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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암 작성일 13-03-31 16:32 조회 4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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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고 안녕하셨읍니까? 아뢸 말씀은 신인간사에서 아래의 대주제로 청탁이 와서 힘들게 원고를 준비하여 보낸바, 편집방향과 달라 게재불가라고 연락이 와서, 동덕여러분들도 읽어보시고 질정을 바라는 의미에서 이 글을 올립니다. 담암 심고




천도교의 오늘과 내일
-- 평화통일을 위하여 --

談菴 盧 泰 久(수명포, 수유‧도봉교구)
Ⅰ. 천도교와 나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솔직히 동학이 무엇인지, 하물며 천도교가 무엇인지를 전혀 몰랐다. 대학 생활을 제대로 지내본 사람은 동아리 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게 된다. 한사회(한국사상연구회) 동아리에 입회하면서 어렴풋이나마 천도교에 대해서 접하게 되었다. 이 이념 써클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내 전공(법학) 외에 민족사상과 민족종교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길은 없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분단된 한국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아, 나 역시 외래종교의 어느 하나를 믿고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별다른 역사의식 없이 무사안일하게 하루하루를 영위하였을 것이다.
‘한사회’에 들어간 후 훌륭한 선후배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 중 나중에 장관, 국회의원, 교수들이 배출되었지만 이들과의 인연으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위논문을 동학사상과 관련된 주제로 글을 쓰게 된다. 동학사상과 민족통일에 관한 주제의 글을 쓰다 보니 자연히 천도교 중앙총부를 찾게 되었다.
당시에는 최덕신 교령이 계셨다. 그분이 상해 임정요인이었던 최동오 선생의 자제라는 것도 후에 알았다. 나는 주로 논문관계로 허경일 교수, 김철 전 교령 등과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동학(혁명)이 무엇인가를 두고 천도교 교인들을 접촉하면서 한국 민족사상의 그 무변광대한 깊이를 터득하게 되었다. 또한 그들의 신심도 독실하여 언행이 일반 시정인들과 다른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입교를 하게 되었다.
그때를 전후하여 이광순 당시『한국사상』주간을 만나게 되고 또한 선생의 소개로 한찬, 원용문, 한재익 씨 등을 만나게 되었는데, 한때는 한찬 회장께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유신 정권이 계속되어 정국이 불안할 때인데 한국의 재력가들이 외국으로 자금을 빼돌리는 일이 허다하고 독재정권을 피해 이민을 가는 일이 많았는데 한 회장은 자신이 재산가임에도 불구하고 천도교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처신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여생을 보내며 뼈를 묻겠다고 하였다. 본인이 천도교에 입교한 동기 중에는 이러한 교인들의 보국안민(輔國安民) 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애국심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는 민주화가 정착되지 못해 정치‧사회운동을 위해서는 주로 외래종교에 의탁하여 민주화운동을 하던 시절로 지도층의 엘리트들은 대부분 기독교, 가톨릭, 불교로 귀의하고 있었다.
나는 30대에 대학교수가 되면서 이력서에 종교가 천도교라는 것을 넣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천주교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좌‧우 이념대결의 와중에서 민족주의 세력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외세에 얹혀 사대주의가 득세하여 국가는 표류하고 있을 때 천도교의 간판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교인들의 모습은 대견스럽게만 보였다.
그래서 천도교의 미관말직이나마 맡아 민족의 통일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교단을 지켜야겠다는 심정으로 입도하여 동학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Ⅱ. 천도교의 현 상황
지난 해 2월 30여년의 교수생활을 마치고 정년을 하였다. 그리고 수명포(受命包) 도정에서 지금은 직접도훈을 맡고 있는 오늘 천도교의 실정은 어떠한지를 살펴보자. 오익제 교령과 임운길 교화관장님이 주직으로 계실 때, 이들의 후원으로 경기대에 민족사상연구소를 만들어 동학사상을 통한 민족의 평화통일에 관한 세미나를 열고 논문집을 출간하였다. 돌이켜 보면 문제제기만 하였을 뿐, 큰 진전을 이루어낸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으로 21집의 논문집을 만들어낸 데는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고 있다.
김광욱 교령 당시에는 민족사상연구소를 전국적인 단위로 하여 통일운동을 도모한다는 의미에서 동학학회를 설립하게 된다. 인내천 이념으로 민족통일을 위한 학회로 운영 발전시켜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본인이 뜻한 대로 학회 설립 취지가 얼마만큼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회고해 보면서 천도교의 도정이라는 원직도 직접도훈으로 강등되었고 여기에서도 포덕천하를 얼마나 잘 이루어졌는지를 성찰해 보게 된다. 그러나 가능하면 지금부터라도 대학에서의 이론적 연구를 현실에 적용해 보았으면 한다.
본인의 생활환경이 이러할진대 천도교단의 실정을 무엇이라고 진단할 수 있겠는가. 누구는 교단의 활성화를 위하여 연원 조직을 탈피하여 교구 중심으로, 그리고 교호 중심에서 교인중심으로 교단을 운영해야 한다고 한다. 또 교령선거를 대의원들의 무입후보 무기명 비밀투표의 콘클라베식 선출 방식에서 명실상부한 직접 선거 제도로 바꾸든지, 아니면 교황식 선거로 2/3의 동의를 얻을 수 있도록 제대로 추대해보든지 여러 가지 방안들이 거론되고 있다.
한편 우리 교단의 현실은 어떤 형식의 선거이든 간에 제대로 자격을 갖춘 인물이 등장하여야 하는데 실정은 그러하지 못한 것 같다. 모두 자천으로 교령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삼고초려를 해도 자신의 부덕을 말하고 극구 사양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앞장서 나서고 있으니 교령을 하더라도 임기를 제대로 채우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정통성을 갖지 못하고 당선된 교령이 되다 보니 임기 내내 자격시비에 영일이 없는 것이다. 정치 무대보다도 더 인신 공격이 난무하는 것이다. 세속정치에서는 그래도 어떻게든 일단 임기는 보장해 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이 끝을 모르고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런 실정을 두고 안타까운 것은 전문성을 가진 천도교의 인재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Ⅲ. 천도교가 변해야 하는 이유
역사를 보는 비교방법론적 시각에서 천도교가 변해야 하는 환골탈퇴(換骨脫退)의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
역사를 보는 자유주의적 견해는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특징지어진다. 역사는 인간 사회가 더 높은 단계를 성취할 때 미래로 나아간다. 역사가 어두움에서 광명으로 나아간다는 가정은 무엇보다도 이성의 믿음에 기초한다. 이성은 인간을 과거의 집착과 관습과 전통의 무게로부터 해방시킨다. 각 세대는 인간의 지식과 이해의 총체가 증대할 때 과거를 넘어 진보할 수 있다. 역사는 이렇게 정치적 파쟁과 종교적 논박을 두고 자연법(합리적 이성)에 기초하여 정치와 종교, 국회와 교회를 통일시키는 교정일치(敎政一治)의 강력한 지도력을 추구하였다.
따라서 천도교도 사인여천, 보국안민, 포덕천하, 광제창생, 지상천국 건설 등의 5대 종지(宗旨: 주요 지표)를 따라서 교정쌍전(敎政雙全)으로 나아가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천도교는 동학혁명, 3‧1독립운동, 청우당 운동 등이 모두 교정일치로 나아갔다. 이상과 현실을 하나로 소통‧통합하였을 때 교단은 번영하고 발전하였다. 그런데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냉전 이데올로기로 민족이 분열되면서 천도교와 같은 민족종교는 쇠잔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남‧북의 좌우 이데올로기 대결에서 민족주의 정치 세력이 제 자리를 지키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민족주의자들은 좌‧우의 이념에 희생되고 외세 의존적인 사대주의 세력들이 한반도에서 극성을 부리게 된다.
자연 민족종교는 성장 번영할 수가 없으며 심지어는 현상 유지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흑백논리의 이념적 정국에서 전국의 청년 인재들이 천도교를 외면하고 기존의 교인들까지도 외래 종교를 따라 기회주의, 출세주의로 교단을 떠나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틈새를 노리고 별로 전문성도 없고 그렇다고 도력도 있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교령이 되어 보겠다고 우후죽순으로 나서게 되다 보니 천도교는 침체일로를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제 천도교는 내일을 위해 환골탈퇴를 해야 한다. 전문성을 갖춘 교인들이 지도자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교정쌍전의 역사의식은 민족의 평화통일인데 여기에 신명을 바치며 민족통일을 위해 인문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에 일가견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천도교의 이론과 역사에도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또한 천도교의 성공 여부가 민족통일의 미래와도 직결된다는 것을 천도교인은 사명의식을 가지고 유념해야 할 것이다. 봄이 왔는데도 파종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교단이나 국가민족의 장래도 희망을 걸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 국가민족과 천도교단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 가는 우리들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Ⅳ. 발전을 위한 방안
천도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국안민을 하는 교정쌍전의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까지의 수도 중심의 교회 운영은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천도교의 뿌리가 동학(혁명)사상에서 유래한다고 본다면 지금부터라도 이 시대의 정치적 당면과제인 민족의 평화통일에 초점을 맞추는 교단 운영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주문을 외우고 경전공부를 하는 기복적 수준에 머문다면 기존의 신흥종교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천도교가 민족종교이자 고등종교로서 중원 포덕을 주창하며 세계화에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게 되는 것은 구한말 민족의 운명이 봉건 전제정치와 제국주의로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전봉준 장군을 위시하여 동학교도들이 동학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학이 민족의 운명개척을 위해 노력한 데서 민족의 역사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었듯이, 오늘의 천도교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발전할 수있는 교훈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제치하에서는 민족의 운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천도교가 있어서 3‧1독립운동을 주도하여 민족자결을 외침으로써 근대 민족국가 건설의 정치사상적 단초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 시대의 천도교의 정치의식은 당연히 민족의 평화통일이다. 현하 한‧미 키리졸브 군사훈련으로 한반도에는 전쟁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어떻게 단군의 천손민족인 배달겨레가 6‧25동란으로 동포의 희생이 있었으면 그것으로 되었지, 지금도 이렇게 같은 겨레끼리 총뿌리를 겨누고 있단 말인가. 이는 전적으로 대통령을 비롯 정치권의 정치력 부재로 밖에 볼 수 없다. 사상전에서 보면 북한은 전 인민이 김정은 정권과 일사불란한 체제를 갖추고 있는 반면에, 남한은 국민이 무사안일하기가 이를 데 없다. 교정쌍전의 사상교육이 전무하여 정치사상전에서 지고있는 것이다. 또 남‧북 모두가 군사력 확충에 여념이 없으니 이것 모두 배달겨례의 입장에서 보면 국력낭비가 아니고 무엇인가.
돌이켜 보면 지난 10년간의 진보정권 때 북정권의 보장을 전제로 개혁개방으로 나아가 한반도에서 군축과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체결하지 못한 것이 여한으로 남는다.
지금부터라도 한국정부는 대형(大兄)의 입장에서 한반도의 긴장 완화에 앞장서는게 좋겠다. 일부 진보 세력이 있기는 하지만 친북주의라며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또 일부 우익인사들이 통일과 평화, 선진화를 말하고 있으나 독일식 흡수통일을 의미하니 북에서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그리고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 통일 비용이 너무 과도하기 때문에 남한의 국력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이러한 반공통일 방식은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천도교가 다시 한 번 동학혁명과 3‧1독립운동의 정신을 되새기면서 선봉에 나서야 한다. 동학혁명을 동학당이 주도하였고 3‧1독립운동 이후 청우당이 전위단체로서 그 혁명정신을 계승해 갔다면, 오늘 다시 인내천주의(人乃天主義)의 통일이념에 기초한 제2의 청우당 재건으로 그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배달통일당의 건설로 사회‧정치 운동의 모범이 되지 않고서는 이제 성미를 내는 교인이 5천명도 되지 못하는 천도교단의 교세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위단체로 동학민족통일회가 있지만 교단 내부에서만 아는 사람이 있지 일반 국민은 잘 모른다. 전문성과 임전무퇴의 종교적 신념을 갖춘 지도세력의 등장이 시급하다.
Ⅴ. 대중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
앞에서 대중적 접근을 위하여 연원회 운영 대신 교구 중심의 제도 개혁을 거론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는 연원회 조직으로 교단이 구성되고 운영되는 것이 역사적으로나 이념적으로 합당하다고 사료된다. 연원회 구성의 취지를 잘 해석하고 운영을 여하히 해가는 것이 급선무이지 피상적인 접근으로는 응당한 결론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본인이 도정과 직접도훈을 하면서 피부로 느낀 것이다. 하물며 교정일치의 역사적 정치적 의식이 결여된 사람들이 교단 운영을 좌지우지하여서는 결국 무질서한 교단 행정이 될 것이므로 기존의 연원조직으로 천도교단이 운영되는 것이 그래도 현상유지라도 해가는 의미에서 더 나은 것으로 여겨진다.
대중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에 있어서 이제는 천도교인 각자가 자기의 위치에서 신심을 다해 동학 정신을 공부하면서 지행일치(知行一致)를 해 가는 방도밖에 없어 보인다. 국제 정세는 냉전이 무너지고 평화와 민주주의, 세계화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누구를 탓할 수는 없다. 2013년을 4월 2일 교령선거를 맞아 이제라도 우리 천도교는 평화통일의 교정일치의 진리를 보여주어 일반 민중이 천도교단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겸손하며 포용과 봉사하는 낮은 자세의 환골탈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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