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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夜雷 李敦化의 生涯와 思想(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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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용 천
댓글 0건 조회 133회 작성일 17-02-20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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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雷 李敦化의 生涯와 思想(10-6)

이 “天道敎의 政治理念”은 포덕 110(1969)년 3월 20일에 초판으로 新人間社에서 간행된 “南北分裂沮止(鬪爭 / 三一再顯運動誌”의 附錄(PP. 209-246)에 원본에서 상당부분이 수정된 수정본(修訂本)이 게재되어 있다. 刊行者가 三一再顯運動의 시대적 배경과 교단의 형편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자료로서 ‘天道敎政治理念’을 부록으로 게재하였기 때문에, 간행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많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내용의 첨삭(添削)의 정도(程度)가 너무 심하여 원작(原作)의 의도(意圖)가 왜곡(歪曲)될 수도 있다. 원본의 수정자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고 유은덕(故 劉.恩德)여사의 남편이며 교단의 원로였던 오 근(吳 槿)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 부록으로 게재하는 것에 대한 입장과 평가를 三一再顯運動誌”의 附錄에 부친 편집자의 말은 다음 글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편집자가 말하고 있는 ‘天道敎政治理念’에 대한 평가나 수정태도는 我田引水格이며 恣意的인 修訂으로, 원본에 대한 缺禮이고 不誠實한 태도로 매우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註 00 ; “南北分裂沮止(鬪爭 / 三一再顯運動誌”는 포덕 122(1981)년 3月 1日에 再版을 天道敎 中央總部 出版部에서 했다. 이 책의 編者를 新人間社로 하고 있는 데 잘못된 기록이다.
초판에서 밝혔듯이 發行處가 新人間社로 되어 있지만, 新人間社는 간여한 바가 없고, 三一再顯運動에 직간접을 관여되어 있는 吳 槿 동덕이 전체를 관장하여 내용을 결정하고 편집하여 그가 근무하고 있던 大韓公論社에서 인쇄 간행하면서 新人間社의 명의를 빌렸고, 發刊辭는 당시의 敎領이셨던 崔德新이 썼다. 이 책에는 跋文이 없이 본문만 게재되어 있다. 포덕 122(1981)년에 再版을 天道敎 中央總部 出版部에서 발행하면서 본문 269페이지의 전문을 그대로 사용하고, 畵報를 발간사 뒤에 있던 것을 발간사 앞으로 옮겨 실으면서 초판에 게재된 화보 1-3페이지는 그냥 두고, 5페이지에 있던 故 劉恩德女史(吳 槿 同德의 內修道)의 사진(상단 좌)과 삼남매(吳龍珠, 龍海, 龍相)의 이름으로 환갑이 되는 날에 ‘-전략 - 어머님을 그리워한 나머지 그때 그 일을 글로 추려 모아 작은 책 한권을 만들어 -중략- 오늘 이 책을 삼가 제단 위에 올리오니 -이하 생략’ 하는 출간의 의도를 밝힌 ‘어머님께’라는 글(하단)을 빼고 대신 4-6페이지에는 三一再顯運動과 깊은 관련이 있는 개인별 사진과 三一再顯運動의 密使를 파견하는 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기념사진을 게재했다. 그리고 發刊辭는 再版 當時의 敎領이셨던 李永福이 쓰고, 종무원장이었던 吳益濟가 머리말을 써 추가하고, 맨 뒤에 跋文을 新人間社 主幹 金應祚가 써 추가했다. 그리고 초판은 非賣品으로 관련학계와 관련인물들에게 증정되었으나 再版 때에는 당시 가격으로 1800원에 판매했다. 초판과 재판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판권 부분과 발간 당시 天道敎總本部 知道觀 觀長인 金秉濟의 ‘發刊에 際하여’라는 서문이 동학 제1집의 資料에는 添加 수록되어 있다. 동학 제1집의 資料에서는 제목이「天道敎政治理念」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三一再顯運動誌”의 초판과 재판에서「天道敎政治理念」을「天道敎의 政治理念」이라고 부록 제목을 고쳐 게재하고 있다, / 拙稿 「天道敎 政治理念의 比較分析 硏究(13-6)」/2013년 2월 28일」에서 再引用.
註 00 ; 開闢方式과 三大開闢의 본질과 이론적 배경을 깊이 알고자 하는 독자는,『新人哲學』第四編 開闢思想. 第二章 開闢方式과 三大開闢. / PP. 144-163.을 熟讀하여주시기 바람.
註 00 ; 許 洙의「일제하 李敦化의 사회사상과 天道敎」/宗敎的 啓蒙을 中心으로/文學博士學位論文. 2005년 2월. 총 193페이지.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하는 학술연구지 『역사문제연구』 9집에 許 洙가「1920년 전후 이돈화의 현실인식과 근대철학 수용」을 발표한 것에 대한 서평에서
‘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이후 천도교의 대표적인 이론가 이돈화가 서구 근대철학을 어떤 계기와 매개를 통해 수용했으며, 그 양상은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를 이노우에 테쓰로지로(井上哲次郞)와 쿠로이와 루이코(黑岩周六)을 통해 고찰하고 있다. 이에 연구자는 '사회와 개조에 대한 관심', '최후종교로서의 천도교', '종교와 사회의 매개로서의 역할'을 통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이돈화는 1910년대 중반까지 주로 우주와 개인의 문제에 주목하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 종결을 전후하여 세계개조의 기운이 밀려오자 사회와 개조의 문제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는 천도교 사상에서 사회성의 논리를 찾는 한편 개조의 범주에 사회적 차원뿐만 아니라 종교적 차원까지 포괄하면서 종교가 주도하는 사회개조를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이돈화는 개조의 중심에 천도교를 세우기 위해 쿠로이와 루이코의 '최후종교론'에 주목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적 인격신'의 입장을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 '범신론'을 비판하면서 '가장 최후에 만들어진 종교가 진정한 종교'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는 이돈화가 보기에 최후종교론은 인내천주의와 흡사한 논리였다. 이에 이돈화는 최후종교론이 가지는 '범신론적 실재론'의 입장을 취하되 쿠로이와가 단정을 내리지 못했던 '실재'의 자리에 '자아의 영성'을 확정함으로써 천도교를 최후종교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이돈화는 그 구체적인 작업으로 이노우에의 『철학과 종교』에서 '의식'개념을 끌어와서 인내천의 천인합일적 구도를 설명하고, 나아가 그 틀에 기대어 인내천의 구도 속에 신칸트학파의 '완기설'을 포섭하였다. 이러한 이돈화의 작업은 문화주의의 철학을 인내천주의 속에 포섭하려는 전망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라고 평가 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文學博士 學位論文으로 2005년 2월에 발간한「일제하 李敦化의 사회사상과 天道敎」/宗敎的 啓蒙을 中心으로./ 총 193페이지.」에서 보여주었던 시각과 평가에 따른 것이라 추측이 된다. 그는 이 논문의 결론에서 이돈화의 사상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설명하고 있다.
‘ -전략- 서구 근대철학과의 접촉은 주로 獨學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가 東學에 入門할무렵 동학은 天道敎로 전환하면서 근대적 종교로 탈바꿈해 갔다. 당시 천도교의 사상적 과제는 근대 종교로서의 自己正體性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부응하여 이돈화는 1916년 경, 천도교의 神觀을 汎神論으로 확립했다. 그보다 앞 세대 이론가인 양한묵은 성리학적 기반위에서 ‘人乃天’을 論證했는데 양한묵의 논증은 종교적이기 보다는 無神論的이고 철학적 경향을 띠었다. 이에 비해 이돈화의 汎神論은 교조 최제우의 神人合一的 신앙체험에서 비롯하는 有神論的 경향과 관계 깊었다. 또한 동학 경전의 ‘物物天事事天’이 뜻하는 바, 모든 ‘사물이 곧 天’이라는 ‘汎天論’적 인식과도 관계 깊었다. 이런 사상적 전통에서 쿠로이와 루이코(黑岩周六)의 ‘最後宗敎論’이 가진 汎天論的 입장을 수용했고, 기독교, 유교와 다른 독자적인神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돈화는 종교적 정체성 형성 노력은 神觀 확립을 넘어 人乃天論證으로 나아갔다. 그는 범신론 이외에 進化論도 활용해서 ‘人乃天’을 풀이했다. 그 결과 그의 인내천논증에는 汎神論적 사유와 더불어 ‘神’보다는 ‘人’에 중심을 둔 現世的. 人本主義的 관념이 중심이 되었다. -중략-이돈화는 일본의 ‘現象卽實在論’ 철학을 종교적 계몽을 위한 이론적 資源으로 활용했다. 이노우에 테쓰지로(井上哲次郞)의 현상즉실재론은 ‘精神’. ‘物質’을 모두 ‘現象’으로 파악하고 이 ‘현상’이 곧 ‘실재’라고 보았다. 철학사적으로 볼 때 그것은 기본적으로 ‘관념론’의 계보에 속했다. 그러나 ‘觀念論과 唯物論을 종합하는 實在論’이라는 입장에 담긴 ‘二次元的 一元論’ 사유는 종교와 사회의 이항대립을 조화, 절충하는 논리로 주목되었다.
3.1운동이후 정국이 활발해지자, 이돈화는 이노우에의 ‘종교, 철학, 과학’의 구분법에 기대어 인내천주의의 ‘진리’를 선전하던 이전단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종교적 계몽을 위한 그의 노력이 사회적 실천으로 전개됨에 따라, 이전의 ‘종교, 철학, 과학’ 구분법을 ‘종교, 철학, 사회’ 중심으로 바뀌어 갔다. 또한 이에 연동해서 그는 인내천주의와 함께 제2대 교주 海月 崔時亨의 事人如天主義를 강조했고, 인내천주의를 ‘우주관, 인생관, 사회관’의 차원에서 논의 해갔다. 라고 이돈화의 사상적 변화의 추이를 설명하고 있다’ P.165.
1928년 신년 1월호에 ‘敎外人事의 天道敎에 對한 感想과 囑望’이란 신년호 특집에서 최남선은「좀더敎義를表明하라」는 글에서, 천도교의 새로운 교의의 확립과 교의해석의 핵심인 이돈화의 서구의 다양한 외래사상의 수용에 대한 우려를 보이고 있다.
‘나는實로天道敎에대해서 만흔囑望을가지고잇습니다. 만흔囑望을가짐으로해서 나의眞實로바라는바를한마디하랴면 나느무엇보다 天道敎的敎義를 좀더徹底히表明하라함이외다. 卽天道敎는 儒에서나온것도안이요 佛에서나온것도안이요 仙에서나온것도안이라 本來부터朝鮮에 固有해온朝鮮心에서나온것임니다. 卽崔水雲이나崔海月은 本來의朝鮮心을復活식컷고 中興식컷다생각함니다. 그主義로본다든지 그무엇이朝鮮心이안이엿습니가? 나는꼭이럿케보앗슴니다. 그러닛가敎祖의本志에依하야 敎義를좀더分明히露骨로表明해스면조켓슴니다. 外來思想을吸收치안을수도업지만 그것과밧구아서는안이됨니다. 朝鮮心에確立하야써 씩씩하게敎義대로나아가기를바람니다.’/P.14上下段./ 『新人間』通卷 20號/ 1928年 新年號. 라 하여 이돈화의 다양한 서구사상의 수용으로 인한 잘못된 교의로 확장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에서, 최남선은 崔水雲과 崔海月이 내세운 本來의 朝鮮心을 喪失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반드시 천도교는 崔水雲과 崔海月이 가진 本來의 朝鮮心을 復活시켜 敎義대로 신앙을 하여 대 교단으로 발전해달라는 忠言인 것이라 할 수 있다.
註 00 ; 目次에서는 「좀더敎義를表明하라」로 되어 있고, 내용에서는 「좀 더 敎義를 表明하시오」로 되어 있다. P.14上下段./ 『新人間』通卷 20號.
註 00 ; 윗글에서 말하는 朝鮮心에確立, 朝鮮心을 喪失, 朝鮮心을 復活등의 朝鮮心이란, 우리 민족이 半萬年 餘 連綿히 이어온 固有한 朝鮮魂, 民族魂, 民族精神을 의미한다.
필자가 위에서 李敦化 硏究에 필요한 『天道敎會月報』 『開闢』 『新人間』에 게재된 글들을 연도순으로 소개한 것을 살펴보면, 이돈화는 위에서 지적된 사상적 변화를 위하여 얼마나 빨리 수용하여 교의를 바탕으로 하여 현재와 미래의 대종교로 도약하기 위하여 열심히 새롭게 해석하고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 발표된 글들이 바탕이 되어 이돈화는 1924년 3월에 『新人哲學』 『人乃天要義』 『水雲心法講義』 등 세 권의 大作을 저술하여 간행함으로써 오늘의 천도교 교단의 현재와 미래의 指標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돈화는 이 대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교단 최초의 ‘水雲主義 體系圖’를 만들어 낸 것은 그의 최대의 力作이라고 필자는 평가하고 있다. ‘水雲主義 體系圖’는 필자가 동학과 천도교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평가한다면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는 깔끔한 사상적 체계도로, 천도교가 현재와 미래로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체계도는 후천의 세상을 다시 개벽을 통하여 지상천국건설을 만들어 내는 일에 선도적 사고와 행동 그리고 새로운 신앙과 사회적 종교적 역할을 제시한 것이라고 필자는 평가하고 있다.
註 00 ; 水雲主義와 地上天國 建設 - 水雲主義와 地上天國 建設의 상관관계를 夜雷 李敦化는 그의 저서인 『新人哲學』第四編 開闢思想 第二章 開闢方式 三大開闢 147 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은 體系圖를, 水雲主義의 理想과 計劃이라고 하고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地上天國 建設은, 이 체계도에서, 수운주의의 목적으로서, 宗旨와 綱領을 바탕으로, 精神開闢, 民族開闢. 社會開闢의 3 대 개벽을 통하여 地上天國을 건설해야 된다고 했다. / 만약 이체계도가 다운을 하는 과정에서 제 모습을 잃을 경우, 수고스럽지만 『新人哲學』의 147 페이지에 수록된 原圖를 참고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필자. 오암.
人乃天의 宇宙觀.
原理上人乃天 人乃天의 人生觀.
人乃天의 世界觀.
宗旨 人乃天
사람性自然의歷史.
應用上人乃天
思想 사람性自然의新倫理新制度.
人間格 中心의精神解放及建設.
綱領 性身雙全
人間格中心의制度解放及建設.
水雲主義
精神開闢, 民族開闢.
目的 地上天國
社會開闢, 地上天國.
人間中心의信念.
信念
後天開闢의信念.
種子사람으로의力量.
誠米로의力量.
力量
組織體로의力量.
運用으로의力量.
/필자의 ‘주문(呪文) 수련에 대한 단상(斷想).(2)’에서
필자는 개인적으로 교단의 원로였던 두 세분의 체계도를, 私的으로 70년대에서 80년대 사이에서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체계도를 보고 또 한 번 야뢰의 치밀하고 명확한 체계도에 다시 한 번 더 놀랐다. 필자가 구경한 체계도들은 散漫할 뿐만 아니라 천도교의 교단의 종교적 4대 목적이 무시되어 있었고, 대 사회적인 활동과 역할을 극대화시킴으로써 현실성이 매우 결여되어 있었다. 특히 교의해석의 擴張性에 있어 그 한도를 넘었다고 보아지고 교단과 교의에 맞지 않는 대사회적인 활동과 역할에 사용된 용어들은 수용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필자는 이 중 두 분 원로의 체계도를 소장하고 있어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야뢰의 체계도와 비록 사적인 체계도들이지만, 면밀히 비교 분석해보려고 준비 중에 있다. 지금의 교단은 이돈화가 이끌고 가던 20년대 전후로 부터 40년대 말까지 약 30여 년간의 지도이념과 교의해석이 필요했던 것처럼 2010년대의 현재와 22세기의 미래로 가는 방향에서 종교와 시대가 천도교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체계도 작성의 필요성이 시급함을 요구한다고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위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필자가 정리한 야뢰의 글들을 발표한 순서대로 살펴보면, 외래사상의 수용과 敎義化에 얼마나 빨리 대처한 동학사상의 근대화에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가를 알 수 있다. 야뢰는 독학으로 서구 근대철학사상을 일본을 통하여 수용하였으며 不毛地나 같은 교단에서 동학사상을 근대화하여 천도교의 미래를 준비했다. 야뢰가 발표한 30여 년간의 수많은 글들을 순서대로 讀破한다면, 필자가 말하고 있는 그 이상의 감동과 경이로움을 같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허 수는 야뢰의 업적을 앞에 논문에서 이렇게 평가하고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 앞 세대 이론가인 양한묵은 성리학적 기반위에서 ‘人乃天’을 論證했는데 양한묵의 논증은 종교적이기 보다는 無神論的이고 철학적 경향을 띠었다. 이에 비해 이돈화의 汎神論은 교조 최제우의 神人合一的 신앙체험에서 비롯하는 有神論的 경향과 관계 깊었다. 또한 동학 경전의 ‘物物天事事天’이 뜻하는 바, 모든 ‘사물이 곧 天’이라는 ‘汎天論’적 인식과도 관계 깊었다. 이런 사상적 전통에서 쿠로이와 루이코(黑岩周六)의 ‘最後宗敎論’이 가진 汎天論的 입장을 수용했고, 기독교, 유교와 다른 독자적인神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돈화는 종교적 정체성 형성 노력은 神觀 확립을 넘어 人乃天論證으로 나아갔다. 그는 범신론 이외에 進化論도 활용해서 ‘人乃天’을 풀이했다. 그 결과 그의 인내천논증에는 汎神論적 사유와 더불어 ‘神’보다는 ‘人’에 중심을 둔 現世的. 人本主義的 관념이 중심이 되었다.’
라고 위에서 허 수가 설명하고 있는 것을 뒤집어 보면, 그 설명의 본질은, 야뢰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교단의 근대화를 혼자서 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교단 내외의 시대적 선구자였다. 그 시대의 급변하는 상황이 시급히 요구되는 시대적 사상과 시대적 소명으로 종교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교단의 최선봉에서 그 때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서구 근대철학사상의 수용과 그 사상을 새롭게 변환시켰다. 그리고 야뢰가 수용하여 새롭게 해석하고 이론화시킨 교리의 논리를 바탕으로 학습한 교단내의 여러 원로들의 글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야뢰의 새로운 교의의 논리를 바탕으로 야뢰의 논리에 부응하고 설명을 부연하는 역할을 한 것은, 교단의 현재와 미래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논리를 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해방과 함께 또 한 번의 변혁기를 맞게 되었다. 야뢰가 스스로 지적했듯이 『新人哲學』과 『人乃天要義』의 바탕이 된 핵심사상과 논리의 변화를 불러왔다. 1945-1948년 사이에 著作된 『東學之人生觀』, 『黨志』, 『敎政雙全』이 이에 해당된다.
이 변화는 북한이라는 특수한 地政學的 狀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야뢰는 1946년경에 북한 종리원에서의 교화를 위하여 서울을 떠났기 때문에, 해방 전후로 정리된 『東學之人生觀』을 제외하고는 『黨志』와 『敎政雙全』은 북한이라는 특수한 환경과 시대적,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敎政雙全』은 이하 생략이라는 전제로 지금 남아 있는 부분은, 약 40페이지 분량의 글이다. 이 속에 담겨져 있는 글 중에 二. 정치계단에서 1. 보국안민이란 부분만 제외하고는 교정쌍전을 이해할 만한 글이 없다. 제3장 천도교의 정치적 방면. 二. 정치계단은 거의 시작부분에서 이하생략이 되었기 때문에 교정쌍전의 이론적 배경과 실천방안에 대해서는 제시된 바가 없어, 이 책을 야뢰의 ‘교정쌍전’이라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이다. 이하 생략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계속하여 全篇을 실을 수 없었던 상황이 어떤 것이었는지, 지금은 설명해 줄 사람도 없고, 파악할 방법도 없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그 이유는 천도교 신앙의 궁극적인 4대 종교적 목표로서 최종 단계인 지상천국 건설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註 00 ; 雙全의 意味/쌍전(雙全;双全/shuāngquán)
■ 천도교의 교의를 바탕으로 한 의미.
나와 너는 相對的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共存하는 實在.
人間은 神의 被造物이 아니라 ‘神이자 人間’/人乃天; 사람이 한울님. 한울님을 모신 나.
相對的인 것, 相反된 것들은 둘이 아니라 하나. 反對一致.
‘可視的인 것’(外顯)과 ‘不可視的인 것’(內在)도 根源的, 原初的으로 하나.
陰陽은 太極의 屬性이지만, 無極 속에 內在되어 있던 것이므로 根源的으로 하나.
至氣는 人心卽天心, 人心卽道心, 吾心卽汝心, 天則理, 性卽理, 氣卽理, 心卽理, 性卽氣, 氣卽性, 理氣一元, 物心一元/性心雙全. 無善無惡, 無爲自然/無爲而化/無窮造化, 等等의 根源的인 理論의 바탕이자 出發點은 無始無終. / 先, 後天 五萬 年의 視空間的 意味.
■ 언어학의 일반적인 의미.
1. 양쪽을 다 갖추다.
2. 쌍방이 부합되다.
3. 두루 갖추다.
4. 쌍방(모두) 완전한.
5. 양친이 살아있는
동사 (서로 대비되는) 양쪽을 다 갖추다. 겸비하다.
쌍전(双全)/쌍방이 부합되다. 일치되다.
곡직향전(曲直向前) 복혜쌍전(福慧雙全)/ 굽이굽이 인생의 굴곡이 있을지라도 앞을 보고 나아가면 복덕과 지혜를 갖출 수 있다는 말 - 2013년 계사년 뱀띠 해를 맞이하여 대만불광산사 개산종장 성운대사께서 홍법사 불자님들을 위해 보내오신 신년휘호입니다. 홍법사에서는 설날 복돈과 삼천부처님 사진을 위 글귀를 인쇄한 봉투에 동봉하여 세배오신 신도님들에게 새해 선물로 드렸다.
교정쌍전(敎政雙全)/ 천도교에서는 정치와 종교를 敎政(政敎)分離로 보지 않고 敎政一致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명리쌍전(名利雙全) 세상에서 얻은 명성/명예와 이익을 아울러 두루 갖춤.
문무쌍전(文武雙全) 학문적 지식과 군사적 책략을 아울러 갖춤/문무를 겸비하다.
문필쌍전(文筆雙全) 글을 짓는 재주와 글씨를 쓰는 재주를 다 갖춤
복수쌍전(福壽雙全 Live Long and Prosper) 五福과 長壽를 두루 갖춤.
부귀쌍전(富貴雙全) 재산이 넉넉하고 높은 지위를 두루 갖춤.
쌍전기미(双全其美/两全其美)/양쪽 다 좋게 하다
성신쌍전(性身雙全/ 物心雙全) 천도교에서, 영(靈)과 육(肉)의 공부를 그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함께 해야 함을 이르는 말
아녀쌍전(兒女雙全) ; 중식당 천산은 상견례 특선 코스 메뉴로 '아녀쌍전(兒女雙全)' 메뉴를 선보인다. '아녀쌍전'은 중국에서 '아들, 딸을 골고루 낳은 사람'을 일컫는 말로 다복함을 의미한다. 중식당 천산에서 상견례를 한 모든 소비자가 다복한 가정을 이루길 기원하는 것이다. '아녀쌍전' 메뉴는 '홍콩식 금팽이 버섯 보양찜', '금분 송이버섯 전복볶음', '부귀과일 크림소스 왕새우', '사천식 아스파라거스 소고기', '식사 (면 또는 밥)', '계절 과일', 총 6가지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가격은 9만 5000원(세금 및 봉사료 포함가). '아녀쌍전' 메뉴 이용시, 상기 금액에서 추가로 15% 할인 혜택이 제공(기타 중복 할인 불가) 된다.
영육쌍전(靈肉雙全) 참되고 올바른 정신과 강건한 육신을 다 같이 온전하게 갖추는 것.
정재쌍전(丁財雙全) /壯丁의 건강한 몸과 재물을 모두 온전하게 갖추어야 한다.
충효쌍전(忠孝雙全) 충성과 효도를 모두 갖추어 온전히 실천함. //관련 어학사전들을 바탕으로 필자가 새로 정리하여 기술함.
『東學之人生觀』은 실제 프린트 원본이 없어 대조가 불가능한 상태를 전제로 하고 생각한다면, 많은 부분의 문제가 있지만, 68년도 판에 漏落된 第 四編 人生問題(夜雷 對 正菴 問答編)이다. 이 문답 형태를 잘못 생각하면 수운대신사의 天師問答과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夜雷 對 正菴이란 현실적인 야뢰와 내면적인 야뢰인 정암과의 대담인 自問自答形의 문답이기 때문이다. 57페이지 분량에서 아래의 열 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문제는 이것을 통하여 지금에도, 이런 답이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당면하거나 하게 될 문제들에 해결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가이다. 또 이런 문답을 통하여 지금이라는 시대에서, 더 나아가 다가올 미래의 시대에서 천도교인과 동학, 천도교에 관심을 가진 삶들에게 독실한 신앙과 종교적 목표를 설명했을 때 이해하고 수용하여 실천적인 신앙을 할 수 있으며 4대 종교적 목표 실현에 길라잡이나 지름길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註 00 ; 第 四 編 人生問題(夜雷 對 正菴 問答編); 229.
一 進化와 創造; 231
二 無神論; 235.
三 旣成宗敎; 238.
四 福善禍淫; 240.
五 攸好德; 246.
六 精神統一; 255.
七 法悅; 261.
八 樂天과 厭世; 266.
九 利己와 利他; 271.
十 無窮我; 275
註 00 ; 길라잡이 -대중의 앞에 나서서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나 사물을 1차적으로 의미하지만, 요즈음은. 당면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문물이나 사회적 지향점에 대하여 지도자나 선도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대중들에게 지금 당면하고 있는 시대정신과 상황을 어떻게 수용하여 나아갈 방향을 바로잡아 올바르고 참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지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자주 쓰인다. 위키 백과사전에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설명으로, ‘길잡이 또는 길라잡이는 알 수 없는 국가를 통하는 사람들이나 관심이 있는 장소를 통하는 관광객과 여행객들을 안내하는 사람을 말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영어 낱말로 가이드(guide)라는 말도 많이 사용한다.’ 하고 있다. 이런 의미를 정확히 한다면, 국내, 외인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일반 관광지와 문화 유적지에 관련된 역사와 문화를 소상하게 설명하고 안내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다./ 관련 자료들에서 종합 정리함.
허 수는 1940년대 중엽에 이르러 야뢰의 천도교 교리의 철학화와 사회화에 대한 갈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여 설명하고 있다. 교단의 이러한 경향의 야뢰의 연구결과에 대하여 어떻게 수용할 것이며, 그런 결과물이 던져주고 있는 평가와 결론에 대하여, 교단은 어떤 입장을 견지해야 할지에 대한 깊은 사색과 연구가 시급하다.
‘-전략- 그러나 종교사상과 사회사상의 종합 시도는 절충적인 데 그쳤다는 한계도 있다. 『新人哲學』에서 ’종교‘(우주관, 인생관)와 ’사회‘(사회관) 사이에 미묘하게 존재했던 틈은 이미 1910년대 말부터 존재했던 종교와 사회의 ’비대칭적 관계‘의 연장이었다. 10여 년 뒤에 쓰여진 그의 저작인 『東學之人生觀』(1945.2)에서는 이런 틈이 벌어져 급기야 ‘사회’ ‘개벽’ ‘도덕’ 등은 책의 구성에서 아예 제외시켰다. 그 배경에는 ‘현상즉실재론’ 수용에 대한 자기비판이 놓여 있었다. 이에 따라 종교의 철학화, 그리고 神을 ‘實在’로 파악하는 이정의 ‘철학’적 관점은 自己否定을 겪었다. 이는 곧 1910년대 이래 이돈화의 사상적 전개를 지탱해 왔던 종교적 계몽의 해체를 의미했다. -중략- 이돈화의 사상전개는 일제 식민지 하 사상방면에서 이루어진 ‘근대성’ 수용의 내외적 조건과 경로, 귀결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이돈화와 천도교 신파의 사회사상적 지향에는 공동체적 성격과 더불어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비판적 정서가 강하게 존재했다. 이는 기존의 사상사 연구에서 충분히 주목되지 못한 점이 아닌가 한다. -중략- 그와 유사한 범주에 묶일 수 있는 인물群의 選別과 상호간의 비교검토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이돈화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와 평가를 위해서는 시기적으로 1930,40년대, 사상적 범위로는 사회상뿐만 아니라 종교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가 불가피하다.’ P.170.
라고 끝을 맺었다. 이 말은 단지 학계의 연구자들에게 한 말일 수 있지만, 교단이 먼저 해결해야 할 절실한 문제이다. 천도교의 교의해석에 있어서 상당부분이 1920년대부터 해방 전후까지 형성된 이론과 설명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가장 중심인물이었던 야뢰의 기본적인 이론에 아직도 지나치게 탐닉(眈溺/탐익)되어 있어, 이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설교를 하며 교화 강연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재양성을 할 수 없었던 상황들 때문에, 시대적 변화에 대응할 논리의 개발을 하지 못하여 학계 수준에 미치는 교단내의 연구자가 없다는 것이 1차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교인들의 신앙심을 떨어뜨려 在家敎人과 冷淡者로 사라져버리는 2차적인 원인을 만들고 있어 교세는 날로 쇠퇴해지고 교의 해석과 교단의 운영은 필연적으로 退行을 감수해야 했다. 세계는 이미 3,40년 전인 197,80년대를 전후로 하여 대체종교와 참여종교에 대한 이론이 등장하고 있는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실정은 교단은 종교학과 사회학이 추구하고 있던 세계적 조류를 접하지도 못했고, 이런 세계적 사조에 대처할 대안을 마련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李敦化는 1921년에 벌써 시대적 사회적 변동에 종교가 급속히 변천하는 조류에 재빨리 대처하여 신앙의 내용과 방향을 재정립하여 반드시 제시해야 된다는 의미의 글을「生活의 條件을 本位로한 朝鮮의 改造事業」에서 종교적 신앙은 물론 종교도 근본적으로 시대의 변동에 따라야 올바른 종교의 역할과 신앙이 된다고 강조했다.
‘우라가宗敎를信하야 來世를希望하는것도 其實은信者그가 現在生活의 精神上滿足과豊富엇기爲하야 信仰生活을追求함에不過한것이다. 그럼으로宗敎도또한現實生活條件의滿足을求 하며 現實生活의缺陷을豊富키爲하야發生한最後의眞理라하야도또한過言이아니겟다.
如斯히宗敎도이미 人生의現實生活의利益을주기爲하야생긴것이라하면, 必然의結果-生活을 離하야宗敎가업스며 生活을 離하야信仰이업슬것이다. 즉吾人의現實生活을無視하며 現實生活과關係가업는信仰은 아모存在의價値가업슬것이다.
宗敎와生活이 이러한密接의關係를가젓는故로딸아서 現實生活의變動은스스로信仰生活의變化를致케하나니 卽宗敎의價値도畢竟은現實生活의進步를從하야 그內容의信仰觀念을變改케하며 又는進步케하는것이엇다. 그럼으로過去時代의有益한信仰일지라도 現實生活의變動에依하야 또한有益케될者-업지아니할지라. 이點에서宗敎家된者-먼저現實生活의內容을 詳細히考察할必要가잇스며 딸아서宗敎生活을現實生活과 適宜히順應케할必要가有할것이다.’PP.7-8./「生活의 條件을 本位로한 朝鮮의 改造事業」『開闢』통권 15호.
야뢰는 약 1세기 전에, 기미독립운동으로 인하여 가장 열악하게 된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교단과 청년회가 나아갈 바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었다. 그는 쉽지 않은 외래사상을 수용하여 교의의 확장에 열의를 쏟아 부었다. 그 결과로 얻어진 이론으로 ‘現實生活의 變動은 스스로 信仰生活의 變化를 致케 하나니 卽宗敎의 價値도 畢竟은 現實生活의 進步를 從하야 그 內容의 信仰觀念을 變改케 하며 又는 進步케 하는 것이엇다.’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매우 열악한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여대 종단으로 가기 위해서는 시대적 조류에 따라 모든 것은 變改하는 길 만이 생존의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1세기가 지난 우리는 어떤 信仰觀念을 갖고 신앙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생각하면서 시대적 상황에 맞게 종교적 4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과 실천을 하고 있으며, 급변하고 있는 물결의 흐름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를 자문해보는 것이 變改의 시작이 될 것이다.
------------------------------夜雷 李敦化의 生涯와 思想(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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