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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지난 10년을 돌아보며(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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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댓글 0건 조회 69회 작성일 13-01-2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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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을 돌아보며(7-1)
/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를 말한다.
천도교 홈에 게재된, 본인의 모든 글과 동학, 천도교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은, 모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카페(http://cafe.daum.net/oamdonghak)의 김 용천 자료실과 교리, 교사 연구 논문과 학술논문 자료실에 게재되어 있사오니, 자주 방문하시어 많이 읽어주시고, 교단발전에 널리 활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알림 1; 2012년 1월 3일부로 2G 서비스의 중단으로 인하여, 본인의 손전화 번호가 010 - 6251 - 3240 으로 변경되었음을 알립니다.
알림 2; 연구소 방문은, 필자의 카페주소인 여기를(http://cafe.daum.net/oamdonghak/오암 동학사상 연구소)를 클릭하여 ‘김 용천 자료실’을 찾으시면, 회원이 아니시더라도, 방문객은 누구나 자료들을 검색하여 읽으실 수 있습니다.
유의사항;
1. 아래의 글에서 인용하고 있는 모든 글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필자가 쓴 글로(2004년, 본 연구소를 개설하기 이전에 천도교 관련 게시판과 일부 포털 사이트에 공개 게재된 글도 포함), 게재된 글은 각각 적게는 수천 명(數千 名)명에서 많게는 만 명(一萬 名)에 육박(肉薄)하는 방문자들이 읽은 내용들입니다. 이 글들 중에서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각종 통계나 일부 자료들의 연구내용의 변화와 연구실적의 변동에 따른 수정보완이 요구되는 글에 한해서는 최소한의 수정보완을 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문이 있을 때에는 원문을 꼭 찾으셔서 확인하거나 필자에게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 여기에 게재된 글들은 그 시기에 교단 내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을 때에 필자의 생각을 기술한 것도 있으며, 본 연구소가 해야 할 일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여 강도 높게 비판한 글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능한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지 않으려 했으나 필자가 1960년대 전후부터 70년대 초까지 교단에서 많은 고초(苦楚)를 겪으면서 이루려 했던, 훌륭한 민족의 교단이 되기를 소망했던 제 꿈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리는 것이라 생각이 들어 격한 분노를 표출한 것도 있습니다. 15여년에 젊은 시절을 바쳐 봉사했던 교단이므로 외람(猥濫)되지만 이 정도의 말은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글에서도 기술했듯이, 교단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붕괴(崩壞)되었고 해체(解體)되어가고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반성하는 사람도 없으니, 교단의 미래가 매우 걱정이 됩니다. 여기에 인용되고 있는 글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에 게재된 글이지만, 지금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글들이 있어 거의 전문을 게재하여, 지금에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처지를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나아갈 바가 어디이며, 어떻게 준비해야할 것인가를 우리 모두 다 같이 신중(愼重)하게 생각해보려 했습니다.
포덕 154(2013)년 1월 25일.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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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암 동학사상 연구소(吾菴 東學思想 硏究所)의 지난 10년을 되돌아보기 전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를 왜 개소(開所)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당시(當時) 천도교가 당면(當面)하고 있었던 문제들과 교단내외의 실정(實情)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의 설립목적과 사업내용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단편적(斷片的)이고 표피적(表皮的)인 시각(視覺)으로는 본 연구소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교단은, 필자가 70년대 초에 받은 월 급여는 만 천원이었고(당시 교육공무원과 대기업의 월급여 평균은 7만원 전후/본봉기준), 필자와 같은 처지에 있었던 10명 내외의 중앙 교역자들이 교인수 100여 만 명을 교도교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교역자는 200배가 넘는 급여를 받는 교역자가 3-4배가 있으면서, 교인수는 말로 헤아리기조차 부끄럽게 되었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 많은 급여를 받는 분들의 처신(處身)은 교역자답지 않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교단의 각종 업무처리에 있어서도 종교 교단답지 못한 매우 미숙한 태도와 결정을 함으로써 중앙과 지방이 화합을 이루지 못하는 교단이 되어가고 있고, 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교단을 신앙자들이 신뢰하지 않고 있으며, 중앙 교역자들 중의 상당수를 생계형 교역자로 교권(敎權)에 눈이 먼 패거리의 집단(集團)으로 본다는 것이다. 또 교단의 여러 부서에서 논의(論議)되고 합의(合議)되지 않은 교화(敎化)를 함으로써 '교화(敎化)의 일관성(一貫性) 또는 획일성(劃一性)'이 없어 교인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註 00; 필자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삼부 경전인 "천도교 경전"의 편집(編輯內容; 體裁, 構成, 現代語化, 敎正, 天道敎 經典 表紙의 書體 確定/書藝家 梁在漢)의 담당자로서 경전의 기본 틀(1958-1961)을 만들었고, 1962년도 육군 부관학교 출신으로 제대 후(1965년 봄), 교단의 교역자로 보직을 받아 70년도 이전에, 현재 정부가 사용하고 있는 행정업무 시스템과 같은, 중앙 총부의 업무 시스템을 조정 완료하였고, 이에 따른 모든 행정업무상의 필요한 각종 양식을 개정하여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현재 총부 업무에 기초를 세웠다. 또 新人間 編輯部長과 主幹으로서 신인간의 게재내용의 한계와 허용 그리고 독립채산제의 전환(轉換)에 관한 계획과 부수확장과 배포계획의 새로운 방안을 수립하였고, 敎書 敎史 編纂委員과 機務委員, 無任所宗務委員으로서 교단 전반의 분야별 관련 업무에 관하여 여러 가지 기준을 확정하는데 필요한 대안 마련에 주력을 하였으나 70년도 초에 교단을 떠남으로 결실을 보지 못하여 아직까지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데 깊은 우려와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기무위원의 역할은, 천도교의 중앙과 지방의 각종 기구운영 제도에 따른 제 문제를 연구를 하고 대안을 제시하여 심의를 거쳐 확정하는 전 과정을 다룬다. 필자가 교령으로부터 개별 연구를 위임 받은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은, 의전 행사에 사용되는 도복(道服)과 궁을기(弓乙旗)의 제도 방법과 유래와 해설 등이었다. 무임소종무위원은 각 부서(三觀; 敎化, 敎務, 經理)에 속하지 않는 업무 내용 전부와 각 부서간의 협력사항의 조절 및 각 전위기구와 수도원, 연원회, 현기사 등등의 업무와 관련된 사항 전부를 연구하여 체계화를 하는 것들을 다루었다. 이것 이외에도 종의원과 감사원 그리고 유지재단과의 원만한 협력관계도 다루었다.
교단 내외에서 동학, 천도교 관련 세미나나 각종 발표회나 토론회에 참석해주시는 청중(聽衆)들 중에는, 중앙 및 지방의 교역자(敎役者)들은 물론 교단내의 지도급 교인들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동학과 천도교에 관련된 출판물을 시중(市中)의 도서출판사나 교단 내에서 간행되는 출판물이거나 관계없이 판매량이 수백 권을 넘지 않고 있어(저자나 내용에 따라 몇몇 저작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교단은 세상을 완전히 외면(外面)하고 있다는 실정(實情)을 말해주고 있다. 동학과 천도교에 관련되는 것 만이라면 다행이지만. 천도교관련 게시판에 게시되는 일부 게시물들 중에는, 동학과 천도교의 이해는 물론 다른 분야의 학문에 대한 이해도(理解度)가 많이 부족한 내용이 게재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종교와 관련된 광범위한 서적의 독서량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을 실증(實證)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물론 일반 교인들이 사회와 그 속에서 삶을 같이하는 타인들과의 대화는 일상적(日常的)인 이야기뿐이고 종교와 관련된 여러 분야의 깊이 있고 내용 있는 대화를 논리적(論理的)이고 이성적(理性的)으로 오래 할 수는 없는 처지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陷之死地 出生들인 세상사람)을 설득(說得)하고 이해시켜 난세(亂世) 또는 도탄(塗炭)에서 구해 내야 될 광제창생(廣濟蒼生)이란 우리의 종교적 목적이 무색(無色)해지고 있다. 만약 오랜 시간의 대화를 했다면, 타인의 이야기를 교의(敎義)를 바탕으로 한 주체적(主體的)인 반론(反論)없이 성의(誠意)있게 들어주었거나 타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인 천도교 이야기를 했을 것이라는 정황(情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학(東學)과 천도교(天道敎)의 교리, 교사와 조직과 운영에 대한 평가와 문제제기 등의 여러 가지 논의(論議)는, 인류 역사상에서 수없이 명멸(明滅)한 종교거나 생존한 기성종교(旣成宗敎) 중, 어느 한 특정종교(特定宗敎)의 성패(成敗)와 공과(功過)에 대한 일반론에 근거한 평가(平價)와 해석(解釋)이 아니란 점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논의(論議)하고자 하는 것은, 수운 대신사와, 해월신사에 의해 이끌어진 동학시대(東學時代)와 의암성사와 성사님 이후에 수많은 교단의 최고 지도자들이 모인 중앙의 지휘부(指揮部)와 여러 조직과 기구의 지도자들에 의해 이끌어진 천도교시대(天道敎時代)를 돌아보고, 공과를 평가하고 우리 나름으로 해석하고 설명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와 평가와 문제제기는, 우리나라 근, 현대사에 커다란 족적(足跡)을 남겨, 대한민국 헌법(憲法) 전문(前文)에 국가와 민족정신으로 기록된 동학과 천도교의 역사적 업적들과 현재 천도교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처지를 올바로 파악하고, 정확하게 분석하고 평가하여, 다가 올 새 시대를 이끌어 갈 새로운 종교(新宗敎)로서 인류에게 새로운 삶의 지표(指標)를 설정(設定)해 주고, 새 인간(新人間)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선구자(先驅者)의 역할(役割)을 다하자는 데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동학과 천도교를 평가하기 위해선, 먼저 전제(前提)되어야 할, 많은 부분들을 먼저 해결한 후에 그 결과로 얻어진 가치와 기준 위에서 논의해야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에 관련된 교단과 학계의 연구자들에 의해서 연구된 연구논문과 지금까지 발굴된 문헌자료들을 충분히 검토해서 논의와 평가와 문제제기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런데 교단 내외의 형편은 그러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동학과 천도교의 관련된 연구논문과 문헌자료(文獻資料)들의 연구가 미진(未盡)하고 있다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지금 교단 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상당부분의 논의 중심문제들을 살펴보면, 관련 논문이나 문헌을 참고했다면, 논의나 문제제기가 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나 평가함에 있어 잘못된 기준(基準)과 가치(價値)를 바탕으로 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교단 역사와 교리, 교사를 잘못 해석 평가하는 어리석음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 우리가 만나는 많은 연구논문 자료들 중에는 동학과 천도교에 대하여 왜곡(歪曲)하고 혹평(酷評)하고 있는 글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매우 당혹(當惑)스러운 일들이다. 관련 연구논문이나 문헌자료를 적극적으로 수집하여 충실하게 탐독(耽讀)하고 올바르게 이해하여, 반론(反論)을 제기하고 교단의 확실(確實)한 해석과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된다. 객관성이 없거나 이미 교단이나 학계에서 해석과 평가에 이의(異議)가 없는 것을 모르고 사견(私見)을 제시한다면,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뿐더러 만약 이런 문제들을 교단의 어느 기구가 논의를 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충실하고 정확하게 평가하고 논의하고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서, 그 어느 것보다 먼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선결문제(先決問題)들이 있다. 이들 중 몇 가지를 나열(羅列)한다면.
1. 수운대신사께서는 동학(東學)을 창도(創道)하실 때, 동학을 종교로 창도(創道)하신 것인가? 도(道)와 (學) 또는 도학(道學)으로 창도하신 것인가? 또 해월신사께서는 동학 혁명을 지휘하셨을 때, 종교혁명운동(宗敎 革命運動)이라 생각했는가? 아니면 스승이신 수운대신사의 “다시 개벽(開闢)이란 말씀의 실현(實現)”이라고 생각하셨는가?
2. 선천(先天)시대와 후천(後天) 개벽의 시대는 어떻게 다른 시대이며, 선천시대의 종교와 후천시대의 종교는 어떻게 다른 것이며, 어떻게 달라야 하며, 천도교는 과연 어떤 종교인가?
3. 의암성사께서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大告天下)하신 것은, 어떤 의미이며, 동학을 올바로 계승한 것인가? 만약 천도교가 수운대신사의 동학정신을 올바로 계승하지 못했다면 그 원인과 결과는 어떤 것인가?
4. 경전을 해석함에 있어서, 수운대신사께서 생존하셨던 그 시대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며, 시대상은 어떠했으며, 경전에 어떻게 비춰졌는가를 얼마나 파악하고 있으며,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와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에 사용된 모든 어휘들의 의미를 단순하게 사전적 의미만을 지닌 단어로, 인정하고 직역(直譯)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5. 천도교 시대에 있어서(1905년.-현재까지) 교단과 전위(前衛)단체들의 운동의 기본 사상이었고 지표였던, 인내천 종지(宗旨)와 종자사람으로서의 역량과, 인간격 중심의 신념으로, 정신개벽(精神開闢), 사회개벽(社會開闢), 민족개벽(民族開闢)을 통하여, 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建設)을 해야 한다는 이돈화선생의 주장(교단의 통일된 입장이기도 하다.)과 “천도교”란 안내서에서 밝힌, 천도교의 종교적 목적이, 포덕천하(布德天下), 광제창생(廣濟蒼生), 보국안민(保國安民), 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이란 주장이,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서도, 우리 교단의 목표로서 현재와 미래의 천도교의 종교적 목적으로 그대로 수용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6. 180여 년 간(수운대신사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역사가 담긴 수운의 탄생과 동학과 천도교시대를, 그 시대 시대의 시대적 특수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교단의 모든 것들을, 현재의 시각(視覺)과 가치로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 않는가?
/ 동학과 천도교는 정말 다른 것인가? 중에서.
無體法經이 가져 온 弊端 들.
1). 무체법경(无體法經)의 비교분석 연구 1, 2, 3에서 수십 곳의 적시(摘示)된 오류에(분량이 많아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하므로 관심이 있는 분께서는 무체법경의 비교 분석 연구 1, 2, 3의 전 문장을 살펴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대한 비교연구가 되지 않은 채로 오랫동안 교육되어 온 것은, 완벽한 경전 간행과 올바른 교리 교육이란 점에서 커다란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천도교 종학 대학원 강재(講材)로 사용하면서도 무체법경 연구에 소홀했던 점은, 교과목으로 선정(選定)한 것과 함께 경솔(輕率)한 운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무체법경은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와 대등(對等)하게 별도(別途)의 과목으로 교육해야할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천도교의 종지와 종교적 4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선, 수운의 불연기연(不然其然)과 탄 도유십급(嘆 道儒心急)을, 해월(海月)의 천지이기(天地理氣), 대인접물(對人接物), 수심정기(守心正氣), 성경신(誠敬信), 개벽운수(開闢運數), 수도법(修道法), 용시용활(用時用活), 이심치심(以心治心), 이천식천(以天食天), 양천주(養天主), 그리고 내수도문(內修道文)과 내칙(內則)의 교육을 개별 항목으로 깊이 연구하여 구체적인 교육으로 강화(强化)했어야 했고, 의암의 법설 중에서는 대종정의(大宗正義), 삼전론(三戰論), 이신환성설(以身換性說), 인여물 개벽설(人與物開闢說), 강론경의(講論經義) 천도교와 신종교(新宗敎) 등을 종교학의 기본적인 이론의 바탕위에서 해석하고 현재와 미래의 시대정신(時代精神)을 고려하여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성을 감안(勘案)하여 미래지향적(未來指向的)인 교육을 했어야 했다.
2). 현재 교단 일부(一部)에서 논의되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수련여부에 따라 진성교인(眞性敎人)이나 아니냐?’ 에 대한 판단(判斷)과 지나친 차별대우(差別待遇)는 정상(正常)이라고 할 수 없다. 진성교인의 여부와 차별대우는 천도교의 기본사상에 위배(違背)되고 편협(偏狹)하고 옹졸(壅拙)한 수련자의 일방적인 태도로 비판(批判)받아야 한다. 더 나아가 교리, 교사까지 수련여부에 따라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은 크게 잘못된 태도이다. 수도연성(修道練性)을 많이 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자만심(自慢心)에서 출발한 폐쇄성(閉鎖性)과 배타성(排他性)은 수운심법(水雲心法)을 바탕으로 한 수행태도(修行態度)가 아니며, 수련을 중시하지 않는 태도와 현행 수련방법에 대한 비판자에 대한 냉대(冷待)와 냉소적(冷笑的)으로 비난(非難)하는 태도는 더더욱 수운십법을 체행(體行)하는 천도교인답지 않다. 만약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수련을 중시하지 않는 태도와 현행 수련방법에 대한 비판자들은 진성교인이 아니며 천도교를 떠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렇게 비난(非難)하고 냉대(冷待) 하는 것이 수운십법의 올바른 체행(體行)이며 천도교 중앙 총부의 공식 입장인가?
3). 6,25동란이후 교리, 교사부분에서 교단을 이끌고 온 백세명(白世明), 박응삼(朴應三), 조기주(趙基周), 김용문(金用文), 정운채(鄭雲彩), 최창파(崔蒼波), 박창건(朴昌建) 등이 이미 환원(還元)하셨거나 건강이 안 좋아 관여하지 못하여 천도교의 교리, 교사의 해석의 공백기(空白期)에 들어선 무렵인 70년대 중엽(中葉)에, 안주파(安州派)에 가담(加擔)한 월산(月山 도호는 공암)이 중앙총부에 안주파의 수장(首長)에 가까운 이영복(李永福) 교령(敎領. 連任을 함)을 따라 교역자로 진입(進入)하면서 무체법경이 소개되고 중시되기 시작하여 종학원에서 별도 교재로 사용하는 데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월산이 항상 합장(合掌)인사를 했는데 천도교 교리와의 위배(違背)여부를 심각히 연구하지 않은 채로 비판 없이 일부의 교인들이 합장인사를 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4). 무체법경이 중시되는 과정에서 무체법경을 추종(追從)하는 교인들과 일부 교구(敎區)의 배타적(排他的)이고 폐쇄적(閉鎖的)인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은 동귀일체(同歸一體)란 의미에서는 배교적(背敎的)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극단적(極端的)으로 남의 말을 수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말만 하는 경향으로 빠르게 발전한다. 이로 인하여 동조(同調)하지 않는 교인들을 공개석상에서도 강렬(强烈)하게 비난(非難)하는 무례(無禮)를 자행(恣行)하기도 한다. 일부 교인들 중에는 수운대신사의 법설보다 무체법경을 더 숭상(崇尙)하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이들이 관여하는 교구나 전교실은 홈페이지를 개방(開放)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총부 홈과 연결하지도 않고 있다. 상당부분을 독자적(獨自的)으로 운영하여 천도교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고 있으므로, 다른 말로 정확히 말하면 천도교가 아니다. 그런 신앙을 의암교(義菴敎) 또는 무체법경 교(無體法經 敎)라고 비난(非難)해도 할 말이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저희들 끼리 패거리 문화를 형성하며. 견해(見解)를 달리하는 외부 교역자들을 초빙(招聘)하여 설교(說敎)나 강연(講演)을 들으려 하지 않는 매우 폐쇄적(閉鎖的)인 운영을 함으로서 오심 즉 여심(吾心卽汝心)과 동귀일체(同歸一體)이라는 천도교의 핵심 교의(敎義)를 정면으로 도전(挑戰)하고 있으며, 교구나 전교실에서 총부의 교서 편찬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간행되는 교서와 다른 교서들이 총부의 공식기구의 논의나 심의가 없거나 인준이나 허가도 받지 않고 임의(任意)로 교서와 천덕송(송가 포함)과 기타 여러 가지 교화용 교재들을 출간하여 독자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5). 수운대신사께서 직접 말씀하신 논학문에서의 주문의 참뜻을 이해하면 될 것을, 수련을 통하여 강령여부에 따라 주문의 뜻을 올바르게 터득할 수 있다고 강변(强辯)하는 사람들은 수운심법과는 다른 비정상적이며 광신적(狂信的)이고 극단적인 신앙태도를 갖고 있다고 보여지고 있으며, 현재 운영하고 있는 수도원 전반에 잘못된 수도연성으로 인한 이런 잘못된 사고와 신앙태도가 일반화되고 있으므로 인하여 천도교가 바라는 교인이 아닌, 천도교 사상과는 동떨어진 수행태도를 가진 상당수의 교인들이 내세적(來世的)이며, 기복적(祈福的)이고, 영험(靈驗)의 경험과 기적(奇蹟)에 흥분하는 광신도가 되어가고 있다. 또한 일부는 수련원의 잘못된 수련내용으로 인하여 천도교를 이탈(離脫)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이탈현상(離脫現狀)은 수련원의 이수자(履修者)의 연(年) 인원(人員) 통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놀라게 될 것이다. 이런 수련원에서 수련을 이수한 상당수의 비정상적이며 광신적이라고 믿겨지는 교역자와 교인들은 동학과 천도교에 대한 학자들의 학문적 연구결과를 경시(輕視)하고 천도교적인 해석과 평가가 논리적인 근거와 주장도 없이 아니라고 하여 배척하는 경향도 있다. 그렇다면 천도교인은 학문적으로 동학과 천도교를 연구하면 안 되며 이런 연구자들은 진성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인가? 라고 묻고 싶다. 이에 대한 “천도교 수련문화의 반성과 평가와 새로운 수련문화의 정립”을 위한 연구논문을 그간에 발표된 여러 논문들을 참고하여 포덕 149년 6월 말 이전에 발표하려 했으나 간단치 않은 교단 내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아직까지 발표를 미루고 있다.
6). 잘못되는 수련은,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하고 영험(靈驗)과 기적(奇蹟)에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환각(幻覺)과 환청(幻聽)에 빠져 신, 성사님과의 만남과 대화를 하게 된다. 이는 수도연성을 개인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라고 정신분석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런 신앙자들의 십중 팔구가, 신비한 현상의 체험이나 특별한 능력을 소유하려고 강하게 집착하고 있다, 수련자의 위와 같은 욕구는 수운심법과는 아무런 교리적인 바탕이 없는, 구시대적이고 일반적인 종교 신앙에서 나타나는 치병(治病)과 기복(祈福)을 바탕으로, 개인구령(個人救靈)이나 사후(死後) 장생(長生 또는 永生)에 대한 지나친 욕구에 매달려 신체와 마음의 한계를 벗어나 무리하게 수도연성을 하는 과정에서 신체적, 정신적인 이상발작(異常發作)이 일어나게 한다. 이런 발작과정에서는 짐승처럼 울부짖고 몸을 떨고 너부러져 신성(神聖)하고 고귀(高貴)하며 최령자(最靈者)의 인간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된다. 이것은 한울님을 모신 인내천의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는 울부짖는 광포(狂暴)한 짐승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사회에서도 기수련(氣修練)이나 마인드 콘트롤 (MIND CONTROL) 수련에서도 그 부작용이 커 기피(忌避)하는 수련방법의 하나로 학술적(學術的)으로 이미 확인된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수련원 운영자나 수련 지도자들이 이런 현상을 보면서, 태연하게 강령(降靈)을 모시는 것이며 각도(覺道)하는 과정이라고, 천도교의 교리를 벗어난 거짓말을 해대는 것이다. / 无體法經의 비교 분석 연구 4 중에서.
무자(2008)년 새해에는 좀 희망적인 일들의 싹이 보일까 기대도 했지만, 우리의 현실은 당면한 모든 일들을 극복(克復)할만한 저력(底力)도 없고, 흩어진 교단을 수습하여 이끌어 나갈 지도자가 없는 것 같다. 다음 교단을 장악하려는 꿈을 꾸며 맹활약을 하고 있는 몇 분을 봐도 근간에 일어난 일들의 공범자이거나 뒤에서 교묘한 방법으로 조종한 진범들이란 점에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그들은 자신들이 범인이라는 진실을 감추고, 매우 어리석은 다수의 교인들을 속이고 훌륭한 지도자인양 말과 글로써, 교단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자신이 진성교인이고 훌륭한 지도자인양 떠벌리면서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능력이 턱없이 모자라지만 잔꾀 하나로 살아가는 파렴치(破廉恥)한 다수의 대의원 자격을 가진 교역자들은, 분수(分數)도 모르고 교령(敎領)이란 이름 하나 얻어 보려고 미친 듯이 항상 달리는 말만 갈아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교단의 장래나 자신의 처신에 대한 아무런 반성과 죄책감과 책임감이 없다.
이들 일부의 특징은 그들에게 원, 주직을 갖게 해준, 휘하(麾下)의 교인들을 모아 놓고 상면(相面)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한 연원(淵源)이고 여러분의 추대(推戴)로 원직을 갖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도 하지 않고, 서류상으로 만 원직과 대의원이 된 매우 거만(倨慢)하고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존재들이다. 이런 행위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천도교인이 아니다. 더욱이나 교화(敎化)의 말 한마디 한 적이 없고, 밥 한 끼 같이 나누어 먹어본 적도 없고, 청수 한 번 같이 모셔 본적이 없는 특별한 인종(人種)들이다. 이들에게는 부끄럼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사람들이 뽑아 놓은 지도자가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비유해서 말하면, 말 탄 기수(騎手)의 말을 잘 들어 주는 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과 기수는 야합(野合)한 계약자(契約者)일 뿐이어서 교단의 현실과 미래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적당하게 자기 이익만 챙기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도교가 운영하고 있는 수련원에서는 수련지도를 잘못하는 부분도 있어, 상당수의 수련자가 치병(治病)을 바탕으로 한 기복신앙에 빠져 사교화(邪敎化) 되어 가고 있고, 이곳과 관련된 일부의 교인이 광신자(狂信者)가 되어 위아래 없이 아무나 비난하면서 나서대는 바람에, 동학과 천도교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과 지적(知的)이고 신념(信念) 있는 많은 교인들을 쫓아내고 있다. 그들을 미치게 하는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무체법경(無體法經)이다. 무체법경의 추종자(追從者)들의 잘못된 법설의 이해(理解) 때문에 광신자가 되고 유사한 생각을 가진 교인들의 호응을 받아 점점 기복신앙을 바탕으로 한 사교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말만 성령출세(性靈出世)라 하면서 상반(相反)된 기복신앙에 빠져 가고 있다. 이런 신앙이 천도교의 장래를 막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개인구령(個人救靈)과 기복신앙은, 이미 대 선생과 신성사님께서 과감히 버린 선천(先天)의 종교이다. 분명하게 말씀드리면 '후천(後天)의 참다운 신종교(新宗敎)가 아닙니다. 대신사님께서 목숨까지 버리시면서 간절히 원하셨던 <다시 개벽의 종교>가 아닙니다. 이 “다시 개벽의 종교”를 이해하려면 새로운 종교의 세계를 알아야 합니다. 수운심법을 바탕으로 한 “다시 개벽의 종교”를 믿으면서, 18세기 전후의 종교를 말하는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인 교리와 수련을 말해서는 천도교의 장래는 없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들은 미래종교에 대한 모색을 예측하여, 미래에 우리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종교는 ‘시민으로서 한 사람의 역할(役割), 공간(空間), 시간(時間), 그리고 역사(歷史) 안에서의 그의 사회적 위치를 궁극적(窮極的) 존재(存在)와 의미(意味)의 상황들에 관계시키는 일련의 믿음, 의식, 그리고 상징(象徵)을 지닌 시민종교(civil religion)’라고 보고 대체종교(代替宗敎)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다원화(多元化)된 사회에서는 사회를 통합(統合)시키는 기능(機能)을 전통적(傳統的)인 종교가 더 이상 수행(隨行)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合意)를 위한 기초로서 그리고 국가적 활동의 의미성을 규정하는 것으로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여 지는 ‘시민종교’의 대두(擡頭)가 시급(時急)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천도교가 “다시 개벽의 종교”가 되기 위해선, 급변하는 사회변동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다가올 미래사회를 철저히 분석하여, 그 사회와 그 다음에 이어질 사회에 대한 적응(適應)과 인도(引導)를 위한 선구자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될 당면과제(當面課題) 중 최우선의 과제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 지난 연말에 필자가 “무체법경의 비교분석 연구”를 게재하면서 느낀 점은 너무나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교리(敎理)와 수행(修行)’ 인바,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선천(先天)종교나 사교(邪敎)가 된다고 보고 있다. 무극과 태극(無極 과 太極), 음양과 오행(陰陽 과 五行/二五思想), 성과 심(性 과 心), 기와 리(氣 와 理), 주기론과 주리론(主氣論 과 主理論), 양명학(陽明學), 퇴계와 율곡(退溪와 栗谷)의 사상, 혜강 최한기(惠岡 崔漢綺)의 사상 등의 동학과 천도교 사상의 핵심적인 어휘와 관련이 있는 모든 사상의 이해와 새로운 수련문화의 정립이야말로 우리에게 매우 시급한 일인 것이다. 앞으로 교단을 이끌고 가실 중견(中堅) 교역자와 동학과 천도교 사상과 수행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 많이 숙독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포덕 149년도 분 게재논문 목록자료 공지 중에서.
천도교가 어떤 종교인지 확실한 이해도 없이 세속(世俗)의 종교와 다를 바 없는 생각으로 믿는다면, 금불비 고불비(今不比古不比)의 종교가 될 수 있을까요. 선천(先天)의 종교와 다른 것이 없다면 굳이 천도교를 믿을 필요가 없고, 대신사님께서 말씀하신 후천(後天)의 세상을 이끌고 갈 무극대도(無極大道)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이미 기독교계 일부와 천주교에선 천도교가 기독교의 아류(亞流)라고 평가하고 있는 지 오래 됐고, 한울님이란 우리만의 독특한 의미를 지닌 신앙의 대상을, 한국어의 근원적(根源的)인 의미로, <하느님, 하나님, 한우님, 한님, 한얼님>과 어원적(語源的)으로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여 한울님으로도 사용하고 있는지 오래됐습니다.
이러한 밖의 세상이 핑핑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들어주지도 않는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남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들 주장의 논리를 아무런 이론적(理論的) 배경과 근거(根據)의 제시도 없이, 일소(一笑)에 붙인다면 웃음거리가 될 뿐입니다. 그 결과 동학, 천도교사상을 수운 대신사님의 뜻대로 올바르게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제 말만 하는 한심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급변하는 오늘과 미래의 세상과 세계를 올바르게 살펴보고 생각하면서 독실(篤實)한 신앙심을 갖도록 합시다.
인터텟 다움 하나만의 카페와 블로그만 보아도, 기독교계가 약 12 만여 개, 천주교가 약 1 만여 개, 불교가 약 6천여 개를 가지고, 교의(敎義) 선전과 친목(親睦)과 대화와 신앙을 권유하는 일에 총력(總力)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형편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미 본인이 '동학, 천도교를 위한 대안.'의 서론과 (1), (2)에서 우리의 형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代案)을 만들어 여러분의 의향(意向)을 물어 공론(公論)에 붙이려 하였으나, 단 한 분도 자신의 의사를 말하신 분은 교단 내에서는 없었습니다. 학계(學界)와 다른 종교를 믿거나 동학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걱정을 해주시고 의견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천종교의 입장에서 본, 종교학적, 신학적으로 천도교가 안고 있는 한계(限界)같은 것을 지적(指摘)해 주었습니다. 남의 의견은 들을 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며, 나만의 생각이 옳으니 내 이야기만을 들으라고 홈페이지를 도배(塗褙)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남들은 어떻게 보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기독교계의 수많은 종교학자, 신학자, 교직자, 성직자들이 천도교를 우리보다 더 깊이 연구하여 수많은 저작물(著作物)들이 발표되고 출판되고 있습니다. 이미 나온 수많은 출판물을 통해, 어떤 면에서는 우리 보다 더 깊이 동학, 천도교를 이해하고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상을 널리 활용하여, 기독교(基督敎) 사상화(思想化)를 해 가고 있으므로, 우리의 이야기와 천도교가 새로울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더욱이나 종교학, 비교종교학, 종교철학, 신학, 종교윤리학 종교사회학, 종교형태학, 종교문화학 등등의 종교와 관련된 학문(學問)의 기본적(基本的)이고 원론적(原論的)인 학문적(學問的) 사상과 이론에 소양(素養)이 없는 일부 교역자나,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으며 존경받고 있는 일부 교인이, 일방적으로 아무런 비교 설명도 없이(금불비, 고불비라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는데도) 천도교가 우수한 고급종교이고 민족종교라고 설득력이 없는 말로 자랑할 때, 몹시 부끄러워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때가 많았습니다. 종교에 관련된 최소한의 기본적인 이론도서는 읽고 말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禮儀)이고 존중(尊重)입니다. 천도교가 사람을 대할 때, 인내천(人乃天)이라고 하면서 천도교 마당에선, 내 편, 네 편만 있고, 인간대접을 받는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두 자만(自慢)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겸손하지 못한 생각과 행동의 근원은, 나만은 인내천(人乃天)이고, 내가 상대하는 남들은 모두 인내천(人乃賤)이라고 보고 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세상에 그 어떤 종교도 교인의 자격(資格)을 제한(制限)하여 교인, 비교인(非敎人)으로 편을 갈라 경시(輕視)하거나 무시(無視)하는 교단이 없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습니다. 일시 여러 사정으로 신앙생활을 쉬다 돌아오면 더욱 반갑게 맞아들여 쑥스럽고 부끄러움을 갖지 않고 신앙하도록 따뜻하게 대해주어 계속 독실(篤實)한 신앙인(信仰人)이 되도록 도와주는 게 상례(常禮)입니다. 교단을 이끌고 갈 교직에 임할 사람이나 교인들 모임인 자치기구(自治機構)의 대표자의 자격으로 일정 부분 자격기준(資格基準)을 두는 것은 이해될 수는 있으나 일반 신앙인에 대한 엄격한 자격기준은, 한번 천도교를 신앙했다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와 편안한 마음으로 신앙하지 못하게 하며 이질감(異質感)을 느끼게 할 뿐입니다. 자신들의 교단 참여에 반대하거나 찬동하지 않는 교인들의 징계(懲戒)의 방편(方便)으로 악용(惡用)될 소지(素地)가 충분히 있고 현실적으로 그래왔습니다.
원래 교인의 자격을, 연, 월성 의무실행으로 정하게 된 것은, 포덕 47(1906)년에 100만 명의 교빙증(敎憑證)을 만들어 교인자격을 부여한데서 출발합니다. 이는 당시 시대적 특수한 상황에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용구(李容九), 송병준(宋秉畯) 일파(一派)를 축출(逐出)하고 천도교로서 순수성(純粹性)을 밝히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이후 천도교만의 독특한 조직이라 할 수 있는 연원(淵源)이란 교단조직의 분류와 총회(總會)의 대의원을 선정(選定)하기 위한 기준으로 필요했습니다. 또 천도교 사업이 대 사회운동화로 달려가면서 회원이나 당원 동지(同志)같은 성격으로 교인의 자격을 규제(規制)해왔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여 일제 점령하의 시대적인 특수성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처럼 대 사회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형편에서 회원(會員)과 당원(黨員)과 같은 엄격(嚴格)한 자격이 요구되지 않는 오늘에 이르러서 까지 교인의 자격을 엄격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교인수가 날로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과거 천도교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신앙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라도 쉽게 돌아오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올 한 해는 공부를 많이 할 뿐만 아니라, 너그럽게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절실히 필요하므로 마음공부도 병행(竝行)하여 일당백의 정신과 이론으로 무장하여 반드시 중흥을 이룩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적극적인 포덕을 하는 해로 정하고, 내적충실(內的充實)을 이룩한 사람이 되어, 사람을 사람답게, 더 나아가서는 한울님같이 진심으로 모시는 실천하는 천도교의 독실한 신앙인이 됩시다. / 우리 모두, 새해엔 공부합시다. 중에서.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를 개소하게 된 동기와 목적 그리고 사업 내용을 궁금해 하시는 동덕들과 방문자들이 있어, 그에 답을 하기 위한 방식으로 포덕 149년(2008.10.11.) 본 연구소 게시판과 천도교과 관련된 모든 게시판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를 말한다.'라는 글을 게재한 이래 현재까지 수백 명에서 만 명에 가까운 방문객 읽고 있습니다. 다음 해인 포덕 150년(2009.10.03.)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의 자료실을 공개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소장(所藏)하고 있는 자료(資料)들을 기본 분류방법으로 분류하여 1차로 약 4,000여 건의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이 자료의 활용방법(活用方法)도 공지(公知)했습니다. 본 연구소의 자료실은 동학, 천도교 관련 연구논문을 쓰시려고 하는 교단 내외분들에게 자료 제공을 위하여 만들어져 개인 열람(閱覽)을 위한 개방(開放)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연구 주제와 개략적(槪略的)인 아이템(主題와 槪要)을 보내주시면 지원(支援) 여부를 알려 드리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본 연구소의 자료를 요청하신 분이 단 한 분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본 연구소의 자료실은 동학, 천도교 관련 자료로는 국내외 최고 수준으로 정리 분류되어 있지만, 현실은 정작 본연의 역할(役割)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고 또한 본 연구소를 직접 방문하여 각 연구논문별로 읽은 방문자도 100명 이내로 매우 열악(劣惡)한 상태를 극명(克明)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본 연구소의 문제가 아니라 광범위하게 교단(敎團)이 서서히 해체(解體)되어 가고 있는 징후(徵候)를 보여주는 현실을 직시(直視)하기 위하여, 본 연구소의 지난 10년의 활동을 회고(回顧)하고 반성해보려 합니다. / 10년이 지난 지금 내용이 변동된 것은 수정하였습니다.
/ 지난 10년을 돌아보며(7-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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