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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天道敎 政治理念의 比較分析 硏究(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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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댓글 0건 조회 97회 작성일 13-03-28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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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道敎 政治理念의 比較分析 硏究(13-11)
解說; 세 번째로 말할 것은, 保國安民說이다. 崔水雲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포덕천하 광제창생의 대 사상을 품은 세계적 대 종교가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뜨거운 애국주의자이다. 그래서 그는「陷之死地 出生들아 保國安民 어찌할꼬」하여 이 나라가 장차 망하게 될 것을 애타게 걱정하고, 이 민족 이 백성(民衆)의 앞으로 닥쳐올 고난을 눈물나게 근심하였었다. 그리하여 그 방법으로는 各自 爲心하지 말고 同歸一體하라는 것을 재차 재삼 강조하고 나아가 我國運數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하면서 개벽운동의 급선 과제로서 정신개벽, 민족개벽, 사회개벽을 제시한 것이다.
註 00; 원래(原來)- 사물이 전해져 내려오는 내력의 맨 처음. 또는 사물이 전해져 내려오는 내력의 맨 처음부터를 말한다. 유의어로는 본디(本-), 본래(本來), 본시(本是).
註 00; ‘陷之死地 出生들아 保國安民 어찌할꼬’ 는 권학가의
어렵도다 어렵도다 만나기도 어렵도다
방방곡곡 찾아들어 만나기만 만날진댄
흉중에 품은회포 다른할말 바이없고
수문수답 하온후에 당당정리 밝혀내어
일세상 저인물이 도탄중 아닐런가
함지사지 출생들아 보국안민 어찌할꼬. 에서 인용한 말로, 생사의 기로에 선(목숨이 위태로운 처지에 빠진) 백성들의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어떻게 하여야, 이 나라가 장차 망하게 될 것을 면(免; 벗어날 수)할 수 있을까를 애타게 걱정한 글이다.
註 00; ‘我國運數 먼저 한다.’ 는 안심가의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어찌 알까보냐
초야에 묻힌인생 이리될줄 알았던가
개벽시 국초일을 만지장서 나리시고
십이제국 다버리고 아국운수 먼저하네
그럭저럭 창황실색 정신수습 되었더라.’ 에서 인용한 말로, 한울님께서 여러 나라(십이제국)를 다 버리고 우리나라의 운수를 먼저 바로 잡아주신다는 믿음을 말한 글이다. 그러므로 그런 믿음을 갖고, 우리가 힘을 합쳐 개벽운동을 해야 할 것으로 가장 시급한 과제로서 정신개벽, 민족개벽, 사회개벽을 해야 한다고 했다.
註 00; 精神開闢, 民族開闢, 社會開闢의 삼대 개벽은 이돈화가 新人哲學(P.147)에서 水雲主義의 목적으로 설정하여 주장한 것으로, 그 체계도(體系圖)는 다음과 같다.
人乃天의 宇宙觀.
原理上人乃天 人乃天의 人生觀.
人乃天의 世界觀.
宗旨人乃天
사람性自然의歷史.
應用上人乃天
思想 사람性自然의新倫理新制度.
人間格中心의精神解放及建設.
綱領 性身雙全
人間格中心의制度解放及建設.
水雲主義
精神開闢, 民族開闢.
目的 地上天國
社會開闢, 地上天國.
人間中心의信念.
信念
後天開闢의信念.
種子사람으로의力量.
誠米로의力量.
力量
組織體로의力量.
運用으로의力量.
正文; 三曰保國安民說이니 崔水雲은 原來 布德天下 廣濟蒼生의 大思想을 품은 世界的 大 宗敎家이면서도 한편으로는 熱熱한 愛國主義者이다. 그래서 그는 「陷之死地 出生들아 保國安民 어찌할꼬」하여 이 나라가 將次 亡할 것을 애타게 걱정하고 이 民族 이 民衆의 將來할 苦難을 눈물나게 근심하였었다. 그리하여 그 方法으로는 各自爲心하지 말고 同歸一體하라는 것을 至再至三 强調하고 나아가 我國運數 먼저 한다 하면서 開闢運動의 急先課題로서 精神開闢, 民族開闢, 社會開闢을 提示한 것.
原文; 四曰天職天祿說.이니 水雲先生은 經濟問題에對하여 具體的으로 明示한것이 없으나 그러나 「한울님이 사람을 내고는 받듯이 職業을 주었다.」는 말씀와(과의 誤字)「한울님이 사람낼때 祿없이는 아니낸다」는 天職天祿說에 依據해 본다면 水雲先生의 經濟的平等觀을 如實히發見할수 있다. 왜그러냐하면 天理로볼때에는 日月星辰山河海陸은 다같은 公有物이라 人類全體의 生活을 營爲할수 있는것이요, 人間自體에는 自己生活을 自作自給할수있는 耳目口鼻 四肢 百體의 機關이 具全하고 그에 따른 勞働能力이 自在하니만큼 이는 根本天理로서 人間各自에게 天職과 天祿을 고로이 준것이다. 그럼을 不拘하고 今日世相은 天職을 잘지키는 勞働者 農民은 天祿을 받지 못하여 飢餓에서 울고, 天職을 지키지 않는 무리가 도리어 남의天織까지를 獨占한 셈이니 이것은 天理天命에 違反한 社會的罪惡인지라 當然히 根本的改革이 있어야할것.
修 2; 四. 天職天祿說.
水雲先生은 經濟問題에 對하여 具體的으로 明示한 것은(이) 없으나 그러나 「한울님이 사람을 내고는 반듯이 職業을 주었다.」는 말씀과(말씀와/과의 誤字) 「한울님이 사람 낼 때 祿없이는 아니 낸다.」는 天職天祿說에 依據해 본다면 水雲先生의 經濟的 平等觀을 如實히 發見할 수 있다. 왜 그러냐 하면 天理로 볼 때에는 日月星辰 山河海陸은 다 같은 公有物이라 人類 全體의 生活을 營爲할 수 있는 것이요, 人間 自體에는 自己生活을 自作自給할 수 있는 耳目口鼻 四肢 百體의 機關이 具全하고 그에 따른 勞動(勞働)能力이 自在하니만큼 이는 根本天理로서 人間 各自에게 天職과 天祿을 고르게(고로이) 준 것이다. 그런데도(그럼을) 不拘하고 今日 世相은 天職을 잘 지키는 勞動者(勞働者) 農民은 天祿을 받지 못하여 飢餓에서 울고, 天職을 지키지 않는 무리가 도리어 남의 天織까지를 獨占한 셈이니 이것은 天理天命에 違反한 社會的 罪惡인지라 當然히 根本的 改革이 있어야 할 것.
修 1; 四. 天職天祿說. 水雲先生은 경제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은(이) 없으나 그러나 「한울님이 사람을 내고는 반듯이 職業을 주었다.」는 말씀과 「한울님이 사람 낼 때 祿 없이는 아니 낸다.」는 天職天祿說에 의거해 본다면 水雲선생의 경제적 평등관을 여실히 발견할 수 있다./ 임의로 행갈이를 함.
왜 그러냐 하면 天理로 볼 때에는 日月星辰 山河海陸은 다 같은 公有物이라 인류 전체의 생활을 營爲할 수 있는 것이요, 인간 자체에는 자기 생활을 自作自給할 수 있는 耳目口鼻 四肢 自體의 기관이 갖추어지고(具全하고) 그에 따른 노동 능력이 스스로에 있는(自在하니) 만큼 이는 根本天理로서 인간 각자에게 天職과 天祿을 고루(고로이) 준 것이다. 그런데도(그럼을) 불구하고 금일 세상은 천직을 잘 지키는 노동자, 농민 등 勤實한 사람들은 天祿을 充分히 받지 못하여(天祿을 받지 못하여) 기아선상에서 울고, 천직을 지키지 않는 部類(무리)가 도리어 남의 天祿(天織)까지를 독점한 셈이니 이것은 天理天命에 위반한 사회적 죄악인지라 당연히 근본적 개혁이 있어야 할 것이다.
解說; 네 번째로 말할 것은, 天職天祿說이다. 수운선생은 경제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은 없으나 그러나 「한울님이 사람을 내고는 반듯이 직업을 주었다.」는 말씀과 「한울님이 사람 낼 때 록(祿) 없이는 아니 낸다.」는 천직천록설에 의거해 본다면 수운선생의 경제적 평등관을 여실히 발견할 수 있다./ 임의로 행갈이를 함.
왜 그러냐 하면 天理로 볼 때에는, 해와 달 그리고 별(日月星辰), 산과 강, 바다와 육지(山河海陸)은 다 같은 모든 사람의 소유물(公有物)이라 인류 전체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요, 인간 자체에는 자기 생활을 자급자족(自作自給)할 수 있는 귀, 눈, 입, 코(耳目口鼻)와 손발(四肢)은 자체의 기관이 갖추어지고(具全하고) 그에 따른 노동 능력이 스스로에 있는(自在하니) 만큼 이는 천리의 근본원리(根本天理)로서 인간 각자에게 천직(天職)과 천록(天祿)을 고루 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세상은 천직을 잘 지키는 노동자, 농민 등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들은 천록을 충분히 받지 못하여(天祿을 받지 못하여) 기아선상에서 울고, 천직을 지키지 않는 무리(部類)가 도리어 남의 천직까지를 독점한 셈이니 이것은 천리천명에 위반한 사회적 죄악이므로 마땅히 근본적인 개혁이 있어야 할 것이다.
註 00; ‘한울님이 사람을 내고는 받듯이 職業을 주었다.’는 것과 ‘한울님이 사람낼때 祿없이는 아니낸다.’ 는 말은 교훈가의
천생만민 하였으니 필수지직 할것이오
명내재천 하였으니 죽을염려 왜있으며
한울님이 사람낼때 녹없이는 아니내네
우리라 무슨팔자 그다지 기험할꼬
부하고 귀한사람 이전시절 빈천이오
빈하고 천한사람 오는시절 부귀로세. 에서 인용한 글로, 한울님께서 사람을 태어나게 할 때에는 반드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주고 먹고 살 수 있는 의식주를 주지 않고는 사람을 태어나게 하지 않는다는 천리에 따라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목숨은 한울이 내신 까닭에 굶어 죽을 일이 없고,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의식주를 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부자는 지난 세월에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었고, 지금의 빈천한 사람은 다가오는 세상(미래세상)에서 부귀를 누릴 수 있다는 삶의 희망을 주었다.
註 00; 록(祿)- 복록(福祿). 녹봉(祿俸)과 같은 의미를 가진 줄임말로, 예전에, 나라에서 벼슬아치들에게 벼슬살이에 대한 보수(給與)로 주던 곡식이나 베, 돈 따위를 통틀어 이르던 말. 일 년 단위나 계절 단위로 주어졌다. 상으로 주는 물건으로는 전읍(田邑). 작위(爵位). 곡식도 있었다.
註 00; 자작자급(自作自給)- 사람의 의식주는 각자가 만들어 공급한다는 말로, 자급자족(自給自足)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正文; 四曰天職天祿說.이다. 水雲先生은 經濟問題에 對하여 具體的으로 明示한 것은 없으나 그러나 「한울님이 사람을 내고는 반듯이 職業을 주었다.」는 말씀과 「한울님이 사람 낼 때 祿없이는 아니 낸다.」는 天職天祿說에 依據해 본다면 水雲先生의 經濟的 平等觀을 如實히 發見할 수 있다. 왜 그러냐 하면 天理로 볼 때에는 日月星辰 山河海陸은 다 같은 公有物이라 人類 全體의 生活을 營爲할 수 있는 것이요, 人間 自體에는 自己生活을 自作自給할 수 있는 耳目口鼻 四肢 百體의 機關이 具全하고 그에 따른 勞動(원본에서는 勞働으로 되어 있다. 이후 勞動으로 修正함)能力이 自在하니만큼 이는 根本天理로서 人間 各自에게 天職과 天祿을 고르게 준 것이다. 그런데도 不拘하고 今日 世相은 天職을 잘 지키는 勞動者(勞働者) 農民은 天祿을 받지 못하여 飢餓에서 울고, 天職을 지키지 않는 무리가 도리어 남의 天織까지를 獨占한 셈이니 이것은 天理天命에 違反한 社會的 罪惡인지라 當然히 根本的 改革이 있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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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五曰萬事知는 食一椀이란說이니 이는 海月先生의 말씀으로 위에말한 水雲先生의 天職天祿說을 좀더 露骨的으로 表示한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말씀은 人間萬事의 根本的解決은 무엇보다도 大衆에게 밥한그릇을 平均히 分配함에 있다는것이다. 아닌것이 아니라 人間社會에 있어서 個人個人間의 紛爭이나 階級階級間의 鬪爭이나 民族民族間의 軋轢이나 國家國家間의 戰爭이란것은 그根本原因을 캐고 캐어본다면 기실 밥한그릇 싸움에 不過한것이다. 말하자면 남의 밥그릇까지 빼앗아서 제所有를 삼겠다는 强者의 貪慾과 제목에 오는 밥그릇만은 빼앗기우지 않겠다는 弱者의 不平그것이 人間社會 모든紛亂의 最大原因이다. 그러므로 人間萬事의 解決策은 空然히 크고 어려운問題만 생각할것이 아니라. 人人各自의 食一椀問題에서 출발하여야 된다는 것.
註 00; 一에서 五까지는 曰 字가 삽입되어 있고, 六 이후는 曰 대신 「 、」 이 사용되었다.
修 2; 五. 萬事知는 食一椀說.
이는 海月先生의 말씀으로 위에 말한 水雲先生의 天職天祿說을 좀 더 露骨的으로 表示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人間萬事의 根本的인 解決은 무엇보다도 大衆에게 밥 한 그릇을 平均히 分配함에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人間社會에 있어서 個人個人間의 紛爭이나 階級階級間의 鬪爭이나 民族民族間의 軋轢이나 國家國家間의 戰爭이란 것은 그 根本原因을 캐고 캐어본다면 기실 밥 한 그릇 싸움에 不過한 것이다. 말하자면 남의 밥그릇까지 빼앗아서 제 所有를 삼겠다는 强者의 貪慾과 제 목에 오는 밥그릇만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弱子의 不平 그것이 人間社會 모든 紛亂의 最大原因이다. 그러므로 人間萬事의 解決策은 空然히 크고 어려운 問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人人各自의 食一椀 問題에서 출발하여야 된다는 것.
修 1; 五. 萬事知는 食一椀說. 이는 海月先生의 말씀으로 위에 말한 水雲선생의 天職天祿說을 좀 더 노골적으로 표시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人間만사의 근본적인 해결은 무엇보다도 대중에게 밥 한 그릇을 골고루(平均히) 분배함에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를 삭제)이 인간사회에 있어서 개인 개인 간의 분쟁이나 계급 계급간의 투쟁이나 민족 민족간의 알륵(알력)이나 국가 국가간의 전쟁이란 것은 그 근본 원인을 캐고 캐어보면 기실 밥 한 그릇 싸움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남의 밥그릇까지 빼앗아서 제 소유를 삼겠다는 강자의 탐욕과 제몫으로(에) 오는 밥그릇만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약자의 불평 그것이 인간사회의 모든 분란의 최대 원인이 되어 왔다. 그러므로 인간 만사의 해결책은 공연히 어려운 문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람 사람 각자의 食一椀 문제에서 출발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解說; 다섯 번째는 萬事知는 食一椀이란 해월선생의 말씀이다. 위에서 말한 수운선생의 天職天祿說을 좀 더 숨김이 없이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의 참된 의미는, 인간만사의 근본적인 해결은 무엇보다도 대중에게 밥 한 그릇을 골고루(平均히) 나누어 주는데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밥한 그릇이란 말은 의식주를 대표하는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인간사회에 있어서 개인 개인 간의 분쟁이나 계급 계급간의 투쟁이나 민족민족 간의 알력이나 국가국가 간의 전쟁이란 것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캐고 캐어보면, 실제에 있어서 밥 한 그릇을 놓고 싸우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남의 밥그릇까지 빼앗아서 제 소유를 삼겠다는 강자의 탐욕과 제몫으로 오는 밥그릇만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약자가 느끼는 불평등한 차별, 그것이 인간사회의 모든 분란의 최대 원인이 되어 왔다. 그러므로 인간 만사의 해결책은 공연히 어려운 문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람사람 각자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에서 출발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註 00; 알력(軋轢)- 알력이란 본디 수레바퀴가 삐걱거린다는 뜻으로, 의견이나 입장이 서로 맞지 않아 충돌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쓴 말이다.
正文; 五曰萬事知는 食一椀이란說이니 이는 海月先生의 말씀으로 위에 말한 水雲先生의 天職天祿說을 좀 더 露骨的으로 表示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人間萬事의 根本的인 解決은 무엇보다도 大衆에게 밥 한 그릇을 平均히 分配함에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人間社會에 있어서 個人個人間의 紛爭이나 階級階級間의 鬪爭이나 民族民族間의 軋轢이나 國家國家間의 戰爭이란 것은 그 根本原因을 캐고 캐어본다면 기실 밥 한 그릇 싸움에 不過한 것이다. 말하자면 남의 밥그릇까지 빼앗아서 제 所有를 삼겠다는 强者의 貪慾과 제 목에 오는 밥그릇만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弱子의 不平 그것이 人間社會 모든 紛亂의 最大原因이다. 그러므로 人間萬事의 解決策은 空然히 크고 어려운 問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人人各自의 食一椀 問題에서 출발하여야 된다는 것.
原文; 六. 奴隸解放이니 水雲先生은 最初階級打破의 示範으로 家庭傳來의 奴隸를 解放하여 一女는 子婦를 삼고, 一女는 養女를 삼아 出嫁시켰다. 百年前 그때에 奴隸를 解放하였다는것도 놀라운 일이거니와 子婦와 養女를 삼았다는것은 實로澈底的이라 할수 있는것.
修 2; 六. 奴隸解放.
水雲先生은 最初 階級打破의 示範으로 家庭傳來의 奴隸를 解放하여 一女는 子婦를 삼고, 一女는 養女로(를) 삼아 出嫁시켰다. 百年 前 그때에 奴隸를 解放하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거니와 子婦와 養女를 삼았다는 것은 實로 澈底的이라 할 수 있는 것.
修 1; 六. 奴隸解放. 水雲선생은 최초 계급 타파의 시범으로 家門(家庭)傳來의 노예를 해방하여 그 중에서 하나(一女)는 子婦를 삼고, 또 하나(一女)는 養女로 삼아 출가시키었(켰)다. 그 때에 노예를 해방하였다는 것은(도) 놀라운 일이거니와 자부와 양녀를 삼았다는 것은 실로 철저한 그 시범인 것이다.(澈底的이라 할 수 있는 것.)
解說; 여섯 번째는 노예해방이다. 수운선생은 최초 계급 타파의 시범으로 家門(家庭) 대대로 내려온 노예를 해방하여 그 중에서 한 여자아이는 며느리로 삼고, 또 한 여자아이는 양녀로 삼아 출가시켰다. 그 시대에 노예를 해방하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며느리와 양녀를 삼았다는 것은, 실로 철저하게 본보기를 보인 솔선수범(率先垂範/남보다 앞장서서 행동하여 몸소 다른 사람의 본보기가 됨)인 것이다.
註 00; 철저적(徹底的)- 깊은 구석구석까지 빈틈이 없는, 또는 속속들이 꿰뚫어 미치어 빈틈이나 부족함이 없이 밑바닥까지 철저(사리에 맞고 정확한)한 것.
正文; 六. 奴隸解放이니 水雲先生은 最初 階級打破의 示範으로 家庭傳來의 奴隸를 解放하여 一女는 子婦를 삼고, 一女는 養女로(를) 삼아 出嫁시켰다. 百年 前 그때에 奴隸를 解放하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거니와 子婦와 養女를 삼았다는 것은 實로 澈底的이라 할 수 있는 것.
原文; 七. 政治的實踐運動이니 水雲先生은 得道後겨우 四年만에 殉道하였기 때문에 政治的 實踐運動은 直接指導하지 못하였거니와 崔海月先生은 甲午革命運動을 直接指導하였고 孫義庵先生은 甲午運動時에도 第一線에서 싸우고 甲辰改革運動이나 己未獨立運動에는 最高首領으로서 直接指導를 하였었다. 三大運動의 意義는 다음 章에서 具體的으로 解說하겠거니와 두분 先生이 이三大運動의 直接指導者이니만큼 天道敎의 政治的理念은 理論보다는 行動에서 스스로 明示된것이 事實인 것.
修 2; 七. 政治的 實踐運動.
水雲先生은 得道 後 겨우 四年 만에 殉道하였기 때문에 政治的 實踐運動은 直接 指導하지 못하였거니와 崔海月先生은 甲午革命運動을 直接 指導하였고 孫義菴先生은 甲午運動時에도 第一線에서 싸우고 甲辰改革運動이나 己未獨立運動에는 最高首領으로서 直接指導를 하였었다. 三大運動의 意義를 다음 章에서 具體的으로 解說하겠거니와 두분 先生이 이 三大運動의 直接 指導者이니만큼 天道敎의 政治的 理念은 理論보다는 行動에서 스스로 明示된 것이 事實인 것.
修 1; 七. 政治的 實踐運動. 水雲선생은 得道 후 겨우 四년만에 순도하였기 때문에 정치적 실천운동은 직접 지도하지 못하였거니와 崔海月 선생은 甲午革命운동을 직접 지도하였고 孫義菴 선생은 甲午運動時에는(도) 제일선에서 싸우고 甲辰개혁운동이나 己未독립운동에는 최고 수령으로써 직접 지도를 하였었다./임의 別行.
三大운동의 意義는 다음 章에서 구체적으로 해설하겠거니와 두 분 선생이 이 三大운동의직접 지도자이니만큼 天道敎의 정치적 이념은 이론보다는 행동에서 스스로 명시된 것이 사실인 것이다.
解說; 일곱 번째는 정치적 실천운동이다. 수운선생은 득도(得道) 후 겨우 4년 만에 순도(殉道)하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실천운동은 직접 지도하지 못하였다. 해월선생은 갑오혁명운동을 직접 지도하였으며 의암선생은 갑오혁명운동 당시에 제일선에서 싸웠고, 갑진개혁운동과 기미독립운동에서는 최고 수령으로써 직접 지도를 하였다. 이 3대 운동의 의의는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해설하겠다. 해월과 의암선생이 3대 운동의 직접 지도자이니만큼 천도교의 정치적 이념은, 이론보다는 행동에서 스스로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 사실이다.
正文; 七. 政治的實踐運動이니 水雲先生은 得道 後 겨우 四 年만에 殉道하였기 때문에 政治的 實踐運動은 直接 指導하지 못하였거니와 崔 海月先生은 甲午革命運動을 直接 指導하였고 孫 義菴先生은 甲午運動 時에도 第一線에서 싸우고 甲辰改革運動이나 己未獨立運動에는 最高 首領으로서 直接 指導를 하였었다. 三大運動의 意義를 다음 章에서 具體的으로 解說하겠거니와 두 분 先生이 이 三大運動의 直接 指導者이니만큼 天道敎의 政治的 理念은 理論보다는 行動에서 스스로 明示된 것이 事實인 것.
原文; 八. 殉道精神이니 過去의 모든 先覺者 革命家들이 받은 苦難과 迫害와 犧牲을 崔水雲, 崔海月, 孫義庵 세분先生도 꼭같이 받았었다. 水雲先生은 異端의 指目으로 當時政府에 잡히어 「左道亂正」이란 罪名으로 大邱將臺에서 斬刑을 當하였고, 海月先生은 秘密結社인 東學黨을 指導하기 凡三十五年間에 刀山劍水의 갖은 苦難과 迫害를 받다가 마침내 政府에 잡히어 또한 「左道亂正」의 罪名으로 京城監獄에서 絞刑을 當하였으며, 義庵先生은 그初年에 海月先生을 좇아서 구들돌이 검을새없이, 돗자리가 더울새없이 各地로 轉輾하면서 온갓 苦難과 迫害를 받은것은 莫論하고라도 東學黨을 單獨指導하게 된後에도 到底히 國內에서는 藏身할 道理가 없기 때문에 不得已 姓名까지 變하고 外國으로 亡命하여 或은 上海로, 或은 東京, 大阪等地로 逼留하면서 別別苦難을 다 겪었으며 마침내는 三一運動의 領首로서 刑期中에 還元하게 되었었다. 이와같이 세분先生이 이道法 이主義를 實現하기 爲하여 旣成社會의 모든勢力의 迫害와 싸우면서 百折不屈의 初志를 終始一貫해 나아가다가 畢竟은 生命을 버리고 主義를 살린 그精神 그氣魄은 眞實로 天道敎의 革命思想을 雄辯으로 立證한 것.
修 2; 八. 殉道精神.
過去의 모든 先覺者 革命家들이 받은 苦難과 迫害와 犧牲을 崔水雲, 崔海月, 孫義菴 세 분 先生도 꼭 같이 받으셨다. 水雲先生은 異端의 指目으로 當時 政府에 잡히어 「左道亂正」이란 罪名으로 大邱 將台(將臺)에서 斬刑을 當하였고, 海月先生은 秘密結社인 東學黨을 指導하기 凡三十五年間에 刀山劍水의 갖은 苦難과 迫害를 받다가 마침내 政府에 잡히어 또한 「左道亂正」의 罪名으로 京城監獄에서 絞刑을 當하였으며, 義菴先生은 그 初年에 海月先生을 좇아서 구들돌이 검을 새 없이, 돗자리가 더울 새 없이 各地로 轉轉하면서 온갖 苦難과 迫害를 받은 것은 莫論하고라도 東學黨을 單獨 指導하게 된 後에도 到底히 國內에서는 藏身할 道理가 없기 때문에 不得已 姓名까지 變하고 外國으로 亡命하여 或은 上海로, 혹은 東京, 大阪 等地로 逼留하면서 別別苦難을 다 겪었으며 마침내는 三一運動의 領首로서 刑期中에 還元하게 되었었다. 이와 같이 세분 先生이 이 道法 이 主義를 實現하기 爲하여 旣成社會의 모든 勢力의 迫害와 싸우면서 百折不屈의 初志를 終始一貫해 나아가다가 畢竟은 生命을 버리고 主義를 살린 그 精神 그 氣魄은 眞實로 天道敎의 革命思想을 雄辯으로 立證한 것.
修 1; 八. 殉道精神.
과거의 모든 선각자 혁명가들이 받은 고난과 박해와 희생을 崔水雲, 崔海月, 孫義菴 세분 선생도 꼭 같이 받았었다. 水雲선생은 異端의 指目으로 당시 정부에 잡히어 「左道亂正」이란 죄목(罪名)으로 대구 장대에서 참형을 당하였고, 海月선생은 비밀결사인 동학당을 지도하기 무릇(凡) 三십五년간에 刀山劍水의 갖은 고난과 박해를 받다가 마침내 정부에 잡히어 또한 「左道亂正」에 죄명으로 京城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하였으며, 義菴선생은 그 초년에 海月先生을 쫓아서 구들 돌이 검을새 없이, 돋자리가 더울새 없이 각지로 전전하면서 온갖 고난과 박해를 받은 것은 막론하고라도 동학당을 단독 지휘하게 된 후에도 도저히 國內에서는 은신할 길이 없기 때문에 부득이 변성명하고(姓名까지 變하고) 외국으로 망명하여 혹은 상해로, 혹은 일본 동경, 대판 등지로 전전(逼留/핍류)하면서 별별 고난을 다 겪었으며 마침내는 三·一운동의 영수로서 刑期中에 還元하게 되었었다./ 임의로 별행(別行)
이와 같이 세 분 선생이 眞理를 위해 그리고 혼탁하고 부패한(이道法 이主義를 實現하기 爲하여) 기성사회의 모든 세력의 박해와 싸우면서 백절불굴의 초지를 종시일관해 나아가다가 필경은 생명을 버리고 眞理를 살린 그 정신 그 기백은 진실로 천도교의 혁명사상을 웅변으로 입증한 것이다.
解說; 여덟 번째는 순도정신이다. 과거의 모든 선각자와 혁명가들이 받은 고난과 박해와 희생을 수운, 해월, 의암 세 분 선생도 똑 같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수운선생은 이조말의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정통사회로부터 이단으로 몰려, 당시의 정부에 의해 잡히어 「左道亂正」이란 죄목으로 대구 장대에서 참형을 당하였고, 해월선생은 비밀결사인 동학당을 지도하기 무릇 35년간에 도산검수(刀山劍水)의 갖은 고난과 박해를 받다가 마침내 정부에 잡히어 수운선생처럼「左道亂正」에 죄명으로 京城(漢陽의 일제시대의 표현/서울)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하였으며, 의암선생은 그 초년(初年)에 해월선생을 따라 구들돌이 검을 새 없이, 돗자리가 더울 새 없이(잠시도 쉴 새가 없이) 각지로 떠돌아다니면서 온갖 고난과 박해를 받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동학당을 단독 지휘하게 된 후에도 도저히 국내에서는 몸을 숨길 곳이 없기 때문에 부득이 변성명(變姓名; 李祥憲으로 이름을 바꾸고)하고 외국으로 망명하여 혹은 상해로, 혹은 일본 동경, 대판 등지로 전전하면서 별의별 고난을 다 겪었다. 마침내는 三·一운동의 영수(領袖)로서 형기 중에 환원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세 분 선생님이 진리를 위해 그리고 혼탁하고 부패한 기성사회의 모든 세력의 박해와 싸우면서 백절불굴의 맨 처음 정한 뜻(雄志)을 한결같이 변치 않고 나아가다가 마침내는 생명을 버리고 진리를 살린 그 정신, 그 기백은 참으로 천도교의 혁명사상을 우렁찬 목소리로 유창(流暢; 물이 흐르듯이, 거침없이))하고 당당하게 말했다는 것을 증명해 준 것이다.
註 00; 殉道精神- 정의나 도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을 의미하는 말로 종교적인 의미로는 종교적인 교의나 주의 사상 또는 참된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순교를 각오하거나 결심하여 독실하고 열렬한 종교적인 활동과 신앙을 하려는 마음과 생각을 순도정신 또는 순교정신이라 한다.
註 00; 先覺者와 革命家- 선각자란 남보다 앞서 만물의 이치, 즉 천리, 천명, 천도의 근원적인 이치를 깨달은 사람 또는 시대정신과 미래를 예견하는 사람을 말하며, 혁명가란 기존의 사회 체제를 거부하고 법이나 사회 제도, 경제 조직 따위의 기초를 급격하게 바꾸기 위하여 활동하는 사람. 또는 어떤 분야에서 기존의 모든 분야의 제도나 관습과 형식, 사상 따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새로운 인간사회와 가치를 정립하려는 사람.
註 00; 異端의 指目- 이단이란, 정통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교의나 교파를 적대하여 이르는 말로,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주로 정통적인 종교적 입장에서 이단을 심판하기 위하여 사용하여 왔다. 중세 시대 가톨릭교회는 종교 재판을 통하여 이단으로 몰린 사람들을 불에 태워 죽였다. 유교에서는 노(老), 장(莊), 양(楊), 묵(墨) 등 유교 이외의 제자백가를 적대하여 이르던 말이며. 불교에서는 외도(外道)나 이안심(異安心)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기존의 질서나 학설의 정통이나 권위에 도전하는 주장이나 생각. 또는 그런 주장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집단. 또는 너무나 파격적인 그의 학설은 현재 학계에서 이단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이단을 배척하는 것을 벽이단(闢異端)이라 한다. 벽이단은 정통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교리나 교파 따위를 물리침. 또는 자기가 지지하는 학설이나 이론에 어긋나는 다른 학설이나 이론을 물리치는 것을 말한다.
지목이란, 사람이나 단체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또는 사람이나 단체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여럿 중에서 일정한 대상으로 가리켜 정하는 것을 말한다. 異端의 指目이란 ‘이단으로 몰려’의 뜻이다.
註 00; 左道亂正과 大邱將臺- 좌도난정이란 左道亂正律의 준 말로, 조선의 정통 학문이며 정치의 기본사상(통치의 핵심적인 사상인 성리학)인 유교에 반하는 西敎 또는 西道등을 좌도라 한다. 이들 사상이 나라의 기틀을 흔든다고 하여 이들을 척결(剔抉/부정적이거나 나쁜 것들을 찾아 뿌리를 뽑아 없앰)하여 정학(正學)으로 바로 잡기 위하여 만든 법률을 말한다.
수운대신사는 왕명을 받은 선전관(宣傳官) 정운구(鄭雲龜)에 의하여 제자 20 여명과 함께 경주에서 1963년 12월 10일 새벽 한시 경에 체포되었다.
수운은 1964년 3월 10일(양 4월 15하오 2시경)에 대구의 장대인 ‘관덕당 앞뜰에서 참형되었다. 41세의 나이로 대명률 제사편(大明律 祭祀編) 금지사무사술조(禁止師巫術條, 一應 左道亂正之術)로 처형되었다. 즉 동학은 서양의 요사한 가르침을 그대로 옮겨 이름만 바꾼 사술(邪術)이며 서학과 다를 것이 없다는 죄목을 뒤집어씌워 참형시킨 것이다. 참형광경은 참혹하였다. 길다란 판자에 수운을 엎드려놓고 꽁꽁 묶은 다음 목 밑에 나무토막을 받쳐놓고 칼로 내리쳤다. 조선조 후기의 역적참경도(逆賊斬頃圖)를 보면 사형수를 형틀인 판자에 엎어 묶고 나서 상투머리를 풀어 그 끝을 끝으로 묶어 앞에 세워둔 장대에 달린 고리에 줄을 걸어 2명의 관원이 잡고 있다. 목이 떨어지면 잡아당겨 장대에 매달리게 한 것이다. 수운도 이런 식으로 처형하였다.’ (표영삼 동학 1. P. 322)
註 00; 관덕당(觀德堂,)- 대구 남문 앞 개울가에 있는 관덕당은 예전에는 별무사(別武士)및 선무군관(選武軍官)의 통합 시험 장소이다. 정묘년(1774)에 관찰사 남태량(南泰良)이 절목(節目)을 다시 다듬어 시행하였고, 기사년(1749)에 관찰사 민백상(閔百祥)이 도시청(都試廳)이 없어서는 안 되겠다고 여겨 성의 남쪽에 당을 짓고, 관덕당이라 크게 써 붙이고, 벽에 그 관덕당 건립의 대략을 기록하였다. 일제시대에 상제교(上帝敎=천도교의 한派) 절이 되었다가 광복 후 1960년대 말에 헐리었다.
대구의 옛 이름은 달구벌(達句伐)인데 조선왕조시대 1601(宣祖 34)년 경상감영(監營=도청)이 대구에 정착되고 대구(大丘) 도호부(都護府)가 됨으로써 영남지방의 행정 군사 경제 교통의 중심지가 되고 천주교를 사학(邪學=國敎 아닌 이단)으로 단죄하던 시대에 있어서 사학죄인은 국사범(國事犯)이므로 지방에 있어서 최종판결은 지방장관인 감사(監司=관찰사)가 결정했으므로 각 고을에서 체포된 신자들 지도급은 대구 감영으로 넘겨져서 처단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군문효수(軍門梟首)형이므로 장대(將台)가 있는 군사조련장(練兵場)에서 집행되었다. 장대벌(將台伐)이라는 말은 연병장이란 뜻이다. 대구성 남문 밖 아미산(峨嵋山) 언덕 위가 참수(斬首)하는 사형장으로 사용되는 것은 남문에서 서남쪽으로 200보 지점(현재 대구시 중구 계산동 245번지) 즉 동아쇼핑센터 서북 모퉁이 부근에 관덕당(觀德堂)이라 쓰인 현판이 걸린, 군관(軍官)과 별무사(別武士)를 선발하는 도시소(都試所)가 있고 그 앞 일대가 아미산 언덕바지 땅을 포함하여 넓게 자리 잡은 연병장이었기 때문이다.
관덕방(觀德坊)과 관덕정(觀德亭)- 옛 대구부(大丘府) 서상면(西上面)의 14방리(坊里) 중의 하나인 관덕방(坊)은 관덕정리(觀德亭里)라고도 했었다. 대구읍성(邑城)의 남문(南門) 밖에 관덕당(觀德堂)이 있었는데 관덕당은 군관(軍官, 將校)과 별무사(別武士)를 선발하는 도시소(都試所, 시험장)였고 관덕당 앞(남쪽)은 넓은 연병장이었다. 따라서 군문효수(軍門梟首)형의 국사범(정치범), 중죄인의 처형장은 연병장의 한 부분을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아미산(峨嵋山)이라 불리던 관덕당 남쪽 언덕받이 땅은 영남의 수도(首都) 경상감영(監營)의 제일 큰 형장으로 이곳에서는 다른 정치범뿐 아니라 “사학(邪學) 죄인의 우두머리”라는 죄목으로 참수치명(斬首致命)하신 순교자들이 1816년부터 1867년에 걸쳐 여러차례 이 형장에서 선혈(鮮血)로써 신앙을 증거하였고 그 순교자들 중에서 한 분이 성인으로 시성(諡聖)되신 유적지이다. 관덕방(坊)은 1914년 일제가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일부는 명치정(明治町, 桂山洞)으로, 일부는 덕산정(德山町)으로 갈라져 “관덕당 말랭이”땅은 1960년대까지 덕산동이었다가 다시 대구시의 동(洞)구역 조정으로 현재는 남산2동에 편입되어 있다. / 영남교회사연구소월보 제2호 (1991.6)/ 故 윤광선 비오 선생님의 글 중에서 발췌.
/ 天道敎 政治理念의 比較分析 硏究(13-1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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