人間(새 사람/새 인간)으로서의 인격완성을 이룬다는 의미를 가진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나, 교의해석에 따라 다르게 이해하고 설명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떤 분은 도성덕립을 이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대신사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천도(天道)를 가르치시고자 하셨습니다. 도성덕립(道成德立)의 도성(道成)은 천도(天道)에 이르렀다는 말씀이요, 덕립(德立)은 천덕(天德)을 갖추었다는 말씀으로 생각합니다.’라고 道成德立이란 天道에 이르고 天德을 갖추는 것이라는 뜻인 것으로 해석된다. 아마도 天道와 天德의 根源的인 意味를 的確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사료된다.
만약에 水雲의 敎義를 좀 더 깊이 살펴보았더라면, 이렇게 막연한 설명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水雲은 布德文에서 ‘故 人成君子 學成道德 道則天道 德則天德 明其道而修其德 故 乃成君子 至於至聖 豈不欽歎哉’ 라 하여 군자가 되는 길은 학문을 통하여 도덕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도덕이란 天道와 天德을 갖추는 일이라 하였다. 이 도덕적인 인간 즉 신인간은 천도의 의미를 밝혀 삶의 가치로 삼고 천덕을 갈고 닦아 행하게 되면 마침내 군자가 되고 더 나아가 성인의 경지에 올라 많은 사람들로 부터 흠모를 받게 된다.(거룩하게 우러러 볼 수 있는(崇仰) 어른/ 매우 존경받는 어른이 된다.) 고 했다. 도덕(天道와 天德)의 이치가 이렇기 때문에 道學을 수운은 論學文에서 ‘道雖天道 學則東學’이라고 說破하고 있다. 는 경전 속에 담겨진 水雲說法의 참 의미를 간과한 것 같다.
水雲은 세상 사람들이 떠도는 말만 듣고 동학을 따르려 하자 「修德文」을 지은 이유와 그 연유를 밝히며 바른 믿음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雖然 道成德立 在誠在人 或聞流言而修之 或聞流呪而誦焉 豈不非哉 敢不憫然 憧憧我思 靡日不切 彬彬聖德 或恐有誤 是亦不面之致也 多數之故也 遠方照應而 亦不堪相思之懷 近欲敍情而必不無指目之嫌 故 作此章 布以示之 賢我諸君 愼聽吾言 ⑪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비록 도성덕립이 되는 것이 정성에 있다할지라도 그 사람의 됨됨이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더러는(或者) 떠도는 말을 듣고 수도를 하며 더러는 떠도는 주문만을 듣고 誦呪를 하니, 이 어찌 매우 잘못된 일이 아니며 이 어찌 민망한 일이 아니겠는가? 안타까운 나의 심정은 흡족(洽足)한 날이 없고, 거룩한 덕을 아주 빛나게 하는 일이 혹시나 잘못될까 두려워한다. 이것은 또한 직접 만나서 나의 참뜻을 들어보지 못한 탓이요, 나의 천도의 이치(동학의 근본이치)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까닭이라. 먼 곳에서도 서로 마음과 마음은 비치어 응답하지만 또한 그리운 회포를 이기지 못하겠고, 가까이 만나서 정회를 풀어보고자 하나 반드시 지목 받을 혐의가 많이 있으므로 내가 이 글(修德文)을 지어 널리 펴서 보이니, 어진 그대들은 삼가 나의 참된 말(眞言)을 올바르게 들고 이해하라.
大抵此道 心信爲誠 以信爲幻 人而言之 言之其中 曰可曰否 取可退否 再思心定 定之後言 不信曰信 如斯修之 乃成其誠 誠與信兮 其則不遠 人言以成 先信後誠 吾今明諭 豈非信言 敬以誠之 無違訓辭 ⑫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대체로 보아서 나의 도(此道)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믿어야 한다. 믿을 신자를 풀어서 살펴보면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니 사람의 말 가운데는 옳고 그름이 있으므로, 그 말들 중에서 옳은 말은 취하고 잘못된 말은 버리고 거듭거듭 생각하고 생각하여 마음을 정하라. 한번 마음을 정한 뒤에는 다른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올바른 믿음이니 이런 믿음으로 닦아야, 마침내 그 정성을 다 하게 된다. 정성과 믿음이여, 그렇게 믿는 방법이 멀지 않아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믿게 되리라. 믿음이 사람의 말로 이루어 졌으니 먼저 믿고 뒤에 정성을 다하라. 내 지금 밝게 가르치니 어찌 미더운 말이 아니겠는가. 공경하고 정성을 들여 가르치는 말이니 어기지 말라.
또 수운은 「敎訓歌」에서 ‘도성입덕 하는 법은 한 가지는 정성이오, 한 가지는 사람이라.’ 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도성입덕의 성취여부는 ‘부자형제 그 가운데 도성입덕 각각이라.’ 하였다. 이 말은 비록 부자형제라도 아무나 도성입덕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정성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됨됨이가 중요하다는 말씀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됨됨이가 제대로 안되어 있으면 아무리 주문을 외우고 수도연성을 하여도 도성입덕이 어렵다는 것이다. 도성입덕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현인군자와 같은 신인간이 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道修詞에서 성경 이자 지켜내어 차차차차 닦아내면 / 때가 오면 도성입덕 아니 될 것인가?/될 수 있다. 라고 강조하고 있다. 道成德立과 道成立德은 유교사상의 핵심 언어 중에 들어 있는 天道와 天德을, 水雲이 동학창도의 기본사상을 설명하는 특수한 용어로 만든 新造語라 할 수 있으므로, 그 구체적인 의미는 수운의 동학창도의 뜻에 맞게 새로이 규정해야 할 것이다. 경전 상에서의 道成德立과 道成立德은 같은 의미를 가진 용어이다.
아무리 그러해도 이내몸이 이리되니
은덕(恩德)이야 있지마는 도성입덕(道成立德) 하는법(法)은
한가지는 정성이오 한가지는 사람이라
부모(父母)의 가르침을 아니듣고 낭유(浪遊)하면
금수(禽獸)에 가직하고 자행자지(自行自止) 아닐런가
우습다 너희사람 나는도시(都是) 모를러라
부자형제(父子兄弟) 그가운데 도성입덕(道成立德) 각각(各各)이라 -중략-
열세자 지극(至極)하면 만권시서(萬卷詩書) 무엇하며
심학(心學)이라 하였으니 불망기의(不忘其意) 하였어라
현인군자(賢人君子) 될것이니 도성입덕(道成立德) 못미칠까
이같이 쉬운도를 자포자기(自暴自棄) 하단말가 / 敎訓歌.
성경이자(誠敬二字) 지켜내어 차차차차 닦아내면
무극대도(無極大道) 아닐런가 시호시호(時乎時乎) 그때오면
도성입덕(道成立德) 아닐런가② -중략-
급급(急急)한 제군(諸君)들은 인사(人事)는 아니닦고
천명(天命)을 바라오니 졸부귀(猝富貴) 불상(不祥)이라
만고유전(萬古遺傳) 아닐런가 수인사(修人事) 대천명(待天命)은
자세(仔細)히도 알지마는 어찌그리 급급(急急)한고④/ 道修詞.
교단의 중견 교역자 중에 한 분인 최동환은 용담유사 풀어쓰기(2011. 7. 5./천도교 마음게시판에 2012-04-04.게재)에서 道成立德을 註解하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도성입덕(道成立德) : 도를 닦아 이루어 덕을 세운다는 뜻으로 도를 이룬다 함은 첫째는 수운대신사 등 스승님이 가르쳐 준 한울님 마음이 수운대신사의 마음 즉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심법을 체득하고, 주문을 지극히 외워서 지기로 지극히 하나되어 성인에 이르는 것이고, 둘째는 한울님을 알고, 한울님 모심을 알고, 천지 만물의 태어남과 멸함 등 성쇠의 이치 등 천리와 자연의 법칙을 아는 것 즉 도통을 말함이며, 덕을 세운다 함은 다른 사람뿐 만아니라 모든 만물을 공경하여 이롭도록 베풀음을 말함. 이라 하였다 이런 해석은 천도교시대의 초기부터 정리해온 해석이지만 대다수의 신앙인들이 잊고 있다.
이찬구는 「한국 신종교 사전」에서 道成德立이란, 도를 이루어 덕을 세운다는 뜻으로 동학의 수행목적을 이르는 말이라고 간략히 정의를 내린 다음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도성덕립(道成德立)과 도성입덕(道成立德)은 동학의 경전에서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단지 도성덕립은 도와 덕을 나란히 놓고 본 것이라면, 도성입덕은 도의 목적을 덕에 놓고 본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도성덕립에서 도(道)는 동학의 도문에 입도(入道)하여 도의 핵심인 21자 주문을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나아가 수도와 수행의 과정에서 거쳐 도성(道成)이 되고, 덕을 세운다. 여기서 “덕을 세운다[立德]”는 것은 수련자의 덕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날님의 덕을 받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또 도성덕립은 재성재인(在誠在人)이라 하여 정성을 다하는 자신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다른 경전인 『용담유사』에도 “십년을 공부해서 도성입덕 되게 되면 속성이라 하지만은” 혹은 “수신제가 아니하고 도성입덕 무엇이며 삼강오륜 다 버리고 현인군자 무엇이며”라고 하여, 동학에서 주문공부가 중요하다는 것과 수신제가의 요체가 도성덕립(도성입덕)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해석은 직설적이긴 하지만, 수운이 생각하고 권장한 도성덕립(도성입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입도하여 교의에 따라 이해하고 생각하며 신앙을 하는 근본목적은 다시 개벽을 하여 후천의 세상을 이룩하는 것으로 도성덕립(도성입덕)이란 군자나 성인의 경지에 오른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라는 것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되고 그런 교의에 따라 철저한 신앙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지상천국 건설에 선도자가 될 수 있고 역군인 될 수 있는 것이다.
천도교 중앙총부 자유게시판에 자주 글을 올리시는 어느 교구장의 도성덕립에 관련된 글을 읽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문의를 하였는데 그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문답의 전문을 올려 다 같이 생가해보고자 한다.
‘제154주년 지일기념을 맞아 해월신사님의 가르침 중 도성덕립(道成德立)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신사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천도(天道)를 가르치시고자 하셨습니다. 도성덕립(道成德立)의 도성(道成)은 천도(天道)에 이르렀다는 말씀이요, 덕립(德立)은 천덕(天德)을 갖추었다는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밖으로 접령하는 기운이 있고 안으로 강화의 가르침이 있다」는 것과 「지기금지 원위대강」이라 한 것이 이것이니라. " 하셨으니,「심령지영」을 보면 「지기금지 원위대강」은 도성덕립(道成德立)을 말씀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시천주 조화정」은 만물이 화생의 근본을 밝힌(明) 글이요,(생명)「영세불망 만사지」는 사람이 먹고사는 녹의 원천을 밝힌(明) 글이라고 하셨습니다.(생활)
「명명기덕」이란 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생활하는 한울님 은덕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후천 천황씨께서 비로소 밝혀놓으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_ 「오도지삼황」 그리고「명명기덕 염염불망」하면 스스로 자연한 가운데 지기로 지극히 화한다고 하셨습니다.
본래 지기로 시작한 내 마음이 내 몸에 갇혀 지내다가 한울님 은덕을 생각하고 생각하여 잊지 않으면 자연한 가운데 내 마음이 지기로 지극히 화하여(회복하여) 한울님 도를 자연한 가운데 운영하게 되는 지극한 성인에 이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지기로 지극히 화하여 지극한 성인에 이르는 것을 도성덕립(道成德立)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전에서 스승님들은 한 결 같이 열 세자를 지극히 하면 도성덕립할 수 있다고 당부하셨습니다.
「지기금지 원위대강」으로 한울님의 이치기운을 받아 내가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게 되었고,(선천개벽) 대신사님의 포덕을 받아 주문 열세자로「명명기덕 염염불망」하여 지기로 지극히 회복한 후 성인의 지위로써 한울님 이치기운으로 천덕(天德)을 세우고 천도(天道)를 행하니, 이것이 다시, 「지기금지 원위대강」이라고 생각합니다.(후천개벽, 다시개벽)
「절차와 도법이 오직 이십일 자로 될 따름이니라.」하신 스승님의 말씀과「개벽 후 오만 년에 노이무공 하다가서 너를 만나 성공하니」 하신 한울님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진리를 지킨다는 것, 대신사, 해월신사, 의암성사, 춘암상사 네 분 스승님께서 목숨 바쳐 지키신 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해월신사님의 「용시용활」하라는 말씀 명심하고 있습니다.
「용시용활」 하기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이 내 몸에 모신 한울님을 찾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 도는 세상의 도를 배운다기 보다는 한울님을 배우는 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의예지는 선성지소교요, 수심정기는 유아지 갱정이라.」고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주문 열세자로 명명기덕을 염염불망하고 보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원하고 바라는 일이 있으시거든 원하고 바라는 마음을 키우기보다는 「명명기덕 염염불망」하시기를 권합니다.
해월신사님께서 「영부주문」에서 선천마음과 후천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선천마음, 후천마음으로 말씀드리면, 후천마음을 닦으라는 것은 선성의 가르침이요, 선천마음을 단련하라는 것은 네 분 스승님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천마음과 후천마음을 구별하여 알기 위해서는 먼저, 주문 해석의 「내유신령 외유기화(內有神靈 外有氣化)」 에서 내외(內外)의 구분을 사람(몸)을 기준으로 내외를 구분해야 하는지 영(靈)을 기준으로 내외를 구분해야 하는지 연구해 봐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의암성사님의 「강론경의」 「성령출세설」의 가르침으로 도움 받았습니다.’ 라고 글을 마치셨습니다.
‘00장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죄송스럽지만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00장님의 글에 "본래 지기로 시작한 내 마음이 내 몸에 갇혀 지내다가 한울님 은덕을 생각하고 생각하여 잊지 않으면 자연한 가운데 내 마음이 지기로 지극히 화하여(회복하여) 한울님 도를 자연한 가운데 운영하게 되는 지극한 성인에 이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지기로 지극히 화하여 지극한 성인에 이르는 것을 도성덕립(道成德立)이라고 생각합니다."라 하셨는데 교단 안이나 교단 밖에서 동덕님이 생각하시기에 성인에 이르는 도성덕립이 되신 분이 있습니까? 그 분의 존함을 들을 수 있습니까? 설사 그런 분이 있다하더라도 그 분이 천도교와 이 나라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일을 해야 좋을까요? 이 시대의 시대정신은 알고 계실까요?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천도교의 역사의식은 어떤 것일까요. 저는 고민이 많습니다. 고민에 도움이 되는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오암 심고.
‘眞理라는 것은 永遠不變한 것이 아니라 可變的인 것. 인간성 상실의 시대인 19세기의 격동적인 흐름 속에서, 수운은 선천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다시 개벽으로 후천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선천의 시대의 진리가 變轉하여 후천시대의 새로운 진리로 변한 것이다. 진리라는 것 확대하면 모든 가치는 怒濤와 같이 흐르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변동이 있을 때마다 생성되는 시대정신에 따라 변전한다. 천도교의 敎義上의 진리는 천도교의 역사인식에 변화에 따라 力動的으로 변화해 왔으나 지금은 停滯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시대의 시대정신과 현대라는 특수한 역사 현실에 대한 역사의식과 인식의 부족에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可變的인 진리를 믿는 다는 것은 수운이 거부한 선천시대를 자신도 모르고 애써 지키려는 그 시대의 마지막 인간인 것이다. 수운이 우리들에게 바란 다시 개벽의 중심적인 변혁의 안내자가 되는 신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인간이 되기 위해선 선천의 진리에 매달려 있는「어제의 나」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미래의 나」로 대 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오암 심고.
論學文에서의 ‘不忘者 存想之意也 萬事者 數之多也 知者 知其道而受其知也 故 明明其德 念念不忘則 至化至氣 至於至聖 ⑬’과 도덕가에서 ‘大學에 이른 道는 明明其德하여 내어 止於至善 아닐런가’가 무엇이 다른가? 모두가 先天之敎요 先天之道가 아닌가? 후천 개벽의 시대에 先天之敎가 왜 필요한가?
교훈가에서 ‘儒道佛道 累千年에 運이 亦是 다했던가’ 라고 하여 수운은 시대의 변화를 직시하고 계셨다. 또 교훈가에서 ‘열세자 至極하면 萬卷詩書 무엇하며 心學이라 하였으니 不忘其意 하였어라 賢人君子될것이니 道成立德 못미칠까’ 와 몽중노소문답가 에서의 ‘아셔시라 아셔시라 八道구경 다 던지고 故鄕에나 돌아가서 百家詩書 외워보세’의 대립된 법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또 ‘八歲에 入學해서 許多한 萬卷詩書 無不通知하여 내니 生而知之 彷彿하다’ 라는 법설은 열세자 至極하면 萬卷詩書가 필요 없다는 말인가? 萬卷詩書나 百家詩書를 공부해야 된다는 말씀인가? 헤아리기가 어렵다. 座箴에서의 ‘吾道博而約 不用多言義 別無他道理 誠敬信三字’는 주문 ‘열세자로 명명기덕을 염염불망’하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오암 심고.
필자가 그 중견 교역자가 올린 글에 따라 세 번의 질문과 의견을 말씀드렸으나 다른 말씀은 많이 하였지만, 필자의 물음에는 한마디의 대답이 없었다. 이것은 소통이 안 되는 동문서답의 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천도교인의 가장 맹점은, 남의 말을 정중히 듣지 않고 제 말만하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다. 만약 교인이 아니고 사회인이 이런 광경을 보았다면 주고받는 문답이 아니고 제 말만 하는 광장의 한 풍경이라 하였을 것이다. 천도교인들 중에는 평소에 시비곡직이나 천도라는 사리를 따지지 않고 자기 무리들끼리 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에게도 지나치게 온정적인데 반하여, 적대적인 감정이 있는 교인들, 그리고 객관성도 없고 만인이 인정할 판단의 기준도 없이 일방적으로 기피인물이라고 점찍어놓은 교인들에게는 매우 냉정하고 배타적이다. 이런 경우에는 시천주도 없고, 사인여천도 없으며, 인내천도 간 곳이 없다. 또한 동학의 도인도 없고, 천도교의 교인도 없다. 그들은 각박한 현실을 고달프게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의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 분들은 때때로 자신이 천도교인, 더구나 중견 교역자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註 00 ; 吾道博而約 不用多言義 別無他道理 誠敬信三字 這裏做工夫 透後方可知 不怕塵念起 惟恐覺來知 / 座箴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우리의 도(내가 창도한 수운의 도는)는 도의 범위가 깊고 넓은 것 같으나 간략함으로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도를 터득함에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 경, 신 석자에 있으므로, 이를 깊이 자각하여 깨달아서 실천궁행을 하면 된다. 그러면 그 과정 속에서 우리 도의 참 모습을 터득하여 마침내 깨달을 수 있다. 자각하고 실천궁행을 하는데 잡념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깨우쳐서 「萬事知」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라.
천도교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인 지상천국건설의 지상천국(地上天國)의 의미는, 어학사전에서 설명하고 있는 지상천국은, 이 세상에서 이룩되는 가장 행복하고 자유로운 이상적 사회라고 했다. 그런데 천도교와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몇 개의 집단에서는 극락세계를 하늘 위에다 구하지 않고 사람이 사는 이 땅 위에다 세워야 한다는 입장에서 그리는 영육 쌍전(靈肉雙全)의 이상적 세계를 지상천국이라 한다고 설명하면서 유의어로는 지상낙원이라고 하고 있다.
註 00 ; 현대의 지상천국 - 서구의 영어권에서 사용되는 ‘slice of heaven’는 ‘지상천국(a kind of heaven on earth) 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는 ‘slice of heaven’는 ‘지상천국같은 느낌을 준다.’는 뜻으로 ‘something very pleasant, wonderful’의미이다.
이 지구상의 현대라는 시간대에서 말할 수 있는 지상천국은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이라 할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국가 공식명칭은 국명은 리히텐슈타인 공국(Principality of Liechtenstein)이고 수도는 파두츠(Vaduz)이다. 이 나라는 실업자가 없고 빈부격차도 없고 범죄도 없는 3無의 나라로. 1인당 국내총생산 12만 달러로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 최고의 나라이다. 서유럽에 있는 내륙국의 하나로, 알프스에 둘러싸인 천혜의 관광 자원국 리히텐슈타인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작은 나라이며 유럽에서 네 번째로 작아 스위스의 어느 한 주로 착각하기 쉬운 나라 리히텐슈타인,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하며 외교권과 국방권은 스위스가 가지고 있다.
참고로 기독교의 성서해석자 중의 일부는 지상천국의 원형이 에덴동산이라고 해석하는 경향도 있으며, 불교의 한 스님은 경주 동대 선학과와 서울 동대 선학과 석사과정 수료한 중견 수행자로 무이스님이다. 그는 길상지에 투고한 ‘새해 아침의 작은 바램(地上天國)’/길상 128. 월 2004년 1월)에서
‘중생들이 四相(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을 없애고 무리한 욕망을 없애고 다른 사람의 삶의 방법에 관여하지 않고 서로 화목하게 지낸다면 우리가 사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 되는 것이다. 천국이 하늘 높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공연히 하늘에 있는 천국에 모든 사람들이 다 올라가서 천국이 무너지는 천지개벽이 일어나서, 마치 부동산 투기에 막차를 탔다가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처럼, 천국행 막차를 타서 천국이 무거워 무너지는 바람에 천지개벽이 되어 다시 원위치 되어, 모처럼 천국에 간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되도록 하지 말고,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을 四相을 가지지 말고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無住를 실천하여 서로 존중하고 다툼없는 지상 천국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라고 신년 기원을 하고 있다.
■ 趙甲濟의 ‘지상천국을 만든 Nordic Model(北歐모델/2010년 10월 4일)’ 이란 글에서
노조 조직률이 80% 이상인데도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 公共부문이 커도 생산성이 높다.
1. 스칸디나비아 3국이라고 하면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만 들어간다. 핀란드가 빠진다. 노르딕 칸추리(Nordic Countries)라고 하면 3국외에 핀란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파로에 섬이 들어간다.
2. 이들 나라를 北歐(북구)라고도 부른다. 인구는 스웨덴이 937만으로 가장 많다. 덴마크 550만, 핀란드 534만, 노르웨이 483만 명이다. 아이슬란드는 약32만 명, 그린란드는 5만6000명, 파로에는 4만9000명이다. 면적은 그린란드가 216만 평방킬로미터로서 호주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다. 그린란드와 파로에는 덴마크 자치령이다.
3. 북구 4개국의 인구는 모두 2500만 명 정도이다. 종교는 신교가 84%이다. 거의 모두가 루터교이다. 가톨릭은 1.25%로서 이슬람(2.58%)보다 적다. 북구는 1000년경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종교개혁 시대에 루터교로 개종하였다. 16세기 종교 전쟁 때 스웨덴은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독일에서 개신교 세력을 지켜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은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중략- 북구모델(Nordic Model)이란 말의 내용은, 이 나라들이 개발하여 정착시킨 독특한 사회, 복지, 교육 제도를 말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혼합형태이다. 개인의 기본권 존중, 평등, 여성의 취업 장려, 경제활동 인구의 最多化(최다화), 빈부격차의 최소화, 강력한 사회보장-의료보험-의무교육 제도, 낮은 범죄율, 높은 생활수준, 많은 세금, 높은 고급 문서 해독률, 민주주의의 성숙, 법치주의의 확립, 높은 노조 가입률(80% 이상), 사민당의 장기집권, 公共부문의 지출이 많지만 생산성은 높다.
현재의 천도교 교단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는 정확히 설명된 것이 없어 알 수는 없지만, 불교가 사용하는 극락세계나 서양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유토피아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극락세계를 하늘 위에다 구하지 않고 사람이 사는 이 땅 위에다 세워야 한다.’ 라고 설명하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천도교의 지상천국은 극락세계나 유토피아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신이나 성인들이 만드는 세상이 아니라 천도교의 신도들과 모든 사람들이 각자가 모든 것의 주체가 되는 인간 중심의 다른 세상이기 때문이다.
동학계 계파의 하나로 알려진 증산도에서는 진정한 상생의 세상 우주의 통치자이신 새 하늘 새 땅의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 신천지를 지상천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는 기독교에서는 말하는 천국은 인간이 사는 세상이 아닌 신의 세계를 말한다. 천국은 신이 사는 하늘의 나라이며, 지상천국은 말 그대로 신이 사는 하늘의 나라와 같은 유토피아가,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더불어 사는 이 땅위에 건설되는 세상이 지상천국이라고 하고 있다.
천도교의 교단의 입장이 아닌 화암(和菴) 김호성이 교화관장이라는 직명으로 개인적인 의견으로, 신입교인을 위한 지상강좌에서 ‘천도교에서 말하는 지상천국’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신인간 통권 제814호(포덕159년 9월호)게재됨. PP. 61-64./목차 페이지 6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천도교에서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기 때문에 천도교에서 추구하는 유토피아는 지상천국입니다. 천도교에서 이야기하는 지상천국이란 지상신선들이 사는 세상을 말합니다. 지상신선에 대한 이야기와 지상천국과 관련된 이야기는 천도교 경전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용담유사 ‘몽중노소문답가’에 보게 되면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개벽 아닐런가.”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경대전 ‘포덕문’에 보게 되면 “나도 또한 개벽이후 노이무공 하다가서 너를 만나 성공하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모두 한울님께서 수운대신사에게 하신 말씀인데 바로 후천개벽을 암시하고 있는 말씀들입니다. 천도교에서는 한울님께서 이 세상을 다시 개벽해서 선천세상과는 다른 후천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한울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 진리를 세상에 내놓으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후천개벽이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시천주’ 진리를 믿고 사람을 한울님처럼 공경하며 살아가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세상을 새롭게 열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천도교에서는 후천개벽이 이루어진 새로운 세상을 ‘춘삼월 호시절’로 표현한 것을 경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경대전 「시문」에 보게 되면 “봄이 오는 소식을 응당히 알 수 있나니 지상신선의 소식이 가까워 오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용담유사 「권학가」에 보게 되면 “춘삼월 호시절에 놀고 보고 먹고 보세.”라는 구절도 있습니다. 이처럼 후천개벽의 새로운 세상은 만물이 소생하는 화창한 봄날과 같이 좋은 환경에서 먹고 사는 걱정 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상신선(천도교에서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이 이루어진 신인神人인 지상신선地上神仙이라고 부릅니다. - 화암이 이 글에서 설명한 내용)들의 세상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상신선이 되게 되면 물욕이 다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상신선들이 많이 사는 세상이 되게 되면 물질문명을 추구하는 사회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정신적인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정신문명의 사회로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세상이 바로 천도교에서 추구하는 지상천국地上天國입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김호성은 이 글에서 지상천국 건설의 주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략- ‘물질문명을 숭배하는 사상이 존재하는 한 인간은 물질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인간의 마음은 점점 더 각박해지게 되고 자연파괴는 점점 더 심각한 상황까지 진행되게 됩니다. 이제는 이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구에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울님께서 준비하신 것이 아마도 괴질운수 같습니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괴질운수가 지나간 후에 살아남는 사람들이 건설할 새로운 세상은 아마도 지상천국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이어서 이렇게도 설명하고 있다.
‘천도교에서 추구하는 정신문명이란 사람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만물이 한울인 이치를 알고 한울이 한울을 위하는 사상을 표현하는 다양한 문화형태를 말합니다. 후천 세상에는 이러한 시천주侍天主 진리와 사인여천事人如天 문화가 활짝 꽃피는 지상천국인 한울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천도교인들은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천도교 교단이 말해주어야 할 지상천국에 대한 올바른 설명일까에 대한 의구심을 살펴보기 위하여, 교단에서 교리해석의 최고 권위자였고 핵심 교역자였던 이돈화의 각 저서들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 가를 알아보면, 그 답을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필자는 가지고 있다. 특히나 이돈화의 교의해석은 1910년대 중반이후부터 그가 생존기간은 물론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주장과 해석에 대하여 교단 내에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교단의 공식입장이라 해도 부정한 사람도 없고 그런 일도 일어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하여 ‘지상천국 건설’이란 독립된 소제목으로 유일하게 설명하고 있는 종교역사 학자인, 金得榥이『韓國思想史』/初版 /PP. 232-233.에서 말하고 있
李敦化가 설명하고 있는 각 저서에서의 地上天國.
■ 地上天國 /『新人哲學』 P. 157.에서
-前略- 水雲은 이것을 切憎하여『너이라 무슨 八자 不勞自得 하단말가 陷之死地生들아 輔國安民 어찌할고』하여 動的 道德을 高調하였다. 이렇듯이 그는 民族開闢에 努力하였다. 그 結果가 當時 權力階級의 憎惡한 바 되어 畢竟 斷頭臺上의 靈露로 化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를 信奉하는 弟子들이 以來 七十年間 그의 主義에 忠實한 功獻을 하여 왔다. 그러나 民族開闢은 水雲主義로 보아서는 한 過程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水雲主義의 目的은 本來 地上天國이다. 그러나 그 理想에 까지 나가려면 勢不得已 여러 段階를 밟지 않을 수 없게된 것이 民族開闢이며 社會開闢이다. / P. 157.에서.
註 00 ; 현재 천도교경전 용담유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너희라 무슨팔자 불로자득(不勞自得) 되단말가』로 교훈가가 출전이고 『함지사지(陷之死地) 출생(出生)들아 보국안민(輔國安民) 어찌할꼬』는 권학가가 출전이다. 그러므로 위의 인용문은 하나의 연결된 문장이 아님에 유의하시기 바람./오암.
-前略- 水雲은 일찌기 創造時代(創道時代의 잘못/오암)에 있어 敎徒에게 이名帖라 하여 簡單한 目的標示를 준 일이 있었는데 그 內容은 이러하였다. 첫머리에 『龍潭淵源 劒岳布德』의 八字를 썼으니 龍潭은 水雲을 이름이오 劒岳은 海月을 이름이며 끝에 大字特書로『輔國安民 布德天下 廣濟蒼生』이라 썼으니 輔國은 民族開闢을 意味한 것이오 安民은 社會開闢을 意味함이며 布德天下 廣濟蒼生은 地上天國을 意味한 것이다. 그리하여 輔國安民은 現實問題에 屬한 것이오 地上天國은 理想에 屬한 것이므로 이를 合하여 보면 現實理想主義라 볼 수 있고 三段思想이라고도 이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三段을 各各 떼어 놓고 보면 생각할 수 있는 點에서 世上이 水雲主義에 對하여 이렇게도 評하고 저렇게도 論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其實 水雲主義의 目的은 民族主義도 아니오 社會主義理想도 아니다. 오직 地上天國에 있다. 地上天國이라는 永遠한 理想을 達하기 爲하여 過程과 段階에서 民族開闢 社會開闢을 云云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水雲主義의 開闢運動과 他主義의 現實運動關係를 過程으로서 밝힌다면 現在의 모든 特殊한 主義는 그 各 段階에서 階段的 目的을 實現코저 함에 있으므로 그들은 그 立脚한 段階를 基礎로 하고 오작 縱으로만 動하는 運動임에 反하여 水雲主義運動은 어떤 特殊 段階에 立脚하여 其 特殊段階의 目的만을 追求한 것이 아니오 各各의 特殊段階를 過程으로 하고 그를 包容하며 融化하며 統一하면서 無窮히 橫으로 動하는 運動이다. 이를 한 譬喩로서 말하면 假令 어떠한 곳에서 서울을 目的하고 가는 한떼의 무리가 있다 假定하자. 이 무리는 다만 서울을 目的하고 가는 무리이므로 中間에서 어떠한 적은 成功으로서 自足할 적은 慾望을 가진 무리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目的地를 向하고 가는 途中에 어떤 險한 山을 넘지 않으면 안되고 또는 길을 開拓치 않으면 안될 難關에 逢着하였다 하자. 그런 境遇에 이 무리들은 目的地에 速히 達할 手段으로 山路를 開拓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그를 開拓하여 一段 成功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들의 理想은 거기에 滿足치 않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아가는 途中에는 山뿐 아니라 江도 있을 것이며 幽峽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江에 다리를 놓고 幽峽에 길을 닦는 것이 自己의 目的은 아니지만 目的을 達하는 手段으로 무엇보다도 그것을 먼저 着手치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 過程에서 逢着하는 모든 段階的 目的에 成功하면서 또는 그 成功의 喜悅과 愉快를 느끼면서 우리들은 「成功不居」의 態度로 서울을 向하여 永遠한 創造의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譬喩는 水雲主義 運動을 表示하는데 簡單明瞭한 말이다. 무리라는 것은 水雲學徒를 이름이오 서울은 地上天國에 比할 말이오 山과 江과 幽峽은 過程에서 逢着하는 各段階를 이름이니 이만하면 水雲主義와 他主義의 運動關係가 어떠한가를 彷佛히 알수 있다. 여기서 最終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地上天國의 內容일 것이니 이 問題에 이르러서는 現在 人間의 理想으로도 答辯할 수 없는 同時에 또는 將來 人間의 理想으로도 答辯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 그러냐하면 地上天國은 永遠의 理想이므로 우리가 答辯한 地上天國은 發達된 將來人間의 理想에 맞지 않을 것이오 將來人間이 答辯한 地上天國은 또한 그 보다도 發達된 將來人間의 理想에 맞지 않을 것은 明若觀火한 일이기 때문이다. 要컨대 地上天國은 어떤 特定한 形式과 條件으로 答辯할 것이 아니오 人間格의 無窮한 理想을 標準한 것이므로 地上天國은 人間格이 發達되면 發達됨에 따라 또한 그 內容이 無窮히 進展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만 抽象的이나마 튼튼한 對答 하나는 地上天國이라 함은 그 時代 時代에서 各各 보다 좋은 新社會를 意味한 것으로 알아둘 것이다. / PP. 162-163.에서. 第四編 開闢思想 第二章 開闢方式과 三大開闢 5. 地上天國과 理想.에서
同德께서는 東學의 道人인가? 天道敎의 敎人인가?(8-7)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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