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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암이윤영
댓글 0건 조회 54회 작성일 17-11-3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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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동화


나비 소년
(신인간 11월부터 3회 연재)

이윤영 / 동학혁명기념관장


1.
따사로운 봄날이었다. 이진성 시인은 아침 산책을 다녀온 뒤에 평소 좋아하던 들국화 차를 마시며 2006년 3월 25일자 조간신문을 펼쳐보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개구리 소년 사건 공소시효 만료’라는 기사 제목에 긴장하는 눈빛을 발하며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민주국가라는 우리나라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억울하게 죽은 소년들의 영혼을 달래 주어야지··· 실종 사건 발생부터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이 시인은 공소시효 만료의 부당한 처사에 울분을 감추지 못하며, ‘유골이 발견된 직후부터 공소시효를 적용해야지이렇게 끝내면 정말 말도 안 된다’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시인은 한숨을 연거푸 내쉬면서, 더 이상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동네 길가를 걸으며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마침 동네 가게 주인인 파마 모양의 배추머리 아주머니가 시인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시인 선생님, 얼굴이 백지장이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아주머니의 참견에 시인은 고개를 힘없이 돌리며 대답했다.
“애들이 너무 불쌍해요.”
“아니, 누구 말씀이에요?”
“개구리 소년···.”
“휴, 나도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았는데, 속상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아주머니와 시인은 남 일이 아니라는 듯 근심 어린 말을 주고받았다. 그 후 며칠간 시인은 분노와 방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때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고, 때로는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방황하였다. 주위 사람은 ‘넋 나간 사람’처럼 보인다고 걱정을 하였다.
시인은 침몰해 가는 자신을 건지려는 듯, ‘정신을 차리자’고 자문자답해 보지만 반인륜 사건에 마음이 짓눌려 헤어나지 못했다. 집집마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등불이 하나둘 꺼지면서 고요의 시간은 다가왔다. 시인은 쏟아질 듯 반짝거리는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와 세상을 잊으려는 듯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해 본다. 세상은 모두 잠들고 반짝이는 별들과 산하를 굽어보는 반달만이 쓸쓸함을 더해줬다. 시인은 눈을 감고 자려고 하면 불쌍하고 가여운 소년들의 영혼이 자꾸 자신을 부르는 환상에 빠지곤 하였다.


성서초등학교 어린이 실종 사건은 1991년 대구에 살던 다섯 명의 초등학생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간 뒤 실종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90년대에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으며 경찰과 군대를 동원하여 아이들을 찾았으나 ‘2002년 6개월 만에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기까지’ 전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개구리 소년 부모들은 만사를 제치고 아이들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눈물로 하소연하며 사진 한 장 가슴에 붙이고 돌아다녔으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어린이들이 개구리를 잡으러 갔다고 잘못 알려져 흔히 개구리 소년으로 불렸다.
한때 외계인 납치설, 북한 공작원 납치설, 한국 특수부대 기획설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퍼져 돌아다녔다년 9월 26일, 와룡산에서 도토리를 줍던 주민이 유골을 발견하였고, 유골을 감정한 결과 소년들은 타살당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2006년 3월 25일 자로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이다.

2.
이진성 시인은 어디엔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최영선 선생님, 저, 이진성입니다.”
“이슬만 먹고 사는 시인이라 그리 힘이 없습니까?”
“최 선생님, 나를 좀 살려주세요.”
“다 알아요, 개구리 소년들 때문에 그러시죠?”
나비춤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최 선생은 말을 이어갔다.
“저도 뉴스를 보면서, 이 선생님을 생각했어요. 이 소식을 들으면 어린이를 사랑하는 작가님께서 무척이나 마음이 아프시겠다고요.”
“최 선생님, 아이들의 넋을 달래는 씻김굿이라도 해야 제가 살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위령제라도 해야 되지 않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최 선생님, 저는 마치 커다란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듯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습니다.”
이진성 시인은 최영선 선생과 통화 후, 나비 화가로 활동하는 구천서 선생에게 나비 그림을 부탁하기로 하고 소년들을 나비로 부활시키는 씻김굿 구상에 몰두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굴에 약간 화색이 돋는 시인은 고심 끝에 대구 성서초등학교와 개구리 소년 유족들을 찾아 나섰다.
개나리가 길가를 노랗게 물들이고 산모퉁이에 피어난 진달래꽃이 연분홍 미소로 지나가는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월 초 봄날에 시인은 성서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초등학교 풍경에 그리움을 떠올리면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나, 둘, 셋, 줄넘기를 넘는 아이, 철봉에 매달려 원숭이처럼 재주를 부리는 아이, 운동장을 힘차게 돌며 뭔가 경기를 하는 아이들, 농구에다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그들과 눈과 마주쳤다. 시인은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고곧바로 교무실로 향했다.
‘똑똑똑’
시인은 노크하기가 바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시인 이진성입니다.”
인사를 마친 시인이 한참을 서서 머뭇거리는데, 단정한 복장에 안경을 쓴 여교사가 묻는다.
“어찌 오셨습니까?”
“예, 오래전에 떠난 개구리 소년들에 대해 알고 싶어 왔습니다.”
순간, 교무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의 공간으로 변했다. 시인은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흐느적거리며 옆에 있던 의자에 몸을 맡겼다. 공소시효 만료라는 법원 판결 뒤에 기대나 희망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린 상황에서 가급적이면 개구리 소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금기시했던 학교의 정서였다. 성서초등학교 몇몇 선생님들과 자리를 함께한 시인은 아이들을 위한 씻김굿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선생님들의 협조를 부탁했다.
이진성 시인의 말을 자세히 듣던 선생님들은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치는지 애써 눈물을 참으면서 시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양지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시어 유족인 부모님을 만나 간곡히 부탁하면 아마 허락해 주실 겁니다. 조심하셔야 할 것은 다시 그분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씻김굿이 이루어지면 우리도 협조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으며 시인은 성서초등학교를 빠져 나왔다그러나 양지마을까지 가는데, 망설임과 두려움이 겹치며 시인을 힘들게 했다. 가다가 쉬고 또 생각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그분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왜 참견이냐며 창피는 안 당할지, 아물어 가는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것은 아닌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양지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 세상을 껴안을 듯 천년을 버티고 있는 정자나무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던 시인은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김 군(당시 9세)
박 군(당시 10세)
김 군(당시 11세)
조 군(당시 12세)
우 군(당시 13세)


이진성 시인은 용기를 내어 유족인 부모님들을 찾아뵈었다. 어찌 이분들의 심정을 헤아릴까? ‘생사를 알 수 없는 시한에는 가슴에 대못 하나 박혀 있었고, 이제 그 빠진 구멍 속으로 슬픔이 한없이 밀려온다.’는 부모님들의 말씀을 들었다시인은 부모님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아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씻김굿 계획을 말씀드리자 의외로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필요한 제물은 여기서 마련할 테니 날짜가 잡히면 미리 연락을 하여 달라는 부모님들의 부탁까지 받았다.
시인은 소년들의 마을을 벗어나면서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이 꿈처럼 스쳤다. 개구리 잡아 허기진 배를 채웠고, 메뚜기 잡아 구워 먹다 초가삼간 태워버린 후배 녀석도 생각이 났다. 동네 형들을 따라 재를 몇 개 넘어 캐온 칡을 입이 아프도록 씹으며 팽이치기, 못치기, 땅따먹기, 연날리기 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가 엄마가 고함치며 부르면 쏜살같이 집으로 뛰어가 올챙이처럼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오도록 밥을 먹었던 그런 기억도 떠올랐다.
그랬었지. 이때쯤 고무신을 노끈으로 단단히 돌려 묶고, 마을 뒷산에 올라가 다람쥐처럼 기어 날아다니며 진달래꽃 한아름 꺾어 와 누나의 가슴에 안겨 주면, 누나는 기뻐하며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그 시절 그 나이가 개구리 소년들과 같았을 거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 멀어져 가는 양지마을을 자꾸 뒤돌아보았다. 들꽃이 유별나게 많이 피어난 양지마을이 보이지 않자, 어머니 한 분의 고백이 지금도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꿈이라면 좋겠습니다. 멍울진 가슴에 이제 피눈물도 말라 버린 지 오래입니다.”
개구리 소년들을 위한 씻김굿은 약 1개월의 연습 기간을 거쳐 5월 5일 어린이날 치르기로 결정을 보았다. 최영선 선생의 나비 무용 창작 연습은 말 그대로 눈물겨운 노력으로 이어졌다. 구천서 화백은 소년들을 자유의 나비로 부활시키려는 생각으로 소년들이 즐겨 입었던 옷 색깔을 참고삼아 그려가는 그림은 살아 움직이는 나비 모습으로 완성되어 갔다. 하지만 진행과 축문을 맡은 이진성 시인은 축문을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시인의 머리에는 ‘잘되어야 할 텐데··· 진정 그들을 자유혼 나비로 부활시켜야 할 텐데··· 구천서 화백의 나비 그림은 어떻게 되어 갈까? 최영선 선생의 나비 무용 창작은 잘 진행 되는지….’ 등의 구상으로 꽉 차 있었다.


그날이 왔다. 유골이 발견된 와룡 산기슭 아래에 제단을 만들고 유족은 물론 성서초등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모님들의 분향이 시작되었다. 이진성 시인은 즉석에서 축문을 신들린 사람처럼 외치듯 말하여참여한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최영선 선생의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한 나비춤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몸짓으로 율동 쳤다. 개구리 소년들이 나비로 부활하여 못 살다 간 삶을 자유의 혼으로 소생시키려는 몸짓이었다.
이 소년들이 왜 무슨 이유로 사망했는지 인간 사회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이제 공소시효도 지나 억울한 죽음을 이렇게 씻김굿으로 대신하며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사죄하고 있는 것이다. 하얀 소복을 입고 손에 든 무지갯빛 천을 빙빙 돌리며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춤을 추는 최영선 선생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아름다운 환상의 춤은 잠시도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흐르는 땀방울이 하얀 맨발에 부딪치며 나비춤이 절정에 이를 때, 갑자기 ‘번쩍, 우르릉 꽝’ 천둥소리와 함께 새카만 먹구름이 몰려와 일식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어둠이 짙게 깔렸다.
모든 사람들이 숨죽이고 하늘을 쳐다보는 가운데, 굵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흐느끼는 소리는 점점 울려 퍼졌고, 이내 유족들의 통곡은 인간 세계의 슬픔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설움의 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때 ‘앗’ 하는 신음과 함께 시인의 눈은 나비 그림으로 향했다. 참으로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구천서 화백의 그림 속 나비들이 사라진 것이다시인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으며, 다시 그림을 확인하는 눈짓을 반복해 봤으나 나비들은 보이지 않았다
시인은 고개를 돌려 오열하는 어머니를 소름끼치게 쳐다보았다. 앗! 나비 다섯 마리가 어머니 가슴에 붙어 파르르 날개를 떨며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얼마나 가족이 그립고 엄마가 보고 싶었으면 그림 속 나비가 밖으로 나와 가슴에 안겨 떨어질 줄을 모른단 말인가. 시인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른 사람들은 보았는지 안 보았는지 모르지만 꿈같은 사실을 목격하면서 시인은 두려운 생각에 손끝을 떨었다.
나비춤이 그치고 음악이 멈추고 씻김굿을 마치려 하자, 금세 어두웠던 날씨가 맑게 개고, 따사로운 해가 빛나자 나비들은 어느새 다시 그림 속에 들어가 있었다. 시인은 계속되는 자신의 의문에 해답을 찾지 못하고 씻김굿을 마무리하였다
개구리 소년 가족들은 세 분 선생의 손을 번갈아 잡으며,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어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시인은 양지마을 사람들과 성서초등학교 선생님, 학생들과 인사를 나눈 뒤 제단을 향해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그래, 너희들의 영혼이 나비로 부활하여, 한 맺힘을 풀고 못 살다 간 삶을 자유혼이 되어 마음껏 날아라! 자유의 신이신 나비 소년들이여···.”
씻김굿이 끝나고 이진성 시인은 최영선 선생, 구천서 화백과 서로를 위로하고 헤어졌다. 인간 세상은 진실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존속되며 결국 거짓이 힘을 잃고 정의로운 사회로 거듭나는 아름다움이 차지할 것이다. 시인은 선물로 받은 나비 작품을 가슴에 꼭 껴안고 집으로 향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들 소년들은 나비 장난을 무척 좋아했다. 양팔로 날갯짓을 하며 들로 산으로 훨훨 날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개구쟁이였다.
(신인간 다음호에 계속)
<이윤영 저자 소개>
1958년 2월 25일(음)에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2007년 『월간 신춘문예』 10월호(통권 40호)에 <노점상 할머니>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계간 글벗』 2008년 가을 호에 소설동화 『나비』를 발표했다.
《전북일보》, 《전주신문》, 《전북도민일보》 등에 칼럼과 논단, 역사 이야기를 다년간 발표했다.
2014년, 《전북도민일보》에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재조명 특별기획’을 연재하였다.
2015년에 동학비사 『만고풍상 겪은 손』을 『신인간』에서 펴냈으며, 『만고풍상 겪은 손』은 2015년 가을 경주에서, 2016년 봄 서울에서 극단 ‘모시는사람들’에 의해 동학문화제 뮤지컬로 공연되었다.
<출간예정>동학농민혁명 다큐·역사소설『혁명』이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에서 2017년 말~2018년 초쯤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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