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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댓글 0건 조회 110회 작성일 14-04-2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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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道敎書의 異本에 대하여
천도교 홈에 게재된, 본인의 모든 글과 동학, 천도교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은, 모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카페(http://cafe.daum.net/oamdonghak)의 김 용천 자료실과 교리, 교사 연구 논문과 학술논문 자료실에 게재되어 있사오니, 자주 방문하시어 많이 읽어주시고, 교단발전에 널리 활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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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덕 155(2014)년 4월 22일.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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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트 본(謄寫本)인 『天道敎書』는 天道敎 靑年 敎理講演部가 布德 61(1920)年 4月 1日에 編終한 프린트본 敎書로, 敎史를 다룬 單行本으로는 처음이다. 敎役者 養成을 위하여 編纂된 것으로, 布德 74(1933/昭和 8)년에 간행된 『天道敎創建史』의 底本으로 알려져 있다. 具體的인 내용은, 布德 155(2014)년 2월 28일. 천도교 관련 각 게시판에 게재된 ‘『天道敎創建史」異本의 比較分析 硏究.’를 참고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印刷本인 『天道敎書』는 天道敎中央總部에서 大正 十(1921)年 四月 五日에 發行한 敎書로, 著作 兼 發行人에 朴寅浩. 印刷人에 李駿錫. 印刷所는 新文館. 發賣所는 普文館으로 된 單行本이다. / 大正 十年은 1923年이 아니고, 1921年이다. 印刷本인 『天道敎書』는 결과적으로, 1930년도에 편찬된 舊派의 天道敎史의 底本이 된 셈이 되었다.
龍潭歌 / 天道敎書/1920년도 판 ; 프린트(등사)본. 제 1편 8페이지 중앙 하단에
奇壯하다 奇壯하다 이내運數 奇壯하다
한울님 하신말슴 開闢後五萬年에
네가또한 첨이라 나도또한 開闢以後
勞而無功 하다가서 너를만나 成功하니
나도成功 너도得意 너의집안 運數로다
龍潭詞 / 天道敎書; 1921년도 판. 제 1편 10페이지 9행 上段에 / 龍潭歌를 ‘龍潭詞를 作하시니’ 로 기록하고 있다.
奇壯하다 奇壯하다 이내運數 奇壯하다
한우님 하신말삼 開闢後五萬年에
네가또한 첨이라 나도또한 開闢以後
勞而無功 하다가서 너를만나 成功하니
나도成功 너도得意 너의집안 큰運數로다
위에 인용된 天道敎書/1920년도 판의 龍潭歌의 한 구절에서 ‘한울님 하신말슴’과 ‘너의집안 運數로다’를, 天道敎書/1921년도 판 龍潭詞에서 ‘한울님 하신말삼’ 과 ‘너의집안 큰運數로다’로 任意 修訂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1920년도 판 프린트(등사)본을 어떤 이유에서 修訂 印刷를 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후에 刊行된 다음과 같은 各種 敎史 關聯資料에 의하면 잘못된 修正이라고 할 수 있다. 천도교의 신앙의 대상인 ‘한울님’은 1920년대를 前後로 하여 定着되어가는 과정으로 사용되다가, 夜雷 李敦化의 『水雲心法』, 『人乃天要義』, 『新人哲學』이 布德 65(1924)에 同時에 出刊되면서 完全히 天道敎 敎團의 信仰의 對象에 대한 公式的인 名稱으로 定着되었다고 볼 수 있다.
1. 天道敎書; 프린트(등사)본. 천도교 청년 교리 강연부. 서울. 1920/布德 74(1933/昭和 8)年. 포덕 61(1920)년 4월 1일에 筆耕이 완료되어 謄寫되어 講材로 사용됨.
2. 天道敎書; 印刷本. 천도교중앙총부. 서울. 大正 十(1921)年 四月 五日. 著作 兼 發行人 朴寅浩. 印刷人 李駿錫. 印刷所 新文館. 發賣所. 普文館. /프린트(등사)본 天道敎書의 要約 印刷本으로, 구파에서 1930에 편술된 天道敎史 附 叢書의 底本이 된 것으로 推定된다. 天道敎史 附 叢書는 1930년경에 구파에서, 崔俊模, 鄭廣朝, 李鍾麟, 三長老와 李敦化, 李仁淑의 자료 제공으로 소량 출판되어 광복과 6,25동란을 거치면서 稀貴本이 되었다. 포덕 103(1962)년 4월에 李種海의 주도하에, 포덕 71(1930)년부터 포덕 102(1961)년 말까지 30여 년간의 구파의 입장을 반영한 교단사를 추가하여 프린트(등사)본으로 간행되었다.
3. 天道敎會史 抄稿 ; 포덕 66(1925)년 경에 구파에서 독자적으로 기술한 구파계열의 입장을 밝힌 최초의 교사의 필사본 초고로 미 간행됨.
4. 『天道敎創建史』布德 74(1933/昭和 8)년에 간행.
5. 侍天敎宗繹史; 1900년대 초에 嶠南 敎育會를 설립하고 회장직을 역임했다가 초기 시천교의 교리서 간행을 책임지고 있었던 朴晶東이 시천교가 분립하자 시천교 본부 측의 교인이 되어 포덕 56(1915)년에 시천교 본부에서 간행한 시천교 본부측의 입장을 밝힌 교단사로 대신사의 탄생부터 포덕 42(1901)년 3월까지 기술되어 있다. 체제는 3편으로 구성하고, 1편은 교조 수운, 2편은 2대 교조 해월, 3편은 해월로부터 이 용구가 종통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이 용구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다. (간행경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侍天敎歷史’ 해제부분을 참조바람.)
6. 侍天敎歷史; 시천교 총부에서 侍天敎宗繹史를 底本으로 하여 간행한 또 다른 시천교의 교단사. 1906년에 일진회사건으로 천도교에서 출교를 당한 일진회간부 60여명이 중심이 되어, 이 용구를 영입하여 천도교와 대립하는 독자적인 교단으로 시천교를 설립했다. 1908년에 김연국을 영입하여 교세를 강화하였으나, 1911년에 이 용구가 사망하자 교단의 실권이 송병준에 들어가게 되었다. 시천교 내의 보수적인 경향을 가졌던 김연국의 계열과 충돌하게 되었다. 1913년에 송병준을 주축으로 한 시천교 본부를 이탈하여 시천교 총부를 따로 설립하여 각 자 종교적 정통성을 주장하고 정립하기 위하여 교회사를 간행에 총력을 다 했다. 시천교 본부가 먼저 포덕 56(1915)년에 ‘侍天敎宗繹史’를 간행했고, 시천교 총부는 ‘侍天敎歷史’의 원고를 1917년에 완료하여 포덕 61(1920)년에 간행했다. 체제는 상, 하 두 편으로 구분하여 1, 2편은 ‘侍天敎宗繹史’의 수운과 해월의 기록과는 대동소이 하나, 3편에 기록되었던 이 용구의 행적은 완전 삭제되고, 대신 해월로부터 김 연국이 종통을 이어받은 정통성을 강조하고, 김연국의 행적을 부각시켜 기술하여 시천교 총부의 정통성을 분명히 했다. 그 후 교단내의 갈등이 재연되어 1925년에 김 현국 계열이 분리되어 상제교로 개명했다.
7. 東學과 東學亂; 이 글은 동아일보에 1931년 8월 21일부터 10월 9일까지 36회에 걸쳐 게재되었던 것을 1947년에 대성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집필자 東濱 金 庠基는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양과 한국 고대사에 학술적 업적을 많이 남겼다.
8. 東學亂; 黃 玹/ 著李 民樹 譯 ; 乙酉文化社. 서울. 1985. /저자 梅泉 황 현(1855-1910.)은 광양에서 태어나 34세에 成均試에 壯元으로 급제하였으나 官路에 뜻이 없어 36세부터 鄕里에서후학을 가르치며 저술에 몰두했다. 한일합방이 되자 國恥를 痛憤하여 絶命詩 4首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節士였다. 이 글은 매천의 ‘東匪紀略 草藁’를 “東學亂”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간행했다. 매천의 저서로는 梅泉集, 梅泉野錄 東匪紀略, 등이 있다.
9. 東學史; 吳 知泳. 永昌書館. 서울. 1939. 저자 오 지영( ? -1950.)은 全北 益山 출신으로 한학에 밝으며 동학혁명 당시에 兩湖都察란 직책을 가진 지도자로 참가한 인물이며 해월신사를 모시고 북접의 종교적 성향을 고수하여 납접의 동학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조국의 구국운동이라는 주장을 내세워 설득하여 북접이 참여하는데 기여했다. 동학이 천도교로 대고천하 한 이후 종교적 기초를 닦는데 최고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노력했다. 20년대 이후 교단 분립으로 인하여 혼란한 시기에 천도교 의사원의 의장으로 피선되자 천도교 혁신운동을 통하여 진로를 개척하려 혼신을 다하였다. 천도교의 민주적인운영에 앞장섰고 미신적 종교의식타파, 계급적 조직의 타파를 주장하며 교단을 혁신하려했던 지도자였다. 의암성사의 환원이후 혁신파의 한줄기인 聯合敎會派의 지도자가 되었으나 교단의 중심인물에서 밀려났다. “동학사”는 동학과 천도교는 어떤 종교이며 어떻게 하는 신앙이 올바른 것인가를 밝히고 싶어, 자신이 걸어 온 동학인으로서의 생생한 삶의 체험과 견문을 바탕으로 기술한 동학과 천도교의 역사서이다.
10. 改革, 反亂 그리고 天道.; 벤쟈민 B 윔스. / 洪 晶植 譯. 新明文化社. 서울. 1966. / 이 글은 벤쟈민 B 윔스.(Benjamin B. Weems.)가 1955년에 문학사 학위 수여에 필요한 전공논문의 일부이다. 원명은 ‘REFORM, REBELLION, AND THE HEAVENLY WAY’이고 아리조나 대학 출판부에서 1964년에 간행됐다. 이 책 말미에 수록된 약 120여 종의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광범위한 자료를 통하여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동학과 천도교의 피 흘린 역사의 기록으로 외국인이 기술한 최초의 저시이다. 이후 저자는 천도교가 북한 정권 아래서 항거하여 많은 희생을 치른 3.1재현운동과 영우회 사건을 알게 되어, 1967년에 로열 아세아 협회(Loyal Asiatic Society.)가 간행한 43卷 “韓國의 新宗敎”에 ‘天道敎는 第二世紀에 접어들다’란 논문을 게재했다.
11. 天道敎史 附 叢書; 1930년경에 구파에서, 崔俊模, 鄭廣朝, 李鍾麟, 三長老와 李敦化, 李仁淑의 자료 제공으로 소량 출판되어 광복과 6,25동란을 거치면서 稀貴本이 되었다. 포덕 103(1962)년 4월에 李種海의 주도하에, 포덕 71(1930)년부터 포덕 102(1961)년 말까지 30여 년간의 구파의 입장을 반영한 敎團史를 추가하여 프린트(등사)본으로 간행되었다. 그 후 1970년대 접어들면서 舊派의 一群이 천도교와 訣別하고 독자적인 활동을 하면서 포덕 131(1990)년 4월에, 위 등사본의 내용 일부를 修訂補完하여 龍潭淵源의 名義로 인쇄본으로 간행했다.
12. 天道敎會史 抄稿; 포덕 71(1930)년에 구파에서 독자적으로 기술한 구파계열의 입장을 밝힌 최초의 교사의 초고로 미 간행됨. 책의 체제는 본문 5편과 부록 천도교 총서로 되어 있고 서술의 중심내용은 기존 교사와 별 차이는 없으나 4, 5편은 박인호의 행적에 초점을 맞춘 편향적인 내용이 실려 있다. 포덕 103(1962)년 4월에 李種海의 주도하에 간행된 天道敎史 附 叢書가 바로 天道敎會史 抄稿를 底本으로 삼았다.
13. 天道敎百年略史; 布德122(1981)年 天道敎 中央 總部에서 刊行.
14. 東學 天道敎史; 金 琓洙. 良才印刷社. 서울. 1993. 編著者인 碩菴 金 琓洙는, 1970년대에, 구파계열의 일부가 천도교 중앙 총부와 결별하고 독자적 운동을 할 때, 깊이 관여하지 않고 뜻을 같이 하는 구파계열의 경기, 충청, 전라도의 상당수의 지도자와 교인들을 모아 東學 儒道會를 결성하여 이끌었던 인물로 교단사의 해박한 지식과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었던 원로. 구파계열의 편파적인 교단사에 기울지 않고 구파의 입장을 유지하면서 정당한 교단사가 되기를 바라면서 엮은, 독자적인 교회사 기술로 높이 평가 받음.
15. 東學 天道敎略史; 金 琓洙. 弘文堂. 서울. 2003.
16. 천도교약사; 布德147(2006)年 天道敎 中央 總部에서 刊行.
■ 追加 參考資料
1. 水雲行錄; 原題는 水雲文集 / 丹谷本(假稱);1898년에 榮州郡丹山面丹谷里에 居住한 金玉熙가 필사한 것. 이 필사본의 底本은 榮海接主 夏朴善과 水雲의 조카인 崔世祚등이 중심이 되어, 수운이 출생한 1824년부터 1864년 수운이 처형될 때까지 기술된 敎團史 중 최초의 것으로 1865년에 간행되었다.
2. 水雲(齋)文集; 1900년에 平男 龍岡 사람인 林仲七이 필사한 것이며, 이 필사본의 저본으로 崔先生文集道源記書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수운의 일대기만 필사한 것을 학계에서 평가하고 있다.
3. 崔先生文集道源記書; 1879년에 해월시대의 次道主 姜時元이 水雲(齋)文集을 저본으로 하여 1824년부터 1879년 까지 수운과 해월의 은도시대를 소상히 기술한 동학의 초기 교단사이다.
4. 海月文集; 전라북도 부안군에 소재한 호암수도원의 所藏本으로, 표제는 海月文集으로 되어 있으나 해월의 문집이 아니라, 초기동학 교단의 주요의식을 규정한 내용의 필사로 하여 1885년부터 東學革命의 勃發 直前인 1892년까지의 布德式, 入道式등의 儀式節次와, 해월이 동학지도자들에게 내린 法軒降訣, 各種 通文 등이 年度別로 記述되어 있다. 이 文集을 통하여 1880년대 초부터 組織的인 基盤을 바탕으로 운영되었고, 便長制(또는 便義長制)로 接의 巡廻와 講道를 强化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기간 동안의 東學의 成長過程을 상세히 살펴볼 수가 있다.
5. 本校歷史; 平南 平原 출신인 秋菴 吳尙俊이 天道敎會月報에 創刊號부터 53회(1910-1914.)에 걸쳐 國漢文으로 揭載한 교단사로 1824년부터 1880년까지 기술한 것으로 이교단사의 저번 역시 崔先生文集道源記書와 여러 자료들을 정리한 것. 이 글의 국문 번역본으로 李鍾一의 ‘본교력’ 는 1911년 6월 (11호)부터 1915년 4월(54)까지 모두 38회가 天道敎會月報에 연재되었다.
6. 大先生 史蹟" 附 海月先生文集; 박맹수 교수가 부안의 호암수도원 朴奇重 宗法師가 所藏하고 계셨던 것을 발굴한 것으로, 전반부는 수운의 일대기를, 후반부는 해월의 일대기를 요약한 것이다. 1900년 초반에 시천교의 김연국 계열의 사람이, 純 漢文體로 編纂한 것을 1906년에 筆寫한 것으로 1824부터 1894년까지의 교단기록이다.
/ 天道敎書의 異本에 대하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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