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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天道敎 政治理念의 比較分析 硏究(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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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작성일 13-03-28 23:21 조회 4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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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道敎 政治理念의 比較分析 硏究(13-6)
영우회(靈友會)가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는 동경대전의 ‘訣’ 을 음미해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訣 (결)
問道今日何所知 意在新元癸亥年
成功幾時又作時 莫爲恨晩其爲然
時有其時恨奈何 新朝唱韻待好風
去歲西北靈友尋 後知吾家此日期
春來消息應有知 地上神仙聞爲近
此日此時靈友會 大道其中不知心/ 天道敎經典 PP. 90-91.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오늘에야 도를 물으니 무엇을 알 것인가. 한울님의 뜻이 계해년(1863년) 첫날에 새로이 시작함에 있는가. 한울님으로부터 도를 받은 지 여러 해가 되어 이제야 때를 만나게 되니, 이렇게 된 것을 늦었다고 한탄하지 말라, 때에는 좋은 시절이 있는 그 때가 정해져 있는 것이니 늦는다고 한탄한들 무엇을 하겠는가. 새로운 기운이 일어나는 아침에 시운(詩韻)을 내어 한 수를 부르며 좋은 시절에 부는 부드럽고 따듯한 바람을 기다리노라.
지난해에 서북쪽에서 영우(동덕 또는 마음이 통하는 벗)가 찾아와 의아했으나, 지난날 우리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날임을 늦게야 알았다. 봄이 오는 소식을 마땅히 알게 되었 지상신선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것을 들었다네. 이 날 이때에 영우들이 모였으나 대도의 핵심을 알 수 없더라.
천도교의 영우회 비밀결사와는 전혀 다른 일본의 유력한 신종교의 하나인 법화계(法華界)의 일련계(日蓮系)인 레이유카이(靈友會)가 있다. 이 영우회(靈友會)에서는 선종의 계명(戒名)이나 출소불명(出所不明)의 가짜 만다라와 최근에는 여기에다 석존상까지 추가하여 본존으로 하고 있는 상태이다. 20세기 말 기준으로 일본에서의 법화계열의 신도수가 신종교 전체 인구의 70%에 이른다. 고 보고되어 있다./ 포털 사이트에 게시된 자료들의 종합정리.
4. 天道敎政治理念의 간행(刊行)에 대한 解說
“天道敎政治理念”이란 책자의 간행은 포덕 88년1947년(1947년) 4월 5일에 초판이 간행된 이후, 초판의 원본이 희귀(稀貴)해져 필요로 하는 연구자에게 자료로 제공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포덕 110(1969)년 3월 20일에 삼일재현운동의 전말(顚末)을 밝히고자 고 유은덕(故 劉.恩德)여사가 환원한 지 20 년이 되며 환갑이 되는 해를 맞게 되자, 자녀들이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간행하게 된 “南北分裂沮止(鬪爭 / 三一再顯運動誌”에 그 당시의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해 “天道敎의 政治理念” 수정본 1.을 부록(PP. 209-246)으로 복간하였다. 약 10 여년이 지난 후 교단의 필요에 따라 포덕 120(1981)년 3월 l일에 재판(再版)간행하여 판매하였다. 그 후 김 철(金 哲) 전 교령이 이끌었던 ‘동학 선양회’에서 포덕 129(1990)년 9월 25일에 “東學”이란 천도교 관련 무크(MOOK)誌를 간행하면서, 첫 해인 1990년에 간행된 “東學” 제 1집에 자료로서 수정본(修正本) 2(PP. 278-319)가 게재되었다. 이 두 개의 자료들은 원본(原本)대로 게재한 것이 아니고, 수정내용의 상당한 차이가 있는 수정본들이다. 이 원본과 수정본 1. 2.의 비교분석 및 해설을 게재하게 된 동기는, 원본의 취지를 올바르게 이해해보자는 데 있다. 수정의 정도와 수정을 하게 된 편집자의 의도를 알아보기 위하여 두 책에 게재된 해설문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참고; 原本과 修訂本 1, 2의 原文에서 보이는 誤字와 脫字 그리고 잘못된 표현들을 修正하지 않았으며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등이 잘못되었더라도 원문 그대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이해하는데 매우 쉽도록 註나 解說에서 修正補完하여 충분하게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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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道敎政治理念 原本
天道敎政治理念의 原本은 全體가 縱書로 右에서 左로 인쇄되었고, 國漢文混用體로 漢主國從體의 문장으로 되어 있다. “天道敎政治理念”은 布德 八十八年 四月 三日에 普成社에서 인쇄, 동년 四月 五日에 天道敎總本部 知道觀 이 編輯하여 普成社 出版部에서 발행한 小冊子로 포켓용 크기이다. 가로 9.8cm X 세로 14.4cm로 된 본문이 총 71페이지의 매우 엷은 灰色의 再生紙로 된 國漢文混用體로 漢主國從體의 문장으로 된 冊子이다. 별도로 표지와 발간사 판본표시의 3페이지가 있으므로 총 74 페이지라고 하기도 한다. 표지와 ‘發刊에 際하여’와 구성과 체재는 다음과 같다.
(표지)
天道敎總本部 知道觀 編纂
天道敎政治理念
普成社出版部 刊行
아래의 ‘發刊에 際하여’가 落帳됨
發刊에 際하여
이 작은 冊子는 비록 簡單하나마 天道敎의 政治思想의 社會的 起因과 理論的 根據를 밝힌 同時에 天道敎의 政治運動에 對한 史實을 들어 그의 理念路線롸 및 鬪爭對象이 무엇이었던 것을 例證하고 아울러 解放 後 新朝鮮 建設에 對한 大體要綱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집을 짓는 데에 기둥, 들보, 석가래 等 材木될 만한 것을 골라 놓은데 不過할 뿐이요 아직 먹줄을 치고 대패를 놓고 골을 파고 자구로 깎아서 사개를 맞추게 되지는 못함과 같이 具體的인 理論的 體系와 現實的 政策을 完全히 내세우지는 못하였다.
앞으로 靑友黨의 理念 路線과 現段階의 政綱 政策을 具全한 冊子가 續刊될 것 前提로 하고 于先 이것은 發刊하면서 讀者諸賢의 諒察을 바란다.
布德 八十八年 三月 三十一日
天道敎總本部 知道觀
金 秉 濟
目 次/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다.
一, 天道敎의政治理念과社會的根據 ( 一)
二, 天道敎의政治思想과理論的根據 ( 五)
一. 同歸一體說 ( 八)
二. 事人如天說 ( 九)
三. 保國安民說 ( 九)
四. 天職天祿說 (一○)
五. 萬事知는食一椀說 (一一)
六. 奴隸解放 (一一)
七. 政治的實踐運動 (一二)
八. 殉道精神 (一二)
九. 後天開闢 (一三)
十. 사람性自然史觀 (一四)
十一. 地上天國理想 (一七)
三, 天道敎의政治運動史와 그 意義 (一九)
甲. 甲午革命運動 (一九)
乙. 甲辰改革運動 (二五)
丙. 己未獨立運動 (三一)
四, 天道敎靑友黨의出現과 그 意義 (三四)
一. 天道敎靑友黨이생겨진經路 (三五)
二. 天道敎靑友黨이出現된意義 (三五)
三. 天道敎靑友黨의運動目標 (三六)
五, 天道敎의建國理念 (三九)
甲. 民主政治 (四四)
乙. 民主經濟 (五一)
丙. 民主文化 (五七)
丁. 民主倫理 (六二)
六, 天道敎靑友黨의復活과 그 政治的進路 (六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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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道敎政治理念 修訂本 1./ 제목을 ‘天道敎의 政治理念’으로 修訂함.
“南北分裂沮止(鬪爭 / 三一再顯運動誌”의 附錄
/ 縱書 上下 二段 國主漢從體(國漢文混用體)
이 “天道敎의 政治理念”은 포덕 110(1969)년 3월 20일에 초판으로 新人間社에서 간행된 “南北分裂沮止(鬪爭 / 三一再顯運動誌”의 附錄(PP. 209-246)에 원본에서 상당부분이 수정된 수정본(修訂本)이 게재되어 있다. 刊行者가 三一再顯運動의 시대적 배경과 교단의 형편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자료로서 ‘天道敎政治理念’을 부록으로 게재하였기 때문에, 간행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많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내용의 첨삭(添削)의 정도(程度)가 너무 심하여 원작(原作)의 의도(意圖)가 왜곡(歪曲)될 수도 있다. 원본의 수정자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고 유은덕(故 劉.恩德)여사의 남편이며 교단의 원로였던 오 근(吳 槿)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 부록으로 게재하는 것에 대한 입장과 평가를 三一再顯運動誌”의 附錄에 부친 편집자의 말인 다음 글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편집자가 말하고 있는 ‘天道敎政治理念’에 대한 평가나 수정태도는 我田引水格이며 恣意的인 修訂으로, 원본에 대한 缺禮이고 不誠實한 태도로 매우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교서의 구성 체재는 종서(縱書) 上下 二段(右에서 左로)된 國主漢從體(國漢文 混用體)로 되어 있다.
1 .“南北分裂沮止(鬪爭 / 三一再顯運動誌”의 附錄에 부친 편집자의 말.
이 부록은 천도교 총부 知道觀 편찬으로 “천도교 정치이념”이란 小冊子의 全文을 옮겨 실은 것이다. 1947년 4월 5일자 발행의 이 책자는 국판 半折판 75면의 작은 분량의 글이지만 그 당시의 국내정세와 교회 수뇌부들의 생각을 부각시킨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1946년 11월경에 起稿되어 다음 해 봄 天日紀念을 계기로 活字化한 것으로 1948년 3.1절을 期해 全 北韓을 휩쓴 3.1 再顯 운동의 시대적 배경의 이해에 도움 될 자료임으로 附錄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눈으로 보는 천도교의 정치이념으로서는 크게 참고할 것도 있을 수 없겠지만 당시의 사정과 그 때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알아보는 데에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이 起稿된 動機를 遡究해 보면 第 2次 美,소 의 答辯書를 준비하기 위한 당시의 청우당 간부들에게 교회에서 제시한 정책적인 요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끝으로 밝혀두어야 할 것은 당시에 통용되던 文句들과 맞춤법이었기에 多少 수정이 不可避했음을 附記해 둔다.(편집자)
이 “天道敎의 政治理念” 수정본 1은, 포덕 110(1969)년 3월 20일에 초판으로 신인간사에서 간행된 “南北分裂沮止(鬪爭 / 三一再顯運動誌”의 附錄(PP. 209-246)의 목차는 없다. 그러나 분장에 따른 목차를 모아 보면 다음과 같다.
目 次
一 天道敎의 政治理念과 社會的 與件
二 天道敎의 政治思想과 理論的 根據
一. 同歸一體說
二. 事人如天說
三. 保國安民說
四. 天職天祿說
五. 萬事知는 食一椀說
六. 奴隸解放
七. 政治的 實踐運動
八. 殉道精神
九. 後天開闢
十. 사람性 自然史觀
十一. 地上天國理想
三 天道敎의 政治運動史와 그 意義
甲(一). 甲午革命運動
乙(二). 甲辰改革運動
丙(三). 己未獨立運動
四 天道敎靑友黨의 出現과 그 意義
一. 天道敎靑友黨이 생겨진 經路
二. 天道敎靑友黨이 出現된 意義
三. 天道敎靑友黨의 運動目標
五 天道敎의 建國理念
甲(一). 民主政治
乙(二). 民主經濟
丙(三). 民主文化
丁(四). 民主倫理
六 天道敎靑友黨과 그 政治的 進路
註 01; “南北分裂沮止(鬪爭 / 三一再顯運動誌”는 포덕 122(1981)년 3月 1日에 再版을 天道敎 中央總部 出版部에서 했다. 이 책의 編者를 新人間社로 하고 있는 데 잘못된 기록이다.
초판에서 밝혔듯이 發行處가 新人間社로 되어 있지만, 新人間社는 간여한 바가 없고, 三一再顯運動에 직간접을 관여되어 있는 吳 槿 동덕이 전체를 관장하여 내용을 결정하고 편집하여 그가 근무하고 있던 大韓公論社에서 인쇄 간행하면서 新人間社의 명의를 빌렸고, 發刊辭는 당시의 敎領이셨던 崔德新이 썼다. 이 책에는 跋文이 없이 본문만 게재되어 있다. 포덕 122(1981)년에 再版을 天道敎 中央總部 出版部에서 발행하면서 본문 269페이지의 전문을 그대로 사용하고, 畵報를 발간사 뒤에 있던 것을 발간사 앞으로 옮겨 실으면서 초판에 게재된 화보 1-3페이지는 그냥 두고, 5페이지에 있던 故 劉恩德女史(吳 槿 同德의 內修道)의 사진(상단 좌)과 삼남매(吳龍珠, 龍海, 龍相)의 이름으로 환갑이 되는 날에 ‘-전략 - 어머님을 그리워한 나머지 그때 그 일을 글로 추려 모아 작은 책 한권을 만들어 -중략- 오늘 이 책을 삼가 제단 위에 올리오니 -이하 생략’ 하는 출간의 의도를 밝힌 ‘어머님께’라는 글(하단)을 빼고 대신 4-6페이지에는 三一再顯運動과 깊은 관련이 있는 개인별 사진과 三一再顯運動의 密使를 파견하는 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기념사진을 게재했다. 그리고 發刊辭는 再版 當時의 敎領이셨던 李永福이 쓰고, 종무원장이었던 吳益濟가 머리말을 써 추가하고, 맨 뒤에 跋文을 新人間社 主幹 金應祚가 써 추가했다. 그리고 초판은 非賣品으로 관련학계와 관련인물들에게 증정되었으나 再版 때에는 당시 가격으로 1800원에 판매했다. 초판과 재판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판권 부분과 발간 당시 天道敎總本部 知道觀 觀長인 金秉濟의 ‘發刊에 際하여’라는 서문이 동학 제1집의 資料에는 添加 수록되어 있다. 동학 제1집의 資料에서는 제목이「天道敎政治理念」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三一再顯運動誌”의 초판과 재판에서「天道敎政治理念」을「天道敎의 政治理念」이라고 부록 제목을 고쳐 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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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道敎政治理念의 修訂本 2.
‘동학 선양회’에서 간행된 창간호 “東學” 제 1집의 附錄 자료(PP. 278-319)
橫書 左右 二段(兩段) 漢主國從體(國漢文混用體)
이 “天道敎 政治理念”은 포덕 131(1990)년 9월 25일에 창간호로 동학 선양회에서 간행된 “東學” 제 1집의 附錄 자료(PP. 278 - 319)에 원본에서 한문부분을 현대어에 맞게 수정된 수정본(修訂本) 2.가 게재되어 있다. 수정본 중에는 원본에 가장 가깝다. 이 교서의 構成 體裁와 內容 全文은 다음과 같다.
“天道敎政治理念”이란 책자의 간행은 1947년(포덕 88년) 4월 5일에 초판이 간행된 이후, 초판의 원본이 희귀(稀貴)해져 필요로 하는 연구자에게 자료로 제공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포덕 110(1969)년 3월 20일에 삼일재현운동의 전말(顚末)을 밝히고자 고 유은덕(故 劉.恩德)여사가 환원한 지 20 년이 되며 환갑을 맞게 되는 해를 맞게 되자 자녀들이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간행하게 된 “南北分裂沮止(鬪爭 / 三一再顯運動誌”에 그 당시의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해 부록으로 복간하였다. 약 10 여년이 지난 후 교단의 필요에 따라 포덕 120(1981)년 3월 l일에 재판(再版)간행하여 판매하였다. 그 후 김 철(金 哲) 전 교령이 이끌었던 ‘동학 선양회’에서 포덕 129(1990)년 9월 25일에 “東學”이란 천도교 관련 무크(MOOK)誌를 간행하면서, 첫 해인 1990년에 간행된 “東學” 제 1집(PP. 278-319)에 자료로서 게재되었다. 이 두 개의 자료는 원본(原本)이 아니고, 수정내용의 상당한 차이가 있는 수정본(修正本)이다. 이 수정본을 게재하게 된 동기와 이해의 정도와 그리고 수정의 정도와 수정을 하게 된 편집자의 의도를 알아보기 위하여 두 책에 게재된 해설문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東學 제 1 집에 게재된 “天道敎 政治理念”수정본 2의 解題.
“天道敎 政治理念” 解題.
「天道敎政治理念」은 1947년(포덕 88년) 4월 5일에 당시 天道敎總 本部 知道觀(觀長 金秉濟)에서 편찬한 菊半版 (가로 9.8cm, 세로 14.3cm) 71面(초판에서는 74면으로 되어 있다.)의 小冊子이다.
이 자료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발행배경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모스코바 三相會議 합의에 따라 戰後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해 美蘇共同委員會가 구성되어 덕수궁에서 1946년 1월에 예비회담을 거쳐 제 1 차 회의(1946년 3월 20일- 5월)와 제 2 차 회의(1946년 5월 27일 - 10월) 가 열렸으나 신탁통치문제 등으로 결렬되고 말았다. 그런데 당시 미소공동위원회는 각 政黨, 사회단체에 한반도의 임시정부 수립과 관련해서 答申書의 제출을 요구 했다. 이에 天道敎團에서도 간부진이 모여 답신서 준비를 위한 기초작업의 일환으로 天道敎의 政治理念에 대해 熟議한 끝에 이를 체계화시켜 발행한 것이「天道敎政治理念」이다. 당시 이 문제를 숙의하는 자리에는 金秉濟, 金炳淳, 朴宇天, 孔鎭恒, 李應辰, 宋重坤, 李錫保 등 天道敎와 靑友黨 관계자들이 合席했다. 고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합의과정을 거쳐 金秉濟를 대표 집필자로 해서 1946년 11월경 起稿했는데 1947년 3월경에는 북한 天道敎靑友黨의 朴允吉 부위원장이 上京하여 함께 草稿를 검토했다고 故 安炳武氏가 증언한 바 있다. 이렇게 해서 다음해 4월 5일 天道敎 天日紀念日을 기해 이 책자를 발행하게 된 것이다.
이 책자가 나오던 1947년 초까지는 비록 삼팔선이 있었다고는 하나 남북간의 비공식 왕래가 가능했던 시기였고, 더욱이 북한의 종교말살정책이 본격화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북쪽의 天道敎와 靑友黨활동이 全盛期를 이루었던 때였다. 따라서 당시 천도교는 나름대로의 독자적 政治路線을 표방, ‘朝鮮的 新民主主義’를 주장하면서 좌익도 우익도 아닌 自主路線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자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더불어 東學의 근본교리를 바탕으로 한 천도교의 정치이념의 근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이 자료를 轉載함에 있어서 原文의 한문만은 현대문에 맞도록 고쳤음을 밝혀둔다.(秀松)
이 “天道敎 政治理念”은 포덕 131(1990)년 9월 25일에 창간호로 동학 선양회에서 간행된 “東學” 제 1집의 附錄 자료(PP. 278 - 319)에 원본에서 한문부분을 현대어에 맞게 수정된 수정본(修訂本)이 게재되어 있다. 수정본 중에 원본에 가장 가깝다. 그러나 교단 내에서 간행(刊行)되는 출판물에서부터 교단 밖에서 간행은 되었지만 교단의 교역자(敎役者)가 관여(關與)된 출판물에서 오류(誤謬)가 많은 것은, 교단내외에서 출판물에 관여한 교역자들의 일방적(一方的)인 개인의 판단으로 원문(原文)을 임의(任意)로 수정(修訂)하고 보완(補完)하거나 개인의 주장(主張)을 교단(敎團)의 공식적(公式的)인 입장(立場)인 것처럼 제시(提示)해, 교단내외의 많은 연구자들이 잘못된 자료를 인용(引用)하게 하여 해교행위(害敎行爲)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관여한 교역자인 당사자(當事者)가 의도(意圖)한 것이 아니라면, 관여한 분야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온 결과(結果)라고 지적(指摘)하고 싶다. 이런 일이 차후(此後)에는 재차(再次) 발생(發生)하는 어리석음을 자초(自招)하게 되면, 교단의 미래가 없다. 는 것을 명심(銘心)해야 할 것이다. 이 “天道敎 政治理念”도 이런 범주(範疇)에 드는 교서(敎書)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교서의 構成 體裁는 다음과 같다.
원문을 단 하나의 글자도 수정 없이 그대로 전재(全載)하였기 때문에, 古語體(舊語體; 완전한 고어체라기 보다는 20세기 초에 사용되던 옛날 말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로 된 문장과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잘못된 것과 오자(誤字)와 탈자(脫字)라 추정되는 글자와 단어일 지라도 원문을 그대로 따랐다.
目 次
一 天道敎의 政治理念과 社會的 根據
二 天道敎의 政治思想과 理論的 根據
一. 同歸一體說
二. 事人如天說
三. 保國安民說
四. 天職天祿說
五. 萬事知는 食一椀說
六. 奴隸解放
七. 政治的 實踐運動
八. 殉道精神
九. 後天開闢
十. 사람性 自然史觀
十一. 地上天國理想
三 天道敎의 政治運動史와 그 意義
甲(一). 甲午革命運動
乙(二). 甲辰改革運動
丙(三). 己未獨立運動
四 天道敎靑友黨의 出現과 그 意義
一. 天道敎靑友黨이 생겨진 經路
二. 天道敎靑友黨이 出現된 意義
三. 天道敎靑友黨의 運動目標
五 天道敎의 建國理念
甲(一). 民主政治
乙(二). 民主經濟
丙(三). 民主文化
丁(四). 民主倫理
六 天道敎靑友黨과 그 政治的 進路
위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복간의 필요성이 간행을 한 주체들이 처한 상황이 많이 고려되었다는 점과 “天道敎政治理念”의 간행 경위에 대한 이해도 달라 조금 다르게 기술하고 있으며, 각각 수정의 이유와 정도가 다름을 알 수가 있다. 실제로 “三一再顯運動誌”의 附錄에 게재된 “天道敎의 政治理念”의 내용이 편집자가 말한 ‘끝으로 밝혀두어야 할 것은 당시에 통용되던 文句들과 맞춤법이었기에 多少 수정이 不可避했음을 附記해 둔다.’ 라는 것과는 달리 단순히 문법의 문제가 아니라 문장의 첨삭(添削)정도가 상당량(相當量)에 이르러 원문(原文)의 의도를 이해하는데 어려울 정도로 훼손(毁損)되었으며 편집자가 간행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임의(任意)로 편집자의 잘못된 견해와 주장이 첨가되어 해방공간에서의 청우당의 입장을 바꾸어 놓은 점도 있어 사료적(史料的) 가치의 손상(損傷)이 매우 심했다. 아마도 이런 잘못된 태도는 편집자가 말하고 있는 ‘그러나 현재 우리의 눈으로 보는 천도교의 정치이념으로서는 크게 참고할 것도 있을 수 없겠지만, 당시의 사정과 그 때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알아보는 데에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라고 한 것은 근현대 역사의 흐름과 천도교 교단의 핵심적인 사상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온 것이라 사료된다. 이와는 달리 “東學” 제 1 집에 게재된 “天道敎 政治理念”은 간행 경위를 소상(昭詳)히 밝히고 있고, 편집자가 말한 ‘끝으로 이 자료를 轉載함에 있어서 原文의 한문만은 현대문에 맞도록 고쳤음을 밝힌다.’ 고 한 그대로 수정하여 원본(原本)에 매우 가깝게 게재하였다.
천도교 교단에서 가끔 간행되는 자료들 중에는, 원문(原文)대로 하지 않고, 현대문으로 수정 간행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일로, 그 자료들이 집필되고 간행될 당시의 상황과 표기(表記)를 알아 볼 수 없게 하여 자료적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러한 태도가 묵인(黙認)되거나 용인(容認)되는 상황은, 오늘의 천도교 교단을 실재(實在)하게 한, 역사의 도정(道程)을 단절시켜, 교단을 시대적 발전에 역행하게 하거나 현재의 우리의 상황을 퇴행시키는 주된 원인이 된다는 점을 매우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필자의 주장을 뒷밭임해 주는 위에 소개한 두 개의 책자를 비교해 가며 읽는다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1946년 11월경에, 대표 집필자로 알려져 있는 추강(秋岡) 김병제(金秉濟)에 의하여 집필되기 시작하여 포덕 88(1947)년에 4월 5일자로 간행된 “天道敎 政治理念”이란 국 반절판 75페이지의 소책자가 말해주고 있는 것은, 새 시대의 지향점을 제시한 대표적인 교서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교서를 통해서 해방정국(解放政局)에 있어서의 국내외정세와 교단의 지휘부의 생각을 엿볼 수가 있다. 미군정의 산하 기관인 제 2차 미,쏘 공동위원회가 당시 한국의 ‘제 정파(諸政派)’에게 ‘건국이념’을 제출해 달라고 한 데 대한 답변서로서 제안된 것이다. 이 글의 기초적인 견해는 청우당 간부들에게 교단이 제시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정책적인 대안으로서 제시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천도교의 정치이념을 정리한 추강 김병제(秋岡 金秉濟) 선생도 ‘천도교의 문화는 과거의 특권 계급만의 문화가 아닌 대중생활을 향상시키고 대중정서를 함양시킬 수 있는 민주문화’라고 정의한 바 있다.
교단은, 해방공간(解放空間)에서 사상의 혼란기를 맞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여 재빨리 이 시대를 이해하고 적응하도록 인도하고 새로운 삶의 지표를 제시해 주고 있었다. 천도교가 용시용활(用時用活)을 중시(重視) 여기는 종단으로서 험난(險難)한 구한말과 일제의 식민지 시대와 혼란한 해방공간 속에서도 자생(自生)할 수 있는 저력(底力)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이 동학이며 대 종단다운 천도교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6.25동란이후 교단이 동력(動力)을 잃고 쇠퇴(衰退)의 길로 접어들게 된 원인은, 시대는 급변(急變)하고 있는데 교단은 수도수련이라는 악수(惡手)를 두어 자멸(自滅)하기에 이르렀다. 적어도 교단은 저변(底邊)에 깔려 있는, 저력의 원천(源泉)이 되는 교리의 변화를 읽을 줄 알았어야 했고 새로운 지향점(指向點)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리고 동력(動力)의 주체(主體)가 되는 새 시대에 걸 맞는 교역자를 양성했어야 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교서의 내용으로 보아, 혼란한 해방정국에서 천도교 교단이 교단내외에 천도교가 어떤 종단이며 어떤 정치적인 목표와 지향점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싶었으며 제시된 방향으로 매진(邁進)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음을 감지(感知)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정점(頂點)이었고 끝이었다. 오직 남은 것은 찬란했던 지난 과거사에 얽매여 헛된 망상(妄想)에 젖어 있는, 초췌(憔悴)한 군상(群像)들만이 급변하는 세계사조(世界思潮)와 현대 한국사회를 외면한 채 웅크리고 있었다. 이제는 너무 웅크리고 있어서 일어서야 될 다리가 여위고 저려 일어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해도 과언(過言)이라 할 수 없다.
끝으로 필자가 ‘天道敎政治理念의 全文과 解題’를 정리하게 된 동기와 게재를 결정한 마음은, 지금 천도교 당면하고 있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절박함에 있다. 천도교 교리와 사상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많은 신조어(新造語)와 그 단어에 대한 해박하교 명료한 설명에 대한 감동은 평생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해방 전후에 우리 민족이 처해 있었던 역사의 현실과 백의민족의 문화전통의 계승과 각 분야의 상황에 대하여, 광범위한 관련 자료와 국내외 정세를 바탕으로 하여 천도교의 현실을 파악하고 있는 시대감각과 이런 상황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었던 지도자들의 인식과 식견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天道敎政治理念”과 같은 지금의 현실과 미래를 열 수 있는 천도교의 확고한 이념과 사상을 정리하여 발표하고 주장할 수 있을까? 필자는 매우 부정적이다. 지금의 교단은 절대로 해낼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미 ‘天道敎政治理念을 되새겨 보며’란 필자에 글에서 명확하게 그 이유를 밝혀 놓았다. 단적으로 예를 든다면, 19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말까지 두 번에 걸쳐 발표된 통칭 ‘교단 발전 계획안’ 과 비교해 본 동덕들이라면 필자의 의견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것이다.
「수운심법」 또는 심학에서 출발하여 「신인철학」과 「인내천 요의」를 거처 「천도교정치이념」에까지 이르는 근대의 한 세기 속에서 이루어진 탁월한 동학과 천도교의 주의와 이념과 사상과 철학이 있고, 이것으로만 보아야 보이는 민족역사와 민족의 전통문화와 5천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문화의 계승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한 이 나라 근대사의 주인공이 되었던 동학혁명, 갑진개혁, 기미독립이란 3 대 개벽운동이 있다. 우리만이 우리의 힘으로 일으킨 다시개벽의 근대역사의 진정한 의미를 읽어낼 수 있고, 우리만이 우리의 사상과 철학으로 그 역사의 의미를 정확하게 확정해 낼 수 있다. 동학과 천도교의 주의와 이념과 사상과 철학이 우리 민족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의미 있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 준다. 우주 자연의 무위이화 법칙과 균형과 조화의 순환질서와 인류의 역사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수운의 심법이 준 안목이,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인 지상천국이 어떤 세상이며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주었고, 급변하는 현실을 지혜롭게 수용하여, 확신에 찬 다시개벽을 통하여 불확실성의 미래에 대한 명료하고 확실한 희망을 갖게 해주었다.
/ 天道敎 政治理念의 比較分析 硏究(13-6)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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