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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天道敎는 어떤 宗敎인가?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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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작성일 14-02-19 16:14 조회 5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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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道敎는 어떤 宗敎인가? (下)
■ 「至氣」를 이해하기 위한 理(本然之性)와 氣(氣質之性)에 관련된 자료.
1. 曰降靈之文 何爲其然也 曰至者 極焉之爲至 氣者虛靈蒼蒼 無事不涉 無事不命 然而如形而難狀 如聞而難見 是亦渾元之一氣也, / 論學文.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제자가 「강령의 글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대신사님께 묻자, 「지」라는 것은 지극한 것이요,「기」라는 것은 허령이 가득차서 만사에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고, 일에 명령하지 아니함이 없지만, 모양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듯하나 눈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것을 음양이 구분되지 않은 가장 원초적인 우주의 혼돈상태로서의 한 덩어리의 기운이다. 라고 답을 했다.
2. 최한기는 전통적인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사변철학 내지 주리적(主理的) 전통과 결별하고 기 중심의 철학을 전개하였다. 그는 이기설(理氣說)의 기가 아닌 신기(神氣)라는 실체개념을 독자적으로 설정하여 그의 기철학을 전개한다. 신기는 천지만물의 근원적 실체로서 활동·변화하는 한 덩어리의 활물(活物)이며, 본래 순수하고 담박하여 맑은 바탕을 갖고 있다. 비록 소리와 빛과 냄새와 맛에 따라 변하더라도 그 본성만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기는 또 천지를 꽉 채우고 물체에 푹 젖어 있어 모이고 흩어지거나,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는 것은 어느 것이나 모두 기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기는 천지의 용사(用事)하는 바탕이고 신(神)은 기(氣)의 덕이다. 또 신과 기를 함께 말하면 신은 기 가운데 포함되고, 신 하나만을 말하면 기의 공용(功用)으로 뚜렷이 드러난 것이므로 기가 바로 신이고 신이 바로 기인 것이다. 이처럼 그에 있어서 천지·인간·만물의 생성은 오직 기로써 설명된다. 최한기는 천에 대해서도 전통적 성리학의 해석을 거부하고 기에 의해 형성된 자연으로 이해한다. 그는 말하기를 천(天)은 곧 기이고 기는 곧 천이라 한다. 또 천이란 기가 쌓인 것의 총칭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천은 뜻없이 만물을 낳는 것이니 만물은 스스로 발생하는 것이며, 땅은 뜻없이 만물을 성장시키는 것이니 만물은 자기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다. 천지의 의지·주재성 등을 부정하고 오로지 기의 소산인 자연으로서의 천지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는 만물의 차별성을 기와 질(質)의 결합에서 찾는다. 기가 견고하게 엉키어 질이 된다. 우주의 다양한 사물이 존재하는 것은 기와 질이 서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기를 천지의 기와 형태의 기로 구별한다. 천지의 기는 근원적인 기로서 무궁무진(無窮無盡)하여 불멸하나, 형체의 기는 질과 결합하여 만물을 이룬다. 기는 하나이지만 사람에 품부(稟賦)되면 사람의 신기가 되고, 물건에 품부되면 물건의 신기가 된다. 따라서 형체의 기는 만물의 생성소멸에 따라 생성소멸하며 소멸되면 천지의 기로 환원된다. 아울러 형체의 기는 변화무상(變化無常)하지만 천지의 기는 영원불멸하는 것이어서 서경덕과 같이 기의 불멸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 이(理)란 무엇인가? 그는 이를 실체개념으로 보지 않고 기의 조리 내지 내재적 속성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기가 있으면 반드시 이가 있고 기가 없으면 반드시 이가 없다 하여 이를 ‘기’속에서 이해하였다.
최제우는 지기일원(至氣一元)을 만물 생성의 근원적 실체로 규정하고 모든 만물은 지기(至氣)의 현현(顯現)에 불과하다 하였다. 그에 의하면 신도 자연도 그리고 인간의 심신(心身)도 지기의 조화로 설명된다. 기는 허령창창(虛靈蒼蒼)하여 무슨 일에나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고 무슨 일이나 명령하지 않음이 없다. 모양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려우며, 들리는 듯하되 보기가 어려운 것이니 또한 혼원(渾元)한 일기(一氣)이다. 지기는 천(天)·인(人)을 관통하는 우주의 생성력이며 만물의 조화력이었다./ 브리태니커의 ‘기철학’ 중에서 발췌.
3. 잔반사회와 지식층 상대로 포교의 범위를 확대하게 되면서 교리의 철학적 심화정리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그가 ‘옛부터 지금까지 未必한 것’이라 하여 우주자연의 합리적 순환질서와 신의 창조행위에 대해서 강한 의문을 제기했던 사실에서 신관을 유교적 우주론에 입각해서 체계화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우주자연의 모든 사물을 시공을 초월한 유기적 관계로 인식하여 천인합일론을 주장하였다. 범신론적 차원에서 유교의 지기론을 수용하여 한울님을 지기로 규정하고 내재적 존재로 인간에 내면화 했던 것이다. 지기의 본질을 ‘혼원지일기’라 하여 우주만물의 개체현상을 지기의 실재로, 만물의 생멸, 동정, 변화를 지기의 활동능력으로 보았다. 우주의 생성원리와 존재의 근원적 능력이 지기라는 뜻이다. 이와같이 천도와 지리를 대전제로 하여 우주만물의 생성법칙을 至氣一元의 발현으로 본 유교의 삼재론, 음양오행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주역과 예기에 나오는 氣의 생생무궁설을 수용하고 서경덕 기론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황선희. 『한국근대사의 재조명』PP. 204-205.
4. 주기론(理氣論); 조선시대 이이(李珥)의 성리학설 또는 그의 성리학설을 계승·지지하는 학자들의 사상을 가리키는 개념. 16세기에 이르러 우리나라 유학자들에 의해 성리학에 대한 이론적 탐구가 본격화될 때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심성론(心性論)이다. 특히 오상(五常)과 사단칠정(四端七情)으로 포괄되는 인간의 성정(性情)을 이기론적으로 해명하려는 노력이 활발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학자가 이황(李滉)이다. 그는 사단칠정이라는 인간의 감정 현상을 설명함에 있어 사단과 칠정에 '이'와 '기'가 모두 관여하지만 그 발하는 바의 '소종래'(所從來)와 '소주이언'(所主而言)의 차이에 따라 사단은 이발(理發)로, 칠정은 기발(氣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이황의 이러한 사단칠정론에 대해서는 이미 당시에 기대승(奇大升)이 의문을 제기했으며, 그후 이이는 기대승의 견해를 계승하여 이황과는 다른 이론체계를 확립했다(→ 색인 : 사단칠정논쟁). 그 특징은 사단칠정을 설명함에 있어 이발을 부정하고 기발만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이이에 따르면 오직 기만이 능동성을 가지고 발할 수 있으며, 이때 이는 기가 발하는 바의 소이연(所以然)·소당연(所當然)의 원리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황이 사단을 '이발기수'(理發氣隨)로, 칠정을 '기발이승'(氣發理乘)으로 설명하는 것과는 달리 이이는 사단과 칠정을 모두 '기발이승'으로 설명하며 사단은 칠정 가운데서 선한 측면만을 가리키는 개념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러한 사단칠정론의 차이는 이기론·심성론·수양론을 포함하는 성리학 전체의 이론적 체계를 달리하는 것이었으며, 그후 이황과 이이의 제자·문인들에 의해 두 사람의 성리학이 계승·발전하면서 우리나라 성리학을 대표하는 두 계열의 학파를 수립하게 된다. 그 가운데 이황의 견해를 따르는 학자들을 주리파(主理派), 그들의 이론을 주리론이라 하며, 이이의 견해를 따르는 학자들을 주기파(主氣派), 그들의 이론을 주기론이라 한다.
이기론에 있어 주리론과 주기론은 모두 이와 기를 세계의 근원적 존재로 인정하며, 이와 기의 상호관계에 의해 만물이 형성된다고 생각하는 점은 같다. 그리고 이기에 관한 가치론적 설명에서 기보다 이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그러나 이기의 분개(分開)와 혼륜(混淪)에 대한 강조의 차이에서 보듯이, 주리론이 '이기결시이물'(理氣決是二物)이라는 분개의 측면을 강조하는 데 반해, 주기론은 '이기원불상리'(理氣元不相離)라는 혼륜의 측면을 강조한다. 따라서 주리론에서 이는 객관적 실재로서의 성격이 명백하게 드러나며, 또 이와 기의 차별성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그러나 주기론에서 이는 기와 떨어져 존재할 수 있는 객관적 실재라기보다는 오히려 기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기의 법칙성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또 사단칠정론에서 보듯이, 이에 대해 주리론에서는 형태는 없으나 운동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는 데 반해, 주기론에서는 운동능력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주기론에서는 이발을 부정하고 기발이승일도(氣發理乘一途)만을 인정하는데, 그것은 이는 정의(情意)·운용(運用)·조작(造作)이 없는 것이며, 따라서 발하는 것은 기라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기론은 기의 운동을 자기 원인에 의한 것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는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사상과 동일한 내용을 갖지만, 기의 운동을 내면에서 규제하는 원리로서의 이, 즉 '소이연'으로서의 이를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기일원론과도 차이가 있다.
심성론에서도 주리론과 주기론이 모두 '성즉리'(性卽理)를 주장하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이기의 분개를 강조하는 주리론이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별개의 존재로 파악하는 데 반해, 이기의 혼륜을 강조하는 주기론은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이 별개의 것이 아니며, 다만 기질지성 가운데 이의 측면을 가리켜 본연지성이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의 운동능력을 인정하는 주리론에서는 '성발위정'(性發爲情)의 논리에 따라 사단은 본연지성이 발한 정으로, 칠정은 기질지성이 발한 정으로 설명하며,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갖춘 심은 이기의 합(合)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의 운동능력을 부정하는 주기론에서는 정을 '심지동'(心之動)으로 파악하여 '심발'(心發)·'성불발'(性不發)을 주장하게 되며, 심과 성의 관계는 '동하는 것은 심이고, 능히 동하게 하는 소이는 성'으로 파악된다. 이렇게 심을 발하는 것으로 인정함으로써 이 이론에서는 심의 허령(虛靈)한 지각작용의 본질을 기로 단정하고 성은 심 가운데 갖추어져 있는 소이연·소당연의 원리로 이해하여 '심시기'(心是氣) 혹은 '심즉기'(心卽氣)를 주장하게 된다. 이것은 주리론에서 심을 이기합으로 파악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성리학은 우주와 인간에 대한 통일적인 세계관을 확립함으로써 유교적인 도덕적 실천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학문이다. 따라서 주리론과 주기론의 이기·심성론의 차이는 결국 수양론의 차이로 귀결된다. 주리론의 경우 심 내부에 존재하는 천부적인 선한 본성(본연지성), 곧 이의 존재와 그것이 발한 사단을 강조하기 때문에 수양론에서도 본연지성을 제대로 지키고 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선한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본연지성을 제대로 지키고 발현하기 위한 수양 방법을 가리켜 '거경'(居敬)이라고 했으며, 주리론의 수양론은 이 '거경'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되었다. 그러나 주기론에서는 심 내부에서 기질지성과 본연지성은 서로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의 모든 의식과 감정은 외계 사물의 감응에 의하여 심 내부의 기가 동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는 반드시 기를 타고서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도덕적 실천을 위해 가장 근본적인 것은 사물에 감응하는 심 내부의 기질을 선한 것으로 변화시키면 자연히 인간의 선한 본성, 즉 본연지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내용을 가진 주기론은 이이에 의해 확립되었으며, 그와 같은 시대의 인물인 송익필(宋翼弼) 역시 주기론의 입장에서 성리학을 이해했다. 그후 주기론은 양인의 제자인 김장생(金長生)과 정엽(鄭曄)을 거쳐 김집(金集)·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에게 계승되었다(→ 색인 : 기호학파). 송시열은 주리론이 근거하고 있는 〈주자어류 朱子語類〉의 '사단시이지발, 칠정시기지발'(四端是理之發 七情是氣之發)이라는 말이 주희의 정론(定論)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주자어류〉와 〈주자대전 朱子大全〉의 말을 비교·대조하여 주희의 정론을 확정하려 했다. 그러나 그 작업은 송시열의 제자인 권상하(權尙夏)에게 이어지고, 다시 권상하의 제자인 한원진(韓元震)으로 이어져 〈주자언론동이고 朱子言論同異攷〉로 완성되었다. 〈주자언론동이고〉는 주기론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방대한 작업이었다. 이 책은 성리학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주희의 언론에 차이가 있는 것을 서로 모순된 것, 서로 모순되는 것 같으나 관점이 다른 것, 실제 내용은 동일한 것 등으로 일일이 나누어 논의했다. 그 가운데 이의 동정에 대해서는 주희가 말한 "이에 동정이 있다. 그러므로 기에 동정이 있는 것이다. 이에 동정이 없다면 기가 어찌 스스로 동정하겠는가"라고 한 '이유동정'(理有動靜)을 '유동정지리'(有動靜之理)라고 풀이함으로써 기는 유위(有爲)로서 발동(發動)하는 것이고, 이는 무위(無爲)로서 무발동(無發動)이라 단정하여 이발을 부인하고 있다. 그리고 사단을 '이지발'이라 한 것은 주희의 정론이 아니므로 〈주자어류〉 기록자의 오기라 했다. 또 사단이나 칠정이 다 성지용(性之用)으로서 정이므로 사단과 칠정을 이기에 각각 분속시키는 것은 주희에게 있어 평일의 아언(雅言)과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주기론은 한원진 단계에 오면 호락논쟁(湖洛論爭)이라고 불려지는 성리학의 이론적 논쟁을 통해 그 내부에서 분화가 일어났다. 권상하의 제자인 한원진과 이간(李柬)을 각각 대표로 하는 호론과 낙론은 모두 주기론의 기발이승일도설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인성(人性)·물성(人物性)의 동이(同異)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이이의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 가운데 '이통'의 측면을 '기국'의 측면보다 중시할 경우 인성과 물성이 같다는 낙론이 되고, '기국'을 '이통'보다 중시할 경우 인성과 물성이 다르다는 호론이 된다. 이 호락 양론 가운데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이 별개의 성이 아니라는 주기론의 전통적인 사상을 보다 충실히 계승한 것은 호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낙론의 경우에는 성을 이해함에 있어 기질지성과는 구별되는 본연지성을 설정하고, 그 본연지성에 근거하여 인성과 물성이 같음을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후 주기론은 임성주(任聖周)의 '성즉기'(性卽氣)의 명제로까지 발전하게 되는데, 임성주의 사상은 기일원론, 곧 유기론(唯氣論)이라는 점에서 주기론과는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브리태니커.
5. 주리론 [主理論] ;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이황의 성리학설과 이 학설을 계승·지지하는 학자들의 사상을 가리키는 개념. 16세기에 이르러 우리나라 유학자들에 의해 성리학에 대한 이론적 탐구가 본격화될 때 그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심성론(心性論)이다. 이것은 특히 오상(五常)과 사단칠정(四端七情)으로 포괄되는 인간의 성정(性情)을 이기론적으로 해석한 것인데, 그 대표적인 학자가 이황이다. 그는 사단칠정이라는 인간의 감정현상을 설명함에 있어서 사단과 칠정에 이와 기가 모두 관여하지만 그 발하는 바의 '소종래'(所從來)와 '소주이언'(所主而言)의 차이에 따라 사단은 이발(理發)로, 칠정은 기발(氣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이황의 견해에 대해 당시 기대승(奇大升)의 이견이 있었으며, 그후 기대승의 견해를 계승한 이이에 의해 사단과 칠정을 모두 기발로 설명하는 이론이 제시되었다. 이 사단칠정론의 차이는 이기론·심성론·수양론을 포함하는 성리학 전체의 이론적 체계를 달리하는 것이었으며, 그후 이황과 이이의 제자·문인들에 의해 두 사람의 성리학이 계승·발전되면서 우리나라 성리학을 대표하는 두 계열의 학파와 이론적 체계를 수립하게 된다. 그 가운데 이황의 견해를 따르는 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을 주리파(主理派) 혹은 주리론이라 하며, 이이의 견해를 따르는 학자들과 이들의 이론은 주기파(主氣派) 혹은 주기론이라 한다.
이기론에 있어 주리론과 주기론은 다같이 이와 기를 세계의 근원적 존재로 인정하며, 이와 기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물이 형성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리고 이기에 관한 가치론적 설명에서 기보다 이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그러나 이기의 분개(分開)와 혼륜(混淪)에 대한 강조의 차이에서 나타나듯이, 주리론은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입장을 철저하게 고수하여 '이기결시이물'(理氣決是二物)이라는 분개의 측면을 강조하는 데 반해, 주기론은 이기의 차별성을 인정하면서도 '이기원불상리'(理氣元不相離)라는 혼륜의 측면을 강조한다. 따라서 주리론에서 이는 객관적 실재로서의 성격이 명백하게 드러나며, 또 이와 기의 차별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이와 같이 주리론에서는 이와 기의 차별을 강조할 뿐 아니라 '이선기후'(理先氣後)라는 기에 대한 이의 선차성(先次性), 혹은 '이본기용'(理本氣用)과 같은 기에 대한 이의 우위성을 이발설을 통해 강조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즉 이의 능동성을 주장해, 이를 형태는 없으나 운동능력을 가지는 것으로 파악하여, 기와 함께 이에도 동정·운용·조작 등의 능력을 부여했다. 심성론의 측면에서 주리론과 주기론이 모두 '성즉리'(性卽理)를 주장하는 점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기의 분개를 강조하는 주리론은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별개의 존재로 파악하며, 또 이의 운동능력을 인정함으로써 '성발위정'(性發爲情)의 논리에 따라 사단은 본연지성이 발한 정으로, 칠정은 기질지성이 발한 정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이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갖춘 심은 이기의 합(合)으로 이해했으며, 심에도 형기(形氣)에 근원하는 인심(人心)과 성명(性命)에 근원하는 도심(道心)의 2가지가 있다고 했다.
성리학은 우주와 인간에 대한 통일적인 세계관을 확립함으로써 유교적인 도덕적 실천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학문이다. 따라서 주리론과 주기론의 이기·심성론의 차이는 결국 수양론의 차이로 귀결된다. 주리론의 경우 심 내부에 존재하는 천부적인 선한 본성(본연지성), 곧 이의 존재와 그것이 발한 사단을 강조하기 때문에 수양론에서도 본연지성을 제대로 지키고 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선한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본연지성을 제대로 지키고 발현하기 위한 수양방법을 가리켜 '거경'(居敬)이라고 했으며 주리론의 수양론은 이 '거경'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황이 확립한 주리론을 계승해 주리파가 하나의 학파로 성립한 것은 17세기 후반의 이현일(李玄逸)에 의해서이다. 이황의 성리학설에 대한 이이와 그의 제자들의 비판을 재비판하는 형식으로 주리론을 옹호한 이현일과 그의 학맥을 계승한 성리학자들에 의해 주리론이 발전되었으며 주리파가 형성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학자로는 이현일과 그의 아들인 이재(李栽), 이재의 외손이며 문인인 이상정(李象靖), 이상정의 제자인 남한조(南漢朝)와 그의 문인인 유치명(柳致明), 그리고 유치명의 학맥을 계승하여 주리론의 발전을 정점으로 이끈 이진상(李震相)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주리파는 이황의 학설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퇴계학파라 부르며, 영남지방에 근거를 두고 활약했으므로 영남학파라 부르기도 한다. 주리파는 이이의 성리학설을 비판하고 이황의 견해를 옹호하기 위해 무엇보다 이기의 근본적 차별성과 기에 대한 이의 선차성·우위성·능동성을 강조했다. 그결과 유치명에 이르면 기의 활동을 기다리지 않고 이의 자발적 능동성만으로 천지만물의 유행(流行)을 설명하게 되며, 이진상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는 스스로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의 동정에 의해서만 동정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어 기의 능동성을 부정하고 이의 능동성만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진상은 주리론에 입각하여 성리학을 교과서적으로 체계화한 〈이학종요〉를 저술했다. 그의 성리학설에 의하면 이기의 관계는 '이주기복'(理主氣僕)의 관계이며, 이는 능동(能動)·자동(自動)이며 기의 동정은 이의 동정으로 인하여, 이의 시킴을 받아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성(性)의 명의(名義), 심(心)의 주재(主宰), 정(情)의 근인(根因)은 모두 하나의 이(理)일 뿐이다. 그 가운데 성은 미발(未發)의 이이며, 정은 이발이 있을 뿐이고 기발은 없다. 정 가운데 이가 경기(經氣)를 타고 직출(直出)한 것은 사단이 되며, 이가 위기(緯氣)를 타고 횡관(橫貫)한 것은 칠정이 된다. 그리고 심의 본체는 이에 있고 기에 있지 않기 때문에 심의 정체실상(正體實相)을 바로 가리킨다면 '심즉리'(心卽理)하여야 한다. 이진상의 이러한 성리학설은 이전까지의 주리론을 계승·발전시킨 것이지만, 그 가운데 '심즉리'의 명제는 주리론의 전통적인 '성즉리', '심이기합'(心理氣合)의 명제와 충돌함으로써 주리론 내부에 이론적인 분화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19세기 주리론의 발달에서 특징적인 것은 이제까지 영남지방에만 그 학설이 계승되어 오던 상태에서 벗어나 기호지방에 근거를 둔 학자들까지 주리론을 주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항로(李恒老)와 그의 문도로 이루어진 화서학파(華西學派)는 그 활동지역이나 당색으로 보아 영남의 남인학자들과는 별개의 학자들이었으나 주리론을 주장했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그리고 기호지방의 학자들 가운데서 기정진(奇正鎭)은 주리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리론(唯理論:理一元論)의 성리학설을 수립하기도 했다. / 브리태니커.
6. 이기 일원론(理氣一元論);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에서, 이(理)를 기(氣)에 내재하는 원리나 법칙성으로만 파악하는 견해로, 성리학에서는 사람을 포함한 우주 만물의 존재와 운동을 이와 기라는 서로 다른 2가지 근본 원리에 의해 설명하는데,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이기일원론은 이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이기이원론이 이와 기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이가 기보다 먼저 존재하면서 기를 낳는다거나 이는 기 바깥에 독립해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라고 주장하는 데 반해, 이기일원론은 이러한 견해를 거부한다. 이기일원론에서는 이와 기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양자의 상호의존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특히 이는 기에 내재하는 원리나 법칙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 기의 관계를 이렇게 파악하는 점에서 이기일원론은 기일원론(氣一元論)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기일원론에서는, 이가 기와는 구별되는 별개의 실재이면서 기와 함께 만물의 생성과 운동에 관여하는 근본적 원리라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이라는 별개의 실재가 기에 내재하여 그 원리나 법칙성이 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기 스스로의 올바른 법칙성이나 기 스스로가 바르게 작용하도록 하는 원리를 가리켜 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일원론은 만물의 존재와 운동을 낳게 하는 궁극적 원리나 근원적 존재로서 기 하나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기일원론에서는 그러한 궁극적 원리나 근원적 존재로 이와 기라는 서로 다른 2가지 실재를 인정하는데, 다만 그 이가 기 바깥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이라는 것은 항상 기 속에 있으면서 기의 존재와 운동을 주재하는 원리이거나 법칙성이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기일원론의 정확한 개념은 이기이원적 일원론(理氣二元的一元論)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성리학자 가운데 이러한 이기일원론을 정립한 대표적인 학자는 명대(明代)의 나흠순(羅欽順)이며, 조선의 성리학자 가운데서는 이이(李珥)를 들 수 있다. 이이의 이기일원론을 이황(李滉)의 이기이원론과 대비하여 전자는 주기론(主氣論), 후자는 주리론(主理論)이라고 한다. 주기론과 주리론은 이와 기를 세계의 근원적 존재로 인정하며, 그 이와 기의 상호관계에 의해 만물이 형성된다고 생각하는 점, 이·기에 관한 가치론적 설명에서 기보다 이를 중요시한다는 점이 동일하다. 그러나 이·기의 분개(分開)와 혼륜(混淪)에 대한 강조의 차이에서 보듯이, 주리론이 '이기결시이물'(理氣決是二物)이라는 분개의 측면을 강조하는 데 반해, 주기론은 '이기원불상리'(理氣元不相離)라는 혼륜의 측면을 강조한다. 따라서 주기론에서 이는 기와 떨어져 존재할 수 있는 별개의 실재라기보다는 오히려 기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기의 법칙성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또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서 주리론은 이를 형태는 없으나 운동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는 데 반해, 주기론은 이의 운동능력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 브리태니커
7.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이(理)와 기(氣)라는 2가지의 서로 다른 근본 원리로 모든 사물의 존재와 운동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성리학의 이기론 중에 특히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기일원론(氣一元論)과 구별되는 견해이다. 이기론적 세계관을 완성한 주희(朱熹)는 "이와 기는 서로 떠날 수 없으나, 서로 섞이지도 않는다."(理氣不相離 理氣不相雜)고 했다. 즉 이는 기에 의존해야만 비로소 그 구체적 모습을 드러낼 수 있으며 또 기는 이에 근거해서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는 한편, 이와 기가 각각 독립적인 실재(實在)로서 서로 구별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 구별되는 측면을 설명하여 이가 기보다 먼저 존재하면서 기를 낳는다거나 이는 기 바깥에 독립해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라고 했는데, 이러한 견해를 가리켜 이기이원론이라고 한다. 이와는 달리 이기일원론에서는 이와 기가 별개의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양자의 상호의존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특히 이가 기보다 먼저 존재하거나 기 바깥에 독립해서 존재하는 어떤 실재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기에 내재하는 원리나 법칙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 기일원론에서는 이가 기와는 별개의 실재이면서 기에 내재하여 그 원리나 법칙성이 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기 스스로의 법칙성이나 기 스스로가 바르게 작용하도록 하는 원리를 가리켜 이라고 했다.
주희의 이기이원론을 더욱 명확한 이론체계로 재정립한 것이 이황(李滉)의 이기론인데, 그의 이론을 가리켜 주리론(主理論)이라고도 한다. 주리론의 특징적 학설인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에서, 이는 형태는 없으나 운동능력을 가지는 것으로 파악했다. 따라서 이 자체의 운동으로 음양(陰陽)을 낳는다고 하여, 이가 기보다 먼저 존재하며 또 기의 바깥에 존재하는 정신적 실체라는 점을 더욱 명확히 했다. 이러한 주리론은 이와 기의 근본적 차별성과 기에 대한 이의 선차성(先次性)·우위성(優位性)·능동성을 강조한 것이었는데, 그 극단적인 견해가 이진상(李震相)의 이일원론(理一元論)이었다. 이일원론에서는 세계의 근원적 존재나 근본적 원리로서의 지위가 이에만 인정되고, 기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의 대화에서 ‘이기(理氣)는 수례의 양 바퀴와 같아서 혹선혹후(或先或後)한다. 는 것에 공감하고 담론을 끝냈다고 한다. 다른 한편에서의 고봉의 평가는, 고봉은 16세기의 조선의 학자로서 이황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 반대하고, “사단칠정이 모두 다 정(情)이다.”라고 하여 주정설(主情說)을 주장했으며, 이황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수정하여 정발이동기감설(情發理動氣感說)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약기강설(理弱氣强說)을 주장하여 주기설(主氣說)을 제창함으로써 이황의 주리설(主理說)과 맞섰다. 고 한다. / 브리태니커와 관련자료 종합.
8. 기일원론(氣一元論); 우주 만물이 존재할 수 있는 근원적 실체를 기(氣) 하나로 보는 학설로, 이는 이일원론(理一元論)·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구별된다. 기일원론은 유기론(唯氣論)이라고도 하는데, 인간·자연·사물 등 모든 존재는 기로 되어 있다고 본다. 기의 명칭은 태허(太虛)·태화(太和)·일기(一氣)·원기(元氣)·신기(神氣)·담일청허지기(湛一淸虛之氣)·지기(至氣) 등 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는데, 이기이원론에서 말하는 이개념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중국에서는 장재(張載)의 태허설(太虛說)에서 비롯되어 왕부지(王夫之)·대진(戴震) 등으로 이어지지만, 만물이 기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자연철학은 전국시대(戰國時代)부터 있어왔다. 우리나라에서 기일원론 철학의 본격적인 전개는 서경덕(徐敬德)부터이다. 이후 임성주(任聖周)·최한기(崔漢綺)·최제우(崔濟愚)에게로 이어져 내려왔다.
서경덕은 우주만물의 궁극적 근원을 기로 보아 기일원론의 철학을 열었다. 그는 천지만물이 아직 생성 변화되기 이전의 우주 원형을 태허(太虛)라 하고, 그것은 담연무형(淡然無形)하기 때문에 그 큼이 밖이 없으며 그 먼저됨이 시작이 없다 하였다. 태허는 만유(萬有)의 궁극적 실체인 기의 원형으로서 빈 것이지만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전 우주공간을 빈틈없이 꽉 채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태허는 허(虛)이면서도 허가 아니며,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므로 없는 것 같지만 실은 실재하는 것으로 '허즉기'(虛卽氣)라 하였다. 그러므로 노자(老子)가 유(有)를 무(無)에서 생긴 것이라고 한 것은 허가 곧 기임을 몰랐기 때문이며, 허가 기를 낳을 수 있다 하였는데 이 또한 잘못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면 이 태허로부터 천지만물은 어떻게 생성되는가? 그에 의하면 이 본체의 기인 태허로부터 음양(陰陽)·동정(動靜)·취산(聚散)에 따라 천지·일월성신과 삼라만상이 생성 전개된다. 여기에서 만물이 화생(化生)되기 이전의 본체세계를 선천(先天)이라 하고, 만물이 화생되어진 이후의 현상세계를 후천(後天)이라 하였다. 그리고 기야말로 취산은 있어도 유무(有無)는 없다며 기불멸론을 주장하였다. 즉 이 세계는 담일무형(湛一無形)의 기가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비록 한 조각 촛불의 기가 눈앞에서 꺼지는 것을 본다 해도 그 남은 기는 끝끝내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기가 모이면 그것이 태어남이요 기가 흩어지면 그것이 곧 죽음이라 하여, 기의 작용은 천차만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 기는 영원히 불멸한다 하여 기의 항존성(恒存性)을 주장하였다.
임성주는 장재의 태허설, 정(程)·주(朱)의 이일분수설(理一分殊說), 나흠순(羅欽順)의 기론(氣論), 정호(程顥)의 성론(性論)을 바탕으로 기일원론의 철학을 깊이있게 열었다. 그는 장재·서경덕·노자(老子)·맹자(孟子), 〈주역〉 등의 기론을 종합하여 다양한 설명을 하였다. 임성주의 기는 체(體)로서는 천(天)·천기(天氣)·호연지기(浩然之氣)·태허(太虛)라 부르고, 그 유행함을 도(道)·건(乾)이라 불렀다. 일기(一氣)는 우주 사이에 상하·내외가 없고 시작과 끝이 없이 가득 차서 많은 조화를 일으키며 인간과 많은 사물을 낳게 한다. 기의 근본은 하나일 따름인데 그것이 오르내리고 날리고 뭉쳐 혹은 크게, 혹은 작게, 혹은 바르게, 혹은 기울어지게, 혹은 맑게, 혹은 흐리게 되어 스스로 각기 하나의 다른 기가 된다. 반면 이(理)는 기(氣)의 자연(自然), 당연(當然)의 '연'(然)자의 뜻으로 기의 속성 내지 법칙으로 격하된다. 천지 만물은 모두 기화(氣化)의 소산인데, 그 본체인 원기(元氣)는 곧 '기지일'(氣之一)이다. 이것이 바로 장재의 태허요, 맹자의 호연지기라 한다. 그리고 이 일기 내지 원기의 일동일정(一動一靜)에 따라 일음일양(一陰一陽), 춘하추동 사시, 오행(五行)의 변화가 있게 된다. 그는 이기묘합의 관계 속에서 이일분수의 의착처(依着處)로서 기일분수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그의 기일원론 철학을 체계화하였다. 또한 최한기는 신기(神氣)라는 실체개념을 독자적으로 설정하여 기일원론의 철학을 전개하였다. 그 우주 삼라만상에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자를 신기라 하고, 이것은 고정체가 아닌 활동변화하는 것이라 하였다. 기는 한 덩어리의 활물(活物)이므로 본래부터 순수하고 담박하고 맑은 것이다. 그는 모든 현상적인 만물은 기(氣)와 질(質)이 서로 합하여 이루어진다 하고, 기는 하나이지만 사람에게 주어지면 사람의 신기가 되고, 물건에 주어지면 물건의 신기가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사람과 물건의 신기가 같지 않은 까닭은 질에 있다. 반면 이는 실체개념이 아니라 기의 조리(條理) 내지 내재적 속성으로 파악하였다. / 브리태니커
9; 지기일원론(至氣一元論); 물(物)과 심(心)을 이원(二元)으로 보지 않고, 오직 일원(一元)인 지기(至氣)의 운동에 의하여 물과 심이 생겼다고 본다. 따라서 천도교는 존재문제를 유심과 유물로 나누어 설명하지 않고, 오직 지기일원 실재체(至氣一元實在體)인 한울에 귀착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지기는 무한한 대립상극의 모순을 극복하고 조화일치의 통일력을 속성으로 하는 유일한 실재라고 보는 것이다. 교조 최제우(崔濟愚)는 “지(至)는 지극한 것을 가리키고, 기(氣)는 허령(虛靈)이 가득하여 일마다 간섭하지 않음이 없고 명령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며, 형상이 있으나 표현하기 어렵고 소리가 있는듯하나 듣기가 어려우니 이것이 혼원한 하나의 기운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입장에서 성신쌍전(性身雙全)과 교정일치(敎政一致)의 교리가 나타나게 된다. 즉, 물심이자(物心二者)를 총섭수행(總攝修行)하는 것을 일컬어 성신쌍전이라 하고, 정치문제와 종교적 문제는 결코 분리하여 볼 수 없으며, 정신문화를 존중하는 동시에 물질적 궤도를 또한 중대시하여 그 양자를 병행하여야 한다는 것이 교정일치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유심과 유물의 대립모순을 일원적인 유일실재의 관점으로 통합시킨 입장이라 할 수 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神의 不在’ 와 관련된 참고자료;
1. 김상일은 『수운과 화이트헤드』중 ‘제 3장. 신의 소유권과 자체권의 문제’에서
‘니체가 서양에서 ‘신은 죽었다.’고 할 무렵 수운은 동양에서 ‘유도 불도 누천년에 그 운이 다 했다.’고 했다. 니체나 수운 모두 차축시대(기원전8-2세기)에 나타난 가치관에 대해 그 종언을 선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이데커는 우리시대의 신을 두고 “이미 떠난 신은 이제 없고 또 앞으로 올 신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Heidegger, 1949. 313)했다. 사뮈엘 베케트의 소설《고도를 기다리며》는 현대인들과 신의 상실 그리고 새로운 신을 기다리는 모습을 그려놓고 있다. 수운도 구시대 즉 선천시대의 정신적인 유산으로는 앞으로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대안적인 새로운 정신력을 자신의 몸을 던져가며 우리 앞에 제시하고 갔다. 니체는 구시대의 종언은 선언했지만 아직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하이데커는 새로운 신이 나타날 때 그 신의 이름을 명명할 사람들은 시인 같은 문학인들이지 결코 철학자나 종교인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P.91.
수운은 한울님의 실재에 대하여 논학문 에서, ‘夫天道者 如無形而有迹(천도의 운행은 보이지 않으나 그 운행의 흔적은 들어나 볼 수가 있다./필자의 실험적인 풀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수운은 교훈가 에서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한울님을 믿었어라.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捨近取遠; 가까운 곳을 돌아보지 않고 먼 곳에서 찾으려 하는 것/필자) 하단 말가?’ 라고 하여, 내가 모신 신(한울님)을 자신의 밖에서 찾지 말라고 했다. 스승도 믿지 말라고 했다. 수운은 자신이 중보자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수운은 교훈가에서 심학을 하면, 도덕을 갖춘 현인군자가 될 터인 데, 이같이 쉬운 도를 왜 자포자기 하는가? 고 애달파하며 한탄하고 있다. /‘현인군자(賢人君子) 될 것이니 도성입덕(道成立德) 못 미칠까 이같이 쉬운 도를 자포자기(自暴自棄) 하단 말가’/ 교훈가.
2. ‘신은 죽었다.’ 이 말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10, 15. - 1900, 8, 25.)의 명언으로 알려져 오고 있다. 니체는 19세기에 활동했던 독일의 시인, 음악가, 문헌학자, 문학 평론가, 그리고 철학자. 급진적인 이론과 철학으로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철학의 근간을 마련했다. 그와 동시에 특유의 공격적인 비판으로 그의 철학이 잘못 이해되기도 하며, 평가 또한 많이 엇갈리는 철학자.
이 말이 들어 있는 문장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그의 저서인 《즐거운 학문》에서다. 이 저서에서 상당히 간지나는 말로 쓰이는데, 대낮에 등불을 들고 신을 찾는다고 외치는 미치광이를 무신론자들이 비웃자 미치광이가 소리친다.
신이 어디 있냐고? 좋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그를 죽였다! 너와 내가! 우리는 모두 신을 죽인 살인자다!
신은 죽었어! 더는 없어! 하지만 내 등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  니체의 저서 중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신은 죽었다.' 란 문장의 수는 상당히 많다. 하지만 뜻에 굳이 진정성을 부여하자면 《즐거운 학문》에서의 뜻을 분석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또 니체가 4부로 구성한 철학적 산문시(1883~85년에 간행)인, 차라투스트라(고대 페르시아의 배화교[拜火敎] 교조 자라투스투라의 독일식 이름)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산을 내려와 여행하면서 가르침을 전하는 모습을 뛰어난 문장으로 기술했다. 이 작품에는 니체의 중심사상인 힘에의 의지, 초인(超人), 영겁회귀(永劫回歸) 등이 비유와 상징 및 시적인 문장으로 전개되어 있다. 기존의 그리스도교적 질서를 파괴하고 현대인의 중심문제를 예언한 이 책은 뒤에 오는 철학자·시인·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도 '신은 죽었다.' 고 했지만,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 나의 관념 안에서 신을 상정하지 않고도 내가 신의 경지(절대적 초인)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상대화시켜 말한 것이다. 절대로 절대자가 죽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종교는 노예의 도덕이고 '신은 죽었다'.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신은 죽었다', '나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선언을 들은 신(들)은 '웃다가 죽었다', 신은 '그냥 죽었다' 등등이다.
저서; 비극의 탄생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청하판 '서광') / 즐거운 지혜 (청하판 '즐거운 지식') (책세상판 '즐거운 학문') / 우상의 황혼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 / 선악의 피안 (책세상 개정판 '선악의 저편', 청하판 '선악을 넘어서') Jenseits von Gut und Böse / 도덕의 계보 Zur Genealogie der Moral / 힘에의 의지(권력에의 의지) Der Wille zur Macht / 안티 크리스트 등./ 나의 여동생과 나 / 브리태니커 백과와 관련자료 종합요약정리.
3. 베버(Max Weber/1864. 4. 21. - 1920. 6. 14.); 맥스 베버는 독일의 사회학자·정치경제학자로 프로테스탄티즘을 자본주의와 관련지어 규명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라는 주제와 관료제에 대한 사상으로 유명하다. 학문에서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동기(動機)의 측면에서 인간의 행동을 분석함으로써 사회학 이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사회과학의 인식론은 역사학파에 대한 비판일 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였다. 즉, 마르크스주의를 유물사관(唯物史觀)에 의하여 주관적으로 구성된 하나의 이념형이라고 봄으로써 이를 상대화(相對化)하였고, 또 여러 경제적 요인에 의하여 역사적 인과관계(因果關係)를 설명하는 유물사관에 대하여 종교나 정치 영역에서의 행위의 동기와 관련시켜 역사적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는 그의 저서들에서 근대 유럽에서의 자본주의의 발생을, 프로테스탄티즘 특히 칼뱅주의의 교리 하에서 금욕(禁慾)과 근로에 힘쓰는 종교적 생활태도와 관련시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는 반 기독교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근대 유럽과 비교하는 관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원류(源流)가 되는 고대 유대교와 불교 ·유교 등과 같은 비(非)그리스도교 세계에서의 종교와 사회와의 관련도 추구하였다. 그가 내린 마르크스주의 비판의 타당성 여부는 접어놓더라도, 그의 사회과학 방법론이 오늘날의 여러 사회과학 분야에 대해서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또 불의 강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포이엘 바하(기독교의 본질의 저자)는 기독교의 존재가치를 부정하고 종교라고 하는 전체를 유해한 것이라 했으며, ‘가장 소중한 존재는 사람’ 이라고 하면서, 베버가 선언한 것과 같이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 고 한다. /브리태니커 백과와 관련자료 종합요약정리.
4. "자연은 인간을 창조했다, 인간은 신을 창조했다, 그리고 신은 우주를 창조했다." 마치 불교의 윤회사상 같은 말이지만 틀린 말이 없다. 고고학이나 인류학, 특히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미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난 것이 아니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성분들이 우주의 에너지와 결합하여 생명체가 태동했고, 이것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진화하여 현재의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자연과학에 아주 무지한 일부 맹신론자 들을 제외하고). 그러므로 자연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은 수긍이 갈 것이다. / 다움의 오픈 지식에서 발췌 요약정리. / 天道敎는 어떤 宗敎인가? (下) 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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