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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기성세대가 정말 저주받아야 할 세대인가(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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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댓글 0건 조회 44회 작성일 12-11-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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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가 정말 저주받아야 할 세대인가(12-2)
/ 버림받고 있는 부모세대들이 울부짖는다.
註 08; 견백동이(堅白同異); 是를 非라 하고 非를 是라 하며 同을 異라 하고 異를 同이라 하는 것과 같은 억지논리로 궤변을 늘어놓는 것을 말한다. 이 용어는 사기(史記)의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나오는 말로,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학자 공손룡(公孫龍)이 “단단한 흰 돌을 눈으로 보아서는 흰 것을 알 수 있으나 단단한지는 모르며, 손으로 만져 보았을 때는 그 단단한 것을 알 뿐, 빛이 흰지는 모르므로 단단한 돌과 흰 돌과는 동일물이 아니다”라는 ‘견백동이(堅白同異/ 而趙亦有公孫龍, 為堅白同異之辯)’의 논리를 폈다. 공손룡은 장자와 같은 시대 사람으로, 당시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봉건 제후들에게 조언을 하고 제자들에게 논리학적 훈련을 시키는 일을 하였는데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상세한 기록을 볼 수 없다. 다만 그가 조나라 평원군(平原君)의 문객으로서 ‘무장 폐지(偃兵)’론을 주장했으며, 현재 전해 오는 그의 저작으로는 공손룡자(公孫龍子) 한 권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공손룡(公孫龍)의 대표적인 학설은 견백론(堅白論)과 백마비마설(白馬非馬說)이다.
견백론(堅白論)이란 견(堅)과 백(白)이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견(堅)과 백(白) 석(石)은 셋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둘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왜 그런가? 굳은 것을 얻지 못하고 흰색만을 얻고서 굳은 것과 돌을 함께 들어서 말하면 둘이 된다. 흰색을 얻지 못하고 굳은 것만을 얻고서 굳은 것과 돌을 함께 들어서 말하면 곧 둘이 될 것이다. 보아서 굳은 것은 얻을 수 없으나 흰 것을 얻을 수 있으니 굳은 것은 없는 셈이다. 어루만져서 그 흰 것은 얻을 수 없으나 그 굳은 것은 얻을 수 있으니 그 굳음은 얻고 흰 것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백마비마설(白馬非馬說) 즉 말이란 것은 형체를 명명하려는 것이며, 백(白)이란 것은 색채를 명명하는 것이다. 색채를 명명하는 것은 형체를 명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백마는 말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즉 ‘희다’라는 형용어로 인해 ‘흰말’은 더 이상 ‘말’이라는 일반 개념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손룡은 구체적인 개념들이란 서로 법주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로 통합될 수 없다는 논리를 내 세웠다.
註 09; 아전인수(我田引水); 내 밭(논)에 물을 댄다. 라는 말로 즉 자기에게 이롭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뜻으로 옛날에 농부가 가뭄에 모가 타 들어가자 어렵게 양수기를 구하여 하루 종일 물을 퍼 올려 논에 물을 가득 채워 놓았는데 이튿날 보니 논에 물이 반으로 줄고 옆집 논에 물이 차 있었다. 화가 나서 옆집주인을 찾아가 항의를 하니 댁의 논에 물이 너무 차 있어 논 뚝이 무너질 것 같고 우리 논에 모도 타 들어 가 길래 논 뚝을 조금 터놓았을 뿐이라고 했다. 다시 물을 퍼 올릴 수도 없고 화풀이로 욕만 퍼붓고 왔지만 마음이 내내 무거웠다. 왠지 잠도 오지 않고 마음만 무거워 밤을 지새 다 이튿날 양수기를 들고 가서 물을 두 집 논에 서로 가득 채우고 나니 기분이 좋아 졌다고 한다.
註 10; 부화뇌동(附和雷同); 우뢰가 울리면 만물이 울리 듯 자신의 뚜렷한 소신 없이 남의 말에 쉽게 따르는 것을 이르는 말로. 타협과 절충보다 아집과 독선으로 일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뚜렷한 자기주관 없이 맹목과 방종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부화뇌동(附和雷同)이다. 부화(附和)란 무조건 남의 주장에 따르고 아부하는 것을 말하며, 뇌동(雷同) 역시 같은 뜻입니다. 굳이 '천둥'을 뜻하는 '뇌(雷)'자를 덧붙여 뇌동(雷同) 이라 한데는 까닭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의 모든 현상이 그것을 주재하는 어떤 거대한 존재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비나, 바람, 이슬, 눈은 물론이고 지진이나 일식, 태풍까지 신(神)의 조화로 돌렸다. 재미있는 것은 천둥과 번개에 대한 인식이다. 그들은 거대한 천둥소리가 지상에 부딪쳐 메아리치는 것을 두고 만물(萬物)이 그 소리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천둥소리가 크게 울리면 반응도 크고 작으면 작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천둥소리에 함께 따르는 것을 뇌동(雷同)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뇌동(雷同)에는 옛 조상들의 과학지식이 담겨 있다. 그러나 부화(附和)든, 뇌동(雷同)이든 상대방의 의견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므로 좋은 뜻은 아니다. 그것 보다는 자신(自身)의 주관(主觀)에 따라 당당(堂堂) 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부화뇌동이란 단어는 예기(禮記) 곡례편(曲禮篇)에 나오는 말이다.
毋勦說(무초설)하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 생각인 것처럼 착각하지 마라!
毋雷同(무뢰동)하라! 함부로 다른 사람의 의견에 무조건 동조하지 마라! 반드시 옛날의 성현을 모범으로 삼아 선왕의 가르침에 따라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도록 하라.' 우레 雷자에 같을 同자 즉 뇌동(雷同)이란 우뢰가 울리면 만물이 이에 의하여 울리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것이 옳고 그른지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서 경솔하게 그 말에 부화공명(附和共鳴)하는 것을 말한다. 저기서 우레가 치니까 여기서도 우레가 울리듯이 똑같이 울려 대는 우레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예기에 나오는 뇌동(雷同)이란 단어에 나중에 부화(附和)라는 단어가 붙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남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따라 하는 것을 부화뇌동이라고 하였다. <논어>에서는 이렇게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을 소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小人은 同而不和라! 오로지 남과 같은 줄만 서려하고, 자신과 같은 사람만 인정하는 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소인배라고 강조한다. 유사어로는 附和修行, 如進如退가 있다.
註 11; 곡학아세(曲學阿世); 사기(史記)의 유림전(儒林傳)에 나오는 고사로 “바른길에서 벗어난 학문으로 권력자나 세속에 아부하여 출세하려는 의도나 언행”을 뜻한다. 요즘 흔히 말하는 어용학자(御用學者)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한나라 황제인 경제(景帝)는 즉위하자마자 천하의 인재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시인으로 유명한 산동 출신의 원고생(轅固生)을 등용하게 되었다. 당시 원고생의 나이는 90세의 고령이었다. 그는 직언(直言)을 잘하는 대쪽과 같은 선비로 유명했다. 그가 벼슬길에 나서자 수많은 사이비(似而非) 학자들이 그를 비방(誹謗)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와 함께 등용된 엉큼하고 비열한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젊은 학자가 제일 심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공손홍에게 훈계를 했다. “지금 학문의 정도가 문란해져서 속설이 유행하고 있네, 이대로 방치해두면 학문의 전통이 사설로 인해 참모습을 잃게 될 걸세, 자네는 다행히도 젊고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라고 들었네, 그러니 부디 학문을 열심히 닦아서 세상에 널리 전파해 주기를 바라네, 결코 자신이 배우고 믿는 학설을 굽혀 세상에 아부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라고 충고한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후 공손홍은 고매(高邁)한 인격과 학식을 갖춘 원고생에게 감동을 받아 그의 제자가 되었다. 이로부터 곡학아세라는 고사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
이 고사는 우리에게 시사(示唆)해 주는 바가 크다. 우리는 과거에 곡학아세하는 수많은 학자를 보며 실망을 했다. 학계에서 존경을 받던 학자가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고 추한 뒷모습을 남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정치권에 아첨하고 아부를 하는 학자들을 보며 권력이 뭐 길래 저렇게 곡학아세를 하나 하고 실망을 한다. 참다운 학문을 하는 학자들이 많아야 나라가 발전하는 것인데 요즘은 곡학아세를 하는 폴리페셔가 너무 많아 나라의 장래가 걱정이 된다.
註 12; 폴리페셔(Polifessor)/명사;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를 일컫는 조어(造語)이다. 대학 교수직을 발판으로 입신양명을 꿈꾸는 행태를 보여, 주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폴리페셔는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의 합성어로, 적극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어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정책으로 연결하거나 그런 활동을 통해 정관계 고위직을 얻으려는 교수’를 가리켜 이르는 ‘폴리페셔(polifessor)’를 국립 국어원 우리말 다듬기에서 ‘정치철새 교수’라고 했다. 한국사회에서 폴리페셔의 활동은 국가와 민족의 이익에 반하는 해로운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이 자신들만의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학문을 더 깊이 연구하여 세계 인류를 인도할 수 있는 선진국으로서의 학문으로 발전시켜야 할 본분을 잊고 분별없이 정치에 뛰어 들어 세계 수출대국 7위에 오른 대한민국( 미국, 중국, 독일, 일본, 프랑스, 네델란드에 이어서 7위 )을, 양극현상을 부추키어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註 13; 자업자득(自業自得); 자기가 저지른 일의 결과를 스스로가 돌려받음을 의미한다. 맹자(孟子) 卷之七 離婁章句 上의 제 팔장에서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어질지 않는 사람과 가히 더불어 말을 하겠는가? 위태로움을 편안히 여기고 재앙을 이롭게 여김은 바로 망하는 까닭(所以)을 즐김이리니, 어질지 않음에도 더불어 말을 한다면 어찌 나라가 망하고 몸을 망치는 일이 일어나겠는가?' /孟子ㅣ 曰不仁者는 可與言哉아 安其危而利其菑하야 樂其所以亡者하나니 不仁而可與言이면 則何亡國敗家之有ㅣ리오.
이 말의 뜻은 위태로움을 편안히 여기고 재앙을 이롭게 여긴다 함은, 그것이 위태롭고 재앙 됨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편안하고 이로움으로 여김을 말한다. 망하는 소이(까닭)는 거칠고 포악하고 음탕하고 모짊을 말함이니 이는 망함에 이르게 하는 까닭이라는 말이다. 어질지 않는 사람은 사사로운 욕망(사욕)으로 굳게 가리워져 그 본래의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넘어지고 자빠지고 뒤섞임이 이러한 지경에 이른 것이므로, 진심으로 알려 줄 수가 없어 마침내 패망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또 어린아이가 노래하기를 '창랑(滄浪)의 물이 맑거든 나의 갓끈을 씻을 것이며, 창랑의 물이 흐르거든 나의 발을 씻으리' (滄浪이란 물(시내)의 이름이며, 纓은 갓끈을 말한다.) 이 시를 듣고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아이야 들어 보거라.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하였으니, 이것은 물의 상태를 보고 스스로가 스스로 취함이다. / 有孺子ㅣ 歌曰滄浪之水ㅣ 淸兮어든 可以濯我纓이오 滄浪之水ㅣ 濁兮어든 可以濯我足이라 하야늘 孔子ㅣ 曰小子아 聽之하라 淸斯濯纓이오 濁斯濯足矣로소니 自取之也ㅣ라 하시니라. 하였다. 이 말은 물의 맑고 흐림에 있어 스스로가 취하는 이유(까닭)가 있는 것이다. 성인은 소리(聲)가 귀에 들어가면 마음으로 통달하여 지극한 이치 아님이 없음을 이러한 경우에도 볼 수 있다. 대체로 사람은 스스로를 업신여긴 후에야 다름 사람이 자기를 업신여기며, 집도 반드시 스스로 부순 후에야 다른 사람들이 부수는 것이며,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 공격한 뒤에야 다름 사람들이 공격하는 것이다. 그래서 태갑(太甲: 은나라 초기 태갑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편명-서경)에 이르기를 '자연적인 재앙은 가히 피 할 수가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은 가히 피 할 길이 없다'라 함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夫人必自侮然後에 人이 侮之하며 家必自毁而後에 人이 毁之하며 國必自伐而後에 人이 伐之하나니라 太甲에 曰天作孼은 猶可違어니와 自作孼은 不可活이라 하니 此之謂也ㅣ니라.
이 말은 마음을 굳게 지니고 있다면 득실(得失)의 기미를 살 필 수가 있지만, 반면 마음을 굳게 지니지 못한다면 존망(存亡)의 조짐들을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재앙과 복(禍福)의 유래는 모두 스스로가 취한다는 의미가 된다.
영어에서 스스로 한일로 곤욕을 치르다 stew in one's own juice의 유래는 13세기 프랑스 어느 튀김 가게 주인이 거의 시장을 독점하자 영세업자들이 그를 튀김 기름 속에 넣고 죽였는데 이 사건에서 ‘fry in one's own grease’라는 표현이 나왔고, 미국으로 건너오는 과정에서 바뀌었다. 'stewed'는 '약한 불로 끊인, 스튜 요리로 한' 뜻이 있다. 스스로 한일로 곤욕을 치르다 stew in one's own juice
註 14; 조삼모사(朝三暮四);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라는 뜻으로 조삼모사는 간사한 술책(術策; 꾀)을 써서 남을 속이거나, 어리석은 욕심으로 남에게 속을 때처럼 남을 우롱한다는 뜻으로 눈앞에 보이는 차이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하거나 남을 농락하여 자기의 사기나 협잡술 속에 빠뜨리는 행위를 비유하는 말로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열자(列子)의 황제 편(黃帝篇)에 보면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송(宋)나라 때 저공(猪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원숭이를 좋아해서 원숭이를 길렀다. 원숭이를 자식처럼 대해주다 보니 저공(猪公)이 능히 원숭이의 뜻을 알고 원숭이도 또한 저공(猪公)의 마음을 알았다. 원숭이의 수가 늘다보니 먹이를 제공하는데 어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저공(猪公)이 원숭이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집안은 어려워져서 너희들에게 줄 도토리를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로 해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그렇게는 안 된다고 아우성을 쳤다.
이에 저공(猪公)이 깊이 생각하다가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마" 했더니 원숭이들이 좋다고 박수를 쳤다고 한다.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나,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나 똑같이 일곱 개인데 먼저 먹게 될 것이 많다고 좋아하는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비유한말로, 조삼모사(朝三暮四)는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속임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하거나 조삼모사(朝三暮四)는 같은 것을 마치 서로 다른 것처럼 남을 속이는 자를 비유하기도 한다. 자기 이익을 위한 술책보다도 사료난에서 오는 불가피한 궁여지책이었는데 오늘날 이 세상에 잘났다고 뽐내고 자칭 지도자연하는 사람들을 위선적이라고 혹평할 때 의례 저공의 조삼모사를 인용하고 있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서 속임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어리석음(愚)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저공(猪公)은 원숭이를 높여 부른 말이다.
註 15; 자승자박(自繩自縛)- 제 밧줄로 제 몸을 옭아 묶는다는 뜻으로, 자신이 한 말과 행동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구속되어 괴로움을 당하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불교용어로는 제 마음으로 번뇌를 일으켜 괴로워함을 의미한다. 한서(漢書) 유협전(遊俠傳)에 나오는 '자박'에서 유래한 말이다. 시장에서 원섭(原涉)의 노비(奴婢)가 백정(白丁)과 말다툼을 한 뒤 죽이게 되자 무릉(茂陵)의 태수 윤공(尹公)이 원섭을 죽이려고 하여 협객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원섭의 종이 법을 어긴 것은 부덕한 탓이다[原巨先奴犯法不德].
그에게 웃옷을 벗고 스스로 옭아 묶어[使肉袒自縛]
화살로 귀를 뚫고 법정에 나가서 사죄하게 하면[箭貫耳 詣廷門謝罪]
당신의 위엄도 유지될 것이다[於君威亦足矣]."
원래는 궁지에 몰려서 항복의 표시로 자신의 몸을 묶고 관용을 청하는 것이다. 스스로 번뇌(煩惱)를 일으켜 괴로워하거나 자기가 잘못함으로써 스스로 불행을 초래하는데 비유한 고사성어(故事成語)이다. 자기 스스로를 옭아 묶음으로써 자신의 언행(言行) 때문에 자기가 속박당해 괴로움을 겪는 일에 비유한 말로, 자박(自縛)이라고도 한다. 자기가 만든 법에 자신이 해를 입는다는 뜻의 작법자폐(作法自斃)와 비슷한 말이다. 자기가 주장한 의견이나 행동으로 말미암아 난처한 처지에 놓여 자신의 자유를 잃게 된다.
유사어(類似語)로는
自作自受(자작자수)-자기가 저지른 일의 果報를 자기가 받음
自業自得(자업자득)-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果報)를 자기가 받음
欺人自欺(기인자기)-남을 속이려다 스스로 속는다. 등이 있다.
주 00; 양두구육(羊頭狗肉)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들은 다음과 같다.
1.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으로는 꿀맛처럼 달콤한 말을 하나 배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는 뜻
2. 동상각몽(同床各夢)- 같은 침상에서 어울려 자면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
3. 동상이몽(同床異夢)- 같은 침상에서 어울려 자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는 뜻
4. 면종복배(面從腹背)-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딴 마음을 먹는다는 뜻
5. 사시이비(似是而非))- 겉으로는 옳은 것 같지만 속으로는 다르다는 뜻
6. 사이비(似而非)- 겉으로는 비슷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주 다르다는 뜻
7. 사이비자(似而非者)-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가짜라는 뜻
8. 소리장도(笑裏藏刀)- 겉으로는 소리를 내어 웃는 웃음 속에는 남을 해칠 칼을 감추고 있다는 뜻
9. 소면호(笑面虎)-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호랑이 같은 사나운 마음을 숨기고 있다는 뜻
10. 소중유검(笑中有劍)- 호탕하게 또는 배시시 웃는 웃음 속에 매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뜻
11. 양질호피(羊質虎皮)- 속은 양이나 겉은 호랑이라는 뜻
12. 표리부동(表裏不同)- 겉과 속이 같지 않다는 뜻
13. 스스로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교화(敎化)하려는 것 또한 '양두구육'과 같다.
14. 구유밀복유검(口有蜜腹有劍)- 입으로는 착하게 남을 위하는 척하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
일부의 청장년(중년)세대와 신세대의 탐욕적이고 부도덕성은, 두견이와 뻐꾸기(부엉이의 본능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가 자기의 알을 자신의 노력으로 부화하여 키우지 않고 약자인 작은 휘파람새의 둥지에 몰래 낳아 남의 손에 자신의 후손을 위탁해서 키우는 것과 같다. 일부의 청장년(중년)세대와 신세대들은 부모세대인 기성세대가 겪고 살아온 역사적인 상황을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으로 이해 평가하지 않고, 지금의 가치와 시각으로 평가하고 배척하며 마치 역사적인 죄인인 것처럼 범죄자로 몰아붙이고 있으면서 대화마저 거절하고 부모세대와 부모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 부모세대인 기성세대가 겪어야 했던 기험(崎險/기구)한 삶의 도정(道程)과 시대적 역경(逆境)과 험난(險難)을 겪으면서 이루어 놓은 재산을, 단지 법이 정하는 바의 상속자인 후손이 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속을 당연시하거나 태연하고 당당하게 받으려고 하고 받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당한 것이며 파렴치(破廉恥)한 행위인 것이다. 부모세대인 기성세대가 바람직한 역사를 만들지 못한 죄인이라면, 그런 죄인들이 모은 모든 재산은 부당한 축재(蓄財)이므로 범죄자의 재산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일부의 청장년(중년)세대와 신세대들이 주장하는 가치와 평가가 맞으려면, 당당하게 그런 부정한 재산을 상속을 받을 수 없다고 선언(宣言)하고 사회로 환원(還元)시켜 그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가난하게 살아온 축재자들의 희생자인 그들에게, 그들이 무능하고 게을렀다고 하지 말고 정말 참되고 정직하고 지혜롭게 살아오셨다고 칭찬과 위로를 하면서 그들이 배불리 먹고 넉넉하게 살도록 분배해야 그들의 논리와 주장에 합당(合當)한 것이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두견이와 뻐꾸기의 탐욕적이고 부도덕한 야바위 짓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註 16; 두견이; 두견이(Cuculus poliocephalus)는 두견목(杜鵑目 Cuculiformes) 두견과(杜鵑科 (Cuculidae)에 속하는 몸길이 25㎝ 정도의 여름새로 두견이는 휘파람새의 둥우리에 알을 위탁, 포란(抱卵)과 육추(育雛)를 시키는 것이 많으나, 굴뚝새, 산솔새, 촉새, 검은지빠귀, 긴꼬리 홍양진이 등의 작은 명금류(鳴禽類)의 둥우리에도 많이 맡긴다. 6월 상순에서 8월 하순까지 한 둥우리에 알 1개를 위탁하는 것이 보통인데, 가짜 어미 새의 알 1개를 부리로 집어 밖으로 떨어뜨리고 둥우리 가장자리에 앉아 자기의 알을 둥우리 속에 산란한다. 새끼는 부화 후 2~3일 사이 가짜 어미 새의 알이나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고, 둥우리를 독점하여 가짜 어미 새로부터 먹이를 받아먹고 자란다. 곤충류가 주식이지만, 다족류도 먹는다. 우수리 지방, 중국 동북지방, 일본, 한국 등지에서 번식하고, 동남아시아에서 겨울을 난다. 약어로는 두견(杜鵑), 유의어로는 귀촉도(歸蜀道), 두견새(杜鵑-), 두우(杜宇), 두혼(杜魂), 망제(望帝), 불여귀(不如歸), 사귀조(思歸鳥), 자규(子規), 주각제금(住刻啼禽), 촉백(蜀魄), 촉조(蜀鳥), 촉혼(蜀魂), 촉혼조(蜀魂鳥) 참고어 소쩍새 / 브리태니커와 국어사전 관련자료 요약.
註 17; 부엉이; 부엉이(scops owl)는 올빼밋과에 속한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학명은 Bubo bubo라 한다. 회색 바탕에 갈색과 황색의 가로무늬가 있다. 눈이 크고 다리는 굵고 짧다. 깃털이 부드러워 날개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밤에 나와 돌아다니며 성질이 사나워 가축을 해친다. 전체의 분포는 대단히 넓어 북극, 남극, 그린란드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 23속 130여 종이 알려져 있다. 야행성이거나 박모성(薄暮性) 종이 많지만 쇠부엉이 같이 낮에 활동하는 종도 있다. 이 밖에 츩부엉이, 수리부엉이, 솔부엉이 등이 있다. 가장 일반적인 올빼미는 흔히 '황갈색 올빼미'라 불리우는 새들인데 학명으로는 Strix aluco라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서식하는 새들이다. 흔히 우리나라와 중국쪽에 서식하는 새들은 Strix aluco ma라고 부르며 유럽쪽에 서식하는 새들을 Strix aluco aluco라고 부fms다. 아데나의 올빼미는 바로 Athene noctua라고 하는 작은 올빼미이다. 일반적인 올빼미의 경우 길이가 40cm에 이르지만 이 녀석은 약 20cm 길이에 160g 정도 나가는 작은 종이다. 유의어로는 목토 (木兔) , 부엉새, 휴류(鵂鶹)라고 한다. / 각종 백과사전과 국어사전, 관련자료 요약.
註 18; 뻐꾸기; 뻐꾸기의 학명은 Cuculus canorus로 두견이과에 속한 철새. 두견이와 비슷한데 몸집이 훨씬 크고 초여름에 날아와서 가을까지 머문다. 몸길이는 약 33센티미터이고, 등과 목은 회청색이며, 아랫면은 흰 바탕에 암적색의 조밀한 가로줄 무늬가 있다. 때까치나 지빠귀 같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까게 하여 새끼를 길러 내는 습성이 있다. 초여름에 남쪽으로부터 날아오는 여름새로, 5월쯤에 날아와서 10월까지 머문다.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 걸쳐 아열대에서 북극까지 번식하며 겨울에는 아프리카 남부와 동남아시아로 남하하여 월동한다. 유의어로는 곽공(郭公), 길국(鴶鵴), 뻐꾹새, 시구(鳲鳩), 포곡(布穀), 포곡조(布穀鳥), 획곡(獲穀)이라 한다. / 각종 백과사전과 국어사전, 관련자료 요약.
註 19; 소쩍새; 소쩍새(Otus scops)는 올빼미목(―目 Strigiformes) 올빼미과(―科 Strigidae)에 속하는 작은 맹금(猛禽)류로 몸길이는 18.5~21.5cm이고, 몸 색깔은 회갈색이며 갈색·검은색·회색 등의 복잡한 벌레 먹은 모양의 무늬가 있다. 눈은 노란색, 날개 밑 부분은 회백색이다. 날개깃에는 검은색의 가로무늬가 있으며, 발가락에는 깃털이 없다. 소쩍새는 회색형과 갈색형의 2가지가 있는데, 갈색형은 등이 짙은 붉은빛이 도는 갈색을 띤다. 좀 높은 산지의 침엽수림에 살며 낮에는 나뭇가지가 무성한 곳에서 자고 밤에 활동한다. 주로 밤에 울며, '솟적다, 솟적다(소쩍다 소쩍다)” 또는 '솟쩍, 솟쩍'소리를 반복해서 우는데, 그 소리가 매우 처절하다. 전설에 의하면 '솟적'하고 울면 흉년을 의미하며, '솟적다'하고 울면 '솥이 작으니 큰 솥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풍년을 예고한다고 한다.
숲·농촌과 도시 일원에서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에 걸쳐 나무구멍(또는 인공새집)에 둥지를 틀고 한배에 4~5개의 알을 낳는다. 24~25일간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기간은 21일이다. 밤에는 수컷이 새끼와 암컷에게 먹이를 먹인다. 큰 소쩍새보다는 작은 편이며, 매우 흔하게 번식하는 텃새이다. 봄·가을의 이동시기와 겨울에는 북녘의 번식 집단이 남하 또는 북상하므로 도처에서 흔히 발견되며, 밤에는 서울시내 어디서나 활동한다. 그러나 일반에게 쉽게 눈에 띄는 새는 아니며 4~8월, 특히 5~6월 사이에 울음소리를 통해서만 존재를 알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324호로 우리나라에는 여름에 오는 철새이며 일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서 번식한다. 학명은 Otus scops이다. 유의어로는 시조(時鳥), 정소조(鼎小鳥)이다. / 각종 백과사전과 국어사전, 관련자료 요약.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또는 어우러져 같이 살아가는 사회의 집단 구성원들의 바람직한 삶의 기준이 되는 도덕성과 그들이 수용하여 실천해야 할 사회규범의 기초는, 사회의 구성요소로서 존재하는 상하좌우와의 인간적인 관계(Human relations(connection)과 네트워크;network)에서 출발한다. 상하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평등관계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두가 평등하다면 평등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중요한 전제적인 요건이 될 수 없다. 상하관계(上下關係)가 존재해야 된다는 전제는, 상하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사회구성원 중의 누구나 상하관계의 틀 속에 매여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상하관계에서 상(上)이 인간의 삶을 보다 더 풍요롭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여건을 가질 수 있는 처지라면, 상의 지위를 얻기 위한 노력과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本性)인 것이다. 상을 얻기 위한 노력과 투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평등이란 조건은 무의미한 것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이 된다. 그러므로 평등의 추구란 약자가 강자의 독식(獨食)을 막으려는 하나의 방편(方便)이고, 약자를 구제(救濟)하기 위한 법에 의한 사회에서 분출(噴出)하는 불평(不平)과 분란(紛亂)에 대한 안전망(安全網)을 구축(構築)하려는 강제적인 분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의 위치에 있는 강자에게는 평등이란 불편한 사회의 법이요 규범이 되는 것이다.
기성세대의 대부분인 70세를 전후로 한 노인들은, 1940년대 전후(前後)에 출생한 사람들로 60-80년대의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주역들이었지만, 국가와 사회는 그들에게 보답을 하고 있지 못하다. 보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니 보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청장년 세대들의 일부가 기성세대들의 국가관과 인생관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공동체에서 유기(遺棄)시켜버리려고 하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은 절대로 바람직한 세상이 아닌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유, 소년기에 일제의 침략이란 참담한 현실에서 살았고, 광복으로 인한 자주독립 국가건설에 대한 국민의 기쁨을 알았고, 6.25동란을 통하여 민족상잔(民族相殘)의 인간의 처참함을 몸소 체험했고, 5.16군사혁명과 산업화와 경제발전에 주체이면서 현대사의 산 증인으로서, 세계인류 중에서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역사적 현실에 깊이 관여하고 살아 온 매우 다양하고 중요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독특한 세대인 것이다. 만약 신세대들이 기성세대가 경험하고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오늘의 대한민국의 기초를 이룩한 산지식을 배우지 않고 외면하고 비난하고 저버린다면, 그들은 기성세대들이 겪었던 그런 시련의 역사를 자초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상당수의 국내외의 학자들은, 한국이 근, 현대사에서 세계의 어떤 민족보다 남다른 시련과 경험을 통한 문제 해결로 세계의 10대 국가 안에 진입한 경험과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앞으로 한국이 세계 인류의 갈등과 인류문명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가?
미래를 창조할 줄 아는 훌륭한 민족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만, 멸망하는 민족은 민족의 굴곡(屈曲)많은 민족의 역사를 부끄러워하고 비난(非難)하고 단죄(斷罪)하려 하며, 지워버리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교훈을 올바로 수용하고, 전 세계 인류에게 사죄(謝罪)하는 독일 국민의 정의로움과 올바른 역사 인식에 비하여, 역사적 전쟁범죄(戰爭犯罪)를 정당화하려 하고, 책임을 전가(轉嫁)하고, 피해를 당한 이웃 국가를 무시하는 일본은, 언제인가는 전 세계 인류로부터 그 대가를 받게 될 것이며 그것이 역사(歷史)의 진리(眞理)이며 징벌(懲罰)인 것이다.
기성세대들 중의 상당수는 부모로부터, 조상으로부터, 가문을 통하여, 교육을 통하여, 또는 사회적 학습을 통하여 등등으로 성장(成長)의 다양한 과정 속에서 사람이 사랍답게 살게 하려는 기본적인 도덕과 윤리, 그리고 인간성의 도야(陶冶)와 함양(涵養)을 함으로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방공간을 지나면서 이념적인 갈등과 삶의 고달픔과 갈등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사람다움이 사라져 드디어 우리사회도 인간성(人間性)의 상실(喪失)이라는 비운(悲運)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기성세대와 우리들의 조상이 배웠던 사람이 사랍답게 살게 하려는 기본적인 도덕과 윤리, 그리고 인간성의 도야(陶冶)와 함양(涵養)을 시키려는 교육과 교육의 내용이 부정당하기 시작하면서 유소년 시절부터 학습을 했던 교육의 목적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석 평가도 해보지도 못한 채 과거로 묻혀버렸다. 지금에 와서 그 시절에 교육내용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가 되었고, 그런 교육과 가치의 필요성을 말하면, 시대정신을 모르는 고루(固陋)하고 시대의 낙오자로 따돌림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면 그 비판자들은 그 시절의 교육의 목적과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 강한 부정과 배척을 하는지 알고 싶다. 필자가 미루어 생각하기에는 그 시절에 배웠던 교육의 목적과 내용을 다 살펴보고 이해하여 혹평(酷評)과 배척(排斥)을 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반대와 배척의 이유가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 시절의 교육의 목적과 내용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 내용을 보고도 반대와 배척을 한다면, 스스로 사람다운 사람되기를 버리고 금수에 가까운 짐승이 되기로 작정한 무지(無知)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유소년 시절부터 탄탄한 교육을 통하여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방법과 사람다운 언행과 정신을 익힘으로서 인성교육(人性敎育)을 통하여 사회규범(社會規範)을 쉽게 수용하여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래의 설명은 각종 백과사전과 관련 자료들의 요약정리이다.
1. 기성세대와 조상들이 배운 교육의 내용들.
가. 서당(書堂)과 향교(鄕校) 그리고 서원(書院)의 교육목적과 특징.
1). 서당(書堂)의 교육목적과 특징.
서당에 관한 기록은 한국 사기에서는 찾아 볼 수 없으나, 삼국시대 고구려에 경당이라는 부락단위의 학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것이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초기부터 각 처에서 성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중국 사료인 신당서와 구당서에 “고구려 사람들은 책을 사랑하여 저자거리에 큰 집을 지어 이를 경당이라 부르고, 벼슬아치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혼인하기 전의 자제들이 여기에서 밤낮으로 책을 읽고 활쏘기를 익혔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경당에서는 문무겸비의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이는 신라의 화랑도와 마찬가지로 교육기관인 동시에 청소년의 결사조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신라에서도 설총이 경서를 이두로 풀어서 제생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경우 그가 가르친 곳이 사숙일 가능성이 크며, 이것이 또한 서당 교육의 한 형태가 아닐까 한다.
그 후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경관과 서사라는 서당 형태의 교육기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더구나 고려중기 이후 과거제도가 정착되면서부터는 서당 교육이 당연히 요구되어졌을 것이고, 따라서 조선시대는 이미 전국적으로 서당이 사설 교육기관으로서 보편화 되어 졌다고 보여 진다. 이에 대한 기록으로 1124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의 서장관(書狀官) 서긍(徐兢)이 저술한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마을 거리에는 경관(經館)과 서두(書杜)가 두 개, 세 개씩 서로 바라보고 있으며, 민간의 미혼자제(未婚子弟)가 무리를 이루어 선생에게 경서를 배우고, 좀 성장하면 유(類)대로 벗을 택하여 사관(寺觀)으로 가서 강습(講習)하고 아래로 졸오(卒伍), 동치(童稚)도 역시 향선생(鄕先生)에게 배운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에 서당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고등 교육기관으로서 중앙에 성균관이 있었고, 중등 교육 기관으로서 중앙에 사학과 지방에 향교가 있는데 이곳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초보적인 학력이 요구되어졌고 서당은 초보적인 교육을 실시하였다. 조선조 시대에도 이런 교육기관들이 계승되었다. 서당에 다니는 목적은 인격을 닦는데도 있지만 학문의 기초를 형성하여 장차 과거를 통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하려는 것이었으며, 과거준비를 위해서는 유학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고등 교육기관의 교육의 목적은 고려시대 이래 순수한 유학(儒學)의 기본사상을 교육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기능면에서는 그 지방이나 洞里의 敎化의 중심기관이었지만 향사성(享祀性)은 없다. 반면에 성균관(成均館), 향교(鄕校), 서원(書院)은 수(隨)나라 이래의 동양적 특색이기도 한, 선성(先聖)이나 선사(先師)를 향사(享祀)하면서 교육한 것이 서양의 교육 기관과 다른 특색이었던 데 비하여 서당은 같은 유학 교육 기관이면서도 선성이나 선사를 향사하지 않는 특색을 지녔다.
註 20; 향사(享祀)/명사;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영혼에게 음식을 바치며 복을 기원하거나 죽은 이를 추모하는 의식을 뜻함. 여기에서는 선성(先聖)이나 선사(先師)을 추모하는 의식을 뜻한다. 유의어로는 제(祭), 제사(祭祀), 체협(禘祫)이 있다.
註 21; 소학(小學)의 입교(立敎)편에서는, 태교와 아동을 위한 교육내용과 방법 등에 대해서 연령별로 다루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이가 밥을 먹게 될 무렵 오른손을 사용하며 공손히 대답하는 법을 가르치고, 남아의 경우 가죽 띠를 두르고 여아의 경우 허리에 실띠를 매어준다. 6세에는 숫자와 방향의 명칭을 가르치고, 7세에는 남녀가 같이 앉지 아니하고 같은 자리에서 먹지 아니하며, 8세에 이르러 문밖출입이 가능하며 음식을 먹을 때 어른께 양보하는 예의를 가르치며, 9세에는 날 수 헤아리기, 10세에는 글과 산수를, 13세에는 음악 시 활쏘기 말 몰기 등을 배운다. 20세에 관례(冠禮)를, 30세에 결혼(結婚)을, 40세에 벼슬길에 나서서, 50세에 대부(大夫)가 되고, 70세에 벼슬을 마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다시 여자의 경우 앞서 남아와 동일한 유아교육을 거친 다음, 10세부터 나가 다니지 못하고 순종(順從)의 도(道)와 베를 짜고 음식을 만드는 것 등 여자의 일을 배우며, 15세에 비녀를 꽂고(성년식), 20세에 시집을 가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편 연령별 지도 외에도 생활지도를 우선으로 하는 교육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즉 어려서부터 물 뿌리고, 쓸고, 심부름하고, 대답함을 가르쳐서 효도, 공경, 충성, 신실함을 닦아 훌륭한 예절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사설 초등교육기구의 연원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전기까지 초등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학생들은 가정에서 한문 해독 능력을 갖춘 다음 서재류(書齋類)의 사설 교육기구나 관학인 향교를 통해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교육과정을 밟았다. 조선 후기에 보편적인 초등교육기구로 자리 잡은 서당의 직접적 전신은 서재에서 찾을 수 있는데, 서재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곳이었으나 초등교육이 포함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6세기 후반에는 서재를 잇는 서원이 성립되면서 중등교육을 담당하게 되고, 서재에서 이루어지던 초등교육은 서당에서 담당하는 식으로 교육과정이 명확히 분화되었다. 서당은 처음에는 서원에 부속된 형태로 운영되었으나 17세기부터 서원과는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교육기구로 자리 잡았다. 서당이란 글방(-房), 사숙(私塾), 사횡(私黌), 서숙(書塾), 서옥(書屋), 서재(書齋), 학당(學堂), 학방(學房), 서방(書房), 책방(冊房)이라고 불리던 것으로,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특히 발달한 초등 교육기관으로 그 연원(淵源)은 멀리 삼국시대로 소급된다. 즉, 고구려시대에 민간 사설 교육 기관으로서 국당(局堂)이 있어 일반 서민의 자제들을 교육한 기록이 있으며, 경당(扃堂)의 학통(學統)을 이어받은 초등교육 기관이 고려 초기부터 계속 발전되었다. 서당의 완성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은 일반서민들에 이르기까지 인륜도덕의 숭상(崇尙), 청렴절의(淸廉節義)의 존중 등 유교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가치와 규범을 실제생활에 내면화(內面化)하는 데 초석이 되었다. 이것은 곧 당시 서당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유교사회가 요구하는 인격체를 교육하는 도장(道場)으로서의 전인 교육적(全人敎育的) 역할을 다했음을 의미한다. 서당은 국민 대중적인 교육기관으로 전국 각지에 설립되어 있었으며 문자교육과 민풍과 도덕규범을 확립하는 교화적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서당의 본격적인 확산은 16세기 중종 때 사림파 등장 무렵으로 보고 있다.
/ 기성세대가 정말 저주받아야 할 세대인가(12-2)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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